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by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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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2009 당장 나와도 되는 이유

2009년 멜론 차트
모르는 노래가 하나도 없네요


드라마
아내의 유혹 본다고 모두 칼퇴하고 집간다고 뉴스도 나고 그랬었던...
구준표는 지금도 이름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이 외에도 찬라한 유산, 가문의 영광 등등 이슈가 되었던 드라마들이 많았져



당시 하나쯤은 갖고 있던 잡지들.. 저도 샀던 기억이.
브로마이드도 주고 그랬었는데...

핸드폰

연아의
오오 파라다이스.. F4가 모두 썼다는 햅틱
소녀시대가 광고했던 초콜릿 폰.. 갖고싶었는데.
이 밖에도 듀통폰, 크리스탈폰, 쿠키폰, 노리F, 블링블링폰 등등 예쁜 폰들이 많이 나왔다는
IT
윈도우XP... 게임들도 잘돌아가고 진짜 좋았는데 지금도 다시 되돌아가고싶은
개인 SNS의 시작, 싸이월드
네이트온.. 이때는 안했던것 같은데.
버디버디... 아이디 진짜 많았는데!ㅎㅎ

NEWS
신종플루..
광우병은 따지면 2008년이라고 합니다.
시위탄압 장난 아니었다고 하네요.

갖고 있으면 친구들이 부러워 했던 것
닌텐도DS
mp3... 에 노래 넣고 인소 넣고 다녔었지
미키마우스 모양 한때 완전 이슈였던 ㅎㅎㅎ 가격도 저렴했던걸로
한효주 디카. 비슷하게 생긴거 있었는데 셀카찍구 컴터로 옮겨서 포샵으로 보정하고
싸이월드ㄱㄱ
pmp... 4~5인치 사이즈. 동영상 재생 기능ㅇㅇ

약속의 장소는 캔모아.
토스트 리필 받아서 친구들이랑 그네의자에 앉아 생크림 찍어먹고 그랬는데.
1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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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촛볼집회갔던사람들은 다 한우면 먹고있겠죠?ㅋㅋㅋㅋㅋ 전설의 광우뻥ㅋㅋ
나는 군대에 있어서 알수밖에 없네 ...또르르
ㄷㄷ 아재 몇살...
나도군대
태연 인간 됐네ㅋ
아 신종플루도
버튼 누르면 착 하고 열리는 폴더폰 이름이 뭐였지 무튼 그거도 09년말에 나온거 같은데
혹시 매직홀폰 아닌가요? 부를땐 매직폰으로 불렀지만..
아 맞아요ㅋㅋ 감사합니다 기억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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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필요한 동기 부여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같이 다닌 친구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저는 원하는 회사에 취업할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력서를 내는 곳마다 떨어졌습니다. 그렇게 친구는 취업 준비 생활이 조금 길어진다 싶더니 몇 년이 지나도 이 친구가 취업하지 않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아무리 걱정과 조언을 해도 ‘적성에 맞는 일을 찾고 있어’,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라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만 늘어났습니다. 급기야 친구의 부모님도 포기하고 방치했지만, 저는 여전히 그 친구가 걱정되어 만날 때마다 ‘취직해, 취직해’라고 잔소리를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저는 회사에서 상사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경위서에 감봉까지 억울하게 당했던 날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그날 그 친구를 만났고 술에 취한 나머지 그만 이렇게 말해 버렸습니다. “회사 생활 왜 하는지 모르겠다. 네 팔자가 나보다 백번 낫네.” 친구는 당황한 눈으로 저를 바라봤지만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너 그냥 평생 그러고 살아라. 차라리 네가 정말 부럽다.” 그런데 몇 달 후, 친구가 한 중소기업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갑자기 왜 심정이 변했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나한테 잔소리하던 너마저 포기하는 것을 보고, 나는 정말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정말 두렵고 무서웠어. 그래서 다시 도전하게 되었어.” 가진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 실패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 때, 아무런 의욕이 없을 때, 불평불만만 쌓여 갈 때, 종이 한 장 꺼내 놓고, 차분히 써 내려가세요. 소중한 사람들, 일상 속 작은 성공의 경험들, 좋았던 일, 그렇게 하나둘 적어 내려가다 보면 보일 것입니다. 내 삶에 남아있는 도전의 불씨가.. # 오늘의 명언 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10번씩 시도했다. – 조지 버나드 쇼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내 최고의 인생작은 아내입니다
그는 사생아였습니다. 출생신고도 되지 않아서 동네 어르신들이 지어준 이름으로 살다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드디어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가지고 출생신고를 했습니다. 10살 때 처음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매일같이 어린 그를 폭행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살을 결심했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반대로만 행동하면 좋은 아버지가 될 거라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성인이 된 후 20년 동안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배우가 된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촬영 중에 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촬영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시간 정도 촬영장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렸습니다.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막상 돌아가셨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빈소는 집에서도 가까웠지만, 그는 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밉고 원망스러워서 발인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20년을 안 보고 살았는데 갑자기 아들이라고, 찾아가는 게 어떻게 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발인이 있는 날, 비록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그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아내가 먼저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여보, 사실 나... 아버님 뵙고 왔어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먼저 들었던 아내는 돌아가시기 3일 전에 두 아이를 데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고 했습니다. 아직 아버지가 의식이 있으실 때, 며느리로서 손주들을 데리고 처음 인사를 간 것이었습니다. "아버님 제가 아버님 며느리입니다. 이 아이가 첫째고요, 얘는 둘째예요." 희미한 의식 속에서 처음 손주를 본 아버지... 아버지는 아이들을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3일 뒤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남편이 싫어할까 봐 말하지 않은 아내는 발인이 끝난 저녁에 이 사람도 마음은 가고 싶을 텐데...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망설이며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에 그는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여보 고마워요... 정말, 고맙습니다..." 유독 가족에 대한 사랑이, 특히 아내에 대한 사랑이 애틋한 그는 바로 배우 성동일입니다. 성동일은 과거 방송을 통해 힘든 시절 함께 버텨주고, 자신에게 큰 힘이 되어준 아내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최고의 인생작은 바로 아내를 만난 것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지 않아도, 쓸쓸한 뒷모습만 봐도 평소보다 잦아진 한숨만 들어도, 다 압니다. ​ 지친 마음을 알고 진정으로 위로해주는 한 사람... ​ 그녀가 아내입니다. 그가 남편입니다. ​ ​ # 오늘의 명언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전체가 되는 것이다. – 반 고흐 –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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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을 습격한 동물에게 '블라인드 테스트'한 농장주ㅋㅋㅋㅋ
야생동물의 농가 습격은 언제나 골칫거리입니다. 힘겹게 가꾼 농작물에 큰 피해를 보거나 손해를 보기도 하는데요. 이런 사정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를 이용해 오히려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여 큰돈을 번 남성이 있습니다! 터키 트라브존에 사는 이브라힘 씨는 벌과 꿀을 생산하는 양봉업자입니다. 그의 골칫거리는 야생 곰들이 밤마다 농장에 내려와 벌통을 습격해 꿀을 전부 먹어치운다는 것이었죠. 곰의 식성은 또 얼마나 강한지 한번 습격하면 먹는 양이 어마어마해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이브라힘 씨는 곰으로부터 벌통을 보호하기 위해 안 해본 방법이 없었습니다. 철조망 울타리를 세우는 건 물론이고, 곰들이 꿀을 먹지 않도록 빵, 과일 같은 음식을 쌓아놓기도 했죠. 하지만 철조망은 오래 버티지 못했고, 꿀맛을 아는 곰은 항상 꿀만 잔뜩 먹고 사라졌습니다. 노력과 정성을 쏟은 수확물이 하룻밤 새 곰의 뱃속으로 사라지는 건 이브라힘 씨에게 엄청난 고민거리였죠. 그는 수염을 만지며 고민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곰에게 꿀맛을 테스트해보는 거야!" 벌은 어떤 꽃으로부터 꿀을 채취하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고, 또 각 종류의 꿀을 어떻게 혼합하느냐에 따라꿀맛은 무한합니다. 이브라힘 씨는 4가지 종류의 꿀을 테이블에 마련하고 카메라를 설치했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이브라힘 씨가 직접 생산하고 제조한 꿀이었고, 나머지 3가지는 다른 지역의 꿀이었죠. 그는 곰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밤에 나타난 곰은 4가지 꿀의 냄새의 꿀을 맡더니, 이브라힘 씨가 만든 꿀을 우선적으로 먹었습니다. 며칠 간의 시식 테스트에서도 곰은 항상 이브라힘 씨가 만든 꿀만을 먹었습니다. 사실상 이브라힘 씨의 꿀의 품질과 맛을 농가를 습격한 곰이 보증해준 것이죠! 이브라힘 씨는 이 증거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이를 자신의 꿀 광고로 활용했습니다. 꿀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라 시세를 딱 정할 수는 없지만, 다른 꿀들이 500g 16달러, 500g 21달러, 비싼 건 250g에 26달러에 거래되고 있는데요. (아마존 검색 기준) 현재 이브라힘 씨의 꿀은 900g에 300달러(약 36만 원)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하네요! 꼬리스토리가 들려주는 동물 이야기!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책박물관 속으로
책을 주제로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 책박물관인 '송파 책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됩니다. 관람시간: 매주 화-일, 오전 10시-18시까지(17:30 입장 마감) / 무료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은 휴관 개인 관람은 예약 없이 입장 가능하며, 20인 이상은 사전 예약을 하셔야 합니다. 낮은 서가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매력적인 공간이 나옵니다. 높은 천장이 개방감을 주고, 간접조명 아래 주제별로 구분 되어 있는 책과 안락한 의자까지_책이 읽고 싶어지는 곳입니다. 위층으로 올라가니 다양한 잡지와 DVD를 볼 수 있는 미디어 라이브러리가 있습니다. 가벽으로 세울 수 있는 공간을 책꽃이 겸 의자로 만든 아이디어가 좋았습니다. e-book을 많이 보는 이들에겐 이 공간이 더 익숙할 것 같습니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점이 좋습니다. 책을 펼치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다 1부 향유-선현들이 전하는 책 읽는 즐거움 조선의 독서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으로서 다양한 독서 이야기 및 수진본을 한 눈에 볼 수 있습니다. 선현들이 책을 대하는 자세와 여기는 마음을 보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같은 결을 가진 사람과 함께 하는 기쁨입니다. "천하의 일은 이로움과 해로움이 반반인데, 온통 이롭고 작은 해로움도 없는 것은 다만 책뿐이다." 책을 읽어주는 '전기수'라는 직업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현장음도 녹음되어있어 실제 조선시대 장터 어딘가에서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2부 소통-세대가 함께 책으로 소통하는 즐거움 1910년부터 오늘날까지 100여 년의 독서문화를 보여주는 공간입니다. 가족 3대가 서로의 독서 경험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장을 마련하였다는 표현 그 자체였습니다. 독서의 연대기와 함께 그때 그 시절 책과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송파책박물관은 전반적으로 책 읽을 수 있는 공간을 최대로 활용한 것 같았습니다. 책 든 손 귀하고 읽는 눈 빛난다 책 읽는 이웃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고의 반경을 넓혀봅니다. '그 때 그랬지'하며 추억에 잠기며 웃음 지었습니다. 3부 창조-또 하나의 세상, 책을 만드는 즐거움 책의 저술과 제작을 통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는 공간입니다. 작가의 서재에 들어온 듯 책상에 자리 잡고 앉아 필사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글감 선택 가능) 유명 작가들의 애장품과 작업 시 사용하는 물품들, 작업 노트들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고의 시작점부터 책이 쓰여지기까지의 과정, 더 나아가 작가의 삶을 엿 볼 수 있으니까요. 안쪽으로 들어서니 또 다른 공간이 나옵니다. 각각의 부스에서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데, 디지털을 접목시켜 책 만드는 과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작가와의 만남부터 교열, 북디자인까지 책의 탄생을 함께 해봅니다. 과정을 알고 책을 보니 더 귀하게 여겨집니다. 활판인쇄 체험은 처음 해봤는데 꽤 재밌었습니다. 보고-듣고-직접 해볼 수도 있으니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유익한 시간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종합 잡지 '소년'부터 여성 교양 잡지 '여원', 대중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주간지 '선데이 서울'까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주요 잡지들을 볼 수 있는 기획특별전 '잡지 전성시대'입니다. 초창기의 잡지부터 현대의 잡지까지 잡지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반가움에 '어?'하는 웃음소리와 서로 잡지에 대해 알려주고, 추억을 공유하는 소리도 말입니다. 정말 추억의 광고죠? 부모님께 받은 용돈으로 잡지를 사서 중간 중간 꽂혀 있는 편지지를 잘라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만화를 보고, 친구들과 돌려 보던 기억이 납니다. 현대의 잡지도 좋지만, 과거의..따뜻한 온기가 묻어있던 그때의 잡지가 그립습니다. 책의 역사와 만들어지는 과정, 책을 대하는 태도와 추억의 흐름까지 전반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송파 책박물관. 유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좋아하고 싶은 분들께 이곳을 추천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물관 전시 안내 책자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