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수칙은 지키라고 있는것(네델린 원수 참사+담배)
1945년 8월 15일, 2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후 연합국인 미국과 소련은 패전국 독일의 기술을 전리품으로 갖기 위해 독일의 기술자들을 자국으로 데려가는 비밀작전을 수행한다. 미국은 "페이퍼클립 작전"을 통해, 소련은 "오소아비아킴 작전"을 통해 독일의 기술자를 자국으로 보낸다. 이 작전중 잘 알려진 부분은, 미소 양국이 전부 독일의 "막을 수 없는 창" 이었던 V-2 탄도미사일 기술자들을 각자 자국으로 데려갔다는 것이다. 소련도 V-2탄도미사일 기술자와 부품을 가져가려 했지만 이미 "쓸만한" 연구진들과 부품은은 다 미국이 싹 쓸어갔다. 소련은 미국이 미처 다 못가져간 로켓 부품들과 장비들, 미사일의 유도장치 설계를 맡은 그뢰트루프라는 기술자 말고는 가진게 없었다. 하지만 소련에겐 훗날 전설로 불리는 로켓 설계자, 세르게이 코룔로프, 미하일 얀겔, 블라디미르 첼로메이, 발렌틴 글루쉬코처럼 걸출한 미사일 설계자들도 있었다. 이후 미사일에 진심이었던 소련은 오소아비아킴 작전으로 데려온 독일 기술자에게서 로켓기술만 쪽 빨아먹고 버린다. 1949년, 소련은 과학자들을 끊임없이 갈궈대며 핵개발에 성공한다. 핵개발이 완료되자 핵 투발수단이 필요해졌는데, 그당시 소련은 미국을 위협할 핵폭격기가 미국 B-29 폭격기의 불법 카피판 tu-4 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수량이 미국에 비해 엄청 딸렸다. 이로 인해 소련은 이러한 폭격기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미사일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되었고, 코룔로프를 앞세워 미국까지 닿는 ICBM, R-7 세묘르카를 만든다. 1957년, 여기에 인공위성을 탑재하고 발사해 미국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우주에 띄우며 미국을 충격에 빠트린다. 하지만 R-7은 군사용으로 써먹을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나로호나 누리호처럼 극저온의 액체산소를 산화제로 썼기 때문에 미사일을 세우고 연료주입하는 발사 준비시간만 꼬박 하루가 걸렸고, 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위한 크고 복잡한 고정식 시설을 준비해야 했다. 당연히 이는 엄청난 돈이 들어갔다. 미사일 발사장 하나 지으려고 소련 1년 국방비의 5%를 꼬라박아야 했다. 소련은 비용과 발사준비시간을 줄인 새로운 미사일을 원했고, 소련은 미국 친구들을 한번 더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 R-16 미사일이 개발된다. R-16이 개발중이던 1960년 9월, 소련 전략로켓군 사령관 네델린은 R-16 개발팀에 압력을 넣어 볼셰비키 혁명 기념일(11월 7일, 구 달력으론 10월 25일)까지 로켓을 발사하기 위해 R-16의 발사계획을 앞당긴다. 누가 빨갱이 아니랄까봐 기념일을 존나게 중요시하는 빨갱이 특징이 여기서 발현된다. 이런 기념일 전에 뭔가 큰 성과를 내서 윗선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윗동네 북괴새끼들도 허구헌날 기념일에 도발하는걸 보면 대충 이해가 될 것이다. 이후 10월 3일 국가 위원회가 개최되어 R-16의 발사를 공식적으로 허가하고, 발사 날짜를 10월 23일로 잡았다. 10월 20일부터 23일까지는 R-16에 아무런 문제도 없이 순조롭게 점검이 진행되었다. 이상이 없다는걸 확인하고는, 23일부터 R-16에 유독성 액체추진제를 주입하기 시작한다. R-16은 산화제로 HNO3(질산) 80%,N2O4(사산화 이질소) 20%, 아이오딘 억제제로 구성된 AK-27I와 연료로 UDMH(비대칭디메틸하이드라진)를 사용하는 로켓이었다. 이 물질들은 상온에서 장기간 저장이 가능한 저장성 추진제였고, 그덕분에 극저온 추진제를 사용하는 R-7 보다 훨씬 적은 발사준비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 물질들은 극도로 유독하고 부식성이 강했는데, 얼마나 위험했냐면 하이드라진을 다룰때는 이런 우주복스러운 방호복을 입어야할 정도였고, 코룔로프는 이런 맹독성 추진제를 "악마의 독"이라 부르며 혐오했다. 추진재의 맹독성으로 로켓에 추진제를 주입할때는 필수 인원을 제외한 인원 전부 발사대에서 떨어져있어야 했다. 하지만 R-16개발팀은 시험발사가 앞당겨짐에 따라 문제가 빈번했던 전기장치를 급히 수정해야 했고, 연료를 급유하던 23일에도 문제 해결에 매달려야 했다. 시험발사가 앞당겨지면서 개발팀은 안전수칙들을 무시하며 현장에서 작업중이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연료 밸브 대신 달려있던 파이로멤브레인 (화약을 이용해 연료의 흐름을 막고 있던 파열판을 파괴하는 장치)이 잘 작동할지 아무도 몰랐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2단에 달린 파이로멤브레인을 점화했다. 안타깝게도 제어반의 설계/생산 결함으로 터지라는 2단의 파이로멤브레인은 안터지고 1단이 터지는 찐빠가 났다. 여기서 불운이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1단 엔진의 파이로멤브레인이 혼자서 터져버렸고, 연료주입을 마치니 로켓에서 분당 140~145방울의 연료가 새고 있었다. 기술팀은 연료 유출이 통제 가능하다 판단하고 일정을 강행한다. 사실 일정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던게, R-16미사일에는 한번 주입한 연료를 빼내는 절차가 없었다. 연료를 주입하던 순간부터 이 발사는 취소할 수 없었다. 이제 1단 엔진에 연료가 들어가버렸으니, 3일내로 연료가 엔진을 손상시키기 전에 발사해야만 했다. 이 와중에 네델린은 로켓으로부터 수십m 떨어진 위치에 의자를 설치하고 기술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초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때 네델린은 자신의 출세길에 문제가 생길까봐 상당히 신경질적이었던 듯 하다. 그러나 또 다른곳에 문제가 터졌는데, 미사일에 전원을 공급하는 A-120 전류분배기가 죽어버렸다. 결국 발사를 연기하고 기술자들이 밸브와 전류분배기를 고친 후 다음날 발사하기로 했다. 다음날 24일, 발사시간이 다가오자 국무위원들이 발사를 관람하기 위해 지상관제소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30분 발사 연기가 발표되고, 초조해진 네델린은 뭔 일이 일어나는지 알기 위해 발사대로 간다. 네델린은 발사대에서 15~12m 떨어진 곳에 의자를 놓고 앉았다. 기술자들은 부품의 테스트와 발사전 준비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미사일 설계자였던 얀겔은 므리킨 장군, 전기시스템 연구원 이오시프얀, 보고몰로프에게 근처 벙커에서 담배나 피우면서 이야기하자며 잠시 발사장에서 멀어졌다. 이때 피운 담배가 그들의 목숨을 살렸다. 그 시간에 지상관제소에서는 2단에 전원을 공급하는 배터리가 활성화된 것을 발견했고, 프로그래밍 전류 분배기, PTR이 테스트 이후 스위치가 발사 후 모드로 전환된 것을 확인했다. 이를 수정하려 관제소의 누군가가 PTR의 스위치를 "0"으로 맞추는 순간, 시스템 결함으로 ICBM의 2단 공압밸브 EPK-VO-8이 활성화되며 2단 로켓의 엔진 예비 점화시스템을 작동시킨다. 그리고 18시 45분, 2단 엔진이 작동되어 점화된다. https://youtu.be/oTleVHmkqCI 2단 엔진이 작동되며 생기는 엄청난 열이 1단 추진제 탱크를 뚫어버렸고, 추진제 탱크 내의 산화제와 연료에 불이 붙으며 폭발했다. 이 폭발로 직경 120m 의 거대한 화구가 형성된다. 폭발 후 타죽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망치려 했지만 3000도가 넘는 불꽃의 열로 인해 아스팔트의 타르가 녹아 제대로 도망갈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은 계속 유출되고 있는 맹독성 추진제 가스에 노출되어 사망했다. 맹독성 추진제에 노출된 생존자들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소련군은 의사들에게 이들이 어떤 화학물질에 노출되었는지 말하기를 거부했다. 소련군은 몇 차례 의사들의 요구를 듣고 나서야 생존자들을 치료할때 필요한 정보를 넘겨주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49명의 환자중 16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네델린을 포함해 총 92명이었지만 정확한 사상자 수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다. 대략 54명에서 300명이 사망했다고 추정할 뿐이다. 소련은 이 사고를 철저히 비밀에 붙였고, 이 사건은 소련 붕괴 후에나 드러나게 된다. 군사갤러리 Anthrax836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