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oki999
5,000+ Views

내가 커갈수록
녀석도 커가는 것 같습니다 .
잊었다 싶으면
짠하고 나타나
심란하게 만듭니다.
평생 따라다닐 모양입니다.
밉지만 친구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녀석은 고민입니다.

Comment
Suggested
Recent
또 안나타나면 궁금합니다
Cards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겉모습보다는 내실을 다지자
갑자기 발전한 한 산골 마을이 혼란에 빠졌습니다. 갑작스럽게 주어진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뭔지도 모르는 물건들을 하나둘 사기 시작했습니다. 세탁기를 사고, 오디오를 샀습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사고, 자동차를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의 한 사람은 세탁기, 오디오, 냉장고, 자동차를 모두 샀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참고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웃 사람들이 어떤 것을 살 때마다 본인도 그것을 사려고 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이웃집에서 지붕에 둥근 접시 같은 것을 설치하는 것을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이웃집이 설치하던 것은 텔레비전으로 위성방송을 보기 위한 위성안테나였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그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장 이웃 사람처럼 텔레비전을 사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다른 걸 사느라고 돈을 다 지출해서 텔레비전과 위성방송 수신료를 지불할 돈이 더 이상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위성안테나를 설치한 집들이 하나둘 계속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마을 여기저기 보이는 안테나들을 보는 그는 자신만 텔레비전이 없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괴로워했습니다. 참다못한 그는 결국 위성 안테나만 사서 자신의 집 지붕 위에 설치했습니다. 텔레비전도 없고 위성방송 수신도 없었지만 그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의 집 지붕 위에 안테나를 보고 그가 텔레비전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 중에 ‘카푸어’가 늘고 있습니다.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데도 빚을 지고, 비싼 이자를 지불하며 할부로 고급 외제 차를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려한 겉모습에 혹해서 그렇게 고급 차를 덜컥 산 사람들은, 그 차를 1년도 몰아보지도 못하고 빚에 쫓겨 압류당하고 남은 빚을 갚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훌륭한 성벽은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것이 아니라 잘 다져진 기초 위에 단단히 쌓인 벽돌로 만든 성벽이 훌륭한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인생은 거울과 같으니 비친 것을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보다 먼저 자신의 내면을 살펴야 한다. – 월리 페이머스 아모스 – =Naver "따뜻한 하루"에서 이식해옴.....
"난 너의 뮤즈가 아닌 화가야."
자화상, 수잔 발라동 화면을 응시하는 눈빛, 꽉 다문 입술. 이 그림의 여성이 어떻다고 생각이 드는가? 다양한 감상이 나오겠지만 글쎄, "아름답다"는 평은 그닥 많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수잔 발라동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당대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린 수잔 발라동 풍만한 육체, 건강하고 하얀 피부, 진한 눈썹과 사슴같은 눈망울. 발라동은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다. 발라동의 삶은 굉장히 기구하였다. 사생아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곡예사를 하며 혼자 돈을 벌던 발라동은 사고로 인해 더 이상 곡예를 하지 못하게 되자 직업모델에 뛰어들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육체에 매료된 수많은 화가들이 발라동을 그리고 싶어 하였고, 그렇게 발라동은 당시 미술계의 뮤즈가 되었다. 로트렉이 그린 발라동. 아름다운 외견도 한몫하지만 발라동은 정말 본인이 가진 분위기가 대박이다. 르누아르, 로트렉, 드가 등등... 그렇게 수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뮤즈가 되어주던 그녀는 어느 날 생각한다 "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렇게 발라동은 모델을 하며 어깨 너머로 독학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모델을 그만두고 훌쩍떠나 은신하며 홀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10년이 넘게 혼자서만 그림을 그리던 발라동은 드가의 도움으로 자신의 그림을 세상에 선보이게 된다. 그녀의 그림은 놀라웠다. 독학임에도 불구하고 그림 실력이 뛰어나고 개성넘쳐서 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시각이 기존의 남성화가들과 전혀 달라서이다. 발라동의 목욕을 끝내고 나오는 여자그림. 그녀를 관음하려는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기존 남성화가들은 언제나 여성을 뮤즈로서 바라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답고 이상적인 여성 누드화가 많았다. 하지만 발라동은 달랐다. 그녀는 여성을 인간으로 바라보았다. 여성의 자연스러운 모습, 여성의 일상, 여성 그 자체....그것이 발라동의 그림이 놀라운 점이다. 기존의 여성 누드화는 이런 식으로 최대한 곡선을 강조하고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구도로 포즈를 잡는다. 근데 누가 평소에 저렇게 눕는가? 발라동의 시선이 정점을 찍는 작품이 바로 이 자화상이다. 그녀는 출산을 끝낸 직후 자신을 그렸다. 아이를 낳은 후유증으로 헬쑥한 얼굴, 퍼석해진 피부, 쳐진 가슴...어떤 사람이 출산을 끝낸 여성에게 섹스어필을 느낄 수 있을까? 하지만 발라동은 바로 그런 모습을 그렸다. 이것은 이렇게 선언하는 것이다. "더 이상 뮤즈로서의 나는 없다!" 개인적으로 저는 발라동의 뎃셍을 좋아한답니당 수많은 남성화가들의 사랑을 받으며 뮤즈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도 있었던 발라동. 하지만 그녀는 누군가의 뮤즈도 무엇도 아닌 예술가 그자체였다. 수잔 발라동 1865.9.23 ~ 1938.4.7 출처 : 쭉빵카페 개인적으로 발라동이 모델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좋아했었는데 (특히 로트렉의 작품) 이런 사연이 있는지 몰랐어요 ! 많은 화가의 뮤즈로서 '몽마르뜨의 연인'으로 불렸지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인정받고 당당히 화가로 홀로 선 그녀의 작품을 몇가지 더 소개하며 카드를 마무리 할게요 *_*
결점을 무기로, 찌질함을 사랑하는 법
유튜브의 순기능. 알고리즘에 몸을 맡긴 채 표류하다 보면 종종 전혀 생각지도 못한 띵곡을 만날 수 있다는 점. 직접 찾지는 않았지만 저런 식으로 유튜브에서 디지털 표류(?)를 하던 중에 우연히 건지게 된 곡이 있다. 아마자라시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이란 노래. 노래를 들어보면 알겠지만(아래에 영상 첨부해 두겠다. 찡긋~) 사람에 따라서는 가사가 중2병스럽다며 거부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 고런 가사다. 하지만 본인은 이런 과하게 진지하면서 살짝 중2병스럽기까지 한 일본 감성을 참 좋아한다. 그런 감성을 사랑하는 감수성이 풍부한, 평균 성인 남성 보유 감수성의 3인분 어치를 혼자 다 갖고 있는 찌질한 내가 싫지만은 않은 느낌. 날 묶은 건 줄이 ㅇr니ㅇF... 줄보ㄷr 더 단단한... ㄴr의 외로움... 그게 날 묶은거ㅇF... 예전에 김이나 작사가가 '청춘 페스티벌'에서 했던 강연 클립 중에 '찌질한 나를 사랑하는 법' 이란 제목의 클립이 있었다. 이 역시 유튜브 표류 중에 얻어걸린 영상이었는데 짧으면서도 임팩트 있으니 궁금하면 찾아보시기 바란다. 그녀는 얘기했다. 요즘 세상이 진지함과 찌질함에 유독 인색하다고. 누군가의 찌질한 부분은 사실 남들에 비해 과잉되어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과하게 가지고 있다는 건 남들보다 더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과잉된 찌질함은 아직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장점과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고 김 작사가는 얘기했다. 거기에 붙여 20대부터 너무 남들 안목에 맞춰서 본인을 다듬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사람 좋고 무난하지만 색깔 없는 무색무취의 사람이 되기 십상이란다. 그러나 무거움은 한사코 밀어내고 다만 참을 수 없는 가벼움만을 지향하는 한국 사회에서 예리한 감수성의 징후를 내비치는 건 흔히 찌질함과 진지충으로 오독되고 만다. 진지충으로 판명된 뒤에 겪게 될 고초들은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상상에 맡긴다. 어쨌거나 이런 냉엄한 세상에서 예리한 감수성을 내비치는 것은 마치 스스로 이리 승냥이떼에게 본인의 목덜미를 헌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라며. 그리고 사람들에게 호되게 물리고 나서 과잉 감수성 보유 찌질이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총 세 가지다. 1. 본인을 기존의 틀에 맞추기 위해 과잉된 부분을 쳐낸다.(김이나 작사가가 말한 것처럼) 2. 속은 전혀 안 그렇지만 남들처럼 쿨한 인간인 척 가장한다. 3. "덤벼라 세상아." 본인의 감수성을 무기로 삼고 예술로 승화시켜 당당히 드러낸다. 1번을 선택한 이들은 그렇게 과하지 않으려고 본인을 쳐내고 쳐내며 이쁘게 다듬다가 분재 같은 인간이 되고 만다. 예쁘지만 자연스럽진 않은. 본인 역시 상당한 진지충에 에누리 없는 홀라이프 타임 찌질이였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나와 멋짐과의 거리는 항상 안드로메다은하와 우리 은하 사이의 거리만큼 멀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나는 항상 찌질했고 그런 내 모습이 상당히 불만이었다. 그래도 나는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춰 과잉된 부뷴을 잘라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대신 2번처럼 가장했다. 매사 유쾌하고 다소 가벼운 사람처럼. 광대처럼 익살을 연기했다. 익살은 진지충이 앞구르기 베인충, 노채팅 칼픽 티모충 만큼 혐오 받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선택한 일종의 보호색이었다. 20대의 종말을 고해가는 이제서야 나는 찌질함의 쓸모를 찾았다. 좀 더 일찍 알았으면 사춘기와 20대가 훨씬 수월했을 거다. 그러나 <접속>의 대사처럼 "삶은 때론 먼 길을 원하"는 지도 모른다. 찌질함의 쓸모를 찾으니 비로소 찌질함을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오히려 나를 억지로 남들 기준에 맞추려고 애쓰지 않았던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마터면 누구로도 대체 가능한 몰개성 한 행인 1이 될 뻔했다. 내가 찾은 찌질함, 과한 감수성의 쓸모. 나는 감수성을 연료로 이렇게 글을 쓰고 시도 쓴다. 누군가는 내가 쓴 걸 보고 "에잇 뭐야 개 구데기 잖아." 라고 얘기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남들 생각이 어떻고 그들이 뭐라 말하든 나와는 1도 상관없다. 어쨌거나 나는 쓰는 게 재밌다. 게임 레벨업 하듯 화려한 가시적인 성과는 없지만 그래도 쓰면 쓸수록 조금씩 미세하게 나아지는 게 느껴진다. 인간관계에서는 마이너스 요소인 찌질한 감수성이 이 영역에서만큼은 상당한 플러스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좋다. 당신도 혹시 본인의 찌질함에 고민하고 있다면 따듯한 말 한마디 남겨두고 싶다. 당신의 찌질함이 사실 뻐킹 광선검 일지도 모른다는. 스타워즈를 봤다면 다들 알다시피 광선검은 껐다 켰다가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다. 오로지 포스를 선인 도 닦듯 닦은 제다이들만 이 검의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고 검을 휘두를 수 있다. 당신이 남다른 찌질함의 소유자라면 어쩌면 포스는 이미 당신과 함께하고 있을지 모른다. 다만 느끼지 못하는 것이고 당신이 아직 준비가 안됐을 뿐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본인 안에 잠자는 포스를 깨우고 닦고 또 닦으며 당신의 찌질함이 광선검이 될 분야를 찾는 것이다. 그러니 전국의 찌질이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이역만리 해외동포 찌질이 여러분들, 나아가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 세상의 모든 찌질이들이여 힘을 내자. 당신들과 같이 혹은 당신들보다 조금 먼저 험난하고 슬픈 찌질이의 길을 걸은 사람으로서 주제넘게 몇 자 적어보았다. 당신네들의 찌질함이 언젠가 광선검이 되길. 그리고 그 검을 맘껏 휘두를 수 있을 전장을 찾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날을 기다리며 루크 스카이워커를 바라보는 요다처럼 인자한 미소를 띄워 보내는 바다. 젊은 놈이 이렇게 포스가 없어서야 광선검 뽑겠나... 잉.. 아마자라시 -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https://youtu.be/6SNscvxLP4E
액션피규어 디오라마 작업기:) 스타워즈 밀레니엄 팔콘 콕핏(조종석)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주인공 기체(?)라고 하면 맞을려나 모르겠습니다 :) 밀레니엄 팔콘의 조종석 풀스케일 디오라마 작업입니다. 현재는 조종석으로 들어가는 입구쪽 작업을 거의 마친 상태입니다. 까다로운 부분들이 많고 , 메카닉적인 요소들과 LED라이팅 기믹들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보니 시작부터 난관이네요 시작부터 난관........그래도 차근차근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디테일을 잡아주고 , 실제 고증과 최대한 비슷한 느낌으로 연출할 수 있도록 파츠들을 깍고 또 붙이고 .. 그러면서 사포도 갈려나가고 제 멘탈도 같이 갈려나가네요. 3D 프린팅이나 관련된 모델링 파일을 이용한 출력없이 100% 핸드메이드로 작업하다보니 디테일은 훌륭하게 잡아낼 수 있습니다만 , 그 작은 느낌 차이를 더 하기 위해서 정말 혼절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가끔 도를 닦는 듯한 느낌이 들.....읍 세부적인 디테일 요소들이 적절하게 자리 잡았는지 하나씩 살펴봐주고 , 이곳에 얹을 피규어들과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리는지 사진촬영과 동영상 촬영을 해둡니다. 자연광 상태일때와 실내에서의 느낌 차이도 봐주면 좋겠지요. 사진에 대해선 1도 모르는 그저 폰카로 대충 찍찍 하는 사람이다보니.... 그럭저럭 재밌게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추가적인 웨더링 작업이 조금 더 필요할 듯 싶습니다. 도색을 얹기전엔 하나하나 손으로 깍고 만든 놈이다보니... 요런 느낌입니다 :) 이곳은 작업기가 길어지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가능하면 완성된 작업물만 올려보는 것이 좋겠네요. 여기에 도색을 얹게되면:) 이렇게 변한답니다:) 하나하나 만져줘야할 부분들이 많은 장르다보니 횡설수설하네요:) 모쪼록 재밌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많은 작업기와 작업물 사진은 제 소소한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방문해주시면 즐기실 수 있을 듯 합니다. www.instagram.com/aj_custom 그럼 얼렁뚱땅 끝낼게요 감사합니다. 아! 유튜브채널 "더스토리"라는 아트토이&키덜트 관련 작가님들 소개해주시는 채널에 잠시 소개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영상으로 감상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해당 채널을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youtu.be/MahIA4lMG2E 감사합니다
조선시대 두번이나 풍랑 만나서 필리핀까지 표류했다가 돌아온 뱃사람
문순득 (1777~1847) 조선 후기 전라도의 작은 섬 우이도에 살고 있던 평범한 어물 장수였음 1802년 1월 홍어 사러 흑산도 근처 태사도에 갔다가 우이도로 돌아오는 길에 큰 풍랑을 만남 열흘 넘게 표류한 끝에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조선이 아닌 어딘지도 모를 섬에 도착함 도착한 곳은 류큐국. 지금의 오키나와 다행히 류큐인들은 조선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먹을 것도 주는 등 편의도 많이 제공해줌 그렇게 9개월간 류큐에서 살다가 류큐에서 청나라로 가는 조공선에 몸을 싣게 됨. 조공선을 타고 청나라 푸저우에 도착한 후 육로로 북경까지 가면, 정기적으로 북경에 오는 조선 사신단을 통해 돌아갈 수 있었음 그렇게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1802년 10월에 출항을 하였으나 또 풍랑을 만남 근데 또 목숨은 건짐 이번에도 남쪽으로 계속 흘러간 끝에 닿은 곳은 필리핀 당시에는 '여송'이라고 불렀음. 루손 섬을 한자로 표기한 것. 문순득은 비간이라는 마을에 정착함. 당시 필리핀은 스페인 식민지였고 비간 역시 스페인인들이 개척한 마을이었음. 마을 한가운데는 천주교 성당이 있었고 문순득은 성당과 종탑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음 류큐와 달리 여기서는 혼자 먹고 살일을 해결해야 해서 문순득은 끈을 꼬아 팔거나 나무를 해서 내다 팔면서 다시 9개월간을 버팀. 그리고 다시 배에 몸을 실음. 이번엔 마카오로 향하는 상선을 얻어탐. 다행히 이번엔 풍랑을 안 만나서 무사히 마카오에 도착함. 여기서부터는 육로로 중국 대륙을 종단해서 북경까지 올라감 그리고 사신들이랑 같이 한양으로 돌아오고 마침내 1805년 1월 약 3년여만에 고향 우이도로 돌아오는데 성공. 고향 사람들은 당연히 문순득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함. 문순득의 여행루트 고향에 돌아온 문순득은 다시 홍어장수 일을 시작했고, 홍어를 사러 흑산도에 들렀다가 흑산도에 유배와 있었던 정약전을 만남 문순득은 정약전에게 자신의 표류썰을 풀었고, 이걸 들은 정약전은 와 이거 대박이다 라고 생각하고 문순득의 표류기를 책으로 정리해서 저술함 이 책이 바로 '표해시말' 책을 펴고 앉아있는 분은 문순득의 5대손 문채옥 씨 1979년 섬 민속 연구를 위해 우이도를 찾은 최덕원 전 순천대 교수가 문채옥 씨 집에 있던 고서더미를 뒤지다가 발견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됨. 책에는 당시 류큐, 필리핀, 중국의 여러 모습뿐만 아니라 문순득이 습득한 류큐어, 여송어(필리핀 북부에서 쓰이는 일로카노어) 단어가 기록되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함 아직 이야기 하나 더 있음 ㄷㄷ 이 무렵 제주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라 사람들이 표류해 옴. 도저히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몰라서 그냥 몇 년 동안 방치하고 있었는데 문순득이 만나러 가서 얘기해보니 말이 통함. 여송에서 온 사람들이었던거임. 여송 사람들은 드디어 집에 갈수 있겠다고 감격에 겨워 울고 불고 난리침. 이 공로로 문순득은 종2품 가선대부 품계를 받게 됨 ㄷㄷ 명예직이긴 하지만 조선시대 평범한 시골 홍어장수가 고위직 벼슬을 받게 된것임. 인생살이 새옹지마 이야기 끝 출처 지젼신기 ㄷㄷㄷ 살아남은 운도 대단한데 저 시대에 말도 안통하는 타국가서 살아남은 것도 대단 근데 또 하필 유배온 정약전(정약용 형) 만나서 후대에 기록까지 남김ㅋㅋㅋㅋㅋ ㄹㅇ 신기
왜 서울은 다른 아시아 대도시들에 비해 스카이라인이 밀리는가?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 모습 그런데 서울은 그 거대한 규모에 비해 마천루들이 밀집한 압도적인 스카이라인을 보여주는 곳이 없는데 이런거 심지어는 인구규모 3분의1인 부산에도 밀림 그나마 여의도가 이런 풍경 일단 그 이유는 크게 5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사대문 내 고도제한 사대문 안에는 90M이하(그나마도 대부분은 70, 50M제한)로 건축 높이가 제한되는데 이건 2004년 110M였던게 더 낮아져서 악화됨 그래서 만들어진게 종로-중구의 이 풍경 200m 300m의 홍콩 뉴욕같은 풍경은 아니고 고만고만한 중층의 건물들로 이루어진 모습 두번째는 서울의 디자인 규제 서울시 허가를 받기위한 전후 조감도 변화.jpg 요런 부산 마린시티스러운 아파트 디자인은 허가를 못받음 00년대까지 서울에서도 가능했나 이제는 서민들의 위화감 조성, 주변 조화 등을 이유로 지을 수 없게됨 세번째는 용적률 규제 다른 대도시들에 비해 빡빡한 서울 용적률상 맨해튼 용적률도 사실 서울의 최고 용적률과 큰 차이 없는 1000%지만 저쪽은 개발권 이양 등 여러 방법으로 실질적인 용적률은 훨씬 높이기 가능 네번째는 활주로 문제... 롯데타워 지을때 시끌시끌했던 그 활주로 다만 이건 잠실 등 서울 동쪽 일부만 해당되는거라 그냥 감안하고 다른 지역에 집중하면 되는데(애초에 어쩔수없는 일이고) 다섯번째는 서울이 3도심 체계라는거 하나의 중심 다운타운으로 집결돼서 하나의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강남 종로 여의도의 3개로 오피스 수요가 분산됐으니 어느 하나가 압도적인 도시풍경을 보여줄 수 없음(애초에 서울시가 그걸 바라지 않음) 그럼 오피스 대신 아파트로 풍경 조성하면 안되냐?(부산처럼) 그건 위의 아파트 디자인 규제와 용적률 제한으로 불가 결국 굉장히 복합적인 문제들이 다 엮여서 서울 스카이라인이 이렇게된거 출처 : 더쿠 오.. 흥미돋.... 근데 뭐 난 지금의 서울도 괜찮은 거 같음 ㅇㅇ 높은 빌딩 보면 무셔웡>_<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