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29를 타본 최초의 서방 파일럿
1980년대 후반, 소련은 글라스노스트로 대표되는 개혁개방 정책을 실행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베일에 쌓여있던 자신들의 무기를 세계에 홍보하여 판매할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제2 세계에 비해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서구권의 무기 박람회에 자신들의 제품을 출품하고자 했다. 소련은 특히나 자신들의 항공기를 수출하는 것에 큰 열정을 보였다. 1988년 영국 판버러(Farnborough) 에어쇼에서 데뷔한 MiG-29는 베일에 쌓인 스펙으로 인해 서구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소련은 이듬해인 1989년, 미국에 더 가까운 캐나다 애보츠포드(Abbotsford)에서 열리는 국제 에어쇼에서 MiG-29를 홍보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 소련 전투기들은 대서양이나 베링해협 둘중 한곳을 건너야 했다. 소련 관리들은 미국과 협상하여 2대의 MiG-29가 알래스카 상공을 통과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이들은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미공군 기지에서 재급유를 한 뒤 캐나다까지 오기로 했다. 소련은 캐나다로 갈 MiG-29로 1인승 Fulcrum-A 1대와 복좌기인 Fulcrum-B(MiG-29UB) 1대를 선택했다. 소련의 최신예 전투기가 영공에 들어온다는 소식에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매우 긴장했다. 그들은 바로 F-15 2대를 출격시켜 러시아인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엘멘도르프 공군기지에 착륙하여 재급유를 마친 MiG-29들을 캐나다 영공까지 안내했다. NORAD는 F-15 파일럿들에게 두가지 주의사항을 주었다. 1. 1,000피트 이상 접근하지 말 것. 2. 러시아 파일럿들과 통신을 시도하지 말 것. MiG-29들의 관제는 민간항공 측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하지만 NORAD 측은 이미 E-3 AWACS를 띄워서 러시아 전투기들을 속속들이 감시하고 있었다. 한편,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위치한 코목스(Comox) 공군기지의 제441 방공 비행대대(441 Air Defence Squadron)의 지휘관 밥 웨이드(Bob Wade) 소령은 러시아인들이 올 거라는 브리핑을 받고선 출격대기에 들어갔다. F-104 스타파이터를 시작으로 23년 동안 왕립 캐나다 공군(RCAF)에서 복무한 그는 CF-18 호넷 파일럿이었다. 웨이드의 편대는 총 4대가 있었으며 평상시에는 2대가 출격대기, 2대가 정비창에 입고되어 있었다. 하지만 웨이드는 그날만큼은 4대를 모두 출격대기 시켜놨다. 아무래도 러시아인들이 온다니까 긴장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이윽고 4대의 호넷이 모두 이륙하여 37,000피트 상공에서 마하 0.9의 속도로 MiG-29들과 마주쳤다. 그들을 인도하던 F-15 2대는 날개를 흔들어 보이더니 이윽고 서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MiG-29를 목도한 웨이드와 그의 크루들은 그것을 자세히 관찰했다. 호넷보다는 조금 작지만 매우 흡사하게 생긴 실루엣, 그리고 붉은 별이 눈에 들어왔다. 웨이드는 크루들에게 카메라를 장비할 것을 명령했고 이 역사적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다. 하지만 NORAD의 조치 때문에 러시아인들과는 전혀 대화할 수 없었다. 캐나다인들과 러시아인들은 그저 묵묵히 동쪽으로 가고 있었다. 20분 쯤 그렇게 가고 있었는데, 웨이드는 러시아인들의 진행경로가 약 40도 정도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목적지는 커녕 연료부족으로 벤쿠버 앞바다에 꼬라박을 판이었다. 그는 자신들을 관제하고 있던 E-3에 무전을 넣었다. "저 친구들 지금 관제 받고 있는 건가?" "아니, 우리들은 권한이 없어. 민항쪽에서 담당한다고만 들었지." E-3 쪽에서는 바로 벤쿠버 항공관제센터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그쪽에서는 '우린 그런 일정 들은 적이 없다'는 기가 막힌 대답이 돌아왔다. 러시아인들은 수시간 째 무선침묵 상태로 날고 있었던 것이다. 웨이드는 장기로 보이는 Fulcrum-B에게 다가가서 수신호를 했다. 그 러시아 파일럿은 웨이드를 보자마자 역시 '격렬하게' 수신호를 해댔다. 하지만 그건 웨이드가 모르는 수신호였다. 결국 양측은 바디랭귀지 끝에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방향을 모르겠다, 연료는 30분' 웨이드는 즉각 경로를 수정해줬고 MiG-29 두대는 아슬아슬한 상태로 애보츠포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웨이드는 MiG-29들이 손님으로 참석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양 사이드에 호넷들을 배치하여 마치 개선식을 하듯 내려왔다. 코목스 기지로 돌아온 웨이드는 곧장 사령관실로 불려갔다. 누군가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이다. 수화기를 받은 웨이드는 아주 강한 러시아 억양의 영어를 들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아닌 주 캐나다 소련대사였다. 웨이드는 도대체 내 신상을 어떻게 안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소련대사는 자국 파일럿들을 도와준 웨이드의 행동에 감사를 표하며 그에게 에어쇼의 게스트로 참석하여 MiG-29를 평가해줄 수 있냐고 물었다. 통화를 끝내자 마자 웨이드는 부하들과 함께 수송기를 타고 애보츠포드로 날아갔다. 하지만 다음날 애보츠포드에 도착한 웨이드는 불쾌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프레스데이에 MiG-29가 전시된 구역으로 들어가려 했던 웨이드는 소련 측 경비병력에게 제지 당했다. 그는 자신들이 이 비행기를 데리고 온 파일럿들이라고 설명했지만 소련군들은 무뚝뚝하게 '저리 가시오'라고만 반복했다. 결국 웨이드 일행은 MiG-29를 구경하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로 다른 쪽에서 구원이 찾아왔다. 캐나다 국방부가 직접 소련 측에 요청하여 웨이드가 MiG-29를 시승 해볼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한 것이다. 에어쇼 마지막 날 바로 전 날, 웨이드는 당시 캐나다 국방부 차관이었던 메리 콜린스(Mary Collins)에게 호출되었다. 그녀는 웨이드에게 반드시 미그기에 탑승하여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하고 오라고 강조했다. 그녀는 이 시승을 위해 자신의 경력을 걸었다고도 덧붙였다. "명심하세요, 소령. 이 일을 망쳤다간 우리 둘 다 모가집니다." 소련 측이 입장을 바꾼 이유중 하나는 웨이드가 F-18 호넷 파일럿이었고 MiG-29와 가장 오랫동안 편대비행을 한 유일한 서방측 파일럿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좋은 평가를 내려준다면 MiG-29의 세계시장 판촉에도 매우 큰 홍보효과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 다음날, 웨이드는 복좌기인 Fulcrum-B 후방 조종석에 올랐다. 그는 본래 호넷을 탈때 입던 G슈트와 헬멧을 가져가려 했지만 MiG-29는 너무나도 비좁아서 그것들을 착용한 상태로 탈 수 없었다. 그는 결국 다른 러시아인 파일럿의 G슈트와 소련제 헬멧을 빌려야 했다. 그를 태울 파일럿은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비행 전 브리핑은 단 10분간 이뤄졌다. 그것도 전부 원론적인 이야기 뿐이었다. 소련 측은 웨이드에게 최소한 24시간 정도 엠바고를 지켜줄 것을 요구했다. 솔직히 외관과 내관은 소모전 개념에 충실한 소련제 비행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리벳과 대갈못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었고 타이어 고무는 상태가 조악했다. 그래도 GSh-30-1 30mm 기관포는 호넷의 20mm 발칸보다 훨씬 강력해보였다. 조종석에 앉은 웨이드는 수많은 키릴문자의 향연에 당황했다. 야드 파운드법에 익숙한 그에게 미터법은 저세상 단위였다. 러시아인들도 보안을 위해 웨이드에게 최소한의 것만을 보여주라는 명령을 받은 듯 했다. 그를 태운 파일럿은 클리모프 RD-33 터보팬을 시동거는 과정을 아주 빠르게 단 한번만 보여주었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켜지도 않았고 심지어 연료 적재량과 이륙속도 같은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웨이드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웨이드는 베테랑 파일럿으로서의 감에 의존하여 MiG-29를 느껴보았다. 이륙 시 추진력은 호넷보다 좋은 것 같았다. 솔직히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초당 720도 회전이 가능한 호넷처럼 MiG-29도 비슷한 수준의 롤링이 가능했다. 웨이드는 러시아 파일럿이 일부러 기체성능을 전부 보여주지 않을거라는 전제를 깔아놨지만 그 정도 기동으로도 어느 정도 감이 왔다. 웨이드는 고도계나 G미터를 찾아보려 했지만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다만 자신에게 대충 7G 정도가 가해진다고 추정했다. 애프터버너의 힘도 기체를 조향하는데 충분한 파워였다. 러시아 파일럿은 웨이드를 놀라게 하려는 목적으로 테일 슬라이드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곧 안정적으로 기수를 회복했다. 그 기동을 통해 웨이드는 MiG-29가 선공 회피 후 저속 도그파이팅 상황에서는 호넷과 대등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플랩과 꼬리날개의 반응도 꽤 날렵했고 이 정도면 자신도 충분히 신뢰하고 조종할 수 있겠다고 여겼다. 그렇게 15분의 비행이 끝나고, 웨이드는 상당히 감명받은 상태로 지상에 내려왔다. 그가 느낀 MiG-29는 조잡하지만 순수한 힘으로 단점을 극복해내는 전투기였다. 소련 대사관 측은 비행 직후 열린 파티에 웨이드를 초대했다. 그들은 보드카를 엄청나게 마셔댔다. 웨이드에게도 강권해서 어쩔 수 없이 마셨다. 아마도 바로 서방 기자들과 인터뷰하지 못하도록 하려던 것 같았다. 웨이드는 파티에서 필름이 끊겨서 업혀 나왔으나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며칠 후, 캐나다 국방부는 웨이드를 급히 오타와(국방부 본청 소재지)로 불러들였다. 그날 웨이드는 국방부장관, 참모총장, 그리고 정체불명의 검은 양복의 미국인 2명이 참관하는 가운데 자신이 경험한 MiG-29의 모든 것을 20분 동안 브리핑했다. 이후 약 1년간 웨이드는 나토 국가들을 돌아다니며 이 브리핑을 반복해서 강의했다. 하지만 MiG-29에 대한 서구권의 우려는 단 3개월만에 종식돼어버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냉전이 끝난 것이었다. 수많은 국가들에게서 국방비 지출이 크게 감소했고 웨이드가 복무하던 캐나다 공군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타던 호넷은 절반가량이 퇴역하였고 웨이드 역시 이듬해 전역하여 민항기 조종사로 취업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 대한한공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 훗날 웨이드는 1990년대 중반 쯤에 '랭글리'로부터 연락을 받아 러시아 공군 측이 판버러 에어쇼에 그를 초빙하여 Su-30를 시승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소식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캔슬되었고 그는 자신 인생에서 최고로 후회스러운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군사갤러리 ㅇㅇ님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