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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생생한 감각, 사진작가 Nicolai Howalt의 ‘Boxer’ 시리즈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1999년 작 영화 “파이트 클럽(Fight Club)”은 사회적 규범에 억압받는 현대인의 욕망을 폭력의 근거로 활용한다. 온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저녁 즈음 TV 홈쇼핑 상품이나 유니클로 장바구니를 비우면서 평생의 욕망을 할부로 소비하는. 뭐, 이렇게 욕망의 가치를 선택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면 삶이 갈수록 고리타분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폭력이 정당하다는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표현만큼이나 강렬하다. 남자들이 허름한 격투장에 모여 쓰러질 때까지 싸운다. 치아가 뽑힐 수도 있고, 뼈가 부러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파이트 클럽의 회원들은 오히려 축제처럼 즐긴다. 몸을 부딪치고 피를 흘리고 부서뜨리면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와 주먹을 쥐고 싸워 본 적 있는가? 나는 고등학생 무렵 복도에서 친구와 싸운 적 있다. 처음 느끼는 기분. 나를 줄곧 얕잡아 보던 녀석에게 크게 한 방 먹였으니 승리의 기쁨과 함께 어떤 폭력의 짜릿함 마저 느꼈던 것 같다. 남학생들에게 싸움은 유독 재밌는 볼거리다. 몇 반의 누가 싸운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가서 구경하지 않나? 남의 싸움은 그렇게나 재밌다. 관객은 액션 영화를 보면서 적을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주인공의 무술에 감탄한다. 신체가 훼손되거나 자동차가 폭파하거나, 건물이 무너지는 등 폭력적인 장면에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격투기는 인간의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매력이 있다. 신체의 한계를, 신체의 훼손을, 신체의 역할을 우리와 전혀 다르게 사용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말이다. 격투는 현대인의 욕망에 가장 반대되는 행위가 아닐까 싶다. 지키고 싶은 신체와 자아를 서로의 몸으로 부딪혀가며 경쟁한다. 이는 아름답지만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행위이다. 치아 하나라도 부러진다면, 코가 부러진다면? 혹시나 패배한다면? 모든 걸 잃을 거란 생각에 두렵기만 하다. 그 때문에 격투는 인간의 가장 치열한 순간을 라운드마다 보여준다. 인간이 진정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사진작가 니콜라이 호발트(Nicolai Howalt)는 어린 소년을 중심으로 모두 78명의 권투 시합 전후 사진을 찍었다. 강렬한 경험은 그들의 정서적, 신체적 변화를 야기하는데, 비포 애프터 사진으로 보니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땀에 젖거나 피를 흘리거나, 더 솔직해진 모습이다. 헝클어진 머리와 확장된 동공은 묘하게 날 것의 냄새가 나고, 좀 더 살아 있는 인간이라 느껴진다. 그들은 잃었다기보다 무언가 얻은 표정이다. 승패와 상관없이 카메라 앞에서 당당하다.

시합 직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소년들의 모습을 보면 심장이 터져라 뛴다든지, 무모한 도전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고 싶다는 욕구가 차오를 것이다. 혹시 가진 걸 지키려고만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폭발하는 무언가에 열렬히 빨려 들어가는 기쁨. 순수한 격투에는 어떤 중독적인 매력이 있는 듯하다. 나를 내던지는 자유로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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