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ene134
100+ Views

180114/피로사회

같은 것에 의존하여 사는 자는 같은 것으로 인해 죽는다. 보드리야르는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를 지적하기도 한다. 정보 시스템,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생산 시스템 모두 비만 상태라는 것이다. 17p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21p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28p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다 효율적이다. 29p
우리 문명은 평온의 결핍으로 인해 새로운 야만 상태로 치닫고 있다. 활동하는 자, 그러니까 부산한 자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은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35p
개인의 삶이 근대에 와서 “인류 전체를 지배하는 삶의 흐름 속에 완전히 잠겨버렸”으며 아직 남아 있는 능동적인 개인적 결단의 가능성은 오직 더 잘 “기능”할 수 있도록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39p
순수한 활동성은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연장할 뿐이다. 진정 다른 것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려면 중단의 부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행동의 주체는 오직 잠시 멈춘다는 부정적 계기를 매개로 해서만 단순한 활동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우연의 공간 전체를 가로질러 볼 수 있다. 머뭇거림은 긍정적 태도는 아니지만, 행동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49p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부정적 힘 없이 오직 무언가를 지각할 수 있는 긍정적 힘만 있다면 우리의 지각은 밀려드는 모든 자극과 충돌해 무기력하게 내맡겨진 처지가 될 것이고, 거기서 어떤 “정신성”도 생겨날 수 없을 것이다. 53p
한트케의 피로는 자아 피로, 즉 탈진한 자아의 피로가 아니다. 한트케는 오히려 “우리-피로”라고 말한다. 이때 나는 너에게 지치는 게 아니라, 한트케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너를 향해 지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내 기억으로는 늘 밖에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앉아 있었고 말을 하기도 하고 침묵을 지키기도 하면서 공동의 피로를 즐겼다. [......] 피로의 구름이, 에테르 같은 피로가 당시 우리를 하나로 엮어주고 있었다.” 71p
반면 카프카는 치유적인 피로, 상처를 아물게 하는 피로를 상상한다. “신들은 지쳤고 독수리도 지쳤으며 상처도 지쳐서 저절로 아물었다.” 치유적 피로는 스스로에게 곤욕을 당하는 자아 피로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자아 피로는 자아의 잉여와 반복에서 비롯되는 피로다. 하지만 치유적 피로는 이와는 다른 것이다. 그러한 피로 속에서 자아는 세계를 믿고 거기에 자기를 맡긴다. 그것은 “줄어든 자아의 늘어남”으로서의 피로, 건강하고 “세상을 신뢰하는 피로”이다. 반면 자아 피로는 고독한 피로, 세계가 없는, 세계가 부족한, 세계를 지워버리는, 개개인을 고립시키는 피로이며, 나르시시즘적 자기 관계의 대가로 타자와의 모든 관계를 파괴해버리는 피로다. 82p
오늘날의 정신 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한다. 92p
폭력은 분쟁이나 갈등의 부정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동의의 긍정성도 폭력의 원천이 된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본의 전일적 지배는 현재로서는 합의적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101p
사회가 원자화되고 사회성이 마모되어감에 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존해야 할 것은 오직 자아의 몸밖에 없다. 이상적 가치의 상실 이후에 남은 것은 자아의 전시가치와 더불어 건강가치뿐이다. 벌거벗은 생명은 모든 목적론,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모든 목표 의식을 지워버린다. 건강은 자기 관계적으로 되며 목적 없는 공허한 합목적성으로 전락한다. 113p

휴대전화 없이 외출하는 바람에 '어처구니없는 맷돌 상태'를 경험했다.
약속 시각까지 카페에서 죽칠 요량으로 급히 산 책인데
읽다 급히 형광펜까지 사러 나갈 정도로 감화됐네.
오늘은 맘 편히 재독하련다.
Comment
Suggested
Rec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