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꾸민 수제맥줏집으로 불리한 전통시장 입지 극복한 김성현 ‘성수제맥주 슈가맨’ 대표 인터뷰
윤태호 작가의 만화 ‘미생’에서 주인공 장그래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정규 교육도 받지 않은 채 바둑에만 몰두했지만 끝내 프로 기사가 되지 못한 그에게 사회가 허락한 건 ‘인턴’ 자리 뿐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익힌 ‘바둑 기술’이 무용지물이 될 지경에 놓였지만 정작 직장인으로서의 그를 경쟁력 있게 만든 건 ‘바둑을 통해 배운 삶의 기술’이었다. 그런 장그래를 향해 직장상사인 김동식 대리는 이런 말을 던졌다. “성공은 자기가 그 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린 문제가 아닐까.”
각자가 그리던 꿈을 이루지 못했을 때 우리는 이를 ‘실패’라 부른다. 그러나 장그래의 삶은 과거의 실패가 마냥 실패로만 귀결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실패가 훗날 성공의 밑천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예술가를 꿈꿨지만 현재는 수제맥줏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성현‘성수제맥주 슈가맨’(이하 ‘슈가맨’) 대표(만 36세・사진)도 비슷한 말을 한다. 예술가로서의 삶이 꼭 캔버스 안에만 있는 건 아니라고. 수제맥줏집 곳곳이 예술을 펼치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자신의 미적 감각을 녹여낸 인테리어로 가게 경쟁력을 높이고, 이를 통해 전통시장이라는 불리한 입지를 극복해 나가고 있는 김 대표를 비즈업이 만났다.

김 대표는 예술을 전공한 자신의 재능을 살려 슈가맨을 직접 꾸몄다. 식탁 하나부터 메뉴판, 벽에 걸린 포스터까지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전통시장 내 허름한 닭갈비집이었던 공간이 김 대표의 손을 거치면서 독특하고 우아한 콘셉트를 갖춘 수제맥줏집으로 거듭난 것.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했어요. 저의 예술적 재능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첫 직장은 가구 공방이었죠. 그곳에서 쌓은 경험을 발판으로 이후엔 가게 인테리어를 직접 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했고요.”
프리랜서 시절 김 대표는 한 수제맥주가게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며 자연스럽게 가게 사장님과 많은 얘기를 나눴고, 문득 그 가게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테리어 시공이 끝난 뒤 가게 매니저로 3년간 더 일을 했고, 당시의 경험이 슈가맨 창업에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주변 사람들이 다들 한마디씩 하더군요. 미술만 하던 사람이 무슨 재주로 맥줏집에서 일 하느냐고. 그런데 오히려 수제맥줏집이 지난 시간 제가 쌓아왔던 것을 발현할 수 있는 공간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순히 인테리어 뿐 아니라 식탁 배치부터 수천가지가 되는 수제맥주를 공부하고, 손님에게 알맞는 맥주를 권하는 방법 등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됐죠.”
김 대표는 사람들이 쉽게 접하지 못했던 맥주를 맛보게 하고 싶어 수제 맥주를 창업 소재로 택했다고 한다. 한국의 수제맥주시장이 최근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사업엔 긍정적인 부분. 젊은이들의 발길이 드문 전통시장에 문을 여건 부족한 초기 자본을 감안한 현실적 선택이었다.
“젊은이들이 몰리는 번화가에 가게를 차리면 좋겠죠. 하지만 초기 창업비용이 막대하고 들어가요.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도 힘들고요.”
그러나 김 대표는 전통시장이라는 ‘불리한 입지’를 현명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우선 그는 임대료가 싸다는 장점을 활용해 두 개의 점포를 빌려 서로 다른 콘셉트의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한 곳은 수제 ‘생맥주’를 파는 탭 하우스(Tap House)로, 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은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수입해 온 100여 가지의 수제 ‘병맥주’를 즐길 수 있는 보틀 숍(Bottle Shop)으로 꾸렸다. 나아가 전통시장 상인들로부터 공수해온 시장 음식을 ‘상생 메뉴’라는 이름을 붙여 안주로 판매하고 있다.

“맥주는 공부를 많이 했지만 직접 요리를 해서 안주를 팔 수 있는 여력까진 없었거든요. 그래서 전통시장 상인들이 십 수 년 동안 팔고 있는 음식을 맥주에 곁들여 팔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죠. 오랫동안 동안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맛이 보장이 되어있다는 것이잖아요. 상인들이 파는 순대, 떡볶이, 홍어, 육회 등을 어울릴만한 맥주를 권하면서 팔고 있어요.”
김 대표의 시도는 현재까지 성공적이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슈가맨은 1년 만에 수제맥주를 즐기는 인근 사람들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매출 또한 창업 초기에 비해 현재 30~40% 성장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실패의 쓴 잔을 들이킨 채 떠나고 마는 전통시장에서 김 대표가 나름의 성공 방정식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김 대표는 영화 ‘서칭 포 슈가맨’에서 가게 이름을 따왔다. 영화에서 가수 슈가맨은 앨범 6장도 팔지 못한 채 무대에서 내려와 평범한 삶을 산다. 그런데 우연히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흘러들어간 슈가맨의 노래가 남아공 젊은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놨고, 반정부시위에 노래가 쓰이면서 슈가맨은 혁명의 아이콘이 됐다.
“(영화의) 슈가맨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공간에서 스타가 됐잖아요. 제 가게 슈가맨에 오는 손님들도 일상은 힘들지만 어디선가, 또 언젠가는 반짝이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기사·사진 비즈업 안원경 기자 letmehug@bzup.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