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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아직도 임대하세요? ‘몸만 와!’ 실천한 씨티큐브





“저게 카페야? 회사야?”
얼마 전 드라마를 보던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에 아늑한 조명, 단란한 분위기까지. 마치 카페를 연상시키는 그곳에서 일을 하는 주인공의 모습.
그렇다. 그곳은 요즘 뜨는 ‘공유 경제’의 세계적인 트렌드라 할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 국내에서만 시장 규모가 1조 원에 달하는 ‘공유 오피스’였던 것이다. 공유 오피스란 말 그대로 넓은 면적의 오피스를 다수의 기업이 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쓰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은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국내의 기업 중에서도 조금은 남다른 비전과 특별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씨티큐브’를 소개하려 한다.


장점 극대화, 단점 해소한
스마트한 공간 활용
씨티큐브는 입주 기업의 업무 효율과 집중력이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깔끔하고, 아늑한 공간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되 그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예를 들어 6개의 지점 중 교대점은 지하라는 단점을 극복하고자 공기정화 식물을 키우거나 디퓨저를 통해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였고, 신도림점에는 최대 80석 규모의 이벤트 및 강연 공간을, 근무 공간 이외에도 별도의 스터디룸을 필요로 하는 신촌점과 송파점에는 ‘워크앤스터디존’을 세웠다.
또, 일반적인 비즈니스 센터는 창문 없이 막혀있는 곳이 많은 데 반해 씨티큐브는 답답함이 없는 오픈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입주 기업의 만족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고객’의 입장
 2013년, ‘Good To Great,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비전을 가지고 탄생한 씨티큐브는 공유오피스 업계에 혁명을 일으키고자 포부 가득한 도전장을 던졌다.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한 첫걸음으로 ‘고객’의 입장에 서고자 했다. 
먼저 씨티큐브는 경쟁사 대비 50%의 합리적이고 저렴한 가격을 책정하여, 초기 창업 시 공간 마련에 부담을 겪는 스타트업 및 창업자를 위해 보증금, 관리비, 공과금을 제외한 거품 없는 가격을 내세웠다. 두 번째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전 지점을 역에서 5분 이내 거리에 입점시켰다.
이뿐만이 아니다. 씨티큐브는 입점 기업의 전화 응대, 우편물 관리, 세무기장 및 법인설립 대행, 사업자등록증 주소지 제공 등 기업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서비스를 대행 및 제공하고 있다.
더불어 입점 기업이 서로 힘을 합쳐 더욱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네트워크 모임 및 마케팅 스터디, 스포츠 모임 등을 주도해 기업 간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유연 출퇴근제부터 출산휴가 장려,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다
그렇다면 이러한 합리적인 서비스를 운영하는 씨티큐브는 어떤 업무 문화를 가지고 있을까?
서비스에 대한 자부심과 도전, 열정을 가진 구성원들이 모인 씨티큐브는 그들의 성장 비결이 바로 ‘자유로운 분위기’라고 말한다. 유연 출퇴근제부터 빠른 의사결정과 소통 문화를 가지고 있는 그들은 신입에게도 실무 기회를 많이 주며 구성원 역시 회사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한, 기혼자도 부담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출산휴가를 장려하는 등 더욱 자유롭고 유연한 기업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두가 상생하는
‘공존’ 오피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한다. 사회 역시 그렇다. 각기 다른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일을 하고, 기업을 이룬다.
공유 오피스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고, 성장 가능성 역시 무한하다. 이러한 공유 오피스 안에서 다양한 기업들이 상호작용하고, 서로 시너지를 내며 상생하고 더욱 성장하게 만드는 것. 그 것이 바로 서비스를 통해 혁신을 만들고자 하는 씨티큐브의 가치다.
‘공유 오피스’를 넘어 ‘공존 오피스’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씨티큐브의 행보를 오피스N이 응원하겠다.

공존 오피스 씨티큐브를 더 알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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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도의 동남아시아와는 달리 2010년대의 동남아시아는 상호협력을 추구해 경제발전을 추구하고 있었지. 그런데 그런 흐름을 거부한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의 3대 빈곤국(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 속할정도로 경제가 피페해졌고 군부로서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곤 있었어 또 군부가 내세웠던 소수민족의 독립을 방지해서 사회안정을 추구한다란 대의명분이 설득력을 잃어버렸기도 해 50년가까이 지속된 소수민족 탄압으로 소수민족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어서 딱히 미얀마를 위협하는 요소가 없어졌거든 내부적으로 계속 민주주의를 원하는 국민의 압력과 외부의 국제적 압력을 버티면서까지 굳이 군사정권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한거야 군부가 원했던 건 권력이지 정부가 아니었으니깐 말이야. 그래서 군사정권을 끝내기전에 헌법을 통해 국회의 25%는 군인일 것을 명시하고 자신의 권력이 지속된다는 보장을 만든 다음에야 정상적인 선거를 시행했어 당연히 선거결과는 아웅산수치가 이끄는 민주주의 정당의 집권이었고 군부도 과거와는 달리 선거를 무효화하지않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 왜냐하면 어차피 의회의 25%는 군부가 차지하고 국방부와 내무부장관은 군부가 정하도록 헌법에 적어놨거든 군사독재의 현대화?를 통해 대내외적인 비난을 피하면서도 여전히 핵심권력은 유지할 수 있는거지 물론 아웅산을 중심으로한 여당은 지속적으로 헌법개정을 요구하지만 의회의 25%가 군부인데 통과가 될리가 없지 즉, 군부의 권력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의 개혁만이 아웅산 민간정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는 이야기야.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로힝야에 대한 지나친 탄압이 국제적 관심을 받았고 국제사회의 비난은 아웅산 수치를 향했어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평화의 상징인 아웅산이 어떻게 로힝야에 대한 국가적인 탄압을 방치했느냐, 오히려 주도한거 아니냐?라는 비난이 일었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야. 아웅산은 로힝야에 대한 탄압을 충분히 인지했고 묵인한 사실은 분명하지 하지만 인지한다고 해서 아웅산이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을까? 군대는 전부 군부가 통제하고 군부가 용인했기에 집권한 아웅산이 뭘? 미얀마의 이러한 내부사정을 모르는 외부에서는 아웅산을 비난했고 이로인해 군부는 국제적 비난을 피해갈 수 있었지.  2011년에 군부가 정전협정을 맺은 소수민족을 향해서 군사작전을 개시했을때도 아웅산은 선제공격을 중단하라고 몇번이나 "명령"했어 하지만 군부는 선제공격이 아닌 "예방공격"이라며 공격을 개시했어. 형식적인 대통령과 실권자인 군부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이야 4. 로힝야족, 역사와 종교 그리고 정치의 희생양 로힝야족은 "유엔이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라고 말했다"고 나무위키에 적혀있더라. 뭐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공식지정은 루머인듯 라카인이라는 지역에 로힝야족이 사는데 방글라데시와 국경을 마주해서 사실 이들은 방글라데시(과거 식민지인도)에서 온 민족들이야 불교가 대다수인 미얀마에서 인종, 문화, 언어, 종교적으로 인도에 속한 로힝야는 모든 것이 다른 이방인이야 애초에 영국이 미얀마를 지배할 때 백인의 숫자가 부족하니 인도인(로힝야)를 데려와 중간관리층 혹은 농경지를 개간하는 주민으로 이용한거지 과거 일본이 본토일본인을 조선으로 데려와 지배계층으로 두거나 조선인에게 빼앗은 토지를 경작하게 해주는거처럼 말이지 따라서 로힝야족은 버마족에게 있어 백인보다도 더 미운 존재가 되었지. 그런데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아 그럼 조지러가야지 조선의 많은 일본인들이 항복선언 이후 조리돌림당하고 본토로 귀국했던 것처럼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야. 하지만 로힝야족은 그러지 못했지. 대부분의 로힝야는 돌아가지 못했고 심지어 동화조차 불가능했어 우선 인종적으로 로힝야와 나머지 민족들은 완전히 달라서 구분하기가 쉬웠어. 또 로힝야어와 버마어는 서로 소통이 불가능한 완전히 다른 언어야 또한 역사적으로도 로힝야에 분노했던 미얀마의 대부분 민족들은 로힝야를 국가의 일부로 인정조차 하지 않고 국적을 부여하지 않아 그들의 민족적 모국인 방글라데시는 경제는 붕괴했는데 인구만 1억이 넘다보니 로힝야를 데려올 능력이 없어 따라서 로힝야족은 국적이 없는 무국적자야. 또한 어떤 국가도 그들에게 교육같은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않아 그러다보니 다수민족출신의 스님들과 대중들이 앞장서서 로힝야를 때려잡는 기묘한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거야. 불교가 평화의 종교라는 인식이 있는데 어딜 가도 소수종교는 평화롭고 착해. 한국에서의 이슬람을 보면 엄청 착하고 좋은 종교같지만 이슬람이 세력을 키운 나라에서는 알라께서 피를 원하시지 같은 논리로 불교국가인 미얀마에서는 오히려 불교가 타종교를 떄려잡는 모습이 나오게 되는거야 자, 이런 상황에서 로힝야사태에 대한 비난을 아웅산 수치로 향한다? 수치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야 아버지의 이름인 "아웅산"을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고있는거지 실제로 군부가 허락하기전까지는 영국에서 살거나 가택연금상태에서 아무것도 못했어 물론 아웅산 수치 역시 자기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음은 확실해. 그녀가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노력하는거랑 잘하는거랑은 분명히 다른 거야. 로힝야에 대한 탄압을 아웅산 수치가 막을 능력도 없고, 국민 대다수가 불교도인데 막는 시도라도 한다면 정치적 뒷감당이 되겠어? 아웅산 수치는 민주화의 상징이지만 그렇다고 전지전능한 인물은 아니야.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시간을 들여 점진적으로 군부의 영향력을 줄이면서도 대중의 지지를 잃지 않는거야 하지만 언젠가는 군부가 그어놓은 선에 도달할거고 그때가 되면 다시 정치적 변동을 겪을거야 5. 2021년의 군부쿠데타와 몇가지 예측 군부는 다시금 쿠데타를 실행했고 아웅산은 권력을 잃었지. 하지만 군부로서도 아웅산을 죽일 순 없고 연금이 한계일꺼야 21년의 쿠데타는 아직 진행중이고 알려진 것이 별로 없기에 우리로서는 그저 추측을 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확실한 것은 있지 우선, 미얀마의 군부문제는 외부세력에 의해 해결될 가능성은 적어. 중국이나 미국이 엄청나게 중요한 플레이어가 아니란 말이야 물론 중국과 미국은 미얀마를 놓고 경쟁을 벌이지만 어디까지나 조연에 불과하다는 말이지 두 번째로 한국의 6월항쟁과 같이 미얀마 국민들의 저항이 없다면 군부는 계속해서 권력을 유지할거야 현재 미얀마에서 시민들의 저항이 일어나고는 있지만 정말 강력한 수준의 저항이 있지 않다면 "천안문"할 뿐이야 세 번째로는 군부가 권력을 계속 유지하든, 혹은 군부가 몰락하고 시민들이 승리해서 아웅산이 실권을 가지든  쿠데타의 결과와 무관하게 로힝야에 대한 탄압은 계속될거야. 어느쪽이 승리하든 로힝야는 계속해서 희생양으로 존재하겠지 순전히 개인적인 예측이지만, 미얀마의 군부쿠데타는 성공으로 끝날거야 시민들의 저항은 거세겠지만 약간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그저 미얀마의 민주화 역사에 한 줄이 추가되겠지 또 시간이 지나서 민주화 열기가 가라앉으면 다시금 아웅산 혹은 대체인물을 찾아 형식적인 권력 이양을 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피하고자 하겠지 군부는 쿠데타를 통해 민간정권에게, "선을 넘지 마라. 실권은 군부가 가지고 있으며, 군부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의 개혁만을 허락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해. 따라서 향후 복권될 아웅산(혹은 대체인물)은 어디까지나 민주화의 상징으로서 무력한 모습만을 보일 가능성이 커 그리고 어떤 예측 시나리오에서도 로힝야에게 우호적인 미래는 보이지 않아. 이런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미얀마는 베트남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없어 개인적으로는 미얀마 대중이 군부를 몰아내고 아웅산을 중심으로 진정한 민주국가가 되기를 희망해 하지만 민주화에는 대가가 필요하고, 군부가 계속 권력을 유지하는게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인건 변하지 않아 6. 마치며 순전히 개인적인 이야기니깐 여기서부턴 안보고 바로 요약을 보는 것도 좋아 이 시점에서 초반에 나오는 목가적인 사진을 다시 보고와주면 좋겠어 미얀마의 상황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고있다면 사진들이 마냥 좋아보이지는 않을거야 그리고 그게 내가 잃어버린 즐거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 내가 공부했던 국제정치학은 사람을 염세주의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 국제정치학에서 자주 나오는 단어는 전쟁, 학살, 생존, 현실같은 거였고 평화, 협력, 공존같은 단어는 뜬구름잡는 소리가 되기 딱 좋았으니깐 누군가 조지아로 여행가서 와인마신다고하면 와인보다는 그루지아전쟁과 남오세티야부터 생각났고 학부시절 좋아했던 여자애랑 밥먹을때 tv에서 남북한 정상들끼리 악수하는 것을 보면서도 그녀는 감격했지만 나로서는 시큰둥하기만 했지 뭐 그렇다고 때려칠 생각은 없지만서도 말이지 아 그리고 댓글이나 추천 눌러줘요.. 읽판글쟁이는 그것만 보고 글쓰는거야.. 3줄요약 1. 미얀마의 군부는 실질적으로 한번도 권력을 놓은 적이 없다 2. 아웅산 수치는 어디까지나 민주화의 상징으로서 존재하지 실권을 가지지 못했다 3. 군사쿠데타는 성공할 것이며 미얀마는 민주화의 기나긴 꿈을 꿀 것이다 출처 - 협상의 전략(김연철)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박지성
나를 때린 수많은 선배들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얻어맞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선배의 몽둥이 세례를 견디어야 한다는 것,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폭력을 묵묵히 참아내야 하는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다. 잘못해서 맞는 것이라면 100대라도 기분 좋게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저 선배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이 선배가 감독한테 야단맞았기 떄문에 밤마다 몽둥이 찜질을 당해야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었다. 학창시절 셀 수 없을 정도로 선배들에게 두드려 맞으면서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후배들을 때리지 않겠다"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최고참 선배가 되었을때도 나는 후배들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후배들에게 진정 권위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기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에게는 자연스럽게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동안 내가 뛰어난 선배들을 직접 겪으며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어렸을적 어머니 심부름으러 오천원짜리 지폐를 들고 밖에 나섰다 잃어버렸던 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맞았습니다. 고작 한 대 맞은 것이라 그리 아프지 않았는데도 어머니는 그날 이후 며칠간 내게 무척 미안해했습니다. 축구부 합숙을 시작하면서 정말 정기적으로 매일 구타를 당하던 나를 보셨다면 아마도 까무라치셨겠죠. 박지성 어머니가 박지성에게 보낸 편지中 학창시절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맞고 들어와 혹시나 엄마 눈에 눈물이 맺힐까봐 친구하고 부딫혀서 그렇게 되었다며 겸연쩍게 씩 웃던 속 깊은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아버지 자서전 中 지성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대 그 중학교 축구부에서 며칠 훈련에 참석했다가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분명 학교에서 무슨일이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저기 멍자국이 많아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신경쓰지 말라고만 했다. 나중에서야 이유를 말하길 "아빠, 내가 단체 훈련 끝나고 따로 개인 훈련을 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이 왜 너만 따로 훈련을 하느냐, 다른 선수들은 쉬고 있는데, 왜 유독 너만 튀는 행동을 하느냐면서 때리더라고요" 그후 박지성은 원래 가려던 중학교를 안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중학교로감 아버지 자서전 中 "아빠, 전 절대 수원공고엔 가지 않을거에요. 3년 동안 화성에서 생활 하면서 다시는 수원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지금 수원공고에는 절 괴롭혔던 사람들이 모두 뛰고 있단 말이에요" 수원공고 1학년 축구부 동기들도 지성이를 싫어했으니, 지성이의 마음고생이 어떠했으리란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수원공고에 다닐 당시 선배의 구타에 못이겨 몇몇 선수들끼리 팀에서 도망을 치기로 계획을 짰다. 당연히 박지성도 그 멤버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중 디데이 며칠을 앞두고 훈련 후 선배의 구타에 박지성의 팔이 부러졌다. 어쩔 수 없이 박지성은 합숙소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부상으로 인해 축구부 숙소 이탈 약속을 지킬수 없게 되었다. 수원공고 시절 지성이가 훈련을 마치고 집에왔는데, 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방문을 열어봤더나 인기척 소리에 후다닥 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는 지성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그래? 어디 아픈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냥 좀 힘들어서.. 별일 아니에요" 아무리봐도 이상하다 싶어 이불을 들쳤더니 세상에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부분에 뻘겋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지성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확인하자, 온통 씨뻘건 멍투성이였다. 운동하는 선수들이라면 훈련 외에 구타와 체벌은 덤으로 따라다니는 부분이라 나 역시 알면서도 웬만해선 눈감고 못 본척 넘기기 일수였다. 그러나 그때 내가 직접 목격한 모습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당장 학교로 달려가서 지성이를 때린 사람을 붙잡고 마구 혼을 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부터일까, 지성이가 한국에서 축구를 했다간 선배들 등쌀에, 또한 줄서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사심에 의해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가끔 지성이는 이런말을 한다 "만약 내가 맞지 않고 축구를 배웠다면 지금 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박지성 축구센터를 세운 이유도 이때문이다. 더이상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축구를 배우기 보다는 더 나은 환경속에서 축구를 자유로이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박지성 축구센터를 통해 어린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을 차고 달리면서 희망도 함께 꿈꾸길 바란다. 차범근이 박지성 국가대표 은퇴 발표를 하고 난뒤 쓴글.. "지성이가 은퇴를 합니다. 아니 한다고 합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릎에 물이 많이 차는 모양입니다. 무릎을 너무 많이 쓴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것도 무리하게 어려서 부터.. 지난핸가. 지성이가 어딘가에서 스피치를 하면서 우리나라 처럼 맞으면서 축구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유독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 하던 최고의  선수를 30살에 은퇴시키는 안타까움 앞에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오유 유소년 대회도 열고 자선경기도 열어서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하는 애들한테 다 기부하던데 자기가 맞으면서 축구를 했던 시절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런지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처럼 축구를 안 하길 바라는 마음이 엄청 큰거 같습니다.. 예체능계의 똥군기는 진짜 언제쯤 없어질까요
3M 코맨드로 못질 없이 자취방 꾸미기
자취방을 계약할 때 집 주인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말. “못질은 절대 안돼!” 못질 없이 가뜩이나 좁은 방을 꾸미는 건 쉽지 않다. 저렴한 제품들은 접착력이 약하고, 잘 붙었다 싶으면 지저분한 흔적이 남는다. 그럴 때 필요한 게 3M 코맨드 제품이다. 접착력이 강하고 흔적도 남지 않아 공간 활용에 제격이다. 집 주인의 눈을 피해 마음껏 ‘나만의 방’을 꾸며 보시길. 1. 원룸에 액자는 사치? 많은 자취생들이 거울의 필요성을 간과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에게 거울은 필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머리 모양이 어떤지, 얼굴 상태가 어떤지 거울이 알려주지 않으면 본인의 처참한 상태를 인지하지 못한다. 제 몸도 돌보지 않는 사람에게 방정리가 가능할 리 없다. 사진을 넣을 수 있는 액자 역시 자취생에겐 탐나는 아이템이다. 감성 돋는 사진 한 장으로 삭막한 자취방 분위기를 손쉽게 바꿀 수 있으니까. 그러나 거울과 액자에는 리스크가 있다. 바닥에 떨어져 유리가 깨질 경우 치우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최소 며칠간은 유리조각이 발바닥에 박힐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려야 한다. 못질 없이는 좀처럼 해법이 안 나오는 상황. 3M 코맨드 액자부착테이프는 타 제품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접착력으로 액자와 거울을 지탱해낸다. 떼어낼 때도 흔적이 남지 않아 계약이 끝나도 집 주인의 잔소리를 피해 유유히 떠날 수 있다. 2. 걸레봉은 벽에 걸래 좁은 방일수록 공간 활용을 잘 해야 한다. 테트리스하듯 요리조리 돌려가며 수납해야 같은 크기의 방이라도 더 넓게 보인다. 테트리스와 방 정리의 차이는 ‘작대기’에 있다. 게임할 땐 유용했는데 자취방에서는 어디 둬도 걸리적거리는 애물단지다. 방 안의 작대기로 대표적인 것들이 빗자루, 쓰레받기, 걸레봉 등 청소도구다. 청소할 때 빼곤 방 정리에 도움이 안 된다. 딱히 넣어둘 만한 공간도 없고, 그냥 벽에 세워뒀다가는 금방 기울어져 방 바닥에 어지럽게 굴러다니기 일쑤다. 처치곤란 작대기를 제어할 만한 도구는 3M 코맨드 막대걸레 훅이다. 몸통을 벽에 붙인 뒤 작대기를 홈에 고정 시키면 끝! 일렬로 벽에 딱 붙어 있으니 공간 활용도는 100%고, 못질도 필요 없다. 3. 꼬인 전선 이상 없다! 자취방에 가전제품이 많지는 않다. 컴퓨터, 냉장고, 드라이기 정도? 기껏해야 서너 개다. 하나에 2m도 채 안 되는 전선이 방을 어지럽혀봤자 얼마나 되겠어, 싶다. 그런데 일이 꼬이려면 이 몇 개 안 되는 전선들도 배배 꼬여 사람을 괴롭힌다. 뿐만 아니라 전선이 있는 곳은 걸레질을 하기가 쉽지 않아 특별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먼지가 쌓인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화재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3M 코맨드 투명 전선용 클립 하나면 복잡한 전선 정리가 가능하다. 아크릴, 유리, 플라스틱 등 다양한 표면에 강력하게 달라붙기 때문에 방 구조가 어떻든 사용할 수 있다. 못처럼 구멍을 남기지도, 다른 접착 테이프처럼 지저분한 흔적을 남기지도 않기 때문에 가전제품들의 위치를 옮길 때 뗐다가 다시 붙일 수도 있다. 4. 아직 잡동사니 속에서 사니? 옷장에 옷 거는 게 습관이 안 되어 있으면, 자주 입는 외투는 의자에 걸치게 된다. 한 벌이 두 벌이 되고, 두 벌이 여러 벌이 되면 의자 등 받침대 에 옷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벽에 다용도 옷걸이를 설치할 수 있으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될 텐데, 못질을 할 수 없으니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모자, 가방도 마땅히 둘 곳이 없어 의자 위에, 의자 밑에 놓다 보면 가뜩이나 좁은 방에 발 디딜 곳이 없어 진다. 망치와 못을 들고 와서 조심 조심 큰 소리 안 나게 못을 박으려 해도 어떻게 알았는지 그 소리를 듣고 집 주인이 올라와 문을 두드린다. 3M 코맨드 디자이너 훅은 못질 없이 외투, 모자, 가방 등을 벽에 걸 수 있는 제품이다. 벗을 때마다 옷장에 걸기는 번거롭고, 의자 위에 걸쳐 놓기는 지저분한 외투는 이제 디자이너 훅의 차지다. 모자든 가방이든 벨트든 구석에 방치해 뒀다가 잃어버렸다고 자책하지 말고, 디자이너 훅에 맡기자. 5. 욕실은 가장 멋스러워야 한다 가장 깨끗해야 할 공간이면서도 가장 더러워지기 쉬운 공간, 바로 욕실이다. 처음 이사했을 때만 해도 하얗게 빛나지만 얼마 못 가 머리카락과 물때 가 화장실을 점령한다. 깔끔했던 세면대 위에는 비누, 샴푸, 린스, 클렌징 폼, 면도기, 쉐이빙 폼, 칫솔, 치약 등이 어지럽게 뒤섞인다. 정리를 미루다 보면 그 시간만큼 더 쌓인 먼지와 물때 때문에 결국은 찝찝한 마음으로 쓰레기통에 죄다 버린다. 위생과 멋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3M 코맨드 메탈 다용도 수납함을 장만하자. 특허 받은 방수 테이프가 사용되어, 물기가 많아 미끄러운 욕실 벽에도 탄탄하게 달라붙는다. 물때도 잘 끼지 않고 세련된 느낌의 메탈 소재로 되어 있어 저렴하게나마 호텔 욕실 분위기를 낼 수 있다. 나만의 깨끗한 욕실을 앞으로도 쭉 유지하고 싶다면, 당장 수납함부터 바꾸자. 6. 잃어버린 메모지를 찾아서 토마스 에디슨, 버락 오바마 등 성공한 사람들에 게는 공통점이 있다. 종이와 펜을 들고 다니며 틈만 나면 메모하고, 그것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수시로 체크한다. 그러니 이제부터 방 안에서라도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대부분 작심삼일에 그친다. 기껏 포스트잇을 사들여 봤자 그걸 어디 뒀는지 기억을 못하니 금방 잃어 버린다. 메모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할 수는 있지만 메모할 때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면 게임이다, SNS다, 웹 서핑이다 해서 정신을 빼앗기고, 결국 메모해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 3M 코맨드 투명 메모 클립을 사용하면 잃어버리기 쉬운 메모지를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 냉장고나 책상 위쪽에 메모 클립을 붙이고 메모지를 꽂아 두면 끝! 잊지 말자.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최대한 빨리 기록하는 것이다. Illustrator 남미가 3M 코맨드 ™ 홈페이지 consumercare.3m.co.kr/command.do 대학내일 기명균 에디터 kikiki@univ.me [대학내일] 20대 라이프 가이드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