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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괴생명체 만들다가 멘탈 터진 썰.Game

이 개구리(?)가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손톱만한 녀석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이라니! 넘나 귀엽고도 신기하지 않은가? 저 쪼마난 녀석은 어떻게 움직이는 걸까? 저렇게 움직이는 꼬물이를 내가 직접 만들어볼 순 없을까?
나만의 생명체를 만들고, 스스로 학습시켜서 걷고 움직이게 하는 일. 연구기관에서나 해볼 수 있는 이런 일을 직접, 그것도 공짜로 해볼 수 있는 게임이 있다. 이번 개&뷰에서는 스스로 신이 되어보는 게임, Evolution을 리뷰하기로 한다. 게임으로라도 이 되어서 나만의 창조물을 만들어보자!
우리를 갓으로 만들어줄 게임 Evolution의 목적은 나의 창조물을 진화시키는 것.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진화를 통해 달리기/점프/장애물 넘기 등 특정 행동을 달성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백썰이 불여일플이라고, 썰만 풀지말고 직접 플레이해보며 나만의 창조물을 만들어보자.

게임을 진행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우선 JOINT를 선택해 관절을 만들고
관절들을 뼈로 이어준다음
뼈를 움직이게 할 근육을 달아주면 된다.
진화하며 뛰는 법을 배울 괴생명체 1호를 완성했다.
오른쪽 메뉴를 활용하여
세대당 3마리 / 5초마다 진화 / 목표 : 달리기(Running)로 설정해보았다.
이제 스스로 학습하며 진화하도록 Evolve 버튼을 누르면
설정한대로 세 마리의 개체들이 튀어나와서 뛰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징그러울까봐 세 마리만 했는데 세 마리도 정신 사납다. SHOW ONE AT A TIME을 눌러 한 마리씩 보기로 하자.)
5초 뒤, 이 중 가장 잘 뛰었던 한 개체만 살아남는다.
tvN <눈치왕> 中
살아남은 1 마리는 2 마리의 자손과 함께 2세대를 꾸려 또 뛰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5 초마다 가장 우수한 개체만 살아남고 진화하며 3세대, 4세대, 5세대가 뛰는 법을 학습해나간다. 이게 바로 그 머신 러닝인가 그거 아니겠는가?! (아니다)
구글의 알파고를 뛰어넘을 나만의 창조물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야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뛰는법을 배우는 중인 3세대. 마치 월요일 출근길의 나처럼 움직인다.
4세대쯤 되니, 화장실이 급할 때의 나처럼 제법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제 이 콤파스같이 생긴 녀석보다 좀 더 안정적이고 멋있는 생명체를 만들고 싶어졌다. 다시 메인 페이지로 돌아가서 괴생명체 2호를 만들어보자.
두 개로 늘리면 두 배로 잘 뛰지 않을까?
(그렇다. 나는 문과다.)
두근거리며 Evolve 버튼을 누른다.
1세대
문과 출신 창조주가 맞게 된 결말은 다소 참혹했다.
당황한 듯한 마우스 움직임이 안타깝다.
4세대
열등한 생명체는 몇 세대가 지나도 여전히 열등하다.
갑자기 내 미래의 자식들에게 미안해진다.
빠르게 접고 3호를 만들어보자.
2차 출처 <구글 이미지 검색>
3호는 신을 모방해보았다.
인간의 하체처럼 만들어본 것이다.
(신을 모방했다니... 문과감성이 폭발한다.)
하지만 감성 따위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하등 도움이 안 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10세대까지 진화시켜 보았지만 이런 10세대 같은 결과만 나왔다.

이번 컨셉은 '개구리'이다.
결과물도 개 구리다.
이번엔 토끼다.
다 관두고 그냥 토끼고 싶어졌다.
해피밀을 주문하고 싶어지는 비주얼이다. 따라따따따~
의외로 (그나마) 잘 움직여주었다.
게다가 뒤집어지면서 보여준 역동적인 몸부림은 좋은 힌트가 되었다!
뒤집어진 맥도날드, 드날도맥
기대되는 비주얼이다.
....................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제목 : 바트심슨
사실 이때쯤부터 정줄을 놓아버렸다.
제목 : 배산임수
이 게임의 또다른 용도를 찾았다.
뛰지 못해 슬픈 개구리 페페
진화하는 건 내 그림실력 뿐이다.

역시 창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우주공간으로 날아가려는 정신줄을 붙잡고, 30분간 메달린 끝에 드디어 멋있고도 성능 좋은 생명체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이름 : 스핑크스
평상시의 이름은 스핑크스이지만, 달리기 시작하면 이름이 바뀐다.
달릴 때 이 녀석의 이름은 바로

갓!핑!크!스!

북청사자놀음을 보는 듯 한 호쾌한 도약과 착지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묘하게 징그러운 근육들도...)
펄쩍펄쩍 뛰는 창조물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만끽했다.
잘 뛰는 창조물을 감상하는 외에는 게임의 목적이 없다. 진짜 없다. 전혀 없다. 하지만 묘하게 계속 보게 된다.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숨겨진 꿀잼 게임 Evolution을 플레이 해 보았다. 물론 중간중간 나의 멘탈을 바스라뜨리긴 했지만, 공학적 설계와 생물학적 진화를 통해 나만의 창조물을 만들다보면 도전정신과 함께 성취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하자.)
서두에 언급했듯이 이 게임은 무료 게임이다. 정확히는 게임을 즐긴 후, 후원하고 싶은 만큼 후원하는 시스템이다. (0원 후원 가능)

VingleGame은 이 카드가 100개의 좋아요를 받을 때 마다 $1 씩 이 게임에 후원할 예정이다.
이 게임을 후원하고 싶다면 이 카드 좋아요를,
이 게임을 직접 해보고 싶다면 이 링크를 누르면 된다.
(다운 받을 필요 없이 웹에서 바로 플레이 할 수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학습하며 걷는 나만의 꼬물이를 만들고 싶다면 도전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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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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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해봐야 포기도할 수있기때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넘웃겨욬ㅋㅋ
완전재밌어요
글 엄청 재밌게 쓰시네욤ㅎ.ㅎ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링크를 누르고 있다...ㅋㅋ
감사합니다!
자...잘가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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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혹해서 2년 정도 기고를 했다.  2017년에 <소녀전선>에 K-2가 추가된다고 해서 그걸 주제로 글을 썼는데, 난리가 났다. 온라인 커뮤니티 유머게시판에 올라가고, 디씨인사이드 힛갤도 갔다고 그랬다. 담당자가 그러는데 당시 국방일보 역대 트래픽 최대치를 찍었다고 한다. 화제의 '전쟁과 게임' <소녀전선> 편 (출처: 국방일보) 어떤가? 20대 남성 60만이 강제 구독하는 매체에 글을 정기적으로 실어보니. 국방일보의 가장 큰 문제는 쓴 사람은 지면 결과물을 보기 어렵고, 읽는 사람은 내가 소개한 게임을 해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소개하는 게임을 해볼 도리가 없는 군인들로부터 '울화통이 터진다', '지금 나 약 올리는 거냐?' 이런 연락을 받기도 했다. 이건 뭐 악플도 아니고, 웃긴 이야기도 아니고...  요새는 사병들도 휴대폰을 쓸 수 있게 되니, 이런 문제는 많이 사라졌다. 밀덕 아니면 국방일보를 잘 읽지 않을 거다.  # 사람들이 영화평론가는 알아도 게임평론가는 모른다 막상 게임 전문지에는 글을 기고하지 않았다. 사정 뻔히 알지 않나? 매체가 잘못했다기보단 구조적으로 필진을 구축하기 쉽지 않다고 본다. 게임사에서 광고비를 집행하는 구조 아래서 자유롭게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종합 일간지는 힘의 균형이 배분되어있다. 어쨌든 조중동은 세니까. 광고를 던지면서 "우리 좀 봐주세요" 하는데, 게임은 전문지고 힘이 세지 않다. 게임 전문지의 커버리지 바깥의 글쓰기를 연구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게임지가 평론 공간으로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못하다? 신문을 돈 주고 사보던 시절이 아니다. 당장 신문 돈 주고 사보라면 누가 볼 것인가? 그렇게 선순환이 되면, 독자들이 돈을 내고 양질의 기사를 받아볼 수 있는 환경이면 정말 좋겠지만, 그걸 누가 어떻게 시도할 텐가? 정말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어떤 게임지가 시도를 할 것인가? 그나마 한계 안에서 디스이즈게임은 가끔씩 세게 때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가? 요즘 디스이즈게임은 유튜브 열심히 한다. 유튜브 안 만드시나? 자기가 할 이야기가 떨어지는 순간, 쉽지 않을 거다. 나도 유튜브를 해보고 싶었지만 퍼블릭한 곳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다. (유튜브는) 일정 수준 이상의 관종력이 있어야 도전할 수 있는 분야다. 대중 앞에 나서는 게 좋고 할 말이 있다면 유튜브가 좋겠지. 글과 영상은 엄연히 다르다. 글은 정제된 것이라서 천천히 생각할 수 있다. 영상은 빠르게 흡수되는 대신 행간이 사라진다. 그래도 여유가 되면 유튜브를 해보고 싶은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 이야기만 2년 째 하고 있다.  평론이 뭘까? 문학평론가와 영화평론가는 알아도 게임평론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떤 평론가는 거의 대중문화의 스타 덤에 오르지 않았나? 80년대 영화평론이 요즘과 같은 대우를 받았느냐면, 아니잖은가? 60~70년대 상업, 흥행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평론 씬에서 이론이 연구되면서 90년대 들어서야 그 맹아가 싹튼다. 영화가 오늘날 사회를 이야기하고 인간을 이야기하는 매체라는 위치를 점하는데 평론이 큰 역할을 했다.  평론가들이 그 공을 세웠기에 영화라는 미디어의 위상이 올라간 거다. 개개인의 작업으로 일궈낸 결과라기보다는 씬의 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게임도 그렇게 적지 않은 인고가 있을 것이다. 그때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영화 보는 게 힙했던 시절이라고들 하지 않나? 그렇지. 대중성에 비춰보면 게임은 영화보다는 덜 대중적이다. 영화는 얼마를 내면 모든 조건이 맞춰지는데, 게임은 다르다. AAA급 타이틀을 해보려면 최소한 플레이를 위한 플랫폼이 있어야 하고, 플레이 타임이 맞춰져야 한다. "<데스스트랜딩> 정말 훌륭해, 꼭 한 번 해봐"라고 권하려면, 듣는 사람한테서 플레이스테이션이 있어야 한다. <데스스트랜딩> 해본다고 플스방에 가봐야 앞부분만 해보는 거 아닌가? 그러면 또 "스팀 게임 하면 되잖아?"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거야 게이머들이나 고사양 쓰는 거지. 모바일? 모바일게임은 대중적이지만 어떤 게임을 평론할 수 있겠는가? 많지 않다. 대중성과 평론이 매칭되는 사례가 많지 않다. 평론이 될 만한 게임은 게이머 커뮤니티 안에서 소비되는 상황이다. <데스스트랜딩> 평론가 이경혁의 주 독자층은 게이머가 아니다? 내가 여러 종류의 글을 쓰는데, 게이머들이 내 글이 보는 이유는 "이거 재밌어?"를 알기 위해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내가 느끼기로 내 독자는 대중 교양 독자다.  대중 교양 독자들이 대체로 주목하는 건 게임이 텍스트로 머무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사회의 어떤 면을 볼 수 있는지다. 내 목표도 게임 안 해본 사람들에게 게임이 전달할 수 있는 가치를 전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게임 이야기하는데 무슨 사회 이야기를 꺼내냐?" 하면서 싫어하는 분들도 있다. 평론의 방식은 여러 가지다. 텍스트 안에 머무는 경우가 있고, 텍스트 밖에 서 있는 경우도 있다. 게임이라는 매체가 기존의 매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읽고 해석하는데, 그 과정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측면들을 소개하고 싶다. "왜 게임 이야기에 사회를 집어넣느냐?" 그러는데 모든 매체는 결국 사회가 만들지 않나? 작가의 경험과 창의성을 통해 가공되어 나오는 것 아닌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사회가 묻어날 수밖에 없다. 게임의 플레이는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창의성을 가진 수용이다. 그 맥락을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고, 내가 평론에 중점을 두는 부분이다.  "이것은 진정한 평론이 아니야"라고 폄훼하는 게 평론 씬이 크는 데 가장 나쁜 방해요소가 아닐까 한다. 글을 읽고 나서 "이야, 이거 재밌네" 해도 평론이 될 수 있는 거다. # "이 나이 먹고 석사 학위"... 다큐멘터리 <더 게이머> 출연 이어 CBS 라디오 고정까지 요즘은 무슨 글을 쓰고 있나? 논문 학기라 논문 쓰느라 정신이 없다. 하반기부터 일을 좀 하지 않을까? 이 나이 먹고 석사 학위를 따고 있다. 논문 주제는 무엇인가? 맛만 보여달라. 게임 플레이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다. 플레이라는 게 정의하기 어려운데, 결제 양식과 플레이에 따라 다른 양상을 띤다. 오락실에서 동전을 넣고 게임을 하던 시절과, 부분 유료화 게임을 즐기던 시절의 플레이가 같지만 다른 점들이 있다. 그런 것들을 주제로 하고 있다. 현재 본인이 재학 중인 연세대에서 게임 연구 그룹을 띄웠다고 들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게임 연구를 진행해왔던 윤태진 교수와 문화 연구소 '예거센터'를 만들었다. 크래프톤과 제휴를 맺고 중장기적으로 게임이라는 매체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할 수 있도록 연구하자는 논의를 하고 있다. 크래프톤 공식 홈페이지와 네이버포스트에 올라온 '게임문화연구'가 연구소의 브로슈어 같은 건가? 연구 주제를 도출하면서 학술대회 안의 연구지 안에서만 돌던 자료를 대중에도 공개하자는 인식이 있었다. 크래프톤이 네이버포스트를 쓰고 있으니 거기에 우리 주제를 걸고 대중들의 반응을 보기로 했다. 그래서 테스트 삼아 글을 10개 정도 올렸다. 크래프톤 공식 홈페이지의 '게임문화연구' 반응이 어땠나? 반반이었던 것 같다.  글을 주신 분들이 모두 게임 전문 연구자는 아니었다. 다른 분야 연구자들이 게임과 접목해서 쓸 수 있는 것들을 쓰긴 했는데,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 눈높이에는 못 미쳤을 것이다. 게임에 대해서 미학, 예술적으로 접근했던 글들은 반응이 괜찮았다. 이런 시도들이 과거에도 있었지만, 대체로 단편적으로 끝났다. 후속이 나오지 않으면 똑같은 걸 몇 년 뒤에 다시 하게 되는 꼴이다. 기획을 장기적으로 끌어나간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2018년까지 대학교에서 게임 관련 교양 강좌를 진행했다. 2016년부터 2년 동안 성균관대에서 '게임과 인문학'을 강의했다. 인문학협동조합에서 주관하는 강의였는데, 2017년 1학기 성대 강의평가 1위를 찍었다. 당시 개설된 게임 관련 강의들이 대부분 제작 실무였는데, 인문사회를 주제로 강의한 것은 많지 않아서 흥미로웠던 강의다. 지금은 다른 분이 맡아서 하고 계시다. 반지하게임즈 이유원 대표가 그 수업 수강했던 것은 알고 있는가? 그분이 내 수업을 들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소식을 접하고 레포트를 찾아보니 굉장히 잘 쓰셨더라. '역시 내 수업 덕에 게임을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결국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모이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성대에서 게임 좋아했던 사람들은 다 교양으로 듣지 않았을까?  그밖에 시사 교양 팟캐스트에 굉장히 오래 출연하고 있다. '그것은 앓기 싫다'라는 팟캐스트인데, 2017년 <배틀그라운드>를 소개하는 코너로 처음 출연해 지금까지 비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주제는 게임 이야기하지만, 시사/교양이니까 늘 사회 이야기를 한다. 청취자들이 콘셉트를 좋아해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까도 비슷한 말을 했지만, 유튜브는 말과 말 사이의 행간이 없다. 반면에 팟캐스트는 듣기 좋은 환경이다. 들으면서 같이 생각할 수 있는 거지.  그것이 인연이 되어 CBS 주말 라디오 '주말엔 CBS'에 고정 출연 중이다. 지난주 방송은 <민식이법이 무서워>라는 게임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게임을 주제로 사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열렸다고 보고 있다. 이 코너에 오래 열정을 쏟을 생각이다. 청취율이 얼마가 됐든, 보편적인 매체에서 발언권을 얻는 게 좋은 접근이다. KBS 스페셜 <더 게이머>에도 출연하지 않았나? PD가 그해 여름부터 프로게이머를 주제로 작업했는데, 한국 e스포츠 초반 이야기를 하면서 약간의 자문도 했다. 나는 e스포츠 탄생에 광대역 망을 깔았던 전길남 박사의 역할이 컸다고 봤고, 박사님을 꼭 모셔야 한다고 자문했다. 다큐멘터리 '더 게이머'에 출연한 이경혁 평론가 # 게임평론가 이경혁의 연구과제, "연구하고 글을 써서 살아갈 기반을 만드는 것" 요즘 무슨 게임을 즐기고 계신가? 논문 때문에 잘 못하는데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로드>를 재밌게 했다. 전작부터 광팬이었거든. 게임 나오자마자 논문 접고 난리를 쳤는데, 세이브 파일이 날아가는 바람에 논문으로 돌아간 상황이다. 한패(한글패치) 넣으시다가? 아... 그랬나 보다. 기자도 그랬다. 그런가? (한숨) 한패 때문인가 보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로드> 좋아서 하는 케이스 말고, '숙제'가 되어버린 게임도 재밌게 할 수 있나? 게임기자도 마찬가지 아니신가? 나는 '새 게임 나왔다, 장르는 뭐다, 어떤 형식이다, 가격은 얼마다' 이 정도가 아니니까 게임을 오래 해야 한다.  에휴... 그걸 언제 다 하고 앉아있어? AAA급 게임이 쏟아질 때는 숨을 못 쉬겠다. 육아까지 하고 있으려니까. 도저히 게임 할 짬이 안 난다. 나는 3D 멀미가 있어서 1인칭 게임도 잘 못한다. 그래도 아이템이 나와야 하니까 참고 막 하는 거지. 진짜 힘든 게 뭔지 아나? 끝까지 잡고 했는데 할 이야기가 없는 거다. 그래픽 몇 점, 사운드 몇 점 이런 식으로 점수를 매기는 건 아니다 보니, 그렇게 되면 그냥 그날 하루 공친 거다. 아무래도 업계에 게임평론가가 드물다보니 "어떻게 하면 평론가가 될 수 있을까요?" 묻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냉정하게 게임평론가, 칼럼니스트가 되는 길은 2가지가 있다. 학업을 마치고 데뷔하거나, 다른 일을 10년 정도 하다가 들어오던가. 나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들어왔다. 의도하고 들어왔던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잘 버텼다. 당장 월세를 고민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게 쉬울까?  실제로 "게임과 관련된 글을 직업으로 삼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묻는 메일이 있었다. 그래서 답변하기를, 나인 투 식스(9 to 6)에 여가가 보장된 직장에 가라고 제안했다. 그런 여유가 생기면 투잡을 시도할 여력이 생긴다. 그렇게 기회가 열리면 전업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들이 들어갈 만한 일차 타겟인 게임 전문 매체는 이미 기자 중심으로 돌고 있다. 고정 지면을 받기도 쉽지 않을 거다. 그러면 기성 매체의 필진으로 들어가기는 쉽나?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 그 정도가 아니다. 그리고 기성 매체 고료가 은근 짜다. 그러면 책을 써서 낼까? 팔아봐야 얼마 안 나온다니깐? 결국 튼튼한 기반 없이는 힘들다. 전업으로 게임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전업 게임 연구와 글쓰기가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져야 담론이 커지지 않겠나. 사회적으로 게임이 인정받을 여지도 커지고. 앞으로의 계획이 따로 있는 것처럼 들리는데. 나는 시장에 게임 칼럼니스트 이름 걸고 일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나 혼자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씬의 구축이 중요하다. 어디 가서 고료를 받을 때도 내가 업계 표준이니까 다른 사람들이 싸게 받지 않도록, 재수없게 굴고 있다. 이건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영화평론 이야기 잠깐 했듯이, 여러 사람이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는 상황이 와야 한다. 그래야 먹고사는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될 수 있다. 처음에 내가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언제까지 게임 관련 글쟁이의 탄생을 운에 맡길 거냐? 운이 없어도 올라설 수 있는 플랫폼이 나오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구하고 글을 써서 살아갈 기반을 만드는 것, 그 답을 찾는 것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허탈감 몰려왔다" 카트 황제 문호준 '개인전' 은퇴
동기부여 문제로 개인전 은퇴.. 팀전은 아직 미정 <카트라이더> e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 문호준이 개인전 은퇴를 선언했다. 25일 문호준은 개인 방송을 통해 향후 <카트라이더> 개인전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전날 은퇴를 선언했다가 번복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문호준은 은퇴에 대한 고민을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표현해왔다. 지난해 개인 방송에서는 "리그 1등을 차지해도 행복하지 않다"라고 털어놨으며, 올해 1월 방송된 KBS 프로그램 '더 드리머'에서도 은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랬던 그가 공식적으로 개인전 은퇴를 선언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낮은 개인전 비중이다. 문호준은 "개인전에서 우승하더라도 팀전에 비해 가려지는 느낌을 받았으며, 이를 정규리그와 비교해도 서브 느낌이 난다"라고 말했다.  또한, 문호준은 동기부여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선수들이 저를 싫어할 수도 있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제 마음을 말씀드려야할 것 같다"라며 "개인전 연습을 거의 하지 않아도 우승하는 것이 다른 선수들을 방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때문에 허탈감이 밀려왔다"라고 설명했다. 2006년 초등학교 3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카트라이더>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문호준은, 나이답지 않은 과감한 주행과 실력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공식 리그 13회 우승(개인전 10회, 팀전 3회)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특히 올해 'SKT JUMP <카트라이더> 리그 시즌 1' 개인전과 팀전을 모두 우승하는 대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비록 개인전에서는 은퇴했지만, 문호준이 <카트라이더> 리그를 떠난 것은 아니다. 향후 팀전에서 한화생명e스포츠 소속으로 플레이를 이어갈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문호준은 "개인전에서는 볼 수 없겠지만, 다른 곳에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라며 "그동안 사랑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겜킹콩] 지림 주의! 소름 끼치는 모바일 공포 게임 5선
공포. 딱히 선호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묘하게 끌리는 매력을 가지고 있는 장르입니다. 매워서 입안에 불이 나는 매운 떡볶이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죠. 오늘은 영화보다 무서운 모바일 공포 게임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더운 여름철 온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추운 겨울철 더욱 우리의 몸을 꽁꽁 얼려줄 모바일 공포 게임. 잠 못 이루는 밤 홀로 방에 누워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한다면 아마 그날은 꼭두새벽까지 밤을 지새워야 하실지도 모릅니다. 심장이 콩알만 한 분들은 출퇴근길이나 대낮에 하시길 당부드립니다:) * 무료 게임 및 평점 4점 이상 모바일 게임 기준으로 소개했습니다. * 다소 공포스러운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폐.쇄.병.동 게임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습니다. 폐쇄병동은 RPG 요소가 가미된 공포 게임으로 한 소녀가 알 수 없이 폐쇄병동에 갇히게 됩니다. 그렇게 보호관찰안에서 살던 어느 날, 깊은 새벽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두드립니다. 놀란 소녀는 문을 열까? 말까? 망설입니다. 이 게임은 소녀를 직접 조작하면서 각각 상황에 맞게 아이템을 활용, 상황 선택을 통해서 탈출을 목표로 하는 게임입니다. 잘못된 선택, 혹은 잘못된 행동을 하면 핸드폰을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지르시게 될 겁니다. 첫 시작, 소녀는 한 폐쇄병동에 홀로 갇혀 있습니다. 좌측 하단에 조이스틱, 우측에 돋보기 밑 선택키로 플레이가 진행됩니다. 이렇듯 각각 상황에 맞게 선택 사항을 제공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소녀가 죽을 수도 있고, 혹은 각기 다른 엔딩으로 흘러갑니다. 휴대폰은 챙기시는 게 좋겠죠? 자고 있던 소녀는 누군가 강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공포 게임을 즐길 때에는 이어폰을 끼고 하실 때에 그 공포감이 배가 됩니다. 쾅쾅쾅!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문을 열까요?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좋을까요? 과감하게 열어봅니다! 소녀는...죽습니다... 이렇게 매 상황마다 신중하게 판단하고, 아이템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모바일 공포 게임이지만 다소 난이도가 있는 탓에 공포는 뒷전이고 오기가 생겨 플레이하게 되는 스타일의 게임입니다. 어렵더라도 인터넷에 공략이 잘 소개되어 있으니 클리어가 어려우신 분들은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림일기는 실제의 학교를 배경으로 한 로드맵 형식의 모바일 공포 게임입니다. 방향키에 따라 실제의 학교 전경이 컷컷 흘러가면서 현지의 죽음의 원인을 친구 희선이가 그림일기를 통해 파헤치는 게임입니다. 게임 중간중간 나타나는 귀신들과 오싹한 음악과 효과음. 그리고 죽은 현지라는 학생의 목소리...순간 귀신을 캡처하고 싶었지만 놀라느라 정신없어 순간포착에는 실패했습니다. 귀신이 나오는 순간 놀라지 않고 캡처하실 수 있는 분이 계시다면 격하게 손뼉 쳐 드리겠습니다. 우측에 희미하게 보이는 죽은 학생이 보이시나요? 좌측에 주인공은 게임 내에서 사망한 현지입니다. 항상 밝고 긍정적이던 현지가 자살을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 희선이가 죽음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현지의 일기장을 찾으러 학교로 옵니다. 방향키에 따라 실제 학교의 사진이 전환되고, 돋보기로 탐색을 할 수 있습니다. 좌측 상단에서는 찾아가야 할 미션 장소가 나옵니다. 3층 1학년 7반 교실로 가야 하는군요. 드디어 현지의 일기장이 있는 사물함을 찾았습니다. 사물함을 찾기 전까지 음산한 사운드와 효과음,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 때문에 심장이 멎을 뻔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먼저 소개 드린 폐쇄병동보다 훨씬 공포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죽은 현지의 목소리나 살아생전 둘이 나누었던 대화가 흘러나올 때면 온몸의 털이 삐죽 섭니다. 드디어 찾은 죽은 현지의 일기장. 희선이와 같은 고등학교가 되어 다행이라는 첫 내용이 나옵니다. 후에는 1학년 교무실로 찾아가 미션을 수행합니다. 좌측에 보이는 배낭이나 일기장 모양으로 아이템 및 현재까지의 스토리를 일목요연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플레이의 재미를 해칠 수 있으니^^ 어떠한 게임인지 충분히 전달이 됐으리라 생각됩니다. 444번의 돌아왔어는 일본 게임을 번역한 게임이라서 그런지 제목의 다소 어색한 감이 있습니다. 사람이 아닌 인형을 소재로 한 게임으로 또 다른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전의 그림일기가 간단한 미션 게임 요소를 가미한 극강의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면 444번의 돌아왔어 : 인형의 귀가는 게임적인 요소를 좀 더 강화한 모바일 공포 게임입니다. 버린 인형이 444번 집으로 돌아와야 엔딩을 볼 수 있는 인내심이 곧 공포가 되는 게임으로 중간중간 다신 돌아온 인형을 보면 소름이 끼치곤 합니다. 얌전히 돌아올 것이지 예측할 수 없는 형태나 장소에서 출몰하여 플레이어를 놀라게 합니다. 또한 공포 분위기를 내를 실로폰 배경음은 더욱 게임이 몰입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텀에 등장하는 광고는 게임 흐름을 깨지는 않지만 공포스러움을 불필요하게 완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수익구조상 어쩔 수 없지만 상당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엄마의 생일선물로 받은 인형을 직접 갖다 버렸지만 버릴 때마다 집으로 돌아옵니다. 각종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발단 스토리 라인이죠. 인형이 방안에 있습니다. 모으기를 통해서 밧줄, 소금, 부적 등을 모으고 인형의 체력을 소모시킨 후 버리면 됩니다. 쓰레기장에 버리고 옵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방문 밖으로 인형의 실루엣이 보입니다. 게임이 진행 중이 아닐 시에는 알림이 뜹니다. 돌아왔어... 이렇게 괴기한 형태로 뚝 떨어지기도 하고, 갑자기 괴기 현상이 일어나 휴대폰이 먹통이 되는 가짜 현상으로 깜짝깜짝 놀래키곤 합니다. 444번의 공포를 느껴야 엔딩을 볼 수 있는 이 게임. 벌써 엔딩이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탈출 게임 : 붉은 여자는 정교한 사운드와 심리적 압박을 이용한 모바일 공포 게임입니다. 문 여는 소리, 나무 바닥 밟는 소리, 서랍 여는 소리 등 사운드 디테일이 살아있으며, 다소 어려운 난이도의 미션으로 몰입감을 극도로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에는 낡은 화장실이었고, 문은 잠겨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남자입니다. 남자를 스토킹하는 여자에 의해 낡은 화장실에 감금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눈을 떠보니 사용 금지된 낡은 화장실입니다. 음산한 사운드와 어두컴컴한 화면. 벌써부터 신경이 곤두섭니다.. 붉은 여자는 첫 장면부터 이어폰을 착용하고 플레이하라는 안내가 나갈 정도로 굉장히 사운드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게임입니다. 화장실 변기 간을 나가니 정면에 공중에 걸린 캐리어가 보이고 각종 암호들이 적혀있습니다. 출입문은 굳게 잠겨있고 손잡이에 키스마크가 찍힌 편지봉투 하나가 있습니다. 붉은여자 게임은 화장실에 찍혀있는 20개의 키스마크를 모두 찾아 탈출하는 게임으로 한정된 공간 내에서 각종 아이템을 응용하고 미션 수행을 펼치며 깨나가는 고도의 공포 게임입니다. 변기통에도 찍혀있는 키스마크. 정말 싸이코패스적인 면모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남자 얼굴 부분 구멍이 뚫린 사진과 괴기한 여자 사진이 붙어 있습니다. 뒤집어보면 또 다른 힌트를 얻을 수 있고 분해하여 난관을 극복해 나갑니다. 붉은여자 게임에서는 초기에 손전등을 구해서 워크맨을 분해하여 건전지를 얻어야 진행이 가능합니다. 플레이 중 휴대폰도 울리게 되는데 사실감 돋는 메시지까지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완벽한 스토커 컨셉! 마지막 엔딩 직전, 죽었는지 살았는지 비닐에 쌓인 여자가 나타납니다. "정말로 봉지를 벗기겠습니까?" 이후의 엔딩은 직접 확인해보시죠:) 난이도가 어렵기 때문에 다소 짜증이 솟구칠 수 있지만 인터넷 공략을 잘 참고하시면 어렵지 않습니다. 살인자 온라인은 멀티플레이라는 특이한 방식을 채택한 모바일 공포 게임입니다. 위의 게임들처럼 극장의 몰입도나 소스라치게 놀라는 점은 적지만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생존자 혹은 살인자가 되어 서로를 죽이고, 피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전개됩니다. 공포 게임이 전체적으로 오싹한 분위기가 나 깜짝깜짝 놀래키는 것이 특징이었다면 살인자 온라인은 쫓기고 쫓는 묘미가 있습니다. 생존자 모드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방향키, 웅크리기, 점프하기, 투명 스킬, 살인자 위치 보기 등을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사실 웅크리기, 점프하기가 왜 있는지 의아할 정도로 활용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투명 스킬은 꽤나 유용하게 사용 가능합니다. 맵이 넓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살인자 위치 보기도 몸을 피하는데 유용하죠. 보물상자가 나타났"읍"니다. 읍...언제적 읍인가요? 싶지만 일단 살인자를 피해서 보물상자를 찾아야 합니다.90초나 되는 투명 모드는 살인자와 맞다 들였을 때 상당히 유용합니다. 공격 스킬이 없는 대신 은신이 가능하죠! 눈동자 키로 살인자 플레이어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존자를 잡으려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걸리는 순간 오른손에 든 촛대로 두드려 맞을 겁니다. 이 플레이어는 딴짓을 하는지 멍을 때리고 있군요. 이렇게 살인자와 맞닥뜨려도 투명 은신을 통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살인자가 불쌍해지는 순간이네요. 하지만 잘못 걸렸다가는 이 꼴이 나겠죠? 실상 위의 기타 다른 모바일 공포 게임과는 전혀 다른 성향으로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습니다. 공포심을 느끼기보다는 색다른 게임을 원하시는 분들이게만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오늘은 모바일로 즐길 수 있는 공포 게임 5개를 준비해봤습니다. 모두 공포스럽지만 각각의 성향이 뚜렷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맞는 공포 게임을 찾아서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불면증으로 고생하신다고요? 공포 게임하시고 그날 밤 꼴딱 지새우신다면 다음날 저녁 먹기도 전에 잠이 찾아올 겁니다. 추운 겨울 항상 건강 유의하세요. 남은 하루도 행복하세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1.
이 칼럼은 일단 삼국지를 읽고 보면 더 재미있을 듯 싶다만, 분명 모두 삼국지를 읽진 않았을 수도 있고 읽긴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또 디테일하게 정독한 분도 계실거고, 주욱~ 요점만 훑듯 본 분도 계실거다.. 혹시라도 삼국지를 이제 처음 읽을 예정이거나, 또는 다시 읽어 볼 예정인 분들을 위한 팁을 준비해봤다ㅎ 뭘 하건 먼저 어느 정도 "룰"을 알고 하면 더 재미있고 뭘 보건 먼저 어느 정도 "지식" 갖추고 보면 더 즐겁다 삼국지도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정보를 미리 알면 약간은 더 재미를 느끼고 조금은 더 몰입할 수 있을거 같다. 1. 자. 삼국지를 보면 "자(字)"라는 게 있고, 거의 대부분 이름에 자가 붙는다. (Ex. 조조 "맹덕", 여포 "봉선") 이 자는 현재는 거의 사라진 개념이라 좀 생소한데, 아마 대부분 책 읽으며 별 의문들 안갖고 그러려니~ 하고들 넘겼을듯 싶다.ㅎ 지금보다 훨씬 더 예와 격을 따지던 오래전 옛날의 중국에서는 일정 나이 넘은 성인남성의 이름을 동년배이하 연하자나 아랫 사람이 함부로 부르는건 큰 결례였다. 이름이 매우 중요하다 여겨 아껴아 한다는 개념이 있었기에 되도록 상대의 이름을 부르길 자중했고 그래도 부를 려면 뭔가 명칭이 있어야 했는데 그게 바로 '자'였다. 정말 절친하지 않으면 동년배끼리도 본명은 거의 부르지 않았고, 반대로 손윗사람에게는 자신을 소개할 때 자보다는 이름으로 소개하는게 예였다. 자는 성인이 되며 스스로 짓기도 하지만 대개는 집안 어른, 스승, 기타 마을 어른 등의 손윗사람들이 붙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근대까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쓰였던 "호(號)"와 엇비슷한 개념인데, 호는 심지어 편히 부르고자 쓰는 저 자보다 살~짝 더 편한 명칭이고 주로 남이 지어준 자보다 주로 본인이 편히 짓는 경우가 많았다는게 차이라면 차이? 2. 당시 상황. 유구한 중국역사는 스킵하고 그냥 바로 딱 삼국지의 배경이 시작되는 후한말만 보면 한마디로 "개판"... 요즘 시스템에 비하면 지방자치or연방국가와 엇비슷하게 천자(중국의 황제의 명칭)가 있는 당시 수도인 낙양(지금의 허난성 뤄양) 일대를 제외하면 실상 각 영지를 맡아 다스리는 군벌들이 자신의 관할지의 왕이나 진배없었고... 지역 별로 화폐단위, 법제도, 각종 행정 시스템들도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다.. 명목상으로는 중앙집권형을 추구했으나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황실은 그 기능을 많이 상실했고, 각 지방 군벌들도 그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영지를 주무르다보니 백성들은 높은 세금에 시달렸으며 설상가상 거듭된 자연재해, 엉망인 치안으로 인한 창궐하는 도적떼들로 인구도 많이 줄어 있고 경제도 몹시 좋지 않았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영양상태 저하 및 각종 전염병의 영향으로 평균 수명도 40대 초반이 될까 말까였는데, 이는 그때 사람들이 마흔 살까지 살다 다 죽는다는건 아니고, 워낙 영아 사망률이 높다보니 그런 결과가 나온 것. Ex.) 80세 사망 A + 2세 사망 B = 평균수명 41세 (80+2)÷2=41 하여간 저렇게 살기 빡치다보니 자연스레 전국가적 대규모 소요사태인 "황건적의 난"이 발발하는 계기가 된다... 3. 위, 촉, 오의 국력 비교. 책을 보며 첨부된 지도, 또는 특히 게임하며 보는 지도에 의하면 위나 오는 거의 면적도 비슷해 보이고 촉도 생각처럼 작지 않다.(위 첫번째 지도 참조) 그러나 그건 당시의 인프라를 전혀 고려치 않은 착시나 진배없고 실제로 그 당시 세 나라의 국력을 따질 때 유효하던 영토는....(두번째 지도 참조) 저렇게 특히 촉과 오가 팍 쪼그라드는 이유는 역시 당시의 "인프라 수준" 탓. 일단 중국은 몹시 넓다. 참고로 위, 촉, 오 세 나라가 숱하게 차지하려 애쓴 대륙의 중심부의 전략요충지인 형주만 해도 한반도 전체 면적보다 넓었다. 그 넓은 면적이 첫 째, 또 당시는 개간기술도, 도로나 교통도 지금과 비교불허인 시절에 통신이란 개념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후한이 그러하듯 저 세 나라도 자신들이 명목상 차지한 영역의 구석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오의 남쪽, 촉의 국토 대부분은 거칠고 험한 산악지대였다. 또 지금도 중국은 수 많은 소수민족들이 어울려 살며 아예 한족들과 많은 부분이 달라 자치권을 인정받고 자기네 마음대로 사는 자치구들도 있다. 하물며 저 당시는 말할 것도 없어, 한족이 아닌 소수민족(이민족)들은 한족의 통제를 거부했다. 아무튼 저러다 보니 세 나라의 국력차는 극명했다. 당시의 인구는(정확하진 않지만) 위가 대략 450만, 오가 220만, 촉은 90만 가량... 참고로 이 인구는 당시 삼국의 자체적 인구 리서치에 의한 수치이며 역사가들은 대략 저 시기 중국내의 총 인구를 약 1,600여 만 ~ 2,000만 명 가량이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알기 쉽게 설명해보면 세 나라의 인구, 경제, 군사 등 내셔널파워를 요즘 국가에 비해 본다면 위 = 미국 / 오 = 일본 / 촉 = 한국 정도로 보면 비슷! 4. 단위. 삼국지를 읽다 보면 등장인물들에 대한 비쥬얼을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Ex.) 여덟 자 키에 범의 머리요, 원숭이같은 팔에 곰같은 상체를 한 장수가 나타났다...(괴물??..) 다른 건 주관적인 묘사니 그렇다쳐도 특히 저, 여덟 "자"의 키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건지 다들 한 번쯤은 궁금해 했을 거다. 일단 지금 기준, "한 자 = 30cm" 인데, 이걸 저기에 도입해 버리면 이건 무슨 거의 골리앗을 넘어 진격의 거인이 되어 버린다. 당시 중국 후한의 도량형에서의 한 자(척)는 23.7cm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러니 삼국지연의 내에서 여덟 자로 표현되는 장비, 제갈량, 여포, 허저 등의 키는 189cm 가량, 아홉 자로 표현되는 관우, 화웅, 왕쌍, 정욱 등은 213cm 정도가 된다.(하킴 올라주원ㅋㅋ) 당시 중국 성인남성의 평균 키가 140후반~150초반 이였던 점을 보면 엄청난 장신들인데, 이는 그들이 정말 크기도 컸지만 영양결핍 등으로 당시 사람들이 유난히 작았던 탓도 없지 않으며... 정말 키가 크다며 구체적인 내용들이 사료에 남은 이들은 제갈량, 관우, 정욱 등등이 있으며 나머지는 아마도 신체검사 통해 정확히 측정된 수치라기보다 어쨌던 당시로서는 굉장히 키가 크다보니 어림잡아 표현했던 걸로 추정된다. 요즘은 잘 안쓰는 "8척 장신"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정확히 키가 8척이라기 보다 그냥 "키가 크다" 라는 감탄조의 대명사같은 격이라 아마 저들도 그런 표현이 붙었다 보여진다. '관우가 여든 두근의 청룡도를 휘둘렀다....'에서도 저 당시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인 600g보다 적어서 대략 200g이 좀 안되었기에 실제 청룡언월도는 대충 18kg가량으로 보지만 일단 청룡언월도는 당시 실존한 무기가 아닌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 다루겠음. 일단, 저런 단위 부분에서의 혼선은 어찌보면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저런 단위 관련 묘사들은 정사보다 주로 연의에서 많이 발견되고, 연의의 작가인 나관중은 삼국시대의 거의 1,100여 년 이후 사람이다보니 원이나 명 기준 도량형으로 쓰거나 하기도 했고 또 당시는 지금처럼 깐깐하게 굴지 않으니 고증이 좀 틀린들 딴지거는 사람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인물들 이야기를 하는 틈틈이 이런 사건 or 이해도 높이는데 도움될 듯한 스토리들도 다루겠으니 많은 관심과 피드백 부탁 드립니다ㅎ 다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제갈량 공명 (諸葛亮 孔明) AD.181~234
"삼국지"가 큰 영향력 갖는 동아시아 3개국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꼽으라면 중국은 관우, 일본은 조운, 한국은 바로 "제갈량"이다. (예로부터 문을 숭상한 전통기조 탓인지...) 이 칼럼의 첫 포문도 그래서 제갈량으로 준비했다.. 여러분이 읽었던 삼국지에는 잘 나오지 않은 소제들 위주로 갈테니 다들 Focus! 고향은 서주 낭야현.(지금의 장쑤성 쉬저우) 조조가 부친 잃은 빡침으로 서주 제노사이드 자행 시 부친 제갈규가 형주로 거처 옮길 때 함께 이주. 부친 사후 숙부 제갈현 슬하에서 자란다. 3남2녀 중 넷째였고 당시 기준으로 신장이 무려 189cm가량으로 전란과 기근 탓에 성인남성의 평균신장이 140cm중후반이던 3세기 중국 기준 가히 거인이나 진배없던 장신에 용모도 잘 생겼단 기록이 남아있고 마른 체형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선비들의 주류 학업스타일은 토시 하나까지 달달달 외우던 방식이였는데, 제갈량은 그런 암기 위주가 아닌 요약정리 방식으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후한 마지막 천자인 헌제와 동갑인데다 사망한 해도 같았다. 그 유명한 유비와의 "삼고초려"는 나관중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으나, 실제로 사료에도 유비가 세 번 찾아간 끝에 제갈량을 만났다고 남아있다. 연의에서처럼 제갈량이 유비를 피한건 아니였고 정말 서로 타이밍이 안맞았으며, 휴대폰도 없던 시절 이다보니 당시로서는 어찌보면 다짜고짜 찾아가서 마침 딱 만나는것도 쉽진 않았기에 그랬던듯 싶다. 그는 딱히 유비를 따를 마음은 없었으나, 임관하여 모실 마땅한 군주가 없던데다 당시 절친이던 서서의 권유도 있고 해서 유비를 모신다. 대기업 서류전형에서 컷트되던 유망주가 입사제의 하는 중소기업 들어간 꼴. 연의내용과 달리 모친이 인질 잡혀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전까지 한 동안 제갈량과 서서는 유비 휘하에 있었고 방통과도 인척 관계였는데, 제갈량의 누나 중 한 명이 방통의 숙부의 아내.. 즉 숙모였다. 유비에게 임관 후부터 관우, 장비 형제의 그에 대한 텃새는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니였다. 장비는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재사를 공경하는 편이라 제갈량이 일정 수준 능력을 보인 후로는 그닥 태클이 없었으나, 유비 다음은 자신이라 자부하던 관우의 견제와 경계는 제갈량으로서도 관우 사망시까지 참 벅찬 일이였다. 상명하복이 투철한 전형적인 군인이라 제갈량의 지시도 잘 이행하여 케미가 잘 맞은 덕에 제갈량이 가장 의지하던 무관은 "조운"이였다. "마량"과도 코드가 맞았는지, 사석에서는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다고 한다. 촉빠에 제갈량빠던 나관중에 의해 가장 주인공버프 크게 받은 인물 중 하나인 제갈량이였기에 소설 속 모습은 거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가깝게 묘사되나 그도 사람인지라 완벽의 면모만 있던건 아니고...ㅋ 분명 단점도 있었고 매사에 뛰어난건 아니였다. 우리에게 그는 탁월한 전략가의 이미지가 강한데, 실제로 전장에서의 전략과 전술, 병법에 능했던건 맞으나 당시 그 분야의 최강자는 사실 아니였다. 당대의 평가 등과 커리어들을 볼 때, 그는 전략가보다는 오히려 정치가로서의 실적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업적도 그쪽이 훨씬 많았다. 전체적 판세를 파악하는 전략적 면모는 오히려 주유, 조조가 앞섰고.. 전투에서의 전술적 재량은 방통, 법정에 뒤졌으며.. 후방보급에서는 순욱도 결코 제갈량 못지 않았고 심리전에 있어서는 가후나 정욱이 더 나았고 방어전술은 사마의가 우위였다는 평가가 지배적. 특히 중국에서의 책략,전략가로서의 자질을 따질 때 큰 척도로 삼는 것은 기책.. 쉽게 말해 창의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임기응변 더 쉽게 풀어 전술적 "에드립"여부였는데, 제갈량은 앞서 말한 책사들에 비해 이 부분이 특히 좀 빠지는 편이였다. (중국 역사상 이 분야의 갑은 바로 "한신") 역사기록에서나, 소설에서나 제갈량 전술의 주요패턴은 지형 및 기후 등의 사전정보 철저 숙지를 베이스로 한 정석 응용이였던 범생 스타일. 그의 임기응변 부족론에는 반론도 있었는데, 사실 유비를 처음 섬기는 순간부터 오장원에서 숨 거둘 때까지 그는 남만정벌같은 일부를 제하면 대부분 조조~위를 상대하며 늘 열악한 자원과 인력으로 압도적인 적을 맞이했고.... 그가 이끄는 것은 유비세력 & 촉의 거의 전부였기에,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실패시의 리스크가 큰 기책을 선뜻 쓰기는 무리였다는 반론이 그것. 정치적인 치적은 소설에는 잘 안나오는데, 그는 촉의 경제발전 및 과학기술 개발과 심지어 사법제도 개편 및 군의 현대화 등 여러 분야의 내정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이뤄냈다. 당시 서천지방의 대표적 특산물은 "비단"이였는데 이 비단의 생산량과 퀄리티를 높이고자 다양한 개량을 시도했고, 이 비단사업의 대성공 덕에 촉한의 비단재벌들은 중원의 어지간한 부호들 싸닥션을 날릴 수준의 부를 축적했다고 한다. 농지개간과 경작법도 많이 손봤고 천연가스 시추에 성공했으며, 내륙이라 소금이 금값이던 그때에 암염이라는 바위에서 소금을 추출하는 방법도 개발, 놀라운 건 당시로는 의심만 받아도 목이 날아가고 삼족 멸하는건 우습던 위나 오와 달리 전문 수사관 시스템을 도입하여 증거와 증인심문 등 통한 체계적 수사시스템을 구축했던 것도 제갈량이였다. "인간" 제갈량은 친절하고 예의바른 성격이였고, 상당히 도덕적이였으며 청렴했음은 물론, 매사에 꼼꼼을 넘어 깐깐한 완벽주의자로 자신이 직접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심 못 하는 스타일로서... 지금으로치면 국무총리, 국방부장관, 비서실장, 외교부장관, 행정부장관, 산업경제부장관, 감사원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대법원장, 검찰총장을 합친 것보다 많고 다양한 업무들을 일일히 서류 뒤적이며 직접 처리했다. 이런 사람이 부하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직위가 황제 바로 아래인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승상이였기에 이런 사람이 상관이면 아랫것들 여럿 죽어나가는거 일도 아니였다... 제갈량 본인도 끝내 과로사했지만, 위, 촉, 오 통틀어 촉의 고위관료 과로사 비율이 가장 높은건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참고로 그는 유비 사후 그냥 승상이 아닌, 황태자와 동급에 왕보다 높은 "상국"의 지위였으며, 그의 사후 승상직 자체가 영구 결석 처리되어... 촉한 역사상 유일한 승상이였다. 어벙띠리하기 그지 없던 유선도, 부친 유비의 유조도 있었고 제갈량의 영향력과 충심이 워낙에 굉장했던터라 제갈량을 부친처럼 대했고 꼬박꼬박 경어를 썼으며 제갈량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 및 토를 달지 않았다고 한다. 거의 입헌군주제 수준이였으며, 오너는 따로 있으나 전반적 경영은 제갈량이 일임하는 전문 경연인체제의 C.E.O.나 다름 없었다. 지금까지만 보면 퍼펙트같은 제갈량의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그닥이였다는거다... 촉에서 사람 잘 보는 분야의 최고수는 "유비"였는데, 이에 반해 제갈량은 그 뛰어난 여러 분야에도 불구.. 사람 보는 안목은 별로였다. 그가 발탁한 이들의 대표적인 케이스를 보자면.. 장완 - 결과적으로 훌륭했으나 대체로 직무태만인 스타일로서 제갈량이 뒤봐주지 않았다면 유비에게 밉보인 그로서는 진즉 Fired... 마속 - "읍참마속"이란 고사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실패작으로서 전투경험 전무에 글로 전투 배우고 나대다 끝내.....-_-;; 이엄 - 제갈량이 평하길, "육손에 견줄만 하다!"라고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육손 근처도 못 감. 양의 - 업무능력에 대해 제갈량이 치켜세웠으나 인성 쓰레기에, 제갈량 사후 위연과의 불화로 위연의 사망을 초래. 위연 - 제갈량이 발탁하진 않았으나, 유비는 잘만 활용한 최고의 맹장이건만 제갈량은 내내 겐세이만 줬고 결국 위연과 양의의 불화의 단초를 제공하는 계기를 줌. 강유 - 능력과 인성은 좋았으나, 근자감에 휩싸여 끝없는 북벌시도로 촉한을 멸망으로 가는 특급열차에 태운 일등공신. 마량 & 비위 - 능력 자체는 대단들 했으나 단명. 오에서 마지막에 대장군 직위까지 오른 친형, "제갈근"과는 서로 모시는 주인이 달랐고 둘 다 각자의 소속집단의 중역이였기에 볼 일이 거의 없어 주로 편지를 주고 받았고 막상 만나도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만 했다고 한다. 마흔 후반대에 들어 유일무이한 자식(제갈첨)을 하나 얻었고 꽤나 예뻐했는지, 제갈근에게 어린 첨의 자랑으로 가득 채운 편지를 보낸 기록이 있다. 위, 촉, 오는 모두 이민족(그들 기준 오랑캐) 문제가 난제였는데 무력으로 굴복 시키거나 축출 일변도였던 위나 오에 비해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비록 무력으로 제압은 했으나 이후 먼저 교섭 시도 후, 이민족들로 하여금 지금으로보면 "자치구"개념의 자율통치권을 인정하여 삼국 중 가장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대이민족 대응법을 보여줬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고, 맵고 짠 음식도 좋아하지 않았으며 편식이 좀 있었던거 같다. 그리고 식사도 정해진 때에, 정해진 장소에서 먹기 보다 대강대강 챙겨서 이런저런 일들을 보며 아무곳에서나 먹었다고 한다.(가정교육이...ㅋ) 이건 정확한 건 아니지만, 무릎이나 고관절 쪽이 좋지 않아서 장년 이후 휠체어 비슷한 작은 의자형 수레를 타고 다녔다는 설이 있다. 적벽대전 앞두고 오에 가서 그곳의 재사들의 다구리를 말발로 역관광 시킨 이야기는 허구다. 짚단을 실은 배를 타고 노숙과 함께 조조군 진영으로 가서 화살 10만 개를 슈킹해온 일화도 허구다. 과로사는 분명해 보이지만, 정확한 사인으로는 "폐결핵"설과 "위암"설이 팽팽하다. 워낙 불규칙한 식습관과 수면부족 및 극도의 스트레스, 과로 등 암 발병에는 최적이긴 했다. 첫 칼럼인데, 두서도 없거니와 일단 너무 양 많고 내가 봐도 지루하다.... 그래도 뭐 읽을 사람들은 읽겠지 T-T 피드백 괜찮으면 앞으로도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에 대해 위와 같은 방식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스토리 위주로 갈 예정. 삼국지 관련 궁금증에 대한 질문이나 다뤄줬으면 하는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신청도 받음.
장합 준애 (張郃 儁乂) A.D.?~231
누차 말했듯... 픽션(허구)이 가미된 "소설"인 삼국지연의는 여러 인물들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반면 그네들의 영웅화 ~ 신격화를 위해 숱한 이들을 엿 먹이기도 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오늘도 역사범죄자 나관중에 의해 너프 당한 또 한 명의 피해자, "장합"에 대해 다뤄 보기로..! 장합은 삼국지정사, 위의 역사록인 위지, 후한의 역사록인 후한서, 본인의 열전인 위서의 "장악우장서전(張樂于張徐傳)"에도 생년기록이 없어서 정확한 사망 당시의 연령을 알 수는 없지만 원소에게서 조조 휘하로 들어갈 당시 대략... 40대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덧붙이자면 저 '장악우장서전'은 조조가 자신이 공을 이루는데 그 기여가 으뜸이라며 추켜세운 다섯 장수인,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을 묶어 편찬된 열전이다. 저 다섯을 일컬어 당시에 "오자양장(五子良将)"이라 불렀고, 촉한의 "오호대장군(五虎大將軍)"과 살짝 비슷한 뉘앙스인데, 오호대장군이란 별칭은 그 때는 없었고 후대 사람들이 붙인데 비해 저 오자양장은 당시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말해, 오호대장군같은 저 시절의 '드림팀' 또는 '어벤져스' 느낌의 패키징은 위의 다섯 장수가 원조다. 고향은 당시로는 기주의 하간군 막현(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중남부 인근)이라는 그때 치고도 꽤나 궁한 시골 작은 마을 출신이였다. 참고로 진짜 중국이 겁나 드넓긴 드넓은게... 삼국지 게임 내의 맵에서 기주는 작은 주로 나오나, 조운의 고향인 기주 상산군과 장합의 고향인 기주 하간군의 거리는 무려 166km고, 이 거리는 서울에서 대전까지의 거리보다 멀다..ㅎㄷㄷ 만화, 게임, 책, 기타 여러 미디어물들을 봐도 다른 네임드급 인물들과는 달리, 외형 이미지가 일관적이지 못한 편인데... 이는 사료 어디에도 장합의 외모 묘사가 일언반구도 없고 그를 그린 그림조차 몇 없는데다, 그것들 마저 묘사가 모두 중구난방이다보니 도무지 이미지 통일이 안된 것. 다만, 장합의 리즈시절이 펼쳐지는 것이 조조에게 투항 이후인데 그 당시의 추정 연령이 위의 언급처럼 40대로 보고, 조조세력 합류 후부터도 거의 30년 가까운 세월을 활약하다 전장에서 전사한만큼, 사실상 각종 미디어에서 묘사되는 '젊은'느낌의 장수로 표현하는 것은 어색한 감이 없지 않다. 장합은 조조 휘하 장수들 중 가장 많은 전장에 참전했고, 위의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전공이 많은 장수였으며, 주/부장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여러 숱한 전투에서 닳고 닳은 백전노장이였다. 그러다보니 큰 전장의 주요한 임무는 물론, 작은 전장의 자잘한 임무까지 가림없이 두루 맡았고 야구로 치면 4~5선발과 롱릴리프, 경우에 따라 급하면 불펜으로까지 던지면서 하루 걸러 등판하며 혹사 당하는 노예투수 비슷한 포지션의 장수였다. 그 깐깐한 조조가, 또 당시 휘하에 숱한 명장, 용장, 맹장들이 수두룩 빽빽 채이고 밟히고 널렸던 위에서 저토록이나 빈번히 굴렸다는건 그만큼 능력 있기에 믿고 쓸만큼 훌륭한 장수였다는 증거다. 심지어 백발노인 되어 집에서 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탑골공원가서 장기두며 야쿠르트나 얻어 마실 나이에 전장에서 한창 싸우다 전사하니...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 위의 군밀레에 갈려나간 군돌이였다. 삼국지연의나, 연의를 바탕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각종 미디어물들을 보면 장합은 그냥 본인의 무예와 전장에서 구르며 익힌 짬밥으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장수로 그려지나... 위에서 언급하듯, 저렇게 숱한 전장을 누볐고 또 깐깐깐돌 조조에게 신임받으며 주장으로도 쓰인만큼 사실 전략적 대국안도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갖춘" 장수였다. 본래 기주의 군소 군주인 한복 휘하에 있다가 한복이 패망하자 원소의 세력에 속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전장의 시국을 살핀 후 원소나 원소의 책사들에게 여러 전략들을 입안 했으나 거의 다 씹혔다.... 원소는 사람 자체가 선입견, 편견 이런 게 가득한 고지식하고 융통성 없는데다 또 고집은 있는 전형적 꼰대인 우리 회사 김대현 이사님같은 스타일이라 그저 야전에서 뒹구는 장수인 장합의 계책을 귀 담아 들어주질 않았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 정상에 올라 야호를 외치는 전형적 예였던 당시 원소의 책사들 역시, 지들끼리도 서로 내가 옳네, 내가 맞네 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장합까지 거기 껴서 자기 의견을 제출하니 고스란히 즈려밟아 무시했다. 이렇듯, 자기 아이디어와 의견이 매번 밟히던 끝에, 원소 VS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도 자기가 낸 계책이 원소의 책사 중 한 명인 곽도에게 씹혔고... 그 전투에서 결국 패하며 장합이 옳았음이 드러나자 곽도가 원소에게 장합을 모함하였으며, 이에 겁 먹은 장합은 결국 원소군 내에서 베프면서 역시 원소의 아쉬운 대우에 불만가득하던 '고람'과 함께 원소군의 망루에 불을 지르고 투항한다. 역사기록에는 이 "방화 후 이적"이 관도대전에서 원소의 패배 전인지, 후인지가 안나와 있으나 어쨌건 장합과 고람이 불 싸지른 망루는 당시로는 적군의 동태를 살피는 '레이더'역할을 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였기에 이를 없앤 것 자체는 어쨌건 원소군에게 치명적이긴 했다. 삼국 정립 이후에는 주로 대촉전선에 투입되었고 이유는 조조가 양쯔강을 끼고 있던데다 북진의사가 거의 없는 손권에 비해, 명목상 "한실부흥" 내세워 줄기차게 자신들에 덤벼 오는 유비세력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 그때 손권과 대립하는 동부전선은 장료와 악진으로 묶어 두고 가용 가능한 네임드 장수들은 대부분 대촉전선에 투입되던 시기였다. 장합은 유비도, 유비 사후의 제갈량도 상당히 껄끄러워 하던 장수였다. 대촉전선의 총사령관 역할을 하던 하후연과 조홍보다 장합의 위치는 아래였으나 이는 위에서의 커리어, 또 하후, 조 두 장수는 조조와의 친인척 관계인지라 그럴 뿐... 장수로서의 자질은 저 둘을 뛰어넘던 장합이였으며 그래서인지 조홍과 하후연은 장합을 꽤나 견제했다. 아무리 자신들의 커리어가 앞서고 조조와 혈족이긴 하다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던 조조는 언제던 장합이 더 유능하다 드러나면 속절없이 자기들보다 장합이 더 상전될 가능성이 농후했기 때문... 제갈량의 1차 북벌 당시, 이를 막아낸 위방어군의 총사령관은 연의와 달리 사마의가 아닌 장합이였고, 4차 북벌 때, 목문도에서 유인책 쓰며 거짓 후퇴하는 촉군을 사마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뒤쫓자며 바득바득 우기고 쫓아가다 기어이 전사하는 연의와 역시 또 달리... 당시 제갈량의 흉계가 의심된다며 추격을 만류하던건 오히려 장합이요, 이에 대해 군령까지 내세워 제갈량을 추격할 것을 밀어붙여 장합을 사지로 내몬게 사마의였다. 이에 대해서도 또 제기되는 설이.... 당시 장합과 사마의는 위의 대촉전선에서 은연중에 경쟁관계였었다. 쟁쟁한 커리어의 백전노장 장합, 그리고 위 군부 신진세력의 주축이던 사마의는 서로 견제하던 관계였으며 당시 직급상 사마의가 높았지만 그렇다해도 사마의에게 장합은 결코 직위로 쉽게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고.... 그런 장합을 이이제이 방식으로 간접 제거 하고자 제갈량의 계책을 눈치채고도 등 떠밀었다는 설이다. 연의에서의 묘사처럼 빗발치는 화살에 벌집이 되어 바로 죽기보다 화살을 여기저기 맞고 후퇴하던 중 과다출혈에 의한 쇼크사였다. 기록에는 허벅지에 맞은 화살로 인한 과다출혈이 결정적 사인이라 나와 있다. 참고로 허벅지는 대동맥을 비롯 여러 혈관 뭉치들이 지나는 곳이라 흉기에 잘못 찔리면 지혈도 힘들만큼 과다출혈이 발생하여, 옛날 야쿠자나 조폭들도 서로 칼부림 당시 오히려 방어하기 좋아 찌르기 여의치 않은 복부나 흉부보다 허벅지를 많이 노렸다고 한다. 동물을 좋아했는지, 직접 먹이를 주며 키우던 개가 있었다는 설이 있고 자신이 타던 말이 힘들까봐 행군하는 경우에는 중간중간 말에서 내려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사료기록은 아니다.) 원소 휘하에서는 고람과만 거의 이야기를 나눴으나 조조에게 투항 후 각기 다른 부대에 배치되며 연이 끊어진 듯... 여러 장수들과 열전이 묶음으로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신상과 일상에 대한 기록이 그닥 없다. 쉽게 말해 위의 장수로서의 공적인 기록은 좀 있지만 인간 장합으로서의 사적인 기록이 많지 않다.. 장합이 커리어나 능력에 비해 그닥 인기 많은 인물은 아니다보니 왠지 이번편은 반응이 별로일거 같은 좀 불길한 예감이... T-T 그래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 드린다는 ;;;
[코로나19] 이탈리아 정부, 자국 게임사에 54억 원 지원한다
이탈리아 경제개발부가 직접 업체 선정하고 배분 나설 예정 이탈리아 정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자국 게임사를 위해 '퍼스트 플레이어블 펀드(First Playable Fund)'를 발표했다. 이는 지난 20일 이탈리아 정부가 산업 전반을 지원하기 위해 발표한 시행령의 일환이다. ▲ 이탈리아 경제개발부가 '퍼스트 플레이어블 펀드'를 설립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출처: IIDEA) 20일 유럽 게임 개발자 협회(European Game Developer Federation)는 코로나19가 이탈리아를 포함한 남유럽 게임사를 폐쇄 위험에 몰아넣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이탈리안 인터랙티브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협회(이하 IIDEA)’는 남유럽 국가가 코로나19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뿐만 아니라, 자국 게임사에 대한 이탈리아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IIDEA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퍼스트 플레이어블 펀드를 제안했고,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펀드 규모는 400만 유로(한화 약 54억 원)이며, 신작을 제작 중인 개발사 지원에 중점적으로 사용된다. 이탈리아 경제개발부는 규모가 적은 회사가 번거로운 절차 없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직접 업체를 선정하고 자금 배분에 나설 예정이다. IIDEA 부회장 마우로 파넬리(Mauro Fanelli)는 "그동안 게임 산업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라며 빠른 승인을 통해 이탈리아와 다른 유럽국가의 격차를 줄여준 정부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다. 26일(오늘) 기준, 이탈리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약 23만 명이며 사망자는 3만 명을 넘는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 수다. 때문에 국가 경제 역시 휘청이고 있다. 2일 이탈리아 경제인협회(Confindustria)는, 2020년 이탈리아 GDP가 전년도보다 -6.3%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때문에 게임 산업은 이러한 경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매개체다. 통계 전문 기업 뉴주(Newzoo)에 따르면 지난해 이탈리아 비디오 게임 산업은 약 25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는 전 세계 10위에 해당하는 높은 수치다.
국가별 게임 발매 금지 사유 TOP 5
#5 일본 - 폴 아웃 3 : 핵무기(팻맨) 등장 사이드 퀘스트 1945년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탄두의 이름은 팩맨이다. 물론 폴 아웃의 소형 핵탄두 무기의 이름 역시 여기서 따왔다. 당연히 일본은 노발대발 #4 싱가포르 - 매스 이펙트 : NPC, 플레이어 성별 무관 연애 가능 ( 동성애 ) 싱가포르는 꽤 평화로운 선진국으로 알고들 있지만 이들은 동성애를 수간, 시간, 소아성애 등과 동일 선상에서 볼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고 처벌 역시 가혹하다 #3 중국 - FM2005 : 티벳 & 대만 당연히 '하나의 중국'을 표방하는 중국 정부에게는 심기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이 이후 FM 시리즈 중국판에서 대만은 '차이니즈 타이페이', 티벳은 국가표기가 사라졌다. #2 사우디 - 포켓몬 : 이슬람은 진화론을 인정하지 않는다 포켓몬의 진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거리가 멀지만 어찌됐든 그 단어가 입에 오르내리는게 싫었나보다. 알라가 창조한 피조물은 진화를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나... #1 우즈베키스탄 - 심즈 : 서구의 화려한 삶을 볼 수 있음 우즈벡은 소련 해체 이후 꽤 오랜 시기동안 카리모프의 독재 하에서 힘든 시기를 겪었다. 2016년 카리모프 사망 후 민주주의 체제를 도입하려 애를 쓰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규제를 가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기상천외한 이유긴 하다.
김동현 하는 김동현, 심즈 집 짓는 건축가! 화제의 예능 EA코리아 '고증학개론'
"게임이 제공하는 체험이 얼마나 전문적인가?" 기자에게는 밀덕 친구가 있습니다. 한때 코스프레까지 하고면서 놀았다는데, 몇 사람 모르는 비밀입니다. 그는 군대에서 국방일보를 정독했고 요즘도 각종 자료를 찾아보는 괴짜입니다. 매년 박람회도 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친구지만 포화 속으로 직접 돌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M1 개런드를 들고 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거나 나폴레옹 시대의 중기병대를 이끌 수 없겠죠. 그래서 그 친구는 게임을 합니다. 회사에서 얌전히 퇴근한 그는 컴퓨터 앞에 앉으면  <월드 오브 탱크>의 전차장으로, <토탈 워>의 지휘관으로, <배틀필드>의 분대장으로 변신합니다.  이중 생활을 즐기는 그에게 저는 좋은 샌드백입니다. 공교롭게도 게임지 기자이기 때문에 "이번에 CA(크리에이티브 어셈블리)가 <토탈 워: 삼국>을 만들 때 어떻게 군사 복식을 고증한 건지 알아달라" 같은 질문을 받기 일쑤입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친구에게 보병의 도검 패용 방식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그걸 내가 어떻게?"라고 따지면 대뜸 "넌 그런 것도 모르냐?" 하는데 아주 죽겠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 있으면 댓글 부탁합니다...) # "얘네 일했네"... 잘 만든 유튜브 게임 콘텐츠 '고증학개론' EA 코리아가 제작한 유튜브 콘텐츠 '고증학개론'은 제 친구 같은 깐깐한 게이머들을 위한 선물입니다. 실제 건축가가 <심즈 4>의 건물을 뜯어보는가 하면, 카레이서가 <니드포스피드> 트랙을 질주하면서 게임이 얼마나 실제의 요소를 잘 구현했는가 검증하는 프로그램이거든요. 기자처럼 '뭐, 알아서 잘 했겠지' 하는 무던한 성향의 게이머들도 영상을 보면서 견문을 넓힐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영상 자체가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게 잘 만든 웹 예능이었어요. 영상을 보니 "얘네 일했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실제로 유튜브에 달린 시청자 댓글도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① 김동현이 UFC 게임에서 김동현 캐릭터를 골랐을 때 첫 번째는 UFC 선수 출신의 개그맨 김동현이 직접 <EA SPORTS UFC 3>에서 자기 캐릭터를 플레이하는 영상입니다. 스포츠 선수가 자기 자신을 플레이하면서 이런저런 모습을 평가하는 건 예전부터 꽤 유행했는데요. 프로 축구 선수들이 <피파>를 플레이하는 모습은 자주 봤지만, 김동현이 김동현을 조종하는 모습은 조금 더 재밌게 다가옵니다.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자신의 캐릭터가 얻어맞는 모습을 직접 연출한다는 데에서 오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상대 선수한테 인사를 하다가 맞는다거나,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던 매미권을 빠져나가는 모습, 사정없이 백스핀 블로우를 날리다가 스테미나가 떨어지는 모습이 배꼽을 잡게 만듭니다. <대탈출>에서 보던 허당기가 여기 '고증학개론'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김동현 선수가 실제로 UFC 8각 링 위에서 산전수전 겪었던 만큼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 관객들의 챈트(Chant), 타격음, 유명 선수들의 제스처와 무빙을 어떻게 담아냈나 잘 설명해줍니다. UFC에서는 활약했지만 게임에서 5전 전패를 거둔 김동현 선수는 화풀이하듯 제작진에게 자신이 게임에서 입력했던 기술들을 시연하기도 합니다. ② 건축가가 만든 건물을 심즈로 똑같이 만들었다?! <심즈>는 가장 유명한 '인생 게임'의 반열에 오른 게임이죠. 많은 '심덕'들은 아주 오랜 시간 공들여 집을 짓거나 잘 만든 집을 다운로드 받죠. 우리 예쁜 심을 18평짜리 임대 아파트에서 살게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가둬서 죽여버리는 한이 있어도 못생긴 집은 안 됩니다. 건축가 이성범은 강원도 동해시에 자신이 설계한 2층 주택 '시선재'를 <심즈 4>로 옮겨온 모습을 평가합니다. 직접 그 집을 설계하고 만든 입장에서 <심즈 4>의 건축 요소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평가했는데요. 그의 <심즈 4> 시선재 점수는 85점이었습니다. 창의 형태가 실제와 다름에도 건물의 매스감(건물의 형태나 크기)을 잘 구현했다는 것이죠. 그가 "이런 게임을 통해서 내가 살고 싶은 집이란 어떤 집인가 생각한다면, 머지않아 자기가 원하는 자기의 집을 가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네요. 주택 청약은 멀고 멀지만 <심즈 4>는 가깝잖아요? 참, 시선재에 대한 정보는 여기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심즈 4>로 구현한 시선재는 여기에서 받으실 수 있습니다. ③ 게임 속 파쿠르 기술,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미러스엣지>는 다이스(DICE)에서 만든 1인칭 액션 파쿠르 게임인데요. 고층 건물을 평지처럼 편안하게 오가면서 크라브 마가로 상대방을 팍! 총을 뺏어서 우당탕탕! 도도한 '런닝 우먼' 페이스의 모습이 참 마음에 드는 그런 게임입니다. 언더커버의 박재영 코치가 직접 길거리 이곳저곳에서 파쿠르를 하면서 게임과 비교를 해준데요. 정말 말 그대로 눈이 돌아갑니다. 실제 파쿠르와 인게임 영상 편집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게끔 교차 편집을 했는데 한참 동안 바라보고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걸 두고 '시선 강탈'이라고 하나요? 박 코치는 게임에서 구현된 기술을 설명하면서 실제 파쿠르 기술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또 자신이 파쿠르를 하는 사람으로서 게임의 1인칭 시야에서 장애물을 볼 때 느끼는 감각이 비슷하다고 하네요. 당장이라도 파쿠르를 배워보고 싶다, 도시를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날다람쥐가 되고 싶다가도 박재영 코치나 페이스나 똑같이 날렵한 몸매인 걸 보고 단념합니다. 밀덕 친구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재밌어서 해보고 싶은 게 있다고 전부 직접 해보기는 어렵겠죠. 그래서 게임이 있는 건 아닐까요? ④ 실제 카레이서는 레이싱 게임도 잘 할까?! 드리프트 선수 강미지가 <니드포스피드 히트>를 플레이합니다. 강미지 선수는 게임 운전은 서킷 질주처럼 신속, 명확, 정확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게임도 잘하고 실제 운전도 그렇게 잘하면 반칙이죠! 아무튼 실제로는 유연하게 차량을 꺾었을 강미지 선수가 가드레일을 시원하게 부수고 얌전히 차를 멈추는 모습이 적잖이 등장합니다.  실제로 <니드포스피드> 트랙을 달려본 강미지 선수는 오버스티어와 언더스티어가 잘 구현되는 등 자동차 모션도 실제와 비슷하다고 증언합니다. 핸들을 사용할 경우 핸들감도 실제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게임이다 보니 실제 차량의 기계적 세팅을 완벽히 따라갈 수는 없다네요.  게임에는 미니맵을 보지 않아도 체크포인트를 잘 볼 수 있고, 도심에서 시속 200km/h를 밟을 수 있는 재미가 있다고 합니다. 서울 시내에서 그렇게 밟았다가는 딱지로 안 끝날 텐데 말이죠. 무엇보다 슈퍼카 레이스를 하는 경험 자체가 현실에서 이루기 쉽지 않죠. 이번 '고증학개론'도 전편처럼 실제 주행과 게임 장면이 교차 편집되어서 나오는데 역시 혼을 쏙 빼놓습니다. # 게임의 체험이 얼마나 전문적인가? EA 코리아는 4편의 콘텐츠를 통해 게임이 제공하는 체험이 얼마나 전문적인지 알렸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해줬으면 좋겠네요. 다른 회사 게임을 고증하는 건 무리겠죠?  그렇다면 <배틀필드>의 배틀필드가 얼마나 현실적인지 제 밀덕 친구를 앉혀놓고 고증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그 친구에게 일반적인 육군 예비역 병장으로는 맛볼 수 없었던 진짜 전쟁의 참상도 맛보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게임을 소재로 한 재미있는 유튜브 예능이 나와서 소개를 해드렸습니다. EA 코리아는 앞으로도 계속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