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자 제로
https://www.gq.com/story/sperm-count-zero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과 지구 시리즈를 보면 “우주인” 사회가 나온다. 이게 무슨 외계인 개념은 아니다. 우주로 진출한 인류가 귀찮은 과정(...)을 없애기 위해 자웅동체로 스스로를 진화시켰고, 워낙에 장수를 누리는 존재로 바뀌었다. 모든 잡무(?)는 로봇이 맡아서 하며, 그 대신 태어나는 아이가 극소수가 되어버렸고... 이는 골란 트래비스의 임무 중 목표가 된다는 것이 파운데이션과 지구 시리즈의 테마 중 하나. (여담인데 애플이 제작을 지원하는 드라마,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도대체 어떻게 나올까? 해리 셸든을 여자로 한다는 루머가 있던데, 그건 좀... 원작에 이미 도스 베나빌리라는 훌륭한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인류는 그와 비슷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현재 형태로서는 멸종을 향해 가고 있다고 봐도 좋기 때문이다. 여러 매체에서 소식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미국과 유럽, 오세아니아에서 남성 정자 수가 지난 40년간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었다(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교 연구진, 참조 1). 연구가 안 되어서 그렇지 세계 나머지 지역도 마찬가지이리라 강하게 추측하는데, 한 마디로 하자면 이렇다. 출산률이 낮은 근본적이고도, 전 인류적인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물론 임신에 수 백만 마리의 정자가 다 필요하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40여년 동안 이 사실을 그냥 못알아차렸다. 아이가 나오기는 나오니까. 게다가 다들 출산률이 떨어지는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설명했지, 의학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었다. 연구 결과는 자명하다. 비율만 절반 이하가 아니라, 정자 개체 수 자체가 거의 60% 줄어들었다. 현재는 이 결과에 이의를 달지 않는 분위기라고 한다. 테스토스테론 수준도 똑같이 감소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성기와 항문 사이의 거리(AGD: anogenital distance, 참조 2)도 줄어들어서 생식력이 떨어지고 고환 종양 가능성이 증가하며 성기 크기도 더 줄어들었다. 즉, 정자 수가 줄어들면서 “남성다움” 또한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유가 무엇일까? 70년대 후반에 뭐가 잘못됐던 것일까? 1차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고환암 전구세포(precursor cell)가 나타났다. 그래서 흔찮은 암이었던 고환암이 두 배로 늘어났는데, 이 전구세포는 환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성장을 시작했었다. 그렇다면 자궁 안에서 (특히 남자 태아가 나타날 때) 뭔가 생겨나고 있다는 의미일까? 스트레스, 비만, 흡연 등등을 이유로 들 수는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정유 업계의 혁명이 일어난 시기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완전히 새로운, 그러니까 에스트로젠과 테스토스테론을 포함한 우리의 호르몬에 영향을 끼치는 합성물이 범람하기 시작한 시기다. 비교적 짧은 시기에 온갖 형태의 화학 물질이 나타났고, 이들이 우리 핏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신체는 이런 침입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새로운 약, 음식, 옷 등등 모든 형태의 제품 안에 들어가있기 때문에 막을 수가 없다. 가령 프탈레이트(Phthalate)와 비스페놀A(Bisphenol A)는 혈관 안의 에스트로젠을 흉내낸다. 그래서 프탈레이트가 몸 안에 많이 들어서게 되면, 그 몸의 생식 시스템은 바뀐다. 정자 수가 줄어든다는 얘기다. 여자의 경우 임신 중 프탈레이트 수치가 높아지면, 성기 크기가 작고 AGD도 더 줄어든 남아를 낳을 가능성이 올라간다. 문제는 앞서 얘기했듯 모든 제품에 다 들어간다는 점에 있다(심지어 영수증이나 우리가 복용하는 약 껍질에도 들어간다). 의료 기기도 물론이고 심지어 비누, 요거트, 채소, 파스타, 물 등 모든 것에 다 들어가 있다. 음식 처리 과정에 묻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사실은 이런 물질이 유전된다는 데에 있다. 프탈레이트와 비스페놀A는 유전자 코드를 변경하지 않으면서 유전자의 발현 방식을 바꿔서, 그것을 그대로 유전시킨다. 이게 바로 인류가 멸망으로 가는 이유 중 하나. ---------- 어떻게 좀 대응할 수 없을까? 비스페놀A를 비스페놀S로 바꾸면 어떨까? 부질 없다. 어차피 현대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화학 회사들은 당연히 이런 물질들이 신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시 기술밖에 안 남는다. 혹시 체외 수정이나 줄기세포의 정자 주입 같은 요법에 답이 있는 것일까? 비싸다. 아버지가 되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사치가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결국 매트릭스/가타카가 우리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참, 줄기세포 요법의 경우 현재까지의 실험은 암컷 쥐들끼리 일어나고 있다. 남자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 ---------- 참조 1. 1973년에는 일 밀리미터 당 9,900만 마리였는데, 2011년에는 4,700만 마리로 줄어들었다. 2. 남자의 경우 보통 여자보다 AGD가 두 배 이상 길다. 하지만 남녀간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