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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2. 우리 연애합니다.

“싫다. 오로라.”


이상하게 자꾸만 도헌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로라는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한 채 몸만 뒤척였다. 왜일까? 왜지? 왜 기태와의 연애를 무르라고 하는 걸까. 별 거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치부하고 넘긴 채 그런 말을 하는 도헌을 남겨두고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린 로라였다. 그런데. 그런데 왜.



“으으으으. 정신머리 사나워!”


로라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말았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쉽사리 잠이 들 수 없는 밤이었다. 로라는 조금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형광등을 켰다. 눈이 무거웠다. 머리도 띵한 것 같았다. 12시에 먼저 자겠다며 수줍게 하트를 날려주었던 기태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잘자라는 로라의 답장엔 묵묵부답인 채였다. 로라는 휴대폰을 한 번 쥐었다 놓곤 샤워를 하기 위해 수건과 속옷을 챙겨 들곤 욕실로 향했다.

로준과 도헌은 기척 없이 잠에 든 상태였다. 깜깜한 어둠만이 거실에 짙게 깔려 있었다. 거실 바닥에 나뒹구는 아마도 도헌이 먹은 듯한 빈 맥주 캔 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로라는 살금살금 욕실로 향하다 틱, 빈 맥주 캔을 발로 차버리고 말았다.


“쿵.”


고요한 거실에 요란스런 캔 소리가 울러 퍼졌고 로라는 흠칫, 그대로 굳었다.


“어휴, 놀래라.”


로라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옷을 훌러덩 벗었다. 노래라도 틀고 샤워를 하려 했는데, 아차 휴대폰까지 방에 두고 왔다. 다시 옷을 입고 방으로 갈까, 로라는 잠시 고민했지만.


“아 됐어. 귀찮다.”


솨아-,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로라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을 적셨다. 음악없이 샤워를 하려니, 화장실엔 물소리만 가득했다. 로라는 바디클렌저로 거품을 내 몸 이곳저곳 곳곳을 닦았다. 개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 구석은 찜찜했다. 알 수 없는 찜찜함과 울적함이 로라를 지그시 눌렀다.



“선생님은…잘 주무시고 계시려나.”


하지만 그래도. 기태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로라였다. 로라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거품을 헹구기 위해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그런데.


“으윽, 뜨거!”


거품 칠을 하다 자기도 모르게 샤워기의 물 조절을 뜨거운 물로 바꾸어 놓은 모양이었다. 샤워기를 틀자마자 아주 뜨거운 물이 로라의 살갗에 닿았고 로라는 화들짝 놀라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곤 튕기듯 뒤로 물러났는데, 그러다 바닥의 거품을 밟고는 그만 우당탕탕, 화장실의 맨 바닥에 미끄러져 널브러지고 말았다.


“아…아악!”


그대로 뒤로 슬라이딩 해버린 로라. 아프다고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곧게 누워버렸다. 손목과 팔 쪽이 얼얼해 왔다. 다행히 머리가 바로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본능적으로 로라의 팔이 바닥에 먼저 닿아 머리는 깨지지 않은 듯 했다. 로라는 아, 비명도 못 내지르고 그대로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눈만 끔뻑였다.


“팔…뽀사진 거 아냐…? 아 너무…아픈데…”


로라는 눈물을 글썽이며 굳게 닫힌 화장실 문만 바라보았다. 이렇게 홀라당 다 벗은 알몸인 채로 자빠졌으니 이것 참, 소리를 질러 도헌과 로준을 깨워 부르기도 뭣했다. 로라는 아픔에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 손가락을 까딱까딱 해보았지만,


“아…”


무리였다. 큰 소리도 못 내지를 정도로 오른손과 팔에서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로라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혼자서 일어나긴 아무래도 무리였다. 샤워기의 물은 여전히 쏴아-, 틀어진 채로 로라의 다리 위로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5분여가 흘렀을까, 이젠 몸까지 부르르 떨려왔다. 로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곤 감았던 눈을 떴다. 이대로 있다간 의식을 잃고 기절해버릴 것만 같았다. 로라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렀는데, 바로 눈앞에 커다란 타월이 보였다. 저것만…저것만 내 몸 위로 툭, 떨어져 준다면…. 로라는 그나마 고통이 덜한 왼 팔을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애를 썼다.


“윽…으윽…”


하지만 무리였다. 왼 팔을 뻗어 타월을 쥐기엔 애석하게도 타월은 너무도 먼 곳에 있었다. 로라는 엉엉 울며 에이씨, 짜증을 냈다.


“하여튼 진짜 오로라. 달밤에 샤워는 미쳤다고 하냐. 그냥 처 잘 것이지…”


중얼거리며 타월을 향해 후, 후, 입김이라도 불어 보았다. 로라의 입김에 타월이 툭, 하고 기적처럼 떨어져 자신의 알몸을 그나마 가려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후…, 이러다 혈압 올라 죽겠네.”


호흡곤란 증세만 왔다. 두꺼운 타월이 로라의 가냘픈 입김에 꿈쩍을 할 리 없었다. 로라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았다. 이건 정말 무슨 비통한 삶이란 말인가. 그렇게 자포자기 심정으로 끔뻑끔뻑 욕실의 천장만 바라보고 있던 그때, 욕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어…?”


로준과 도헌의 방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였다. 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욕실 문을 바라보았다. 제발…제발 오로준이어라. 그나마 오로준이어라. 차라리 오로준이어라! 로라는 그렇게 주문을 외우듯 그 말만 낮게 읊조리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으윽…야…밖에…누구냐…나 좀…나 좀 살려주라…”


로라는 있는 힘껏 목소리를 쥐어 짜내 굳게 닫힌 욕실 문을 향해 그 말을 내뱉었다. 들리긴 할까, 자신도 목소리를 내며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자기가 낼 수 있는 최대의 목소리였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구조요청이었다.


“나 좀…살려주라…오로준…오로준…”


그리고 그때.


“뭐야? 뭐라고? 누나 안에 있냐?”


욕실 문을 누군가가 쿵쿵 두드렸다. 얼핏 듣기엔 오로준의 목소리인데. 로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곤 어떻게든 움직여 보려 안간힘을 썼다.


“어…안에 있는데…나 좀 살려주라…”


아까보다 조금 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밖에 있던 로준은 다시 한 번 문을 쿵쿵, 두드렸다.


“뭐라고?”
“나 좀…살려달라고오…”
“살려달라고? 뭐?”
“그래, 살려달라고 새끼야…좀 한 번에 알아들어라…”


그리고 마침내 로라의 말을 알아들은 로준은 아까보다 더 다급한 목소리로 욕실 문에 바짝 다가섰다.


“뭐어? 누나 다쳤냐?! 문 못 열어?”
“그래…제발 구도발 깨니까…살살 좀 얘기하고…문이나 열어줘…”


로라는 이제 한계라고 생각했다. 뒷목도 얼얼하니 아파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로라는 이 끔찍한 알몸 상태를 아무리 친 동생이라지만 오로준에게라도 보여주는 것이 비참했기에 차라리 내가 보지 말자,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리고 그때, 우당탕탕 한 바탕 욕실 밖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문이 활짝…정말 활짝 열리고 말았다.


“뭐야, 무슨 일…으악! 뭐, 뭐야!”


문은 그렇게 다시 닫히고 말았다. 로라는 이건 꿈일거라고, 현실이 아니라고…애써 부정했다. 저 놈의 새끼는 근데, 내 몸뚱아리를 보고 비명을 내지를 건 또 뭐람. 로라는 어금니를 꾹 깨물곤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그리고 그때 다시금 조심스레 열리는 욕실 문. 그런데.


“나도 알아, 아는데…나 좀 일으켜…뭐, 뭐야?!”
“난 못 봤어요. 하나도 못 본 거예요.”


구도발이었다. 애석하게도, 정말 비통하게도, 로준이 아닌 구도발이었다. 로라는 고개를 돌린 채 성큼성큼 욕실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알몸 위로 이불을 휙, 덮어주는 도헌을 보고야 말았다.


“왜…왜 하필…도대체 왜…너냐고…”
“어디가 아픈데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데. 머리는? 괜찮아?”


로라의 알몸을 이불로 가리고 나서야 도헌은 걱정스런 얼굴로 로라를 돌아보았다. 로라는 차라리 아까 넘어졌을 때, 의식을 잃었어야 했다고. 머리를 크게 다쳐 이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게 부분 기억 상실증에라도 걸렸어야 했다고 속으로 울부짖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팔…팔이 너무 아파…”


로라는 몸을 부르르 떨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도헌은 그런 로라를 한참 내려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곤 로라의 볼을 타고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이불에 감싸져 있는 로라를 조심스레 안았다.


“좀만 참아요.”


그대로 도헌은 로라를 안아 올려 욕실을 나왔다. 순간 로라의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했다. 초 근접한 거리에서 본 도헌의 피부는 더 뽀샤시 한 듯 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도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로라는 갑자기 팔 쪽에서 아려오는 고통에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으윽.”
“오른쪽? 오른팔이 아픈 거야?”
“응…너무 아파…”
“아니 새벽 세시에 샤워는 웬 말이냐고. 달밤에 체조해요?!”
“조용히 해. 나 지금 쪽팔려서 죽을 지경이니까.”
“119부를까요? 많이 아파?”


도헌은 이불에 감싸져 있는 로라를 안아 든 채, 걱정스런 얼굴로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로라는 차마 자신의 알몸을 다 보고 만 도헌과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아 한껏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린 채였다. 그때 소란스런 둘의 대화를 듣고 잠에서 깬 로준이, 그렇게 로라가 오매불망 기다렸던 로준이 그제야 방문을 열고 나왔다.


“뭔데 새벽부터 이렇게 시끄러…뭐, 뭐야. 뭐하는 거냐, 둘이.”


눈을 비비며 인상을 찌푸린 채로 거실로 나온 로준은 물에 쫄딱 젖어 허연 살이 보이는 로라를 이불에 둘둘 말아 안아 들고 올린 도헌을 발견하곤 경악했다.


“그런 거 아니다.”
“니 놈은 이제야 잠에서 깼냐? 실화냐, 이거?”
“다쳤냐?”


로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곤 원망스런 눈빛으로 로준을 째려보았다.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로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비누 거품이 곳곳에 묻은 불쌍한 모습의 로라 곁으로 다가왔다.


“하여튼 오로라. 다이나믹하게 산다. 다이나믹하게 살아.”


* * *


“다행히 손목이 부러지진 않았다네요.”


근처 응급실에 온 로라와 로준과 도헌. 로라는 오른쪽 손목에 금이 갔고 등과 어깨 쪽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자칫했으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며 의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로라는 부끄러움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고개만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어야 했다.


“근데. 오로라 그 새벽에 왠 샤워?”
“…그냥.”
“으…구도헌. 그럼 너 얘 알몸 봤겠네? 윽! 더러!”
“저 새끼가 죽을라고!”
“악!”


그렇게 말하며 로준이 한껏 인상을 찌푸리자 로라는 발로 있는 힘껏 로준의 엉덩이를 차버렸다. 로준의 말에 도헌은 묵묵부답인 채 이상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야. 너 그렇게 웃고 있지 마라? 나도 상당히 기분 별로거든?”
“누가 뭐래요? 나 아무 말도 안했구만?”
“차라리 아무 말이라도 해라. 그렇게 이상한 표정 지은 채로 입 꾹 다물고 있지 말고.”



로라는 궁시렁 거리며 침대에 다시금 누웠다. 온 몸이 쑤셨다. 엑스레이 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일 정밀 검사를 해보자며 병원에서 우선 하루 정도는 입원을 하라고 했다. 로라는 한숨을 푹 내쉬며 어렴풋이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되는 게…하나도 없네…”
“다른 데는 안 아프고? 아깐 놀래서 모르지만 또 가만 생각해보면 아픈 데 있을 건데.”
“그런 건 모르겠고 일단 난 그냥 지금 좀 많이…창피해서 혼자 있고 싶다.”


로라는 한껏 풀이 죽은 채 한숨만 내쉬었다. 로라 옆에 앉아있던 로준은 하암, 길게 하품만 했다. 도헌은 걱정스런 얼굴로 먼곳만 바라보고 있는 로라를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때, 로라의 휴대폰이 울렸다. 로라는 흠칫 놀라며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았다.


“…벤츠남인데?”


로라의 휴대폰을 들고 있던 도헌은 굳은 표정으로 로라에게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로라는 반색을 하며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풀이 한껏 죽어있던 아까의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도헌의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네, 선생님.”
“어? 깨어있었네요? 너무 이른 시간이죠. 아침 운동 가는 길에 생각나서 전화 한 번 걸어봤는데.”


기태의 말에 로라는 할 말을 잃곤 음…, 어색하게 웃었다. 새벽에 샤워하다가 자빠져서 응급실에 실려와있단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조금은 활기차 보이는 로라의 모습에 도헌은 그대로 병실을 빠져나왔다. 곧 로준 역시 도헌의 눈치를 보다 슬그머니 도헌을 따라 나섰다.


“야. 뭐냐?”
“뭐가?”
“둘이 확실히 사귄데?”
“…뭐 그렇겠지.”


퉁명스레 그 말을 내뱉으며 도헌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았다. 그런 도헌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로준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주었다.


“근데 뭐냐?”
“아, 뭐가.”
“너 혹시.”
“…….”
“오로라 좋아하냐?”


* * *


“괜찮습니까?! 많이 다친 건 아니래요?”


곧 기태가 헐레벌떡 응급실 안으로 들어섰다. 로라는 화들짝 놀라며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동을 하러 가던 길에 로라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온 듯, 기태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로라는 원피스 잠옷 차림에 머리는 샤워하다 만 채였기에 한껏 헝클어져 있는 채였다. 로라는 화장기 1도 없는 자신의 쌩얼에 차마 기태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오, 오셨어요…선, 선생님.”
“괜찮습니까? 얼마나 크게 넘어진건데요?”
“아, 뭐 그냥…대, 대충…넘어졌…”
“머리 CT찍어 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뒤로 넘어졌음 뇌진탕 위험도 있을텐데요. 병원에선 뭐래요. 엑스레이는 찍었습니까?”



기태는 로라의 양 어깨를 붙잡곤 로라의 몸 이리저리를 살폈다. 그때, 응급실 안으로 도헌과 로준이 들어섰다. 도헌은 걱정스런 얼굴로 로라를 살피는 기태를 발견하곤 한껏 미간을 찌푸렸다.


“제, 제가 통, 통뼈라서…하하하, 그렇게 크게 다친 건 아니래요. 걱정 안 하셔두 되요…”
“그래도 욕실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합니까. 다쳤을 때 바로 전화하지 그랬어요. 내가 로라씨 전화 받고 아침에 얼마나 놀랬는데.”


그리곤 그런 기태 옆에 조심스레 로준과 도헌이 나란히 서자, 그제야 기태는 인기척을 느끼곤 고개를 돌려 둘을 바라보았다. 로준인 기태와 눈이 마주치자 마자 고개를 까딱, 숙여 보였다.


“어…동생이에요. 안녕하세요.”
“아…. 로라씨 친 동생되시는 분?”


기태는 살짝 미소 지은 채 로준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로준은 매너있는 기태의 모습에 조금 당황하며 덩달아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 기태는 고개를 들어 로준의 옆에 있는 도헌을 발견했다. 이른 새벽에 얘는 또 여길 왜, 하는 표정으로 기태는 도헌과 로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도헌은 인사도 않은 채, 기태를 쳐다보는 둥 마는 둥 했다.

기태는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도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른 시간에…구도헌…씨는 여기 왜.”


한껏 경계의 어투였다. 도헌은 그런 기태의 말에 그제야 기태를 올려다보곤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싸한 공기가 그 둘을 감쌌다. 침대에 앉은 로라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애꿎은 로준의 팔만 툭툭 쳤다.


“왜. 못 올 데라도 왔어요, 내가?”


싸늘한 목소리의 도헌이었다. 그러자 기태는 피식 웃으며 도헌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둬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로라를 바라보았다.


“친구 동생 분이…로라씨를 끔찍이도 아끼나 봅니다. 이 새벽에 집에서 여기까지 달려와 로라씨 옆을 지키고 있는 걸 보니.”
“아, 네, 네? 아니 뭐…끔, 끔찍이까지는…하하하.”


로라는 도헌과 같이 살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없었기에 입술만 지그시 깨물곤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다 도헌이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달싹이던 그때,


“오호라랑 같이 살…”
“커, 커피라도 한, 한 잔 하…실래요?! 여기까지 오셨는데…”


로준이 먼저 그런 도헌을 제지하곤 말을 걸었다.


“아, 저 인사가 늦었네요. 차기태라고 합니다. 로라씨랑 같은 상가에서 동물병원을 하고 있구요.” “아, 네…저는 오로준이라고 합니다. 오로라 친 동생…이구요.”


그리고 기태는 로준에게 악수를 청하며 옆에 서 있는 도헌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곤 도헌이 똑바로 들으라는 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리고.”
“……?”
“로라씨 남자 친구이기도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로준씨.”


* * *

새해복 많-이 받으셔요^_^
4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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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꺼져있어서 폭풍으로 읽었어요~
일주일이 또 너무 길듯...ㅠ
기태시러여~~~~~ㅜㅠ
참자 참자 궁금해 하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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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러셨죠. "이 분이라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재밌게 쓰실 수 있을걸요?"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껄껄... 그 말. 정말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제가 한 번 써보겠습니다. 바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 나는 육군 출신이다. 육군이란 무엇인가. 밥 먹고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운동뿐이고, 운동 중에서 '축구'와 '족구'에 환장하는 종족. 첫 번째로 동명동 메시, 서초구 히바우두, 달서구 호날두 등등... 전국에서 숨어있던 동네 고수들이 몰려드는 곳이기도 하며. 두 번째. 축구라고는 맥주 한 잔 하면서 프리미어리그를 보며 입으로만 축구하는 남자들이 모이기도 하며. 마지막으로 태어나서 축구를 해본 적도 없는 부드러운 사내들이 모여 눈치를 보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저 세 부류들 중 1~2번에 속했다. 축구를 잘하지는 못했다. 중학교 때 축구보다 먼저 '슬램덩크'에 빠진 나는 열심히 농구만 했고, 고등학교 때는 농구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반강제로 골키퍼를 맡았다. 그렇게 대학생이 됐다. 국어국문학과.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은 학과였고, 사지 멀쩡한 남자들은 체육대회 때 반강제로 축구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특히 내가 신입생이 됐을 때, 축구를 열심히 하며 체대생을 꿈꿨지만 부상으로 인해 축구 유망주를 접고 국문과에 입학한 예비역 선배 한 명과, 축구에 미쳐 학과 수업보다 축구를 더 사랑했던 선배 두 명이 날이면 날마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인원들을 모아 반강제로 축구를 시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골키퍼를 열심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단순히 과대라서 선배들에게 잘보이고 싶었던 나는 팔자에도 없는 다이빙을 열심히 하며 골키퍼를 했고, '너에게서 가능성을 봤다'며 축구 유망주를 꿈꿨던 그 선배는 시간날 때마다 나를 호출해 골키퍼 연습을 시켰다. 어찌 보면 고등학생 때까지 축구부에서 배웠던 사람에게 배웠으니, 나도 축구부 시스템으로 훈련받았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게 나는 방구석 입축구 전문가에서 국문과 골키퍼가 되었고, 선배들의 무수한 압박 속에 승부차기에서 두 골을 막아내며 국어국문학과가 공대를 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입대한 군대. 그 중에서도 내가 나왔던 부대는 정말 공놀이에 미친 사람들 투성이었다. 군화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 차에서 내린 행보관님이 날렵한 몸놀림으로 족구장에서 서브를 꽂아넣고 하품을 하며 출근하기도 했고, 육중한 몸놀림으로 '훈련이나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중대장이 안정환처럼 수비수를 농락한 뒤 세레머니를 하기도 했다. 축구를 너무 하고 싶어서 부대원들과 간부들이 사이좋게 삽 한자루로 언덕을 깎아 평지를 만들고, 정성스럽게 철근을 용접해 부대 내에 풋살 경기장을 만들었던 미친놈들의 소굴이었다. 그리고. 우리 중대에는 '그 사람'이 있었다. 대한민국 프로축구. K-리그에서 유망주로 불리다 불행한 사건에 휘말려 일반 육군으로 입대한 프로 선수. 소속팀과 이름은 밝힐 수 없다는 점. 심지어 그 사람과 동반입대한 친구는 대한민국 프로 씨름선수 출신이었다. 아무도 그 둘에게 개길 수 없었다. 그 선임들이 일병 때였다. 나와 2개월 차이가 났기 때문에 나도 일병이었고, 자주 붙어다녔다. 그 당시 중대에서 운동을 좋아하고 격투기 좀 배웠다 싶은 선임들, 간부들이 모두 그 씨름선수에게 "야. 나랑 씨름 한 판 해보자. 나도 운동 좀 했다." 라고 말하며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 선임은 넉살 좋게 웃으며 "에이. 진짜 다치십니다. 그럼 저는 프로 출신이니, 다리 하나를 들고 하겠습니다." 라고 하며 샅바를 잡았고, 그 선임은 그렇게 중대의 모든 도전자들을 다리 하나로만 들어서 넘겨버렸다. 그 때 뜨거운 햇볕만큼이나 그 선임의 만두귀는 강렬했고,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닌 단단하게 들어차 있는 '실전압축근육'은 모든 중대원들에게 경외감을 심어주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만두귀는 피해다녀라' 라는 격언을 인생 좌우명으로 삼으며 살고 있다. 그리고 프로 출신 축구선수였던 그 선임. 군대는 전국 팔도에서 온갖 사람들이 다 모이기에, 축구를 배웠던 사람들, 유학을 다녀왔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선임은 어나더 레벨이었다. 프로 구단에서 훈련을 받고 경기를 뛰며 어느정도 촉망받던 유망주였던 그 선임. 미드필더로 이미 스무살의 나이에 1군에 출장한 진짜 '선수'. 티비에서 축구 중계를 할 때 나오던 그 선수.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물론 프로 선수였다는 것은 네이버에만 쳐도 다 나왔기 때문에 믿었지만, "제가 진짜로 하면 축구 재미 없어집니다." 라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대대 축구대회에서 대대 최강 7중대를 상대로 우리 8중대 대표로 나왔던 그 선임은, 후반전 때 팀이 1대 0으로 지고 있자 "하아..." 라는 긴 한숨을 쉬고는 우리 골키퍼에서 상대방 골키퍼까지 혼자 공을 몰고 돌파해 여유있게 두 골을 때려박고 대대 체육대회에서 8중대를 우승으로 올려놓았다. 긴 한숨을 쉬며 어이없다는 듯 그 선임을 쳐다보던 7중대장의 이마. 탈모가 시작된 그 넓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만큼이나 그는 빛났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그는 호날두였다. 우리중대 호날두...호우... 그 날 이후 우리 중대는 소위 말하는 '짬순'으로 축구를 하던 룰이 사라졌다. 병장이라고 공격수만 할 수 없었고, 이등병이라고 수비수만 하지 않았다. 모든 포지션과 전술은 그 선임이 말하는 대로만 이루어졌다. 그리고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아마 그것은 그 선임 옆에서 듬직하게 지키고 있던 고향만두가 생각나는 귀를 가진 씨름선수 선임의 포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기자 역사상 최강의 동반입대병들의 포스는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선임들이 운동법과 축구에 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모두가 경청했다. 사실 군대에 있으면서 어지간한 남자들은 몸 만드는 것과 축구에 목말라있었기 때문에 그 선임들이 하는 말들은 단순한 조언이 아닌 '프로 씨름선수의 피지컬 훈련'과 '프로 축구선수의 기본기 훈련'이었다. 유투브에서 해도 솔깃할 만한 달콤한 조언들 아니겠는가. 그리고 축구 대회가 진행될 때면. "오우. 중대장님 나이스!" "아 그래? 헤헤 성호야 나 잘했어?" 일병이 엄지를 들고 칭찬하면 대위가 쑥쓰러워하며 고마워하는 기상천외한 상황들이 연출됐다. "야. 너는 축구 한 번 배워봐라. 가능성 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 신체 밸런스가 괜찮은데? 들배지기 하나 알려주까?" "알려주시면 제 한 몸 씨름을 위해 쓰겠습니다!!!" 그 선임들이 툭 뱉는 칭찬은 후임들에게는 '프로 선수에게 인정받았다'라는 엄청난 동기부여를 주었고, 거의 모든 중대원들이 주말만 되면 오전에는 씨름과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공을 들고 운동장을 누비는 광경이 연출됐다. 그렇게 중대원들 몸이 점점 구릿빛으로 진해질 무렵. 나는 상병이 됐다. "어이. 랩쟁이." 가끔 씨름선수였던 그 선임은, 사단 대표로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휴가를 받았던 나를 이렇게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었다. "랩 한번 해보그라." "췍. 췍. 앰네ㅐ뤠눌내무랜ㅁ언ㅁ엉어단아ㅡㅏ 췍!" 그리고 부끄러움보다 만두귀의 공포가 더 많은 편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씩 궁중 광대같은 생활을 하며 터미네이터들에게 예쁨을 받았고, 상병이 되고 그들이 고참이 됐을 때도 그들을 따라다녔다. 그렇게 우리가 상병일 때, 대대에서는 또 체육대회가 열렸고, 축구대회를 위해 선임들은 중대원을 호출했다. "니는 공은 잘 못차는데 달리기가 빠르네. 골키퍼 하지 말고 측면 공격수를 해라." "잘못들었습니다? 저... 저는 공을 잘..." "닥치고 그냥 공 받으면 앞으로 툭 차. 그리고 뛰어. 누가 붙으면 어깨로 밀어. 그리고 슛을 때리던 패스를 하던 알아서 해. 쉽지?" "...그게 축구 맞습니까?" "야씨. 그럼 내가 농구선수냐? 너넨 다 기본기가 부족해서 여러가지 시키면 안돼. 하라는 것만 해." 그렇게 나는 왼쪽 공격수가 됐다. 그 선임의 전술은 매우 간단했다. 한 명 한 명 불러서 뭔가를 주문했는데, 다들 엄청 쉬운 것들이었다. "측면 수비수는 측면 공격수한테 무조건 공을 차. 받아도 그만 못받아도 그만. 오케이?" "중앙 수비수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앞으로 뻥 차던가, 앞에 있는 나한테 주던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공격수는 기다리시면 됩니다. 어떻게든 제가 공 올려드릴테니까, 발만 대시면 됩니다." -끄덕. 공격수를 맡았던 소대장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작된 대대 축구대회. 수비수에 있던 씨름선수 선임과 중앙에서 모든 것을 진두지휘했던 프로선수 출신의 선임, 그리고 '우리는 프로들에게 훈련받았다'는 자부심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던 중대원들과 간부들. 우리는 파죽지세로 결승전까지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대대 최강이었던 7중대를 다시 만나게 됐다. 무난하게 우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던 결승전은 묘한 양상으로 흘러갔다. 애초에 우리가 연습한 것보다 7중대는 더 열심히 연습을 했었다. 이를 바득바득 갈던 7중대장은 축구대회 전부터 쥐잡듯이 중대원들을 훈련시켰고, 결승전에서 축구선수 선임에게 무려 4명을 붙여 꽁꽁 싸매는 전술을 들고 나왔다. '축구선수는 일반 게임에서 진지하게 뛰면 안된다'는 주의로 중앙에서 패스만 뿌려주던 선임과 실력이 부족한 8중대원들, 그에 비해 악에 받힌 채 뛰어다니던 7중대원들로 인해 경기는 0대0으로 팽팽하게 전반전 막바지까지 흘러갔다. 그렇게 전반전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패스가 최전방에 있던 소대장에게 흘러갔다. 센스있게 중앙에서 패스를 뿌려준 그 선임 덕분에 당시 중위였던 소대장은 마지막 슛을 날리게 됐고, 소대장은 힘차게 공을 찼다. -뚜둑! 공은 프리미어리그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궤적을 그리며 아름답게 골대로 빨려들어갔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소대장에게 뛰어갔다. "와아!!! 소대장님!!! 대박!!!" 하면서 뛰어가던 우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힘차게 공을 찼는데... '뻥'이 아니라... '뚜둑'...?" 그렇게 생각하며 소대장 쪽을 쳐다보자 "와아!!! 내가 골이다!!!" 라고 말하며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소대장이 있었고, 축구선수 선임은 "아.. 십자인대 나갔네..." 라고 말하며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전반전이 종료되고, 소대장은 대대 엠뷸런스를 타기 위해 들것에 실려나갔다. "내 인생 최고의 슛이었어." 라고 말하며 엄지를 세우던 소대장은 그렇게 엠뷸런스의 구슬픈 사이렌 소리와 함께 대대를 벗어났다. 그렇게 폭풍같던 전반전이 지난 다음 찾아온 후반전. "그러니까 조심 좀 하라니까는 소대장님. 어휴. 나와 이 새끼들아!"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걸죽한 욕설과 함께 행보관이 공격수로 투입됐다. 장동건과 동갑이었지만 임하룡과 비슷한 연배의 얼굴을 소유한 행보관은 경기 시작부터 욕을 한 바가지로 퍼부으며 상대방 수비진을 농락했다. "나와! 다 뒤질래? 나와! 나오라고!" "7중대! 쫄지마! 얼굴만 늙었지 형이야! 쫄지말고 막아!" "아니 7중대장님 너무하십니다!" "행보관님 애들 겁주지 마세요!"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각종 예능축구들을 선보이던 행보관.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격진에서 시끄럽게 해준 행보관 덕분에 후반전이 시작되고 얼마동안은 1:0이 유지됐다. 우리 수비진들은 평화롭게 산책을 했고, 예상 외의 행보관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10분동안만... "허억....허억... 아 씨바 힘들어..." 10분이 지나자마자 행보관의 체력은 거짓말처럼 급격하게 방전되기 시작했고, 우리는 위험한 한골 차 리드를 챙긴 채 아등바등 뛰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전이 끝나기 얼마 전. "어! 어! 씨바 비켜!" 축구선수 선임이 차올린 공이 정확히 행보관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팡! -우당탕! 그 공은 정확히 행보관의 발등에 걸렸다. 무려 오버헤드킥. 행보관은 그 짧은 순간 육중한 몸을 띄워 공중에서 공을 차냈고, 공중에서의 임무를 무사히 마친 그의 무거운 몸은 중력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어..? 어...?" "와아아!!!!!! 행보관님!!!!!" 우리는 믿을 수 없이 멋진 골에 놀란 채 환호하며 흙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는 행보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야! 야! 오지마! 이 씨바 오지마! 잠깐만! 진짜 야!" 행보관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지만,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우리들은 행보관 위로 올라타며 기쁨의 세레머니를 했고, 세레머니가 끝난 후 행보관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못했다. "야. 소대장님 태우고 간 엠뷸런스... 복귀했으면 일로 오라그래라...빨리..." 그렇게 방금 부대로 복귀해 체육대회를 즐기고자 했던 의무병과 운전병은 다시 들것을 들고 뛰어왔고, 날렵했던 소대장과는 달리 100키로에 가까웠던 행보관을 들기 위해 들것에는 4명의 장정이 달라붙었다. -웨용 웨-용 웨-용 그렇게 행보관은 떠나갔다. 허리가 나갔다며... 엠뷸런스는 오늘따라 더욱 구슬프게 사이렌 소리를 두 번이나 내며 초가을 연병장 바닥에 타이어자국을 남긴 채 떠나갔고, 그렇게 우리 중대는 대대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이 시발 간부가 둘이나 실려간 팀을 어떻게 이겨..." 오늘따라 더 휑해보이는 이마를 빛내며, 7중대장은 절규했다. 그렇게 요란한 금요일이 지나고, 주말이 지난 후. 행보관은 허리에 복대를 찬 채 복귀했다. '앞으로 축구하면 죽여버리겠다'며... 소대장은 돌아오지 못했다. 십자인대 파열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은 우리 중대장. 기아 타이거즈의 광팬이며 사회인 야구단에서 오래 활동했던 우리 중대장은 "축구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다치냐. 당분간 축구는 금지한다." 라고 말하며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야구 글러브 10개를 부대로 주문했다. 그렇게 열심히 축구를 배우던 병사들과, 전직 프로 축구선수, 전직 씨름선수는 모두 4번타자를 꿈꾸며 배트를 휘둘렀고, 중대장은 매주 주말 환하게 웃으며 글러브를 들고 우리를 집합시켰다... ------------------------------끝 이상 군대에서 축구했던 이야기였습니다! 재미는 음... 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재밌게 읽어 주세요! 감사합니당!
ep)32.📜6학년 마지막
방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 였다. 이틀 전, 이 시간 쯤 내가 쓰러졌지 아마. 아, 그러고 보니 드레이코한테 고맙다는 말도 못했네. "아... 몰라." 나는 침대로 가 눈을 감았다. 빨리 내일이 오길 바라면서 나는 잠에 들었다. 나는 그 날 이후로 마법공부에 더 힘을 썼다. 해리 삼총사의 계획을 모른척 해야만 했고 점점 정체가 들어나는 죽음을 먹는 자로부터 안전해야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굴 만나지도 않고 강의실과 도서관, 기숙사를 왔다갔다 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뛰어난 실력이군, 벨 양." 내가 오늘 수업받은 교수님들이 하신 말씀이다. 이제까지 악을 쓰며 공부한 보람이 있다. 기분 좋게 수업을 끝내고 도서관으로 가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오늘은 마법주문을.. 여깄다." 나는 아주 두껍고 오래된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방어마법 부분을 피고 공부를 시작했다. 몸이 뻐근해 시계를 보니 8시 54분이었다. 필치씨가 기숙사로 점검 오시기까지 6분 남았다. 나는 급히 내 짐을 들고, 책을 정리하고 기숙사 쪽으로 뛰었다. 다행히 필치씨가 도착하기 전, 8시 59분에 도착했다. 나는 내 방에 들어가, 대충 정리를 한 뒤, 책상에 앉아 도서관에서 필기해뒀던 주문들을 살펴봤다. 거의 모든 주문이 일회성 주문이었다. '하지만 난 항상 방어가 되어있길 바래.' 그때, 마지막으로 필기된 주문이 눈에 들어왔다. "라투아 시라어뎀... 방어가 항상 걸려있게 하는 주문...걸리는 주문의 효력은 약하지만 주문이 쌓이면 강력해진다.." 이거야. 이거라면 할 수 있어. 나는 연습 삼아 작은 구슬을 집어들고 외쳤다. "라투아 시라어뎀." 그리고 공격주문을 사용했다. "리덕토." 성공적이었다. 구슬은 조금 금이가긴 했지만 부서지진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 몸에 방어 주문을 걸었다. 매일 매일 걸다보면 나는 다치지 않을 수 있다. 필치씨가 다녀간 후인 9시 15분에, 나는 드레이코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나야, 드레이코." 드레이코는 문을 열고는 나를 방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드레이코는 자리를 내 주고는 말했다. "클로에, 마법 실력이 엄청 늘었던데?" "정말 열심히 했어, 곧 7학년인데 아쉬움 안 남게 하고 싶어서." "그래도 좀 쉬어가면서 해, 너 몸 상하겠다." "이 정도 했다고 몸 상하겠어? 다른 애들은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해, 드레이코." "너 만큼 열심히 하는 애는 또 없어. 하여튼 넌 너무 극단적이야. 도무지 중간이 없다니까." "칭찬으로 받아드리면 되지, 드레이코?" "마음대로." 잠시 뒤, 나는 드레이코를 안으며 말했다. "우리 벌써 만난지 1년이네. 어떡하지? 난 네가 너무 계속 좋은데?" 드레이코도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정말? 큰일이네. 나도 그렇거든...여전히 좋아해, 클로에." 나는 드레이코의 귓가에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여전히 좋아해, 드레이코." 나는 드레이코와 그렇게 짧지만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누고, 다시 내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서, 6학년도 끝났다. 학교 생활이 1년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번에 학교에 남는 학생들이 많았다. 드레이코가 가벼운 노크와 함께 문을 열며 말했다. "클로에, 짐 다 쌌어?" "당연하지. 너도 다 챙겼어?" "응. 근데 클로에, 너 나 안보고 싶겠어? 난 너 보고 싶을것 같은데." "저번 방학때처럼 이름없는 쪽지 보내면 되잖아." "그래도 얼굴보는거랑 글씨만 보는거랑은 다르잖아."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냥 집에 가지 말까?" "아니야, 부모님께서 걱정하시겠다. 보고 싶겠지만, 나보다 더 널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이 계시니까 조금 참아야지." "쪽지 매일 써야겠네. 아, 드레이코 빨리가자. 자리 없겠어." 나와 드레이코는 짧은 포옹을 하고 항상 그래왔듯 각자의 집으로 또다시 향했다.
[책추천] 나와 우리의 가난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여러분은 가난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나요?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주제인데요. 힘들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에 대해 얘기를 들어볼 5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삶의 받침을 모르고 띄어쓰기를 틀렸다고 가난이라뇨 재활용품을 모으는 할머니를 통해 문제의식이 돋아날 책 가난의 문법 소준철 지음 ㅣ 푸른숲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bEdM6o 얼마나 더 포기해야 하는지 몰라도, 이건 지키고 싶다 여유가 없는 만큼, 이참에 중요한 걸 분별해 보게 될 책 우아한 가난의 시대 김지선 지음 ㅣ 언유주얼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MmMcSq 없는 것도 서러운데 목숨마저 위태롭다 누구는 불편할 뿐이지만, 누구는 상처 아니면 상실이다 재난 불평등 존 C. 머터 지음 ㅣ 동녘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kqleWz 내 가난부터 세상의 가난까지 좀 제대로 알고 싶을 때 심도를 확대했다 축소하며 폭넓게 보는 가난의 지도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지음 ㅣ 생각연구소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7KYDih 부러질 듯한 사다리라도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오르는데 먼저 올라간 이들이 사다리를 걷어차는 걸 목격하게 된다 부자 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난한가 에릭 라이너트 지음 ㅣ 부키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bAq1kg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 👉 https://bit.ly/3sqtBU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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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인들과 평론가를 만났지만, 난 또 취해버렸지. 심지어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이런. 핸드폰을 몇 번째 잃어버리는 건지 모르겠다. 찾을 수 없겠지. 구글을 통해 위치 추적, 동선 파악을 모두 해보았더니 어제 우리가 모인 그 일대이기는 하다. 그러므로 택시에 두고 내린 건 아니다. 누군가가 습득을 하기는 한 건지, 아니면 길바닥 어딘가에서 혼자 고이 누워있는지 알 길이 없다. 전화를 걸면 신호는 가는데 받지는 않는다. 이런, 이런. 어제 만난 평론가는 내 시집의 해설의 써준 이다. 그는 나보다 어리지만, 그리고 상당히 귀여운 면모가 있지만, 아주 예리하고 단단한 평론을 쓴다. 그가 내 시집에 글을 보태주기로 정해졌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는 그러한 마음도 숨김없이 전했다. 나는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 와인 한 병을 샀고, 사는 김에 함께 마실 와인도 두 병 더 샀다. 어제 우리를 초대한 시인은 집에 이미 맥주를 준비해놨기 때문에, 술이 섞였고, 그 덕에 취해버렸지. 시적 고민이나 문단의 세태 등 깊은 얘기들이 오갔고, 나는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무엇보다 그이들의 문학적 고집이 좋았다. 나는 시로부터 도망갈 궁리만 하고 있는데. 나는 시에 취하지는 못하고, 술에만 잔뜩 취해버렸다. 아 참, 고양이 ‘밤’이도 함께였다.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듯 나는 밤이에게 츄르를 먹였다. 까만 고양이 밤이는 털이 고왔고, 그 윤기가 흡사 말 같기도 했다. 밤이는 귀엽고, 나는 취해버렸지. 아,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해. 남의 핸드폰을 습득했으면 돌려주는 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대체 왜 이러한가. 내가 잃어버리고 남 탓하기. 내가 지금 두려운 것은, 내 핸드폰 안에 지금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뭔가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리고 난 취해버렸지. 역시 술이 웬수다. 아니다. 마신 놈이 웬수지 술이 무슨 죄가 있겠나. 근데 내일도 술 약속. 이번 주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시 쓰는 사람들이다. 내일 만나는 사람들은 시인들은 아니지만 시인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사람들이다. 그중 한 사람은 사실 아직 등단을 안 했을 뿐, 어지간한 시인들보다 시를 잘 쓴다. 그 친구의 시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내 취향을 저격한다. 그에게도 말했지만, 그는 아마 잡문을 써도 시적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태생적으로 시가 내재된 사람들. 또 한 사람은 시에 대한 열정이 상당한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언젠가 교수님이 보여준 어떤 좋은 시를 읽고 그 앞에서 펑펑 운 적도 있다고 한다. 그도 다른 의미로 그 안에 이미 시인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런 친구들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좋은 시인이 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어제 그렇게 취했나? 그렇지, 취해버렸지. 나는 취해버렸다. 내일을 마지막으로, 술 약속은 당분간 없는 걸로.
소설) 시간이 멈춘 마을 -6-
(1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32297 (2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36809 (3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40168 (4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45784 (5편 링크) https://www.vingle.net/posts/3559065 안녕하세요! optimic입니다. 제가 너무 오랜만에 왔죠...? 면목없습니다... 흑... 제가 도저히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아서...흑흑... 집안일, 가족일 등등 좀 바빴긴 했지만... 확실히 글을 쓰는 건 너무너무 어렵네요...ㅠㅠ 시간나는 대로 열심히 쓰겠습니당...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10.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았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마저 흐르는 이 마을의 분위기 때문인지 바퀴가 흙바닥을 긁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아버지가 살던 집으로 가는 동안 보이는 몇몇 집은 모두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심드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개 몇마리가 보였다. 어둑해진 시골길을 뚫고, 아버지의 집 마당에 차를 댔다. "후우..." 공기가 무거운 건지 내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온 몸을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 무거웠고 좋지만은 않은 이 느낌은 마을 입구에 들어섰을 때부터 내 어깨에 달라붙어 있는 듯 했다. 최대한 덤덤한 마음을 먹기 위해 심호흡을 한 후, 손에 어머니의 시계를 찼다. 다섯시 사십분. 어두워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시골이라는 곳은 해가 빨리 지는구나. -철컥 나는 손목에 감긴 금속의 차가움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차에서 내렸다. 평소처럼 내릴 수도 있었지만, 왠지 내가 내는 소리들이 이 마을을 휘젓는 것만 같아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워졌다. -쿵 온 마을을 휘감고 있는 적막 때문인지, suv 차량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란 후, 아버지가 살았던 집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스윽 낡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열리는 현관문을 등 뒤에 놓은 채, 나는 아버지의 작은 방과 마주했다. 티비도, 달력도, 라디오조차 없는 이 방에서, 아버지는 무얼 하며 사셨을까. 방 구석엔 작은 앉은뱅이 책상이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쓰던 책상과 비슷하게 생긴, 나무를 서툴게 깎아 만든 책상이었다. 손재주가 좋으셨던 아버지였으니 이것도 스스로 만들어 쓰셨을 것이다. 책상에는 소설, 의학, 그리고 낚시 책 몇 권이 아버지의 손에 때가 탄 채 놓여 있었다. 저 작은 앉은뱅이 책상에서 죽음을 앞둔 채 내게 편지를 쓰셨을 거라 생각하니 다시 울컥했지만, 우선 눈 앞에 있는 것부터 확인해야 했다. 아버지는 내가 이 곳에 올 거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그렇기에 기성 삼촌에게 시계를 맡기셨을 거고, 분명히 이 곳에 뭔가를 남겨 놓으셨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았다. 아버지의 흔적을 온 몸으로 맞으며 집 안을 헤집었고, 내가 모르던 아버지의 여생을 생각하며 뭔가 아버지의 죽음과 이 마을에 대해 남겨진 단서를 찾기 위해 이 잡듯 뒤졌다. 그리고, "왜...?" 나는. "왜 아무것도 없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웠던 아버지의 흔적들만 남아있을 뿐, 그 외에는 여느 평범한 시골집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아...모르겠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바깥은 고요했다. 그 틈을 비집고 옅은 달빛이 작은 방을 비추고 있었다. 달빛과 천장에 달린 작은 백열등이 어우러져 조용한 빛을 몸으로 맞으며 방 한가운데 나는 멍하니 누워있었다. 아버지가 매일 밤 보던 천장을 보며, 아버지가 매일 등을 맞대던 바닥에 내 등을 기댔다. “아버지...” 아버지는 왜 이 마을로 들어왔을까.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이 마을에서 사는 것이 가치가 있었을까. 나에게 이 마을로 함께 가자고 하셨었지. 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그 정도로 이 마을은 아버지에게 중요한 곳이었을까.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라고 말하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그 때. "....어라?" 천장에 작은 금이 가 있었다. 천장의 낡은 나무 무늬에 교묘하게 가려진 금. 달빛과 전등 빛 중 하나만 없어도 보이지 않을 금이었다. "저건..." 상당히 인위적인 금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덮어놓은 듯한 금이었고,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흔적이었다. "잠깐만...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아주 오래 전이었다. 어머니가 건강하시고 아버지가 매 주 주말 낚시대를 닦으시던 그 쯤, 내가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던 그 쯤이었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그렇듯 나는 친구들과 비밀기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밤마다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비밀기지를 만들어 놀다 잠들곤 했다. "아들. 비밀기지가 그렇게 좋아?" "응! 아무도 모르는 비밀기지를 만들 거에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놀고 있을 때면 아버지께서 가끔 들어와 함께 있으셨고, 깜깜한 이불 속에서 랜턴을 들고 놀던 나를 웃으며 쳐다보셨다. "나중에 멋진 비밀기지가 생기면, 아빠도 끼워줄 거지?" "네! 아빠도 나랑 비밀요원 해요!" 그 후 어느 날부터 아버지께서는 인부들과 몇 번의 주말을 보내셨다. 주말 내내 아버지는 인부들과 뭔가를 만들고, 붙이고, 뚫고, 다듬으셨고, 작지도 크지도 않던 주택에서 우리 세 식구는 한동안 안방에서 생활해야 했다. "아들! 이리 와 봐!" 공사가 다 끝난 후, 아버지는 나를 작은 책상 앞으로 불렀다. 나무로 만든 작은 앉은뱅이 책상이었다. "이건 아빠가 주는 선물!" "우와! 아빠가 만든 거에요?"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었다. "그럼! 아들 주려고 아빠가 직접 만들었지!" "나중에 비밀기지에 놓고, 책도 읽고 그림도 그려야지! 아빠! 고마워요!" "안 돼. 이 책상은 비밀기지에 놓을 수 없어." 아버지는 웃으며 계속 말했다. "어..? 왜요 아빠?" 아버지는 책상 밑부분을 만졌다. 잠시 책상을 만지던 아버지의 손이 '달칵' 하는 소리와 함께 멈췄고, 작은 책상에서 더 작은 서랍이 튀어나왔다. "이 책상에는 비밀이 숨어있으니까." 서랍 안에는 작은 열쇠가 들어있었다. 얇고 길쭉한 열쇠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디자인이었다. "그리고 이 열쇠가, 아빠가 주는 진짜 선물이지."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는 벽으로 향했다. 벽에는 못보던 작은 사다리가 달려 있었고, 아버지는 까치발을 한 채 손을 뻗어 천장 무늬 사이로 열쇠를 집어넣었다. -철컥 열쇠를 집어넣고 돌리자, 열쇠는 작은 손잡이가 되었고, 아버지는 그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우..우와!" "짠! 아빠가 만든 비밀기지!" 아버지가 인부들과 작업했던 그 공사는 집에 다락방을 증축하는 공사였고, 그렇게 아버지와 나, 그리고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비밀기지가 생겼다. 아직 어려서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그 공간. 아버지는 항상 나와 함께 다락방으로 올라가 비밀기지를 꾸몄고, 내가 조금 더 커서 혼자서 그 곳을 올라갈 수 있게 됐을 때는 아늑한 다락방이자 아버지와 함께 가던 낚시용품들의 보관함이 되었다. "그랬었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의 책상을 만져봤다. 이 곳 저 곳을 더듬자. -달칵 작은 서랍이 튀어나왔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의 품에서 뛸 듯이 기뻐했던 그 열쇠가, 작은 서랍 안에 들어있었다. -철컥 천장은 작은 금속음을 내며 열렸고, 작은 공간이 천장을 뚫고 나타났다. "언제 또 이런 걸 만드셨대... 재주도 좋으셔..." 여전히 아버지는 과거를 추억하고 있었다. 내가 욕을 뱉고 연을 끊었어도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가장 행복했던 추억들을 다시 만들고 있었다. "흑... 흐읍..." 이 마을이 주는 끝없는 적막 속에서, 나는 몰래 숨죽인 채 눈물을 닦아냈다. 빠르게 슬픔을 걷어냈다. 아직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내가 많이 큰 탓인지, 이 방이 작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책상을 딛고 올라가 까치발을 하고 나니 어렵지 않게 안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흠" 어릴 적 봤던 다락방보다는 훨씬 작은 공간이었다. 겨우 짐 몇개 들어갈 정도의 공간. 아무래도 이 집 구조상 큰 방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도 모를 공간이 필요했거나..." 그렇게 작은 공간을 둘러보던 그 때. "...어?" 작은 공간에 뭔가가 있었다. "상자...?" 먼지 속에서 상자를 꺼내 방바닥에 앉았다. 상자는 얇은 나무판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어느정도 무게가 있었다. 풀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마을 안, 그 안에 있는 작은 집 작은 방에서 묵직한 상자 뚜껑을 열었다. "허억!" 나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깜짝 놀랐다. "이게 뭐지...? 상자 안에는 옷이 들어있었다. 빨갛게 피칠갑이 된 옷 한 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