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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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골든벨>에 참가했던 연예인들

한가인


문근영


윤시윤


강지영


정소민


박하선



+참고로 한가인은 골블벨 방송 이후
배화여고 전화통이 마비됐다고 합니다ㅋㅋㅋ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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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영, 강지영 빼고 다 데뷔전인 것 같네요?!
한가인은 저 얼굴로 공부도 잘하고...ㅠㅠ
@geon707 그런것같아요!
연정후니ᆢ이쉑히가ᆢᆢᆢ
한가인 컨닝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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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The Throne)(2015)
대놓고 표현하진 못했으나 자식에게 잘해주고 싶었던 아버지, 따뜻한 눈길 한 번이라도 원했던 아들의 엇갈림 한국영화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이준익 감독이 5년만에 사극영화를 대중 앞에 선보였다. 그간 이준익 감독의 대표적인 사극영화를 꼽자면 단연 "첫 사극 천만영화" 타이틀을 달성하면서 영화배우 이준기를 스타덤에 올린 <왕의 남자>가 있다. 하지만 <왕의 남자>와 <라디오 스타> 이후에 이준익표 핸드메이드들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대중들 속에서 묻혀져 갔다. 사극 영화였던 <황산벌>과 <왕의 남자>는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지만, 그 이후에 개봉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이나 <평양성> 은 잘 모른다. 2013년 영화 <소원>을 통해 청룡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거머쥐면서 재기하는 데 성공하였지만, 은근히 이준익표 사극영화를 갈망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와중에 이준익 감독이 송광호와 유아인을 앞세운 <사도>의 메가폰을 잡았다는 소식이 전해져오면서 관객들의 기대를 높혔고, 올 가을에 마침내 개봉했다. 사실 '사도세자' 와 '영조' 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가장 핫이슈가 되고 있는 역사 기록이자, 많은 이들의 논쟁에 불을 지피고 있다. 영조가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는 처벌을 내렸고, 뒤주 속에 갇힌 사도세자는 일주일 뒤에 그 안에서 숨을 거두는 비극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이외에 조선왕조의 두 인물이 집중조명받는 또다른 이유는 영조의 다음 왕위를 계승한 인물이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성왕으로 불린 정조였던 점이다. 조선 전기의 세종대왕과 더불어 조선의 성왕으로 칭송받던 정조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였고, 정조의 업적과 그를 죽이려 들었던 세력들의 근간이었다. 실제로 정조의 업적 재조명하기 위해 이를 소재로 다룬 <제국의 아침> 이라던지 <역린>, <이산> 의 파급력만 보더라도 이 영화 또한 관객들의 관심을 유발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시 역사가 어떠했고 당시 인물은 어떠했다라는 평가는 따로 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관상>처럼 이미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다뤘고, 줄거리는 언급할 필요 없이 실록이나 이 외 당시 사건을 다룬 서적에서도 충분히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조' 와 '사도세자' 의 관계 신분을 떠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춰 언급하고자 한다. 젊을 적에 병으로 세상을 달리한 자신의 아들을 먼저 땅에 묻어야만 했던 슬픔을 마음에 담아두었던 영조, 나이 마흔을 넘기고 나서야 자신이 그토록 바래왔으며, 후위를 물려줄 아들이 태어났다. 바로 장헌세자이자 훗날의 사도세자였다. 얼마나 기뻐했으면, 아버지인 영조는 늦둥이 아들이 읽을 책을 손수 집필하는 열의를 보였고, 아들의 나이가 겨우 3살일 때 세자에 책봉시켰다. 완전히 드러내진 않았지만, 벌써부터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애정이 남달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세자의 머리가 커지면서 아버지의 기대와는 조금씩 다르게 흘러갔다. 영조는 공부를 열심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길 원했지만, 세자는 놀이와 그림을 좋아했다. 마치 이러한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부자지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고, 대부분의 자식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시각이 비슷했던 것 같다. 영조는 세자가 자신의 기대에 100% 부응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믿었다. 자신의 아들이 올바른 성군이 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아들 장헌세자도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고, 어떻게 해서든 영조로부터 관심을 끌어 자신을 이뻐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규율에 엄격했던 아버지는 자신과 세자를 보는 눈이 많다는 걸 언제나 알고 있기에, 의도치않게 따뜻한 한 마디보다 냉혹한 한 마디가 먼저 나가곤 했다. 이러한 아버지에 대하여 아들은 서운함과 섭섭함을 느꼈고, 자신의 할머니(인원왕후)와 어머니들(정성왕후, 소유영빈)의 다정함에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고, 아버지로부터 서서히 멀어져가 겁내거나 피하기 시작했다. '왜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는 나에게 엄하게만 대하는 걸까?' 하는 속상함을 가슴 속에 지니면서. 세자가 성인이 될 무렵, 영조는 그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면서 사실상 왕위계승준비에 들어갔고, 자신은 뒤에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주변환경이 영조와 장헌세자를 가만히 두질 않았다. 신하들간 당파 대립은 여전히 지속했으며, 자신들의 세력을 잃지 않으려고 부자관계를 갈라놓기 시작했다. 이 부분이 바로 영조가 종묘를 돌면서 세자에게 "왕에게 있어서 자식은 웬수가 되기도 한다" 라는 말을 꺼낸 이유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자 사이에 놓여있는 장애물의 숫자는 많아지고, 자연스레 거리가 멀어지면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증가하게 되었다. 아버지인 임금은 세자인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부족하고 한심하게 보기 시작했고, 세자는 피를 나눈 가족에게도 모질게 대하는 아버지가 미웠고 싫었다. 한 번 틀어져버린 이 부자의 관계는 겉잡을 수 없이 뒤틀렸고, 결국의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가며 둘 중 하나가 쓰러져야만 하는 사태까지 가고야 말았고, 생사의 갈림길어서야 비로소 멀리 돌아온 임금과 세자, 아니 아버지와 아들은 조용히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었다. 임금은 아들인 세자를 향한 애정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이 아니었고, 완전히 놓은 상태가 아니었기에 아들을 역적으로 만들어 내치지 않았으며, 뒤주 사건으로 가족 간의 문제로 해결하려 했다. 그리고 먼저 간 아들의 호를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로 명명하면서 그의 지위를 복권시켰다. 이를 보면 한 나라를 통치하는 군주의 위엄은 상당히 거대했고 감히 우러러 볼 수 없었지만, 위엄은 아들을 향한 애정에 비해 한없이 무기력했다. 군주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억눌려있던 세자는 그저 부모 앞에서 재롱피우고, 칭찬받고 싶었고, 따뜻한 눈길 받길 원했으나 왕조 앞에 단절되었다. 이 멀리 가버린 두 사람을 이어준 유일한 연결고리가 있었으니, 바로 세손이었다. 세손은 어릴 적부터 영특하고 효심이 깊었던 지라, 조부인 영조와 친부모인 장헌세자-혜경궁 홍씨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어린 세손의 눈에 보였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틀어지고 어긋나버린 관계를 어떻게 해서든 회복하고 싶어했을 것이다. 어느날 밤, 할아버지와 독대하던 세손은 "사람이 있고 예법이 있는 것이지, 어떻게 예법 위에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까? 공자도 그랬습니다. 사람의 말단을 보지 말고 마음을 보라고. 저는 그 날 아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라는 말을 남기면서 얇으면서도 두터운 창호지 하나를 두고 대치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여놓았다. 얼핏보면 '사도세자' 와 '영조' 라는 두 역사적 인물을 내세우면서 기존 역사를 다룬 다른 영화들처럼 역사의 재구성 혹은 재해석을 유도한 것처럼 보였겠지만, 역사적 인물을 이용하여 가족간의 관계 혹은 애정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게 이준익 감독의 또다른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송광호와 유아인은 이 영화에서 역사적 인물을 연기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을 열연한 것이다. 후반부를 치닫을 수록, 코 끝을 찡하게 만드는 것 또한 우리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부모와의 관계, 혹은 자녀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라는 게 아닐까 싶다. 괜히 오늘따라 등이 굽은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각나게 만들었다. 원문 : http://syrano63.blog.me/220491342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