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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DIY 1탄] 내 손으로 만드는 크리스마스

안녕하세요. 심바입니다!
얼마 전까지 갈대와 억새, 트렌치코트 등으로 길거리가 온통 가을 냄새를 풍기더니
벌써 길거리마다 두툼한 패딩 패션이 가득하고 차가운 바람에 코가 빨개지는 겨울이 왔습니다.
그리고 반짝이는 조명들로 인해 모두 곧 크리스마스가 찾아오는 것을 새삼 실감하고 계실 텐데요.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욱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크리스마스 DIY 시리즈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DIY 크리스마스 1탄 - 크리스마스 카드 그리기]

STEP 1) 카드 중앙 상단부에 크리스마스 볼 그리기

1) 카드 중앙 상단부에 짧은 세로 선을 하나 그어주세요. 2) 그 아래, 이음새로 보이는 크기가 다른 작은 사각형을 사진과 같이 그려주세요. 3) 사각형 아래에 원형으로 크리스마스 볼을 그려주세요.
TIP. 원형을 그릴 때, 매니큐어, 립밤, 기초제품 샘플 병 등을 활용하면 적절한 크기의 원형이 삐뚤어지지 않고 그려집니다.
TIP. 그래도 망칠까 봐 걱정이 된다면, 먼저 샤프나 연필로 살살 그려주세요.

STEP 2. 크리스마스볼에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긋기

1) 원형 크리스마스 볼 안에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그어주세요.
2) 개인의 취향에 맞게 두께의 너비는 자유롭게 그려주시면 좋습니다!
TIP. 꼭 줄무늬가 아닌, 다양한 패턴을 그려주어도 좋습니다. 단, 특별한 무늬를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면 본 과정을 따라 해주세요 '-'*
TIP. 구체의 모양에 맞게 약간 둥근 곡선으로 그려주시면 디테일이 UP!

STEP 3. 크리스마스 볼 양옆에 똑같은 모양의 볼 그리기

1) 가운데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비슷한 간격을 두고 크리스마스 볼을 그려주세요.
2) 그려준 볼의 크기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개수는 다양하게 그려주세요.
TIP. 간격 조정이 쉽지 않다면, 먼저 원형을 그려준 뒤 연결부와 선을 그어주세요!
TIP. 일정한 방향으로 선을 그어주어야 더욱 깔끔하고 통일감이 있어 보여요.

STEP 4. 크리스마스 볼 아래 글씨 쓰기

1) 크리스마스 볼 아래 중심에 MERRY CHRISTMAS를 써주세요.
2) 개인의 취향에 맞게 크기는 조정해주세요.
TIP. 굵은 글씨를 원하신다면, 글자 사이의 간격을 넓게 띄어서 글씨를 써주세요.
TIP. 글씨 중심부를 잡기 어렵다면 먼저 H와 R을 중심부에 쓰고 앞뒤로 글씨를 써 나가면 쉽게 글씨를 쓸 수 있어요. (기타 긴 장문의 글을 쓴다면 자신의 멘트 중간 글자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STEP 5. 글씨 아래 빈 공간에 굵은 가로선을 만들기

1) 카드 하단부에 굵은 가로선 두 개를 만든다는 느낌으로 선 4개를 그어주세요.
2) 공간은 비워두셔도 무방합니다.

STEP 6. 빈 배경을 별과 점 등으로 채워주기

1) 빈 배경에 적당한 간격으로 별과 점 등을 그려 넣어줍니다.
2) 취향에 따라 빈 공간으로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여기까지가 크리스마스 볼 카드 만들기의 기본형입니다!
여기까지만 잘 따라오셔도 꽤 그럴듯한 카드 완성이 되었습니다.
혹, 아직 밋밋하고 심심한데... 싶으신 분들은 아래 이어지는 카드를 읽어주세요!
TIP. 크리스마스 볼은 취향에 따라 다양한 패턴을 추가/변경할 수 있습니다.

저는 굵은 가로선을 배경으로 다양한 니트 패턴들을 넣어봤습니다.
가로선으로 초반에 통일성을 주고 나니 패턴이 각양각색이어도 깔끔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D ...

TIP. 취향에 따라 흑백/컬러로 색을 입히고, 선을 굵게 볼펜으로 따주세요!

저는 위와 같이 흑백으로만 컬러링을 진행했습니다.
최근에 엄청나게 흑백의 매력에 빠져서요 T_T.. (이게 바로 인생네컷 효과..)

아래에는 웹상에서 흑+적, 적+녹 컬러링 편집을 한 컬러 채색본이니,
참고하고 싶은 분들은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상, 누구나 따라 해 볼 수 있는 간단한 크리스마스 DIY 카드 만들기였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패턴이나 장신구들을 활용하여 카드를 만들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 소중한 사람들에게 주는 카드는 직접 만든 카드로 해보시면 어떨까요?




다음번에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만능샵(????) X이소, 다X소, 다이X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홈 데코를 하는 DIY 시리즈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모두 따스한 겨울 보내고 계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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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손이시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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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 샤펠,
좁은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어디에선가에서 연이어 터지는 희미한 탄성이 우리의 귀에 조금씩 더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하자 이름 모를 우리 앞의 등들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고 우리는 이 짧은 고행이 곧 끝남을 알 수 있었다. “와아.”  우리의 뒤를 이어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도 깜빡 잊은 채 우리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우리에게 쏟아져 내려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좁은 어깨를 하고 걷던 봄날, 우리의 머리를 뒤덮으며 내리던 시린 붉은 비, 그 여린 듯 진했던 벚꽃비처럼 그것은 한 뭉텅이로 우리의 추억 안에 지울 수 없는 색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이 비도 좀처럼 무뎌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한국에서 받아온 기본 서류들을 번역하고 공증을 받기 위해 트램을 타고 벼룩시장이 유명한 Vanve까지 갔다. 그리곤 다시 지하철 13호선을 타고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이 있는 Varenne역으로 갔다. Varenne역은 근처에 로댕 미술관이 있는 곳으로 지하철 출구로 나와 대사관들이 모인 거리로 걸어가다 보면 왼편으로 육군박물관이 보이고 그 앞 광장 너머로 에펠탑이 보이는 마치 서울의 광화문과 같은 느낌의 지역이다. 육군박물관 뒤편으로 황금색 돔이 유난히 눈에 띄는데 그곳이 바로 프랑스혁명의 영웅이자 동시에 역적인 애증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그의 일가가 묻혀 있는 Tombeau de Napoléon이다. 공증이 완료된 서류를 다음날 오전 11시 이후에 찾으러 오라고 해서, 다음날 오전 수업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다시 트램에 올랐다. 트램은 전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받아 만든 그래서 각국의 이름을 딴 기숙사들이 모여 있는 씨떼 유니벡시떼를 지난다. 건물들은 조금 낡았지만 가격이 싸서 인기가 많고 따라서 입주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인 곳이다. 하루를 다녀왔다고 익숙해진 풍경들을 지나 Porte Vanve역에서 메트로 13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데 우리의 근처에 서있는 누군가의 인상이 문득 나의 눈을 잡아맸다. 오랜 시간 연기를 하고 또 영화를 만들다 보니 사람들을 관찰하고 혼자서 그들의 성격이나 처한 상황 그리고 감정이나 목적까지도 추측 추리 상상하는 버릇이 몸에 깊게 베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것들을 지레짐작하게 된다. 그것이 어떤 편견이 되진 않을까 싶어 절로 완료되는 짐작들을 애써 지워 버리려고 애먼 노력을 또 하곤 하는데 이곳은 낯선 땅이라 내 생각들이 편견일 확률 또한 높아서 여태껏 한국에서 보다 더욱 조심을 해왔다. 프랑스의 지하철에 대한 여러 글들을 많이 봤고, 소매치기와 거동이 이상한 사람들을 마주친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도 또 그때 그들의 대처들도 지나치게 보고 이곳으로 왔지만, 지난 한 달간 딱히 위험한 상황을 만난 적은 없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사람들이 모여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아무런 사건 없이 생활을 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방심했을 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다는 글을 읽고는, 반은 장난으로 ‘방심하다 당한다’ 며 서로에게 잦은 주의를 주곤 했지만, 시간의 힘이 참 무서워 요즘은 긴장을 거의 안 한 채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13호선은 우리가 주로 타고 다니는 7호선과는 다르게 의자가 한편으로는 한 열이 나있고 다른 한편으로 두 열이 나있는 비대칭 구조이다. 다른 호선의 지하철들처럼 정방향의 의자와 역방향의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되어 있는 구조는 마찬가지였다. 나와 엠마는 두 열의 의자가 나있는 쪽에 정방향의 의자에 나란히 앉았고, 그 남자는 다른 쪽 한열의 역방향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문득 들었던 부정적인 인상을 지워내고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검색을 하고 있을 때, 어떠한 짐작되는 이유도 없이 그 남자가 불쑥 나의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왔다. 다른 이곳의 사람들과 달리 나를 빤히 바라보는 모습에 혹 소매치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싶어 하던 검색을 멈추고 핸드폰을 주머니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이 남자의 목적은 우리의 물건이 아닌 건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려는 어떠한 수작도 없이 노골적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게 아닌가. 우리는 괜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 남자는 계속 우리의 돌린 옆얼굴을 노려보다가 심지어 창문으로 고개를 돌려 창문에 비친 우리를 눈을 찾아내 노려보기 시작했다. 순간 확실해지는 이상함에 나는 등이 굳었다. 평일 오전이라 객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창문에 비친 남자를 주의 깊게 견제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했다. 남자는 왠지 모를 흥분까지 느끼며 우리의 돌린 얼굴과 창문에 비친 우리의 이미지를 번갈아 노려보는 일을 지속적으로 반복했고 급기야 몸을 조금씩 떨기까지 했다. 연기를 통해 익힌 경험을 비추어 보면 일반적으로는 감정이 신체의 징후를 만들어내지만 신체의 징후 또한 숨은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나는 더욱 긴장을 했다. 남자의 신체 징후는 분명 이 감정이 그의 내면 안에 가만히 갇혀 있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남자의 감정과 신체가 서로를 계속 불러내며 확장을 해가고 있을 때 열차는 다행히 이름 모를 정거장에 멈춰 섰다. 나는 마치 이곳이 Varenne역인 듯, 당연한 듯 엠마를 데리고 열차에서 내렸다. 엠마도 긴장을 많이 했는지 놀란 얼굴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가 우리를 따라 내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끝까지 그를 살폈다. 다행히 그 남자는 열차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열차가 정거장을 떠날 때까지 남자는 우리를 노려 보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굳었던 식은땀이 등줄기를 따라 서서히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잠자리를 설쳤다. 결국 다음날, 여러 번 울린 알람에도 우리는 침대 위를 떠나지 못했다. 오전 수업이 시작하고 한참이 지난 후에야 우리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뒤늦게 발을 돌려 올린 창문 밖에서 위로 같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을 받으며 숨을 좀 녹인 후 우리는 하나의 사건을 렌즈로 파리를 바라보진 말자고 다짐을 했다.  기왕 학교를 못 간 김에 우리는 파리의 동쪽 크레테유라는 곳에 위치한 우리 지역 CAF 아정스에 서류를 내러 가기로 했다. CAF는 주택보조금을 산정, 집행하는 기관으로 인터넷으로 가입, 신청을 한 후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서 우편을 통하거나 직접 제출을 하면 검토 후 각자에 맞는 보조금을 산정해준다. 아날로그의 나라 프랑스도 많은 변화가 있어 CAF도 모든 서류를 스캔한 뒤 온라인상으로도 제출할 수 있게 되었다지만 검토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기에 가장 빠르게 처리된다는 직접 제출을 하러 간 것이다. 파리가 아닌 외곽 지역은 위험한 곳도 많다고 들었기에 우리는 어제의 기억까지 더불어 떠올리며 긴장을 했다. CAF 아정스는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간 후 조금 걸으면 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외곽지역을 둘러가는 동안 보는 풍경은 파리의 중심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공항을 오가는 도로에서처럼 거리에는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현대식으로 지어진 커다란 아파트 단지도 높은 굴뚝이 있는 발전소나 공장 같아 보이는 곳도 자주 눈에 띄었다. 넓어진 센느강의 모습도 고풍스러운 건물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던 파리에서의 모습이 아니라 여느 곳에 흐르는 고요한 강 그 따름이었다. 강변은 온통 풀밭이었고 강 위에는 큰 새들이 앉아 먹이를 찾고 있었다. 낯선 거리의 모습에 경계와 신기함이 반쯤 섞인 시선으로 두리번거리며 CAF 아정스에 도착을 하자 먼저 건물 입구에 긴 줄을 선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파리의 주거비용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벅찬 짐이 되는지 아침부터 먼 곳까지 와 긴 줄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순서를 기다려 아정스의 직원에게 검토를 받고 제출하는 것이 제일 좋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읽었지만 건물 밖에 장치해둔 CAF전용 우체통에 집어넣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는 글도 많아서 우리는 긴 줄에 두 명을 더 보태는 일을 포기하고 그냥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가기로 했다.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는 모습이 보여 우리는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서류가 잘 검토되길 바라며 우체통에 서류를 집어넣고 기념사진을 찍는데 아정스를 들렸다가 나온 한 흑인 아저씨가 우리를 응원을 해줬다. 그리고 홀로 줄을 서고 있던 한 한국 청년이 그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이신가요? 서류 그냥 여기에 넣고 가면 되는 거예요?” 서류를 봉투에다 넣어서 밀봉을 한 후 우체통에 넣어야 하는데 그 청년은 그런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정스 안에 가면 봉투를 준다는 글을 본 것 같아 청년에게 알려주었다. 청년은 고맙다며 아정스 안으로 가고 우리는 남은 오후를 소중히 보내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먼저 파리의 동쪽에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들려보기로 했다. 내가 무척 가보고 싶어 하던 곳이었는데 영화의 성지에는 역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 프랑스어가 조금 더 들릴 때까지 미뤄둬야지 했었다. 다만 오늘은 파리의 동쪽으로 나온 김에 인상적이라는 건물의 모습도 봐볼 겸, 영화 박물관이라도 봐보고 갈까 해서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있는 Bercy역으로 갔다.  역에서 나와 조용하고 깨끗한 거리를 조금 걸으니 사진에서 봐왔던 역시나 다양한 곡선들이 인상적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눈에 보였다. 이곳은 빌바오에 있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으로 원래는 미국 문화원이었던 곳이다. 2005년, 에펠탑을 마주 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샤이요 궁 안에 있던 옛 시네마테크를 옭겨오기 위해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했다고 한다. 영화 몽상가들에 등장하던 68 혁명의 주무대였던 프랑스 영화의 최전성기를 지탱하던 ‘그 시네마테크’ 는 이 건물이 아니지만 시네마테크는 위치나 외형보다는 내용이 더 핵심이기에 Cinematheque Fracaise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이처럼 들떴다. 시네마테크 앞에는 조용하고 예쁜 공원이 있었고 그 안에는 작은 회전목마가 있어 이질적인 건물과 함께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화를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거 같아 예고편처럼 사진 몇 장만 찍고서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Bercy는 계획도시처럼 긴 공원을 따라 길고 낮은 아파트가 쭉 이어진 곳이었다. 공원이 끝나는 지점에 Bercy village라는 예쁜 쇼핑몰이 있었다. 이곳은 한때 세계 최대의 와인시장이 있었던 곳으로 건물의 외관을 최대한 유지한 채 내부만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의 쇼핑몰로 꾸민 곳이다. 당시 와인을 운송하던 기찻길도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파리가 아닌 지방 소도시의 번화가를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테라스 자리에 앉아 햇볕을 쬐기에는 좋은 곳 같았다. 햇볕은 좋았지만 날씨는 꽤 차가웠는데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우리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며 남은 낮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엠마가 마침 지하철을 타면 한번 만에 가는 곳에 Châtelet역이 있다며 Sainte Chapelle에 가보자고 했다. 처음 어학교재를 사러 시떼섬에 갔을 땐 긴장된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치기만 했던 곳이다. “Oui.” Sainte Chapelle은 고등법원 건물과 붙어 있어 파리의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보안 검사를 하고 있었다. 흡사 공항에서와 같이 짐 엑스레이 감사와 금속탐지 검사도 거친 후 부속 건물의 뒷문으로 나가자 센느 강 어느 다리에서도 보이던 날카로운 첨탑이 가고일 꼬리를 꽉 쥔 채 우뚝 서 있었다. 검은 괴수들이 사방으로 울부짖고 있는 검은 첨탑 너머의 하늘은 티 없이 파랬다. 그래 신은 이곳에는 없는 거지. Sainte Chapelle은 성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9세가 동로마제국의 황제에게 금전적 지원의 형식으로 사들인 예수의 가시 면류관과 후일 모은 예수의 못 박힌 십자가 조각 등의 성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왕실 전용 예배당이자 보물창고이다. 티켓을 끊고 듣어간 곳은 성당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은 높이에 기둥이 유난히 많은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단출한 홀이었다. 심지어 그곳 안에 기념품을 파는 곳과 안내 전단을 배포하는 곳까지 같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이곳이 사람들이 그렇게나 찾을 만한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궁중 관리들과 성당을 관리하는 이들을 위한 예배공간이고 왕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준비된 곳은 이 낮은 홀이 위층 공간이었다. 이곳이 보통의 성당들 보다 낮은 이유도 기둥이 많은 이유도 위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파리에 온 후 수없이 오른 나선형 계단을 앞사람의 등만 보며 올랐다. 위쪽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탄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아래층의 모습에 실망해서인지 별다른 기대는 가지지 않고 허벅지를 손으로 도우며 계단을 오르는 일에만 집중을 하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뱉고 말았다. “와아.” 그곳은 그 안 든 것이 어떠한 모습의 어떤 마음의 사람이든 그 안에 든 것이 어떤 피비린내가 나는 프로필을 지닌 물건이든 아이들의 보석함의 고증 없는 ‘보석’ 들처럼, 모두를 모든 것을 그저 순수히 빛나게만 만들어버리는 섬뜩한 마법의 공간이었다. 15미터의 거대한 스테인글라스가 최소한의 테두리만 두른 채 공간 안으로 피할 수 없는 색깔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고개를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게 하는 것들, 가령 하늘이나 별 같은 것들. 내가 한다던 비워내고 납득하는 그런 아름다움 말고 집요하게 강요하는 채우고 또 채워서 지나침을 훨씬 더 지나쳐 내가 모르는 곳으로 그곳으로 넘어가 버린 아름다움을 보면서 나는 내가 하는 예술이 미리 지고서 핑계만 오래 고민하고 있던 건 아닌지 조금 씁쓸했다. 이 곳은 온통 빼곡하다. 빈 손으로 꾸밈도 없이 걷기 위해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얘기를 해 왔는데 벌칙처럼 온통 내가 못하는 그저 아이처럼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할 것이 가득한 이 곳으로 불쑥 와버렸다. 우습다. 사람은 그렇게 멋대로 걸어간다. 자기 물건이 가장 지겨워서, 자신과 다른 이의 품으로 기꺼이 간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낯설어진 나를 나는 또 가까스로 소개를 해야 하겠지. 내가 마치 이런 사람이었던 것처럼.
 돈도 잘 내고 길도 잘 찾고 하지만 내일에 해야 말만은 여전히 모른다. Oui ou Non 으로 대답하는 내 시꺼먼 마음에 뭐가 걸쭉하게 녹아 있는지 꺼내지 못해서 모르겠다. 가끔은 주말에 무엇을 또 보러 가기가 조금 겁날 때가 있다. 보고 좋아하는 거 말고 내가 해서 보여주고 싶어 그런 거겠지. 안다. 그 마음.  좋은 것을 보고 나면 우린 더 많이 지쳐 파리 지하철의 악명도 다 잊고서 머리를 붙여가며 졸기까지 한다. 안다. 당신의 그 마음도. 글, 영상 레오 촬영 레오, 엠마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피의 언덕, 몽마르뜨
파리의 집들은 건물에 창을 가리는 가리개가 장착이 되어 있다. 오래된 집들은 나무판자로 짜인 나무 덧창이 유리창 바깥쪽에 달려 있고, 우리 집처럼 발같이 내렸다가 올렸다가 할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곳도 많다. 우리 집은 큰 도로를 끼고 있어, 밤늦은 시간까지도 오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 집 벽에다 침입자를 풀어놓는다. 하여 내가 좋아하는 노을이 흩어지고 나면 덧창을 돌돌 돌려 빛과 집을 갈라 둔다.  불을 끄면 그야말로 암흑이다. 서로를 더듬어야 찾을 수 있을 만큼 어둡다. 처음에는 이러한 어둠에 적응이 안되었지만 지금은 금세 그녀의 온기에 기절을 해버린다. 아침이 오면 소리는 아침을 알려도 빛은 어떤 소식도 전해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어두운 방을 더듬어 창가로 가 무거운 발을 천천히 돌려 열 때면 일종의 기대감이 생긴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프랑스의 겨울은 거의 흐리고 비도 잦기 때문에 기대는 자주 무너지지만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어디론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날이 아주 좋았다. 이틀 전만 해도 소나기가 같은 비가 내리다가 해가 지자 파리에서는 무척 귀하다는 눈이 되어 내렸다. 파리에서 맡는 첫눈이라니. ‘신기하다’ 라는 말을 또 버릇처럼 뱉으며 우리는 아이처럼 팔을 우산 밖으로 내밀어 내리는 눈을 일부러 옷에 묻히곤 했다.  날이 아주 좋았다. 오늘은. 구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햇빛은 어떻게든 틈을 찾아 땅을 노랗게 다 칠을 해두었다. 엠마도 오랜만에 밝은 날에 기분이 좋은지 오늘은 조금 먼 곳까지 가보자고 했다. 어디가 좋을까 하다가 몽마르뜨가 눈에 걸렸단다. 관광객들에겐 악명 또한 높은 곳이라 우리가 여태껏 가볼 생각도 않았던 곳. 우리 집은 파리의 남쪽에 있어서 몽마르뜨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프랑스의 겨울은 낮이 짧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부터 서둘렀다. 혹시 몰라 돗자리와 커피, 따뜻한 차까지 챙겨 들고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이들이 있다는 곳, 몽마르뜨를 향해 겁 없이 발걸음을 서둘렀다. 우리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2호선의 Anvers역이 아니라 14호선의 Abbesses역에서 내렸다. 노을이 내리는 시간에 맞춰 몽마르뜨에 오르기 위해서 시내에서 상점들을 둘러보며 시간을 조금 보냈다. 어제는 노란 조끼 시위 때문에 시내의 주요 역들이 문을 닫았다는데.. 오늘도 알 수 없는 시위가 있어 시내에는 무장한 경찰들이 가득했다. 아직은 본격적인 세일 시즌이 아니어서 쇼핑에는 별달리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거리의 건물들에 내려앉은 귀한 햇빛이나 구경하면서 몽마르뜨 언덕 쪽으로 걸었다.  중간에 생라자흐 역이 있어 화장실도 들를 겸 들려보았다. 생라자흐역의 대합실은 2012년에 전면적인 리모델링을 해 깔끔한 현대식 상점들이 벽을 온통 차지하고 있었다. 모네의 그림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과 같은 분위기는 적어도 쇼핑몰로 바뀐 지금의 대합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이미지와 삶의 장소에서 사람들은 전혀 다른 것을 바란다. 유지와 변화, 낡음과 새로움, 불편과 편리 사이의 갈등은 모든 오래된 도시들에겐 쉽게 가라앉힐 수 없는 문제들일 테다. 사람들이 바라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모인 도시의 매끄럽고 조용한 하루도 누구에게는 견딜 수 없는 병실 같은 곳이 될 테고. 아무래도 테러가 일어난 지 몇 년이 안 되어서인지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4명씩 짝을 이뤄 역 안을 순찰하고 있었다. 베레모를 쓰고 있지만 허리에 철모를 차고 있었다. 어깨를 뭉치게 할 한 팔 길이의 자동소총을 매고 주변을 둘러보는 병사는 여드름이 다 지워지지 않은 금발의 청년이었다. 역시나 이곳도 파리의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화장실이 유료였다. 1유로나 하는 통에 줄까지 길어 우리는 화장실 가는 것을 포기하고 생라자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Abbesses역으로 곧장 가기로 했다.  Abbesses역에서 몽마르뜨 언덕으로 나가는 출구는 무척 독특했다. 병원에서와 같은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두 개쯤 있고 계단은 중세 시대 성처럼 나선형으로 빙빙 돌아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스무 번도 더 꺾이는 나선형 계단에 어지러움마저 느끼며 허벅지를 부여잡고 지상으로 나가자 아이들이 졸라대는 회전목마 너머로 기대하지 않았던 ‘사랑해 벽’ 이 보였다. 굳이 가봐야지 하는 생각은 안 했었는데 막상 보니 파란색 벽이 무척 예뻤고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아 슬쩍 들려서 사진을 찍고 찍어주었다. “자, 이제 긴장해.” “응, 긴장해.” 서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인을 해달라는 꼬마들이 천사 같은 웃음을 띄면서 달려들었고, 우리는 ‘농, 파흐동.’을 연발하면서 아이들을 벗어나 좁은 언덕길을 향해 총총걸음을 걸었다.  걱정과 달리 Abbesses역에서 사크헤 쾨흐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는 집시들과 팔찌를 강매하는 무리들이 없었다. 좁은 골목들이 갈라진 틈으로 파리의 시내들이 조금씩 내려다 보였다. 좁은 길에는 카페와 빵집, 작은 레스토랑 그리고 중고의류와 액세서리들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었다. 우리가 들려 본 한 가게는 옛 창고를 그대로 고쳐서 쓴 듯 철제로 된 나선형 계단을 서로 비켜주면서 내려간 지하 쇼룸은 오래된 지하무덤에 온 것만 같았다. 좁은 쇼룸 안에는 한 벌씩 밖에는 없을 듯한 옷들이 적당히 진열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커플들과 부부들이 그러하듯 여자들은 옷을 고르고 남자들은 통로와 구석에서 자신들의 파트너를 넌지시 바라보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길을 내어주느라 또 나름 바빴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어색해서 한 두 번을 옷을 찾는 듯 뒤적거리는 것도 꼭 같았다. 나도 엠마가 옷을 고르면 가서 한마디 의견을 보태주고 다시 물러나서 여러 사람에게 길을 내주고 다시 자리를 잡고 하는 일을 반복했다. 내심 마음에 드는 옷이 있는 듯했지만 한국과 달리 구입은 하지 않고 나의 손목만 잡고 상점을 빠져나가는 엠마였다.  또 두어 번의 긴 계단을 기어가듯 오르자 하얗고 이질적인 사크헤 쾨흐 대성당이 우리의 눈을 찔러댔다. 대리석 안에 함유된 방해석 성분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하얀빛을 잃지 않는다는 모스크를 닮은 신기한 이름의 거대한 성당. 마치 파리의 자잘한 건물들을 피해 언덕에 내린 우주선 같은 이 이상한 성당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자 성당을 등 뒤에 두고 어디론가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산 하나 없는, 같은 높이의 건물들로 대지를 말끔히 지워 놓은 파리의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우와.” 우린 우리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뒤쪽에서 걸어오던 여러 국적의 사람들도 연이어 탄성을 질렀다. 마치 넓게 덮인 구름의 무게에 눌린 듯 지독히도 같은 높이의 건물들이 조금씩 다른 모양으로 조금씩 다른 아이보리 빛을 반사시키면서 번져 있었고 간혹 보이는 뾰족하게 높은 성당의 첨탑들과 두드러지게 높아 보이는 에펠탑의 머리만이 이곳도 역시 하늘을 탐하는 ‘인간’의 도시임을 외치고 있었다. 산도 없고 어떠한 굴곡도 없는 평평하고 둥근 판이 우리를 바늘로 하여 천천히 돌고 있는 듯 어지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아직은 노을도 시간이 남아 우리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사크헤 쾨흐 대성당은 게임의 속 배경인 것만 같은 둥근 모양의 외형과는 달리 실내는 성당 안에 든 사람들에게 강제로 숭고함을 쥐어주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넓은 성당의 한가운데에 거대한 돔이 서 있었고 그 돔의 가슴쯤을 갈라 낸 창문들에서 내려온 빛들이 반사와 반사를 이어가면서 성당 전체를 같은 밝기로 밝히고 있었다. 어두운 벽 곳곳에 모자이크된 성화들은 어두운 색들로 채색되어 있어 그림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보다는 모두가 성당 안의 어떤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다만 중앙 제대 위의 작은 돔을 가득 덮은 예수의 성심을 나타난 거대한 모자이크화만은 사람들에게 이 성당의 존재 이유를 강변하고 있는 듯 강렬했다. 대성당은 미사와 기도를 드리는 성당 중앙을 비어 두고 관람객들이 그 주변을 한 바퀴 둘러 나갈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우리가 성당 안을 천천히 돌아나가는 동안 1885년부터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는 성체조배가 행해지고 있었다. 수녀님이 부르는 성가는 조금 섬뜩하게 아름다워 잠시 멈춰 바라보는 사이 하마터만 나의 죄를 다 고백할 뻔했다.  대성당이 자리 잡은 몽마르뜨 언덕은 지금은 낭만과 예술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역사적으로는 파리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지리적 이점 때문에 파리를 온통 불태울 수 있는 포대가 설치되어 있었던 곳이다. 그런 이유로 이곳은 파리의 최후의 보루였고, 이곳을 차지한 이들이 곧 파리의 주인이기도 했다.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에게 무력하게 항복을 한 후 세워진 제3공화정은 프로이센에 대한 항전을 계속 이어가지만 곧 파리를 포위당하고 만다. 프로이센 군에게 사방을 포위당한 채 132일 동안 외부로부터 어떠한 물자도 공급받지 못한 파리의 시민들은 동물원의 동물들, 거리의 고양이, 심지어 숨은 쥐까지 잡아먹어야 할 만큼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에 결국 3공화정부는 프로이센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이후 선거를 통해 구성된 정부는 왕당파등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정부를 차지한 보수파들은 대혁명의 유산이자 프로이센에 대항해 최후까지 항전을 하던 파리를 오히려 적으로 여기며 파리를 무력화시키고자 몽마르뜨의 포대를 장악하고 파리에 있는 국민 의용군의 무장을 해제하려고 했다. 그런 공화정부에 반대해 일어난 파리 시민들의 봉기는 세계 역사 상 최초의 사회주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출범시키게 된다. 지금 봐도 놀랄만한 여러 가지 진보적인 정책들을 펼치며 시민들에 의한 정부를 꿈꾸었던 파리 코뮌은 72일 만에 사회주의 혁명을 두려워하는 유럽의 지원에 힘입은 보수적인 공화정부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되었다. 당시 175만 정도였던 파리의 인구 중에 2프로에 가까운 3만여 명의 시민들이 한 번에 학살을 당했다. 코뮌에 대한 보수파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끝난 후 보수파 정부는 프로이센에 대한 굴욕적인 패배를 포함한 이 모든 비극이 자신들의 도덕적인 타락의 징벌이라는 교회의 믿음에 따라 다분히 의심스러운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속죄하는 말 아래 기존의 질서로 다시 정리되길 원하는 보수파의 의도 또한 담아) 피의 언덕 꼭대기에 이 대성당의 건립을 추진했다. 대성당은 30여 년의 시간 동안 진짜로 징벌을 받고 있었을 민중의 기부금만으로 만들어졌다. 건축가가 이 지독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건물을 나와 전망대로 유명한 대성당의 돔에 오르려다 6유로나 하는 가격과 가득한 사람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낮 등을 이유로 우리는 그만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다 보는 곳 말고, 나만이 발견한 것 같은 착각이라도 가질 수 있는 곳을 원하는 건 바꿀 수 없는 나의 혹은 우리의 버릇이다. 어릴 적부터 예술하는 사람을 꿈꾸면서 처음에는 지독히 노력을 했고 마침내는 지울 수 없는 강박이 되어 버린 것이 바로 ‘나만의 것’이라는 환상이다. 어릴 때는 남들이 따라 할까 무서워서 무슨 생각이 들면 남들에게 심지어 선생님에게도 의견을 구하지 않았고 남들을 따라 하게 되는 일도 무서워서 사람들의 충고 또한 흘려듣고 보고 배워야 할 작품들 또한 일부러 보지 않으려 하면서 스스로를 작은 감옥에 가뒤 놓곤 했었다. 이제 와서 보면 예술이라는 것은 자기 안에서 시작하는 것은 맞지만 오로지 자기 안에서만 결정되어 나오는 것은 아니고 문제로 가득한 어떤 가여운 자아가 세상과 부딪히는 순간, 누구의 결재도 없이 어지럽게 튕겨 나오는 것들, 다만 그것 중에 무엇일 뿐인 것을 안다. 그 여러 잔해들 속에서 또 마치 자신 능력 안에서 키워 낸 자신만의 것인 듯 하나를 골라 몰래 적당히 망쳐가다가 너무 늦었다며 께름하게 자기 이름을 써 놓고 뒤돌아 울곤 하는 거겠지. 아름다움은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그저 순수함 그 자체이니까. 아름다움은 순수함을 잡으려는 욕심이고 그래서 순수함을 결국 훼손시키는 폭력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시선은 한계가 있다. 너비와 깊이 또 지속시간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결국 바라보는 행위조차 순수함을 잘라내는 것이다. 아름답다면서 무엇과 무엇을 갈라놓고 무엇만을 더 오래 기억하려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일종의 불순함이다. 아름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아름다움의 시작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 그 누구도 자신만의 힘으로는 아름다움을 얻어낼 수 없다. 무엇보다 일단 만나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그 어떤 단계에서 조차 순수한 자기만의 의견을 가질 수도 없다. 오래된 무한에 가까운 기억들이 나를 속이고 나의 의견에 남들의 의견을 섞고 티가 나지 않게 흔들어 놓는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모르겠다고 하고 내 이름을 써 놓았지만 그게 나의 것일까 나는 결국 무엇일까 하는 질문만은 절대로 지울 수가 없다. 순수하게 넓은 지평에서 나의 우연한 위치와 나의 보잘것없는 선택이 실은 내가 하는 건지도 모를 선택이 모여서 만든 조악한 형상. 그러니까 무엇도 열광할 만큼 대단하지 못하고 또 무엇도 경멸할 만큼 나쁘지 않다. 결국은 하나의 다 우연한 조각일 뿐.  하지만 길을 즐긴다는 불순함은 길을 하나로 보지 않는 일에서만 가능한 것. 한 걸음이 한 걸음과 다르다고 믿게 만드는 몹쓸 자의식이 결국 오해로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를 한 걸음과 다른 한 걸음이 있다고 믿게끔 만드어 주는 것. 결국 예술이 종교에 기대어 생명을 이어왔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만이었고 예술은 종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다른 종교 인지도. 예술을 한다는 것은 내가 우연한 기회에 잘라 가진 무엇으로 ‘이건 정말이지 ‘무엇’ 을 의미하고 있어!’ 라며 누군가에게 강요하는 일. 그러니까 그것은 곧 위험한 포교인 거다. 성공하면 권력을 가지지만 실패하면 돌을 맞거나 쫓겨나 굶주리게 되는 것. 돌아가는 길에 난관을 붙잡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따라 나도 난관에 붙어 노을 안에 선 에펠탑을 찍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쓰고 그래서 결국 무엇이고 싶은 걸까. 바람이 차서 상점에 들려 털모자를 사려다가 맞는 것이 없어 두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광장에 모여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을 지나 또 두어 번 긴 계단을 걸어 육중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Abbesses역으로 돌아갔다. 글, 이미지 레오 2019.11.25 파리일기_두려운 시간들이 우습게 지나갔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집을 계약했다.
프랑스의 가을은 하루 걸러 비가 온다.기온은 한국과 크게 차이가 없는 거 같은데 비가 자주 오고 바람이 많이 분다.역시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불던 저녁,차가 막혀 40분을 늦은 므슈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집을 계약했다. 몇 번, 신중히 생각을 해보려다 집을 놓친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집을 보고 현관을 나오기가 무섭게 므슈에게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요’라고 메일을 보냈다. 불안함에 곧장 전화까지 걸어 서툰 영어로 나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을 시켜줬다. “므슈 나 정말로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 “그래? 그럼 월요일 5시에 사무실로 와.” 사무실로 오라는 말이 나와 계약을 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계약 전에 또 다른 절차가 있는 건지, 우리만 오는지 계약을 원하는 모든 사람이 오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어 주말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Ivry에 있는 므슈의 아정스에 15분 정도 일찍 도착했을 때, 므슈의 아정스 앞에는 이미 어떤 한국인 커플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 순간 ‘아 오늘이 계약을 위한 날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싶어 가슴이 덜컹했다.얼핏 한국어로 ‘5시에 오기로 했어’하는 말이 들렸다. 그 순간 우리의 불안감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갔고 해가 진 파리의 바람은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정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꼭 붙어 서서 서로의 체온으로 칼 같은 바람을 견디며 우리는 ’적’들의 동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뭐지 오늘 계약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닌가..” “아닐 거야. 기다려보자.” “우리 뒤에 본 사람들도 계약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들인가?” “오늘이 소문으로만 듣던 주인과의 면접인 건가? 제길.”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우리는 더욱 긴장을 했고 ‘적’들은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적’들이 아정스 옆 건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건물 안에서 편한 복장을 한 한국인 한 명이 ‘적’들을 뒤따라 내려오는 게 아닌가. “뭐지?” “세 명이면 우리 집 계약하러 온 건 아닌 거 같은데..” “아 혹시.. 계약할 때 프랑스어 잘하는 친구 데려가곤 하잖아. 그런 거 아니야?” “그런가? 아, 우리 또 졌다.” “근데 캐리어는 왜 가지고 왔지?” “오늘 바로 열쇠 받고 집 들어가는 걸로 착각한 거 아냐?” 불안함에 논리가 부족한 얘기들을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어가며 추위를 견디고 있을 때 검은색 도요타 프리우스가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 아니었다.우버 기사가 그들의 캐리어를 드렁크에 실을 동안 그들은 편한 복장을 한 한국인과 포옹을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편안하게 시트의 몸을 기댄 채 꼭 붙어 바람을 견디는 우리를 바라보며 그곳을 떠나갔다. 그래, 서울이면 하지 않을 걱정들이 아직은 많다. 집을 구하는 일이 소문만큼 막막하긴 했다. 파리는 생각보다는 작고 또 높은 건물들도 없어서 그런지 집을 구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국처럼 이 집 저 집 보면서 며칠간 고민을 하고 결정할 수 있는 여유 따위는 없었다. 한 집은 우리가 한 시간 정도 더 고민을 했을 뿐이었는데 이미 다른 누군가와 계약이 됐다고 했다. 프랑스에 파리에 처음으로 오게 된 우리 같은 학생들과 워홀러들은 집을 구하는 데 있어 몇 가지 큰 제약이 있는데, 이건 어쩌면 비단 프랑스와 파리 만의 일은 아니고 우리나라에 처음 오게 된 외국인들도 겪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집이 있고 출생신고가 되어 있고 나이가 차면 다 같이 주민등록증을 받고 또 은행 계좌까지도 함께 만든다. 그래서 성인이 된 후에 직접 집을 구할 때 필요한 것들 중에 못 갖춘 건 돈 밖에는 없지만 외국에서 처음으로 집을 구하려고 할땐 우선 모순적인 상황을 먼저 맞닥뜨리게 된다. 임차인을 구하는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우선 임차인의 은행 정보를 요구하고 집세와 보증금도 수표로 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은행에서 계좌를 개설하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거주에 관한 증명서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처럼 아직 프랑스에서 긴 기간 동안 거주할 집이 없어서 거주증명을 하지 못했고 따라서 당연히 은행 계좌도 없는 처지들은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해주는 아정스와 주인을 만나야만 한다. 안 그래도 적은 파리의 집들 중에서 우리가 다가설 수 있는 곳이 매우 많이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임차인에 대한 보호장치가 많고 또 강력해서 집주인들이 임차인을 고를 때 매우 신중하게 여러가지를 고려한다. 한번 받은 임차인이 한두 달 임대료를 못 낸다고 해서 주인이 함부로 그들을 쫓아낼 수가 없고 특히 겨울에는 강제 퇴거 자체가 안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주인들은 임대료를 성실하게 낼 수 있는 임차인을 우선적으로 찾으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꼭 요구하게 되는 게 재정보증이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가장 원하는 재정보증은 임대료의 3배 이상의 월수입을 가지는 프랑스인의 재정보증이다. 당연히 우리가 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집들 중에서 또 많은 수가 사라진다. 우리처럼 재정보증이 없고 아직 거주지도 없고 은행계좌가 없는 처지는 불법 수수료를 주고(월세 한 두 달 치) 한국인 부동산이나 중국인 부동산을 이용하거나 발로 뛰며 저 모든 상황을 일일이 설명하며 수많은 거절 끝에 이해를 해 줄 누군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막막하고 불안하고 힘이 들 수밖에.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임대를 원하는 사람들이 거의 같은 시간에 모여 집을 구경한다. 같은 집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하는 이들과 함께 집을 둘러보고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 게 처음에는 여간 어색한 게 아니었다. 파리에서 처음으로 집을 보러 갔을 때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우리가 받은 주소의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서로 어색하게 서로를 탐색하며 아정스 므슈를 기다렸고 같이 나선형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빙빙 돌아 5층의 집으로 올라갔다. 좁은 집 안에서 서로 '빠흐동'을 연발하면 화장실 봤다가 침실을 봤다가 퀴진을 봤다가 정신이 없었다. 집을 보러 오면 이것저것 물어봐야 할 것도 많고 확인해야 할 것도 많지만 우리는 아직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하기에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보다가 구석으로 자기를 옮겨 '어때?'하며 한국말을 속삭이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집을 보러 온 여성분은 프랑스에서 산 기간이 오래 되었는지 프랑스어가 매우 능통했고, 므슈의 곁에 붙어 수많은 질문을 하고 답을 들었다. 졌다. 이미 그 집은 그분에게 넘어간 것이다. 친절한 여성분이 '우리에게 뭐 물어볼 거 있으시면 물어봐 드릴게요.'라고 해주셨지만 의기소침한 우리는 별다른 질문을 떠올리지도 못했고 그분이 므슈대신 들려주는 기본적인 정보들만 듣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 근처에 여기보다 조금 더 큰 아파트가 있다는데, 두 분 괜찮으시면 므슈가 그 집을 바로 보여주실 수 있대요." 그 친절한 통역이 마치 이 집은 이미 결정이 났으니 그 집이라도 보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는 듯 들려 힘이 빠졌다. 떠밀리듯 다음 집을 보긴 하겠다고 하고 나선형 계단을 다시 돌아 집을 내려오자 건물의 입구에는 프랑스물이 조금도 안 묻은 동양인 네 다섯 명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화기애애하게 둘씩 대화를 나누던 그들이 누군가 미리 집을 보고 있을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던 건지 므슈와 함께 내려오는 우리들을 보자 표정이 굳었다. 집 구하기가 쉽지 않구나. 몇 번의 실패 끝에 우리는 좀 더 귀찮은 고객이 되었고, 우리의 처지를 다 알고있는 이 므슈를 끝없이 괴롭혔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숙소 근처에 매물이 있다며 괜찮으면 집을 보러 가겠냐는 메일이 왔다. '좋다. 오늘 당장 가볼 수 있냐'라고 묻자, '오늘은 안된다. 지금 살고 있는 사람도 한국인이니 직접 연락을 해 약속을 잡아서 집을 보고 연락을 하라.'고 했다. 므슈에게 이 답장을 받은 게 이곳 시간으로 저녁 10시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집 방문 일정을 최대한 빨리 잡고 집 계약 의사를 조금이라도 빨리 밝혀야 집을 계약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겠다 싶어 고민 끝에 지금 살고 있는 세입자 분에게 '늦은 시간 너무 죄송하다'며 문자를 드려 보았다. 다행히 세입자분들은 자신들도 처음 집을 구할 때 같은 마음이었다고 괜찮다며 그 늦은 시간에 흔쾌히 방문 시간을 잡아 주셨다. 집은 므슈가 보내준 사진보다 훨씬 우리의 맘에 들었다. 창이 큰 도로로 향해 나 있었지만 이중창을 닫으니 도로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빛도 잘 들고 깔끔하고 적당히 낡은 게 마음에 들었다. 마치 이미 이 집을 계약한 사람처럼 쓰시던 가구까지 인계받았다.  "이 므슈는 보통 큰 문제가 없으면 선착순으로 계약을 하더라고요." 중요한 팁을 받은 우리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달리듯이 현관을 나와 부리나케 므슈에게 연락을 했다. “므슈 나 정말로 이 집을 계약하고 싶어.” “그래? 그럼 월요일 5시에 사무실로 와.” 아직 어떠한 확신도 할 수 없었지만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우리는 학원 선생님이 예쁘다고 추천해주신 오페라 가르니에를 보러 가기로 했다. 오페라 역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만에 열린 파리의 가을 하늘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미 늦은 오후라 오페라 내부는 다음에 다시 와서 보기로 하고 우리는 파리의 아이덴디티가 물씬 풍기는 거리를 여행자처럼 걸었다. 멀리 루브르가 보이는 온갖 이국 언어들이 난무하는 길을 어깨를 돌려 길을 내어주며 걸었다. 백년은 더 된 듯한 건물들 아래에 나란히 자리 잡은 키가 크고 멋진 흑인 가드들이 문을 열고 닫아주는 명품샵들을 크게 돌아, 다시 우리의 (적어도) 일 년을 품을 곳으로 어깨를 붙이고 덜컹거리며 돌아왔다. W, M 레오 2019.10.29 파리일기_두려운 날이 우습게 지나갔다
내일 할 말을 내가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것
오늘 처음으로 어학원 수업을 나갔다. 돌이켜 보니 내가 무엇을 배우러 어느 공간에 가는 일이 무려 11년 만이었다. 그래서인지 괜히 긴장도 되고 해서 어젯밤에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지난 4일간은 이곳 시간 8시면 졸음이 쏟아졌었는데.. 비가 내려 새벽같이 어두운 아침을 걸어 출근하는 낯선 생김새의 사람들의 어깨에 코를 파묻으며 고등학생 때처럼 1교시 수업을 들으러 같다. 수업시간이 다가오자 다양한 피부색과 머리 스타일을 한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조그만 강의실은 빈자리가 없이 가득 찼다. 프랑스어를 배워 본 적도 없던 엠마와 난 쏟아지는 낯선 언어에 한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하나도 안 들린다.” “큰일이다.” 그래도 같이 헤매는 그녀가 있어 버틸 수 있었고 버티다 지친 어깨의 힘이 조금씩 빠지자 책에서 길에서 봤던 단어들이 살짝살짝 들리기 시작했다. “싸 바?” “위. 싸 바.” 2시간의 첫 수업이 끝난 후 우리는 사우나에서의 탈출처럼 튀어나왔지만 서로의 표정은 나쁘지가 않았다. 비도 그치고 구름이 엹어지고 있었다.  굳이 공항까지 따라온 엄마는 마흔에 가까운 아들을 유학 보내며 마치 18살의 아들을 보내는 듯했다. 민망하고 미끄덩거려 괜스레 수속이 바쁜 듯 굴었다. 나 대신 손을 잡힌 엠마가 고개를 끄덕여 주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사실 무엇을 하러 가는 것은 아닐 텐데 무엇을 위한지도 모를 기합을 넣어야만 한다니..  비행기를 타자마자 어디선가에서 또 탈락 메일이 왔다. 결국 아무런 성공도 못 하고 도망치듯 떠나는구나 가슴이 시렸다. 벌게진 얼굴은 기압 탓으로 돌리고 얼른 눈을 감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시간을 거스르는 비행이라 자꾸 떠오르는 시간들 덕에 난 괴로운 시간을 배로 겪어야 했다. 배로 괴로워 한 손으로 잡던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멀미 덕에 잠에 든 그녀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긴 비행이 무색하게 매끄럽게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려 뜻을 알 수 없는 사인 대신 믿음직한 등을 골라 따라 걸어 입국심사도 하고 짐도 찾았다. “잠시 앉자!” 만약을 위해 잔뜩 준비한 비밀 지갑에 돈과 카드를 옯기고 가방은 죄다 자물쇠를 꺼내 걸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휴대폰이 터지지가 않았다. 공항의 출구 근처도 못 가 힘을 잃는 와이파이를 살리려 팔을 들어대며 간식히 방법을 검색해서 시도하고 시도했지만 한국에서 사서 온 영국 유심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우버를 불러야 하는데 통화도 안되고 데이터도 안되는데 어쩌면 좋지?” 한참을 공항의 입국장에 묶여 있다가 3개의 캐리어와 함께 이리 피해 주고 저리 피해 주고 하다 할 수없어 그냥 우버를 부르고 출구를 나가서 눈으로 기사님을 찾아보기로 했다. "EE로 시작하는 푸조! 푸조! EE!" 허리를 굽혀대며 오고 가는 차의 번호판과 앰블럼을 보고 있을 때  "레오?" 하는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얼굴은 몰라도 헤매고 있는 동양인이라면 자기를 부른 고객인 것이겠지. 찾아준 그가 고마웠다. 비가 오는 파리의 외곽도로는 꼼짝없이 막혀 있었고 앰뷸런스는 끊임없이 날카로운 소리를 울리며 여기저기에서 여기저기로 지나갔다. 막힌 도로의 양옆으로는 뜻을 알 수 없는 그래피티가 가득 뿌려져 있었다. 하늘도 볼 여유도 없이 움츠린 채 안 되는 핸드폰만 껐다 켰다 하며 1시간 넘게 침묵의 환영 리셉션을 받았다. 레벨 테스트를 받으러 학원에 갔다. 우리가 생각하던 레벨의 시험지와 선생님이 생각하던 레벨의 시험지 두 개를 보여주시면서 풀 수 있을 거 같은 것을 고르라고 하셨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선생님이 생각하던 레벨의 시험지를 고르고 웃었다. 그 시험지조차 제대로 다 풀기가 어려웠다. 선생님은 우리의 시험지를 슬쩍 훑어보시더니 구술시험을 생략해도 되겠다고 웃으셨다. “그래 처음부터 제대로 하는 게 좋지.” 선생님은 겉으로 말하고 우리는 속으로 말했다. 학원에서 교재로 쓰는 책을 파는 서점이 따로 있다며 주소를 알려주셨다.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곳이라고 가는 김에 구경도 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잠시 지내는 곳은 빌쥐프라는 곳으로 파리 13구에 붙어 있는 파리의 외곽 소도시이다. 이곳에는 아주 큰 병원과 의과대학 그리고 아주 큰 묘지가 있다. 작고 낮고 조용한 곳이다.  첫날 우리는 이 작은 곳에서 마트를 가는 일에도 긴장을 했었다. 너무 많이 조사를 하고 생각에 생각을 한 덕분에 프랑스에서는 소매치기가 길만 나서면 우리를 덮치는 줄 알았던 것이다. 뒤에서 오는 소리 옆에서 오는 소리, 아이들, 중학생쯤 보이는 아이들, 어른들, 노인들마다 레벨이 다른 긴장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사러 간 시테섬은 그야말로 관광지, 지하철이 몇 개가 교차하는지 모를 번화가였다. 짐을 최대한 간소하게 하고 둘 사이의 공기조차 없애고 최대한 한눈을 팔지 않고서 걸었다. 빌쥐프가 파리인 줄 알았다가 13구가 파리구나 했었는데 영화에서 본 파리는 이곳에 다 있었다.  퐁네프 다리 너머로 에펠탑이 손가락처럼 서 있고 센 강에는 유람선이 프로그램같은 물살을 그리며 지나갔다. 강 건너편 시테섬에는 날카로운 생트샤펠 성당이 서 있고 그 반대편에 회복 중인 두 얼굴 노트르담 성당이 서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관광을 할 여유가 없었기에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고 시테섬을 곧장 가로질러 생 미셀 분수 근처에 있는 지베르 죈느 서점에 가 교재를 샀다. 돌아가는 길에는 비가 제법 왔다. 카르네가 아까워 몽쥬 약국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엠마 몰래 일부러 조금 돌아 소르본 대학과 엉사드를 지나쳤다. “이게 소르본이네.” 엠마가 프로필 사진을 하라고 사진을 찍어줬다.  “어, 조금 돌아가면 엉사드도 있네.” “그래? 그럼 가보자.” 다시 길을 조금 돌아 엉사드를 향했다. 가는 길에 프랑스가 기리는 위인들이 묻힌 83미터 높이의 돔, 팡테옹이 보였다. 영화에서 배운 파리를 우리가 우습게 걷고 있구나 웃겼다. 기분이 좋아 빗속을 걷는 일도 나쁘지 않았다. 엉사드에서 굳이 마다하는 엠마를 붙잡고 사진을 찍어 준 후 우리는 마침내 몽쥬 약국을 들렸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한주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아직도 이곳에서 있는 것이 어색해서 웃음이 다 난다. 아직은 매일 아침마다 다시 긴장을 해야하고, 정말 해야할 일들, 부동산, 은행, 오피 등이 넘쳐나지만.. 내일에 쓸 기술이 하나도 없다는 것. 내일 할 말을 내가 아직 배우지 못했다는 것. 그것 하나에 우선 만족하기로 한다. 걸어서 보는 것들은 목표없이 써 보기로 한다. W, P 레오 2019.10.21 파리일기_두려운 날이 우습게 지나갔다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정오가 채 못 된 시간이었다 이른 점심을 위해 학교를 나와 마트를 찾아 걸었다 학교에서 왼쪽으로 꺾어 휘 데 뾔쁠리에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죽음을 보았다 너무나 자연스러워 한참을 뻔히 바라보았다 햇빛이 묻은 흰 주름을 따라 어림되는 덩치 아 그렇구나 더 이상 급할 일도 없어 쁘히베 데 뾔쁠리에 헝세 썽떼 병원 곁은 피가 흐르는 이에 내어주고  조금 떨어진 곳이라도 뭐 어때  수고를 감내하는 구조사의 배려 덕에 우리는 총총걸음 일상 위에서 그만 짙은 녹색 천에 담긴 이를 보았다 빛도 돌리지 않는 앰뷸런스에서 배송을 예약받은 택배처럼 차갑게 들것에 실려 천천히 길을 건너 가신 이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멈추지 않게 좋은 타이밍에 매끄러운 바퀴로 길을 건넜다 병원에는 달려 나오는 이가 없었고 문은 자동으로 열리고 닫혔다 죽음이 지나가도 아무도 멈추지 않는다 아무도 멈추지 않았고 그만이 조용히 내렸다 꿀렁이지 않았다 보도를 오르고 내릴 때도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틀고 병원을 향해 왼쪽으로 틀 때도 붙들고 있는 것들이 더는 필요가 없겠지만 다행히 우리는 점심을 거르지 않았다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지하철은 늘 만원이라 때를 놓치면 모두를 밀치고 파흐동 소리를 연발로 내지르고 때를 모르면 시끄럽게 내려야 한다 갑자기 툭 내리면 남은 이에게는 얼마간의 상처가 생긴다 가방에 쓸리고 옷이 벗겨진다 달려 나가는 파흐동 소리에 괜찮다는 말도 못 해준다 괜찮다는 말을 못 해줬다 입술을 뗄 만큼 아프지는 않아서 몸을 돌릴 만큼 가까이 있지도 않아서 매일 문은 열리고  얼마 간의 소란이 있고 문은 닫힌다 조금 넉넉하다가 더 비좁아지기도 한다 글, 사진 레오 2019.12.05 시로 일기하기_오늘 날씨 흐림
크리스마스 ‘혼자 보내기’ 가이드
크리스마스 전날부터 당일까지 어딜 가든 커플들이 지배한다. 솔로인 당신 어떻게 보낼 것인가? 솔로 커뮤니티에서 가르치는 대로 수면제를 먹던가, 전날 왕창 술에 취해 크리스마스 당일을 꿈에서 보낼 것인가? ‘크리스마스는 커플 천국 쏠로 지옥?’ 왜 크리스마스는 ‘해야 할 것만 같은 정해진 룰(커플놀이)’을 따르지 못하게 되면 “이번 크리스마스 역시 부질없었다!”라고 생각해야 하나요. 크리스마스가 당신의 머릿속에서 창조하는 이미지들은 미디어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주입하고 그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말없이 믿게 한 사회적 강요입니다. 특별한 크리스마스는 커플일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드는 겁니다. 이 가이드만 따라 한다면, 당신이 솔로든 뭐든 스스로에게 기억할 만한 ‘크리스마스’를 선사할 수 있을 거예요. 1. 당신의 집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치장하라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낼때 장식은 하려 하지않는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할만한 일이다. 당신의 집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면 공간안의 당신도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다. 2. 크리스마스 음악을 튼다 크리스마스 음악 시디를 만들거나 직접 인터넷을 통해 튼다. 집안에 퍼지는 크리스마스 노래들은 당신의 기분도 즐겁게 한다. 노래를 불러라. 민망하게 만들 그 누구도 당신 옆엔 없다. 3. 당신이 보낼 수 있을 만큼 많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라 가족, 친구, 직장동료에게 편지를 쓰며 당신은 이미 크리스마스를 누군가와 공유하고 있다. 일찍 보내놓으면 크리스마스날 그들의 답장을 읽으며 기분을 낼 수 있다. 4. 당신을 위한 선물을 사라 원하는 것을 포장하고 크리스마스때 열면 당신은 이미 선물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지만 나름 선물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5. 교회에 간다 교회에 가는 순간 이미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시간이 남는다면 교회들을 세개 이상 돌아다니며, 그 중 어떤 교회가 크리스마스에 최고인지 확인한다. 6. 당신에게 펫이 있다면 상상도 못할 선물을 선사한다 오늘 하루 나도 아까워 못먹을 음식을 선물하며, 펫의 행복과 감격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다. 7. 모르는 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한다 밖으로 나간 후 커플들 틈에 나는 어떤 특별한 일을 할 것인가? 가장 외로워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 작은 선물을 한다. 그 사람에게도 당신에게도 매우 특별한 일이 될 것이다. 8. 다른 사람들을 위한 크리스마스를 위해 자원봉사를 한다 남에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크리스마스는 당신에게도 특별함을 준다. 그들에겐 최고의 선물일것이고 그 선물은 그들 아닌 당신도 받는 것이니까. 이런게 크리스마스에 진정한 의미아닐까? "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인 ‘사랑’과 ‘감사’는 당신이 커플이든 솔로든 당신 스스로에게 혹은 어떤 이에게도 선사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요. "
최저임금 인상 후폭풍에 정부여당 '깜놀'…대책마련 시동
문 대통령 "조속한 후속 보완 대책 마련에 최선" 공정위 1번타자로 가맹점주단체 신고제, 불공정거래행위 조사 금융당국 카드수수료 인하 대책 준비, 여당도 관련법 조속 처리 내년도 최저임금이 10.9% 오른 시급 8350원으로 결정되자 소상공인들이 집단행동에 나서기로 하는 등 후폭풍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정부.여당이 서둘러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가맹본부의 불공정거래행위 조사에 들어갔고 금융당국과 기재부 등도 곧 후속조치를 내놓을 전망이다. 여당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소상공인 지원 법안 처리를 서두를 방침이다. ◇ 정부·여당 '乙과 丙 대결 구도' 당혹 (사진=청와대 제공) 최저임금 인상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만큼 정부와 여당은 그 자체는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최저임금 외에 불합리한 비용부담을 줄이는데 정책방향을 맞추고 있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목표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늦춰진 것에 대해 사과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일자리 안정자금뿐 아니라 상가 임대차보호, 합리적인 카드 수수료와 가맹점 보호 등 조속한 후속 보완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정부.여당의 대책은 최저임금 인상은 상수로 두고 가맹본부와 건물주, 카드사 등에 지급하는 가맹수수료, 임대료, 카드수수료 등의 인하를 통해 현재 '을과 병의 대결' 구도를 '갑과 을의 불공정 해소' 구도로 돌리는데 맞춰질 전망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이에 가장 먼저 나선 곳은 공정위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날 오전 하도급법 개정안에 대한 설명을 위해 기자간담회를 열었지만 이 자리에서 예정에 없던 가맹사업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공정위는 가맹점주 단체 신고제를 도입, 이들이 가맹수수료를 비롯해 거래조건과 관련해 가맹본부와 협의를 벌일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현행법상 이미 가맹점주의 단체구성권과 협의권이 보장돼 있지만 그동안 가맹본부들이 이들 가맹점주 단체의 대표성을 문제삼아 협의에 제대로 임하지 않았다. 따라서 일정한 요건을 갖춰 신고된 가맹점주 단체가 협의를 요구할 경우에는 가맹본부가 반드시 협의를 개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마련해 입법화할 방침이다. 공정위는 이와함께 올 하반기에 불공정거래행위 조사를 가맹본부에 집중할 방침이다. 실제로 공정위는 법위반 혐의가 큰 6개 가맹본부와 관련해 지난주부터 현장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동시에 200개 대형 가맹본부와 거래하는 1만 2천개 가맹점을 대상으로 서면조사를 실시해 해당 가맹시장의 법위반 실태를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 카드수수료 인하 등 관련 대책 쏟아질듯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에 반발하고 있는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가 16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사무실에서 전체회의를 하기 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월 1회 공동휴업과 심야할증 도입, 종량제 봉투와 교통카드 충전 등에 대한 카드 결제 거부 등의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사진=이한형 기자) 소상공인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는 카드수수료와 관련해서도 금융당국 움직임이고 있다. 금융위나 금감원은 영세 가맹점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 경감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영세가맹점에 한해 신용카드를 반드시 받도록 하는 의무수납제를 폐지하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카드수수료율 인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카드수수료 인하와 관련해서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서울페이'도 주목해볼만 하다. 소비자가 서울시가 제공하는 일종의 간편 결제시스템인 서울페이를 사용하면 수수료를 0%에 가깝게 인하할 수 있다는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또 기재부와 고용노동부 등도 조만간 최저임금 인상분을 어느정도 상쇄할 수 있는 일자리 안정자금 확충 등 지원책 등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 역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소상공인 보호와 지원 관련 법안 처리를 서두를 방침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소상공인을 위해 카드 수수료 제도를 보완하고 9월 정기국회에서 상가임대차 보호법 등 민생입법을 최우선으로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홍영표 원내대표도 "국회는 상가법, 가맹사업법, 카드수수료 문제 등에 대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