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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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우드 영화만의 간지











특유의 간지가 있는 인도 영화ㅋㅋㅋㅋㅋ
까리하네요...!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1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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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히어로들 자괴감 들듯ㅋㅋㅋㅋㅋㅋㅋㅋ
인도영화는 극대화된 초딩적 상상력을 실사화 시키는게 특징인가봐요 ㅋㅋㅋ
영화제목 아시는 분 ㅋㅋㅋ 보고싶어지네요
주성치가 과거에 다 했던것들이군요...
주인공을 제외한 그 나머지가 대단. 주인공은 하는게 딱히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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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판] 시어머니의 이상한 축의금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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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길어졌네요. 새글에 쓸까하다 그마저도 귀찮아서.. 죄송합니다.) 많은분들이 봐주셨네요. 새벽에 울컥하는 마음에 주절대고 닫아버린건데 톡선에 올라갈줄이야.. 다들 공감해주시고 편들어주셔서 마음이 많이 진정되었습니다^^ 어떻게됐나.. 궁금해하시는분이 계실수도있다고(?) 생각되서 뒷이야기를 좀 써볼께요. 글써놓고 침대에누워 눈만감았는데 잠이 오겠습니까. 그래도 낼부터 다시 돌쟁이 아기랑 전쟁을 치를려면 자야된다고 최면을걸고있었는데 제가 잔다고 생각했는지 신랑이 스윽 일어나 거실로 나가더라구요. 지지리궁상 맞게 새벽 4시에 소주꺼내 식탁에 앉아 울더이다. 누가뭐래도 내신랑인지라 쫓아나가서 손을잡았지요. 하고싶은얘기있음 하라고. 겁나 쪽팔린대요. 벙어리된것처럼 한마디도 못하겠다고 미안하단말도 안나온대요. 엄마가 돈 욕심 남다르다는건 알고있었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다고.. 시댁가서 엄마한테 왜그러냐고 화내자 엄마가 별의별 불만을 다 쏟아 내시더래요. 그 불만이 뭐인지 한번 들어나보자니까 신랑이 얘기를 하더라구요. 시아버지 돌아가시고나서 매월용돈 보내지않은것. 추석.설날에 용돈만 주고 음식값은 따로 챙기지않은것. 애기낳고 산후조리해준댔는데 기어코 산후조리원 들어간것. 친인척 경조사 얘기해도 돈 보낸단소리 없었던것등. 모두 돈에 관련된것이더라구요. 용돈부분.. 참 ㅋㅋ 이래서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고하나봐요. 시아버지 돌아가실때 신랑이 시아버지 보험 들어놓은거에서 (이것도 제가 신랑이랑 연애할때 닥달해서 들어놓은것) 사망보험금 5천만원이 나왔거든요. 수익자가 신랑이었지만 시어머니가 살아계시고 아버님이 생전에 투병하시느라 살던집도 팔고 전세로 살고계신게 안쓰럽고해서 그돈 다 갖다드리라고 아버지 목숨값 당신이 갖는거 아니라고 했거든요. 어머니 드렸는데 그때 형과 누나랑 틀어졌어요. 왜 자기네들이랑 상의한마디없이 어머니 다줬냐고.. 우리신랑 저랑 7년연애하고 결혼해서 3년째살고있으니 저 이사람 10년봤거든요. 착해서 삽니다. 병신 쪼다같이 착해서요. 지가손해봤음 봤지 남들한테 싫은소리 못해요. 안해요. 그래서 악역은 모두 제몫이네요. 빙신이 형, 누나들한테 한마디도못하고 사과하고 왔다길래 불같이 화가나서 제가 뒤집었습니다. 그돈 우리신랑앞으로 나온돈이다. 당신들이 누굴주던 무슨상관이냐고. 그런데요. 어머님이 그돈 5천 첫째 아들 사업자금 대셨더라구요. 목숨걸고 나쁜년 될 각오하고 뒤집었는데 어머니가 홀랑 돈 갖다줘버리니 제가 열이 받겠습니까 안받겠습니까. 그뒤로 용돈 끊었고. 그 밑으로 줄줄이 있는 개소리도 씨부리던지 말던지 한귀로 쭉쭉 빼면서 살았어요. 아무튼 이번에도 병신된 울 쪼다신랑 불쌍하고 짠해서 꼭 안아주고. 천륜을 어떻게 내손으로 끊겠냐만은 당신이 천륜을 끊겠다는 생각을 하게되면 내가 아주 다시는 돌아오지못할 무지개다리를 놔준다고 하고 퐈이팅있게 잤습니다. 아침 8시에 시어머니 전화 오더라구요. 할 얘기있다고 집으로 오신다고. 건너오시라고 했고 신랑 회사 보낼까 했지만 무슨 사단이 어떻게 나든 결말은 함께 보는게 좋을것같아 반차내고 같이 기다렸습니다. 9시 반되니 어머니 집에 도착하셨는데 손에 뭘 들고오셨더라구요. 앉지도 않고 저한테 시아버지 장례식 조의금장부 툭 던지시더니 니 손님 체크해라 오늘중으로 정산해주마 하시대요? 어머님은 그렇게 하면 제가 잘못했다고 빌줄알았나봐요. 식탁에 앉아 이름보면서 체크하고 빈종이 가져와 따로 리스트 적고있으니 기가차고 코가막힌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차면서 어이없어하시더라구요. 그러든지말든지 다 체크하고 전부 계산해보니 825만원이 제 앞으로 들어왔네요. 몰랐는데 저희 친정엄마 이모 삼촌 외갓집식구들이 다들 50만원씩 크게하셨더라구요. 딸년 시집가서 시댁에 밉보이지말라고 그러신것같아 리스트 작성하면서 울컥해 울었네요. 리스트 다 적어서 드리자 생각보다 큰금액에 놀라셨는지 한참 말없이 계시더니 넌 나한테 더 할얘기없니? 그러시더라구요. 할얘기있다고. 리스트에적은 825만원에 시아버지 상조해드린 490만원도 더해서 주시면 된다고. 어처구니없단 얼굴로 저 보시더라구요. 어머니께 할만큼했고. 돈 드릴만큼 드렸고. 며느리도리 운운하시는거 다해드렸다. 용돈은 왜 못받고계시는지 스스로 아실테니 얘기더이상 안하겠다. 설, 추석때마다 30만원씩 드리는거 적은금액 아니며 제사를 지내는집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 크게봐서 음식 하는집도아니고. 명절전날 마트가서 같이 장보고 계산 아범카드로 하는데 음식값 따로 챙겨달라는거 웃기고 억지다. 산후조리원 350만원에 했다하니 그돈 탐나 들고내려오면 조리해주신다는거 아니었냐. 산후조리원이랑 똑같이 해주시는것도아닌데 왜 그돈 어머니께드리고 조리제대로 못해 앞으로 아파야되는건 내몫인지 이해안되서 산후조리원들어갔다. 친인척경조사 얘기하셔서 어디서 언제하냐 가까운데면 가겠다는데도 오지말라 돈만보내라 하시는데 그것도 한두번이지 경조사 있었던 친인척한테 축의해줘서 조의해줘서 고맙다는 말한마디 못들었다. 어머니 얼굴에 똥칠하는걸까봐 거기다전화해서 내가보낸 축의금 잘 받으셨냐 얘기안했다. 한 30분을 저혼자 연설을 했네요. 막장드라마의 결말처럼 시어머니는 저년땜에 내가 나가죽어야지 못살겠다고 가슴을 탕탕 치시며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서 나가셨습니다. 신랑 안따라가더라구요. 그냥 제손 잡고.. 점심먹으러가자. 한마디하네요. 애기 업고 설렁탕 한그릇 진하게 먹고 푹자고 일어났습니다. 진상진상 개진상 시어머니 또 연락하겠지만. 늘 그랬듯이 앞으로도 제가 이구역의 미친.년. 되어볼랍니다. 2편) 안녕하세요? 글쓴이입니다.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얘기에 관심을 가져주시고,같이 공감해주시고 상처 입은 제게 따뜻한 말, 시원한 웃음 보내주셔서,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으로 모든 일을 잘 끝냈습니다. 더이상 글을 올리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따뜻한 지원 보내주신 분들께 이렇게 끝났다정도는 알려드리는게 예의인것 같아 오늘도 오늘만 살고 내일 죽을것 같이 사력을 다해 노는 우리 아들을 재우고, 신랑까지 재워놓고 커피한잔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글이 꽤 길어지더라도, 그래서 다소 지루하더라도 무한 양해부탁드립니다. 글 재주가 없어요.. ㅎㅎ 월요일, 저녁 7시쯤..신랑이 퇴근하고 집으로 귀가했을즈음.. 제 친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 저희집은 1남 2녀로 제가 장녀, 둘째 여동생, 막내 남동생이 있습니다.) 언니 도대체 무슨일이냐고, 사돈댁에서 전화가 왔다고 하더라구요. 차분히 얘기를 들어보니, 상황은 이랬습니다. 시어머님께서 저희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 딸이 시아버지 장례비용을 이제와 토해내라고 한다.난 이렇게 무서운 며느리 진절머리가 나니 애들 이혼시키자고. 저, 이번 일 저희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말씀드릴 이유도 없었구요. 그치만 시어머니 간과하신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진절머리 나는 무서운 며느리 키운 우리 엄마에게 무슨 좋은 소릴 듣겠다고 전화를 하셨나.. 싶네요. 울 친정엄마의 매서운 양육 스토리를 풀자면 2박 3일 걸리니 그부분은 고이접어 넣어두고. 친정엄마가 그러셨답니다. 사돈, 무슨일이신진 모르겠지만 저한테 전화하셔서 큰 소리 낼 정도의 일이라면, 애들 앉혀놓고 어른으로써 혼낼건 혼내고 하시는게 맞지 않겠냐. 사리분별 못하는 유치원생들도 아니고, 말귀 못알아듣는 동물도 아닌데. 갑자기 전화하셔서 애들 이혼시키자고 얘기하시는 연유가 뭐냐. 지들 좋다고 결혼했지, 내가 결혼하라고 등 떠민거 아니다. 내 딸이 천사같이 마냥 착하고 고분고분한 아이는 아닌건 알지만..그렇다고 어디가서 막되먹은 아이라고 욕먹을 애도 아니다. 무슨일인진 모르겠지만 시가에서 벌어진 일은 시가에서 해결하셔라. 제가 도와드릴수 있는 일도 아니고, 갑자기 껴들어 해결 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전화 끊으셨답니다. 궁금한 동생이 엄마 붙들고 늘어져 무슨일이냐 뭐라 그러시더냐 계속 보채봤지만.엄마한테 돌아온 답변은. 딱 하나. 니가 알아서 뭐하게 이년아. 밥이나 먹어. 동생의 전화를 시작으로 제 핸드폰은 콜센터가 되어버렸네요. 우선 신랑의 첫째 형, 그러니까 저한테 시아주버님이 전화를 먼저 하셨더군요. 제수씨 사람 그렇게 안봤는데 너무하는거 아니냐. 잘못했든 잘했든 어른이신데 잘못했다고 하면 끝날일을 왜 크게 만드냐.우리 돈없다고 무시하는거냐. 어머니가 나한테 와서 돈 천만원만 빌려달라고 우시더라.노인네가 돈이 어딨어서 당장 그 큰돈을 주겠냐. 더군다나 그 돈 우리 아버지 장례 조의금이였다. 세상에 어떤 며느리가 그 돈달라고 하냐. 기가 차더군요. 전화가 득달같이 달려올거라 생각한 리스트에 전혀 없던 인물 1인이었습니다. 왜냐, 시아주버님은 저랑 절대 마주치면 안되는 인물이시니까요. 시아주버님이요. 우리 신랑은 당신 지갑으로 알던 인간 말종입니다. 군 제대 하고 서울올라와 직장잡고 원룸으로 이사온 다음 날, 옷 한보따리 싸들고 신랑집에 얹혀 살기 시작했거든요. 그뿐인줄 아세요? 생각해놓은 사업아이템은 디지게 많아요. 돈이 없는게 문제죠. 남의 돈으로 사업하려고 드는 천하의 몹쓸인간인데요. 우리 신랑 착실하게 직장들어가서 200만원 250만원 월급 받아오면, 최저생계비만 제외하고 그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다 빼앗아 갔습니다. 저랑 연애 시작하고, 6개월쯤 지났을때 그 사실 알고나서,저랑 같이 적금 붓게 하고 보험들게하고 청약들게하고 이래저래 돈 묶어버리면서, 돈줄이 끊겨 버리자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줘서 고맙다는 소리 한마디 없이, 짐 싸들고 튀어 3년간 연락 없었던 개차반이시고요. 그 3년동안 더 악착같이 모아 전세 6천짜리 투룸으로 이사갔단 소리 듣고, 다시 기어들어와 빌붙어 빌빌대며 10만원만 20만원만 하다가, 서울에서 직장다니던 신랑이 갑자기 경기도권으로 발령 나면서, 계약기간은 남아있어 바로 방 못빼고 경기도권에 다시 원룸 월세로 방 잡고, 형한테 계약기간까지만 살다가 형도 나가야 될것 같다고 하니 알겠다고 어쩔수 없지 뭐.. 하시더니 계약기간 만료 되기 전, 방 빠진거 말 안하고 집주인한테 보증금 지가 받아서,전세금 6천 들고 나른 또라이중에 상 또라이입니다. 털털 빈털털이 된 우리 신랑 진짜 힘들어했고, 그렇게 '내년에 결혼하자'가.. '언제 결혼할수 있을지 모르겠어 미안해..' 로 바뀌었지요. 세상에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다독이며 다시 돈 모아서, 저랑 결혼할때 3천 겨우겨우 모았습니다. 울 부모님 그런 신랑 더 끌어안으셨고, 우리도 결혼해서 단칸방에서 연탄 때면서 시작했다. 월세로 시작하는거 흉 아니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매매로 차근차근 밟아나가면된다. 하시면서 제가 모은 8천만원중에 난데없이 대학교 등록금, 어학연수 보내준 비용, 그동안 키워주고 매겨준 값으로 5천만원 갚으라고 닥달하시더니 저랑 신랑 둘다 딱 3천만원씩 들고 결혼하게 하셨고 신혼집에 청소기 하나 안놔주셨습니다. 형이 6천만원 들고 튀지만 않았어도, 신랑 1억 저 8천해서 어디 전세집에서라도 시작했을텐데.. ㅎ 진짜 생각하면 할수록 빡치네. 아오. 아무튼 저에게는 진짜 살면서 마주치지 말아야 할 인물이기에. 거침없는 막말이 나갔지요. 돈이나 갚고 그런소리 하시라고. 어디서 형 노릇이냐고. 아주버님 하는 짓 보면 가족이라는것만 빼면 사기꾼이나 다름없다고. 나보다 나이 많다고 다 어른은 아니라고. 앞으로도 나한테 아주버님이라는 단어로 불리고 싶으면, 이만 전화 끊으시라고. 네, 전화는 끊겼습니다. 그분 제 눈치 엄청 보시거든요. 그럼요 당연히 보셔야지요. 동생 돈을 지금까지 1억을 해 쳐드셨을텐데. 가족이라는 미친이름을 내세워서, 갚지도 미안해하지도 않는데, 눈치라도 봐야지 당연한거 아니겠습니까. 저에겐 전화해서 좋을거 없다고 판단했는지 신랑 전화가 울리기 시작하더라구요. 제가 잽싸게 빼앗아 전원을 꺼버렸습니다. 안봐도 비디오로 "아.. 응.. 뭐.. 그래.. 응.." 할거 뻔하니까요. 신랑에게 선전포고를 했지요. 나 당신 10년봤다. 10년 본 동안 오늘이 진짜 최악이다.지금까지 당신 식구들한테 지갑취급당하면서 돈 빼앗기고 산거 당신 인생이니 뭐라 안한다. 그치만 이젠 다르다. 나랑 아들내미 생각해서라도 그따위로 살지 말자. 남한테 피해 주지 말고, 피해 받지도 말고 살자. 알겠냐. 고개를 끄덕끄덕. 눈물이 한바가지 고였더라구요. 신랑 전화기가 꺼져서 인지, 제 전화로 전화가 걸려오는데..와.. 둘째 아주버님이더라구요. 처남댁.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불쌍한 어머니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라. 지금까지 많이 참아온거 아는데, 이번 한번만 더 참고 넘어가면 안되겠냐. 어머니가 집에오셔서 한참 울다가 지금 가셨다. 이건 아닌것 같다. 저도 말씀드렸네요. 아주버님, 아주버님도 저한테 이러시는거 아닌것 같다. 이렇게 쉽게 전화하실수 있는거였으면 돌잔치 당일날 축하한다고 한마디라도 하시지 그랬냐. 연락도 없고 얼굴도 안비추셔서 전 한국에 안계신줄 알았다. 신랑이 아주버님 애들 돌잔치때 어떻게 했냐. 애들 둘 돌잔치 다 쫓아다니고, 돌반지에 돈 20만원씩 넣어서 두번 똑같이 하지 않았냐. 그것만해도 돈 백이다. 우리는 땅파면 돈 나오고, 돈 쓸때없어서 전전긍긍하다 조카들 돌 챙긴줄 아냐. 여기서 돌잔치 얘기가 왜 나오냐고 하시더라구요. 왜 상황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졌는지, 왜 내가 이렇게 광분해 미친년 널 뛰듯 뛰어대는지, 당신들이 나한테 전화하면 안되는 이유가 뭐였는지에 대해 차분히 얘기해드렸습니다. 미안하다. 돌잔치에 일부러 참석 안한건 아니다. 처남댁한테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해야될것 같다. 실은 지난 6일 일요일에 어머니 모시고 저녁식사를 하는데, 형님네(첫째네) 연락이 와서, 같이 저녁을 먹고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지난번 어머니 생신때 얘기가 나왔다. 그때 형님과 형수님이 마음이 많이 상하셨다고 얘기를 꺼내셨고, 내 와이프도 넌지시 지금까지 있었던 불만을 얘기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여자들끼리, 잔치에 형제들이 안가면 창피할것이다 본때를 보여줘야 된다. 뭐 이러면서 같이 가지 않기로 약속이 된 모양이더라. 그래서 못가게 된거다. 라고 하더라구요. 참 지금 생각해도 기가 차네요. 지난 어머니 생신때 일이 뭐냐면요. 결혼한지 3년됐고 어머니 생신이 10월달입니다. 안타깝게도 저희가 결혼을 5월에 하는 바람에 꼬박 3년 모두 어머니 생신을 챙기게 되었지요. 첫번째 해는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처음 맞는 어머니 생신이라, 마음도 울적하실것 같고 이래저래 기분 전환이 필요할것 같아, 제주도 여행을 갔다왔습니다. 물론 경비는 80% 저희가 냈지요. 어머니와 저희부부만 가자니 좀 마음에 걸려서, 비행기값과 숙박비만 저희가 내기로 하고 첫째형네, 둘째누나네를 모두 불렀는데. 렌트, 기름, 식사비용.. 대부분이 저희몫이었습니다. 뭐 불만 없습니다. 저희 신랑도 월급이 400가까이 되고, 저도 그때는 임신전이여서,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대기업 5년차 대리였기때문에, 월급이 400가까이 됐으니까요. 둘이 합쳐 800 벌어대는데 그깟 가족행사 한번 못쏘냐 하는 심정으로 베풀었습니다. 두번째 해, 어머니 생신 한달 앞 둔 추석 모임자리에서 첫째 형님이 물어보시더라구요. 이번엔 우리 어디로 여행가? 라고요. 석달 뒤 출산을 앞두고 있었고, 여행은 무슨.. 이라는 생각에 그냥 밥이나 먹자고. 치웠습니다. 물론 어머니껜 현금 100만원 따로 드리면서 출산 앞둬 생신때 같이 어디 바람이라도 쐬러 나가야 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게 됐다며, 애기 낳고 또 놀러가자고 살랑 걸렸지요. 저희가 100만원을 드리면서, 어머니가 내심 첫째와 둘째에게 너희는 뭐 없냐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셨고, 그 부분때문에 내년엔 따로하지 말고 돈 모아 하자고 들들 볶더라구요. 어려운거 아니였고, 알겠다고 내년부턴 같이하자고 넘어갔습니다. 세번째 해, 올 해 생신이네요. 첫째 아주버님이 어머님께 생신선물로 뭘 드렸으면 좋겠냐고 물어보자, 안마기가 갖고 싶다고 하셨다고 카톡으로 모두를 소환을 하시더라구요. 자기가 알아봤는데, 바디***에서 나온 안마기가 200만원 정도 하더라. 이게 제일 좋다는데 기왕 사드리는거 이거 사드리면 어떻겠냐. 뭐, 따로 알아보는것도 귀찮았고 알겠다고 그걸로 하자고.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다음 질문이 참 어처구니 없더군요. 막내야, 너네집에서 얼마할꺼야? 라고 묻더라구요. 제가 지금 무슨말씀하시는거예요? 아주버님? 얼마를 하다니요. 200만원 N분의 1 해서 내는거 아니었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아주버님이 그러시더군요. 막내네 집은 경제적 사정이 괜찮으니 조금 더 부담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러면서 아주 재빠르게 둘째네는 얼마 할수 있냐고 하더라구요. 한참뒤 둘째누나.. [30만원] 이라고 하대요. 그러더니 첫째형님이 [우리집도 여유가 별로 안되서 30만원 똑같이 맞출께] 라고 하시더라구요. 나참.. 이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싶더라구요. 그럼 200만원대 안마기에서 60만원 제외하면 140만원인데, 그걸 우리집에서 다 부담하라는 소리냐. 라고 했더니. 묵묵부답. 됐다고 장난들 그만하시라고. 우리도 돈없다. 애 낳고, 현재 신랑 외벌이로 산다. 월세로 시작해서 2년 지나 애기 낳고 겨우 전세집으로 이사왔다. 탈탈 털어야 십원한장 없으니, 똑같이 N분의 1 할거 아니면 안마기는 사지말자. 그냥 똑같이 30만원씩 어머님께 현금으로 드리던가, 아니면 90만원대 안마기로 알아보는게 좋겠다.얘기하고 전 카톡 단체방을 나왔습니다. 더 볼것도 없었고 알고싶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 제 행동이 첫째 형님, 둘째 형님에게는 아주 싸가지가 지천으로 없는 올케였나봅니다. 아무튼 시어머니의 생신은 그냥 30만원씩 각자 드리는걸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때의 앙금을 돌잔치로 되받아치셨다는 얘기였지요. 둘째 아주버님께 다시 전화드린다고 말씀드리고, 우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신랑을 앉혀놓고 얘기했죠. 난 계속 이렇게 병신처럼 못살겠다. 니네집 식구들 그지근성 정말 지긋지긋 하다. 베풀어주면 고마운줄 모르고, 더달라 더달라, 나는 돈 찍어내는 기계를 집에 놔두고 사냐. 당신과 나의 노동의 댓가는 당신네 식구들 배불리 먹이고 입히는거냐. 당신이랑 나 3천에 월 40만원 월세로 시작했다. 2년 월세로 사는동안, 우리 얼마나 힘들고 이를 악물고 살았냐. 둘이 마트에 가서 스팸 3개짜리 묶음 살까말까 10분 고민했던거 기억 안나냐. 우린 그지같이 살아도 공경할건 하고, 베풀건 베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시댁에 할만큼 했다. 그렇다고 받았냐. 시어머니 손주새끼 태어났다고 돈 10만원 안줬다. 시댁에서 받은거라곤 둘째 형님네가 사가지고 온 배넷저고리 두개였다. 난 그래도 감사했다. 비록 내가 지금까지 형제들은 돈때문에 눈 흘기며 살아도, 애들이 무슨죄냐 싶어 첫째, 둘째 조카새끼들 어린이집가고 유치원가고 초등학교 들어간다고 때때마다 10만원씩 20만원씩 책가방 사주라고 드렸던 돈, 명절때마다 쥐어줬던 용돈, 잔치때마다 쫓아다니면서 부었던 돈. 나한테 고이 되돌아올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그 사람들이 고마워 하면서 살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이게 뭐냐. 대체 어디까지 해야되는거냐. 다다다다 떠들던 내 얘기 단 한마디 반박없이 듣던 신랑이 아무말 없이 핸드폰 전원을 키더라구요. 그때 신랑 눈빛을 보고 알아챘습니다. 아, 이제 내가 할 몫은 다 했구나. 마무리는 신랑이 알아서 하겠구나. 시어머니께 전화를 건 신랑이 딱 한마디 하더라구요. 어머니,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이제 막내 아들은 없다고 생각하고 사세요. 그리고 전화를 다시 끄더라구요. 물론 곧 바로 저한테 시어머니 전화가 왔죠. 신랑이 제 핸드폰 가져가 전원을 꺼버렸습니다. 신랑 회사 월차내고 오늘 하루 쉬었습니다. 전쟁같은 월요일을 보내고, 오늘은 아침일찍 세식구 옷 챙겨입고 차 끌고 나와 드라이브도 하고 외식도 하고 춥지만 동물원 돌아다니면서 사진도 찍었네요. 그치만 느낀점은 돌쟁이 애 데리고 밖에 돌아다니는건 할 짓이 아니라는거.. ㅠㅠ 집주인에게 연락 했습니다. 죄송하지만 계약기간 다 못채우고 이사가야 할것 같다고.부동산에 집 내놔달라고 말이죠. 오늘 전화번호를 둘다 바꿨습니다. 그리고 당분간 저랑 아기는 친정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다시는 되돌아오지못할 무지개다리를 건너버린거죠.. 참 끝이 허무하죠? ㅎㅎ 그리고 제 글도 끝이랍니다. 30년 넘게 같이 살아온 식구들의 손을 놓는다는거, 그거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질질 끌고 또 끌고 아프고 상처받고 패인 상처가 또 패이고 그게 흉이되고.. 그간 많이 힘들고 또 처절했네요. 앞으로도 전 애 키우다 심심하거나 세상사람들 사는 이야기가 궁금해지면, 판에 들어와 글도 읽고 댓글도 남기고 할겁니다. 자작이나 뭐다 말도 많고 못된 댓글쓰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가끔 눈물이 찐하게 나올만한 글도, 울컥하며 같이 성질내줄만한 글도,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싶은 글도 있으니까요. 2015년 액땜한번 진하게 한 우리 세식구. 2016년에는 행복만 깃들라고. 다들 축복해주세요. ^^ 글 읽으시는 분들 모두 행복 하시구요. ㅎ 추가) 아침에 일어나 댓글보고 깜짝놀랐네요. 자작이라는 댓글들.. ㅎ 상처가되네요. 몇가지만 반박하겠습니다. 우선 컴퓨터앞에 앉아 글 썼다는데 왜 마지막에 모바일에서 작성되었다고 나오냐는 글. -> 글 써놓고나니 제가 올해랑 작년해를 착각해서 2015년을 2014년으로 써놔 급히 수정했습니다. 님이야말로 모바일에서 쓰면 글 이어쓰기 하는 기능이 없다는걸 모르시네요. 둘째 아주버님이 왜 나를 처남댁이라고 부르냐. 자작이라는 글들. -> 첫째형(나에겐 시아주버님/ 나를부를땐 제수씨) 첫째형의 부인(큰형님/ 나를부를땐 동서) 둘째누나(둘째형님/ 나를 부를땐 올케) 둘째누나남편(아주버님/ 나를 부를땐 처남댁) 이 맞습니다. 호칭공부 좀 하세요. 그리고 베플. 형이 6천만원들고날랐는데 얼굴보고사냐. ->네, 삽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신랑과 연애할때 벌어진일이고 내돈아니고 신랑돈이었고. 그가용서했으니 제가 왈가왈부할문제 아니니까요. 보험금 5천때문에 형제들이랑 틀어졌다면서 제주도여행간게 이해안된다. -> 저희가 결혼한게 5월. 아버님 소천하신게 7월. 사망신고 8월 중순. 보험금신청 9월 중순. 보험금 신청해서 받은게 10월 중순. 어머님 생일 10월 초. 어머님이 큰형 사업자금으로 보험금 주신건 12월. 용돈 끊은건 다음해 2월부터. 형제들과 여행다녀와서 틀어진거예요. 내상식에선 저런일들이 있었는데 얼굴보고사는게 말도안된다는 분들. 글쎄요. 제속을 누가알고 여러분들 가정사를 세상사람들 다 이해하진 못하겠죠. 각자의 사정이 있기에 그게맞다 다르다 얘기할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 이치와 맞지않는다고, 내 상식에서 벗어났다고 무조건 거짓이다 생각하시는 오류는 그만범하세요. 드라마는 100프로 거짓임을 알고도 울고웃는 분들이 남의 가정사에 자작이라느니 속았다느니 참 짜증나는 얘기네요. 이래서 사람들이 글을 지워버리는군요. 막상 제가 당하고보니 글 지운사람들 마음이 이해가네요. 글은 오늘까지만 두고 삭제하겠습니다. 자작이라고 생각하시든 아니든 궁금해서 클릭하셨을테니까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진 10장 (6탄!)
여러분! 또 왔어용! ㅋㅋㅋㅋ 5탄 반응 진짜 좋아서 ㅠㅠ 기쁜 마음으로 6탄도 가져왔습니당!!! 기다려주시는 분들 감사해용! 1탄: https://www.vingle.net/posts/1253920 2탄: https://www.vingle.net/posts/1254954 3탄: https://www.vingle.net/posts/1260828 4탄: https://www.vingle.net/posts/1266369 5탄: https://www.vingle.net/posts/1272445 (출처: http://coviral.com/historys-powerful-photos) 맥주 금지령 이후 버려지는 맥주 아름다운 자살 23살의 Evelyn McHale,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83가에서 리무진으로 떨어짐.1947년 스티븐 호킹과 그의 첫 아내 히틀러의 마지막 사진, 1945년 4월 30일 플로리다의 마지막 미국 남북전쟁 베테랑, Bill Lundy. 제트 전투기 앞에서, 1955 18살 프랑스 레지스탕스 Simone Segouin (가명 Nicole Minet) 그녀는 샤르트르에서 수도를 해방시키기 위해 참전했다. 8월 19일, 1944 *레지스탕스란 프랑스어로 ‘저항’이라는 뜻이다. 점령군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행위를 일컫는데, 보통 레지스탕스라 하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저항운동을 의미한다. 한국전쟁 때 서로를 안고 있는 군인들 수영복 길이를 재는 중, 너무 짧으면 벌금 부과, 1920년대 자유의 여신상 머리 부분을 꺼내는 중, 1885 군대에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 1962 반응 좋으면 7탄!!! 럭키 7 갑니당!!
현대카드 정태영사장에게 편지를 쓴 고등학생과 그 답장
다시 보는 좋은 글입니다. 못 보셨던 분이 계시다면 얼른 챙겨보세여 !! 며칠 전 반가운 이메일을 한통 받았습니다. 사연인즉슨, 경제부에서 카드사를 담당하고 있던 작년 3월쯤이었을 겁니다. 한 고등학생이 다짜고짜 이메일을 보내와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님을 멘토로 삼을 수 있게 도와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왔습니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친구가 연예인도 아닌, 금융회사 CEO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는 게 당돌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현대카드측에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랬죠. 그쪽에서도 처음엔 정 사장님께 보고를 드려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다가 결국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행히 정 사장님도 흥미를 보였죠. 단,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어렵고, 이번 한번만 이 친구가 원하는 질문을 적어 보내주면 정 사장님이 직접 답변을 작성해 주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당돌한 고등학교 1학년생과 국내 대표적인 금융회사 CEO의 '은밀한' 인터뷰가 이뤄졌습니다. 당시 문제의 고등학생이 며칠 전 다시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내용은 자신이 작년에 정태영 사장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요즘도 종종 다시 들춰보며 도움을 얻곤 하는데, 이를 주선해 준 제게 고맙다는 얘기를 못한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정식으로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나이를 한살 더 먹더니 당돌함에 더해 예의까지 갖췄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오랜만에 이 친구가 정태영 사장과 주고받았던 이메일을 찾아 읽어봤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인문학과 학문간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얼마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새삼 눈에 띄더군요. 사실 당시에 이 둘이 주고받은 메일 내용을 기사화할 생각도 있었습니다. 정태영 사장이 직접 작성한 답장에서 자신의 또래답지 않게 성숙했던 고등학생의 고민을 어깨에 힘을 빼고 그 친구 눈높이에 맞춰 진솔하게 풀어줘 웬만한 전문 상담가의 말보다 유익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기자 입장에서 어느 언론에서도 공개된 적 없는 정태영 사장의 세심한 카운셀러로서의 면모를 저 혼자만 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지면에 실리지 못한 이 둘의 인연은 둘만의 비밀로 남겨진 채 1년반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기회에 저 혼자 보기엔 아까웠던 정태영 사장과 당찬 고등학생이 주고 받은 당시 편지 내용을 공개할까 합니다. 아래 글은 고등학생 친구의 이름만 살짝 바꿨을 뿐, 둘이 주고받은 이메일 '날것' 그대로입니다. 지금에 와서 예전에 썼던 글이 공개되는 것에 대해 정 사장님이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을까 싶은 생각도 살짝 듭니다만, 예전에 기사화 여부를 타진해 승낙을 받아놨었던 만큼 따로 말씀은 안 드리렵니다. 정 사장님, 괜찮죠? ^^ 안녕하십니까? 정태영 사장님! 저는 경상도에 있는 00고등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 김영훈(가명)입니다. 제가 정태영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결심한 것이 3월 21일 이었는데 약 한달 만에 이렇게 연락을 드리게 되어 아직 실감이 나지 않고 얼떨떨합니다. 제가 사장님을 알게 된 것은 조선일보 기사를 읽고였습니다. 2월 13일자 Weekly Biz 섹션에서 현대카드, 현대 캐피탈의 ‘인사이트 트립’에 관한 기사와 2월 25일자 조선 경제의 ‘굿모닝 CEO, 위기 때 공격 경영.’ 이라는 기사였습니다. 기사를 읽기 전, 저는 현대카드를 접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현대카드를 몰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대카드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광고를 통해서 말이죠. 현대카드, 현태 캐피탈 광고들이 저의 기억 속에 있었습니다. 한 예로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를 들 수 있습니다. 사장님께서는 한 인터뷰에서 이 광고는 노래는 뜨고 회사는 안 떠 실패작이라고 하셨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광고의 주체가 현대 카드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저에게 더 큰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장님께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주도해 오신 혁신을 보면 지금의 현대카드사의 성과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배우고자 하는 것은 혁신 정신, 창의적 사고, 10대(배우고 있는 한 사람)로서의 자세입니다. 혁신정신과 창의적 사고는 제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어떤 일을 하든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될 가치입니다. 그 가치에 대해 현재 현장에서 으뜸으로 일하시고 계신 사장님으로부터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10대로서의 자세는 다소 포괄적이고 신변잡기적인 질문이 될 수 도 있습니다. 사장님께서 겪으신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충고,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저 위 3개의 주제를 앞으로의 대화를 통해 더 확장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저를 잘 모르시니 대화에 조금 도움이 되고자 저에 대해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대학교에서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하여 최종적으로는 CEO 가 되고 싶습니다. 탁상 공론가 보단 현장에서 이윤을 창출하고 경제학 이론을 내놓기 보단 세계에 신상품을 만들어 보이고 싶습니다. 제조업 보다는 서비스업, IT, 영화, 디자인, Think Tank 연구소, GEN3 같은 컨설팅 쪽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기업인들은 MS 창업자 빌게이츠,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와 같은 IT 기업 천재들, 현재 좋아하는 기업인은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 NC소프트의 김택진대표, 삼성 창업자 이병철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독서(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의 책을 좋아 합니다.), 여행(일본은 두 번 여행 해봤고 좋아하는 국가는 영국입니다.), 영화(데이빗 핀처 감독을 좋아합니다.)를 즐겨합니다. 2남 중 장남이구요. 집은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과 LG (전 금성) 그룹 창업자 구인회의 고향 진주입니다. 현재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많이 모르고 부족한 저라 질문이 두루 뭉실 합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대화를 통해 초점을 맞춰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문현답이라고나 할까요? ^^ 첫 번째 질문! 'CEO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을 보면 안철수 교수께서 경영은 그냥하면 될 줄 알았는데 MBA 과정을 겪으면서 경영학의 필요성을 느끼셨다고 합니다. 옛말에 '농사일을 모르면서 하인을 부릴 수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반해, 스타 CEO 라는 말처럼 몇몇 경우를 보면 어떤 회사의 분야를 잘 모르는 경영인을 영입하여 회사를 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에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경우처럼 IT 분야에 재능이 있어 창업하여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지 않았는데도 경영을 해냅니다. (빌게이츠의 경우 나중에 스티브 발머를 고용하긴 하지만...) 정태영 사장님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제가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배우는 것이 좋을까요? 경영학을 배울 의미가 있을까요? 현장에서 익혀서 차근차근 경영인이 되는 코스로 나가는 것은 힘든가요? SECOND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마인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대체 정태영 사장님은 10대때 어떻게 하셨기에, 지금 이렇게 과감한 창의적 혁신가가 되셨을까?" 창의적 혁신가는 현재 최고의 인재상입니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추구하고 바라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함양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창의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청소년들은 어떻게 사고해야 할까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THIRD 시리어스 하지 않은 말랑말랑한 질문! CEO의 하루는 어떤 가요? 하루에 몇 시간 주무시고, 몇 시간 일하시나요? 자유로운 회사분위기를 강조하시는데 정태영사장님께서는 휴식시간에 어떤 놀이를 하시나요? FOURTH 사장님의 프로필을 보니 학생시절 엄청난 공부 엘리트이셨는데, 학생으로서 선배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공부를 할 때, 무엇인가를 배울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덕목(자세)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수학적 사고, 계산력, 기억력 등) 그리고 그 덕목을 기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직 질문을 드리는 것도 어색하고, 어떻게 드리는 게 맞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 하지만 사장님의 말씀이 저에게 큰 경험과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늘 편지를 쓰다 보니 일주일의 유일한 자유시간인 일요일 오전 4시간이 모두 지나 버렸네요. 질문을 다듬다 보니 통합되는 것도 있네요. 저의 편지들이 사장님을 바쁘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하지만 또, 사장님의 답장을 받을 생각을 하니 기대가 됩니다. 다시 한번 저의 부탁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하고 즐겁게 답장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김영훈 학생, 안녕하세요? 한두달 전 출장 중에 홍보담당 이사가 반(半)농담으로 김군의 에피소드를 전하였을 때는 처음에는 웃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날 저녁에 생각이 나면서 혹시 이 당돌한 꼬마(실례)가 상처받지는 않을지 비슷한 또래의 자식을 둔 사람으로서 걱정도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인터넷 게임이나 하기 쉬운 나이에 신문을 정독하며 세상에 대한 눈을 뜨려 노력하는 모습이 가상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 자세를 심어준 부모님들이 참 교육적이신 분들이라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한 번 정도는 답을 주어서 김군의 인생에 작은 도움이 된다면 좋은 일이겠다고 생각하고 연락하라 부탁하였습니다. 김군 희망처럼 제가 반복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일은 시간적으로도 불가능하고 김군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그래서도 안되고요. 대신 이번 한번만은 제가 직접 정성껏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주신 질문에 답을 하기 전에 미리 말해 두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김군이 혹시 이런저런 기사를 보면서 상상을 하셨다면 사실 저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큰 기업을 운영하고 가끔 언론에 포장되어 나오다 보면 무언가 대단한 것이나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알고 보면 다 김군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제 경험으로도 수많은 국내외의 전설적인CEO들을 만나보면 훌륭한 점도 당연히 있으나 한편으론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동시에 느낍니다. 저는 이 점이 더 좋았습니다. 구름 위의 사람들이 아니니 ‘나도 하면 되겠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죠. 그러니 제 말에 너무 큰 기대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첫번째 질문에 대한 답인데요. 정말 정답이 없습니다만 이렇게 답해서는 김영훈 학생이 실망할 테니 제 소신을 있는대로 말하겠습니다. 경영학을 공부해서 꼭 비즈니스를 잘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르면 많이 힘들고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옛날과 달라서 경영이 나날이 복잡해지는 추세입니다. 주먹구구식의 경영이 생존하기가 어렵습니다. 경영을 공부한다는 것은 무얼 배우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 경영을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알아야 경영학 책도 골라서 볼테니까요. 자긴 모르고 전문경영인을 쓰겠다는 소리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본인이 잘 알아야 사람도 잘 쓰고 유능한 사람이 일하러 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개인적으로 학부에서 경영학 전공은 반대입니다. 경영학 교수가 목표가 아니라면 학부에서는 문학, 역사, 경제학, 수학, 물리학, 공학 등 조금 더 기초적인 학문을 전공해서 자신의 세계를 깊고 넓게 열어 놓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경영학은 매우 실무적인 학문입니다. 역사나 문학과는 그 깊이가 차이가 납니다. (경영학 교수님들은 노여워하시겠지만) 저 자신도 불문학을 전공하였고 지금 대학에 다니는 두 딸도 학부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고 저는 그런 선택에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 언뜻 경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영역이지만 이런 곳에서 자신의 사고에 깊이를 주는 일은 일생 자산이 됩니다. 미국의 대부분의 대학들은 학부에서 경영학 전공 자체가 없고 대학원에서만 가르칩니다. 월가에서 만난 많은 금융인들도 학부에서는 전혀 다른 전공을 하였지만 성공하였고 대화와 관심, 취미가 참 다양함을 느꼈습니다. 대신 학부에서 거시,미시경제학이나 회계, 재무 등의 기본적인 과목은 선택으로 들어 놓으면 큰 도움이 되고 상세히는 MBA에서 배우면 됩니다. 특히 MBA를 가는 것이 확실하다면 학부는 정말 다른 분야를 택해 보세요. 학부와 MBA 6년간 경영학을 전공한다는 것이 조금 따분하게 보이지 않으세요? 두번째 창의성에 관한 답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누가 특히 창의적이다 하는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누군들 아이디어를 머리에 짊어지고 다닐 리도 없고요 저도 요즘 창의적이라고 소문나서 가끔 아이디어를 달라는 분들이 있지만 저라고 듣자마자 남다른 아이디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일을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기본 자세는 제 경험을 통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일에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일을 억지로 하지 말고 재미있어 하며 계속 고민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찾아옵니다. 대충 ‘이 정도면 되었어’라고 하지 말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자세가 있으면 감사하게도 새로운 생각이라는 선물을 받습니다. 적당히 하는 사람이 무슨 큰 재능이나 있어서 창조적인 경우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다음은 모든 사물에 항상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을 하시면 좋습니다. 저는 ‘이 일은 원래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나 고정된 것은 아니며 개선할 점이 있고 또 다른 혁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사업에서 고정관념 없이 항상 혁신의 여지가 있다고 믿으면 고민하게 되고 고민하면 생각이 열립니다. 스티브 잡스가 ‘휴대폰은 원래 그런거야, 컴퓨터도 다 똑같은거 아냐’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오늘날의 창조적인 성공이 있을 리 없습니다. 그 다음은 대학에 가셔서 많이 보고 느끼고 배우세요. 여행도 큰 공부입니다. 음악에 빠져도 보고 그림에도 관심을 갖고 카메라의 원리도 익히세요. 농사의 이치도 궁금할 수 있고요 광고 회사의 일도 재미있습니다. IT에 화장품 회사의 원리가 도입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깊이 제대로 알거나 잘 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비교적 많은 분야에 얇은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워낙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와인, 카메라, 그림, IT, 패션, 스포츠 등등 다 한 번씩은 훍고 갑니다. 그러고는 조금 안다 싶으면 다른 분야로 넘어갑니다. 별로 좋은 버릇은 아닌데 덕분에 요즘 비즈니스의 추세라고 하는 복합성에 관해서는 큰 장점이 되고 있습니다. IT를 잘해도 디자인을 모르면 좋은 휴대폰을 못 만드는 세상이니까요. 그래서 제가 어느 한 분야에 심취했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았던 분들은 아직도 그 모습만 기억하고 저를 IT에 해박한 사람 또는 와인을 정말 잘 아는 사람으로 오해하시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도 다른 분야의 여러 회사를 공부하는 취미가 있습니다. 금융을 하는 사람이 항공 회사, 마케팅 회사, 미술관 등의 운영을 공부합니다. 한 예로 지난 달의 어떤 토요일에는 오전에는 새로운 농작물 재배법을 개발한 분을 찾아가서 배웠고 오후에는 파주의 신도시를 찾아 가서 건축물들을 보았으며 저녁에는 마사이족과 함께 생활하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광범위한 지식(?)은 지금은 금융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머리 어디엔가 자리 잡고 있다가 언젠가는 다른 지식들과 결합해서 귀중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세번째 질문인 제 생활의 모습인데요 별로 권할 만하지 않습니다만 있는대로 말합니다. 평소에는 하루 5시간 정도 잡니다. 잠이 부족하다 보니 주말에는 열 시간도 자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사 약속 등을 별로 좋아 하지 않아서 점심, 저녁을 회사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외 약속이 다른 CEO에 비해서 매우 적은 편입니다. 특히 점심 약속을 싫어합니다. 두시간 정도가 없어지는데 그 시간에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어디 나가서 비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CEO로서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죠. 저녁 약속이 없는 날에는 대개 8시에서 9시 사이에 퇴근합니다. 취미 생활은 위에서 말한대로 많이 보고 다니는 거라고 해야 하나요. 시간 소비가 많아서 골프는 안칩니다. 대신 운동을 하죠. 바둑이나 노름 같은 잡기도 전혀 할 줄 모릅니다. 퇴근해서 친한 사람들과 와인 한두 잔 마시는 낙은 있습니다. 하루 내내 회의와 이메일 처리로 거의 밀려다니는 편이고 방에는 소파도 없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사장들이 소파에 앉아서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나오는데 꿈 같은 이야기이고 실상은 화장실 갈 틈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생 시절의 조언입니다만 저 자신이 워낙 모범적이지 못하여서 자신이 없네요. 고등학교 때는 유화 그리고 시 쓰는 일에 심취해서 점수가 급전직하 했었고 대학 때는 항상 교수님들께 놀러만 다닌다고 혼났고 졸업 후에는 광고 공부한다고 취직도 안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백수여서 부모님들의 걱정거리였습니다. 저에 비해 김영훈 학생은 오히려 저의 스승격이십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게 하고도 성공했을 리가 있느냐 거짓말이다 라고 하겠지만 정말입니다. 저는 학생 때 내내 그리 모범적이지도 않았고 상당히 특이하다는 (좋지 않은 의미에서) 말은 정말 많이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대신 집중력은 매우 강했고 자존심이 있어서 몇 번 도약한 적은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반 60명 중에 한 20 등 하는 실력이었는데 전교회장 선거에 나가서 부회장에 당선 된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날 교감 선생님이 저의 어머니를 부르셔서 ‘워낙 부회장은 우수한 학생이 해야 하는데 댁의 아들은 그렇지 못하니 자진해서 관둬라’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에 충격을 먹고 일주일 내내 밤을 새서 다음 시험에 전교 일등을 하였고 그 다음도 거의 계속 1,2 등을 하였습니다. 반 일등도 못해본 사람이 일을 낸거죠. 대학 졸업 후에도 영어도 잘 못하였고 경영학도 잘 몰랐는데 놀다가 공부나 할 겸 MBA나 가자 라고 마음 먹었는데 친구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제와서 무슨 유학이냐는거죠. 그 말에 오기가 나서 일년을 매일 5시간만 자고 유학 시험과 기타 준비를 하였고 결국은 남들보다 훨씬 좋은 학교에 갔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모든 유학시험 책을 풀었고 영어 단어를 고등학교 때보다 더 열심히 암기하였습니다. MIT에 가서는 처음 수학 수업에서 난생 처음 D를 받은 것이 저를 많이 자극하고 열심히 몰았다고 생각합니다. 수학을 예로 들었는데 정말 좋은 취미입니다. 계산력이나 암기하고는 차원이 다릅니다. 점점 진도가 나가다 보면 수학에서 숫자를 다루지 않고 논리를 다루기 때문에 논리적 사고 방식에 큰 도움이 됩니다. 역사도 꼭 챙기셔야 할 과목이고요. 영어하고 한자에 신경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 김군 시대에는 영어를 아주 잘 해야 합니다. 저의 세대만 해도 소통이 목적이었지만 김군의 세대에서는 유창해야 어울릴 수 있습니다. 영어가 부자유로움은 문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시기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자를 잘 하셔야 합니다. 한국 사람은 결국 아시아를 배경으로 일합니다. MBA졸업하고 미국 등지에서 일하던 친구들도 결국은 한국,홍콩, 싱가폴 등으로 다 모입니다. 한국 사람한테 남미나 유럽 시장을 맡길 국제적인 회사는 없습니다. 아시아를 배경으로 우수 인재 취급을 받으려면 한자를 몰라서는 안 됩니다. 한자는 한국어, 중국어, 일어의 기본이 됩니다. 끝으로 당부의 말 한마디만 더 합니다. 제가 보기엔 김영훈 군은 나이 또래에 비해 많이 성숙하고 부모님들도 자랑스러워 할 학생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저는 너무 지나친 성숙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장래의 할 일에 너무 이른 나이에 함몰되지 마세요. 현대카드 사장과의 대화보다는 친구들과의 치기 어린 대화가 아직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사업을 꿈꾸고 자신을 사업하는 기계로 조련하면 조급한 마음에 지칠 수도 있고 여유, 포용력, 균형 등과 같은 더욱 중요한 단어들이 경시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학교 공부에 전념하고 신문을 읽으며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라는 소양을 쌓는 정도가 제일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김군 스스로의 순수함과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무한한 잠재력에 아직은 더 시간을 주고 즐기셨으면 합니다. 젊음의 가장 큰 무기가 끝없는 불확실성 아닌가요? 대화 재미있었고 저도 글을 마치려 합니다. 출장중에 잠시 빈 시간이 있어서 답신을 합니다만 덕분에 저녁 먹을 시간이 사라졌네요. 좋은 학생, 좋은 친구, 좋은 가족이 되어서 열심히 하면 기회는 몇 번이고 찾아 옵니다. 이 세상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내버려 둘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어디에선가 자신이 소망하는 일을 재미있게 하는 영훈이를 떠올리니 벌써 즐겁고 고맙기까지 합니다. 훗날 성공하면 찾아와서 밥 사세요. 그때쯤은 저는 은퇴한 후 치매라서 자세히 설명해야 김영훈이 누군인지 알아볼 테니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정태영 보냄
너무나도 유명한 소설 속 첫 문장 Best 10
사람의 첫인상은 3초 안에 결정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처럼 책에도 제일 첫문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마법이 숨겨있다는 사실, 아시나요? 그래서 오늘은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았던 첫문장 Best 10을 준비해왔습니다. 1. 달의 궁전 "인간이 달 위를 처음 걸었던 것은 그 해 여름이었다." (폴 오스터 / 열린책들) 달의 궁전은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는 달처럼 성공과 퇴락의 길을 걸으며 성장의 방법을 발견한 주인공 3명의 이야기를 풀어낸 소설입니다. 소설 전체적으로 달에 대한 내용이 끊임없이 나오기 때문에 읽으면 읽을수록 첫 문장의 맛이 깊어지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2. 말테의 수기 "그래, 그러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곳으로 온다. 내가 보기에는 오히려 여기서 모두 죽어 가지 싶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열린책들) 많은 사람들이 파리에 대한 환상으로 그곳에서 살기 위해 또는 즐기기 위해 찾아오곤 합니다. 하지만 글의 주인공인 말테에게 파리는 죽음의 도시이자 절망의 도시입니다. 책 전체적으로 죽음과 빈곤, 절망과 가난이 담겨있는데요. 그런 면에서 주인공의 심정을 아주 잘 담아낸 문장이라 생각됩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3. 칼의 노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한 문장이지만 많은 걸 담고 있는 문장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시절, 일본의 침략에 의해 섬주민들에게 버려졌던 섬에, 사람의 일과는 무관하게 매년 그래왔듯 꽃이 피었다는 문장입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4. 날개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요. '현실을 깨닫지 못하는 지식인들의 모습이 박제와 다를 것 없다'라는 것과 '이상 본인의 천재성을 시대의 모순으로 인하여 표현할수 없음을 암시한다'와 같은 해석이 있습니다. 5. 오만과 편견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이다" (제인 오스틴 / 민음사) 언제나 드라마와 영화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죠. 부유한 남자와 가난한 여자의 로맨스. 오만과 편견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꿈이 있으며, 뚜렷한 신념이 있는 여성(농부의 딸)에게 반하는 귀족 가문 남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6. 안나 카레니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톨스토이 / 문학동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단 한 줄로 담아낸 어마무시한 첫문장입니다.. 이상적인 남편과 이상적인 가정에 무료함을 느끼고, 결국 외도에 빠져 가정을 버리게 된 안나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의 주내용입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7.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 민음사) 설국은 일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입니다. 실제,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배경이 되는 나가타현에서 집필을 했었다고도 전해지네요. 개인적으로도 아름다운 문장이 너무 많아서 애착을 갖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8. 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알베르 까뮈 / 민음사) 처음 글을 읽었을 때, 가슴을 심하게 때렸던 문장입니다. 주인공 자체가 사회적 책임 혹은 의식적으로 지켜지는 도덕같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어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엄마가 돌아가신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그녀의 사망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합니다. 고작, 오늘과 어제 사이에서. 9. 두 도시 이야기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자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찰스 디킨스 / 펭귄클래식)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소설입니다. 당시, 귀족들의 억압과 착취를 참아내지 못한 시민들이 나라 전체적으로 자유를 외치며 들고 일어선 혁명이죠. 당시 상황을 정말 잘 담아낸 소설이고, 첫 문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10. 피터팬 "모든 아이들은 자란다, 단 한 명만 제외하고." (제임스 메튜 배리 / 펭귄클래식) 첫 문장만 봐도 피터팬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네요. 네버랜드에 살며 평생 자라지 않는 아이. 피터. 평생 아무것도 모른 채 즐기고 웃고 놀 수 있는 네버랜드와 같은 곳에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야근도 없고.. 월요일도 없고.. 출근도 없는.. 막 그런.....ㅋ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마지막으로 책과 관련된 모임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다가오는 2016년을 맞이하여 내년부터는 아침잠을 줄이고 조금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분들을 위한 모임입니다! 바로바로, 홍대 아침 독서 모임입니다 :)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되는 독서모임이라 하니, 부담갖지 말고 한 번 신청해보세요 ^3^ 자세한 내용 확인하기 ▶http://onoffmix.com/event/59225
NFL 선수들이 외계인으로 불리는 이유 ㄷㄷㄷ
미국 프로미식축구 리그인 NFL은 괴물들의 집합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도 최고의 운동능력을 지닌 선수들만 모이는 어마어마한 리그죠. 이번 시간에는 NFL 선수들의 괴물 플레이들을 감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풋볼 선수들의 반사신경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신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드는 수비수들에 대응할 준비가 언제든지 돼 있어야 하죠. 그래서 스텝을 활용한 페이크와 돌파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게 맹훈련을 하다보면 이런 장면들을 연출하기도 하죠 ㄷㄷㄷ 스텝으로 페이크하고 한바퀴 돌면서 두 명의 수비수를 바보로 만든 뒤 미친듯이 달립니다 ㄷㄷ 대단한 기술과 순발력이네요. "날 향해 달려와? 사이드 스텝으로 다 제쳐주지!!" 아니 무슨 수비수가 떼로 달려드는데도 잡히질 않습니다 ㄷㄷㄷㄷ 결과는 터치다운 ㅋㅋㅋㅋ 양쪽에서 수비수가 달려온다? 그러면 스핀(Spin) 동작으로 떨어뜨리면 됩니다ㅋㅋㅋ 한바퀴를 돌면서도 절대 넘어지지 않는 균형 감각이 진짜 대단하네요 ㄷㄷ 수비수한테 잡혀버린다면? 그냥 끌고 가면 된다네요 ㄷㄷㄷ 저 거구들이 달라붙어 있는데도 그냥 앞으로 전진!! 무시무시한 힘입니다 ㅋㅋㅋㅋ 수비수가 너무 많다고 해도 주눅 들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제쳐버리면 됩니다. ㅋㅋㅋㅋ NFL은 아니고 여학생들의 풋볼 경기 중에 나온 장면. 저 스피드와 반응 속도가 느껴지시나요? ㄷㄷ 물론 NFL은 단순히 잘 달린다고 해서 갈 수 있는 리그가 아닙니다. 정말 영리해야 하고 힘과 기술을 겸비해야 하죠. 한편 운동 능력 중에서는 점프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특히 전진 패스를 받는 리시버들은 어떤 높이에서 오는 볼도 받아낼 수 있는 탄력을 갖춘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죠! 이 장면의 주인공은 뉴욕 자이언츠의 오델 베컴 주니어라는 선수인데요, 뛰어난 운동능력과 반사신경을 활용한 캐치 능력이 일품입니다. 한손 캐치로 너무나 유명한 이 장면 이후 오델 베컴 주니어는 NFL 최고의 와이드 리시버로 명성을 날리고 있죠. 워낙 괴물들이 득실대는 NFL이기에 종종 수비수를 이렇게 뛰어넘는 장면도 나온답니다. 무슨 허들 넘듯이 사람 한 명을 그냥 뛰어넘어버리네요 ㄷㄷ 공격수 "아 어떡하지? 에라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2) ㅋㅋㅋㅋㅋ 터치다운하려는데 수비수가 앞으로 달려온 공격수의 선택 ㄷㄷㄷ 공중에서 그냥 한 바퀴 돌아서 터치다운;;; 이 선수 정녕 인간이 맞습니까?? 어떤 때는 속임수도 풋볼에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건 대학 미식축구에서 나온 장면인데요, 떨어진 공에 순간적으로 6명의 선수가 모였다가 달리면서 누가 공을 들고 있는지 모르게 수비수에게 혼돈을 주는 작전입니다 ㅋㅋㅋㅋ 모이는 장면 왤케 귀엽죠?ㅋㅋㅋ 요건 전설의 짤 ㅋㅋㅋㅋ 수비수 "응? 왜? 뭐야? 어?... 야이이씨!!!" 공격수 "크하하하하하하!!" 지금까지 NFL 선수들의 플레이들을 살펴봤습니다. 이 정도면 정말 괴물이라는 말들이 잘 어울리지 않나요? 역동적인 스포츠를 보고 싶으시다면 NFL에 한번 빠져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ㅎㅎ 다음 번에는 더 재밌는 게시물로 찾아뵐게요^^ https://www.facebook.com/sportsgurukorea/
한눈에 보는 러시아 횡단철도 여행기 (1)
꼭 인생에 있어서 해보고 싶었던 여행이 첫번째는 티벳 고원 횡단해서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건너.. 훈자마을에서 일주일 머무는 여행, 그리고 러시아 횡단철도를 타보는 것이었어요. 영국에서 2년간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투잡을 뛰면서 돈을 모으고 루트를 짰습니다. 2년간 일을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늘 영국에 올 때는 편도 티켓을 들고 왔기 때문에, 돌아갈때는 육해로로 한국에 가겠다고 이야기 했었는데요. 다들 믿지 않다가도.. 점점 루트가 구체화 되다보니 흥미를 가지더라구요. 모로코에서 시작한 저의 여행은,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영국 일주, 까미노를 거쳐 북유럽으로 그리고 야간 버스를 타고 결국 러시아 서부의 큰 도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게 됩니다. 소련 시절엔 '레닌 그라드'라고 불렸어요.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제 눈앞에... 왠 평양 시내가 있더란... 그 충격을 사진으로 찍고 싶었지만, 살해당할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 급격하게 차가워진 사람들의 시선.. 빨리 떠나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것도 저의 편견이었단 사실이었죠. 제 대학생활 첫 여행이 중국 횡단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재밌게 잘 다녀오면서 편견이 무섭구나 늘 생각했었는데.. 러시아도 마찬가지.. 나중엔 정말 중독되더란. 쓰바씨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 역입니다. BOKJAL은 러시아어로 '역'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모스크바까지는 10시간 걸립니다 ㄷㄷ 그러나 앞으로 7일간 타야하는 횡단열차에 비해서는 이제 10시간도 짧게 느껴지더군요. 사람이란게..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는 약 8200km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7일을 꼬박 달리죠. 제 계획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동해로 입국하는 것입니다 :-) 동해로 향하는 배는 일주일에 한번 뿐이기 때문에, 날을 잘 맞춰야 합니다. 저는 딱 도착하자마자 다음날 배를 타고 이동했지요. 그리고.. 한국에 금요일에 도착해서, 월요일날 학교 복학을 했답니다 ^_^ 교수님 왈... 대체 2년간 무슨일이 있었던거냐... 침구나 기타 다른것들은 유럽의 야간기차와 다를게 없습니다. 검표하는 직원이 좀 쌀쌀맞을 뿐이지요. 여러분에겐 많이 익숙한 테트리스 성 ㅋ 성 바실리 성당입니다. 한 3일정도 모스크바를 여행하고 기차에서 먹을 물건들을 사재기 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사는 것은 '도시락'라면과 초코파이 한박스. 도시락 라면 사는건 필수입니다. 기차에서 사는건 매우 비싸요! 모스크바 부페식 체인점 '무무'에서의 마지막 식사. 1일 1맥주는 항상 지키며 여행합니다. 이제 모스크바를 떠나는 날입니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표를 뽑았냐며' 득달같이 몰려드는 삐끼들.. "난 너희보다 더한 삐끼를 이탈리아와... 캄보디아에서 이미 경험했도다" 라며 매몰차게 거부를 시전. 전 이미 구글 맵으로 동선을 다 외웠기 때문에 나오자마자 로보트처럼 대합실로 향합니다. 구글 넘나 멋진것.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기차가 서는 플랫폼. 왠지 이 기차를 탔다가 내리면.. 모든 여행이 추억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조금 짠해집니다. 제가 탄 기차는 신차입니다. 001, 002로 시작하는 기차는 꽤 신식객차입니다. 534 처럼 복잡한 숫자이면, 구형이구요. 두개 다 타보니 비슷합니다. 네 1일 1맥주입니다. 이정도는 기본 아니겠습니까. 저 맥주캔의 거위가 성추행을 시도하고 있네요 -_- 러시아 맥주는 아니고 대략 동유럽 맥주로 보이는데요.. 객차에는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지만, 운이 좋게도 제 옆자리에 독일 사람이 앉아있더군요. 생김새가 어딘가 모르게 슬라빅 계열(러시아 사람도)로 보여서 몰랐는데, 모자를 떨어뜨리니 반사적으로 영어를 하길래. 어라 너 영어해? 했더니. 응. 하길래 금새 친해진. 이 녀석으로 말할것 같으면 이름은 세바스찬. 베를린에서 왔지만 고향은 알프스 근처의 Ulm 이라는 시골에서 왔다합니다. 중국 청두에서 공부하는데, 기차타고 가고 싶어서 베를린에서 왔다 하네요. 알고보니 베를린에서 모스크바로 오는 기차가 직통으로 있더군요. 맥주를 좋아하는 민족과, 즐기는 저는 -_- 구글링으로 맥주를 주문하는 방법을 배워 매일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합니다. 노보시비르스크.. 예카테린부르크.. 여러 역을 중간 정차하면서 한 20분이 주어지면 역사 밖을 나갈 수 있습니다. 나가서 사오는 것은 먹거리와..... 맥주. 아직 보드카 마실 깡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사실 객차내 음주는 -_- 금지입니다. 명시되어 있어요. 맥주까지는 그냥 바줬습니다. 저는 기차를 타자마자 저희 칸 담당 역무원에게 눈웃음과 친절 신공으로 이미 제 편으로 만든 뒤였어요. 일전엔 M&M 초콜릿도 줬는걸요? 그렇게 세바스찬과 또 맥주를 한캔 합니다. 이번엔 러시아 맥주일까나요. 괜찮아 3.0%이상의 알콜만 있으면 돼. 차창밖을 바라보면서 술을 마십니다. 낮술이에요. 12시였으니. 그러다가.. 저희를 굉장히 흥미롭게 보던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탄 좌석은 최하등급인 쁠라쯔 레벨(3등석)이었는데, 군인들이 저엉말 많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이었죠. 독일인 하나랑 왠 아시아인 하나가 왠종일 술만 먹고 있으니, 손짓을 하며 저희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세바스찬, 쟤네 우리 부른거 맞냐? 뭐냐? 뭐지?" "응 일단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졸졸 따라갔더니 이들은 저희에게 짬을 먹이기 시작했습니다......ㄷㄷ 뭐야? 이거 우리 먹으라구 주는건가? 그렇게 우리는 러시아 군인의 일용한 전투식량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장교였는지 쫄병들을 시켜 삶은 닭을 공수해오더군요 (분명 여긴 뜨거운 물만 있는데, 그걸로 어떻게 삶은거지?) 제가 맛있다고 엄지척을 막 남발하며 설설 기니까..... 수통(물통)을 꺼내면서 뭘 따르더군요. 아뿔싸, 이거슨 보드카다 그게 한잔.. 두잔이 되니까.. 취기까 확 오르더군요. 그러면서 왠지 그들의 러시아어가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알.....알아듣기 시작했어!!! 마침 그들 중 하나가 6살때까지 베를린에 스파이로 살았다고... (??) 하면서 독일어를 할 줄 알았어요. 유아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 친구가 독일어를 하면, 세바스찬이 저에게 영어로 통역해주며 의사소통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를 대접해 준 그들을 위해서 다음 보드카는 우리가 쏘기로 합니다. 근데 다음역은 되게 작아서 아마 10분 정차할거야. 라고 경고하는 장교양반. 괜찮아. 너가 같이 가서 골라줘 보드카. 그리곤 미친듯이 뛰어 밖으로 나갑니다. (보통 플랫폼 안에는 술을 안팔아요...) 그 와중에도 이렇게 사진을 찍... 그리고 이렇게 많은 보드카 중에 눈썰미 있게 맛난 것들을 골라냅니다. (가자마자 그 친구가 저거 저거 주세요)하더군요. 담배 사듯이...... 그리곤 은밀한 검은봉투를 가지고 기차에 재탑승합니다. 근데 눈치 챘는지 역무원이 눈길을 줍니다. (야 너, 저 군인들이랑 놀지마! 하는 눈빛이었어요 ㄷㄷ) 그렇게 다시 들어와 민폐를 엄청 끼치면서 (저 말고.. 군인들이...) 새벽 1시까지 보드카를 마시고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술을 마시고 제가 러시아 사람들이랑 러시아어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오오 방언 터졌어) 그리고 다음날. 세바스찬은 맥을 못추고.... 그들은 금새 술이 깼는지 숙취도 하나 없어 보이는 모습이었어요. 그리곤 마침 깬 세바스찬과 함께 녹차로 속을 풀다가... 또 불려갑니다. 평온한 표정으로 과일을 자르며 숙취해소용 짬을 만드는 장교님...................... 그리고 닭을 넣은 도시락 라면.. 이런 바리에이션은 군생활 공통인 듯 합니다. 그렇게 평온한 모습으로 밥을 먹는데, 아니 수통이 왜 또 테이블에 있는거지라고 생각한 순간.. (사진 더 있어요!) 다시 시작합니다.......... 쓰....쓰바씨바!!! To be continued
#127 인어가 식용으로 쓰이는 세계
‘인어’가 식용으로 쓰이는 세계. 가혹한 현실, 매혹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세계는 조각가이자 펜화 작가인 ‘이보름’씨의 손 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세계에서 인어는 현존하는 흔한 동물이며 지능이 인간보다 현저히 낮아 식용으로 쓰이는 것마저 합법화되었습니다. 식용으로 쓸 수 없는 상체는 특수 처리되어 장식물이 되고, 희귀한 인어 종은 수조에 갇혀 애완동물로 취급 받기도 합니다. 이보름 작가는 인간의 본능적 에너지를 윤리나 도덕에 의해 억압받지 않고 표현하는 마르쿠제의 ‘억압적 탈승화’ 이론을 기반으로 본인만의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공포심을 유발하는 괴담적 서사와 이를 나타내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을 통해서, 작가는 자신의 탈승화를 미학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충격처럼 작가의 작품 속 일상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사이의 간극에서 거부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매혹적인 잔혹동화 같은 묘사를 곱씹을수록, 그 세계와의 관계는 더욱 깊어집니다.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첫인상이 어느새 아름답고 황홀한 감각으로 채워지네요. 글_ 이현진 *아래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용할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보름 작가의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2257673137&fref=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