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부르기
아래의 짤방은 이코노미스트의 브라질 특파원인 Sarah Esther Maslin의 트윗(참조 1)에 나오는 사진이다. 호자 베베르 브라질 연방대법관이 이른바 “비밀 예산”의 운용을 즉각 정지시켰다는 내용(참조 2)이다. 하지만 오늘의 주제는 그 내용이 아닙니다. 바로 주말 특집, 이름 부르기이다. 사실 매슬린 특파원이 문제를 제기한 까닭은 다른 데에 있다. 브라질 언론들이 남성 공직자들은 성씨를 주로 부르는 데 반하여, 여성 공직자들은 주로 이름으로 부르며, 이거 문제 있다는 주장이다. 예로 든 이 언론사(에스타다웅/Estadão)는 브라질 내에서 Folha de São Paulo와 함께 우리나라 조중동의 지위를 갖고 있다. 언제나처럼 매뉴얼(참조 3)을 먼저 봐야겠습니다? 에스타다웅의 편집 매뉴얼에 따르면 특이하게도 여자 이름에 대한 편집 지침(매뉴얼 5번)이 나온다. 여성은 보통 이름으로 부르되, 성씨로 널리 알려진(pessoas notórias라 표현됐지만 이 단어를 영어의 notorious로 생각하시면 안 되며, 뜻은 ‘잘 알려진 인물’이다) 경우는 성씨로도 쓴다고 되어 있다. 실제로도 의문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내가 브라질에 거주했던 기간은 에두아르두 캄푸스가 비행기 사고로 급사하여 마리나 시우바가 뜨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우마 호세피(현지 발음이 그렇다, 참조 4) 대통령 탄핵 시기와 겹친다. 당시 언론은 여성 대통령 후보인 마리나 시우바와 지우마 호세피를 어떻게 불렀을까? 백이면 백, 모두 다 마리나 혹은 지우마, 이렇게 불렀었다. 하지만 내 의문은 여자여서 이름을 불렀다는 것이 아니라, 동방예의지국 출신답게 당시 현직 대통령 혹은 대선 후보를 이름만으로 부르는 것이 과연 예양에 맞느냐,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해당 트윗의 여러 답글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여자들만 특별히 이름을 불렀다는 기억이 없다. 가령 2014년 지우마 대통령의 적수였던 아에시우 네비스는 언론이 대부분 “아에시우”라고만 불렀다. 룰라 전대통령의 경우는 성씨인 “다 시우바”가 아닌, 그냥 별명(룰라)으로 불린 특이 사례라 할 수 있을 텐데, 위의 “로자”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대법관이자 남성인 지우마르 멘지스(Gilmar Mendes) 또한 브라질 언론은 모두 그냥 “지우마르”라 부른다. 여성이라고 이름만 부른다는 얘기가 아니다. 물론 최근의 대통령 2명은 성씨(테메르, 보우소나르)로 부른다는 점도 있겠다. 하지만 또 브라질의 유명한 전직 대통령들 중에서도 이름만 부르는 경우(가령 제툴리우, 주셀리누)도 많다. 그래서 요점은, 다른 나라에 비해 브라질은 남녀 막론하고 그냥 “이름”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인데, 이게 좀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느낌이다. 보통 언론이 이름만으로 부른다는 점은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친숙함, 두 번째는 성씨가 느껴지는 거리감이다. 가령 라바 자투를 주도하고 룰라 전대통령의 구속을 이끈 장본인이자 내년 대통령 선거에 나올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세르지우 모루 전법무부장관 또한 그냥 “세르지우”라 부를 때가 많다(모루, 하고 성씨로 부를 때도 많지만 말이다). 지우마 전대통령도 마찬가지, 지우마가 더 친숙하다. 두 번째는 성씨를 부르는 것은 너무 “공식적”이라서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점이다. 첫 번째랑 연결되는 이유인데, 거기 사람들 특유의 문화가 있다. 어느 정도 친해지면 성씨를 안 부르는 것이다. 물론 서양 문화가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있을 텐데 여기서는 이게 소위 메이저 언론사들도 그렇다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지. 그렇지만 이렇게 쓰고 나면 저 에스타다웅의 매뉴얼과 뭔가 안 맞는 느낌도 든다. 실제로 답글 중, 학부의 저널리즘 수업에서 저런 식의 교육을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미소지니가 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는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한편으로는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이 아무래도 영미권의 시각이기 때문에 저런 지적을 한다는 부분도 있겠다. 그래서 결론은 사실 모르겠다에 가까운데(그냥 경로의존성 아닐까?), 더 흥미로운 점은 이렇다. 현대의 미국/영국 식 문화와 관습이 결국은 전세계에 다 퍼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게 바람직하다거나 적대시해야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결국은 1세계의 트렌드가 퍼지는 쪽으로 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더 강해지는 요즘이다. 언제나 클린턴이 아닌 “힐러리”로 기사를 작성하던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이 지적하는 모습이 더 재미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 참조 1. https://twitter.com/sarahmaslin/status/1457705109111156738 2. 쉽게 말해면 이렇다. 브라질 정부 예산은 연방국가들이 으레 그러하듯 연방하원이 결정한다. 다만 정부의 예산안 외에, (1) 의원 개개인, (2) 지역별 그룹, (3) 각 상임위원회, (4) 예산심사안 보고자(relator)가 개별로 예산을 증감시킬 수 있는데… 이 보고자가 주무를 수 있는 예산이 극도로 불투명하다는 점이 문제이다. 우리가 보통 국회의 “쪽지 예산”을 많이들 비판하지만 브라질의 경우는 이 예산이 그냥 “나눠먹기” 식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의 명령은 의원들이 이 “비밀 예산(orçamento secreto)”이 문제 있는 조달에 쓰였다며 대법원에 해석을 요청한 것에서 나왔다. 3. Manual de redação : https://www.estadao.com.br/manualredacao/esclareca/nomesproprios 여담이지만 내가 양대산맥(!)으로 지칭한 Folha 지의 경우, 편집 매뉴얼을 출판하는 언론사인데(일본 언론사들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예전에는 하나의 기사 안에서 두 번째로 동일 인물을 지칭할 경우, 성씨만 썼었다고 한다. 지금은? 맥락상 이름만 쓸 수도 있는데, 그 기준이 좀 애매하다. 4. 브라질과 유럽 포르투갈어의 차이(2021년 6월 29일): https://www.vingle.net/posts/3824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