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ang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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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다 대한건아!
이정도의 아이라면 커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아이가 되지않을까?? 기범이 장하다~ 삼촌이응원하께!!
멋지구나..^^
멋진 영재구나
역사를 알아야 미래를 본다! 역사는 수능공부가 아닌 우리의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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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에 참전한 어느 미군의 수기
(미 육군 7사단 본부중대 리차드 카펜터(Richard L. Carpenter) 소위의 수기에서 발췌) 우리는 1953년 5월 1일 김포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미 7사단 본부에서 개인화기와 장비를 지급 받고 전선에 투입될 준비를 했다. 우리가 배치 받은 곳은 한국군 수도사단(맹호부대)가 장악한 금화에서 금성까지 이어지는 3개 섹터로 나누어진 금성 돌출지역(분지)이었다. 대부분은 한국군이었지만 미군도 있었고 방을 나누어 쓰고 있었다. 6월 10일 우리는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가 임박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우리는 공군에게서 건설용 철판을 빌려 벙커를 보강했다. 풀이 좀 자라나면 관측에 방해되기 때문에 한국군 병사들이 모두 제거했다. 6월 20일, 중공군이 152밀리 자주포로 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아군 벙커 관측소에도 포탄이 떨어졌고 한국군 하프트랙 승무원들도 40밀리 보포스로 대응사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 2명과 한국군 몇 명이 전사했다. 1953년 7월 13일, 중공군은 여름 공세를 시작하였다. 철의능선에 있던 한국군 수도사단 모든 벙커에 중공군의 포격이 밤새 쏟아져 내렸고 일부는 공포에 질려 도망가려해서 한국군 부사관들이 제지하느라 진땀을 뺐다. 한국군 벙커에 사상자가 늘어났자, 영어가 가능했던 한국군 대대장 '김 중령'이 찾아와 미군들을 투입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우리들은 각자 벙커에 들어가 한국군들에게 커피와 빵을 나눠주었다. 김중령은 '미군이 우리와 함께하는 한, 절대 지지 않는다'라고 연설하여 병사들을 안정시켰다.  중공군은 포격이 끝나자 벙커를 점령하기 위해 접근해왔다. 그들을 향해 우리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중공군들은 정말 개미떼 같이 많았다. 중공군은 자신들의 앞서가던 대열이 무너지면 뒤에 있던 후속 대열이 몰려오는 식으로 전진을 반복했다. 100발들이 탄벨트는 링크를 연결해 수백발을 쉬지도 않고 계속 쐈다. 총열이 뜨겁게 과열되었지만 식힐 틈 조차 없었다. 전투는 4시간 동안 이어졌고 결국 중공군은 와해되었다. 7월 15일 오전 9시, 중공군은 나팔과 함성을 지르며 동쪽 벙커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한국군과 미군이 섞인 혼성부대는 중공군이 400야드까지 접근할때까지 기다렸다가 유효사거리에 들어오자마자 모든 기관총을 일제히 발포하였다. 중공군이 너무 많아서 기관총 총알 1발당 적 1명이 쓰러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중공군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고도 계속 전진했다. 적이 약 100미터까지 근접하자 한국군 병사들의 개인화기도 불을 뿜기 시작했고 마침내 중공군들이 아군 참호까지 들이닥쳤고 우리는 대검과 야전삽을 꺼내서 휘둘렀다.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은 중공군은 퇴각하기 시작했다. 미군과 한국군 의무병들은 힘을 합쳐 부상자들을 돌봤다. 밤이 되자 전장에 버려진 중공군 부상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전투가 끝나고 아무리 무전기 주파수를 돌려도 응답이 없자 통신망이 단절된 걸 뒤늦게야 알았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후방과 연락이 닿기위해 무전을 시도하였다. 아무 주파수나 맞춘 뒤 제발 들어주길 바라며 포병대를 불러댔다, 다음날 아침 장교들과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하던중 중공군의 포탄이 지휘소에 떨어졌고 지휘소에 있던 미군과 한국군 몇명이 사망하였다. 아마 적은 우리의 레이더 안테나를 보고 쏜 것 같다. 곧바로 아군 8인치 자주포 대대의 대응포격이 시작되었다. 적의 거점으로 보이는 곳에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탄약고에 명중한듯 했다. 아군의 지원이 시작되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중공군은 새벽에 다시 몰려왔다. 박격포로 조명탄을 쏘면 관측장교가 고폭탄 효력사를 요청했다. 중공군도 박격포로 대응사격을 했으나 정확도가 낮아서 멀리 떨어지거나 같은 중공군들까지 피해를 입혔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통신이 두절되자 관측반은 무전으로 근처에 아무 포병부대나 응답이 닿기를 바랬다. 전투병력이 부족하여 행정병들도 총을 쐈고 경상자들까지 동원하여 인원을 채웠다. 열두 명 정도의 중공군이 아군의 방어선을 뚫고 들어왔다. 김중령이 직접 권총을 꺼내 지휘벙커 근처까지 다가온 중공군 두명을 사살했다. 나머지도 아군의 집중사격에 전멸했다. 7월 17일, 아침이 되자 널부러진 중공군 시체들을 모은 후 쌓아서 방벽으로 사용했다. 무전으로 날씨가 개면 곧바로 공중지원이 올거라는 보고를 받았다. 나와서 보니 벙커도 많이 부서져있고 밖에 세워둔 하프트랙도 중공군의 포탄을 맞아 박살이 났다. 레이더도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잘 돌아간다. 미군이나 한국군이나 서로 수염이 길게 자라있고 녹초가 된 상태였다. 이제 물은 얼마 없고 씨레이션은 하루에 수통 반컵 정도를 분배해서 먹기 시작했다.  다음 날 오후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하늘에 항공기들이 지나갔다. 항공기에 그려진 하얀색 별(미 공군)을 보자 소리쳤다. “우리 거다!” 한국군 병사들도 벙커에서 나와 기쁜 마음에 소리치고 아군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부사관이 무전기를 들고 나와 공군 조종사와 교신했고 우리 아군 벙커의 위치를 식별시켜 주고 적에게 공격을 유도했다. 공군이 투하한 네이팜탄이 중공군 진지에 터지면서 사람 머리칼 타는 냄새가 산들바람을 통해 맡아졌다. 계속해서 폭격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조종사들이 목표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연기가 심해져서 레이더병들이 때릴 만한 곳을 찍어주었다. 항공기들은 그날 내내 하늘에서 맴돌며 우리를 구원했다.  정오에 한국군이 중공군을 몰아내고 능선 북쪽을 점령했고 철의 능선은 아군의 손에 넘어왔다. 수 많은 중공군 시체 때문에 발 디딜 틈도 없어서 시체를 밟고 다닐 지경이었다. 시체를 정리하는 일이 시작되었다. 눅눅하고 더운 날씨라 중공군 시체에 파리떼가 꼬였다. 우린 중공군 시체를 한 군데 모아서 쌓아놓고 가솔린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인간의 지방과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사방에 풍겼다. 정말 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19일은 조용했고 간간히 저격만 날아왔다. 무전기를 통해 다음 날 아군 증원병력이 도착한다고 통보받았다. 20일 새벽 5시 30분, 안개 속에서 미군 병사들이 나타났다. 그는 우리를 돕기 위해 보내졌고 한국군 6사단에 특별 배속된 미군중대였다. 이제 생존한 병력과 장비를 꾸려 이동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저녁이 되자 트럭과 지프가 도착했고 후방으로 이동했다. 거의 3개월만에 처음으로 찬물로 첫 샤워를 했다. 찬물도 사치스러웠다. 면도도 하고 새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식당에 도착하자 신선한 우유와 계란도 있었고 목구멍에 밀어넣으며 허겁지겁 먹으며 그 장면을 보고 선임하사도 웃었다. 오랜만에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탈이 났다.  27일 새벽, 라디오를 통해 휴전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김포 비행장 옆의 주둔지에서 대기하면서 귀국할 항공편을 기다렸고, 8월 첫 주에 미국 오클라호마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의 전쟁은 끝났다. (1953년 7월 14일 금성전투 전개도) 금성 전투에서 한국군과 미군은 2000여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다. 반면 중공군은 27,000명가량의 전사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로 인해 중공군의 화천지역 진출이 저지되었다. (카펜터 소위는 이후 주 서독미군으로 배치받아 그 곳에서 근무했고 1965년에 군에서 전역하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그의 부대원 28명중 절반이 금성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는 한국군 대대장이었던 '김중령'에 대해서 정말 훌륭한 지휘관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살아남은 전우들을 찾고 싶어했으나, 부대에 있던 신형레이더의 기밀유지 때문에 동료들의 소식을 알 방도가 없었다. 그는 평생 전우들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출처) 전쟁은... 다시는... 없어야 하고... 중국 니들 진짜........
3월 3일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및 만평모음
= 2021/03/03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들 = 1. 민주당의 '검찰개혁 시즌2' 법안에 대해 윤석열 검찰총장이 전면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공식입장을 자제해왔던 윤 총장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며 충돌이 예상되는 가운데 청와대는 공식입장을 내지 않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마지막 검찰총장으로 기억될 분이라 할 말이 많으실 듯... 2. 야권 단일화 방식을 둘러싼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샅바싸움이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김종인 위원장은 “제3지대 후보로 단일화돼서는 서울시장 선거에 이길 수가 없다”며 “기호 4번으로 선거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민주당만 빼고’ 찍으라고 그렇게 합디까? 국민이 바본 줄 아나~ 3. 김진애 의원이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성사시키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는 8일로 예정된 의원직 사퇴 시한에 구애 받지 않겠다는 판단으로 본선도 아닌 경선에서 의원직 사퇴는 전례를 찾기 힘든 선택입니다. 말로만 골백번 ‘의원 총사퇴’ 떠드는 의원보다 백번 더 강단있네 뭐~ 4. 김종인 위원장이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 “아스트라제네카라는 유럽에서는 매우 기피하는 백신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접종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예상됩니다. 백신에 대해 국민의 수용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방역 망하고, 경제 망하고, 나라가 아주 망하길 비는 망할 것들이 꼭 있다~ 5. 김승원 의원이 주호영 원내대표의 엘레베이터 여기자 기습 성추행 사건에 대해 "형사처벌 받아야 할 범죄"라며 주장했습니다. 또, “자신을 고소하면 더 좋다"라고 말해 향후 주 원내대표가 어떻게 반응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기습 추행을 당했다는 여기자를 고발한 건 2차 가해 아닌가? 6. 조태용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메시지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등 '정신 분열적 외교'라고 비판해 논란입니다. 외교부 "수용할 수 없을뿐더러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한다"고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를 우롱한 게 누군데... 진짜 살짝 돌았네 돌았어~ 7.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 수사권의 완전한 박탈’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의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논란입니다. 또한 “이는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 정신의 파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힘 있는 검찰 권력이 힘을 잃을까 그게 걱정으로 보이는데~ 8. 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 10여 명이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발표 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일대에 100억 원대 규모의 토지를 사는 등 '사전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시민단체는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할 예정입니다. ‘남들 다 하는 거 우리도 좀 하자’ 했겠지... 나라의 도둑놈이 정말 많죠? 9. 프랑스에서 보고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부작용 발생 비율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0.55%, 화이자 백신 0.26%, 모더나 백신 0.11% 순이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3개 백신 모두 1% 미만으로 모두 경미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래 봐야 1% 미만의 부작용을 가지고 침소봉대하는 기레기와 정치권... 10. 독립운동가 후손 비하로 논란을 일으켰던 윤서인이 이번에는 3·1운동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뒤 페이스북 계정이 정지 조처됐습니다. 윤서인은 "일본 순사보다 더 잔혹무도한 3.1운동 주최자들"이라는 글을 올렸다 삭제했습니다. ‘정신이상자보다 더 정신이 이상한 인간’이라고 글을 올려줘야 하나? 11. 하버드대 학부생회도 위안부 피해자가 '자발적 매춘부'라고 주장한 램지어 교수 비판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학생회는 만장일치로 “법학과 역사학의 진실성을 저하했다"고 지적하면서 램지어 교수에게 공식사과를 요구했습니다. ‘까리끼리 만난다’는 서울의 명문대 학생들은 뭐 느끼는 것 없나? 12. 영국의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20여 명의 여성을 몰래 촬영한 20대 한국인이 재판이 넘겨졌습니다. 재판부는 실형 대신 사회봉사 36개월과 무급노동 220시간, 성범죄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함께 실명과 얼굴 등 신상을 공개했습니다. 영국에서 대한민국 사람으로는 손흥민 다음으로 유명해졌겠다. 축하해~ 윤석열 수사청 반발에 검찰 내부 "우리도 직을 걸 상황". 청와대, 윤석열 반발에 "절차 따라 차분히 의견 내야". 법무부 "임은정 수사권 부여 적법 총장 지시 필요 없어". 임은정 검사 “시효 앞둔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서 직무배제”. 침묵 깬 김진욱, '김학의 사건' 공수처로 이첩 뜻 밝혀. 정 총리, LH직원 투기 의혹에 칼 뽑아 “철저히 조사하라". 당신은 지체할 수도 있지만 시간은 그러하지 않을 것입니다. You may delay, but time will not. - 벤자민 프랭클린 -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한 탓일까요? 3월 초입에 뜻하지 않은 폭설로 피해를 입은 주민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코 시간은 지체하지 않고 흘러 새순이 돋는 봄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설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당황하지 않도록 대비하고 준비하고 흐름을 잘 타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류효상 올림.
한국 국보중의 국보중의 국보 jpg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관련 전문가가 국보 중의 국보 중의 국보라고 하는 유물. 과장이나 호들갑이 아니라 진짜 원 오브 카인드라 말하는 유물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알려면 1993년으로 돌아가야 함. 1993년 부여 능산리  문화재가 가장 없을 만한곳에 주차장 짓기로 결정 주변 다 파보고 검사햇는데 없어서 진행 승인됨. 발굴단중 한명이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함. 한번만 더 파보자 라고 공무원에게 필사적으로 요청함. 원래 규정되면 이미 승인되서 윗사람들까지 결재 땅땅 받은거라 NO 인데 갑자기 우주의 기운이 이상하게 몰렸는지 당시 부여군청 문화재관리국 기념물과 담당자가  오케이 해봅시다! 이러고 무리해서 예산까지 따로 때줌. 그리고 땅을 파보는데.. 갑자기 진흙 속에서 이게 나옴 전에 이런 유사한게 한번도 없어서 발굴 당시에 뭔지 아무도 모름 보름동안 유물처리 끝에 발굴단은 엄청나게 경악함. "백제 금동 대향로!" 무려 1300년전  향로가 완벽한 형태로 보존된 유물인것. 1,300여 년을 땅 속에 있었지만 진흙이 완벽한 진공상태를 만들어줘 녹이 슨 흔적조차 없었다. 당시 학자는 이 유물 하나가 무령왕릉 발굴 전체와 맞먹는 고고학적 대발견이다할 정도. 당나라에 의해서 사비 백제가 멸망할 때  이름 없는 한 명의 백제인이 목숨을 걸고 보물을 보호하다,  진흙 속에 파 묻은 것이라 한다. 이것이 천년이 지나 우연하게, 그것도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후손에게 발견된것. 수은과 금을 이용한 도금법인 "수은아말감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서양보다 천년이나 앞선 기술이었음. 정밀하고 화려한 백제 문화재 중에서도 초초초초고난이도의 작품으로, 동시대에도 견줄만한 작품이 없음. 이것을 만든 사람은 삼한 중에서도 미켈란젤로에 해당하는 초특급 천재일 것으로 추정. 1300년전 유물이 어디 손상된 곳없이 완벽하게 보존된 지금의 자태를 보노라면 나라가 멸망하고 온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이 죽는 와중에 무명의 한 백제인이 왜 목숨을 걸고 이것을 보호하여 진흙속에 파 묻었는지 알 것 같음. 정말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연속과 행운이 겹쳐서 발견된 유물, 발견될때 섬유 조각과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금동대향로를 감싸서 묻은 흔적이라 추정된답니다.  즉 우연하게 던져졋거나 난리중에 떨어져 간게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파묻어 숨겨둔것 현재도 소개할때 학자가 국보중의 국보중의 국보라고 말하는 그것 백제 금동대향로 출처 아름다움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뭐든 최고... 이걸 볼때마다 기독교에서 반대해서 향 피워서 전시하는 게 무산됐다는 얘기가 떠오르는데 그거 진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