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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수도는 예루살렘? 텔아비브?]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동시의 성전이 예루살렘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스라엘 수도로 예루살렘을 인정하자는 미국 때문에 국제분쟁의 위기가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이스라엘 수도가 텔아비브로 인정될 뿐입니다. 그 역사적 이유에 대해 관찰해 봅니다. (상세보기) http://kiss7.tistory.com/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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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국가 해법은 죽었다
국제기구나 어지간한 나라들(우리나라도 포함된다)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해법으로 2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을 지지해왔다.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를 중심으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자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 해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이 기나긴 칼럼의 내용이다.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참조 1). 어차피 옛 이스라엘은 끝났다(참조 2). 2-국가 해법은 불가능할 듯 하며, 어쩌면 페레스가 예전에 선호했던 요르단 해법(Jordanian option)이 낫잖을까 싶다고 썼었다. 요르단 해법은 별 거 아니다. 팔레스타인 국가 설립을 취소, 요르단이 관할토록 하자는 얘기다. 사실 이 글의 알렙 벳 예호슈아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결국은 요르단 해법의 변형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1) 팔레스타인 통치기구를 해체, 이스라엘이 다 흡수한다. (2) 가자 지구는... 저자가 거론하지 않았지만 결국 이집트에게 넘기는 식이 될 것이다. (3) 역시 저자가 말하지는 않았지만, 요르단과는 더더욱 친해져야 할 일이다. 잠깐 어지러우실 수도 있겠지만, 나도 직접 팔레스타인 사람(그는 라말라 거주민이었다)을 만나 얘기를 나눠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들에게 서로 다른 결핍이 있으며, 예호슈아도 그점을 꿰뚫어보고 있다. 어째서 이런 해법이 나오는지 잠깐 보자. 유대인들은 고향이 없는 민족이다(일부러 현재형 술어를 사용했다). 어차피 유대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처음부터 유대인의 땅은 아니었으며, 고대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에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민족의 정체성만 유지했었다. 이거 잘 이해해야 한다. 현대 이스라엘을 처음 세웠을 때 우후죽순 진입해 온 유대인들은 멋대로 살았고(주변 아랍인들과 같이 반-영국 투쟁을 벌였었다), 후에 각 전쟁을 통해 정착촌을 이스라엘 정부가 옮기거나 없애거나 할 때도 군말 없이 옮겨 가 살았다. “고향”의 개념이 비-유대인들과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돌아갈, 돌아가야 할 곳이 없다.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베트남의 미국인, 혹은 알제리의 프랑스인이 아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자. 이들에게는 나라가 처음부터 없었다. 오로지 가족과 씨족, 같은 마을 사람들만이 정체성의 전부였고,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었다(참조 3).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 정체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의미다. 어떻게 보면,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실제로 2국가 해법을 논의하려고 압바스와 대화하려 했을 때, 압바스가 계속 대화를 사양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기들 의견이 통일이 안 되니 말이다. 지금도 팔레스타인은 하나가 아니다. 크게 파타와 하마스로 갈려 있지만, 그들 자신도 씨족마다, 지역마다 모조리 다 갈라져 있다. 스스로를 단일한 국민으로도 생각하지 않으며, 크리스트교를 믿는 이들도 꽤 있고, (자기들은 아랍인이 아니라 하지만) 드루즈도 상당수 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인들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씨족과 출신지만 따지는 사람들이 그들이며, “난민”의 개념과 들어맞지도 않는다. 이스라엘 정착촌 때문에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겨갔을 뿐. 중간 정리하자. 유대인들에게 고향은 부차적인 존재이고, 팔레스타인인들에게 고향은 곧 나라가 아니다. 대화의 접점이 없다. ---------- 하지만 말이다. 70년 동안 이스라엘 안에서는 그런대로, 그럭저럭 어울려 살아왔다. 직장과 고용 상의 이유겠지만, 히브리어를 말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매우 많으며 이들은 상당한 비중의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 결국은 차라리 이스라엘 국적을 주는 편이 낫다(참조 4). 다만, 이스라엘 국체를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변경을 고려해야 할 일이다. 크네셋으로부터 행정부를 독립시키는 편이 나을 것이며, 일종의 유대-팔레스타인 연방국처럼 만드는 일이다. 선거 또한 현재의 비례대표제가 아닌 지역구를 도입하는 편이 낫다.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는 세속 국가로서 “정상화”를 위한 제안으로서, 예호슈아의 글은 사안을 피상적으로만 접하는 내가 보기에도 그럴듯하다. 만약 이 해법대로 간다면야 수도 예루살렘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요르단이 좀 수고로울 것이다. 어차피 팔레스타인들 때문에 왕가가 무너질 뻔 한 경험이 있는 요르단은 웨스트뱅크를 안 받으려 할지 모르며, 향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관계를 중재하려 들 것이다. 그렇다면 2국가 해법이 이제 효력을 다했음을 어떻게든 선언하는 편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매우 좋은 타이밍에,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라는 얘기다. 정말 세상이 많이 변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일단은 모두들 고민을 해 봤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2국가 해법은, 죽었다고 봐야 한다. ---------- 참조 1. 시몬 페레스의 여러 얼굴(2016년 9월 30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4487468754831 2. 옛 이스라엘의 종말(2016년 6월 1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4183746089831 3. 중앙의 통제에 전혀 따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고스란히, 전투 없이 점령지를 넘겨버린 사례가 많았다. 자기 마을만 지키면 됐지, 왜 남의 가문/마을을 지켜주냐는 인식 때문이다. 4. 어차피 예루살렘 거주 팔레스타인인 전부, 그리고 유대아와 사마리아 거주 팔레스타인인 상당수가 통행권을 갖고 있다.
찰떡같이 말해줘도 개떡처럼 알아듣는 우리의 대일본제국
성형작약탄이라는 신통한 물건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지루하니까 생략하고 폭발력을 사방으로 분출시키는게 아니라 한점으로 모아서 엄청난 관통력을 얻은 탄이라고 생각하면 됨 독일 새끼들이 발견하고 독일 새끼들이 제일 쏠쏠하게 써먹었다 가끔 2차대전 영화에 보면 뜬금없이 나치들이 존나 큰 방망이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보이는데 이게 성형작약탄임. 이렇게 멀리서 발사하는 형태도 있었지만 좀 더 구식인 형태로는 그냥 땡크 옆구리에 철썩 붙여서 터뜨리는 흡착지뢰도 있었다. 자석이 들어있어서 전차 옆구리에 갖다 붙이면 알아서 찰싹 붙는다. 이 상태에서 터뜨리면 아무리 두꺼운 양키나 빨갱이 전차라도 구멍이 뚫리는 물건이다. 물론 존나게 위험하다. 전차말고 이거 들고 있는 불쌍한 나치 새끼가. 미친듯이 굴러다니는 탱크에 이거 붙이려고 개다리스텝으로 뛰어당기는 것만큼 위험한 일도 드물다. 뭐 그래도 독일은 이거라도 있어서 제법 괜찮게 버틴 편임. 태평양에서 미국 땅크들에게 고통받는 좆본은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 좆본 친구들로 말할 거 같으면 미국 땅크는 지옥에서 올라온 디아블로 같은 존재였음. 땅크가 뒤지질 않아 좆본 새끼들은 양키 땅크를 잡으려고 폭탄 껴안고 궤도 밑으로 기어들어가고 관측창에다 총검을 쑤셔넣으려고 시도하고 심지어는 청산가리 유리병을 해치에 넣어서 안에 있는 양키를 독살하려고도 시도했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다. 이 새끼들은 왜 탱크도 근딜로 잡으려고 지랄할까. 물론 기술력이 병신이라 그렇다. 이 꼴을 보다 못한 독일이 저 모자란 븅신들이 그래도 하나 밖에 없는 친구니까 도와주겠다며 흡착지뢰의 설계도를 보내준다 성형작약탄에 자석 붙이고 땅기면 되니 설마 아무리 븅신들이라도 이걸 못 만들진 않겠지 싶었을 것이다 물론 못 만듬 2차대전 최대미개국 대일본제국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것은 아닌가? 어케어케해서 성형작약탄 부분까진 만들었는데 자석을 못 만들었다. 보통 폭탄보다 자석이 더 만들기 쉬울 거 같지만 아무튼 그런 고로 폭탄을 들고 있어봐야 땅크한테 붙일 수가 없었음. 그래서 좆본은 포기...하지는 않고 참으로 좆본스러운 해결책을 생각해냈다. 자석의 용도가 터질 때까지 땅크에 달라붙어 있는 용도가 전부라면 그걸 굳이 자석으로 할 필요가 없잖엉 인간한테 들고 꼬라박으라고하면 되지 그리하여 성형작약탄을 죽창 끝에다 달아서 탱크한테 찔러넣는 대전차죽창 자돌폭뢰가 개발된다. 사용법은 존나게 간단했는데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하고 지나가는 탱크에 달려들어 꼬라박으면 된다. 성형작약탄이라 관통력은 개확실하니 전차는 확실히 죽고 이거 들고 있는 새끼는 더 확실하게 야스쿠니로 즉시사출된다. 정말 좆본스런 병기다. 뭐 여기까진 자돌폭뢰가 존나 유명하기도 하고 나무위키에만도 쳐봐도 나오는 내용이다. 근데 잘 안 알려진, 존나 스케일이 큰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자돌폭뢰가 가끔 가다 로또샷 터져서 무적으로 보였던 양키 탱크를 잡는 모습을 보자 풀발기한 좆본 윗대가리들이 어마어마한 계획을 내놨다. 탱크도 잡는데 항공모함이라고 못 잡겠냐? 이 미친 놈들이 존나 큰 성형작약탄을 만들어서 항모에 꼬라박기로 한 것이다. 다들 알겠지만 좆본은 열심히 카미카제로 양키 항공모함에 꼬라박고 있었지만 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효과는 별로 없었다. 온몸을 떡장으로 두른 항공모함에 좆만한 비행기로 꼬라박아봤자 항공모함이 입는 피해는 페인트칠을 다시해야 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음 왜냐면 비행기는 가볍고 가벼운 놈이 전속력으로 꼬라박아봐야 관통력엔 한계가 있으니까 근데 나치 새끼들이 보내준 신통방통한 관통력을 자랑하는 성형작약탄을 보고 이거라면 항모 강간 쌉가능하다고 발기한 븅신들의 폭주가 시작된 것이다 근데 육지에서라면야 불쌍한 좆본인 하나 골라서 성형작약탄 들고 꼬라박으라고 할 수 있지만 바다에서는 어떻게 할 거 같음 당연히 카미카제죠 시바 보통 비행기도 아니고 존나 큰 폭격기를 통째로 개조해서 비행기 자체를 성형작약탄으로 만들어버렸다. 저기 등짝에 동그랗게 튀어나온 부분 보이냐? 저게 통째로 성형작약탄임. 이게 자랑스런 대일본제국의 일격필살항모격침병기 '벚꽃탄'이었다 물론 무인비행기는 당연히 아니다. 안에는 이 존나 큰 빅-성형작약탄을 항공모함까지 배달하는 불쌍한 파일럿이 들어있다. 이 새끼들 자폭 집착은 진짜 답이 없다. 이거 몇 대만 있으면 양키 함대는 모조리 용궁행으로 보낼 수 있다며 득의양양하기 시작한 좆본이었지만 븅신같이 생긴 곱추 비행기로 항모를 격침시킬 수 있는게 말이되냐며 상식적인 딴지를 건 사람도 있었음. 그래서 이 굉장하신 자폭무기가 항모를 한 방에 격침할 수 있다면서 쇼를 보여주기로 한다. 물론 실험목적이니까 미군이 아니라 지들 물건을 상대로 쇼를 해야 했음. 그래서 이 븅신들은 안 그래도 배 부족해서 난리인 주제에 항모 한 척을 통째로 벚꽃탄 실험용도로 날려버린다. 진짜로.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자폭무기 실험한답시고 지들 항모를 날려버렸다고. 뭐 일단 저렇게 존나 크게 만든 폭탄을 꼬라박았으니 일단 침몰하긴 했으니 좆본 친구들은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이 물건의 양산에 들어갔음. 그리하여 1945년, 서렌이 임박한 좆본년들의 절박한 기원을 담아 제작된 벚꽃탄들이 일제히 양키 항공모함을 목표로 날아오름 그리고 전부 가던 도중에 추락해서 행방불명됨 이 새끼 생긴 꼬라지 봐라 등짝에 저런 종양을 달고 멀쩡히 비행할 수 있겠냐 결국 항모 한 척을 꽁으로 날려먹고 수십대의 폭격기를 자폭무기로 개장해서 얻은 전과는 0였다 참으로 좆본스런 결과였다. 찰떡같은 기술력을 전해줘도 개떡같이 알아먹는 놈들한텐 아무 의미가 없어요.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존나 웃긴 반전이 있는데 이거 좆본 육군에서 개발한 무기다. 해군이 아니라. (출처) 언제나 이 분 글은 꿀잼이지만 비속어가 많아서 한 번 필터링하고 올린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길 바라며 물론 좆본은 좆본임 이딴 새끼들한테 식민지배당했다니 꼴받네
냉혹한 스파이 고양이의 최후
CIA에서 냉전시기 때 실행했었던 프로젝트 스파이 고양이. 말 그대로 고양이를 살아있는 도청기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음. CIA가 보는 고양이는 완벽한 첩보원이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은 은밀하고, 빠르고, 똑똑한데다, 장애물 돌파 능력도 높아서 어디에나 기어들어갈 수 있고 뭣보다 사람은 고양이를 발견해도 저게 절대 스파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말만 들으면 그럴싸하지. 아무튼 그래서 2천만 달러의 예산이 들어간 스파이 사이보그 고양이가 만들어지게 된다. 가슴 부분에는 동력원과 트랜스미터가 삽입됐고, 귀에는 마이크가 숨겨졌고, 척추를 따라 꼬리 끝까지 안테나가 삽입됐음. 그야말로 인간-도청기, 아니 고양-도청기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고양이 본인한테야 괴로웠겠지만 쉽게 진행됐음. 그 다음이 문제였음. 고양이는 자기가 사이보그로 개조된게 몹시 좆같았고 몸에 설치된 배선을 밭톱으로 잡아뜯거나 물어뜯어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고양이 키워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새끼들은 사람 말을 죽도록 안 듣는게 특징이다. 사람 말을 듣고 목표 가까이 가서 도청을 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그 말을 더럽게 안 듣는다. 그리하여 스파이 고양이를 사이보그로 개조하는데는 1년도 안 걸렸지만 고양이를 원하는 위치로 유도하는 훈련을 시키는데는 5년이 들어갔다. 아무튼 5년과 2000만 달러를 들여 탄생한 스파이 사이보그 고양이는 드디어 1960년에 실전을 경험하게 된다. 장소는 워싱턴의 쏘련 대사관이었고, 마침 소련 대사관 앞마당 공원에서 벤치에 앉은 빨갱이 두 명이 대화를 하는 걸 본 CIA는 사이보그 고양이를 출격시켰음. 그리고 2000만 달러와 5년동안의 훈련을 받은 우리의 고양이는 10걸음 정도 걸어가다가 택시에 치여서 카짓 카페트가 됐다. 당연하지만 CIA는 이딴 병신 같은데 돈 쓰지 말라며 쿠사리를 존나 처먹고 계획을 취소했다. + 구라라고 생각하는 사람 있을 거 같아서 당시 작전 계획서임 (출처) 이게 실화라는 게 유우머 어이없네 ㅋㅋㅋ
예루살렘과 빅 픽처
기사 링크 11월 6일 수요일 저녁... 무함마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통치기구 의장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로 리야드로 들어간다. 이미 파타와 하마스 간(참조 1)의 투쟁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던 그이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MbS 왕세자님(참조 2)의 초대였다. MbS 왕자님과 압바스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 공식 기록은 없다. 다만... 다만? 관계자(!)들의 루머에 따르면 MbS 왕세자는 압바스에게 이른바 “평화 계획peace plan”을 제안했고, 압바스는 거절했다고 한다. 평화 계획에 어떤 내용이 있길래(참조 3)? 1. 요르단 강 서안 정착촌은 대부분 그대로 존속 2.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로. (팔레스타인은 예루살렘 옆동네인 Abu Dis(أبو ديس)로 지정) 3. OK할 경우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대량 자금 지원 어떠신가? MbS 왕세자는 압바스 제1의 적이자 유력한 계승자인 무함마드 다흘란(참조 4)도 같이 초대했다고 압바스에게 살짝 흘렀다. 네가 내 말을 안 들으면 곧바로 다흘란에게 팔레스타인을 줘버리겠다는 위협이다. 그리고 압바스에게는 두 달의 시간이 부여됐다(참조 5). 안 받아들이면 퇴갤. 당연히 당사자들 모두 위와 같은 내용은 부정하고 있다. 그런데 저 “평화 계획”이 과연 MbS 왕세자님의 구상일까?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쉬너의 작품(참조 5)일 것이다(물론 백악관도 이 “평화 계획”의 존재를 부인했다). 압바스가 리야드를 방문하기 2주 전, 쿠쉬너가 리야드에서 MbS 왕세자를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미국도 이미 11월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워싱턴 DC 내 팔레스타인 대표부의 승인을 취소했기 때문이다. 물론 후에 다시 승인해주기는 했지만 모종의 대화가 계속 있었다는 의미다. (여러분 트럼프 행정부가 뭐든 기분 내키는대로 말한다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위 평화 계획을 다시 보자. 저 내용대로라면 새로 창설될(?) 팔레스타인 국가는 가자 지구 외에 요르단 강 서안을 듬성듬성(!) 갖게 된다. 기사에 나온대로,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프리카의 반투스탄과 비슷해진다는 얘기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도 허용이 안 된다(전혀 언급이 없다). 하지만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평화계획을 강행할 이유는 충분하다. 현재 이란-이라크-시리아(어쩌면 레바논도?)의 시아 벨트가 형성됐기 때문에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공동전선 형성이 매우 시급하다. 그래서 이스라엘 육군 장성이 군사 정보를 사우디와 공유하겠다는 인터뷰(참조 6)도 나오고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협상 내용에 전혀 관심이 없다. 뭔가 “타결”만 되면 그만이다. 그만큼 팔레스타인에게는 2000년대 초 이후 없었던 협상을 어서 이스라엘과 시작하라는 압박의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중동 내 여러 아랍 국가들 역시 시아-순니 싸움, 혹은 내부 문제에 정신 팔려 있으므로 팔레스타인에게 노관심하고 있으니, 팔레스타인에게는 여러가지로 불리한 상황이다. (미국이 1995년 매번 갱신을 통해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인정 및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을 지연해왔다는 점은 상식에 가까우니(...) 넘어가겠다.) 이 모두가 클린턴의 업보다. 2000년대 초 이후로 전혀 이렇다 할 뭔가가 없으며(그렇기 때문에 트럼프가 평화 협상을 깨뜨렸다는 표현은 잘못, 진행 중인 게 없으니 말이다), 팔레스타인 문제 역시 미국 대통령들이 그동안 실패해 온 의제 중 하나다. 최종 보스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동맹 수준으로 묶어 두려면, 어쩌면 이스라엘 수도로서 예루살렘의 인정(및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이 중요한 토대가 될 수도 있다. 정리해 보자. 트럼프의 이스라엘 수도로서 예루살렘 인정은 대-이란 전선 형성을 위해 필요한 1단계 조치로서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어쩌다 그렇게 됐냐고? 압바스 vs. 다흘란이 상징하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분열, 아무도 관심 없어진 팔레스타인 문제, 보다 더 친밀해지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쿠쉬너 (하트) MbS. 물론 미국 외 다른 나라들은 섣불리 미국을 따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이 얘기는 나중에 시간 나면(...) ---------- 참조 1. 하마스와 히즈불라(2015년 3월 1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091158259831 2. 함정에 빠진 하리리(2017년 11월 1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766799769831 3. Jérusalem: le coup de force de Donald Trump(2017년 11월 6일): https://www.mediapart.fr/journal/international/061217/jerusalem-le-coup-de-force-de-donald-trump?onglet=full 4. 무함마드 다흘란(محمد دحلان)은 특이하게시리 하마스의 점령지(!)인 가자지구에서 파타를 위해 뛰었던 인물이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내에서 상당히 특이한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차기 대권주자로 통하고 있다. (물론 반대파는 그가 예전부터 이스라엘 첩자였다고 주장한다.) 5. Talk of a Peace Plan That Snubs Palestinians Roils Middle East(2017년 12월 3일): https://www.nytimes.com/2017/12/03/world/middleeast/palestinian-saudi-peace-plan.html 여기서는 재러드 쿠쉬너와 제이슨 그린블랫트(트럼프의 부동산 전문 변호사였다), 그리고 디나 파월 이 세 명이 핵심이다. 이들의 얘기를 할 날이 올련지는… 6. Israeli army chief says ready to share information with Saudi Arabia(2017년 11월 17일): https://www.reuters.com/article/us-saudi-israel-iran/israeli-army-chief-says-ready-to-share-information-with-saudi-arabia-idUSKBN1DG29N
우리가 알고 있는 삼고초려는 허구다!
정사 삼국지가 나오기 전 위나라 어환(魚豢)이란 역사학자가 쓴 《위략(偉略)》이라는 역사서가 있습니다. 정사《삼국지》를 쓴 진수는 제갈공명이 죽기 2년 전에 태어난 자이지만, 어환은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사람으로 당시의 상황을 정리했는데, 위나라 역사가였던 만큼 본인이 모시던 조조의 천하통일 야망을 꺾은 제갈공명에 대해 더 면밀히 분석했을 겁니다. 또한 수십 년 뒤 진나라 시절 사마표가 쓴 《구주춘추(九州春秋)》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럼 《위략》에서는 유비와 제갈공명의 만남에 대해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그 내용은~ 두두두둥……! 제갈공명이 먼저 유비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당시 형주에 있던 귀족들은 곧 북쪽에서 조조가 쳐들어올 것이라고 근심하던 중 황제로부터 숙부로 인정받은 명망가, 유비 장군이 왔다는 소식에 단체로 만나러 갔다네요. 이에 유비가 이들과 이런 저런 정세 이야기를 했는데, 제갈공명도 질문을 했다지만 유비의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하지요. 우리가 흔히 게임이나 만화에서 여리여리한 꽃미남 스타일로 제갈공명을 묘사하지만, 《위략》엔 “투박한 생김새여서 잘 눈에 띄지 않았다.”고 적혀 있답니다. 원래 제갈 가문은 서주에서 이름을 날리던 집안이었는데 서주가 유비, 여포, 조조로 주인이 계속 바뀌며 대학살을 당하던 전란을 맞아 그나마 안전한 형주로 이사 온 상황이었죠. 그래서 피난 와중에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제갈 가문 자제들이 각자 다른 주군을 모시게 된 겁니다. 당시 형주 양양 땅에 이사 온 제갈공명은 방덕공, 황승언 등 여러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양양 귀족 자제 모임의 주요 멤버이기도 했으니 농사나 짓던 평민은 아니었지요. 그래서 이 멤버들이 지역 대표로서 유비를 만나러 갈 때 같이 갔던 겁니다. 그러나 유비 와의 모임에서 별다른 계책을 못 들은 다른 유지들은 실망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지만, 제갈공명은 유비에게 좀더 어필하려고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비는 이들이 돌아가자 아직 제갈공명이 남아 있는 줄 모르고는 심심하면 하던 취미 활동을 했더랍니다. 요즘 같으면 휴대폰 게임 같은 것을 했겠지만, 당시 유비가 한 소일거리는 바로~, 소 털로 새끼 꼬기. 청년 시절 돗자리 장사를 하던 때부터 즐기던 시간 때우기 버릇이었다지요. 그 장면을 본 제갈공명은 크게 실망했나 봅니다. 그래서 유비에게 한소리 했답니다. 이에 유비가 제갈공명의 진가를 알아보고 정중히 사과한 후 책사로 모셨다고 합니다. 출처)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최초 최고편-
이스라엘 국어로서의 이디시어?
유대계 이스라엘인들을 나누면(유대인은 나눠야 제맛, 절대 단결하지 않는다) 크게 아슈케나짐과 셰파르딤, 미즈라힘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설명은 예전에 했다(참조 1). "아슈케나짐은 독일-동유럽-러시아, 셰파르딤은 이베리아-북아프리카, 미즈라힘은 중동의 유대인을 가리킨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의 건국을 아슈케나짐이 주도했었고, 그때문에 그간의 이스라엘은 아슈케나짐 식의 문화가 이끌고 있었다는 점이다." http://jd.fo/wuC 이게 또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독일-동유럽-러시아 쪽 유대인들, 그러니까 아슈케나짐이 사용했던 언어인 이디시어(ייִדיש) 때문이다. 위에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아슈케나짐들이 세웠다고 말했다. 즉, 그들의 언어는 이디시어였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국어는 어째서 히브리어일까? 히브리어는 죽은 언어였다(참조 2). 그것도 오래오래 전에 말이다. 따라서 유대인 지식인들이나 히브리어를 좀 알 뿐, 이스라엘 주류인 아슈케나짐의 언어인 이디시어를 차라리 국어로 택해야 하잖았을까? 이미 1939년 조사에 따르면 이디시어 구사자 수는 1,100만 명을 넘어섰었다. (총 유대인 수는 1,600만 명으로 추정됐다.) 물론 위 1939년 통계에 의문이 좀 있기는 하다. 유럽 거주 유대인들의 제1언어가 이디시인 경우도 있겠지만 뭣보다 살고 있는 나라의 언어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령 1926년 소련의 인구조사(왠지 소련의 인구통계 조사는 신뢰성이 좀 간다)에 따르면 소련 유대인의 72.6%만이 이디시어를 모국어로 선택했다. 따라서 문제가 되는 1939년 통계의 실질적인 이디시어 구사자는 6-700만 명 수준이 아닐까... 히브리어 구사자는? 1939년 당시 중동 지방, 그러니까 미즈라힘을 포함하여 전세계 100만 명 정도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유대인 국가를 만들자는 시온주의에 따르면 이디시어를 국어로 택하면 안 될 일이었다. 전세계 각지의 유대인을 모두 모아야 할 텐데, 동유럽에서 쓰이는 이디시어를 택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지식인들만 안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공통적인 민족 유산이었다. 여기에 이디시에 대한 두 가지 박해가 있었다. 첫 번째가 나치의 홀로코스트다. 홀로코스트의 주된 대상이 바로 아슈케나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디시어 구사자가 한 번에 대폭 줄어들어버린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두 번째는 이스라엘 스스로의 이디시에 대한 박해였다(참조 3). 이디시어가 모어였던 다비드 벤-구리온 자신이 이디시어를 박해(!)했었다. 1920년대 텔아비브는 이디시어 활동을 억누른다. 이게 좀 이유가 있다. 위에 나와 있는 "공통 유산"으로서의 히브리어라는 이유가 있고, 실질적으로는 정통파 유대인들(참조 4)이 시온주의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성립을 반대해서다. 이들의 언어가 대체로 이디시어다. 하레딤의 논리에 따르면, 히브리어는 워낙 신성한 고대의 제사용 언어이기 때문에, 세속적인 일상 언어로는 이디시어를 쓰고 히브리어는 제식 언어로만 남겨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레딤도 결국 이스라엘로 건너와서 정부에 온갖 부담을 옛날부터 주고 있는데, 이스라엘 초기에는 좀 억누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 참조 1. 옛 이스라엘의 종말(2016년 6월 11일): https://www.vingle.net/posts/1627650 2. 신학의 식탁(2020년 1월 1일):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157769672829831&set=a.10150379454454831&type=3&theater 3. When Zionism feared Yiddish(2014년 5월 11일): https://www.jpost.com/Opinion/Op-Ed-Contributors/When-Zionism-feared-Yiddish-351939 4. 이스라엘 정통파에 대한 징집(2014년 4월 17일): https://www.vingle.net/posts/321169
시오니즘과 나치의 협력?
https://orientxxi.info/magazine/un-accord-douteux-entre-le-mouvement-sioniste-et-l-allemagne-nazie,2916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라서 공유한다. 이른바 나치 정권과 유대인이 협력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시오니즘 운동(이런 이름을 멋대로 갖다 써서 제가 건담 시리즈를 안...읍읍)이 활발해졌을 때의 얘기다. 시오니즘 운동은 당연히 반유대주의에 반대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는데, 정작 시오니즘 운동가들이 가장 우려하던 상황은 유럽 내 유대인들의 유럽화였다. 게다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나라를 세우자는 시오니즘 운동이 당시 별다른 결실을 못 얻고 있던 것도 사실이다. 유럽에서는 자꾸 유대인들이 크리스트교로 개종을 하는데(프랑스 지역 유대인들보다 독일 지역 유대인들의 동화가 심했다고 한다), 정작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들이 기대보다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참조 1). 생각해 보시라. 만주로 돌아가서 부여(...)를 세우자는 주장에 현대 한반도 거주민들이 어느 정도나 동의할까? 또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황이 닥쳤었다. 그러다 1933년 1월,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집권한다. 히틀러의 반 유대인 정책은 3월부터 시작됐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 내 유대인 단체와 좌파 지식인들, 노조는 독일의 반 유대인 정책에 반발하여 대대적인 독일 제품 보이코트에 들어간다. 그런데 정작 독일 내 유대인들은... 제발 좀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독일 보이코트가 독일 내 유대인 상황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현재의 압박이 포그롬(참조 2)은 아니며 그래도 독일이 법치국가라는 믿음 때문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런 반-유대 압박이 시오니즘에게는 하나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동화보다 차라리 박해가 더 나았다. 독일 내 유대인들의 진단은 맞았다. 나치는 독일 제품 보이코트를, 독일에 반대하는 전세계 유대인들의 음모론으로, 독일에 대한 전세계의 장벽으로 선전한다. 게다가 대공황 때문에 미국은 달러를 상당폭으로 평가절하시켰고, 미국에 대한 채무 및 수출에 의존하는 독일은 위기를 맞이했었다. 실제로 1933년 독일의 외환보유고는 딱 1달치 수입량 정도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독일은 바이마르 인플레이션의 기억 때문인지 섣불리 마르크 평가절하를 따르지 않고 있었다. 이때 대담한 제안이 하나 나온다. 유대인 이주 정책이다.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려는 유대인이 있다면, 재산을 처분한 뒤, "독일 물건들"을 갖고 가는(즉, 수출하는) 것이다. 이른바 나치 정권과 독일 내 시오니스트들 간의 Haavara(이주, העברה) 협정이다. 당시 영국 지배 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은 일종의 "투자 이민"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천 파운드(지금으로 치면 5천 달러 정도라고 한다)만 있으면 이민이 가능했다. 당연히 이해 가능한 일이다. 나치 정권은 유대인들을 쫓아낼 궁리를 하고 있었고, 시오니스트들은 영국(!) 땅에 유대인 국가를 세울 궁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황으로 안 좋은 시기, 장부 상(!) 독일 제품 수출도 되니까 정부 입장에서는 더 좋다. 이 프로그램은 1939년 폴란드 침공때까지 시행되고 약 53,000명의 독일 내 유대인들(대부분 청년층이었다고 한다)이 이때 팔레스타인으로 이민간다. 그렇다고 해서 시오니즘 운동이 당시 나치와 협력했느냐 하면 그것은 또... ---------- 참조 1. 1920년부터 1932년까지 독일에서 42,000명의 유대인이 이민을 나갔다. 이중 팔레스타인으로 향한 이들은 불과 3,000명이었다고 한다. 2. 포그롬(погром, 실제 발음은 /빠그롬/에 가깝다)은 보통 러시아어권 지역 내에서 일어난 유대인 학살, 혹은 유대인 박해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서 다른 언어권에서도 쓰인다.
인류 역사에서 아직도 미스터리한 실존 인물
잔 다르크는 아마도 세상에 살았던 이들중 가장 환상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녀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이상해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법정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그녀를 가장 적대시했던 적들로부터, 그녀가 아직 살아있던 시절에 기록되지 않았더라면 그 누구도 사실이라고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앤드류 랑- 때때로 역사의 결과는 군대의 힘으로 결정되기도 하고 우연한 사건으로 결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15세기 프랑스의 역사는 어린 소녀의 의지로 결정되었다. 이 소녀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전 군을 통솔한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17세의 문맹 시골소녀가 갑자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며 프랑스 왕실에 나타나 총사령관이 되었고, 반 년 넘게 지속되던 오를레앙 전역을 열흘만에 승리로 이끌고, 영국 최고의 명장 탈보트를 포로로 잡더니(파테 전투) 역사에 남을 우회 대기동을 성공시켜 랭스를 함락시키고, 샤를 7세의 대관식을 올려 백년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사건. 역사에 이상한 일들이 많지만, 신화시대를 제외한 검증가능한 시대에 이와 비견될만한 일은 없었음. 오죽했으면 잉글랜드 병사들도 그녀를 성녀라고 믿고, 우리가 성녀를 불태웠다고 신께 용서를 빌었다는 기록이 나옴. 선출처 FMKOREA 후출처 더쿠 모야 생각해보니 ㄹㅇ 기묘함 진짜 로판 회귀물 아니냐고 난 신의 사자?인 거 시험하는 자리에서 바로 신들린 것 처럼 왕세자 찾아낸 썰이 제일 신기함
이스라엘의 아랍어 지위
http://www.slate.fr/story/165353/israel-langue-arabe-hebreu 팔레스타인에서 똘똘한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날까? 집안에 여유가 좀 있다면 당연히(?) 이스라엘이나 다른 나라로 유학 보내기를 택할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이스라엘이나 다른 나라에서 일하고 말이다. 실제로 아랍 저널리스트들 만나면서 그들이 팔레스타인 출신이라고 할 때 놀랐던 기억이 좀 있다. 그런 이들 십중 팔구는 히브리어도 능숙했다(학교를 다 이스라엘에서 나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국적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이 최근 “유대인 국가” 조항의 기본법 개정을 통과시키면서 아랍어의 지위를 공식언어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 언어로 전환시켰다. 이게 무슨 의미이냐, 공공기관은 물론이고, 어지간한 곳에서 아랍어 병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인구의 1/5을 차지하는 아랍계(드루즈 포함, 반드시 이슬람만 있지는 않으며, 크리스트교를 믿는 아랍계도 많다)는 이제 좋든 싫든 히브리어로 생활을 해야 한다. 하지만 맨 위 단락에 언급했듯, 이미 아랍계 이스라엘인은 물론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도 자제들을 이스라엘 학교로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스라엘은 2011년부터 초등학교에서만 아랍어를 의무교육 시켜왔다(즉, 초등에서 교육해봤자 수준이...). 중등 이상은? 선택 과목이고 대체로 선택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영어를 택하지. 다른 수업은 물론 히브리어로 하고 말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학교를 다니는 경우, 일과 시간 동안에는 히브리어와 (어쩌면) 러시아어(참조 1), 혹은 이디시어나 영어를 해야 한다. 아랍어는 이제 미국에서 자녀들을 학교 보내는 한국인 가정처럼, 가정 내 언어로 국한되어버렸다. 어떤 관점에서 보더라도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현실을 그냥 기본법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아랍어 해봤자 취직할 곳은 ... 대체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아랍어는 기술의, 학문의 언어가 아니다. 안 그래도 이스라엘이 스타트업으로 성하는 나라이니, 아랍계 엘리트라면 당연히 히브리어와 영어를 잘 해야 한다(참조 2). 근처 나라들 중에 기술 스타트업이 성하는 나라는 이스라엘 외에 없다. 이스라엘이 (어떻든지 간에) 세속 사회라는 것도 한 몫 한다.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니 여자들의 경우 히잡을 쓰고 다녀도 공식적으로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어차피 출세를 위해 이스라엘 학교로 들어온 아랍계라면, 개념필수적으로 세속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런 현상이 테러를 더 막아줄 수도 있는 일. 역시 일자리는 어지간한 문제에 대한 궁극의 해결책이다. ---------- 참조 1. 러시아의 침묵(2018년 5월 13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6261771999831 2. 내가 M국에 살 때도 똑같은 광경을 목격했었다.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이리라 싶은데 국어가 아랍어인 그 나라의 학교 교과서는 “국어”를 빼고 모조리 다 프랑스어였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이공계를 전공한다면 당연히 능숙한 프랑코폰이 될 수밖에 없다. 아랍어는 미래의 언어가 아니다.
네타냐후의 위험한 도박
https://orientxxi.info/magazine/benyamin-netanyahou-au-secours-de-l-arabie-saoudite,2802?fbclid=IwAR3C3VtjfbmVwy_gUZP_mYKABGRLcOTFhyea0haasnFU_uJ-Pg8NXxGKTvo 현재 중동은 이스라엘이 순니파 아랍 국가들과 친목을 다지고 다함께 반 이란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입지가 좁아졌고, 결국은 2국가 해법이 죽어가는 방향(참조 1)으로 진행 중이라고 볼 수 있다. 그와중에 요르단과의 국가연합 형태로서의 2국가 해법 아이디어(참조 2)도 나왔고 말이다. 또 한 가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왜그리 MbS 왕세자님을 살리려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네타냐후 자신이 똑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때는 1997년, 당시에도 총리였던 그는 칼리드 므샤알(خالد مشعل, 참조 3)을 암살하기 위해 요르단에 요원들을 급파한다. 다만 독침을 쑤셔 넣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이들은 요르단 당국에 현장에서 잡히고 말았고, 사전에 동 작전에 대해 요르단측에 알리지 않았던 관계로 요르단은 이스라엘에 대노했다. 궁지에 몰린 네타냐후는 당시 해독제(!?)를 요르단 측에 제공할 수밖에 없었고, 하마스의 정신적인 지도자, 셰이크 야신(참조 4)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몇 년 후, 야신을 헬리콥터로 사살하지만 그건 다른 얘기이고, 이런 경험을 네타냐후는 잘 기억하고 있다. 까슈끄지 암살로 궁지에 몰린 MbS를 이해하고도 남음이다. 그래서 네타냐후는 우선 미국 설득에 주력했고(이틀 걸렸다고 한다, 참조 5),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 정권을 공개리에 지지하는 결과가 나왔다. 성공일까? 그렇지만 개인적인 경험 외에도 당연히 이유가 있으니 이스라엘이 사우디 아라비아를 돕는 것이다. 위에 적었던 대-이란 전선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위험하지 않을까? MbS야 권력을 유지하기는 하겠지만, MbS는 여자들 운전 허락해준 것 외에 외교 면에 있어서 대체로 실패만 거뒀을 뿐이다(예멘 전쟁, 카타르 문제, 터키 관계 등등). 게다가 까쇼끄지 사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보다는 더 낫다는 이미지가 사라지고 말았다(그런 게 있긴 있었나?). 과연 MbS가 팔레스타인에게 트럼프의 "평화 계획"을 강요할 수 있을까? 그 뿐만이 아니다. 지난 9월 러시아 정찰기를 떨어뜨린 이후(참조 6), 이스라엘은 전혀 비행기를 못 띄우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며칠 후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의회에서 직접, "러시아는 시리아 내 이란군을 좌지우지할 형편이 못 된다"고 인정하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시리아 내 이란은 커녕 히즈불라도 이제 이스라엘이 못 치게 됐다는 의미로서, 이건 어느 각도에서 봐도 이스라엘의 외교 실패다. 게다가 푸틴은 이란이 시리아가 아닌 레바논을 통해 군수물자를 지원토록 조종한다. 이란 미사일들이 이란 혁명수비대가 보유한 "민간 항공기"를 통해 레바논으로 간다는 얘기다. 이걸 이스라엘이 못 막고 있는데, 그렇다고 레바논을 칠 수도 없다. 민간 항공기는 과연 칠 수 있을까? 히즈불라의 성장을 바라만 봐야 하나? MbS도 이제 못 도울 형편인데 말이다. 그리고 만에 하나(과연 하나?), 트럼프가 재선 못 되면? ---------- 참조 1. 2국가 해법은 죽었다(2018년 4월 2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6207271704831 2.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70년의 교착(2018년 12월 14일): 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3371 3. 칼리드 므샤알에 대해서는 두 개 정도가 좀 자세히 적어 놓았다. (1) 하마스와 히즈불라(2015년 3월 12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091158259831 (2) 칼리드 므샤알의 도박(2012년 12월 11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478170775568390 4. 정식 이름은 셰이크 아흐마드 이스마일 하산 야신(الشيخ أحمد إسماعيل حسن ياسين‎), 하마스를 만든 장본인이다. 5. 심각한 사안이었다. 친-트럼프 중에서도 친-트인 린지 그레이엄(북한 때문에 자주 영상에 나오시는 분이다)과 밥 코커 상원 외교위원장까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제재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6. Russia expects to continue cooperation with Israel on Syria — Lavrov(2018년 12월 18일): http://tass.com/politics/1036405 이 사건이 많이 흥미로운데, 시리아에서 작전 중이던 이스라엘 F-16기들이 시리아의 방공 미사일(S-200)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정찰기 뒤로 숨은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가 대노한 것.
주이스라엘 브라질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https://www1.folha.uol.com.br/mundo/2018/11/bolsonaro-diz-a-israelenses-que-ira-transferir-embaixada-para-jerusalem.shtml 대선 선거운동 당시 보우소나루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 중에 이스라엘 관련 공약이 있었다. 하나는 대사관을 미국처럼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시키겠다이고,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폐쇄시키겠다였다. 그래서 당선된 지금...? 이스라엘 언론 Hayom과의 인터뷰(참조 1)를 인용하겠다. "이스라엘은 주권 국가입니다. 수도를 어디에다 정하면 그에 우리가 따라야죠. ...예스. 대사관 옮길 겁니다." "주브라질 팔레스티안 대사관은 대통령궁에 너무 가까워요. 어느 대사관도 그렇게 가까이에 없습니다. 옮겼으면 해요. 그런데 대사관 가지려면 국가부터 되어야겠죠." 발행은 오늘(11월 2일) 됐으며, 헤드라인에는 위의 '이스라엘은 주권 국가입니다...' 부분이 인용돼 있다. 현재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옮긴 나라는 미국과 과테말라가 있으며(파라과이는 계획했다가 철회했다), 브라질이 옮긴다면 세 번째 나라가 되는 셈. 사실 이스라엘 기본법에도 예루살렘이 수도라고 명기되어 있기는 하다(참조 2의 크네셋 사이트를 보시라). 그러나 그간의 전쟁 때문에 텔아비브가 수도 노릇을 해 왔었고, 그랬던 상황이 트럼프의 미국 대사관 이전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참조 3). 게다가 브라질은 이른바 '중립적'(가령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각각 FTA를 체결했다든가 하는, 참조 4)인 행태를 보였었으며 아랍 국가들과도 친하게 지내 왔었다(이를테면 이번 대선 후보였던 아다지는 -크리스트교이기는 하지만- 레바논 아랍계다). 하지만 중립적이라는 개념은 곧 친-팔레스타인일 때가 많다. 실제로 지우마 전 대통령은 주브라질 이스라엘 대사의 신임권 수락을 조건부로 했었다. 그 조건이 바로 주브라질 팔레스타인 "대사관" 건립 지지였다. 혹시 브라질 안에도 유대계와 아랍계가 상당히 많이 있는데(이를테면 현재 한인 거주가 많은 봉헤치루는 이전에 유대인 거주지역이었다, 현재 그들은 Pinheiros같은 지역으로 이주했다), 이들이 브라질 내에서 혹시 갈등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브라질에 있는 아랍계는 크리스트교가 많다 보니, 이슬람 비중이 워낙 적어서 딱히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무관심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브라질의 주요 수출품인 쇠고기/닭고기를 이제 아랍 국가에 수출하기 어려워질까? 그도 꼭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워낙 헤알 환 가치가 바닥을 기고 있으니 말이다. 아랍 국가들 또한 역시 이념보다는, 자기랑 어울리지도 않을(!) 팔레스타인보다는 국내 물가가 더 중요하다. 게다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이 현재 같이 방향을 틀고 있으니(결국 반 이란이라는 얘기다), 브라질로서는 타이밍이 좋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왠지, 원래 기사와는 취지가 정 반대인 내용으로 쓰고말았다(...). 보우소나루가 중국에도 뭔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조치를 하지 않을까? 브라질에 있는 중국계 국민이 대부분 대만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브라질 국내적으로 환영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 참조 1. President-elect of Brazil promises: Israel can count on our vote(2018년 11월 1일): http://www.israelhayom.com/2018/11/01/president-elect-of-brazil-promises-israel-can-count-on-our-vote/ 참고로 1위가 꼭 좋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스라엘 발행부수 1위이며 친-네타냐후로 알려져 있다. 2. https://www.knesset.gov.il/laws/special/eng/basic10_eng.htm 3. 예루살렘과 빅 픽처(2007년 12월 17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843900379831 4. 메르코수르가 바깥 나라와 맺은 최초의 FTA 상대가 이스라엘이었다.
러시아의 침묵
이스라엘이 시리아 내 이란 군기지를 공격할 때 러시아가 침묵을 지켰다는 사실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들 하셨을 것이다. 그거 그렇게 어려운 문제 아니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절친 중 하나가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이기 때문이다. 얽히고 섥힌 중동 국가들의 국제관계를 보고 혼란스워할 것이 당연하니, 역시 이스라엘!하셔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는 푸틴의 허락과 시리아 사태, 더 나아가 중동에 있어서 균형자 역할을 하려는 러시아가 OK해줬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막나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을 좀 아신다면, 이스라엘이 원래 러시아어가 통하는 러시아권 나라임(...)을 모르지 않으실 텐데, 전국민의 1/8이 노어 구사자들이고, 원래 이스라엘 건국을 주로 러시아와 벨로루시(예전 이름으로는 백러시아) 등 구-소련 출신 유대인들이 주도했었다(참조 1). 실제로 골다 메이르 총리도 우크라이나 출신이었고 현 국방장관 Avigdor Lieberman도 구소련 몰도바 출신으로서 러시아어 구사자다. 스탈린 이후 소련 지도자들이 유태인들에게 비교적 쉽게 여권을 준 이유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스라엘과 러시아가 절친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참조 2). 우선 무인기에 있어서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 관계(IAI와 Оборонпром)에 있고, 이스라엘 근해의 천연가스 채굴을 러시아 회사(그유명한 가즈프롬 Газпром)가 하고 있다(참조 3). 그래서 급기야는 2014년, 이스라엘은 러시아와 직통 핫라인을 구축하기까지 한다(참조 4). 미국과는 구축하지도 않은 핫라인이다. 게다가 크림 사태를 이야기 안 할 수 없겠다.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차지(?)했을 때 유엔제재 투표에서 이스라엘은 일부러 불참했다. 이스라엘 내 러시아계 인구가 적극 투표층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네타냐후는 푸틴과 친구. 이번 5월 9일 전승 기념 퍼레이드에도 “VIP”로 참가했고, 곧바로 푸틴과 정상회담을 가졌었다. 당연히 시리아 문제를 거론했을 것이며, 푸틴의 OK를 받았을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다. 역내 이란의 영향력 약화. 잠깐 이해 못 하실 수도 있을 텐데, 러시아와 이란은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참조 5). 간단히 말해서 원교근공(遠交近攻). 러시아는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강국으로서의 이란의 존재를 반가워하지 않으며, 그저 아사드의 권력 유지를 위해 이란과 손을 잡았을 뿐이다. 이스라엘로서도 애초에 아사드의 제거는 포기했다(참조 2). 그 대신 이란과 직접 부딪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게다가 미국이 이란 핵 협상에서 탈퇴했기 때문에, 러시아로서는 유럽과 함께 이란에 대한 “카드”가 하나 생겼다. 이스라엘로서도 NPT에 가입하라는 압박을 덜 받기 위해서는 전쟁보다 약간 수위가 낮은 난장판이 되는 편이 더 낫다. 이란은? 시리아에 보낸 이란 군대(...라기보다는 군 조직)가 아프간 난민 출신들로 구성된 파티미윤(فاطمیون)들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당한다고 해도 딱히 아쉬워할 것 같지 않다...가 이 칼럼의 내용 일부인데, 이스라엘이 목표로 한 대상 또한 육군 부대가 아니라 미사일 및 드론 장비들이었다. 게다가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이란 내부의 권력 투쟁이다. 시리아 내 이란군을 지휘하는 카젬 솔레이마니(قاسم سلیمانی‎)가 강력한 대선 후보로 나서는 걸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다(참조 6). 임진왜란 당시의 선조를 생각해 보시라.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은 모든 당사자를 흡족하게(...) 하는 수준이었다는 얘기인데, 너무 위험한 불장난 아닐까? ---------- 참조 1. 기예르모 델 토로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보면 “이스라엘 놈들이 만든” 폭탄 얘기가 나온다. 당시 소련 스파이들이 이스라엘제 폭탄을 쓰는 건 당연한 시기였다. 2. Entre Moscou et Tel-Aviv, une étrange lune de miel(2014년 9월호): https://www.monde-diplomatique.fr/2014/09/DELANOE/50788 무료로 풀려있는 기사이니 보실 수 있다. 3. 특히 이스라엘의 하이파 근해 지역인 Tamara 유전의 천연가스 채굴 계약이 20년간(2013-2032)이다. Gazprom Signs 20-Year LNG Purchase Deal with Israel(2013년 2월 26일): https://sputniknews.com/business/20130226179690676-Gazprom-Signs-20-Year-LNG-Purchase-Deal-with-Israel/ 4. Note de recherche stratégique n°9 - Vers une nouvelle posture nucléaire israélienne?(2014년 7월): https://www.defense.gouv.fr/irsem/page-d-accueil/vient-de-paraitre/nrs-9-posture-nucleaire-israelienne 등재되어 있는 PDF의 2페이지에 나와 있다. 이런 자료가 전체 공개이니 프랑스 국방부에게 메르치 볶음. 5. 시리아라는 궁지에 몰린 러시아(2018년 4월 10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6182674054831 6. Iranians may turn to ‘military president’ as nuclear deal collapses(2018년 5월 9일): : http://www.al-monitor.com/pulse/originals/2018/05/iran-jcpoa-nuclear-deal-us-withdrawal-military-president.html#ixzz5FNwRIbZW
드루즈, 분노하다
http://www.faz.net/-gq5-9d4es 몇 번 얘기한 적 있지만(참조 1), 드루즈는 중동 지방에서 상당히 기묘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주, 아주 옛날에 시아파에서 갈라져나와 현재는 당당한 하나의 종파를 이루고 있으면서(혹자는 이들이 무슬림이 아니라고도 주장한다), 국어는 아랍어를 사용하지만, 자기가 살고있는 나라에 충성을 바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다만 이들은 정통(?) 무슬림 계 아랍인들로부터 핍박과 탄압을 받아왔기 때문에(참조 2), 일반적인 주변의 순니파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대인들이 몰려와서 이스라엘을 세우려 할 때부터 이들은 이스라엘과 협력해왔었다. 당연히 이스라엘이 참여한 모든 전쟁에 같이 참여했으며, 이스라엘을 위해 싸우고 이스라엘을 지켰다. 당연히 이스라엘이 다른 아랍계는 몰라도 드루즈는 믿었고, 크네셋 의원 자리도 특별히 배정해 놓았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네타냐후가 "유대인 국가"를 기본법에 집어 넣으면서 사단이 발생한다. 기사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아말 아사드도 마찬가지, 심지어 그는 전직 IDF 장성이었다. 갑자기 유대인들 밑으로 지위가 격화됐기 때문에 그는 시위에 나섰다. 같이 팔레스타인과 싸웠던 상당수 이스라엘인들도 여기에 동조. 막 통과된 기본법을 다시 되돌리지 않으면 혹시 1990년 이전의 남아공처럼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드루즈들은 대부분 리쿠드 당에 투표해 왔었는데도 불구, 네타냐후의 리쿠드당은 드루즈 수가 적으니(인구의 1.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대수롭지 않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네타냐후의 한 측근은, "12만 명 정도의 소수가 어째서 특권을 가져야 합니까?"라고 말했다. 물론 드루즈라고 하더라도 이미 유대인들과 차별되는 대접을 받고 있기는 하다. 가령 이스라엘에서 제일 위험한(?) 지역인 웨스트뱅크 쪽의 군경은 뭔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드루즈나 그 외 소수계 이스라엘 병사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랍계 이스라엘인들(참조 1)과도 같이 시위에 나서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전직 장성답게 기사의 주인공 아말 아사드는, "그들(아랍계 이스라엘인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함께 든다면야 같이 시위를 할 수 있소."라 말한다. ---------- 참조 1. 시리아의 드루즈(2015년 8월 24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490958114831 조지클루니(2014년 7월 8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2497371174831 , 아랍계 이스라엘인(2014년 7월 26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2534562374831 2. 그래서 이들은 마찬가지로 아랍인들의 탄압을 받았던 쿠르드처럼 산악 지방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이유 때문에 드루즈 거주지는 이스라엘 내 다른 지방보다 인건비가 매우 저렴하다. (유대인 사업가들이 종종 이들 지역에 투자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