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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레 뮌터

주말은 역시 전시회 아니겠는가. 큰 마음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전시회 정보다.

제목: 가브리엘레 뮌터, 단도직입적인 그림(GABRIELE MÜNTER. MALEN OHNE UMSCHWEIFE)
기간: 2017년 10월 31일 - 2018년 4월 8일
장소: 독일 뮌헨 렌박하우스(Lenbachhaus)



가브리엘레 뮌터는 당연히 별도의 소개가 필요한 인물인데, 또 그렇지도 않다는 점이 함정이다. 가령 까미유 끌로델을 얘기할 때 오귀스트 로댕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과 마찬가지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때문이다.

물론 뮌터의 경우 끌로델보다는 훨씬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점이 함정. 그래서 영화화가 안 됐을 수도 있을 텐데, 그렇다고 칸딘스키랑 백년해로한 것도 아니다. 대략 10년 정도 같이 살았을 뿐(선생과 제자로 만나서 사랑했던 건 로뎅의 경우와 동일하다). 게다가 상당히 삶도 주체적이었다. 바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의 주역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뮌헨의 렌박하우스가 세계에서 아마 청기사파 그림을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청기사파의 본거지였기 때문이기도 한데 애초에 이 청기사파는 무슨 특별한 미술 사조를 상징하는 파벌이 아니었다. 뮌헨 신인 작가 협회(NKVM)에서 칸딘스키 그림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렸다 하여 항의의 의미(참조 1)로 바이에른 진더스도르프의 한 커피 탁자에서 만들었다(참조 2).

다만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 그녀의 이름이 거론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청기사파도 칸딘스키를 언급하면서 잠시 지나갔을 뿐이다. 하지만 당연히 고향 독일에서는 유명한 화가였고, 히틀러 통치 기간 동안 숨겨왔던 엄청난 그림들을 모두 렌박하우스에 기증했다(이제 렌박하우스가 왜 중요한 미술관인지 아시겠나?).

그래서 이번 회고전은 네 번째. 여기 전시회가 끝나면 미국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에서 8월 19일까지, 그 다음에는 독일 쾰른의 루트비히 미술관에서 내년 1월까지 한다.

다시 뮌터로 돌아와서, 그녀와 칸딘스키와의 관계 때문에 그녀의 그림이 평가절하된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독자적인 스타일이 있다. 색깔의 선택은 물론이거니와 유머(!)도 꽤 보이기 때문이다(참조 3, 4). 그걸 보이려는 것이 이번 전시회 목표 중 하나다.

다만 링크한 FAZ의 이 기사가 뮌터를 몰랐던 사람이 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듯 하다. 뮌터에 대한 평가가 변화하는 상황을 복잡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칸딘스키 및 청기사단하고만 관련지어 얘기하는 것도 좀 협소하다. 그녀의 그림이 청기사를, 독일 표현주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그녀도 당당히 미술사에 이름을 크게 올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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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이 협회(Neue Künstlervereinigung München)는 뮌헨의 표현주의 화가들 모임으로서 유명했으며 칸딘스키 본인이 협회장을 지낸 적도 있었는데, 칸딘스키의 추상화 경향을 협회측이 못마땅해하고 있었다. (후에 히틀러의 퇴폐 예술 지정으로 협회 자체가 사라졌다.)

2. 커피가 이렇게 위험합니다, 여러분. Der Sindelsdorfer Malerweg: http://www.sindelsdorf.de/seite/272861/sindelsdorfer-malerweg.html

3. 가령 기사에 나와 있는 “탁자에 앉은 칸딘스키와 에르마 보시/„Kandinsky und Erma Bossi am Tisch“(1912)”를 보시라.


4. Gabriele Münter: Mit Farbe ins Freie(2017년 12월 29일): https://derstandard.at/2000071147757/Gabriele-Muenter-Mit-Farbe-ins-Fre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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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로델처럼 분명 스승이자 연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의 재능이 있었을거여요! 멋진 여자같아요~~♥.♥
언제나 그렇듯 정말 큰맘 먹지 않으면 갈 수가 없겠군요... 참조들로만 봐서는 칸딘스키와의 관계로 절하되기에는 꽤나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진 것 같은데 왜였을까요? 그저 그늘에 가려진 것인가...
일단 커플로 엮이면 남자 위주로 보는 습관이 들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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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의 타로 카드
https://www.vanityfair.fr/savoir-vivre/story/le-tarot-de-salvador-dali/10573?fbclid=IwAR2HjALqldM0bUymxnL6zAuHXbsPPfsQOprHD-DppdxqDfqtdvMevN_Cfq4 뭔가 아쉬워서 하나 더 쓰는 주말 특집, 살바도르 달리가 정말 온갖 미디어에 다 손을 댔다는 사실(참조 1)을 알고 계시면 이 또한 역시나, 하실 수 있겠다. 살바도르 달리가 직접 제작한 타로 카드들이기 때문이다. 올해 연말 혹은 내년 연초 선물로 제격 아닐까? 원래는 절판됐던 것을 독일의 아트북 전문 출판사인 타셴에서 다시 판매 시작했다(참조 2). 60불 밖에 안 하니까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구매 가능(그리고 인쇄된 책은 관세는 물론 부가세도 없습니다?). 잠깐, 절판됐었다고 표현했으니, 이미 이전에도 나왔다는 뜻? 그렇다. 이전에 아주 소량의 한정판으로 판매된 적이 있었다. 그 이유가 있는데… 자, 그럼 달리가 어째서 타로 카드를 제작했을까? 원래는 영화 소품으로 내보내려고 했었다. 어떤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Live and let die) 편이었다. 하지만 달리는 비싼 분이다(참조 1). 가격 협상이 안 맞아 결국 그 영화에 소품으로 내보내지 못 했다. 그래서 그냥 소량의 한정판매로 뿌려버린(?) 것(그걸 구매한 이들은 정말 투자를 잘 한 셈이다). 참고로 실제 007 영화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일러스트레이터 Fergus Hall의 타롯 카드(참조 3)를 사용했다. 달리는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리던 타로 카드의 “황제” 그림을 007에 나오는 로저 무어가 아닌, 션 코너리를 모델로 해서 그린다(참조 4). 그런데 이 사실 아시는가? 전혀 그런 이미지가 아니고 상당히 흔한 일도 아닌데, 살바도르 달리는 한 아내와 꽤 오랫동안 같이 삶을 살았었다. 러시아(타르타스탄) 출신의 갈라 달리 여사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달리는 아내를 모델로 하여 타로 카드의 황후 그림을 그렸었다. 마술사 카드는 자기 자신을 그리고 말이다. 이쯤 되면 달리 마음대로 막나가는 거냐, 할 수 있을 텐데 달리는 그래도 됩니다, 고객님. 물론 예술사적으로 이 타로 카드의 가치는 션 코너리나 갈라 달리가 아니다. 달리가 고전 그림을 재해석한 카드 그림이 워낙 많아서다. 고전 그림 뿐만도 아니다. 마르셀 뒤샹의 그림을 풍자한 것도 있다(참조 5). 참고로 달리는 이 카드 작업을 10년간 했었다. 한정판 출시는 1984년이었으며, 타로 카드 놀이, 혹은 예언(…)을 할 때 달리가 무엇을 참조해서 그렸는지, 무슨 의도를 갖고 있는지 몰라도 된다고 한다. p.s. 자기가 달리의 친딸이라 해서(부관참시까지 하여 수행한 DNA 테스트 결과는 아닌 것으로…) 잠시 세계 뉴스에 올랐던 Pilar Abel씨는 직업이 타로 카드 상담사(?)였다. -------------- 참조 1. 살바도르 달리와 플레이보이(2017년 6월 2일): https://www.vingle.net/posts/2113113 2. The Magician, Death, and the Moon : https://www.taschen.com/pages/en/catalogue/art/all/44640/facts.dali_tarot.htm 3. Tarot of the Witches cards by Fergus Hall : https://www.jamesbondlifestyle.com/product/tarot-witches-cards-fergus-hall 4. 숀 코너리와 로저 무어는 당시 상당한 경쟁 관계였다고 한다. 5. 가령 “컵의 여왕” 그림을 보면 두 가지 그림을 섞어서 뒤틀었다. (1) 프랑수아 클루에(François Clouet)의 엘리자베트 도트리슈(Élisabeth d'Autriche) 초상화(1571) (2)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L.H.O.O.Q.(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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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의 팬들에게 단비 같은 희소식 하나. 12월 5일부터 내년 3월 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스튜디오 지브리 대박람회 – 나우시카에서 마니까지’가 열린다. 이번 지브리 대박람회는 도쿄, 나가사키 등 자국 내 5개 도시를 제외한 첫 해외 전시로, 1985년 설립 이래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스튜디오 지브리(Studio Ghibli) 작품과 관련된 자료를 총망라한다. 24편의 극장 개봉작을 중심으로 홍보 플라이어, 드로잉, 레이아웃 보드를 비롯한 각종 시각물, 캐릭터 상품, 기획서 등 지브리 30년 역사의 아카이브를 찬찬히 뜯어볼 기회. 특별 테마 전시로 기획된 ‘하늘을 나는 기계들’은 스튜디오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특징인 ‘비행선’을 조형물로 제작해 관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박람회’라는 이름만큼 풍성한 볼거리가 관객을 기다릴 것. 연말연시 가벼운 마음으로 들르면 되겠다. 세종문화회관 공식 웹사이트 전시 정보 기간 │ 2017년 12월 5일 ~ 2018년 3월 2일 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세종이야기) 시간 │ 오전 10시 ~ 오후 8시 (입장 마감 오후 7시) 입장료 │성인 15,000원 / 초,중,고 13,000원 / 유아 10,000원
게르니카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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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 화가의 모델이자 인기남들에게 둘러싸인 여성화가
서양미술사에서 인상주의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은 끌로드 모네, 앙리 마티스, 에드가 드가, 에두아르 마네 등이 있으며 이 화가 모두는 남자입니다. 그러나 뛰어난 인상주의 화가들은 모두 남자였을까요? 정답은 "No" 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남자 화가들 사이에 '마네의 뮤즈'로만 알려진 화가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가 있습니다. 여덟번의 인상주의 전시회 중 무려 일곱번을 참가한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홍일점인 그녀의 삶과 작품을 소개합니다. 1. 재능 금수저 모리조는 로코코 시대의 화가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증손녀였습니다. 그리고 모리조의 아버지는 고위 공무원인 사법보좌관이었는데 아버지도 예술에 관심이 많아 예술가들의 후원자였으며 자기 자신도 아마추어 화가였습니다. 모리조는 어렸을 때부터 친자매인 에드마(Edma Morisot)와 함께 루브르 박물관에서 명화를 따라 그리며 그림 공부를 했습니다. 2. 코로의 제자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on-Baptiste-Camille Corot)는 1850년대의 대표적인 풍경 화가였으며 '아버지 코로'라고 불리며 귀스타브 쿠르베, 클로드 모네, 베르트 모리조 등 젊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리조는 코로의 지도를 받고 살롱에 출품한 작품이 당선되었을 때 코로의 허락 아래 '코로의 제자'라고 서명했다고 합니다. 3. 마네와의 만남 베르트 모리조의 예술 세계를 담은 영화인 '마네의 제비꽃 여인 : 베르트 모리조'에서 유부남인 마네와 만난 모리조는 서로 이끌리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관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둘의 미묘한 감정에 대한 사실 관계는 알 수 없지만 모리조는 마네의 작품에 모델로 서기도 하고, 마네의 예술관에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은 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모리조는 마네의 동생과 결혼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원문을 참고하세요. # 원문 출처 : https://redfriday.co.kr/201 # 많이 본 컨텐츠 # 매일 업데이트되는 생활꿀팁과 알아두면 도움되는 이야기를 팔로우 하셔서 쉽게 구독하세요. # ‘좋아요’ 와 ‘공유하기’ 많이 부탁드려요.
나치의 예술작품들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zeitgeist/hidden-legacy-time-for-a-new-look-at-nazi-art-a-1281602.html 나치가 독일을 통치했던 기간이 거의 12년인데, 이 긴 세월동안 나치가 탄압했던 예술 작품들은 지금도 퇴폐예술(Entartete Kunst) 장르로 매우 유명하다. 하지만 당연히 나치가 좋아했던 예술작 품들도 존재하고, 나치를 찬양한 예술 작품들도 분명 있기는 있다. 혹시 이거 연합군 측에서 파괴했을까? 아니다. 미국과 독일의 모처 창고에 그냥 모셔두고 있다. 독일에 있는 작품들부터 얘기해 보자. 베를린에 있는 독일 역사 박물관이 Spandau 창고에 900여 나치 작품들을 그냥 모셔두고 있는 이유는 “잊혀지기” 위함이다. 나치 찬양 예술 작품들은 일종의 “타부”이고 그렇게 반성 좋아하는 독일도 그 시절 친나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부담스러워한다. 미국은 워싱턴 D.C. 근교의 Fort Belvoir에 있는 군용(!) 창고에 있다. 여기에 히틀러의 두상도 고이 모셔져 있다. 전쟁 이후 미군은 대략 9천여 점의 작품을 독일로부터 가져온다. 물론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독일에 돌려준 작품들도 좀 있기는 한데, 친 나치 작품들의 영향력이 우려되는 민감한 작품들은 그냥 미국이 갖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독일측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 있는 나머지 작품들도 독일로 다시 반납해야 할까? 미군 대변인은 송환할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 답했고, 독일 문화부는 답변을 독일 외교부로 돌렸다. 게다가 그냥 있다는 점만 알 뿐, 미국에 정확히 어떤 작품들이 얼마나 있는지는 독일도 잘 모른다고 한다. 자… 혹시 이 두 곳 외에, 다른 미술관이나 개인 소장 작품이 있을까? 물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예외가 없지 않지만 감히 전시까지는 못 하는 듯 하다. 그래서 당시 시절 친 나치 작품들에 대한 완전한 연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다고 한다. 게다가 여론도 정말 그런 작품의 존재 자체를 대단히 부담스러워 한다. 에밀 놀데 전시회(참조 1)도 결국은 평이 별로 안 좋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냥 없는 셈 칠까? 그냥 나타났다 사라진 UFO처럼 여기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오히려 미국이 연구한 것이 있다(참조 2). 게다가 미군은 내년, 바로 저 장소에 육군 미술관을 개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과연 친 나치 작품들을 그때 공개할까? 게다가 그 연구를 보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친 나치 작품들 중에 모더니즘 작품들도 꽤 존재한다. 나치가 모더니즘을 싫어한 건 맞는데, 그냥 일관성이 없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예술가들의 문제도 있다. 타락했다는 비판을 받은 후, 자기 스타일을 고쳐서 승승장구하다가, 독일 패전 이후 다시금 추상 스타일로 바꿔서 거의 꺼삐딴 리 급으로 계속 성공한 작가도 있는 모양이다. 즉, 에밀 놀데에 대한 독일의 차디찬 반응이 좀 위선성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예술계가 실질적으로는 나치 청산을 못 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이게 다 인간의 삶보다 그림에 훨씬 더 신경썼던 독재자 한 명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 참조 1. 에밀 놀데(2019년 6월 19일): https://www.vingle.net/posts/2630740 2. 가령 뉴욕 St. John’s University의 Gregory Maertz 교수가 쓴 Nostalgia for the Future(2019년 5월) : https://cup.columbia.edu/book/nostalgia-for-the-future/9783838212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