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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가 봉효 (郭嘉 奉孝) A.D.170 ~ 207
지금까지 인물들 관련 칼럼을 게시하면 꼭 올라오는 요청이 있었다. "곽가도 나중에 다뤄주세요" 거의 매번 여러 분들에 의해 올라오는 요청이였고 내심 곽가의 인기와 인지도에 놀라웠다...ㅎㅎ 그 인재 많고 재사 많던 위에서, 본인도 여느 모사들 못지 않게 빼어나던 조조의 총애를 받았던 책사면서 한편으로는 그 활약이 많지 않고 생존기간조차 짧아 그의 업적은 거품이 많이 끼었다하여 '곽푸치노', 그의 가치는 과대평가 되었다하여 '곽대평가'라고도 비판받는 동전의 양면같던 사나이 "곽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영천군 양적현이라고, 지금 중국 허난성의 위저우시 태생, 순욱과 동향이고 옛날 후한 기준 허창의 북서쪽에 위치한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그의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행적들은, 말 그대로 "천재" 그 자체였다. 학식이 깊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나, 누구와 이야기 나누던.. 무엇으로 이야기 나누건 거침 없었으며 야망의 스케일도 크고 상당히 담대한 편이라 이미 살던 지역 일대에서는 '뭐가 되도 될 놈' 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 양반이였다. 음주가무와 당시 사람들 기준의 일탈적인 행동들도 좀 잦았던 듯 하며, 말도 그리 나긋나긋이 하는 편이 아니였고 직언직설을 하는 등.... 뭐랄까, 이런 비교는 좀 웃기지만 '스티브 잡스'가 저 나이였을 당시와 스타일이 비슷했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주변의 호불호도 많이 갈려,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그를 인격적으로 좋아하는 이는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본래는 원소에게 먼저 임관을 하고자 찾아갔었다. 나중에 원소도 다룰 예정이라 그때도 언급할테지만, 역사는 승자의 편이고, 여러분들이 접한 삼국지는 대개 소설인 삼국지연의이고 거기의 원소가 찌질이로 그려져서 그렇지, 원소는 그냥 단순한 찌질이가 아니였다. 당대에서 가장 명성 높고 실력과 경력과 집안이 상당하던.. 누군가 황건적의 난 이후 아작난 후한을 다시 일으킨다면 그 영순위로 꼽히던 게 원소였다. 그래서 어지간한 이름 있는 자들이 가장 선호하던 것도 원소의 세력에 임관하는 것이였고 응당 곽가도 가장 먼저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찾은 사람이 원소였다. 허나, 그럼 그렇지... 며칠의 대기 끝에 만나 이야기 나눈 원소는 곽가 스타일이 아니였고, 당시 원소의 최측근들 중 하나였던 신평과 곽도에게 원소 뒷담화를 남긴 후 박차고 나와 집에서 놀다가 아끼던 책사인 '희지재'의 사망으로 책사에 T/O가 나서 거기 알맞는 사람을 찾던 조조에게 순욱의 추천으로 임관하게 된다. 당시, 순욱도 곽가와 직접 아는 사이는 아니였고 순욱 또한 자기고향에서 머리 좀 돌기로 이름 난 곽가의 명성을 듣고 조조에게 추천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렇게 조조와 곽가는 서로 첫 대면 자리에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운명임을 직감한다......뚜둥... 신입으로 입사한 주제에 첫 시작부터 제법 높은 직위를 받아서 조조를 돕게 되었는데, 사실 원소와 비교했을 때 뒤쳐질 뿐 조조도 이미 당시에 원소 다음가는 튼실한 세력가였다. 오히려 외형성장에 메달렸고 조직내 유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구시대적 조직을 이끌던 원소보다 새롭게 떠오르며 개방적이고 효율과 내실을 중시하는 조직을 이끄는 조조가 응당 곽가에게도 더욱 실력 발휘하기 좋은 조직이였음이 맞다. 비교하자면 원소의 세력은 현재 국내의 대기업들과 엇비슷하고 조조의 세력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IT기업들 비슷한 느낌이였다. 아무리 능력이 좋다한들 자유분방하던 곽가로서는 당시 조조말고는 딱히 자기 재량을 펼칠만한 세력도 없었으리라 본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곽가같은 싹수부터 다른 신참이 영입되었음에도 노련하고 뛰어나던 조조의 다른 기존 책사들도 일절 텃새같은게 없었다고 한다. 그의 가장 큰 단점이며 아쉬운 한 가지는 역시 누가 뭐래도 "단명"이다.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위서 정곽동류장류전, 정사 등을 볼 때 아마도 간이 안좋았던 것 같다. 잦은 과음과 부족한 수면 및 특히 스트레스가 그의 간손상을 부추겼을 듯.... 하여간 우루사만 꼬박꼬박 먹었더라면 역사를 살짝 뒤틀었을지 모를 곽가였지만 놀랍게도 역사록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가 병법이나 전술관련 제안을 한 기록이 없다. 쉽게 말해 전장에서 용병술이나 전쟁 또는 세력다툼 속에서 승기를 잡을 병략을 짰다는 증거가 없다는 거다. 이리저리 다 뒤져도 군사적인 공적은 삼국지정사에서 여포를 사로잡는 결정적 작전인 "하비성 수공"이 전부, 그나마도 단독입안 아닌 순유와 공동작전입안이다. 당시 조조 휘하에서 껌 좀 씹던 군사들로 순욱과 순유, 정욱 등이 있었는데, 삼국지정사를 분석하고 주석을 달았던 역사가 배송지의 평가에 의하면 이 중 전략전술적 재량이 가장 훌륭한 것은 순유였고 그 다음이 순욱, 그 아래가 정욱이라 했고 곽가는 그 정욱보다 못한 수준 이라고 평 했다. 삼국지연의에는 원소 VS 조조가 결전 벌인 관도대전 속 큰 활약을 한 듯 그리지만 사실 관도대전의 총참모장은 순유였다. 여포와의 대전에서도 주요 전술 입안자는 역시 순유, 게다가 비록 엘리에 가깝게 털리긴 했어도 당시의 기세가 등등하던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총참모장 역시 순유였다. 뭔가 쓰다보니 오늘의 주인공은 순유같다... 아무튼 의외로.... 매번 많은 분들에게 '곽가도 꼭 다뤄주세요!ㅎ'소리를 들을만한 뭔가가 없이 좀 부풀려진 인물이란 것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들 속의 곽가는 정말 조조의 총애를 받았고, 적벽대전 패전 후 조조가 봉효만 있었다면...T-T 이라며 오열했다는 것도 실제였다. 위의 언급대로 딱히 한 것도 없는 주제에 심지어 일찍 죽기까지 했던 먹튀라면 결코 절대 조조의 사랑을 받지 못 했을 것인데 어찌 그는 깐깐쟁이 조조의 신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일까?? 일단, 그는 달변이였던 걸로 보여진다. 그리고 역사서들 속의 그의 가장 대단했던 점은 "놀라울만큼 감이 좋았다"는 점이다. 그는 조조세력의 숱한 중대사들 앞두고 거의 확정에 가까운 예측들을 내놓았고 "모두" 맞았었다. 더더 놀라운 것은 그런 예측들은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반대되는 의견인 경우가 많았고 더더더 놀라운 점은 그런 나름 날고 기는 이들과 반대되는 예측을 던지는 주제에 그리 확실한 근거조차 내지 않고 그냥 말빨로 덮었다는 점이다. 더더더더 놀라운 사실은 심지어 조조가..... 나머지 책사들과 혼자 딴소리를, 그것도 별 근거도 없이 그냥 '아, 내 말이 맞으니 그냥 나 믿고 해보삼'에 가깝던 곽가의 의견을 잘 따라줬다는 것..ㅎㅎ 조조가 여포를 정벌하고는 싶으나 근거지를 비운 틈타 원소의 후방공격을 걱정할 때도 곽가는 별 다른 논거를 제시않고 원소는 절대 내려오지 않으니 여포공격을 해도 괜찮다며... 여포공략이 순조롭지 않아 전황이 루즈해지며 다시 조조가 그 상황 지켜보다 원소가 쳐내려오는건 아닌지 걱정할 때도 역시 별 근거는 대지 않고 그냥 더 해보자는 제안을 했지만 모두 맞았다. 원소와의 전쟁을 앞두고 당시 남쪽의 야망가이던 손책의 후방 공격을 걱정하던 조조에게 손책은 분명 암살 당할 거라는 구체적 예측까지 맞춰버리며 사실상, 책사를 넘어 예언가에 가까운 그였다고.., Ex.) 당시 조조 책사들의 성향을 표현하자면.. 조조 : 나 로또 샀는데, 1등 되면 좋겠다..T-T 순유 로또의 1등 확률은 840만분의 1입니다. 게다가 1인 하루 최대 구매액은 10만원에 불과.. 제가 조사해보니 로또 1등 명당은 광화문역 3번 출구 쪽의 가판대던데 주공의 구매처는 지금껏 단 한 번, 4등 당첨이 전부였기에 매우 힘들 것이옵니다... 순욱 로또 1등은 하늘이 내는 것이니 안되더라도 너무 심려치 마시고 차근차근 꾸준히 구매를 하시다보면 언젠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1등도 좋으나 그러다보면 더 확률 높은 2등이나 3등에 여러 번 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생각되옵니다. 정욱 참. 다들 복잡하게들 산다...ㅎㅎ 로또 1등도 결국 당첨금 때문에 되고 싶은건데, 주군! 돈 필요하시면 될 때까지 로또 사는것보다 차라리 병사들을 동원해 은행을 털죠? 곽가 다음주에 1등 될거임. 나만 믿으셈. 열전 및 정사와 배송지의 평가 및 주석 등을 참고할 때... 이룬 것 없음에도 조조의 총애를 받은 이유는 그가 조조와 생각하는 패턴이 비슷했기에 그랬던게 아닌가 학자들은 추측한다. 아무리 조조가 날고 기어도, 한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라면 마냥 자기 뜻대로 할 수가 없으며,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우로 가고 싶으나 대부분의 측근들이 좌로 가야한다며 저마다의 근거와 논거를 제시하면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자기 뜻을 내세우기는 참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조 자신도 전략전술 및 병법과 고서에 밝기는 했지만 그런 조조의 신뢰를 받던 휘하의 모사들도 머리만 쓰는 것으로는 결코 조조에 못지 않았고 그런 그들이 나름 그럴듯한 이유를 첨부하여 조조의 뜻과 다른 길을 다같이 이야기 한다면 따르자니 자신의 예측과 달라 마음이 놓이지 않고, 안그러자니 자신을 독선적으로 볼 측근들이 신경 쓰이는 딜레마 속에, 조조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또는 조조의 속을 뚫어보듯 조조의 가려운 곳을 긁는 소리를 달변에 실어 확신에 차 우겨주는 곽가가 조조입장에서는 고마웠을 것이다. 게다가 곽가는 한실의 부흥이나 천하의 대세, 정의, 이런 건 관심 없었고 오직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하는 주군인 조조의 상승만을 추구했다. 그런만큼 매사에 철저히 조조의 관점과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했으며 조조에 대한 충성도 높았다. 조조는 비범하고 자신과 일맥상통하며 충성심 깊고 무엇보다 "젊은" 그에게 자신의 다음 세대와 후사를 맡기고 싶어했다. 쉽게 말해, 조조에게 곽가란 유비에 있어 제갈량에 비견되는 위치였다. 조조가 평생 겪은 휘하 대표 전략가들을 살펴보면... 순유는 자신의 출세와 성공에 포커스가 큰 사람, 순욱은 자신보다 한실의 부흥이란 대의를 중시하는 이, 정욱은 세간의 평가는 개의치 않는 독한 술수를 거침없이 계획하는 인물이였으며, 사마의는 마치 자신을 보는 듯한 야망과 음모가 느껴지는 자였다. 오직 곽가만이 자신만을 위해줬고, 자신의 편이였으며 자신을 가장 잘 따랐다. 그런 곽가가 앓다 끝내 병사하자 조조는 통곡을 했고 종종 힘든 난관마다 곽가를 떠올리며 그리워 했다고 역사기록에 남겨져 있다. 유비와 비교해보면... 유비의 조직은 서촉진출 전까지는 주로 인정과 의리가 주요하던 "의협집단"에 가까운 조직이였다. 지도자 이하 각 구성원들이 단순한 이해관계나 주종관계 이상의 끈끈함으로 뭉쳐져 있어 이탈률은 적으나 그런만큼 능력있는 신규진입자의 성장이 쉽지 않다. 하지만 조조의 조직은 비교적 세력의 초창기부터 일절 연줄없는 외부인의 영입에 적극적이였고, 그런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철저히 능력중심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언뜻 조조의 조직이 유비의 그것보다 현대적이고 실용적이여 보이지만 그만큼 조조조직의 분위기는 유비조직의 분위기에 비해 차가울 수 밖에 없다. 유비 휘하의 관우, 장비, 조운, 제갈량 등은 어지간히 큰 실책을 해도 큰 벌을 받거나 좌천될 걱정 없지만 조조 휘하의 문무장들은 큰 실책 시, 좌천과 징벌이 따르고 그에 따라 상하관계가 역전되는 일도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조의 첫 거병 때부터 조조를 따라 숱한 생사고비 넘겼으나 후에 영입된 장료가 더 인정받아, 결국 장료에게 지위역전 당한 악진, 조조의 원정마다 확실한 후방보급으로 조조가 안심하고 전력투구하게끔한 선봉장 못지 않은 공적이 숱함에도 조조에게 밉보인 후 끝내 자살을 강요받아 죽은 순욱 등.... 그런 살벌한 분위기의 조직에서 역시 지도자인들 쉽사리 자기 속내를 드러내기도 쉽잖았을 것이고, 그런 무섭고 엄한 지도자에게 선뜻 다가가는 이도 많지 않았을 것임에도.... 조조에게 곽가는 자기 속내를 알아주고 다가와주는 고마운 존재요, 자기 의견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미더운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딱히 눈에 보이는 성과가 몇 없음에도 곽가는 조조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Eiichiro Oda and Hajime Isayama Show Support After Kumamoto Earthquakes
If you missed the news lately, the Kumamoto Prefecture in Kyushu, Japan was recently hit with a series of earthquakes, the foreshock on April 14th and the mainshock on April 16th. The earthquakes reached a magnitude of 7 on the Richter scale and have devastated the communities of the Prefecture and surrounding area, including as far away as the Ōita prefecture. 48 people have been confirmed dead, while thousands more have been hospitalized with injury. Over 40,000 people have been evacuated from their homes as a result of the quakes. The image you see above is a message penned by Eiichiro Oda, the mangaka responsible for One Piece. Kumamoto is Oda's hometown and so he felt personally attached to plights of the people there. The official One Piece twitter tweeted that image of a hand-drawn Luffy and Kumamon, the official mascot of the prefecture. Here's what it says in English: There was a big earthquake in Kumamoto. (all of Kyushu) I was born in Kumamoto, it's my hometown. To those who were greatly affected by the damage, I hope you're doing well from the bottom of my heart. I was able to directly contact my family and friends, but they're all very scared. But they're doing their best. Everyone I got in touch with said things to put me at ease. They're so tough!! But there is a limit to how long people can steel themselves. Before that thread breaks, I want to calm them down somehow. It's crucial that adults don't worry their kids. Most of all, I want to make kids laugh! If they laugh, adults can do their best! It's still hard now for ordinary people to lend a hand, but I will definitely help with the relief effort. Stay strong, however you can!! Oda was not the only member of the One Piece team to speak up in support of the earthquake victims, however. The voice actors for the Straw Hat Pirates also lent their voices to support Kyushu. Ikue Ohtani (Chopper), Kazuya Nakai (Zoro), Akemi Okamura (Nami), Yuriko Yamaguchi (Robin), Kazuki Yao (Franky), Kappei Yamaguchi (Usopp), and Mayumi Tanaka (Luffy) each have promised to do their bests to help the victims in some way or at least encourage them to stay strong and happy. Each of them signed the board above as a gesture of support for the struggling civilians. The Strawhats weren't the only anime/manga stars to lend their voices to the effort, though. Hajime Isayama, the mangaka for Attack on Titan is also from close to the affected region: Hita in Ōita Prefecture. Isayama also contributed a drawing as support for the victims. It shows Eren, Mikasa and Armin with Kumamon and Mejiron, Ōita Prefecture's bird mascot. Isayama wrote on his blog accompanying the image: "When times have been tough for me, even under very harsh circumstances, I'm reminded of manga heroes who fight for their lives, and I remember that they toughed it out. I drew the illustration with those feelings." Though these artists can't do a whole lot in terms of helping on the ground level with the victims, they have chosen to lend their support in the best ways they have available to them; their art. It shows a passion for their homes and their people, and the will of the nation that rallies strongly around their own in times of crisis.
허저 중강 (許褚 仲康) A.D.? ~ ?
사람 보는 안목도 훌륭했고 용인술도 뛰어났으며 철저한 능력 위주의 인재기용 방식을 추구한 실리주의자 "조조"의 휘하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삼국시대 당시 가장 많고 두터운 인재풀을 자랑한 삼국시대의 레알 마드리드 라고 할 수 있었고 응당 그런 조조 아래에는 뛰어난 무장들도 참 많았다. 여러모로 뛰어나거나 조조와 코드가 맞아 신임을 얻은 장수들도 여럿 있었지만, 사료를 살피고 그 모든 것들을 토대로 볼 때 조조에게 '인간적인 애정'을 가장 많이 받았다 느껴지는 장수가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허저"였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진짜 "스트롱맨"인 이 인물로 간다. 오늘 날, 중국 안후이성 보저우시 출신인 허저는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며 당시 온갖 히어로들.. 그중에도 특히 범인을 훌쩍 초월하는 피지컬과 신체능력을 자랑하는 차이니즈 슈퍼히어로들 중에서도 가히 압도적인 진짜 '스트롱맨'이였음이 기록에 나온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는 허저 관련 에피소드들 중 허저가 조조 휘하로 임관 전... 고향에 살 당시 1만 여명 이상의 대규모 도적떼가 허저의 고향에 침공했고 대치에 지친 양측이 휴전을 합의하며 도적들의 곡식과 허저측의 소를 물물교환 하는 와중, 소가 놀라 달아나자 그 소의 꼬리를 한 손(!?!)으로 잡고 백여 걸음을 끌고 갔다는 이 말같잖고 믿기지 않는 스토리가 엄연하게도 위서의 허저전에 실려있다.... 당시 후한말에 일반적으로 사육하던 소의 품종, 암수(♂♀)여부, 소의 연령, 소의 영양상태 등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품종여부 떠나 소라는 동물 자체가 원체 크고 암수의 무게차도 상당하지만 암컷인들 일반인에게 끌어 당겨질 무게는 아니며 어린 송아지 또한 지금 이 글 쓰는 나, 읽는 댁들이 힘으로 해볼 수준을 가뿐히 넘어서고 당시 허저측이 처한 환경이 열악해 사람도 제대로 못 먹어 오죽하면 도적떼에게 고기를 주고 곡식을 받아오려는 시도까지 한 점등 비추면 소인들 제대로 먹어 평소의 몸상태는 아니였겠으나 그렇다한들 소는 소인지라 어쨌건 사람이 일신의 용력만으로 한 손끌이를 할 생물이 절대 결코 아님은 명백하다. 게다가 소의 꼬리를 잡아끌었다는건 소 또한 순순히 끌려가지 않고 그러지 않으려 끌려가는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용을 썼다는 이야기인데... 전 중국 및 전인류사에서 최강의 파워맨이라 일컬어지는 항우가 이런 허저보다 힘 좋았을까 싶을만큼 여간 대단한 힘이 아니다. 위서에 의하면 신장도 "여덟 자 남짓" 이라 하는데, 당시 후한 말 기준의 여덟 자가 현대 기준의 거의 190cm에 가깝고 '남짓'이라는 표현은 여덟 자를 좀 넘는다는 뜻. 게다가 후한 말 관련 모든 역사서들 중 유일하게 허저는 허리둘레에 대한 언급이 있다. 당시 단위로 "10위"나 되는 허리둘레를 지녔다고 나오며 이 역시 현대기준 무려 115cm(45inch가 넘는다!!)라는... 당장 이 수치는 체격이 작은 편은 아닌 내 가슴둘레를 넘어선다.. 아마도 위에 언급된 인간계 끝자락급의 파워를 볼 때 엄청난 근육질이였을 것으로 보이며 저런 피지컬까지 지닌 것으로 보아, 대략 상상해보면 '브록 레스너'나 '밥 샙' 정도 되는 체구를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그런 거구들은 지금도 길에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들 쳐다볼만큼 눈에 띄는 엄청난 거한들인데,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6cm 가량 정도였을 후한 말의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단순 거인을 넘어서, 방금 화장실 다녀왔더라도 마주하면 소변을 지릴 괴물이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엄청난 신체조건 + 신체능력을 지닌 초인 허저는 조조가 허저의 고향 일대를 점령하자 자신을 따르던 무리들을 이끌고 조조휘하로 가는데, 당시의 조조 또한 허저의 체구를 보고 심히 놀랐다는 기록이 있고 이 당시 "실로 나의 번쾌가 될만하다!!" 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조조는 허저와 그가 이끌고 온 장정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근위대 즉, 최측 호위대로 임명했다고 하는데 당시같은 난세에 당시 조조가 듣보잡이 아니였음에도 그런 새로 갓 합류한 이들에게 자신의 신변경호를 맡긴 것을 보면 허저를 굉장히 좋게 보고 신뢰했던 모양인데, 이때부터 조조는 허저에게 반한 듯 싶고 조조의 알음알음 허저 챙기기가 시작되었던거 같다.ㅎㅎ 허저는 생김이나 체구, 그 압도적인 신체능력 등을 갖추고도 전혀 그에 어울리지 않는 샤이가이였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눈에 띄는 것도 싫어해서 조조가 장수들을 집결하면 가장 구석이나 뒷편에 숨겨지지도 않는 체구를 한껏 움츠려 섰다고 한다. 조조는 장수들이 군공을 세우면 많은 이들 앞에서 당사자를 불러내 크게 칭찬하는 방법으로 당사자를 띄워주고 다른이들도 분발을 유도했는데, 부끄럼쟁이 허저는 간혹 공을 세우고도 이런 수 많은 사람들 앞에 불려나가 주목을 받고 추켜지는 것에 상당히 큰 부담을 갖고 있었고... 조조가 그를 앞으로 호명해도 못 들은체 딴청을 부리고 밍기적대다 거듭 그를 불러도 쌩까는 허저를 조조가 호통을 쳐 부른 후에야 마지못해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성격이 저런 사람이다보니 말도 거의 없었던 듯. 그러나 할 말은 하는 편이였던거 같고 하루는 형주방면 총사령관이던 조인이 급한 보고를 위해 허창으로 갔는데 당시 조조가 바쁜 정무 중이였고 조인은 맡은 중책이 중책인지라 조조를 기다릴 겨를은 없어 허저에게라도 메모를 전달하려 허저를 불렀다. 허저는 조조의 인척이자 최측근이고 방면군 사령관인 조인의 부름을 거절할 수는 없어 조인에게 갔는데.. 조인 : 아, 허중강! 나 지금 쫌 급한데 말 좀 전해줘! 허저 : 기다리시면 전하 곧 나오십니다.. 이러고는 조인의 대꾸도 듣지 않고 바로 휭~ 조조에게 돌아갔고 이날 이후 조인은 허저를 벼르기 시작한다. 조인은 다시 정욱을 불러 이 일을 이야기했고 정욱이 듣고 놀라 허저에게 가서 물었다. 정욱 : 중강! 사회생활 참 못하네.. 조장군 성격 몰라? 전하의 친척에 측근에 개국공신인데 왜 그러셨대? 허저 : 암만 그래봐야 저 사람은 방면 맡는 바깥사람이고 난 전하의 신변경호를 맡았는데 내가 왜 전하의 허락없이 외부인을 만납니까... 이 에피소드가 조조의 귀에 들어가자 안그래도 이쁨받던 허저는 더욱 조조의 사랑을 받았다. 허저와 조조는 아무래도 주군과 호위관이다보니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길었는데, 허저는 종종 옷매무새가 허술하거나 한 경우 조조가 이를 먼저 보면 직접 옷매를 다시 챙겨주기도 했고, 조조가 식사시에 조조곁에 서서 조조의 식사를 지켜보는 허저에게 같이 식사를 권해서 허저가 응하면 함께 먹기도 했다. 허저는 자신이 좋아하는 찬이 있으면 응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며 응하지 않았다.... 허저가 체격이 체격인지라 허저가 타는 말은 금새 지쳐 여러 마리를 번갈며 탔는데, 허저가 탈 말은 조조가 직접 선별해 골라줬고 경우에 따라 자신이 타고 있는 말과 바꿔타기도 했는데, 주군이 신하와 말을 바꿔 타는 것은 당시 "말"이라는 동물의 군사적, 물질적 가치를 고려하면 대단한 호의를 베푸는 것이였다. 게다가 당시의 조조가 타는 말이 예삿말들도 아니였고.. 이는 마치 내가 새로 간 회사 사장님이 외근 나가며 업무용 레이를 타는 내게 자신의 아우디 Q7을 타고 가라며 바꿔 주는 것이나 진배 없는 것이다. 조조의 경호실장이면 거의 대부분 조조의 가장 근처에 있다보니 전장에 나가 지휘를 맡은 적이 드물지만 없진 않다. 양에서의 장수와 전투 당시 돌격대를 맡아 돌진하여 적의 기세를 꺾었던 적도 있고, 관도대전과 원소 사후, 원소의 잔당들을 정벌하는 중 업군 포위전 당시에도 소수나마 병력을 이끌고 나선 적 있다. 하지만 사람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조조가 그를 호위관으로만 거의 중용하고 전장에 내보낸 횟수가 다섯 손에 꼽히는 걸 보면 통솔능력은 별 볼일 없었던 것 같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종종 허저의 일기토 내용들이 나오던데 올뻥이다. 허저는 누군가와 1vs1로 전투에서 맞붙은 적이 없다. 전위와 조조의 경호패키지로 묶음처리 되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둘은 연의에서처럼 서로 맞붙은 적도 없고 심지어 둘이 얼굴을 마주한 적조차 없다. 왜냐 하면 실제 역사에서는 전위가 이미 사망한 후에 허저가 조조휘하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의 내용 및 이를 토대로 캐릭터들의 능력치를 데이터화시킨 코에이의 삼국지 게임 내의 허저 어빌리티만 보면, 왠지 자기 이름이나 쓸 수 있을지.. 1부터 10까지 숫자는 셀 수나 있을런지 싶을 힘 쎈 바보로 그려지지만 절대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조조에게 임관 전에도 고향에서 도적떼를 상대로, 또 조조에게 임관 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던 적잖은 무리들이 있었던 점 등으로 봐서 아주 근본도 없는 사람이 아니였고 정사나 위서, 그의 열전 등 어딜 봐도 '허저는 빠가였다'는 식의 언급은 진짜 1도 없다. 다만... 워낙 별 말이 없고, 게다가 이게 좀 치명적인데 허저는 평상시에 입을 약간 벌린 눈도 촛점없는 멍한 어딜 보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이 표정 탓에 그의 별명은 "호치(虎癡)"가 된 것.. 저 허저의 유명한 닉네임 호치의 호는 범 호, 다시 말해 전장이나 임무수행 및 조조곁을 지킬 때의 그의 호랑이같은 무시무시한 기세를 뜻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뒤에 붙은 저 '어리석을 치(癡)' 인데... 저 치가 바로 허저의 그런 평상시 표정 탓에 붙은 것이였다. 그치만 허저입장에서 이것도 좀 억울한게, 조조곁에 있거나 전장이거나 뭐 그러면 모르지만 진짜 아무일없는 평상시에 조조가 내전에서 업무 보거나 천자를 알현, 또는 자거나 등등 그럴 때의 허저는 혼자 긴 시간을 문앞에 서 있어야 하는데 이 당시에 무슨 스마트폰이 있어서 허저가 유튜브나 빙글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쨌건 근무시간인데 이어폰끼고 음악 들을 것도 아니고, 진짜 할 수 있는거 없이 서 있는데 누군들 표정이 저리 멍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다고 영국 왕실근위병들처럼 뭐 교대를 하는 것도 아니였을 것이고.... 당연히 허저는 본인의 저 별명을 싫어했고 위나라 내부에도 감히 허저앞에서 저 별명을 입에 담을 수 있을 힘과 용기를 지닌 자도 없었지만 어쨌건 허저가 기피하던 저 닉네임은 훗날... 동관에서 마초, 한수와 마주할 때 마초가 바로 달려가 조조를 개 때려잡듯 하려다 조조가 데려간 허저의 비쥬얼을 보고 짐짓 쫄은 마초가 "조공에게는 호후(虎侯)가 있다는데,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말해준 후부터 "호후(虎侯)"로 격상된다. 삼국지연의에서 업을 함락 후, 깐죽대는 허유를 빡친 허저가 죽이는 씬이 나오지만 허구다. 저런 일 자체가 없었고, 허저의 성격상 단지 저렇게 깝친다고 하여 아무나 썽큼썽큼 죽이는 스타일이 아니였다. 일에 있어서는 더할나위없이 용맹무쌍했지만 평상시도 거칠고 격한 그런 사람이 아니였다. 평소에는 온순하니 풀 뜯지만 맹수가 다가오면 날뛰는 아프리카 물소같은 타입이였던듯 싶다. 조조가 죽자 탈진하여 쓰러질만큼 울부짖었으며 어찌나 심신이 상할만큼 슬퍼했는지 각혈까지 했다고 한다... 조비 또한 허저를 근위로 삼았는데, 조조가 허저를 자신의 최측에서 경호하는 소수의 경호대를 이끄는 경호실장역을 시켰다면, 조비는 황실전체를 경호하는 황실근위대를 이끄는 근위대장같은 직책을 맡겼다. 허저는 생몰연대가 명확히 사료에 나와있진 않지만 조조의 죽음에 이어 그 아들 조비의 죽음도 봤다. 물론, 조비가 그리 오래 못산 탓도 있으나 아무튼 주군부자의 죽음을 모두 겪고 조조의 손자인 조예대에 사망한다. 여러 정황들 볼 때, 조예재위기에는 사실상 은퇴상태로서 원로예우를 받았던거 같고, 조예 재위 후 그리 오래지 않아서 사망한 듯. 사인에 대한 별 다른 언급도 없고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사망당시의 허저나이가 상당한 고령이였음으로 추정되기에 그냥 노환에 의한 병사였을 듯 싶다. 사실... 주군의 최측근 경호는 그리 공을 세우기가 쉽지 않은 자리다. 그럼에도 허저를 아끼던 조조는 그런 허저가 혹여라도 기가 죽을까, 늘 그가 있음에 자신이 마음 편할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큰 공이라며 그를 치켰고. 가끔은 허저를 전장에도 내보냈다. 허저가 근위대장임에도 몇 차례 전투에 나섰고 비록 몇 차례 안된다고는 해도 어쨌건 모두 승리했는데 추측해 보건데 이는 조조가 허저를 장수로서의 공을 세울 수 있도록 별 다른 지휘통솔능력이 없어 대병을 이끌기는 무리인 그가 소수병력을 이끌고나마 충분히 승리할 법한 전투에 가려 보내 허저로 하여금 주워 먹게끔 했던 배려로 보여진다. 허저 또한 박식똘똘이까진 아니여도 자신을 아끼는 그런 조조의 마음씀씀이를 캐치할 정도는 충분히 되었고 조조를 깊게 공경해 따랐으며 심지어 조조가 그에게 휴식을 명해도 허저는 이를 따르지 않고 거의 자는 시간을 제하면 조조의 지근거리에서 머물렀다. 삼국지 등장인물들 중 통틀어도 손 꼽힐만한 막강한 피지컬과 그에 따른 용맹과 괴력을 겸한 그가 전장을 휘젓고 싶지 않았을리가 없다. 하루종일 자신의 엄청난 신체를 서 있는데 써야함이 실로 괴로웠거나 자괴감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책임감과 충성으로 묵묵히 해냈다. 비록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부여받더라도 이를 최선 다해 충실히 해내는 프로패셔널. 그렇기에 조조는 늘 자신 곁에 시립해 서 있는 그를 대함에 있어, 외지의 수만 병력을 이끌고 요충지를 지키는 사령관, 전장에서 대규모 전투를 승리한 개선장군들에 못지 않게 대했던 것이다. 어찌보면 허저 본인도 그런 자신의 성품 덕에 그 험한 난세에서 난전이나 내부적 정치싸움에 휘말림없이 내내 인정받다 천수를 누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즐거운 주말 잘 보내시고 사전투표 안하신 분들은 돌아오는 화요일에 꼭! 잊지 마시고 투표 하시길 바랍니다ㅎ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대의명분에 입각해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의 후보분께 소중한 한 표를 반드시 행사하세요! 사려깊은 문후보님, 구여우신 홍후보님, 총명하신 안후보님, 기개있는 유후보님, 혁신적인 심후보님 모두 화이팅 하시길. 그리고 누가 대권 잡건 부디 국가와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참지도자 되길 기원합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ㅎ 무슨업적도 필요없이, 앞 둘이 워낙 10년 깽판이라 평타만 쳐도 성군소리 들을 각인데...
손견 문대 (孫堅 文臺) A.D.155? ~ 191?
중국의 삼국시대를 구성하는 위, 촉, 오 중의 하나요.. 위, 촉, 오 중 가장 마지막에 망한 오나라의 황실이던 손가의 시작에는 이 남자가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손가의 제네시스라 할 수 있는 "손견"이다. 여기저기에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의 위대한 병략가인 '손무(孫武)'의 후예'라는 소문과 추측까지 났지만 일절 그 실제는 확인된 바가 없는 그저 루머에 불과하다. 물론, 절대 아니란 증거도 없지만 유비가 한황실의 종친이라는 사실처럼 족보를 뒤져 팩트를 입증한 것이 아닌 본인의 자칭이며 또 이를 갖고 삼국지정사의 저자인 진수 또한 정황상의 추측을 한 것에 불과하다. 양주 오군 부춘현이 고향이며 오늘날 중국의 최대도시인 '상하이(上海)' 인근쯤이다. 물론, 저 당시의 오군은 이미 전한시대를 넘어 진나라 때부터 살기 괜찮은 지역이였고, "항우"도 거점 삼았던 인구도 적잖던 곳이긴 하지만 당연하게도 지금의 상하이와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유의해두자. 전반적인 사료들 및 역사서와 그 주석본들, 열전까지 죄다 뒤적여 추론해 볼 때... 양주지역의 제법 좀 사는 "호족집안 아들"이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렇다고 또 대대손손 유구한 금수저까진 아닌거 같고, 후한 말에 이르러 떠오른.. 러시아의 올리가르히같은 그런 신흥세력의 자제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살던 동네와 고향 일대에서 먹어주는 깡다구와 대담함을 지닌 싹수 다른 소년이였으며, 만 17세에, 모여있는 수적떼들에게 홀로 덤벼 그들을 쫓아내 와해시킨 일화가 있고, 이걸 계기로 벼슬길에 나가 무관이 되어 같은 해 회계군의 허창 & 허소의 난을 제압한다. 이때부터 손견은 고속승진을 시작했다. 참고로 손견이 잘 나가는 호족집안임을 입증해 주는 한 예가 바로 위의 저 허씨들의 난을 제압코자 모병하는 과정이였는데, 관군만으로는 전력이 부족하다 판단.. 사재를 털어 1천 여명의 병력을 추가로 모병하여 임무를 완수했다는 점이다. 당장 천 여명을 모병하고.. 그렇게 모집된 인원들을 무장 및 최소한의 복색을 통일시켜 먹이고 재우고 훈련하는데 투자되는 비용이 벌써 보통이 아니다. 아무튼 놀라운건 손견이 저런 히어로급 활약을 올렸던 연령이 고작 겨우 열 일곱 가량(추정) 나이였다는 것인데, 아무리 저 시절이 평균수명, 사망연령이 낮디 낮아 일찍일찍 결혼하고 얼른얼른 성인대우를 받았던 시절임을 감안해도 참 대단함이... 당장 나도 그렇고, 여러분들이 열 일곱살 때 어땠는지 떠올려보면 바로 답 나온다. 담임선생님의 빠따 한 번에도 고통에 몸을 뒤틀고 쉬는 시간 벨이 울림과 동시에 매점으로 달려나가 빵 사먹으려고 버둥이던 우리의 그 나이에 손견은 홀로 수적떼를 목 베고, 벼슬도 오르고 군사를 모아 전투도 나갔던 것.. T-T 다만.. 어려서부터 아예 학문은 내려 놓았었던 듯. 책을 읽었다는 기록도 없고 심지어 문맹이였다는 설도 있다. 물론, 저 당시에 문맹률은 엄청나긴 했다지만, 그래도 나름 사는집 잘 나가던 자제로서 문맹설은 본인이 얼마나 학업을 멀리 했는지를 보여준다. 저 당시는 오로지 무예만 출중한 이들은 무시를 받았고 높은 직위에 오르는 데도 한계가 있었기에 어느 정도의 클래스가 되는 무장들은 깊은 학식까진 아니여도 최소한 여러 권의 병략서, 병법서들을 읽는 수준은 되야했던 시절이였기에 문맹설이 돌 정도로 학문을 등한시한 점은 자랑할건 못 됨이 맞다. 허나 그런 무식함에도 불구하고 군사관련 행정처리에는 꽤나 빠삭하게 처리를 했었고 그런 일처리와 용맹 그리고 궂은일은 미루거나 피하지 않고 나서서 쓱싹 처리하는 빠릿함덕에 평판은 좋았던 편으로 성격은 좀 불같을 지언정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시원시원하면서도 화끈한 성격 덕분에 따르는 이들은 적잖았던 모양이다. 군율준수에 매우 엄하면서도 풀어줄 때는 풀어줬고, 병사들을 고압적인 자세 일변도가 아닌 "전우애"로서 대함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식사도 병사들과 함께 동일메뉴로 먹었다고 하니 당근 병사들의 충정도 높았다. 이래저래 빠른 출세가도 달리며 승승장구 했던 손견이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땅 넓고 사람 많은 중국의 어느 지역, 어느 군벌에나 두엇쯤은 있는 준재였던 그가 전국구로 발돋움하는 계기는 다 필요없고 바로바로 원소의 격문에 의해 집결한 18로 제후들의 유니온인 "반동탁연합군 VS 동탁군"과의 대립이였다. 참고로, 삼국지연의 속에는 마치 손견이 원소, 원술, 조조 등 당시 각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참전한 여러 제후들과 역시 동등한 제후들 중 하나로 그려지는데 이는 왜곡이다. 그때까지도 손견은 독자적인 자신만의 세력을 이끌던 군벌이 아니였다. 이미 그전, '황건적의 난' 당시에는 엄연히 조정의 벼슬에 임관된 상태로 '주준'의 부장으로 참전, 그 후, 서량에서 184년에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십상시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것으로 밉보여 지휘관직을 박탈당한 '황보숭'의 후임으로 정벌군 사령관을 맡았던 '장온'의 부장으로 참전 하는 등... 주로 황실직속의 고위장군들의 부장으로 참전한 경우가 많았던 만년부장이였다 덧붙이자면... 변장 & 한수의 난 당시에는 서량에서 그 위명 높던 동탁도 장온의 천거로 참전한 상태였는데, 손견과는 여러 모로 행실과 견해의 차이로 몹시 사이가 안좋았던 터였고 손견과 달리, 상관인 장온에게도 불손하며 제멋대로에 안하무인으로 굴던 동탁이였기에 둘은 상극.. 게다가 서량에서는 먹어주던 동탁이 상당한 군공을 쌓았음에도 손견은 몇 차례 패전하는 등 재미를 못 봤다. 반동탁연합군에 합류했을 무렵도 당시의 위세가 천하에서도 세 손에 꼽히던 "원술"의 사실상 부장에 가까운 자리로 원술의 지시와 서포트를 받으며 참전했었다. 아무튼 하여간 그렇게 반동탁연합군 소속으로 참전한 손견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적인 대활약을 벌이며 동탁군을 양민학살하여 후한의 슈퍼스타로 발돋움 하는데... 일단 첫 타석에서는 접고 들어갔다. 동탁의 부장이던 '서영'과의 전투에서 박살이 나서 간신히 최측근의 호위병력 몇 십여 기만 이끌고 살아나왔고 그마져도 위급상황까지 몰려.... 자신의 한 팔과 다름없던 "조무"가 손견의 붉은 두건을 대신 쓰고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준 덕에 겨우 살았다. 참고로, 삼국지연의에서 조무는 저렇게 손견을 살리고 간지 뿜으며 장렬히 전사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저 때 손견의 두건을 걸어놓고 적병들이 돌아갈 때까지 짱 박혀 있다가 살아남았다. 다만.... 그 이후로 정사에 더 기록이 없어서 어찌 되었는지는 알 길은 없다. 저 패배를 보약 삼아 그 다음부터 나선 손견은 다른 사람이 되어 동탁군을 거침없이 관광 태우기 시작한다. 동탁의 부장 '호진'의 군대를 엘리시키고, 무력의 화신이던 그 "여포"의 부대조차 지워버렸으며, 심지어 이 와중에 연의에서는 관우가 "데운 술이 식기 전에" 목을 베었다는 "화웅"도 참수한다. 솔직히 화웅이 연의에서 관우버프용 적장으로 나와서 동탁군의 에이스던 여포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루는 맹장으로 그려지지만 솔직히 정사나 그밖의 기록들에서는 별 다른 언급이 없어서 그 정도의 장수인지는 알 길이 없다. 허나 당시 화웅이 맡았던 임무나 직위등을 볼 때, 그렇다고 또 듣보잡은 결코 아니였음을 예상할 뿐! 결국 이런 손견의 크레이지 모드 탓에 동탁은 당시의 후한 수도이던 낙양을 죄다 초토화 시킨 후, 장안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 이 와중에 한 번 여포부대를 박살냈던 손견은 다시 한 번 낙양에서 여포부대를 짓이겼다. 이렇게 수복된 낙양성에 진입하며 손견이 옥새를 득템하게 되었고 그 옥새는 당시 손견의 주군이던 원술이 반협박을 하여 삥뜯기고 만다. 삼국지연의처럼 옥새를 꿍쳤다가 손책에게 물려주고 손책이 그 옥새를 담보삼아, 원술에게 병력을 인수받아 독립했다는 것도 삼국의 한 축을 맡는 손가의 라이프를 보다 드라마틱하게 만들고자 각색된 것이였다는...ㅎ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손견은 명백한 "원술의 부하"였다. 삼국지연의만 보셨거나 게임 등으로만 접하신 분들은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허나 원술이 그럼 그렇지, 명군이 아니다보니 그 아래에서 손견이 이래저래 속앓이를 하긴 했다. 일단 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파죽지세였지만... 손견이 너무 잘 나가, 그 위세나 명성이 높아지면 그를 컨트롤하기 벅찰 것을 염려하고 시기했던 원술이 겐세이를 놓고자 군량보급을 끊었던 탓에 손견은 그 드높던 기세가 주춤해질 수 밖에 없었고 위의 언급대로 옥새마져 협박으로 빼앗기며 심지어 그 아들 손책마져도 원술로 인한 스트레스가 여간 아니였다고 한다. 그 후.. 그 원술의 명으로 유표를 공격하던 중, 당시 손견에 맞선 유표측 장수인 "황조"의 부대와 전투 중, 원정군 총지휘관답지 않게 퇴각하는 황조를 직접 앞장서 추격하는 무리수를 두다 가뜩이나 눈에 잘 띄는 붉은 두건을 두른 탓에 빗발치는 화살과 돌에 맞아 젊은 나이에 허망히 생을 마감한다. 직접적인 사인은 날아온 돌에 머리를 직격으로 맞고 두개골의 골절에 의한 즉사. ... 손견 본인의 전투 스타일 자체가 겁대가리 상실하여 앞뒤 재고보고 할 거 없이 자신이 앞장서는 스타일. 심지어 공성전에서조차 자신이 앞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고 위에서 언급된, 손견을 전국구스타로 만들어준 동탁과의 전투에서도 그 잘났다는 18로 제후들 중 거의 유일하게 손견 혼자 동탁군 전군을 발랐을 당시 역시 가장 선두에서 미친 듯 싸웠던 손견이였다. 일기토기록이나 무예솜씨에 대한 언급은 따로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나, 저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앞장 서서 날뛴걸 보면 결코 힘과 무예가 뒤쳐진 사람은 아닐 거라는 것은 기정사실. 저런 스타일은 뭔가 간지넘치고 상남자스러워 보이긴 해도 정말 크나큰 리스크를 안고 있는 '하이 리턴 & 하이 리스크' 타입이라 할 수 있다. 총지휘관이 후방에서 지령만 내리는 부대와 직접 장병들을 독려하며 자신이 선두에서 달려 나가는 부대의 사기 차이는 극명하다. 저 당시의 병사들은 딱히 긴 시간 제대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 드물었고, 대개 필요시에 허겁지겁 긁어모은 농부들 출신이 대부분에 장비나 무기도 별 볼일 없었다. 우리가 삼국지관련 각종 미디어에서 보듯, 무슨 요새군대처럼 통일된 군복을 입은 것도 아니였다. 쉽게 말해 거의 오합지졸이였는데... 그런 병구성일수록 몹시 중요한 요소는 딱 두 가지! "병력의 수"와 "병력의 사기"이다. 헌데, 그 둘 중에도 더욱 중요한 것은 "사기"였다. 기세가 드높은 소수가 그렇지 못한 다수를 일방적으로 도륙하는 경우도 저 당시는 부지기수였고. 서양의 역사를 봐도 숫자가 많다고 볼 수 없던 로마군이 다수의 게르만족, 북아프리카에서 승리를 거둔 큰 이유는 잘 훈련되고 통제된 정예병들의 자신감에서 오는 결국은 "앞선 기세" 탓에, 상대들이 더 많은 수나 지리적 이점을 가졌음에도 오히려 기가 꺾인 탓이였다. 심지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는 그 무섭다는 '코끼리부대'를 앞세우고도 보병중심의 로마군에게 패했다. 이유는 카르타고는 코끼리를 앞세우고 나머지는 뒤로 배치, 코끼리가 짓밟고 휘저으면 나서서 시마이하는 전법인데, 로마군의 화살과 투창에 결국... 살로 이루어진 코끼리가 쓰러지면 그 후로는 대책이 없던 카르타고군은 기세가 꺾였기 때문. 아무튼 그렇다보니 저런 용감한 지휘관이 선두한 부대에, 겁을 먹는 장수나 병사가 있을리 만무하여 손견의 부대는 어지간한 적세력은 별 다른 전략없이도 죄다 씹어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 방식이 반대로 정말 극히 위험한 게.. 앞장 선 지휘관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적병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제아무리 무예가 뛰어난들... 절대 다수의 병력이 다구리를 놓으면 장사가 없고, 활같은 원거리무기에 대해서도 취약하며 또 언급했듯, 만에 하나 지휘관이 전사하면 그 중요한 기세가 꺾이기에.. 다수여도, 승세를 타고 있었어도,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어 패할 위험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저 방식의 장점덕에 열 번, 백 번 이긴들... 저 방식의 단점탓에 한 번 패하면.. 그 당장의 전투는 물론, 그 세력 자체의 존망이 걸리게 된다. 그렇기에 이미 진즉부터 손견의 측근들은 그의 무모한 선두돌격을 자중시켰으나 그때껏 멀쩡한 손견은 당연히 씹고 지고집대로 했고, 그러다 결국은 누가 어디서 던졌는지도 모를 돌팔매에 맞고 허망히 사망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이러한 성향은 장남에게도 고스란히 유전된다는... 성격은 시원시원했던 모양이다. 처벌도, 용서도 화끈했고 철저한 행동파였다. 대개의 맹장들이 그렇듯, 성격이 불같고 급했으며 전략전술 등은 비겁한 꼼수로 생각하여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고 한다. 물욕은 없으나 고집이 센 편이였고 대단히 헌신적(?)인 아버지로서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아들들은 전장에 늘 데리고 다니며 각종 군사전투관련 경험과 지식들을 쌓게끔 지도했고 무예도 직접 가르쳤다. 아내(오국태 부인)를 몹시 사랑했던 로맨티스트이기도 했는데, 낙양에서 얻은 옥새를 원술에게 바치게 된 이유가 바로 원술이 손견의 아내를 인질 삼았기 때문이였다. 물론, 현대의 기준으로 아내가 인질인데 그깟 도장은 당연히 포기하는게 맞는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인권은 지금과 비교불가인 거의 남성의 부록으로 여겨지던 때고 다른 인물들은 자신의 야망이나 위급시에 아내의 안위는 내팽개 친 경우가 부지기수에 심지어 아내가 여럿인 경우도 많았고 "옥새"는 그냥 열쇠도 같이 하는 도장집 가서 인감으로 쓸 거니까 소뿔로 파달라며 3만원 주고 잠깐 기다리면 도장아저씨가 돋보기끼고 레이져로 파주는 그런 물건이 아닌! 상당한 야망가였던 손견같은 이에게는 대단한 전략적 가치를 지닌, 당시로는 황실의 권위와 정통을 의미하는 물건이였다. 괜히 삼국지게임에서 옥새를 얻으면 여포도 매력이 100이 되는게 아니고, 원술이 아무리 또라이인들 이 옥새 얻고부터 황제의 꿈을 현실화시킨게 아니다. 게다가 당시 옥새를 분실한 후한 황실도 분실한 옥새를 새로 제작하지 못 하고 전전긍긍하던 것도 옥새는 어디 뒀는지 기억 안나면 다 서랍 뒤지고 엄마한테 어디 있냐 소리질러 찾다 끝내 기억 안나면 새로 마련하는 그런 물건이 아니였기 때문이였다. 옥새 이야기가 길어졌다만, 결론은.. 그런 어마무시대단굉장한 슈퍼레어템을 겨우(?) 아내 때문에 포기한 손견의 가족애가 깊었다는 것. 게다가 그런 가족애는 당시의 영웅이라 일컬어지는 인물들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였다는 점이다. 당장 조조만 해도 자기 죽게 생겼으니 장남 조앙을 내버렸고(당시의 장남의 가치와 위치는 상당했음!) 인의의 아이콘 유비도 자기가 위급하니 부인들과 형제들 내팽개치고 지살자고 혼자 내뺐으며, 기타 숱한 인물들이 아내나 기타 가족들에 대한 안위는 뒷전인 경우가 다반사였다. 여러분들도 만약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15층 짜리 빌딩 하나를 얻었거나 국회의원 공천권을 받았는데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내나 여친을 인질삼아 내놓으라면 내놓겠나? (잠깐.. 당연히 안내놓는다는 전제로 이리 물어본 나만 혼자 지금 쓰레기가 되는건가!?) 하여간 단점도 적지 않았다만 이런저런 영웅호걸의 면모들이 있었기에, 그 DNA가 전달된 손책, 손권같은 이들이 그 인물많고 사건많던 중국 삼국시대 속에서도 큰 획을 그은 히어로가 될 수 있었다는 말씀! 오늘의 주인공인 굵고 짧게 살다 간 손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매듭 짓는다. 이번 칼럼은 원래도 늦었지만 유독 더 많이 딜레이가 된 점 깊은 사과 드립니다...T-T 변명을 해보자면, 제가 늦은 나이에 다시금 학구열을 불태우느라 지금 사이버대학에 등록해 퇴근 후에 공부를 하고 있는데, 중간과제 제출 기간 및 중간고사 기간을 앞두고 과제와 시험공부 탓에 틈내기 쉽지 않았고, 또 한 가지는 제가 좀 더 좋은 회사에 보다 나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좀 정신이 없었어요.. 아무튼 저도 노느라 늦어진 것은 아닌 점 양해 바랍니다. 이번주와 다음주중으로 중간과제 제출도, 중간고사도 다 마무리 지어지니 그 후부터는 제깍제깍 올리겠습니다!
Working in the Anime Industry: A Struggle
The Japanese Animation Creators Association just recently released the results of a survey taken in 2015 of over 750 different people working in the Anime industry in Japan. Coming from an American standpoint, where our entertainers are paid staggering amounts of money, you might think it would be similar for Anime creators, considering how popular the medium is. You'd be wrong. Here's a collected set of averages from Kotaku that shows the median salary for each different position in the creation of anime. Series Director Average Age: 42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540,833 yen ($5,036) Average Yearly Salary: 6,490,000 yen ($60,437) Chief Animation Director Average Age: 43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470,000 yen ($4,378) Average Yearly Salary: 5,640,000 yen ($52,521) Producer Average Age: 39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451,667 yen ($4,206) Average Yearly Salary: 5,420,000 yen ($50,471) Character Designer Average Age: 38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425,000 yen ($3,958) Average Yearly Salary: 5,100,000 yen ($47,491) Animation Director Average Age: 38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327,500 yen ($3,045) Average Yearly Salary: 3,930,000 yen ($36,602) 3DCG Animator Average Age: 34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320,000 yen ($2,980) Average Yearly Salary: 3,840,000 yen ($35,764) Episode Director Average Age: 41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316,667 yen ($2,949) Average Yearly Salary: 3,800,000 yen ($35,391) Storyboarder Average Age: 49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310,000 yen ($2,887) Average Yearly Salary: 3,720,000 yen ($34,647) Art Director (Background Art) Average Age: 35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285,000 yen ($2,655) Average Yearly Salary: 3,420,000 yen ($31,864) Color Designer Average Age: 38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278,333 yen ($2,593) Average Yearly Salary: 3,340,000 yen ($31,120) Cinematographer Average Age: 34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265,833 yen ($2,476) Average Yearly Salary: 3,190,000 yen ($29,723) Production Assistant Average Age: 30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257,000 yen ($2,394) Average Yearly Salary: 3,090,000 yen ($28,788) Key Animator Average Age: 36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235,000 yen ($2,189) Average Yearly Salary: 2,820,000 yen ($26,271) Inbetween Checker Average Age: 35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217,500 yen ($2,026) Average Yearly Salary: 2,610,000 yen ($24,314) Layout Artist/Rough Keyart Average Age: 38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195,000 yen ($1,817) Average Yearly Salary: 2,340,000 yen ($21,800) Paint Staff Average Age: 26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162,000 yen ($1,509) Average Yearly Salary: 1,950,000 yen ($18,167) 2nd Key Animation/Clean-Up Average Age: 27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93,333 yen ($870) Average Yearly Salary: 1,120,000 yen ($10,434) Inbetween Staff Average Age: 24 years old Average Monthly Salary: 92,500 yen ($862) Average Yearly Salary: 1,110,000 yen ($10,340) The people at the top of the pyramid make the most; that's something we can understand universally. However, even at the highest salary, the numbers still pale in comparison to what series directors would be receiving here in the States. It only gets more depressing as you go down the list, where some of these positions mean that these employees are making less than minimum wage. Considering the amount of work and pressure these people are under, it's a little disheartening to see how little they earn for their efforts. So, maybe rethink your foray into the industry for now...
[펌] 냉혹한 일본 채식주의의 역사 썰.txt
요즘 트위터 비건들 공통점이 있는데 공감능력 없냐고 하는 주제에 본인들이 공감능력이 개바닥났단 것이다 동물 고통이 안 느껴지냐면서 고기 처먹지 말라고 지랄질을 하는데 왜 고기를 안 처먹었을 때의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근데 지금이야 비건들이 트위터에서 지들끼리만 저러니 다행이지만 비건들이 실제 권력을 잡아버리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 같냐 국가에서 고기를 통제한다고 생각해봐 나 같으면 차라리 딸딸이를 포기하지 고기는 포기 못한다 그리 먼 곳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에서 생긴 일이다. 일본놈들은 윗대가리 비건들이 맘대로 내린 명령 때문에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몇년 동안이나 그랬을까? 무려 1200년이다! 1675년도 아니고 675년의 일이다 당시 일본의 킹 오브 킹이었던 텐무텐노라는 비건이 있었다. 이 새끼는 그야말로 트위터 비건의 전형적인 예시였다. 내로남불이 개쩔었단 소리다. 텐무텐노는 즉위할 때부터 미친놈이었는데 딴 사람도 아니고 자기 조카 통수를 후려쳐서 덴노에 올라간 개새끼다. 불쌍한 조카는 어떻게 됐냐고? 억지로 할복시켜서 죽여버렸다. 뭐 여기까지야 개새끼긴 해도 옛날 정치인들이 다 하던 일이었으니 봐줄만한 일이긴하지만 그 다음이 가관이었다 흑흑 너무 슬퍼 조카는 니가 죽여놓고 이제와서 왜 우냐 처음부터 죽이질 말든가 아니 조카는 조까고ㅋㅋ;; 내가 슬픈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럼 니들 저기 소 보이지? 흑흑 음머 흑흑 저 소를 봐 눈물을 흘리고 있잖아 아마 농사일이 너무 힘들거나 바람막이가 너무 비싸서 그런가봐 근데 너희 농민 새끼들아 니들은 소의 눈물이 안 보여? 공감능력 없어? 어떻게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 소를 잡아먹기까지 할 수 있어?? 그게 다 육식 때문 아닐까? 단백질을 너무 많이 섭취해서 공감능력이 휘발된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너희들도 동물의 감정을 존중하는 비건이 되면 어떨까? 니 새끼는 공감능력을 우리한테는 왜 발휘를 안 하는데 그 힘든 농삿일을 고기도 안 처먹고 어떻게 하냐 미친 새끼야 고기 처먹으면 니들도 고기로 만들어버릴 거야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미친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조카한테 사시미 쑤셔넣은 놈이 살생은 나쁘다고 고기를 처먹지 말라니 근데 문제는 이 비건이 일본 역사상 최고의 권력을 가진 비건이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내로남불 비건 새끼가 친 지랄질은 일본에 1000년이 넘는 육식금지시대를 만들어내고 만다. 소, 닭, 돼지, 개, 원숭이, 말을 먹는 놈은 그날로 인생 종치는 거다. 이게 육식금지령도 아니고 살생금지령이라서 사냥도 마음대로 못했다. 뒤에 3개는 그렇다치고 소랑 닭이랑 돼지를 못 먹는다니 개같은 것도 정도가 있다. 처먹으면 어떻게 되냐고? 굶어죽으라고 바위밖에 없는 섬으로 귀양을 보낸다. 사실 말은 군사용도니까 못 처먹고 소는 농사지어야하니까 못 처먹으니 이 두 개 정도면 옛날 이라는 거 감안하면 설득력이 있는데 돼지랑 닭을 못 처먹는건 그냥 개같은 비건 심보다. 돼지랑 닭은 까마득한 고대시대부터 인간들한테 풍부한 영양분을 제공해주는 필수가축이었는데 이걸 억지로 단절해버린 거다. 당연히 영양상태가 바닥날 수 밖에 없지 당시 일본이 왜 왜소할 왜자 써서 왜놈이라고 불렸겠음? 영양보급이 박살나서 키가 크고 싶어도 못 컸던 거다. 어딜가나 윗대가리가 지랄하면 아랫놈들만 고생을 한다. 이리하여 세계역사에서도 기형적인 일본의 식사문화가 시작되는데, 고기를 못 처먹으니 도축문화가 실전되어버려서 막상 동물이 죽어있어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모를 지경이 되고 말았다 혹시 예전에 유행하던 엘프들 나오는 이세계 요리만화 기억하냐 그게 진짜로 일어나버린 거다 일본은 세상에서 가장 개같은 밥만 처먹는 이세계인들의 세계가 되고 만 것이다 ([맛없는 밥 엘프와 유목생활]이라는 만화. 주인공이 미개한 식문화를 가진 엘프들에게 음식을 전파해준다는 내용인데 유목민이 치즈도 못 만드는 등 인류학적으로도 너무 말이 안되는 전개 탓에 작가의 무식이 매번 비판받는 작품.) 이 이세계물을 처음으로 체험한건 다름 아닌 조선 사람들이었다 국사 정도는 들었을 테니 일본에 정기적으로 놀러가던 조선의 통신사란걸 기억할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조선은 아시아, 아니 세계를 통틀어서도 유난히 밥을 많이 먹는 파오후들의 나라였다. 당연히 고기도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개 좋아했다. 이런 사람들이 강제비건화된 일본에 놀러갔으니 그야말로 이세계물을 찍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아아 이것은 [배고프다]라는 것이다. 밥을 내놓으란 뜻이지 오옷! 근데 배고픈게 뭔진 나도 알아 ㅄ아 맨날 그렇거든 아무튼 처먹으샘 뭐임 이건? ㅅㅂ 니들 우리 싫어하냐? 이게 뭔 밥이야 살무사 양식장이지 밑에서 뱀 나오겠다 개새끼들아 고기 없어? 먼 곳에서 온 사람들한테 이따구로 개같이 굴기임? [고기]...? [고기]란 것이 너희 세계에 있는 건가? 그렇다 지금부터 이세계 전개가 시작되기 시작한다 하아니 진짜 미친놈들인가 저기 닭도 있잖아 니들 닭 안 먹음? 안 먹을 건데 치킨 왜 키움? 닭...? 아아 저건 [시계]라는 거다 아침 시간을 알려주는 거지 너희들의 세계에선 [시계]를 먹는 건가...? 그렇다. 일본에게 닭은 먹는 용도가 아니라 자명종이었다! 하 ㅅㅂ 닭은 됐고 그럼 저기 있는 소나 한 마리 잡아서 구워와 님 어디 아픔? ? 아픈건 니들 미각 아님? 아니 소는 아플 때 먹는 거잖아 아프니까 약 찾는 거 아니냐고 아니 소를 왜 아플 때 처먹어 니들 농사 짓다 뒤진 소 안 먹었어? 스테이크 모름? [스테이크]...? 우린 소 뒤지면 그냥 태우는데 아 기름 많이 나와서 촛불 켤 때 개꿀임 ㅋㅋㅋ 이거 진짜 아픈 놈들이네 심지어 소가 그냥 죽어도 아무도 안 먹었다. 애초에 먹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소가 뒤지면 일본 사람들은 배고파서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한점 떼어먹을 생각은 못하고 그대로 태워서 기름만 가져다가 썼다. 고기 타고 남아있는 뼈도 고아먹긴 커녕 땅바닥에 그대로 묻어버렸다. 소를 아예 전혀 안 처먹은건 아니고 약재로 쓰긴 했는데, 이게 말 그대로 약이라서 맛 같은 거엔 1도 신경을 안 썼다. 그냥 고기 가루내서 뭉친 미트볼을 약이랍시고 팔았던 거다. 이 약을 얻는 과정도 가관인데 고기를 안 처먹으니 소를 어떻게 죽여야 할 지도 몰라서 도축기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약이 필요하면 소를 낭떠러지에 세워놓고 떨어뜨려 죽인 다음에 살점을 주먹만큼만 때어가는 식으로 비효율의 극치였다. 그만하자. 돼지는 있지? 삼겹살 정도로 타협하자 우리 돼지 안 키우는데 니들은 대체 왜 사냐? 소도 안 처먹고 닭은 시계로 쓰는데 돼지는 기르겠냐. 당연히 돼지고기 같은 것도 꿈도 못꿨다. 아 근데 돼지 먹을 방법은 있음 오 뭔데 멧돼지 산 채로 잡아옴 우리 어떻게 죽이는지 모르니 죽이는건 니들이 알아서 하샘 아니 미친놈아 어어억 하도 고기 내놓으라고 땡깡을 부리니 일본은 통신사들한테 멧돼지를 생포해서 가져다준다. 솔직히 이건 엿먹어보라는 의도도 좀 있는 거 같다. 아무튼 조선 통신사들은 이런 기괴한 식습관이 하도 기억에 남았는지 이 새끼들 처먹는거 존나 이상하다고 기록을 존나 남겼다.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이세계 기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일본 사람들도 뇌가 있고 혀가 있는데 천년 동안이나 강제 비건질을 철저하게 지킨 것은 아니었다 고기를 원하는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시절부터 내려온 인류의 본능인데 그걸 어떻게 뿌리뽑냐 일본 서민들은 어떻게든 비건 파시스트들의 눈을 피해 고기를 처먹기 위해 온갖 꼼수를 다 부렸다. 그중 대표적인게 위에도 나온 멧돼지다. 집에서 대놓고 돼지를 기를 수는 없으니 산에 올라가서 몬스터 헌팅을 해서 멧돼지를 얻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멧돼지를 '산고래'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바다고기는 금지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서 흙수저 새끼들이 고기 처먹고 ㅈㄹ이냐 뒤질래? 아니 이거 고래고긴데 이게 뭔 고래고기야 누구 눈깔을 ㅄ으로 암? 님 고기 종류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알음? 님 혹시? 일본 흙수저들이 이렇게 몰래몰래 고기를 먹는걸 '야쿠세키야'라 불렀다. 해석하면 약식이란 뜻이다. 즉 병 걸려서 약 처먹는다고 핑계대곤 마약거래하는 것마냥 어두운 곳에 숨어서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야쿠세키야를 하는 가게에는 주로 고래그림을 그려넣었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단속 나왔을 때 걸리면 고래라고 구라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렇게 야쿠세키야에서 밀매한 고기들은 소, 돼지 같은 맛좋은 정석 고기가 아니라 여우, 늑대, 곰 등의 육식동물이나 산양이나 물소 같은 생소한 동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요리법도 모르니 닥치고 굽거나 삶아버리는게 전부였는데 그걸 또 맛있다고 숨어서 먹어대니 참 불쌍하고 안타깝다. 이련 연유로 생선요리는 엄청 발전한 주제에 일본 고기 요리는 개박살이다. 뭐 천년만년 비건으로 살 순 없다. 텐무텐노가 비건 지랄을 친지 1200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도 더 이상 비건질 못해먹겠다는 아우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사쓰마' 같은 밀매랑 깡패짓으로 유명한 동네에선 공공연하게 돼지고기를 처먹기도 했고 그러던 와중에 사건이 하나 제대로 터진다 배틀크루저 오뻐레이셔널 1800년대 초기까지 일본은 흥선대원군 시절 조선마냥 쇄국정치를 하면서 여전히 풀만 뜯어처먹는 중이었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배틀크루저를 끌고 일본에 처들어와서 대포를 쏴갈기면서 개항하라고 지랄을 한 것이다 난생 처음보는 시꺼먼 배틀크루저에서 존나 큰 대포를 빵빵 쏴갈기면서 야마토포의 위용을 보여주자 일본 친구들은 개쫄아버린 나머지 바닥을 뒹굴면서 항복항복을 외쳤다. 이게 그 유명한 '흑선사건'이다. 배틀크루저의 위용을 보고 우린 진짜 아무것도 아닌 개ㅈ밥이었구나 이러면서 테크차이를 실감하게 된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양인을 모방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메이지 유신이다. 그리고 메이지 유신은 그동안 개같이 굴었던 비건 파쇼들까지 개박살낸다. 가장 먼저 비건 파쇼들의 싸대기를 후려치고 삼겹살을 굽기 시작한 건 다름아닌 메이지 덴노였다 왜 우린 양키들한테 발렸을까 헤어스타일이 ㅄ같아서? 스크롤 늘리는덴 도움이 됨 아니 나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겠냐 양키들 앞에만 가면 우리 키가 땅딸만한게 실감되서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야 우린 왤케 키가 작냐 진짜 진짜 이유 모름? 진짜? 알았어 ㅅㅂ 이제부터 고기 처먹자 1872년 1200년을 이어왔던 육식금지령이 드디어 취소된다. 일본이 고기를 제대로 먹기 시작한게 150년도 안 됐단 거지. 근데 1000년이 넘도록 채식주의자들한테 조교당하다보니 처음에 일본 사람들은 고기를 억지로 먹이는거에 존나 거부감을 느꼈다. 심지어 밀교에 심취한 비건들이 고기 먹지 말라며 황궁에 처들어가는 황당한 일까지 생겼다. 비건파쇼들이 지랄을 하건 말건 일본 윗대가리들은 이전까지와 180도 태세를 바꿔서 국민들한테 고기를 먹이려 안달을 내기 시작했다. 오죽 열성이었으면 그 당시 쇼군 별명이 '돈이치상', 즉 돼지씨였다. 요즘으로 치면 대통령이 만나는 사람마다 돼지고기를 츄라이하고 다녔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효과는 그다지 좋질 않았다 아니 먹으라고 하니까 또 지랄이네 도대체 왜들 그럼 먹는 방법도 모르고 익숙하지도 않은거 어떡함;; 아니 그동안 고기 몰래 존나 처먹은거 나도 다 안다 것도 돈 있는 새끼들이나 그랬거든 익숙하지않고 나발이고 일단 그놈의 돈이 문제였다. 애들 덩치 키운다고 육식을 장려하면 뭐하냐 서민들은 돈이 없는데...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싼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고기 안 먹던 놈들한테 익숙함을 주거나 적은 고기로 양 많은 음식들이 발명되게 되는데 고기의 비린내를 일본에 익숙한 된장으로 가리고 값도 싼 '규나베'나(당시 서양 스테이크의 5분의 1 정도의 가격) 우리 지갑처럼 얇아터진 고기에 튀김을 두껍게 둘러 양을 늘린 '돈까스'가 탄생하게 된다 행-복 뭐 그렇게 비건 파쇼들의 천년이 넘게 이어진 지랄은 끝나게 된다. [출처-디시인사이드 고질라맛스키틀즈] 진짜 역대급 분량에 역대급 욕설... 필터링을 거치긴했으나 여전히 욕이 많읍디다...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What is Raspberry leaf?
Pregnancy is an exciting journey; prepare your body for the big day! Originally raspberry plants would have been growing wild in our hedgerows and along the edges of woodlands but early folk had the wisdom to cultivate this medicinal and culinary powerhouse. As with many plants there is more than meets the eye with our humble red raspberry bush and it is the leaves that have the most medicinal properties. Raspberry leaves have been enjoyed by pregnant women from the earliest times. ras What makes raspberry leaf so effective for pregnant women? Raspberry leaves are a larder of nutrients and are a tonic for the entire body. They contain high levels of calcium, which acts on the nervous system and help to relieve pain. Other beneficial nutrients for pregnant women include iron to maintain red blood cells, magnesium, manganese, niacin, selenium, phosphorus and potassium and also vitamins A, B, C and E. An alkaloid called Fragarine is a key constituent of raspberry leaf, which helps to strengthen and tone the uterine muscles and the entire pelvic area. This is beneficial in pregnancy as it helps to prepare for labour and also encourages efficient contractions during birthing. Drinking raspberry leaf tea in the last trimester of pregnancy helps to prepare for the memorable and emotionally supportive delivery of a new bundle of joy. In preparation for birth drink one cup daily during the last two months of pregnancy and freely during labour. For the organised, make ice cubes, as these are particularly refreshing in case of lack of thirst. Raspberry leaf tea can also help with the expulsion of the afterbirth post delivery and will help to restore uterine and reproductive health and help to promote the flow of milk whilst breastfeeding. What the NHS says about Raspberry leaf… NHS recommend if you decide to take raspberry leaf tea, it’s recommended that you start when you are about 32 weeks pregnant, though not before. This will give enough time for it to build up in your body. Begin with one cup a day, gradually increasing to three cups. This power plant has the reputation to ‘tone and strengthen’ in preparation for labour. The Raspberry leaf nutrients are beneficial to women during pregnancy and believed to help strengthen uterine muscles, tone the pelvic floor and encourage efficient contractions in preparation for labour and birth, also helping to decrease excess bleeding postpartum. Myrtle & Maude Raspberry Leaf tea…. Our raspberry leaf tea is 100% Organic, its nutritional value is thought to encourage breast milk supply. Many women continue to drink the tea after childbirth to help restore the reproductive system and help nourish the new mother, harnessing nature’s power to gently nurture you and your bump. Shout-outs… A powerhouse plant for women! Caffeine Free Certified Organic Certified Vegan Ethical Tea Partnership Free from artificial colours and flavourings Natural solution 100% Organic Raspberry Leaf tea Each pouch contains 15 tea bags As each bag contains whole leaves, herbs, flowers and fruits, don’t throw it away after one use; why not top it up throughout the day by adding water to get the most out of the botanicals. Also if the taste is a little bitter add a drop of ho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