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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화가의 눈으로 본 그때 그 조선
‘Portrait of Miss Elizabeth Keith’ by Ito Shinsui, 1922 20세기 일본 화단의 대가로 꼽히는 이토 신수이(伊東深水, 1898-1972)가 그린 키스의 초상화이다. 엘리자베스 키스(1887-1956) 1919년 엘리자베스 키스라는 호기심 많은 한 영국 여인이 극동의 작은 나라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녀는 곧, 일제 식민 지배에서 신음하는 이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풍습과 경관에 빠져들었고 깊은 애정으로 이를 그림과 글로 담아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녀의 그림은 오랫동안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다가 2006년에야 재미동포 송영달 선생의 노력으로 비로소 빛을 보게 됩니다. 아마,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처음 보시는 분들이 많을 터인데, 1920~1940년대 무렵 옛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름답고 정밀하게 나타나 있는 그림들을 보면 경탄을 자아낼 것입니다. ◆ Marriage Procession, Seoul_1921 혼례 행렬 이 그림은 혼례 행렬, 정확히 말하면 신부 행차입니다. 꽃가마가 아주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네요. 행렬 앞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람이 신랑 집으로 가마를 인도하여 갑니다. 그 인도자는 백년해로를 뜻하는 기러기를 보자기에 싸서 들고 있습니다. 청사초롱을 든 사람들이 가마 앞뒤에 있고, 동네 아이들이 구경삼아 따라가고, 빨래하던 아낙도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데, 한 아낙은 길에다 물을 버리고 있네요. 뒤로 동대문이 보이는데, 다리는 청계천의 어느 다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 East Gate, Seoul, Moonlight_1919 달빛 아래 서울 동대문 푸른 달빛 아래의 동대문(興仁之門). 이 그림에 보이는 돌담 표현은 목판화로는 하기 어려운 기법이라고 합니다. 키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1923년 도쿄 대지진 때 목판 원본이 소실되었고, 이 그림은 키스의 저서 <동양의 창>에 실린 것인데, 현재 누가 실물을 소장하고 있는지는 모른답니다. ◆ East Gate, Pyeng Yang, Korea_1925 평양의 동문 “1392년에 지은 평양 성곽 중 동쪽에 있는 문만이 유일하게 남아 있다. 서울에 있는 동대문만큼 웅장하지는 못하지만, 평양의 동문은 그 단순한 스타일과 함께 연륜의 은은함이 배어 있는 문이다. 에카르트는 한국의 건축에 대하여 이렇게 논평했다. ‘한국은 그 건축법을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그것은 한국의 상황에 맞추어 단순하면서도 우아하고 더욱 절제된 형태로 발전시켜 한국 특유의 건축문화를 만들어냈다.’ 평양의 동문은 바로 이런 한국 건축의 진수를 보여준다.” ◆ Riverside, Pyeng Yang_1925 평양 강변 “대동강변의 이 정자는 약 150년 된 것이라고 하며, 그 주변 환경이 너무 완벽하여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아주 조심스럽게 정자 터로 선택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경치는 너무나 아름다워 때때로 여행객은 기이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키스가 대동강변이라고 적고 있는 것처럼, 이곳은 모란봉, 을밀대, 부벽루가 있는 근처인 듯싶습니다. ◆ Wonsan_1919 원산 “내가 아무리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원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하늘의 별마저 새롭게 보이는 원산 어느 언덕에 올라서서 멀리 초가집 굴뚝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노라면 완전한 평화와 행복을 느낀다.” 명사십리로 유명한 원산. 키스의 그림을 보니 과연 원산이 아름다운 곳임을 알겠습니다. 밤하늘의 별빛과 바다 위 배의 불빛이 기막힙니다 ◆ Korean Domestic Interior 한옥 내부 “비교적 여유 있는 집의 내부 풍경이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는데, 이 집의 가장은 사랑방이 아닌 대청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남녀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지 않으며 부인이 식사를 날라다 준다. 남자들이 기거하는 사랑방은 대문 가까이 있다. 여자들이 기거하는 안채는 보이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의 집은 길가에 붙어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집은 마당이 있고 부유한 집은 안채 앞마당까지 해서 마당이 둘이다. 한국 사람들은 방안에서는 신발을 벗는다. 방바닥은 노란 장판지로 덮여 있는데 항상 반짝반짝 닦아놓고 있다. 사랑방 나무기둥에는 ‘집에 연기가 자욱한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고 써 있는데, 그것은 부엌에서 나는 연기를 가리킨다.” ◆ The Eating House 주막 “맛있는 음식 냄새가 솔솔 밖으로 새어 나온다. 주막은 추운 겨울날 먼 거리를 걸어가거나 무거운 짐을 나르는 시골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있는 곳이다. 이 집을 닮은 초라한 주막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 달을 쳐다보는데 최고로 좋은 집 >” ◆ The Hat Shop 모자 가게 “간판에 ‘높은 모자, 둥근 모자, 리본 달린 것, 세상 모자란 모자는 다 있습니다’라고 써 있다. 이 자그마한 모자 가게의 주인은 덩치가 큰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인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서 키가 큰 친구들까지도 가게 안에 다 들어오게 했다. 그들은 거기서 하루종일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정하게 나눈다. 한국에서 모자는 중요하다. 학자는 특별한 모자, 그러니까 검은 말총으로 된 모자(갓)를 쓰는데,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 총각은 약혼식에서 노란 짚으로 만든 둥그런 모자를 쓴다. 결혼식 날에는 한 사람이 빨간 모자를 쓰고 손에는 백년해로와 신의의 상징인 기러기를 들고 간다. 이런 옛 풍습은 한국에서 차차 없어져 가고 있다.” ◆ The School - Old Style 서당 풍경 “하늘 천, 따 지, 달 월, 사람 인. 후렴처럼 반복하는 소리가 담장 너머로 들려왔다. 여름 해는 따갑게 비치고 있었는데, 서울 성문에서 멀지 않은 그 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었다. 이것은 내가 서당 안을 슬쩍 들여다본 장면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자아이들이 글을 외면서 그 소리에 맞추어 앞뒤로 몸을 흔들어댔다. 나이 많은 훈장은 실내용 모자를 쓰고 앉아서 마치 조각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마음속으로 아름다운 한시를 한 수 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훈장은 조금도 학생들의 공부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반장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긴 대나무 작대기를 들고 감시하고 있다가 학생의 외는 소리가 끊긴다거나 조는 듯한 동작을 보이면 곧바로 등이고 어디고 내려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린 학생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글 읽는 소리가 조금 커졌다.” ◆ Temple Interior 절의 내부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이 사당은 전쟁의 신을 위해서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란색의 작은 지붕 밑에 나무로 깎은 시커먼 조각상은 약 3백여 년 전 임진왜란 때 한국을 지켜주었다고 믿어지는 중국 장군의 영혼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사당은 이상한 모양의 조각상들로 꽉 차 있었고 내부는 어두컴컴하였다. 얇고 가벼운 치마를 입고 땅에 납작 엎드려 염불하는 여인들은 마치 깊고 어두운 숲 속에 떨어진 꽃잎처럼 보였다.“ ※ 여기서 말하는 사당은 지금도 동대문 인근에 있는 관제묘를 말합니다. 동묘라고도 하고 관운장을 모시고 있죠. ◆ White Buddha, Korea_1925 흰 부처 이 그림의 흰 부처는 현재 서울 홍은동 보도각에 있는 백불(白佛)입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A Game of Chess_1936 장기두기 “전형적인 한국 시골의 두 노인이다. 한국에서는 남자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 때로는 길가에 앉아서도 한다. 한국에는 놀이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가 보기엔 여자들에겐 그네뛰기가 유일한 놀이이다. 그들은 우리 스코틀랜드 여자들보다 훨씬 높이 그네를 탄다. 그네 타는 여자들은 자리에 앉아서 타는 것이 아니라 일어서서 탄다. 그네는 대개 소나무에 줄을 맨 것이지만, 때로는 벽돌로 세운 기둥에 매기도 한다. 그네는 이런저런 명절에 타기도 하지만 주로 봄에 타는 듯하다.” ◆ Kite Flying 연날리기 “서울은 연날리기에 최고로 좋은 도시이다. 연 날리는 철이 돌아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온통 형형색색의 연으로 뒤덮인다. 웬만한 가게에서는 각종 크기의 연을 파는데, 값도 싸서 어떤 것은 불과 일전밖에 하지 않는다. 여기에 그려본 것은 전형적인 아이들의 연 날리는 모습이다.” ◆ New Year's Shopping, Seoul_1921 새해 나들이 키스는 자신의 저서 <동양의 창>에 “정월 초하루인 설은 한국 최대의 명절이다. 이 날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일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나들이를 한다”라고 썼습니다. 광화문 해태 상 앞에서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나온 아이들이 풍선을 가지고 놀고 있군요. 옛 우리의 세시풍경을 그린 귀중한 그림입니다. ◆ Young Korea_1920 한국의 어린이들 색동저고리를 입은 여자아이, 두루마기에 예쁜 꽃신을 남자아이들을 나란히 앉혀 놓고 그림을 그렸군요. 키스의 초기작 중 하나인데 이 그림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아이들이 설빔차림을 한 것 같군요. ◆ Two Korean Child_1925 두 명의 한국 아이들 “아이들의 의상은 그 디자인에 있어서 부모나 조부모가 입는 옷과 다를 바가 별로 없으나 색깔이 더 다양하다. 어린 여자아이들은 분홍장미 색깔의 넓은 치마를 발목까지 내려오게 입고, 어린 남자아이들도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다. 조금 큰 남자아이들의 바지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통이 넓고 발목까지 온다. 갓난아기들의 저고리에는 색동 소매가 달려 있다.” ◆ Country Wedding Feast_1921 시골 결혼잔치 한국인의 풍습을 흥미를 가지고 관찰한 키스는 결혼식 장면을 여러 장 그렸습니다. 혹 그보다는 미혼이었기 때문에 결혼식에 더 흥미가 있었을지도 모르죠. 한번은 신부 행렬을 보려고 급히 따라가다가 물에 빠진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그림에는 아이 어른 다 합하면 2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흥겹게 잔치를 치르는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 Korean Bride_1938 한국의 신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보지도 먹지도 못한다. 예전에는 눈에다 한지를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부는 결혼식 날 발이 흙에 닿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가족이 들어다가 자리에 앉힌다. 얼굴에는 하얀 분칠을 하고 뺨 양쪽과 이마에는 빨간 점을 찍었다. 입술에는 연지도 발랐다. 잔치가 벌어져 모든 사람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지만 신부는 자기 앞의 음식을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 때로는 과일즙을 입안에 넣어주기도 하지만 입술연지가 번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루종일 신부는 안방에 앉아서 마치 그림자처럼 눈을 감은 채 아무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디어내야 한다. 신부의 어머니도 손님들 접대하느라고 잔치 음식을 즐길 틈도 없이 지낸다. 반면에 신랑은 온종일 친구들과 즐겁게 먹고 마시며 논다.” '신부가 한국에서 제일 비극적인 존재'라는 키스의 표현이 재미있으면서 격세지감을 들게 합니다. ◆ Wedding Guest_1919 결혼식 하객 결혼식 하객으로 온 이 부인은 머리에 장식이 달린 조바위를 쓰고 단아한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키스의 관찰입니다. "일본 여자들은 두 다리를 붙이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앉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여자들은 가부좌로 앉아서 피로하면 서슴지 않고 수시로 다리를 고쳐 앉는 게 풍습이다. 교회에 나온 한국 여자들을 그리다 보면, 다리를 고쳐 앉을 때마다 치마가 불쑥하게 들어올려졌다 내려앉았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재미있는 광경이다.” ◆ Returning from the Funeral_1922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성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성 밖에 묻는 것이 법이라, 겨울 저녁 어두워진 후에 등불을 켜 든 상여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성문의 현판에 ‘東大門’이라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서울은 아니로군요. 키스가 영국에서 전시회를 할 때 영국 왕실에서 이 그림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 The Widow_1919 과부 "온화하면서도 슬픈 얼굴을 한 이 부인은 한국 북부 출신의 여인이다. 한국에서는 남남북녀라 하여 북쪽의 여자를 더 쳐준다. 모델을 서려고 내 앞에 앉았던 그 당시,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평온하였고 원한에 찬 모습은 아니었다.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 이 과부는 남편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처지가 못 되었다. 외아들은 일제에 끌려갔고 그녀는 언제 그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다. 아들은 삼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애국자였다. 이 그림을 그린 것은 여름이었다. 여자는 전통적이고 폭넓은 크림색 치마를 입었고 그 속에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저고리는 빳빳한 삼베였다. 북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풍습대로 머리에 두건을 두른다. 무척이나 더운 날씨인데도 여자는 그런 두건을 쓰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는 숱이 많고 길었으며 그것을 땋아서 머리에 감아올리고 있었다.“ ◆ Embroidering, Korea_1921 자수놓기 긴 머리에 빨간 댕기를 하고 수를 놓고 있는 처녀. 혼기를 맞아 자신의 혼수 준비를 하는 걸까요. ◆ Woman Sewing 바느질하는 여자 “중류 가정의 한 여자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모습. 그녀의 옆에는 바느질 그릇과 인두가 꽂혀 있는 놋화로가 놓여 있다. 한국 여자들은 세탁과 바느질을 아주 잘해서 아무리 더럽고 거칠었던 옷도 그들의 손을 거치면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깨끗하게 세탁된다.” ◆ A Hamheung Housewife_1921 함흥의 어느 아낙네 “한반도 북쪽에 있는 함흥의 여자들은 서울 여자들보다 키도 크고 자세도 더 꼿꼿하다. 독특한 옷차림으로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다닌다. 큰 두건 같은 머릿수건은 치마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여자를 대낮에 그렸다. 그녀는 땡볕도 개의치 않았을 뿐 아니라 머리에는 빨래를 담은 붉은 함지를 이고 있었는데도 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옥가락지 두 개를 정성스럽게 끼고 있었다.” 이 그림과 아래의 ‘아침 수다’는 같은 소재의 그림입니다. ◆ A Morning Gossip, Hamheung, Korea_1921 아침 수다 "아침에 빨랫감을 이고 씻어야 할 요강을 들고 냇가로 나가던 여자와 다른 한 여자가 길에서 만나 수다를 떨고 있다. 머릿수건을 기술적으로 두르는 것이 풍습이며, 어떤 때는 치마나 아이들 옷으로 머리를 둘러싸기도 한다. 치마는 풍선처럼 넓게 퍼져 있고 저고리는 무척 짧다.“ ◆ From the Land of the Morning Calm_1939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사람 “중하층 계급에 속하는 한국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추운 겨울이라 머리에는 털이 안으로 달린 남바위를 쓰고 그 위에 말총으로 만든 갓을 쓰고 있다. 하얀 무명옷에는 솜을 넣어 방한을 하고 있다.” ◆ The Country Scholar 시골 선비 “이 선비는 원산 사람이다. 그가 입고 있는 전통적인 선비 의상은 800여 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이고 모자도 옛날식이다. 그가 들고 있는 막대기는 끝 부분이 백옥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복장과 잘 어울렸다..선비는 그 부분이 잘 보이도록 막대기를 들고 있었다. 그의 옷고름은 연홍색 비단이고 옷은 엷은 옥색이었는데 까만 단하고 훌륭한 색깔의 조화를 이루었다. 이 나이 많은 한국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그의 표정에서 좋은 가정교육, 자기 절제, 인자한 부드러움 등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의 매너는 은근하면서도 정중했다. 그는 속세의 근심을 떠나 별천지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 Young Man in Red 홍복을 입은 청년 "이 청년은 자기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입궐할 때 입었던 관복을 입고 있다. 붉은색의 겉옷 밑에는 파란색 옷을 입고 있었고, 백색 옥돌이 들어 있는 자그마한 주머니를 달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패옥 소리가 낭랑했다. 거북이 등과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는 꼭 매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허리 위로 둥그렇게 두르도록 되어 있었다. 앞으로 내린 에이프런에는 금으로 된 단추가 두 개 있었는데, 그것은 관직 등급을 보여주는 표시였다. 모자는 말총으로 만들어졌는데 금색 칠을 했고, 신발은 넓적하고 코끝이 뭉특해서 발이 작아 보인다.“ ◆ A Daughter of House of Min_1938 민씨 가문의 규수 “이 처녀는 지체 높은 집안의 규수에게 어울리는 복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암살된 명성황후의 친척이다. 나는 그녀를 고풍스러운 병풍 앞에 세웠고 예쁜 신발을 그리고 싶어서 비록 실내지만 일부러 신발을 신게 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에 외교사절로 파견된 최초이자 최후의 인물이었다. 또 그는 내가 만난 최초의 한국 양반이었다. 그는 하얀색 옷을 입고 있었고 크림색의 얇은 천으로 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그의 하얀 버선은 발에 아주 잘 맞았다. 만약 내가 시인이었더라면 그의 멋진 발을 노래하는 시를 지었으리라! 훗날 나는, 결혼하여 어린 딸을 둔 이 여자를 다시 만났는데, 그 모녀에게서 그 아버지의 우아함이나 온화함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여자는 영어를 잘하고 꽤 똑똑해 보였다. 나는 그녀가 좋은 배필을 만난 듯해 기뻤다.” 처녀의 아버지는 조선 말기 최초의 프랑스 공사였다는 것으로 보아 1900년 파리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특권대사로 파견되었다가 1902년에 주불공사로 임명되어 일본에게 외교권을 박탈당한 1905년까지 공사로 활약한 민영찬으로 추정됩니다. 민영찬은 국권을 빼앗긴 것을 분히 여겨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동생입니다. ◆ The Gong Player_1927 좌고 연주자 이 악기는 조선 말기 화가 혜원 신윤복의 풍속도에도 보이는 좌고(座鼓)로 생각되는데, 좌고는 궁중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북입니다. 보통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으로 연주하거나 춤 반주를 할 때 좌고를 치는데, 앉은 채로 연주할 수 있도록 높이가 낮은 틀에 북을 매달아 놓고 칩니다. 좌고의 북통에는 용을 그리고, 북면에는 태극 무늬를 그려 넣습니다. ◆ The Flute Player_1927 대금 연주자 "이 사람은 과거 국악원 소속이었으나 현재는 조선왕조가 망하여 궁중음악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일본정부가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잇다. 다행히도 나는 국악원 사람을 몇 명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전에 종묘제례 때 보았던 아주 희귀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하였다. 제일 보기 드문 악기는 다듬지 않은 옥같이 보이는 삼각형의 돌을 여러 개 나무틀에 걸어놓은 것이었다. (편경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기술적으로 치면 전 음계의 음정을 낼 수가 있었고 소리가 아주 좋았다. 대개는 피리소리의 효과를 높이는 데 사용하였다. 또 오리 모양으로 만든 나무딱따기도 있었는데, 밝은 색깔의 옷을 입은 20여 명의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돌아가면서 소리를 냈다.(박을 가리킵니다). 북의 종류도 여러 가지여서 각기 다른 소리를 냈는데 언제나 피리소리가 제일 고음이었고 또 제일 아름다웠다. 이 대금 연주자는 연주도 잘하지만 행동도 점잖아서 좋은 가정에서 자란 사람 같았다.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과 마찬가지로 손이 잘생겼으며, 대금을 부는 사람의 섬세한 손놀림이 정말 보기 좋았다.“ ◆ Court Musicians, Korea_1938 궁중악사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후 전통 한국음악의 정수인 궁중음악이 사라져갈 무렵, 키스는 궁중악사들을 애써 찾아 몇 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아마 이 예복을 입은 사람들이 고종과 순종 재위 시에 궁중음악을 연주하던 마지막 궁중악사들로 생각됩니다. 출처
스튜디오 지브리 대박람회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들에게 단비 같은 희소식 하나. 12월 5일부터 내년 3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대박람회 – 나우시카에서 마니까지’가 열린다. 이번 지브리 대박람회는 도쿄, 나가사키 등 자국 내 5개 도시를 제외한 첫 해외 전시로, 1985년 설립 이래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 작품과 관련된 자료를 총망라한다. 24편의 극장 개봉작을 중심으로 홍보 플라이어, 드로잉, 레이아웃 보드를 비롯한 각종 시각물, 캐릭터 상품, 기획서 등 지브리 30년 역사의 아카이브를 찬찬히 뜯어볼 기회. 특별 테마 전시로 기획된 ‘하늘을 나는 기계들’은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특징인 ‘비행선’을 조형물로 제작해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박람회’라는 이름만큼 풍성한 볼거리가 관객을 기다릴 것. 연말연시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면 되겠다. 세종문화회관 공식 웹사이트 전시 정보 기간 │ 2017년 12월 5일 ~ 2018년 3월 2일 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세종이야기) 시간 │ 오전 10시 ~ 오후 8시 (입장 마감 오후 7시) 입장료 │성인 15,000원 / 초,중,고 13,000원 / 유아 10,000원
가파도 마라도 다녀왔어요.
안녕하세요. 제주입도 1418일째 시연언니에요. ^^ 코로나19로 코로나블루에 빠져 있는 대한민국 넘 답답하고 안타까워요. 확실히 제주도 관광객이 많이 줄었어요. 1/10 정도로 줄었다고 할까요? 체감이 그래요. ㅠㅠ 암튼 전 어디도 비행기타고 다니지 않은 지 3개월째라 마스크하고 손소독제 들고 마라도 가파도를 가게 되었어요. 요즘 제주도민만 받는다는 식당도 있고.... 암튼 분위기는 강남모녀 방문 이후 참 흉흉해요. 그래도 막 늘어난 지역감염은 크지 않은 상태라 드라이브쓰루 형태의 외출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전엔 이마트 쓱배송 하루 이틀이면 왔는데 요즘은 5~7일은 걸리는 것 같아요. 암튼 코로나19 이야기로 훅 지나갔네요. 그럼 가파도 마라도 가는 방법과 어떻게 즐길 수 있는지 알려드릴께요. 저는 하루 2군데 다 갔는데요. 빡세 마이 힘들어... ㅎㅎ 배시간이 9시20분 10시 마라도 가파도 각각 조금 달라요. 아마도 배 접안과 나가는 시간이 겹치기면 힘들어서 각각 나가는 것 같아요. 거의 1시간 간격으로 있어요. 오후 16:00 에 들어가면 나오는 배가 없을 수 있어요. 그래서 여유롭게 다니려면 한곳만~! 가시는게 좋겠어요.전 가파도를 먼저가고 마라도를 갔고 10시배로 가파도 갔다 12:20분에 나왔고 13:10분 마라도에 가서 15:10분 배를 타고 나왔어요. 마라도에선 짜장면도 막고 걸어서 정말 힘들게 돌았어요. 마라도 가파도 가는 배 타는 곳 #모슬포운진항 서귀포 최남단로120 예약전화 : 064-794-5490 자~ 간단히 가파도 마라도 비교~! 가파도 이동수단은? 자전거 [대여비 현금5천원] 마라도는?! 고마 걸어야 됩니다. 그래서 빡세~~~~ 가파도는 모슬포 운진항에서 10분 마라도는 모슬포 운진항에서 25분 가파도 둘러보고 사진찍고 식사 시 3시간(개인차有) 마라도 둘러보고 사진찍고 식사 시 2:30 (개인차有) 가파도는 해발 20m 마라도는 해발 39m 가파도는 가오리모양 마라도는 고구마모양 가파도는 면적의 2/3이 청보리밭, 섬 외곽 평평한편 마라도는 면적의 4/3은 허허벌판 잔디밭, 섬 외곽 절벽 가파도에 사람이 더 많이 삼 마라도는 거의 해녀랑 짜장면집이 다 인듯 가파도는 올레길 10-1길이 있음 마라도는 대한민국최남단비가 있음 📌 가파도여행팁~!❤️ 1. 자전거 빌리기 2.가파도입구 지도 숙지하고 올레길 코스가 좋아요. 3.가파도는 짬뽕이 맛있다. 4.가파도둘레길도 가고 중앙 소망전망대 꼭 가세요. 5.넓은 보리밭 배경으로 인생사진 꼭 찍으세요. 이건 4월에 가셔야 가장 멋있어요. 6. 북쪽을 보면 송악산 산방산 한라산을 배경으로 사진 찍을 수 있어요. 7. 남쪽을 보면 마라도가 보여요. 소망전망대에서 마라도 방향을 바라보고 청보리와 함께 사진도 찍어요. 풍력발전기도 찍혀요. 이정표도 깔끔하게 가파도 자전거 대여는 현금으로만 되고 한대에 5천원 가파도는 이렇게 나즈막한 언덕이라 생각하면 되요. 해안 둘레길은 자전거 타기 좋게 포장되어 있어요. 언덕배기를 올라오면 이렇게 청보리밭과 바다를 함께 볼 수 있어요. 바람에 흔들리는 청보리도 영상으로 남겨보세요. 힐링 asmr이 될 수 있어요. ^^ 이건 왜 소리가 안들리지?! ㅠㅠ 암튼요. 오왕 이길은 정말 꿈에 걷는 것 같은 느낌 보리밭 사이로 자전거 탄 풍경도 볼 수 있어요. 마라도 배경 소망전망대 마라도 보이져?! ㅋㅋㅋ 넘.... 흐리지만 난 알아본다는 북쪽 송악산 산방산 한라산 방향 소망전망대 뷰 소망을 써서 달 수 있어요. 저랑 뜻하는 바가 같으신 분이 있어 난 안쓰고 사진으로 공유를 ㅋ 이제 보이죠? 수평선에 최남단 마라도 난 자유인~~~!! 사실은 저것 보가 날씬해요 ㅎㅎㅎㅎㅎㅎㅎ 저날 반팔 입었다가 팔이 홀딱 반쪽만 타버렸어요. ㅠㅠ 열심히 사진 찍는 척 나는 자유인이다~!! 가파도터미널카페 심플하죠? 그냥 노출 콘크리트에여 현대카드에서 프로젝트 일환으로 건설 후 가파도 주민이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네요. 카페에는 가파도 청보리가 들어간 핫도그도 있구요. 가파도 새싹보리로 만든 분말도 팔아요. 기파도의 각 장소의 사인물 들도 세련되어 보이던데 이게 바로 육지의 현대적(?) 트렌드 디자인이 녹아들어 그런거더라구요. 우왕 가파도 시골 스럽고 촌스러울 줄 알았는데 우도보다 훨씬 정돈된 느낌이었어요. 도시의 간판 규제를 했을때의 느낌이랄까여. 암튼 미대 언니이다 보니 이런게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 직업병 ㅋ 최남단 마라도에 가다. 👉🏻마라도 여행tip❤️ 1. 많이 걸을 수 있으니 발이 편한 신발을 신어라. 2.멍때리기 좋은 잔디언덕이 있으니 시간이 된다면 돗자리를 가져가보라 3.짜장면이 맛있을꺼란 기대는 버리고 먹어라. 섭섭할 수도 있으니 시장이 반찬일때 먹어라. 4.포토존은 선착장에서 보이는 빠삐용절벽, 성당(전복형상화), 기원정사 ‘절’, 교회, 마라분교, 최남단비, 드넓은 잔디밭, 가을엔 억새밭, 하늘이 보이는 언덕길, 잔디밭 안에 하늘이 비치는 민물웅덩이(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을텐데 전문가는 아니어서 ^^ 가파도 정보에는 돈물깍 이란게 있더라구요. 돈물은 민물이라고 하더라구요. ) 이곳이 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도 입구에 지도가 있어요. 숙지하시고 이동하시는게 좋아요. 하늘을 담을 수 있는 웅덩이 돈물이 담겨 있죠. 시간이 없어 멋진 사진을 못찍었어요. 다음에 또~! 갈꺼에요. 이번엔 사전 답사의 개념 이렇게 잔디언덕~! 멋져요. 코로나19라 손님이 없어 그런지 너무 텅텅 비었어요. 흰멍뭉이도 햇살 맞으며 낮잠을 자요. 마라도는 이렇게 현무암 절벽들이 곳곳에 보여요. 대한민국 최남단 관음보살 담엔 저 보살의 시선에서 바다를 보고 싶어요 ㅠㅠ 정말 수박겉핥기 ㅠㅠ 평온한 날도 이렇게 파도가 치는데 푹풍우가 몰아치면 정말 무서울 것 같아요 1년뒤에 보내지는 마라도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어 추억을 남길 수도 있어요. 최남단비는 이렇게 바다를 향해 있어요. 마라도의 모양이 지도로 세겨져 있어요. 최남단비에서 항으로 가는 길에 이렇게 언덕이 보여요. 참 마라도는 워낙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다보니 사면 동서남북에 항이 다 있다고해요. ^^ 공부 많이 했죠?! ㅋㅋ 같이 간 친구랑 언니에게 포즈 취하라구 ㅋ 저렇게 찍었어요. 전복모양을 형상화한 귀여운 모양의 성당 그리거 등대도 함께 보여요. 등대 주변에는 세계의 등대도 볼 수 있어요. 여기가 마라분교. 이젠 재학생은 없답니다. 출입을 못하게 해둬서 아쉬웠어요. 짜장면 시키신 분 이란 광고 덕에 마라도에 짜장면가게가 유명해졌다는(?) 암튼 생각보단...ㅎㅎ 개취에 맡길께요. 아 그리고 제주도 전통묘도 볼 수 있었어요. 돌담이 둘러진 묘. 제주도는 사람들이 흔히 다니는 길목에도 무덤이 있는데요.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곳에 무덤을 쓰기도 했다거라구요. 고인의 사후 행복까지도 고려한 제주의 풍습~. 넘 순박한거 같아요. 아 그리고 마라도에서 산 땅콩강정이에요. 여객선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팔더라구요. 마라도 전통 한과라고 해서 샀는데 상상하는 그맛 입니다. ㅎㅎ 아시죠?! 저는 과장하는거 싫다고 마라도 선착장 이날은 바람이 막막 부는 날이 아니어서 북쪽 항에 닿은 듯 해요. ^^ 섬을 돌아보는데 헬기가 막 날아가더라구요. 마라도에선 급한 일이 생긴다면 헬기가 뜨겠죠. 그래서 헬기장도 따로 있었어요. 섬들은 대부분 헬기장은 있죠. 마라도 방문을 기념하여 최남단비를 바라보며 찰칵 이렇게 고즈넉하고 쓸쓸함과 외로움이 공존하는 언덕. 날씨가 좀만 더 밝았다면 ㅠㅠ 돈물~! 언덕 인증샷 기원정사 앞 둘레길 마라도 선창장에서 올라가면 보이는 첫 풍경 아웅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시길~! 다들 건강하시구요. 또 뵙겠습니다. 이 글은 제 개인적인 글이며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2020년 3월30일 방문기 입니다. 도내의 사정 또는 마라도의 사정에 따라 변경이 있을 수도 있는점 참고만 하세요.
원밀리언 리아킴, 포토북 <Reality, No Reality> 공개
그녀의 첫 번째 에디션 '원밀리언 댄스 스튜디오'를 이끄는 세계적 안무가 리아 킴(Lia Kim)이 그녀의 비주얼 감각을 담아낸 포토북 <Reality, No Reality>을 공개했다. 리아 킴이그리는 현실과 상상을 테마로 <Reality>와 <No Reality> 두 카테고리에 나뉘어 전개되는 포토북은 마치 두 권의 책을 보는 듯 서로 다른 무드의 콘텐츠로 구성된 점이 특징. 먼저 <Reality>는 안무가 리아 킴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현실화시킨 영상과 사진들로 구성됐고, <No Reality>는 그녀의 상상 속에만 있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무형의 이미지를 사진작가 조기석과의 협업으로 탄생시켰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 춤을 비롯해 패션, 메이크업, 스타일 등을 매개체로 삼는 그녀. 지금까지 다양한 변신을 해온 그녀지만 새로 공개된 포토북에서는 또 다른 면모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무한한 스펙트럼을 담은 첫 번째 에디션은여기에서 구매 가능하다. 가격은 2만 5천 원. "세상이 원하는 기준이나 사회에서 원하는 무언가에 맞추다 보면 창의력이라는 게 생길 수 없다. 내 안에서 '내가 원하는 게 뭘까?'에 온전히 집중하면 거기서부터 창 의력이 시작된다. 춤을 꼭 프로페셔널하게 춰야 하는 건 아니다. 잘 춘다는 의미는 다양한데, 나는 <즐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춤을 즐기면 그게 잘 추는 게 아닐까." - 리아 킴 - 더 자세한 내용은 <아이즈매거진> 링크에서
사람을 한방향만 좋아한다는게
저는요, 좋아하는 친구가 한명 있었어요. 첫눈에 반했다면 믿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첫눈에 반했어요.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지만, 메시지 보내려고만 하면 심장이 120bpm으로 뛰고, 이유는 모르는데 너무 좋았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대시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은 갑자기 다른친구랑 사귀기 시작했다는거에요. 아 내가 애송이였구나... 하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과거의 저는 포기하지 않았어요. 점점더 내가 애송이가 되어간다는 사실을 모른채 열심히 "그래. 친구로라도 지내보자" 라고 생각하면서 지냈어요. 그러다가는 또 다른날은, 헤어졌다고 인증을 하는겁니다. 메시지 내용을 한치도 빠짐없이 공개핬는데, 어이가 없어서는. "아 요즘 너무 피곤한 관계로 잘 못 지낼것같아. " 라던지, "아 저아이(나요.)는 왜이렇게 성가시게 굴까? 저아이(나요.)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겠네. " 등등 핑계를 대더니 갑자기 헤어졌다는겁니다. 그때라도 알아차렸어어 했어요. 너는 애송이란 말이야 하지만 과거의 나는 또 후회할짓을 하고야 말았어요. 다시 대시하기 시작한거에요. 그때는 그래도 답장이라도 해줬지. 재미있는 예기는 공유라도 해줬지. 그러다 또 제가 선을 넘었어요. 사귀자고 한것이었어요. 차인건지 꼬인건지. 그냥 지금처럼 지내자 라는거에요. 애송이는 그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때처럼 지내기로 마음먹고는, 정신줄을 놓고 언젠가 한분 더 고백했어요. 그때는 정말 이 애송이가 "뭐래냐" 라는 소리를 듣고야 말았죠. 그게 두어달 전까지의 예기에요. 그 커플은 4달이나 갔고요. 처음 좋아한건 1년하고 반 전 예기에요. 지금은 답장도 못받고 있네요. 제가 쓰레기여서 벌받은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