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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혜복소의(禍兮福所依)

화혜복소의 禍兮福所依
禍 (재앙 화)
兮(어조사 혜)
福(복 복) 所(바 소)
依(의지할 의)

[불행은 복이 의지해 성장하는 곳이다]

삶이란 고귀하다. 인생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식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결단코. 특히 생명은 신의 선물이요, 부모와 형제자매의 사랑, 친지의 애틋한 정이 깃든 결실체이기에 소중한 것이다.

물론 인생행로에 어찌 어려움이 없겠는가. 하지만 내일은 좀 더 평탄한 길을 걸을 수 있다. 희망이다. 그래서 사람의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내일 아침의 일을 저녁에 알 수 없고, 저녁의 일을 오후 참에도 알 수 없다(明朝之事 薄暮 可必 薄暮之事 哺時可必)”는 송대 저작 경행록(景行錄)의 가르침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 삶은 새옹지마(塞翁之馬)다. 인생길에 햇볕 드는 곳과 그늘은 쉴 새 없이 바뀌는 법이다. 그게 세상이치다. 노자 도덕경은 잘 말해주고 있다. “불행은 복이 의지해 성장하는 곳이고 복은 재앙이 숨어있는 곳이다. 결합은 헤어짐의 시작이고 즐거움은 근심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禍兮福所依 福兮禍所伏 合者之始 兮憂所伏).”

만사 잘 풀린다고 마냥 즐거워할 것도 아니고, 역경에 처했다고 낙담할 일도 아니다. 세상사 일희일비는 금물이다. 열심히 했지만 주변 환경이, 또는 때가 맞지 않아서 일시적 고난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귀한 지혜를 얻는 기회일 수 있다. 그러다 시기가 맞으면 ‘성공’도 하는 게 아닌가. 이른바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지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인 셈이다. ‘물’만 제대로 만나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음이다. “얕은 개울에서 큰 고기는 제 몸을 꼼짝 못하지만 미꾸라지 같은 작은 물고기는 맘대로 활개친다(夫尋常之溝 巨魚无所還其體而??爲之制)”는 장자의 우화는 시사하는 바 크다.

제공 : 황종택/녹명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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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에게 보내는 편지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언젠가 우리가 늙어 몸이 허약해져 병에 걸리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우리 곁에서 함께 지켜봐 줬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늙어서 음식을 흘리면서 먹거나 옷을 더럽히고 옷도 잘 입지 못하게 되면 네가 어렸을 적 우리가 먹이고 입혔던 그 시간을 떠올리면서 미안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참고 받아다오. 우리가 늙어서 말을 할 때 했던 말을 하고 또 하더라도 끝까지 들어주면 좋겠구나.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고 듣고 싶어 했던 이야기를 네가 잠이 들 때까지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면서 들려주지 않았니? 훗날에 혹시 우리가 목욕하는 것을 싫어하면 우리를 너무 부끄럽게 하거나 나무라지는 말아다오. 수없이 핑계를 대면서 목욕을 하지 않으려고 도망치던 너의 옛 시절의 모습을 너도 기억했으면 좋겠구나. 우리가 늙어서 새로 나온 기술을 모르고 점점 기억력이 약해진 우리가 무언가를 자주 잊어버리거나 말이 막혀 대화가 잘 안 될 때면 기억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좀 내어주지 않겠니? 그래도 혹시 우리가 기억을 못 해내더라도 너무 염려하지는 말아다오. 왜냐하면, 그때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너와의 대화가 아니라 우리가 너와 함께 있다는 것이고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네가 있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늙어서 다리가 힘이 없고 쇠약하여 우리가 잘 걷지 못하게 되거든 지팡이를 짚지 않고도 걷는 것이 위험하지 않게 도와다오. 네가 뒤뚱거리며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 우리가 네게 한 것처럼 네 손을 우리에게 잠시 빌려다오.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 우리에게 너무 화내지 말아 다오. 너도 언젠가 우리를 이해하게 되는 시기가 오게 될 테니 말이다. 비록 우리가 너희들을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어도 우리는 부모로서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과 부모로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삶을 너에게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언젠가는 너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한다... 내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너를 사랑하고 너의 모든 것을 사랑한단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녀들이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그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의지해야 하는 힘없는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님의 든든한 그늘이 되어줄 차례입니다. 그분들이 항상 그랬듯,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도 마땅히 모든 것을 감싸줘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부모가 사랑해 주면 기뻐하여 잊지 말고, 부모가 미워하시더라도 송구스러이 생각하여 원망하지 않고, 부모에게 잘못이 있거든 부드러이 말씀드리고 거역하지 말아야 한다. – 증자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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