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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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이 그렇게 만든건 한국인을 멸시하려고 그랬을 거에요"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의 역사인식 수준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는게 놀랍네요..

한국여행을 와서 시장을 가보고, 맛집투어를 하고, 등산을 하는것도 좋지만
이렇게까지 한국에 대해서 깊이있게 이해하고
한국의 역사를 느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요.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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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 덕분에 TV 각종 좋은 프로 그중에서도 개념차고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알게되어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독일차는 사도 되고 일본차는 사면 안됩니다. 유니클로 포함 ㅋ
@sin6erela 감사합니다😢 더 좋은 카드를 올리고 싶어지네요
독일친구들편은 항상 좋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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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아직 메신저로 쓰니?
한때 카카오톡 사찰 파동으로 사이버 망명이 급부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와중에 카카오톡의 불안한 보안의 반사작용으로 인기를 끈 메신저가 있습니다. 바로 텔레그램(Telegram)입니다. 그 당시 연락처에 저장된 많은 지인들이 우르르 가입하고 그래서 제 계정엔 100명 가량의 친구가 등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카톡에 불만이 많았던 분은 아예 카톡을 버리고 이사오는 분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직접 이용할 기회가 열리면서 텔레그램의 장점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다음과 같은 장점들은 텔레그램을 메신저 그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주기도 했습니다! 1. 주요 OS를 지원하는 장점! 정확히는 모바일은 안드로이드, iOS, 윈도우 데스크톱/랩톱은 윈도우, 맥OS, 리눅스까지 지원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웹브라우저를 통한 웹버전도 지원하니까 어느 기기나 어느 플랫폼에서도 사용가능한 장점이 있습니다. 스마트폰 한 대, PC 한 대 정도만 사용하는 분에겐 이게 무슨 장점인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다양한 기기를 사용하거나 그래야만 하는 분들에겐 이거만큼 대단한 장점은 없습니다. 멀티 디바이스 지원도 원활한데 심지어 동시 접속도 가능합니다. 카카오톡은 모바일에선 단 1대만 이용가능하고, 데스크톱/랩톱도 동시 접속은 1대만 가능한 점에 비하면 대단한 장점이죠. 2. 보안성 카카오톡 보안 논란 때문에 망명 온 정도니까 보안성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텔레그램을 만든 개발자 두로프 형제가 푸틴의 정보 공개 요청에도 절대 굴하지 않았던 점을 보면 텔레그램의 보안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해외에 서버가 있는 텔레그램은 정부의 감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종단간 암호화 기술 측면에서도 사이버 망명 당시 카카오톡보다 나았던 것도 장점이었습니다. 3. 오픈 API입니다! 오픈 API라는 의미는 텔레그램 제작자가 아닌 외부 개발자나 개인이 텔레그램을 활용해 입맛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개방성을 말합니다. 카카오톡이 오픈 API가 아니기 때문에 매번 카카오측에서 만들어주는 기능만 이용이 가능한 것인데 반해서 텔레그램은 무궁무진한 활용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이 세가지 장점을 한 데 엮어내서 카카오톡이나 다른 메신저로는 생각치도 못한 기능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바로 봇과 채널이라는 기능입니다. 봇=직접 입력한 내용을 통해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기능 채널=채널을 개설한 사람이 보내는 정보를 받아볼 수 있는 기능 텔레그램엔 이 두 기능을 이용한 매우매우 유용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주요한 것들만 뽑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주요 언론 기사 받아보기 링크: https://telegram.me/mainnews 하루에도 뉴스가 너무나도 많이 쏟아집니다. 네이버만 가도 너무 많은 뉴스의 홍수에 마주치는데, 이 채널은 딱 주요 언론의 헤드라인 뉴스만 쏙쏙 뽑아 보내줍니다.  2. 핫딜, 지름뽐뿌 받아보기 링크: https://telegram.me/jirum 뽐뿌, 딜바다, 클리앙, 몰테일 카페 등에 올라오는 국내외 핫딜 게시물을 전해줍니다. 이정 댓글수나 추천을 넘으면 자동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하루종일 눈팅할 필요 없습니다. 3. 주요 커뮤니티 베스트 글 받아보기 링크: https://telegram.me/best_article 클리앙, 오유(베오베), 보배드림, 엠엘비파크, 뽐뿌, 82쿡 등 거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물 중 조회수와 댓글이 많아 화제가 되는 글을 끌어오는 채널입니다. 각 커뮤니티를 다 돌아다니지 않고 그 커뮤니티엔 무엇이 뜨거웠는지 알기 참 편해집니다. 4. 중고나라 시세 검색기 링크: https://telegram.me/jinsyu_joonggonara_bot 중고로 물건을 사고 팔 때 누구나 한번쯤 가는 가장 큰 중고거래 장터인 네이버 중고나라를 편하게 쓸 수 있는 봇입니다. 키워드만 딱 입력하면 판매완료된 물건들의 가격을 손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고나라엔 양심은 팔지 않는가 봅니다 ^^;; 5. 주가 검색기 링크: https://telegram.me/kor_stock_bot 주식 상태를 검색하기 쉬운 봇입니다. 기업 이름이나 번호를 입력하면 간략한 정보를 조회할 수 있습니다. '상한가/하한가’ 를 치면 상한가나 하한가를 치는 주식을 알 수 있습니다. 6. 미세먼지 알리미 링크: https://telegram.me/airkorea 최근 중국발 미세먼지가 극성입니다. 하루 종일 미세먼지 수치를 보면서 외출활동 여부를 정하곤 해야할 지경입니다. 이 채널은 7, 11, 15, 19시마다 전국 미세먼지 수치를 알려줍니다. 7. 좋은 글 명언 채널 링크: https://telegram.me/banjang9 매일 아침 하나의 명언이나 좋은 글을 보내줍니다. 좋은 글과 함께 활기찬 하루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들은 사실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픈 API인 까닭에 누구나 달려들어 입맛에 맛게 커스터마이징해서 텔레그램을 스마트하게 이용할 수 있으니 검색 엔진에서 검색 해보세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롭고 놀라운 뉴욕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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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이 미인대회서 60㎝ 흉터를 드러낸 까닭
“비키니를 입고 무대에 서는 일이 쉽진 않았어요. 등에 60cm가 넘는 흉터를 가진 채로요.” 미국 메릴랜드주 맨체스터 출신의 빅토리아 그레이엄(22)은 미인대회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환한 미소와 늘씬한 몸매. 올해의 ‘미스 프로스버그’로 뽑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지만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영국 BBC는 28일(현지시간) 희귀질환을 딛고 삶을 개척해가는 빅토리아의 사연을 소개했다. 언뜻 보면 여느 미인대회 참가자와 다를 바 없는 빅토리아는 선천적인 엘러스-단로스 증후군(EDS)을 앓고 있다. 피부와 뼈 등을 지탱하는 결합조직이 약해져 쉽게 멍이 들고 관절이 과하게 움직이는 희귀병이다. 결합조직은 모든 내장기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심할 경우 장기가 저절로 파열돼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빅토리아는 EDS 판정을 받기까지 3년간 수많은 의사를 만나야 했다. 자신이 왜 그렇게 자주 다치는지, 관절이 왜 그토록 유연했는지 13세가 돼서야 알 수 있었다. 빅토리아는 “정말 이상했다. 치료법이 없는 병인데, 마침내 병명을 알게 됐다는 사실만으로 황홀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상태를 알면서도 빅토리아는 평범하게 생활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아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에게 언짢은 시선을 보내곤 했다. 장애인용 주차 패스를 사용하다 사람들과 언성을 높이는 일은 다반사였다. “19세에 학교를 그만두기 전까지 주위에 제 상태를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병을 알리는 과정이 저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도울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빅토리아는 2014년부터 2년 동안 뇌와 척수에 10번 이상 수술을 받았다. 척추가 제멋대로 탈골되곤 했기 때문이다.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길게 이어진 거대한 흉터가 남았다. 2시간마다 통증을 완화하고 몸의 기능을 바로잡아주는 약을 20~25정씩 먹어야 했다. 그래도 빅토리아는 새로운 꿈을 꿨다. 미인대회 참가는 수술 직후 만든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빅토리아는 대회에서 당당히 자신의 병을 밝혔고, 지역 타이틀인 ‘미스 프로스버그’를 차지했다. 빅토리아의 SNS에는 왕관을 쓴 채 ‘나는 보이지 않는 병을 갖고 있어요’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사진이 걸려 있다. 빅토리아는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덕에 어린 EDS 환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비영리단체인 EDS 지원 단체도 운영 중이다. 빅토리아의 목표는 글로벌 EDS 지원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쉽지 않았다”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어리고 학위도 없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누구도 하지 않는다면 제가 그 ‘누군가’가 될 겁니다.”
노벨상도 타버리는 1700년전 진나라 의학.jpg
맨밑에 세줄요약 있음 2015년까지 중국엔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없었다. ??? 뭔소리임? 한국이 이과 노벨상 없는건 많이들 아는데 중국이 노벨상 못탔단건 못들었는데?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중국'이라 함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의미하고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으로' 이과분야 노벨상 탄 중국인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노벨상 탄 중국인'은 많았다. 근데 그 사람들은 전부 '중화민국 국적'이거나, 공산화를 피해 도망친 화교거나 그런 사람들이다. 뭐 국제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국'의 UN 지위를 계승한 나라가 맞긴 한데 국공내전 전에 땄으면 모를까 중화민국 나가리되고 딴거라 이게 참 애매... 국공내전때 과학자들이 다 대만 미국으로 도망가고, 문화대혁명으로 과학자가 다 맞아죽었는데 그럼 공산 중국에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겠냐. 중국은 2010년 류샤오보, 근데 정작 얘는 반공 민주화인사라 중국에선 철저히 무시당했고 류샤오보 빼면 2012년 모옌이 최초로 인정받는다. 여하튼 그래서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국적 이과분야 노벨상 수상자는 2015년에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투유유 여사가 최초이자 유일이다. 노벨물리학상 양전닝도 현재 중국국적인데 이 사람은 미국에서 연구해서 미국에서 노벨상 딴 후 2016년에 아내따라 중국국적 딴거라 중국에서 연구한건 아니다. 이분은 진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만 연구해서 1971년 말라리아 치료제로 쓰이는 아르테미시닌이란 약을 개발, 세계의 말라리아 사망률을 크게 낮춘 공로로 노벨상을 따셨다. 중국사 약간 안다면 좀 이상할거다. 1971년이면 한창 문화대혁명 시기인데? 과학자들이 전부 맞아죽고 있던 시기인데? 대약진운동으로 초토화되어서 밥도 못빌어먹고 있던 시기인데? 북한보다도 못한 ㅄ국가였던 시기인데? 그렇다. 이 여사님은 문화대혁명 와중에 아무것도 없이 맨손으로 미국, 영국도 엄두를 못내던 말라리아 치료약을 개발해 노벨의학상을 탔다. 홍위병들이 연구소를 때려부수는데 어떻게 노벨상을 땁니까? 13억분의 1의 천재가 태어나면 됩니다. 서론이 쓸데없이 길었는데 요는 이분이 현재 사실상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일한 이과 노벨상 수상자란거고, 이분이 노벨상을 받게 한 건 1700년전 갓-진나라(동진)의 의학 덕분이란거다. '그분'이 나를 해서파관으로 모욕한 중국을 부순다를 시전하고 있을 때 중국 과학계 상황은 대략 이랬다. 1. 대학입시가 공산주의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입시를 없애고 초졸, 중졸들이 대학을 점거함 2. 의사 간호사들을 부르주아라며 홍위병들이 두들겨패고 병원을 점거, 지들이 의사 행세를 함 3. 과학자=지식인=씹선비 부르주아 계층. 이하생략. 근데 베트남전쟁으로 미군에서 말라리아 사망자가 급증하고 중국에서도 베트남 난민등의 영향으로 말라리아가 퍼지는걸 본 마오쩌둥은 중국에서 퍼지는 말라리아도 제압할겸 1. 말라리아 치료제를 만든다. 2. 미군이 쳐들어온다. 3. 말라리아를 뿌린후 우리쪽에만 치료제를 배포하면 쟤네만 역병딜먹고 우리는 무사하겠네?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을 위시로 하는 523 프로젝트라는 기밀 군사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젊은 시절의 투유유도 소규모 연구팀과 함께 이 523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만약 네가 이과쪽이라면 이 시점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과학적 연구엔 기초연구도 필요하고, 기본적인 데이터도 필요하고, 과학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필요하고 등등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해외학계와의 연계나 외국의 데이터를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근데 말라리아 치료제는 이런 것들이 풍부한 미국의 하버드, 영국의 옥스퍼드 연구진들도 불나게 연구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지지부진한게 현실이었다. 근데 이런걸 아무런 기초연구도 과학 인프라도 없는 중공 학계에서 만들어라? 아 물론 기밀 군사 프로젝트니까 해외와의 연계같은것도 전혀 없이? 고인물 석유도 못깨는 나이트메어 보스를 이제 겜 시작한 뉴비였던 중국 과학계에 깨라고 하는게 얼마나 양심터진 마인드인지 감이 잡힐거다. 응 만들었어. 69년에 연구시작해서 71년인 2년만에 진짜 약이 나온다. 아무런 인프라도 데이터도 해외 의학과의 연계나 외국 논문 하나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투유유가 유일하게 희망을 가졌던건 중국 전통의학이었다. 중국의 여러 의술서나 한국의 동의보감을 포함한 많은 동양권 의술서는 학질(말라리아)의 치료제로 청호(개똥쑥=풀의 일종)을 적고 있었고 투유유는 이에 개똥쑥을 달여 약을 만들어보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개똥쑥 달인 약은 말라리아에 아무런 효과도 없었음.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란 보통 각오로 되는게 아니다. 투유유는 고대 춘추전국시대부터 청나라기에 이르기까지 수백 수천권에 달하는 전통 의술서를 미친듯이 찾아본다. 왜냐하면 홍위병이 연구소를 불태우고 해외 데이터 하나라도 들여왔다간 반동분자, 간첩으로 맞아죽는 판국에 찾아볼 수 있는게 그거밖에 없었거든. 이것도 그 전통 의술서마저 봉건주의 유산이라며 불타던 와중에 간신히 하나하나 구해서 찾아본거였다. 그러다 고대 동진시대의 도사겸 의원이었던 갈홍의 저서 '주후지급방'에서 한가지 문구를 찾는다. "한 줌의 청호(개똥쑥)를 2승의 물과 함께 비틀어 짜서 마시라" 이 문구에서 힌트를 얻어 투유유는 기존 개똥쑥을 달여서 만드는 방법 대신, 저온에서 개똥쑥을 추출하는 방안을 고안해낸다. 그리고 아르테미시닌 발견에 성공한다. 이게 개똥쑥에 들어가있는 물질인 건 맞았는데, 고온에서 소멸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거든. 고대 말라리아로 고생하던 중국의 의원들이 청호를 찬물로 짜서 약을 만드는 법까지는 발견했는데, 그게 오호십육국 수 당 정강의 변 몽골 침략 등등을 거치면서 중요한 '저온에서 짜서 만들라'는 알맹이가 사라지고 그냥 '개똥쑥 먹으라'는 것만 달랑 내려왔던게 사연의 내막이었다. 여차저차해서 약을 만드는데는 성공했는데, 문제가 하나 남아있었다. 고대 의술은 아스테릭스 마법포션이든 뭐든 되는대로 적고 이거 약이라고 우기면 되는 세상이었지만, 현대 의학에서 뭔가 약을 만들려면 '연구입증과정'을 거쳐야했다. 근데 우리 마오동지가 중국을 다 때려부숴주신 덕에 이 연구입증과정을 거칠만한 기본적인 인프라도 뭣도 없었다. 그러니까 약은 만들었는데 입증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 투유유는 자기 몸에 치사성이 있는 말라리아 원충을 주사하고 자기가 만든 약을 투약했다. 중공엔 과학 인프라 뭣도 없었지만 인권 연구윤리도 없었거든 ㅇㅇ 지 목숨 걸고 생체실험 한거임. 아무튼 그래서 아르테미시닌이 만들어진다. 아르테미시닌은 기존 말라리아 약에 비해 훨신 저렴하고 치료율도 높아서 아르테미시닌이 보급되기 시작한 2008년 잠비아의 말라리아 사망률은 보급전에 비해 66%나 하락한다. 말라리아가 세계에서 사람 가장 많이 죽이는 병으로 1, 2위 다툰단걸 감안하면 이분이 살린 사람이 족히 수천만명은 되는 셈이다. 덤으로 말라리아 원충만 때려잡는게 아니라 항바이러스 효과도 있어서 수많은 바이러스성 질환에도 투입되고, 현재 코로나19 치료에 쓰이는 칵테일 요법에도 들어감. 아쉬운 건, 아르테미시닌은 현재 말라리아 퇴치의 1등 공신으로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노벨상 수상이 2015년이란데서 알 수 있듯 이 약이 퍼지고 투유유 여사가 인정받는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일단 70년대엔 뭐라도 똑똑한척 했다간 홍위병에게 맞아죽는 판국이었기에 발표를 미루다가 81년 WHO에 발표했는데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후진국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말라리아 약을 만들었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그거 출처가 어떤 아줌마가 1700년전 고대 의술서 보고 만든거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빅웃음 반응을 얻었고 90년대 들어서야 재조명, 2004년 영국의 권위있는 학술지 더 란셋에서 아르테미시닌의 말리리아 치료율에 대한 연구가 실리고 난 후 같은해 WHO는 아르테미시닌을 말라리아 최우선 치료제로 지정한다. 이로서 아프리카 등지의 2000년대 들어 말라리아 사망률은 크게 감소함. 그 후 2011년에 래스커상을 타고 2015년, 85세의 나이에 들어서야 노벨의학상을 수상한다. 근데 투유유 여사는 사실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서도 인정을 못받았다. 중국 과학계는 해외유학파를 중심으로 한 인맥, 특히 박사보다 더 높이 있는 '원사'라는 지위가 존재해서 미국 영국등에서 해외유학하고 돌아온 유학파 원사들의 친목질 전당인데 투유유는 원사는 커녕 박사도 못따고 석사 학위에만 머무르며 중국 중의과학원(전통의약재 연구하는)에서 가난하게 재직하고 있었다. 괜히 중국 언론이 투유유가 노벨상 탔을때 3무(無) 과학자라고 놀란게 아니다. 박사학위 없고, 원사학위 없고, 해외유학 경험 없다고 해서 3무다. 근본적인 원인은 투유유는 해외유학이나 과학자들 사이에서의 친목질에 관심이 없었고 이 때문에 하버드 유학파니 예일대 유학파니 하는 중국 과학계에서 철저하게 배재되어버렸던것. 당연하지만 아르테미시닌 자체가 '중국정부개발'로 되어있어서 특허나 이런걸로 돈버는건 꿈도 못꾸었다. 투유유는 매우 겸손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자기가 노벨상 탄 사실을 집에서 TV보다 뉴스로 알았는데 기자들이 집에 몰려오자 귀찮다며 문도 안열어주다가 신화망 기자의 간청에 겨우 그를 집에 들여보내준다. 그리고 수상소감을 묻는 신화망 기자에게 딱 잘라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 말이 별로 없는데. 난 아직 할 일이 많다고. (也没什么好讲的. 我还有很多要做的事.) 투유유 여사는 91세에 이른 지금까지도 중의과학원에서 중국 전통약재를 현대의학적으로 연구, 분석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세줄요약: 1. 현재 중화인민공화국 국적 유일한 이과 노벨상 수상자는 투유유 여사다. 2. 투유유 여사의 연구는 동진시대 도사 갈홍의 저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3.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지네 유산을 다 갈아버린 걸로 유명하지만, 그 갈아버리고 남은 것만으로 노벨의학상을 탈 정도로 후손들을 조상들이 커버쳐주는 동네다. (출처) 진짜 인류대구원급 문화대혁명이 없었던, 민주주의 사회의 중국이 있는 평행세계는 어떤 세상일까 ㄷㄷ
세종대왕은 사람을 어떻게 등용했을까?
세종대왕 시절의 유명한 대신이나 학자들 가운데 꼬투리를 잡자면 잡히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택현론을 주장해서 세종대왕이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유정현은 아주 인색한 고리대금업자였고, 집현전 신진학자들 중 맏형 격인 정인지는 본인의 생활은 검소하나 재산 늘리기를 좋아해서 이웃의 전답까지 점유한다고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천재로 가장 높은 학문과 경륜을 인정받아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변계량은 장가들었다가 아들을 낳지 못한다 하여 아내를 버리고 다시 장가들기를 수차례나 반복했습니다. 조선시대의 가장 뛰어난 정승으로 꼽히는 황희는 서얼 출신으로 공격을 받기도 했고, 역적의 아내를 숨겨 두고 간통을 저지른 것으로 탄핵을 받았으며, 태종이 양녕대군을 세자에서 폐할 때 양녕대군을 비호했다 하여 귀양살이까지 했으며, 수많은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이름이 오르내렸습니다. 10여년간 이조판서를 지내며 세종의 인사 시스템을 정비한 허조는 지나치게 깐깐하여 다른 신하들의 기피 대상이었고, 청백리로 유명한 정승 맹사성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고려 시절 라이벌이었던 최영의 외손자였습니다. 최고의 과학자로 이름을 떨친 장영실은 귀화한 중국인과 기생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으며, 북방 개척으로 유명한 장수이자 정승의 반열에까지 오른 최윤덕은 어린 시절 그릇을 만드는 천민의 손에서 자라 학문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출신 배경과 여러가지 결함을 가진 인재들을 모아 그 단점들을 가다듬고 장점들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하여 국가 전체의 경영에 어우러지게 만든 지휘자가 바로 세종대왕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이처럼 사람을 씀에 있어서 국가를 경영하는 큰 틀에서 생각하고 판단했습니다. 허물을 먼저 보고 사람을 재단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보위에 오른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대신들과 조회를 하는데, 태종의 장인인 김점이 와서 자기 자식이 감기에 들었다 하며 어의의 진찰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청을 했습니다. 이때는 태종이 상왕정치를 하던 시절인데도 세종대왕은 태종의 장인을 심하게 질책했습니다. 공적인 업무를 보는 자리에 사사로운 일을 가지고 와서 청을 하였다는 것이고, 그 일에 대해 탄핵하지 않은 사간원의 관리들까지 비겁한 소인배라며 나무랐습니다. 김점은 끝내 세종 시절에 중요한 벼슬을 하지 못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철저하게 공적(公的)인 분야에서 일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를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사적(私的)인 부분은 교화(敎化)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인재를 쓰는 데 편견이나 선입견을 배제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백성들에 대해서는 항상 긍휼히 여겼지만, 무조건 어질게만 하지 않고 법치의 효율성이 전체 백성들에게 더 큰 이익을 준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세종대왕의 포용력은 무조건적인 포용이 아니라 공과 사의 구분을 철저히 하고 목적지향적으로 취한 포용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포용의 가치를 실행함으로써 조선초기 안정과 통합을 이루어냈습니다. 출처. <포용의 힘> 정현천 저
발레와 한복이 만났을 때.gif
발레 <춘향> 공연 속 한복들 이정우 디자이너=“‘발레 춘향’은 제가 추구하는 것과 딱 들어맞는 작품이에요. 고전과 현대, 동양과 서양, 남과 여의 만남이 다 녹아있죠. 아무도 엄두를 못내던 때 프랑스 파리에 한복을 들고 갔을 때와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제의를 받고서는 두말않고 하겠다고 했죠. 테마가 확실해서 오히려 작업하는 게 쉽고 즐거웠어요. 세계 어디에 내놔도 관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의상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났죠. 그러다 보니 패턴만 수십번을 떴고, 가봉만 10번 넘게 했죠.”   문훈숙 단장=“한복과 발레는 통하는 게 많아요. 한복의 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해가 갈수록 깨달아요. 발레도 결국 라인, 선이 중요한 예술이니까요. 무용수들에게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가,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지 말고 내 몸이 스피커라고 생각하고 추라고 하거든요. 의상도 그냥 입고 추는 게 아니라 춤을 표현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기사출처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54020 2019년 공연 영상 왼쪽이 문훈숙 단장 오른쪽이 이정우 디자이너 이정우 디자이너님은 전지현 시어머니로도 알려져 있음 출처 와 흩날리는거 너무 아름답네요... 발레와 한복의 만남 대찬성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