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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vs. 2017년



최근 FAZ 기자(그냥 기자라 했지만 실제 그의 직위는 좀 높다)와 얘기하면서 새삼 깨달은 점이 하나 있었다. 내가 FAZ 정식 구독자라 얘기하니 매우 좋아한 것도 있을 텐데(...), 그가 말한바를 보면, EU가 수 세대를 거치면서 사람들 개개인을 유럽인으로 끈적하게 붙여 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유로 위기나 Brexit를 보면서 유럽이 결국 깨지리라 보는 시각이 매우 순진한 시각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이 말을 꺼냈다.

지식인이 아닌 중산층 시각에서 유럽은 하나의 fait accompli(흔히들 ‘기정 사실’로 번역하지만 그 뉘앙스가 보다 섬세하게 광범위하다)이기 때문이다. 즉, 서유럽에서 투표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들 과반수 이상은 하나의 단체(이게 “유니온”인지 “커뮤니티”인지 구분할 일이지만)로서 유럽을 지지한다고 봐야 할 테고, 이는 국가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을 영국이 간과하고 있다. FT의 이 심층 취재 기사도 바로 그 사항을 지적하고 있다.

영국은 총선의 어중간한 승리로 약해진 메르켈이 독일 내 기업들의 목소리 때문에 영국에 대한 과도한 요구를 줄이리라 보고 있으며, 언제나처럼 마크롱의 프랑스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대를 안 하고 있다.

이게 1960년대 초, 그리고 1970년대 초, 영국의 EEC 가입 때에도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었다. 1960년대에 드 골 대통령이 영국의 EEC 가입에 거부를 행사한 일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때 상황이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당시 영국은 프랑스의 비현실적인 요구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머지 다섯 개 국가(독일,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가 영국의 EEC 가입을 환영하고 ‘환호’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서 드 골이 등장하여 거부를 했다고 하는데(당시 해럴드 맥밀런은 드 골에게 핵무기 노하우 제공까지 제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드 골의 입장은 강경했다, 참조 1), 나머지 5개 국가는 드 골 편이었다. 이건 영국이 미처 예상하지 못 했던 일이었다.

물론 모두들 아시다시피(?) 마거릿 대처의 EEC 가입 운동을 통해(참조 2), 영국이 EEC 가입을 1970년대에 완성한 점은 사실이기는 한데, 1970년대의 협상도 영국의 욕심은 끝이 없고, 실수를 반복했다. 독일이 좀 더 영국에 유화적이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유럽은 뭉쳐져 있고, 유럽이 개별 국가와 협상할 때의 협상 포지션은 단 하나다. “다 받아들이든가, 당장.(swallow the lot, and swallow it now)”

기사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EU 가입 협상을 할 때와 동일하다. 기본적으로 가입 후보국은 EU의 각종 규정(acquis communautaire)을 모두 “받아들여야” 대화가 시작된다. (당연히 수 없이 많을 텐데, EC는 이걸 정리해 놓지도 않았다고 한다.) 1970년대 영국이 결국 EEC 가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 “받아들였다”. 다만 이행 기간은 허락을 받았고, 투표권도 가입할 때부터 있었다.

지금은? 다 “받아들여야 한다”. 투표권은 2019년부터 사라지고 말이다. 이행 기간은 허락을 받을 것이다. 이건 터리사 메이의 입장이 아니다. EU의 입장이다. EU 시민 권리이든, CJEU의 관할권이든 다 일단은 이행 기간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영국도 “이혼금”을 지불할 생각으로 협상에 임한다고 한다.

문제는 메이의 입장이 약하다는 점에 있다. EEC 가입 협상 때에는 6개국 중 드 골이 너무나 튀어 있었기 때문에 다소 입장이 분열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7개국임에도 불구하고 모두 일치단결해 있다. 즉, 이 기사도 그렇고, 참조 1의 LSE Piers Ludlow 교수의 글도 그렇다.

지금의 Brexit 협상은 70년대보다는 60년대에 더 가깝잖을까 싶다는 점이다. 해럴드 맥밀런 정부는 당시 (과장하자면) 유럽 때문에 무너졌었다. 물론 직접적인 이유는 프로퓨머 스캔들(참조 3) 때문이었지만 말이다.

PS. 참조 1의 기사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를테면 GATT 케네디 라운드(1962-67, 참조 4) 때부터 EEC는 미국을 상대로 일괄타결을 고집하여 관철시킨 이력이 있었다. 미국은 EEC의 CAP 수정을 결국 실패했고 말이다. 미국도 못 한 걸 영국보고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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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Swallow the lot, and swallow it now’: Britain is, and was, deluded about its negotiating power with the EU(2017년 11월 9일): http://blogs.lse.ac.uk/brexit/2017/11/09/swallow-the-lot-and-swallow-it-now-britain-is-and-was-deluded-about-its-negotiating-power-with-the-eu/

2. 노동당은 언제까지 친유럽일까(2015년 7월 2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412646759831


4. 캐럴라인 케네디 기고(2015년 6월 24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346894569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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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네요~~^^
ㅎㅎ 바쁠 때는 글을 안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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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은 캐나다+
터리사 메이의 충신 닉 티모시(참조 1)를 기억들 하실 텐데, 총선 패배(!)로 인하여 사임(을 당)했었다. 워낙 실무형 인간이기도 하고, 글도 잘 쓰기 때문에 나는 그의 팬. 그의 이번 칼럼도 브렉시트 이후의 영국을 깔끔하게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보죠가 말하는 것보다 티모시가 말하는 편이 훨씬 알아듣기 쉬운데, 결론을 한 마디로 하자면 아래와 같다. (이미 말한 듯 한데, 내 예상도 같다.) 캐나다+로 가즈아아아. 조지 소로스가 출동해서, Brexit에 대한 제2의 국민투표를 시도하자는 여론도 있기는 하지만, 일단 이건 말이 안 된다. 현실적으로 웨스트민스터를 통과할리 만무하고(아셨나? 노동당도 요샌 브렉시터다), 통과한다고 해도 투표지 항목이 O/X가 될 수 없다. O/Y(!?)/X가 돼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참조 2). 그의 의견이 현실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관세 동맹부터 짚어 보자. 메이 총리가 리스본 조약 제50조의 발동을 알린 서한(참조 3)을 보면 단일 시장(single market)은 분명 영국이 택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쓰여 있다. 그렇다면 아일랜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한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관세동맹에 들어가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이 (사실 매우) 강하다. 일단 EU 회원국이 아니면서 단일 시장에 들어간 국가는 모나코와 노르웨이 뿐이다. 티모시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는데, 말하자면 이렇다. 모나코는 외교권을 프랑스가 행세하니 굳이 EU 회원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노르웨이의 경우 EEA를 통해 단일 시장에 접근하지만, 그만큼의 희생을 했다. 노동력의 자유로은 이동 및 FTA 교섭권 반납(?), ECJ 판결을 따르는 것(참조 4) 등이다. 사실 노르웨이 옵션을 그동안 많이 거론하긴 했되, 노르웨이의 위치를 자세히 인식하고 있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노르웨이는 말하자면, 일종의 "EU라는 덫"에 발목 잡혀 있다). 터키도 마찬가지. 터키는 EU 회원국이 아니지만, FTA 협상을 하려면 EU가 먼저 타결한 나라하고만 해야 한다. 즉, 그 의미를 알고 있다면 영국 입장에서 관세 동맹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 이는 두 번째 이유, 무역 협상 교섭권으로 연결된다. 관세 동맹에 들어간다면 모든 무역 협상을 EU와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국은 한국은 물론, 짝사랑하는(참조 5) 미국과도 FTA를 먼저 체결하지 못 하게 된다. 세 번째 이유는 WTO. 이 글에는 없지만 내가 예전에 쓴 글(참조 6)이 좀 도움이 될 것이다. 영국 내 일각에서(...라고 쓰고 필립 해먼드라 읽는다) 관세 동맹을 추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WTO의 관세양허 때문일 것이다. (+아일랜드 문제도 해결된다.) 영국의 EU 회원 탈퇴가, WTO 회원 탈퇴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관세 양허 일정과 TRQ, 원산지 규정 협상을 모두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WTO의 MFN rate을 그냥 붙이면 되는 것 아닌가....가 아니다. 그렇다면 제일 깔끔한 결론은 서비스 부문을 제외한 무역 협정(FTA)밖에 없다. 유럽 대륙 국가들이 워낙 영국 상대로 무역 흑자를 내니 당연히 FTA를 하려 할 테고, 영국도 하는 편이 유리하다. 여기에 아일랜드 문제(우리나라 FTA에 있는 개성공단 챕터를 업그레이드해서(!) 갖다 쓰면 되잖을까? 원산지 규정을 대폭 손질해야 하겠지만 말이다)와 서비스 부문의 문제를 가미하면! 바로 캐나다+ 되겠습니다. EU-캐나다 FTA의 확장판이라는 의미다. 합리적인 이행기간(?)을 끝내고 나면 이게 제일 현실적이다. 물론 그 기간 동안 영국이 계속 난장판이 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자중지란(...)을 통해, 점점 하드 브렉시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 참조 1. 마르틴 젤마이어와 닉 티모시(2017년 4월 13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113005159831 2. 리스본 조약 제50조를 수용? EU 잔존? 이렇게 간단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국민투표를 의회에 통과시키려면 결국 hard-remainer들(!)과 hard-brexiter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즉, 투표지는 "제50조? / EU 잔존? / HARD?" 이렇게 나가야 할 것이다. 제50조의 수용 범위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는 난장판 때문이기도 하다. 3가지를 묻는 국민투표는 매우 현실적이지 않다. 3. Prime Minister’s letter to Donald Tusk triggering Article 50(2017년 3월 29일): https://www.gov.uk/government/publications/prime-ministers-letter-to-donald-tusk-triggering-article-50/prime-ministers-letter-to-donald-tusk-triggering-article-50 4. 꿩보다는 닭(2017년 8월 2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528720629831 5. 보잉 vs. 봉바르디에(2017년 10월 1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666571714831 6. Brexit와 WTO(2017년 3월 10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003643834831
국왕의 옆자리
중국과 우리나라 아니, 다른 동아시아 국왕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기본적으로 국왕이 앉을 때는 배북남면(背北南面), 즉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보며 앉는다. 여담이지만 그래서 국왕 기준에서 좌의정이 우의정보다 더 높다는 개념이 나온다. 좌상우하(左上右下, 참조 1)가 적용되는 것이다. 다만 어좌(throne)는 1인용, 왕세자가 만약 같이 있다면 국왕 기준에서 왼쪽에 서거나 앉는 것이 맞을 일이다. 그러나 왕비가 등장한다면 어디에 앉을까? 제아무리 검색해봐도 나오지를 않아서 시원하게 해결은 못 했지만, 서양의 국왕들은 국왕 기준 오른쪽에 왕세자를 두고, 왼쪽에는 배우자를 두고 앉는다. (서양의 군주들이 배북남면을 지킬 것 같지는 않다.) 출전이 위키피디어라서 좀 그렇기는 한데, 의회 개회식을 할 때의 사진을 보면 찰스 왕세자는 국왕 엘리자베스보다 밑단에 앉지만, 국왕의 오른쪽에 앉는 것으로 되어 있다(참조 2). 실제로 국왕의 오른쪽은 중요한 자리다. 식사 테이블에 앉을 때에도 당연히 국왕은 중심에 앉는데, 관행적으로 guest of honour는 국왕의 오른쪽에 앉는다(참조 3). 첫 번째 코스가 돌 때 국왕은 오른쪽 손님에게 말을 걸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더 찾아보자면 영국만 그렇지 않다. 어지간한 유럽의 군주국들은 국왕 기준에서 왼쪽에 배우자(consort)가 앉는다. 이게 영국의 경우 나중에 찰스 왕세자가 국왕에 오른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현재의 필립공의 호칭은 prince consort이다. 찰스가 국왕이 된다면 찰스 기준에서 왼쪽에 콘월 공작부인이 queen consort로서 앉아야 하는데, 그녀가 과연 그 호칭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다. 만약에 말이다. 콘월 공작부인이 queen consort를 인정받지 못 한다면(가령 princess consort, 참조 4) 그녀는 찰스의 왼쪽에 앉을 수 없다. 한 단계 낮은 곳으로 가서 앉거나 서 있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엘리자베스 국왕께서 콘월 공작부인을 이제는 좀 받아들이셔도 되잖을까… p.s. 국왕은 설사 드라마에 나오는 왕좌라 할지라도, 전통에 따라 남의 왕좌에 앉지 않는다. 그래서 엘리자베스는 왕좌의 게임 세트장에 있는 아이언 쓰론에 앉기를 점잖게 사양했다(참조 5). -------------- 참조 1. 풍수지리에서의 개념이기도 한데, 서경(書經)에도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북쪽을 등지고 앉는 경우, 왼쪽에서 해가 뜨잖던가? 그래서 좌상우하, 반대로 묘나 사당에서는 우상좌하(右上左下)이다. 저승 세계에서는 해 지는 쪽이 우위인 것이다. 2. State Opening of Parliament: https://en.wikipedia.org/wiki/State_Opening_of_Parliament 3. The six do's and don'ts of meeting the Queen(2019년 8월 9일): https://www.hellomagazine.com/royalty/2019080976279/six-dos-donts-meeting-queen-etiquette/ 4. What Will Camilla's Title Be When Prince Charles Becomes King?(2020년 3월 2일): https://www.harpersbazaar.com/celebrity/latest/a24594447/when-prince-charles-becomes-king-camilla-queen-consort/ 5. The amazing reason Queen Elizabeth refused to sit on the Iron Throne(2019년 2월 22일): https://www.wearethemighty.com/entertainment/queen-elizabeth-refused-sit-throne?rebelltitem=1#rebelltitem1 6. 사진 출처: https://www.flickr.com/photos/britishmonarchy/14158547500
이끌든가, 나가든가
내가 이 Spectator를 인용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보리스 존슨이 한 때 편집장이었던 유서 깊은 보수당 매체다. 좋게 말하면 보수 오브 보수의 기관지 역할, 나쁘게 말하면 꼰대들의 집합...인데, 보수당 민심이 어떤지 알기 위해서는 매우 훌륭한 주간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The Times도 빼놓을 수는 없을 텐데, 이 The Spectator도 그렇고 The Times도 그렇고 1日1메이때리기를 실천하는 중(FT도 마찬가지랄 수 있을 텐데 빈도 수가 좀 덜하다). 거의 하루에 한 번씩 메이는 물러나라고 한다는 얘기다. 이 칼럼도 마찬가지다. 아예 다른 은하계를 살고 있는(참조 1) 터리사 메이는 이끌든가, 아니면 나가야 한다. 일단 Brexit 이후 무역 협정은 어때야 하는지, Brexit 이후 EU와의 관계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영국 총리라면 마땅히 청사진을 내야 할 텐데 아무런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제일 큰 잘못이다. 게다가 기회도 많았다. 올해만 하더라도 다보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메이 말로는 2월 뮌헨 안보회의 때 뭐라도 말하겠다...인데, 과연 1922 위원회(1922 Committee)가 그 전까지 소집되지 않을까(참조 2)? 오히려 벨기에가 "캐나다++"(여담이지만 내 예상이 바로 요것)을 거론하고, 이탈리아가 "금융 서비스는 꼭 탈퇴 협상에 포함되어야 함"이라 주장하는데, 정작 영국은 아무런 말이 없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필립 해먼드가 관세 동맹 유지를 거론하고, 브렉시터들은 여기에 반발하고 등등, 내각 내에서 상당히 엉망진창이라고 한다. 메이가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순전히, 지금 메이가 물러날 경우 보수당이 쪼개지면서 새 총선이 열리고, 거기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리라는 예상 때문이다. 물론 JRM question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하드-브렉시트를 줄기차게 주장하는 Jacob Rees-Mogg가 신예 스타로 떠오르면서 해먼드를 경질하라는 등, 당내 질서가 안 잡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내각 사이에서, "내가 지금 홧김에 사임하면, 내각이 무너진다"라고 안 느낄 수 없다. 말그대로 하우스 오브 카드. 물론 보리스 존슨과 마이클 고브는 언제나 칼을 갈고 있을 것이다. 대놓고 칼을 찌르는 영국 정치가 지금 만큼 재미날 때도 드물 듯 하다. 좀 있으면 영국 지방선거 시즌이다. ---------- 참조 1. 메이, 융커와 식사를 하다(2017년 10월 23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705033939831 2. 메이에게 남은 열흘(2017년 6월 18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322543844831
봉황당 ; 홍대 연남동
저에게 홍대는 항상 술 마시는 곳 가끔 공연보는 곳이였어요 이 날도 역시 술자리가 있던 날이였는데 리버풀팬 둘이서 축구보러 가야된다고 난리쳐서 리버풀 성지라는 봉황당에 다녀왔어요 늦은 포스팅이라... 2017.11.26.(일) 02:30 경기였는데 늦게가면 자리 없다고 해서 자정이 되기도 전에 봉황당에 입성햇어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서부터 영국으로 이동한 느낌이에요 화장실 입구도 레플리카를 입고있어요 다른 가게들과는 다르게 카드키? 여튼 센서로 여는 시스템이였어요 화장실 앞에서 사람들끼리 돌려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경기가 3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역시 리버풀 성지답게 앉을 자리가 없었어요 유니폼 입고 있는 분들도 있고 뭔가 느낌이 이상하더라구요 진짜 이런 느낌의 펍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였어요 겨우 서있었는데 직원분이 앞에 카펫트자리 만들어주신다고 했어요 드디어 카펫트에 앉았는데 맥주를 둘 곳이 없어서 다리 옆에 뒀어요 쏟지않게 조심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뭔가 술값이 비쌀꺼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저렴하더라구요 정확한 가격은 생각이 안나는데 외국 생맥이 7,000~ 국내 생맥은 절반 가격정도였어요 더블린갔을 때 런던더비 본적 있는데 정말 맥주 한 잔으로 축구 끝날 때 까지 보는 문화더라구요 물론 우리나라는 짠짠 문화니깐 스겜스겜하는데 이렇게해서 영업이 되실까 걱정도 됐어요TAT 저랑 일행들은 경기끝날때까지 안주없이 맥주만 2잔씩 마셨는데 괜히 미안하더라구요.. 경기는 진짜 꿀잼이였어요 요즘 10시면 자는데 진짜 간만에 밤새서 놀다왔어요 경기는 아쉽게 1:1 스브스 진짜 미침ㅋㅋㅋㅋㅋㅋㅋ 사랑은 무승부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빵터졌어요 진짜ㅋㅋㅋㅋㅋㅋ 사랑은 무승부로 끝낸 봉황당에서 정말 재밌는 시간 보내고 왔어요 다음에 또 오고싶을 정도였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여럿이서 다 같이 하는 건 재미있네요 봉황당 ; 홍대 연남동
올리베티 M1
뭔가 아쉬워 하나 더 쓰는 주말 특집, 게다가 지금 올리베티에 대한 책을 열심히 읽는 중인지라 더 와닿는 주제다. 먼저 짤방(참조 1)을 봅시다. 이 짤방은 딱 봐도 아실 인물인 단테 알리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이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손가락을 들어 한 타자기를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테는 언제나 엄한 얼굴(보티첼리를 탓합시다, 보티첼리를)이지만 여기서 특히 심각하게 알리는 말이 포스터에 쓰여 있다. 이탈리아 최초의 타자기, 이브레아의 올리베티 회사라고 말이다. 엄숙함과 근대성을 골고루 갖춘 1912년 포스터로서, 베네치아 출신 화가 Teodoro Wolf Ferrari가 그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타자기의 이름이 M1이었다는 사실이 앱등이로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미국에서 널리 쓰이는 언더우드 타자기(나중에 올리베티가 언더우드를 인수한다)를 봤던 카밀로 올리베티(Camillo Olivetti, 1868-1943)가 이탈리아 해군 납품을 시작으로, 이탈리아에서 처음 상업적으로 만들어 판매한 타자기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연도를 보시라. 세계대전이 터졌기 때문에 판매가 성공적이었다 말하기는 어려웠고 이윤도 거의 못 남겼다고 한다. 다만 카밀로 올리베티 자신이 했던 (매우x100) 중요한 디자인 관련 발언이 하나 있습니다. “타자기는 수상한 취향의 장식적 요소로 뒤덮힌 장식품이 아니라 진지한 동시에 우아한 모양새를 가져야 한다.”(참조 2) 어디서 많이 들어보신 말 아닌가?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참조 3) 올리베티 M1은 세계적으로 수집 대상이기도 하고, 기계적인 복잡성 때문에 제조에 25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M1 칩을 달 맥 제품들이 더 기대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애플이 설마 이 타자기에서 칩 이름을 땄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애플과 제일 닮은 기업으로 나는 예전의 올리베티를 항상 떠올리는데… 여백이 부족하여 다음 기회에 쓰겠다. -------------- 참조 1. 타이틀이 매우 로맨틱하다. La rosa nel calamaio. Appunti su un’impresa creativa e sulla sua comunicazione(2013년 6월 12일) : http://interpab.blogspot.com/2013/06/olivetti-story-la-rosa-nel-calamaio.html 2. «La macchina per scrivere non deve essere un gingillo da salotto, con ornamenti di gusto discutibile, ma deve avere un aspetto serio ed elegante nello stesso tempo» 출처: Olivetti: fascino senza tempo dalla MP1 alla Valentine(2011년 2월 20일): https://www.teknoring.com/news/progettazione/olivetti-fascino-senza-tempo-dalla-mp1-alla-valentine/ 3. 기능은 형태를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Louis H. Sullivan 1856-1924)이고, 꼭 그렇지는 않지만 거칠게 말하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결국 바우하우스 전통으로 흘러간다. 내 생각에 올리베티의 경우는 바우하우스 전통과 닿아있다고 본다. 장식에 대한 저 혐오성 발언(참조 2)을 보시라. 바우하우스 100년(2019년 1월 8일): https://www.vingle.net/posts/2553277
이탈리아식 이혼
이탈리아 역사를 보면 의외로 이혼이 법적으로 허용된 때가 1970년부터였음을 알 수 있다. 생각보다 꽤 현대에 와서야 허용됐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이전에는 결혼이나 이혼에 대한 것이 민법에 없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어지간하면 현대 이탈리아 역사에 꼭 끼어드는 무솔리니 때문이었는데… 한 마디로 하자면 무솔리니는 이혼을 막았고, 그의 아들과 며느리는 이혼을 완성해냈다. 어지간한 유럽 나라들이 다 매한가지였지만 이탈리아는 가톨릭의 본산지답게 결혼 제도에 대해서는 교회의 개입이 거의 필수적이었다. 물론 나폴레옹이 잠시 점령했을 때에는 나폴레옹 민법에 따라 이혼이 허용됐었으나… 나폴레옹이 물러난 이후로는 결국 다시 교회가 결혼을 관장했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무솔리니가 이혼을 막았다고 내가 표현했을까? 바로 라테라노 조약(Patti Lateranensi, 1929, 참조 1) 때문이다. 보통 바티칸의 독립을 인정한 이탈리아 왕국과 바티칸 간의 조약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이탈리아 왕국의 총리가 바로 무솔리니였다. 그런데 이 조약이 다루는 것 중에 하나가 결혼의 인정, 이걸 조약상 가톨릭 교회에 모두 맡겼다. 관습화되어왔던 것을 성문법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잠깐, 실제 라테라노 조약(제34조)을 보면 “혼인의 무효(nullità del matrimonio)”라는 언급이 나오는데 이혼이 왜 안 됨?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가톨릭 교회에서 이혼은 가능합니다, 고갱님. 교회 최고법원(참조 2)의 혼인 무효 허락을 받으면요(참조 3). 일반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 최고법원까지 이용할 수 있겠는가? 무솔리니 이후 60년대까지 이혼을 원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독립국인 산마리노에 가서 이혼을 해갖고 공증받는 절차를 이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무솔리니의 몰락 이후의 이탈리아 공화국이 (무려 헌법에 적었다!) 라테라노 조약을 그대로 승계했기 때문이다. --------- 마리아와 소피아 로렌, 1960년대에 촬영됐다. 역시 주말 특집, 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소피아 로렌의 동생이 등장합니다. 마리아 시콜로네(Maria Scicolone, 1938-현재)가 무솔리니의 네 번째 아들인 로마노 무솔리니(Romano Mussolini, 1927-2006)와 1962년 결혼한 것이다. 언니인 소피아와 함께 치네치타(Cinecittà, 영화촬영소이다)에서 그를 만나 사귀게 된 것이었다.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였고 여자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다. 부인에게 고난의 세월이 시작됐다. 하루는 남편의 옷에서 길다란 갈색 머리카락을 발견한다. 원래 금발인 그녀는 결혼 생활 유지를 위해 자기 머리를 갈색으로 염색했었다. 그래야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금발의 여배우(Clara Puccini)를 사귀면서부터는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남편은 1971년 그녀를 떠났고, 1970년에 이혼법이 통과된 덕택에 1976년 정식으로 이혼할 수 있었다. 한편 다행히도? 1974년의 이혼법 반대 국민투표(참조 5)는 유지로 결론. 이혼에 5년이 걸린 이유는 당시 이혼 숙려기간이 5년이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1년(상호 동의의 조건에 따라 6개월)으로 줄어있다. 마리아는 그길로 병원에 들어갔는데, 그녀 담당의였던 이란 출신 의사, Abdul Majid Tamiz와 두 번째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흥미로운 건 그녀의 딸 중 하나인 알레산드라 무솔리니(Alessandra Mussolini), 현재 베를루스코니의 포르차 이탈리아 소속이며 2019년까지도 유럽의회 의원이었다. 오랫동안 의원이었던 그녀가 (이름 외에) 유명해진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한 번은 2006년 유럽 최초의 트랜스젠더 국회의원(공산주의재건당, PRC)이었던 Vladimir Luxuria로부터 파시스타라는 공격을 받았고(그 주장이 맞긴 맞을 것이다), 그녀는 “호모가 되느니 파시스트가 되는 편이 낫다(참조 6)”라 했었다. 다른 한 건은? 로마노 무솔리니가 금발 배우와 새로 결혼하여 낳은 또 다른 딸인 라켈레(Rachele) 무솔리니다. 알레산드라와 라켈레는 예전부터 매우 앙숙, 그러나 나란히 할아버지의 유지를 잇고 있는 중이다. 라켈레의 소속정당은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의 이탈리아의 형제들(Fratelli d'Italia), 레가와 매우 가까운 정당이다. -------------- 참조 1. 바티칸 사이트에서 원문을 봅시다. 결혼 관련은 제34조에 있다. 이 웹사이트는 거의 90년대 후반 웹사이트의 느낌이다. http://www.vatican.va/roman_curia/secretariat_state/archivio/documents/rc_seg-st_19290211_patti-lateranensi_it.html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 라테라노 조약은 조약(trattato)과 재정조약(CONVENZIONE FINANZIARIA), 그리고 콘코르다토(CONCORDATO)로 나뉘는데, 이탈리아 정부 간섭 없이 신도들의 제도를 교회가 관장하게 하는 부분이 바로 콘코르다토에 있다. 이건 번역어가 따로 없으며, 바티칸과 타국이 맺는 조약 자체를 콘코르다토라 부르기도 한다(보통은 불어식 표현인 콩코르다라 말한다). 2. Rota Romana, 이탈리아어 풀네임으로는 Tribunale della Rota Romana라 부른다. 천주교 사제나 몬시뇰 겸 신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교회 행정조직과는 별개로 돌아간다. 사용 언어는 라틴어. 3. 교리상 결혼/혼인은 배우자 사이를 인간이 떼어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이 결혼이 원래부터 무효였다는 상태를 “인정(riconoscimento di nullità)”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데, 현대 이탈리아 민법으로는 소정의 절차를 통해 이혼으로 간주된다. 다만 “기술적으로” 이탈리아 민법이 이 가톨릭 최고법원의 결정을 뒤엎을 수도 있는데 거기까지는 내 지식의 밖에 있다. 4. 짤방도 이 기사에서 가져왔다. Célébrités : La scandaleuse histoire d'amour entre Maria Scicolone, la sœur de Sophia Loren, et le fils de Mussolini(2021년 2월 26일): https://www.vanityfair.fr/culture/people/story/maria-scicolone-la-soeur-de-sophia-loren-qui-a-scandalise-la-nation/13491 5. Referendum abrogativo in Italia del 1974 : https://it.wikipedia.org/wiki/Referendum_abrogativo_in_Italia_del_1974 6. Mussolini a Vladimir Luxuria "Meglio fascista che frocio”(2006년 3월 9일): https://www.repubblica.it/2006/c/sezioni/politica/versoelezioni35/muslux/muslux.html
대처와 팬더
기사 링크 12월 마지막 평일 특집, 대처와 팬더 영국의 국립 문서 보관소가 20년 묵은 기밀 서류를 공개하고 있는 중이다. 이 중에 재미나는 내용이 있어서 인용한다. 팬더와 철의 여인이다. 금번에 공개된 기밀 문서에 따르면, 대처 여사는 팬더와 함께 홍보하자는 의견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원래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던 런던 동물원에서 총리실에게 요청을 했었다. 방미하실 때 콩코드 비행기 뒤편에 팬더를 태우고 가자고 말이다. 미국에 있는 팬더랑 짝짓기 해주기 위함이었다. 대처 여사는 느낌표까지 동원하여 손수 메모를 쓰셨다. "팬더와 정치인은 좋은 징조가 아니죠!" 팬더가 어째서 불운의 상징일까? 주된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첫 번째는 에드워드 히스다. 원래 "테디 히스"라 불렸던 히스 총리는 사진을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둥글둥글, 귀염상이다. (어떻게 보면 옐친을 좀 닮으셨다.) 다만 결정적으로 영국에 팬더를 들여온 장본인이 바로 히스였다. 1974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당시 중국은 히스에게 팬더 두 마리, Chia-Chia와 Ching-Ching을 선물로 줬었다. 세월은 흘러 대처가 수상이 된 후인 1981년의 어느 날, 때마침 미국 스미소니언 동물원에서 영국 런던 동물원에게 수컷 팬더를 데려와서 소개팅을 시키자는 제안이 나온다. 닉슨이 중국에서 받아 온 팬더다. 물론 대처가 방미할 때 데려가서 화려하게 데뷔시키자는 계획은 불발했다. 그러나... 국제 커플이 잘 될 가능성도 그 만큼 낮은 것일까? 미국 팬더와 영국 팬더의 소개팅도 불발에 끝났다. 사랑이 안 되면 과학으로 해 보자! 인공 수정도 실패. 둘은 애초에 궁합이 안 맞았던 모양이다. 두 번째 이유는 BBC의 영화, Very Important Pandas(1976)이다. 가령 자유 진영에, 카터 전 대통령이 독재자 킬러라고 한다면(카터를 만나는 독재자들은 대부분 사망), 공산 진영에는 판다가 있다. 중국이 팬더를 선물로 준 지도자들은 하나 같이 불운한 운명을 맞이했었다. 1. 리처드 닉슨: 1972년 방중 시, 팬더를 선물로 받았다. 1974년 사임 2. 에드워드 히스: 1974년 방중 시, 팬더를 선물로 받았다. 1974년 사임 3. 다나카 가쿠에이: 1971년 방중 시, 팬더를 선물로 받았다. 1974년 사임 대처 여사가 손서리 칠 만하다.
Brexit 협상안 도출
https://www.thetimes.co.uk/article/may-accused-of-betrayal-as-she-unveils-brexit-deal-ks9frvbwz#_=_ 오늘 드디어 EU와 영국의 협상단들 간에 브렉시트 협상안 드래프트가 나왔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걸로 브렉시트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아주 간단하게 절차를 말씀드리겠다. EU 입장에서는 그냥 기다리면 된다. 내각에서 합의 도출 -> 웨스트민스터(하원) 표결 -> 고고씽 -> … 쉽죠? 일단 언론 보도에 나온 내용부터 봅시다. 브렉시트 관련해서 제일 화제가 됐던 북아일랜드 백스톱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생긴다. trade nerd 용어로 말씀 드리자면 북아일랜드 백스톱(CU)가 생기고, 물리적인 국경이 아일랜드 해에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백스톱을 위한 백스톱(영국 전체에 대한 CU)가 생긴다. 이렇게 보면 영국은 관세동맹에 남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실 수 있겠다. 기한이 있다. 이행기간(transitoin period)이 지난 후, 영국과 EU의 새로운 협정(제일 가능성 높은 것은 아무래도 EU-Canada FTA+일 것이다)이 생기기 전까지다. 게다가 북아일랜드의 백스톱 규정과 영국 본토(+스코틀랜드)의 백스톱 규정이 약간 다를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수영장(swimming pool)”이다. 수영장 안에서 북아일랜드는 깊고 깊은 관세동맹에 묶이고, 영국 본토는 수영장 수면 쪽에 떠 있어서, 일부만 관세동맹을 받아들인다는 개념이다. 다만 영국은 EU의 규정(국가 보조금 및 환경 규제, 노동권 보호, 경쟁법(!!) 등)을 따라야 한다. 언제까지? 2030년까지. 물론 500 페이지에 달하는 전체 드래프트가 공개돼야(즉, 내각 협의에서 통과돼야)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을 테지만, 위에 말한 것만 보시라. 누가 분노할지 뻔히 보인다. 기사 보시면 아시겠지만 당연히 하드 브렉시터들은 반대이고, 연정을 꾸리고 있는 북아일랜드 DUP도 반대이고, 노동당도 반대이다. 그렇다면 의회 통과 못 한다는 얘기이고, 이 협상 역시 체커스 플랜처럼 죽는다는 이야기? 꼭 그렇지는 않다. Remainer들은 EU가 인정한 협상안에 NO를 던지기 망설일 것이며, 보수당 의원들은 당장 다시 이뤄질 수 있을 총선을 하기 싫어한다(노동당 때문이다). 노동당의 해법은 이렇다. 메이에게 반대하고 총선을 치른다음(내년 2월쯤?), 코빈 동지, 아니 코빈 총리께서 멋지게 원래의 메이 드래프트를 갖고 협상에 타결한다는 시나리오다. 다만 “꼭 그렇지는 않을” 가능성이 낮기는 낮다. 그만큼 의회 통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메이 불신임에 재총선(왜냐, 제이콥 리즈 모그/보죠는 메이의 실각만을 바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이 집권할 경우라 하더라도 EU가 재협상에 나설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경우는 그냥 노-딜이 되든가 아니면 완전한 관세협정 편입의 형태가 될 것이다. 두 번째 국민투표는? 잊어라. 노동당에게는 집권이 최우선이다. 이 경우라면 “정치적인 선언”이 몇 페이지 추가될 가능성이 크다. 일단 메이는 도박을 걸었다. 이번에야말로 운명이 걸려있을 텐데, 처음에는 no deal이 bad deal보다 낫다며? 지금의 메이는 bad deal이 no deal보다 낫다는 입장이다. ---------- 1. 한국과 FTA는 언제 체결할 수 있나요? …모른다. 최소한 백스톱이 가동할 때 이후이다. 관세동맹이라는 것이 통상협정 체결을 강요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EU랑 FTA한 다음 관세동맹인 터키랑 바로 협상에 들어갔던 것처럼, 영국과도 그 이후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모든 FTA는 기본적으로 WTO+(WTO보다 더 서로 양보한다는 의미다)이기 때문에 영국의 WTO 양허협상을 봐가면서 협상을 진행시켜야 한다. 게다가 EU가 transition period를 1년 더 연장시켜줄 의향은 있다고 하니, 2020년대 중반에나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건 너무 긍정적인 예상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꽤 있다. 2. 북아일랜드 문제는 해결된 것인가요? 임시적인 해결일 뿐이다. 백스톱이 가동되는 건 “임시적(temporary)”이지, “일시적(time-limited)”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서 새로운 무역 협상이 체결돼야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위에 적은 “수영장” 모델이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3. 무역만 말씀하시는데 금융은 어떻게 됐나요? 아직 드래프트 공개가 안 됐으니 잘 모르지만 다른 기자들 트위터(…)나 언론 기사들을 볼 때, 영국은 EU로부터 동등성 대우(equivalence)를 받기로 했다는 정도가 알려졌다. 말인즉슨 패스포팅은 사라진다고 해석해야 할 것이며, MIFID II와 EMIR을 계속 준수해야 할 것이다. 왠지 지금 그대로 이어질 것 같다는 느낌도 들 테지만, 위의 MIFID II나 EMIR은 이미 우리나라금융기관의 유럽 지점들도 다 따르는 규정들이다. 영국도 우리나라와 같은 제3국처럼 EU의 규정에 참여하지 못 한 채, 복종만 해야 한다는 얘기다. 4. 메이 언니의 운명은…? 더 이상 내각에서 장관급 사퇴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쩌면 수명이 연장될 수 있겠지만 국회 통과가 힘들 테니 (정치적으로) 살아남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5. 스코틀랜드는 독립 가즈아…? 당연히 스터전 스코틀랜드 총리는 최악의 협상이라 비난하고 나섰다. “사정변경”에 해당되어 독립투표를 재추진할 발판은 마련됐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웨스트민스터 내의 SNP 의원들도 모두 메이의 드래프트를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아예 지브롤터도 다시 스페인으로 가고, 아일랜드는 통일하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