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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를 무너뜨린 유벤투스의 442에 관하여

1.
나폴리는 짧고 조직적인 패스 플레이로 공격을 풀어가는 팀입니다. 특히 메르텐스, 인시녜, 함식으로 이어지는 왼쪽 중앙라인에서 주고 받는 패스를 통해 팀의 거의 모든 공격이 만들어집니다.

실제로 왼쪽 라인의 창의적인 연계플레이로 수비를 무너뜨리거나, 왼쪽에서 패스를 주고 받다가 반대편에서 쇄도하는 카예혼에게 찔러주는 패스 한 방. 이 두 가지가 나폴리의 주된 공격패턴이죠.



(왼쪽 중앙 지역에서 메르텐스, 인시녜, 함식의 패스 플레이로 수비를 무너뜨리거나, 반대편에서 쇄도하는 카예혼을 향해 한번에 넘겨주는 패스가 나폴리의 주된 공격패턴이죠.)
따라서 메르텐스, 인시녜, 함식. 세 선수는 짧은 패스를 주고 받기 위해서 서로의 간격을 좁히게 됩니다. 메르텐스는 조금 아래로, 함식은 조금 위로, 인시녜는 중앙으로 조금씩 움직이는 식이죠. 세 선수가 가깝게 서 있는 만큼, 짧은 패스를 주고 받기 수월해집니다.

(메르텐스, 인시녜, 함식은 짧은 패스를 주고 받기 위해 서로 가깝게 서 있습니다.)


(나폴리의 패스맵. 패스의 대부분이 왼쪽에 치우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세 선수가 패스를 주고 받기 위해 가깝게 서 있는 만큼 상대 수비도 이들을 마크하기 위해 자연스레 밀집한다는 겁니다. 상대 수비가 밀집하게되면 패스를 주고 받을 공간은 줄어들게 되고, 짧은 패스를 주고 받기 힘들어집니다.

나폴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왼쪽 풀백의 오버래핑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나폴리의 왼쪽 풀백은 공격적으로 전진해 밀집된 수비를 측면으로 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상대 수비가 측면을 수비하기 위해 움직이면, 중앙에는 패스를 주고 받을 공간적 여유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즉 나폴리가 중앙에서 짧은 패스로 공격을 풀어가려면, 측면으로 넓게 움직이는 풀백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기존에는 굴람이, 굴람이 십자인대 부상으로 이탈한 후에는 후이나 히사이가 맡고 있는 역할이죠.

(나폴리는 윙백의 오버래핑을 이용해 상대 수비를 측면으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 장면에서도 후이가 수비수들을 측면으로 분산시키자 중앙에 볼을 잡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걸 볼 수 있죠.)
3.

이러한 나폴리의 공격전개에 대응해 유벤투스가 지난 세리에 15R에서 꺼내든 카드는 442였습니다. 경기 전 3명의 미드필더를 활용한 전술로 나올 것이라는 대부분의 예상과는 다르게, 알레그리 감독은 마투이디더글라스 코스타를 측면에 배치시켜 442 시스템으로 경기를 시작했죠.

(유벤투스는 마투이디와 더글라스 코스타를 측면에 배치시킨 442 전형을 들고 나왔습니다)
알레그리 감독은 기본적으로 수비에 중점을 두고 나온 모습이었습니다. 수비라인을 깊숙하게 내리고, 수비를 밀집시켜 나폴리의 짧은 패스 플레이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수비 공간을 최소화 시키는 데 집중했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양 측면에 배치된 마투이디더글라스 코스타가 측면을 넓게 커버해줬다는 겁니다. 나폴리의 풀백이 수비를 분산시키기 위해 측면으로 넓게 움직였을 때, 마투이디와 더글라스 코스타가 측면 수비를 담당해줬기 때문에 유벤투스 수비진은 나폴리 풀백의 오버래핑에 흔들리지 않고 중앙을 두텁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유벤투스의 밀집된 수비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자 나폴리의 짧은 패스 플레이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죠.

유벤투스가 당초 예상대로 3명의 미드필더를 배치했다면 측면 공간이 흔들렸을 법도 한데, 마투이디와 더글라스 코스타의 측면 미드필더 기용이 유벤투스 수비에 굉장한 균형감을 가져다 준 모습이었습니다.


(유벤투스의 442 전형은 수비적으로 아주 잘 정돈된 모습이었죠.)


(마투이디와 더글라스 코스타가 측면 공간을 넓게 커버해줬기 때문에 유벤투스는 수비를 안정감있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유벤투스의 밀집된 수비에 나폴리의 패스 플레이는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4.
여기서 나폴리의 한계가 드러났습니다. 메르텐스, 인시녜, 함식의 짧은 패스 플레이가 통하지 않자 공격의 방향성을 잃은 모습이었죠. 유벤투스 압박으로 중앙에서 볼을 소유할 수 없게 되자 측면으로 볼을 돌려 페널티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올렸는데, 공격수들의 신장이 작은 탓에 대부분의 공격이 무의미하게 흘러갔습니다.

나폴리에게 가장 아쉬운 점인데요. 자신들이 원하는 '패스 플레이를 통한 공격전개'가 상대방에게 통하지 않았을 때, 별다른 변화를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번 경기에서도 유벤투스가 수비적으로 나오다 보니 나폴리가 경기 내내 공격권을 가져갔는데, 계속해서 같은 공격패턴을 시도하며 무기력한 경기내용을 보여주었죠.

(나폴리는 유벤투스의 밀집 수비에 가로막혀 중앙에서 패스 플레이를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폴리는 페널티박스 측면으로 볼을 붙여주는 방법을 선택했는데, 전혀 효율적이지 못했죠)

여기에 부상으로 빠진 굴람의 자리를 전혀 메우지 못하는 모습인데요. 굴람 대신 출전하고 있는 후이나 히사이가 왼쪽 측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 보니, 나폴리가 측면으로 상대수비를 분산시키는 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는 모습입니다. 더군다나 굴람은 빌드업 상황에서 메르텐스, 인시녜, 함식과 함께 패스 플레이를 이루는 한 축이었기 때문에 빈자리가 너무나 커보이네요.
5.
한편 유벤투스는 나폴리전에서 마투이디와 더글라스 코스타를 활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마투이디와 더글라스 코스타의 헌신적인 수비가담과 넓은 활동반경이 유벤투스의 수비에 안정감을 더해주는 모습인데요. 특히 마투이디가 중앙과 측면을 오갈 수 있다보니 수비 균형을 잡는 데 굉장한 도움을 주고 있네요.
물론 다듬어야 할 부분은 많겠지만, 마투이디와 더글라스 코스타를 활용한 442 시스템이 잘 정착한다면 올 시즌 유벤투스에게 활용가치가 매우 큰 전술이 되어주지 않을까 합니다. 특히 실리를 챙겨야 하는 경기에서 활용가치가 매우 높을 것 같네요.

나폴리와 유벤투스의 승점 차이가 4점 났던 상황에서 두 팀의 맞대결은 우승권 경쟁에서 굉장히 중요한 매치였는데요. 유벤투스가 승점차를 1점으로 좁히는 것과 동시에, 알레그리 감독의 실험적인 전술도 성공을 거두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얻어간 경기가 되지 않았나 합니다.

2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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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클래식은 영원하네요. 잘 갖춰진 442만큼 무서운 전술도 없죠.
나폴리는 라베찌 ㅡ 카바니 ㅡ 함시크, 삼각편대 시절이 최고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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