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휴양지를 앞두고 있는 여행객들의 들뜬 기대감과 밤 비행기가 주는 고단함이 섞여 피로와 기대감이 절충된 차분한 행복감이 자리마다 배정되어 있었다.
찰칵, 찰칵, 찰칵.
이륙 전. 안전벨트를 채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축포처럼 터져 나온다. 일상의 하잘 것 없는 마찰음에도 기분이 들뜨는 건 괌으로 향하는 축제의 전야제이기 때문.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면 설레는 마음에 두둥실 떠올랐을지도 모를, 마음만은 무중력 상태다. 내친김에 기내식까지 나왔다면 파티가 무르익었을 텐데. 저가항공으로 예약할 때부터 포기한 코스지만 내심 아쉬웠는데 다행히 주스 한 잔으로 목은 축일 수 있었다. 감질나는 웰컴을 드링킹 하며 창밖을 보니 깜깜한 칠흑이다. 달은 보이지 않았다.
달의 빈자리를 대신하려는 듯 내려놓은 종이컵 바닥의 둥근 모서리를 따라 노란 물이 고이며 둥근달 모양을 띠었다. 달에는 토끼가 산다더라……는 설에 따라 종이컵 안에서도 토끼들이 방아를 찧으면 떡이라도 하나 얻어먹을 텐데. 아무리 봐도 토끼는 없는 것 같아 텅 빈 종이컵 그대로 카트에 돌려주었다. 그렇다. 토끼는 원래 달에도 살지 않을뿐더러 종이컵에 몸담기에는 너무 XL인 동물이다.
떡도 없고 뭣도 없고 심심해진 바람에 앞좌석에 꽂혀 있는 메뉴판을 꺼내 들었다. 컵라면이 오천 원. 오징어 짬뽕이 오천 원. 슈퍼가의 몇 배를 웃도는 가격이 별다른 변명도 없이 당당하게 적혀있다. 경쟁할만한 이웃 가게가 없는 특수한 상황이라지만 오직 몇 단계 더 거친 유통과정을 위해 내야 하는 웃돈의 의미가 좀체 수긍되지 않는다.
‘내가 애 이거 컵라면 아는데. 애가 이런 애가 아니거든.’
하늘과 땅의 차이인 걸까. 땅에서 알았던 애를 하늘에서 만나니 몸값이 하늘만큼 뛰어버렸다. 하긴. 그래 봤자 만원 남짓한 돈인데 기분 삼아 지를 수도 있지 뭐… 했으나 저가항공을 택한 유일한 이유인 가격의 메리트가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아 끝내 망설여진다. 이미 사만 원을 내고 좌석 추가를 한 상태. 안 그래도 가격 폭이 좁혀져 손해 보는 기분인데 만원을 얹자니 이럴 거면 고가 항공이 낫지 싶다. 저가항공사에서 친절까지 팔 필요는 없다는 듯, 서비스의 선을 지키는 분위기도 그렇고.
어쨌든 항공사가 책정한 가격에 오케이 한 사람이 바로 나인만큼 그들의 정책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체념이 들었다. 이동을 보장받았으니 그걸로 된 거다 싶기도 하고. 몇 시간 거리 너머에 에메랄드 빛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흡족한 거래였다.
괌까지 무사히 가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 가면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