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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가 알려주는 일본어 회화.jp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 유쾌한 사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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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ㄲㅋㅋ 교재인가ㄲㄱ도랏ㅋㅋ
힘내ㅋㅋㅋㅋㅋㅋㅋ
실전 일본어!
힘내 ㅋㅋㅋㅋㅋㅋㅋ
힘내에서 터졌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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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베개
어느 날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내일 숙제는 집안에 가족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을 한 가지만 예쁘게 잘 그려 오는 거야.” ​ 다음 날, 아이들의 발표 시간이 되었습니다. 첫째 아이가 나와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친구들에게 설명합니다. ​ “이건 우리 아빠가 부는 나팔인데요, 우리 아빠가 이것을 불면 엄마는 노래하십니다. 두 분이 소중하게 여기시는 악기입니다.” ​ 또 다른 아이가 그림을 들고 나와서 말했습니다. ​ “저희 할아버지께서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손도 못 대게 하는 귀중한 도자기입니다. 오래오래 보관해 온 집안의 가보라고 하십니다.” ​ 이렇게 여러 아이의 그림을 보면, 카메라를 그려온 아이, 승용차를 그려온 아이, 엄마의 보석 반지를 그려온 아이, 아이들의 그림 속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히 있었습니다. ​ 그런데 마지막으로 발표를 한 아이가 자신의 도화지를 펼쳐 보이자 다른 친구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 아이가 들고 있는 도화지에는 누군가의 베개 하나가 덜렁 그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친구들의 웃음소리에도 계속 발표하였습니다. ​ “이건 엄마가 항상 베고 주무시던 베개인데요. 그런데 엄마는 작년에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는 안 계십니다. 엄마는 더 이상 이 베개를 벨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빠는 이 베개만은 절대로 버리지 않으셨어요. ​ 그리고 이 베개를 엄마가 살아 계셨을 때와 똑같이 침상에 나란히 놓고 주무십니다. 우리 아빠에게는 이 베개가 가장 소중한 물건입니다. 난 우리 아빠의 침상에 가서 엄마의 베개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납니다. ​ 엄마의 베개를 안고 여러 번 울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요.” ​ 아이는 목이 메어 더 이상 설명을 못하였습니다. 떠들썩하던 교실의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아이의 짝꿍은 훌쩍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옆에 있던 아이가 또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교실 안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 선생님도 콧날이 시큼해지셨지만 억지로 눈물을 참고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떨리는 아이의 어깨를 꼬옥 감싸 주면서 다른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 “정말로 네가 그린 이 그림은 무엇보다도 가장 값지고 소중한 물건이로구나!” ​ 눈물을 훔치던 다른 아이들은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란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소중한 것을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자녀교육에 있어 큰 가르침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 오늘의 명언 당신과 내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집 울타리 안에 있을 것이다. – 해롤드 비 리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소중한것#인생#삶#명언#영감을주는이야기#교훈#따뜻하하루
2차대전 한반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유일한 한인
정상진 (1918~2013) 1918년 연해주에서 태어난 고려인 2세 출신. 고려인 강제이주로 인해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고 거기서 사범대학 재학중, 독립운동가 김경천 장군을 직접만나 '언젠가 일본과 싸울 기회가 있을거니, 반드시 일본군 상대로 이겨야한다'고 얘기듣습니다. 그는 졸업 후 교사로 일하던 중 2차대전이 발발, 소련군에 입대 1945년 8월, 소련의 8월 폭풍작전때, 8월 13일 한반도 북부 청진 상륙전투에 참전하여 일본군과 직접적으로 교전, 승리.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2차대전에 정규군으로 참전해서 한반도 내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유일한 한인이라고 합니다. 해방 이후에는 북한 현지인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찾던 소련군정에 발탁되어 여러 직책 역임. 북한 초기 정치 파벌 공부하다 보면 나오는 이른바 '소련파'의 일원으로 분류됩니다. 북한 정부 수립 이후에도 북한에남아 문화부상(차관급)까지 올랐으나, 1950년대 후반 김일성의 소련파 숙청으로 인해 북한에서 추방되어 소련으로 돌아갑니다. 한-소 수교 이후에는 한국도 여러차례 방문했고 대한민국 정부 기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 고려인 사회에선 상징적인 인물 중 한명이기도 했습니다. 클리앙 펌 괜히 뭉클하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