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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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김연아 소치올림픽 은메달에 대한 세계 언론들 반응

호주 신문사의 돌직구

소트니코바 사진에 "얘가 이김"
김연아 사진에 "얘가 이겨야했음"



당시 미국 ESPN 올림픽 홈페이지 메인
대문짝만하게 "홈 어드벤티지"
ㅋ...




미국 CNN의 메인

"논란많은 피겨스케이팅? 그럼! (Yep!)"
"제가 느끼기엔 도둑맞은거 같아요 (메달을)" 미국 올림픽 선수가 말했다.  




뉴욕타임즈 신문 기사 제목은 "뒤틀린 금"


“17세 소트니코바가 올림픽 챔피언 김연아를 꺾고 금메달을 차지했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채점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이 기사 안에는 전 피겨스케이팅 선수이자 캐나다 CBC 해설자인 커트 브나우닝이 인터뷰를 했는데어떻게 단 하루만에 소트니코바가 (김연아보다)잘 할수 있었던건지 자신은 이해할수 없다고 실력 외에 다른 요소(러시아 압력)가 작용한것 같다고 인터뷰 함.








워싱턴포스트 기사 中

 "그녀의 점수는 김(연아)과 비슷했지만,그녀가 어느 한부분이라도 김연아와 같은 예술적인 것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면 굉장히 우스운 일이다.그들 모두 좋았지만 좋다는 것에도 레벨이 있다. 한가지는 네가 너의 할머니가 가족모임에서 차차를 췄기 때문에 좋은 댄서였다고 말하는 방식의 좋음이다. 다른 하나는 수석 발레리나의 좋음이다."


수석 발레리나 = 김연아
할머니의 차차댄스 = 소트니코바
(비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국 야후 스포츠 “스캔들, 사기, 피겨 스케이팅의 종말"


'소치 피겨 점수조작, 1년 전부터 공작한 사기극이다'






프랑스 스포츠 사이트 l'equipe

기사 타이틀 : 스캔들!

부제 : "심판들은 러시아에게 첫번째 피겨 스케이팅 올림픽 챔피언을 제공했지만 ,
아델리나 소트니코바는 그 자격이 없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췌차이퉁(Süddeutsche Zeitung) 스포츠면 기사

소트니코바의 금메달에 대한 논란을 설명하면서 편파판정 이후 김연아가 얼마나 세련되고 쿨한 태도를 보여줬는지에 대한 얘기를 덧붙임.그리고 피겨 선수들,해설가들의 이해할수 없는 반응을 실었고 다른 세계적 일간지에서 이 편파판정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적음(물론 러시아 제외,전부 결과를 이해할수없다는 반응)






전 피겨선수였던 독일의 카타리나 비트는
김연아가 은메달을 따자,독일 방송에서 사자후를 토함ㅋㅋㅋ
저도 아닌것 같네요...





유럽 매체인 유로스포츠는 2014 소치올림픽 당시
'소치 올림픽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톱10'에

김연아 편파판정을 1위로 뽑았습니다



호주 언론 또한
'스포츠 역사 최악의 판정5'에
김연아 편파판정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김연아 편파판정을 보고
빡친 이탈리아 대학 교수는
아예 논문 까지 내버림
러시아 제외 세계 여러나라들 전부 공통된 반응이었던 그때그 2014소치올림픽 피겨...



+ 메달도 주인을 알아본다
연아가 메달에 입을 맞추자
은메달이 금메달로 바뀌는 기적의 짤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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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더 간절한 사람이 금메달을 가졌다←개쿨 소름
올림픽에서 금메달 두 번 딴 선수가 역사상 단 두명밖에 없는데 러시아는 위대한 역사를 가로챈거다
역사 왜곡이죠ᆢ
누가 뭐라해도 연아킴은 금메달
연아가 괜찮다고 서운한거보다 시원한게 더 크다고, 다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했어요. 전세계가 다 알고 있어요, 연아 신경 안 쓰이게 우리 이제 이런거 그만 가져옵시다 ㅎㅎ
당연히 금이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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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사를 그만 두기로 했다.(51)
팔로워가 1,000명이 넘으면 중간 변화상황을 공유하기로 예전에 약속을 했었다. 사실, 익명의 힘을 빌었기에 사진을 올리는 것이지 여간 부끄러운게 아니다. 다만 이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진을 올리는 이유는, 평범한 대한민국 아저씨도 변할 수 있다는 하나의 기록을 공유하고자 함이다. 멋진 식스팩이 넘치는 인터넷 속에서 간만에 평범한 사진으로 위안을 얻으시길 바란다. 3개월. 난 지난 100일간 평범한 한국의 회사원으로서 조금씩 삶을 되찾아오는 과정을 기록했다. 그런 가운데 차마 피할수 없는 11번의 회식, 8번의 술자리, 42번의 야근이 있었다. 또한 내 삶 속에선 매우 아팠던 날도, 사랑하는 가족을 하늘로 보내기도 했던 쉽지만은 않은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3개월을 총평하자면, '단 하루도 퇴사하고 싶지 않은 날이 없었다' 라고 말하겠다. 나날이 기록한 운동. 수영 21.5km (7,560 kcal) /사이클 29km (8,700kcal) / 러닝 60km (42,000kcal) 를 뛰어 결과적으로, 지방 -4kg 허리-3인치가 줄어 버리려던 바지를 다시 꺼내입었고 사라진 무릎 통증 덕에 활동폭도 넓어졌다. 집에오면 자연스레 꺼내먹던 맥주+감자칩의 행복은 잠시 잊고 살던 시간이었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한결 개운해졌다. 아니다, 사실 아침은 여전히 힘들다. 50개의 글. 다시 읽어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회사 x 같다. 바뀌길 바라는데 안바뀐다. 더러워서 내가 나간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이해안가는 점이 많고 외국에서 일한 경험에 비춰볼때마다 안타까움을 많이 느낀다. 그렇게 지난 3개월간 회사를 돌아보며 퇴사를 위한 마음을 먹었다면 4월부터는 본격적인 시도에 돌입한다. 퇴사를 마음먹고 단 하루도 흔들리지 않은 적이 없다. 앞으로 흔들리지 않을거라 차마 장담은 못하겠다만 어찌됐건 계속 나아갈 생각이다. 아마 그렇게 하나씩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 또한 조금씩 공유하도록 하겠다. 끝으로, 내가 해보니까 말하지만. 우리나라 회사원들이 부족해서 자기계발 안하고 가족을 안챙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시스템이 x같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회사원들 화이팅이다.
잘나가던 모 개그맨 근황...
이 익숙한 하관, 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뾰족뾰족한 덧니... 상당히 마른듯한 몸... 한때 굉장히 잘 나갔던 모 개그맨의 모습입니다. 그는 바로...! 개그맨 한민관인데요. "스타가 되고싶으면 연락해~" 라는 유행어도 참 인기있었죠. (뒤에 초아씨 반갑네요 ㅎㅎㅎ) 잠시 잊혀진듯 했던 개그맨 한민관의 근황 소식을 들었는데요. 와 대박입니다... 한때 TV 레이싱 프로에도 패널로 나오고, 1박2일 등에서도 레이싱 이야기를 종종하던 한민관, 그는 어엿한 카레이싱 선수가 되어있었습니다. 단순히 취미로 하는 것 이상이죠. 왜냐구요?? 보이시나요? 숫자가 작아 잘 안보일 수도 있겠지만... 무려 2위에서 한민관 씨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위와의 격차도 좀 나지만 3위와의 포인트 격차도 꽤 나죠?? 와~~우...실제 한민관은 카레이서로 변신해 지난해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서한퍼플모터스포트 레이싱팀 소속 선수인 한민관은 2015년 시즌 2위에 랭크!!! 1위에 오른 서주원 선수가 워낙 압도적인 기량을 가지고 있어 차이가 좀 있지만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3위 선수와는 30포인트 이상 앞섰네요... 민관은 경기를 관람하다 레이싱의 매력에 푹~~~빠져 지난 2008년부터 본격적인 레이서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블로그 후기에서도 종종 카레이서 한민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더라구요~~~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같죠? 카레이서 한민관의 멋진성적, 2016년에도 기대합니다~~ 외로운 빙글러에게 하트와 댓글로 관심좀 주세요. (찡긋_★)
오랜만에 장염
투표날 같은 동네 전 직장에서 친했던 형아가 확진자에서 풀리고 형수님이 오랜만에 고향 내려가셨다고 한잔 하자고 불러서 나감 . 저거 바베큐 양념인데 왜이렇게 매운가 하고 먹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불닭 바베큐 였음. 이게 이런 고생을 낳을줄.... 다음날 출근하는데 그 와중에도 검암역에서 내려 김포 고촌 까지 자전거로 출근... 평소에는 청라 국제도시역에서 자전거로 출근인데 배 아퍼서 한 정거장 덜 탐.. 아침에 일어나서는 뭐 자다 일어나서 그런갑다 했는데 이때도 몸에서 슬슬 고열이나고 참다참다 조퇴함 (회사에서 온도도 여러번 제고 자가키트도 했는데 코로나 아닐거라 합리적인 생각만함) 조퇴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도저히 안되서 계양역 까지만 자전거 도중에 속 울렁거린건 못 참아서 지나가는 어떤 아저씨한테 저 속좀 개워내려고 하는데 등좀 때려주세요( 그 아저씨도 뭐 이런놈이 있냐고 생각 하시면서 해주심) 개워내는건 실패! 일단 집에 도착해서 세탁기 돌리고 뻗음(습관이 그날입은 옷은 그날 다 세탁! 헌옷은 있어도 세탁 안한옷은 없다는거 ㅋㅋ) 한숨 뻗고 일어나니까 머리서 열나고 얼마전 독감보다 좀 센거 같다는.. 아파도 할건 해야지 하면서 씻고 짐챙겨서.... 회사를 금,토,월 이렇게 일요일 포함 4일 쉬는거라 금요일 아침에 본가 가고 월요일에 돌아오는 표를 예매했는데 취소하고 목요일에 내려가는 계획으로 바꿈. 공철과 급행타는 긴 시간에도 기력은 없고 남들 다하는 휴대폰도 안하고 멍하니 감.... 터미널 도착해서 혹시 모르니 온도 체크 해보니 정상 오미크론은 아니다 라는 안도감...? 오후 6시 속도 점심도 안먹고 저녁도 안먹고 요거 하나 먹으면서 버스타고 내려옴. 저 불닭을 먹은 기준으로 정확히 2박 3일동안 화장실 30번은 넘게 감... 하다하다 토요일 오전에 병원가서 진료 받음 의사 선생님도 내 증상을 알고 있는게 말씀하시는게 하나 하나 내 이야기임. 입이 바짝 마르고, 몸에 열나고, 속에서 보글보글 끓고.... 의사 선생님이 죽이랑 바나나 홍시 이런게 배탈났을때 효과 있다고 먹으라셨는데... 생각해보니 어제 저녁에는 전복과,새우,멍게(여름빼고 철마다 한번씩은 집에서 해산물)먹고 오늘 아침에는 꽃게탕 먹었었네.... 그리고 점심에는 간짜장 저녁에는 피자 그리고 아침에 먹은 약발이 먹혔는지 좀 낳아졌네요^^ 결론 하나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음식에 "불" 이라는 글자 들어간 건 다신 없다! 둘 장염이여도 자극적인것만 아니면 먹고싶은건 먹자! 그리고 난 왜 저 형아 만날때마다 내상을 입을까? 첫번째 만남에서는 한 10년만에 소맥을 먹게해서 다음날 고생하고... 두번째에는 불닭을 먹여서 날 장염에 걸리게 하고
근대 폴란드 저항의 역사를 알아보자.jpg
1794년 코시치우슈코 봉기(Insurekcja kościuszkowska)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독일과 러시아에 나라를 팔아넘긴 귀족들 탓에 갈기갈기 찢겨서 완전히 소멸해버릴 위기에 쳐하자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adeusz Kościuszko) 장군을 중심으로 뭉친 폴란드인들이 바르샤바에서 봉기함. 코시치우슈코는 리투아니아 하급귀족 출신으로, 본래 폴란드군이 아니라 미국 독립전쟁에서 대륙군(미군)으로 활동하며 장군까지 오른 사람임. 미국에서는 전쟁영웅으로 대접받았지만 조국이 위기에 쳐했다는 소식을 듣고선 미국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부와 명예를 모두 버리고 귀국함. (이 때 절친이었던 토마스 제퍼슨이 가지말라고 말림. 심지어 자신 밑에 있던 흑인노예들도 다 해방 시켜줬음.) 봉기군은 한줌 밖에 남지않은 정규군과 애국심으로 몰려온 농민들로 구성된 오합지졸이었지만 코시치우슈코의 지휘력에 힘입어 자신들의 두배가 넘는 러시아군을 여러 전투에서 격파함. 하지만 결국 알렉산드르 수보로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에게 대패하고 코시치우슈코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압송되면서 막을 내림. (비록 졌지만 코시치우슈코는 21세기 현재도 폴란드인들의 국민영웅으로 대접받고 있음. 지금도 크라쿠프에 가면 이 사람을 기리는 거대한 언덕이 세워져있음.) 1800년~1815년 나폴레옹 전쟁  나폴레옹이 집권한 프랑스제국이 온 유럽을 정복하자 이에 힘입어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프랑스군에 종군하여 조국을 되찾고자 함. 그리고 1807년에는 나폴레옹이 직접 '바르샤바 공국'이라는 괴뢰국까지 만들어 줌. 나폴레옹 밑에서 싸웠던 폴란드 마지막 왕의 조카인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Józef Antoni Poniatowski)는 폴란드인들의 구심점이 되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정말 물불 안가리고 열심히 싸움.  1812년 러시아 원정 때 나폴레옹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부활'을 약속했고 이에 바르샤바 공국은 10만대군을 편성하여 참전함. 모스크바에 제일 먼저 진입한 것도 폴란드 기병들이었음. 하지만 나폴레옹은 결국 러시아원정의 실패로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포니아토프스키도 1814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싸우다 강물에 빠져 익사해버림. 1815년 워털루 전투를 통해 나폴레옹이 끝장나고 그를 열렬히 따랐던 폴란드는 열 받은 유럽열강들에 의해 다시 한번 갈기갈기 찢겨짐. (위의 코시치우슈코처럼, 포니아토프스키도 폴란드의 민족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음. 우리나라 광화문에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있는 것처럼 바르샤바 대통령궁 앞에는 포니아토프스키의 동상이 우뚝 서 있음.) 1830년 11월 봉기 (Powstanie Listopadowe)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폴란드는 러시아 제국의 속국인 '폴란드 입헌왕국'으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는데, 러시아의 차르 니콜라이 2세는 폴란드인들을 철저하게 탄압하며 압제정치를 펼침. 이에 분노한 폴란드 사관학교 생도들이 무기고를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키면서 수천명에 지나지 않는 폴란드군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함. 여기에 나폴레옹 전쟁에서 싸웠던 노장들이 합류하자 폴란드군은 10만이 넘는 러시아군을 3번이나 이기며 분투함. 하지만 계속되는 소모전으로 인해 폴란드군은 숫자가 줄어드는데 반해 러시아군은 무한정으로 충원됐으므로 결국 전쟁의 지속이 불가능해진 봉기군은 러시아에게 항복하고 함. 빡친 니콜라이 2세는 폴란드 입헌왕국의 권한을 매우 축소해버렸고 폴란드는 이제 러시아의 식민지로 전락함. 폴란드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쇼팽의 작품들은 대부분 이 시절 암울한 조국의 상황을 바라보며 쓴 곡들임. 쇼팽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몸이 허약했고 러시아가 귀국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바람에 이렇게 음악으로라도 조국을 응원했던 것임. 1863년 1월 봉기 (powstanie styczniowe)  1855년부터 러시아제국은 폴란드인들을 군대로 집병하기 시작함. 당시 러시아군의 복무기간은 25년이었던지라 당연히 폴란드인들은 끌려가기 싫어했음. 거기다 새로 즉위한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폴란드인들에게 '개혁따윈 없으니 꿈도 꾸지 말라'고 못 박으면서 엄청난 분노를 삼. 그리고 러시아가 대외적으로 크림전쟁의 패배를 통해 약한 모습을 보이자 지하에서 활동하던 독립세력들의 주도로 반러 정서가 점점 심화되었고 1861년에는 아예 폴란드 전체에 계엄령이 내려질 정도였음. 결국 억압 되어있던 분노와 폭발하면서 독립세력들은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함. 이 봉기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고 귀족, 평민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이 참여함.  봉기군은 전면전을 회피하고 원시림으로 숨어들어가 게릴라전을 펼침. 러시아군은 20만명이라는 대군을 투입하여 봉기군을 소탕하려 했으나 도시와 시골 어딜가도 모든 민중들이 적대적으로 나오니 그야말로 환장할 지경이었음. 하지만 봉기군은 제대로 된 구심점이 없었고 점조직 형태로 저항했기 때문에 승기를 잡을 수 없었음. 대신 독립의 정당성을 얻기위해 다른 열강들에게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함. 특히 러시아의 가상적국 1,2호였던 프랑스와 영국에게 지원을 요청했음. 하지만 영-프는 크림전쟁이 끝난지 고작 10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시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싶어하지 않았고 오히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러시아를 지지하며 군대를 보내어 봉기군을 소탕하기 시작함. 결국 열강들의 외면 속에 봉기군은 모두 진압 당했고 빡칠대로 빡친 알렉산드르 2세는 폴란드 입헌왕국을 아예 지워버리고 폴란드를 러시아의 직할령으로 편입되어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림. 봉기에 참가했던 인원들중 수천명이 처형 당했고 사형을 면한 3만명은 시베리아로 유배 당함. (당연히 이 시절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놓이지 않았던 때라 그 먼 거리를 걸어서 갔다고 함.) 이 봉기가 너무 무자비하게 진압 당해서 폴란드인는 무력투쟁을 단념하고 학문적, 계몽주의 위주의 저항을 하는 방식으로 돌아섬. 1944년 바르샤바 봉기(Powstanie warszawskie) 2차대전이 막바지에 치달으면서 소련군이 독일군을 몰아내며 폴란드에 들어오자 폴란드 임시정부는 적어도 자력으로 독일군을 몰아내야만 전후에 폴란드가 소련에게 휘둘리지 않을 거라고 판단함. 이에 폴란드 국내군(Armia Krajowa)은 전쟁 내내 몰래 모아둔 무기들을 이용하여 수도 바르샤바를 탈환할 계획을 세움. 그리고 8월 1일, 바르샤바 곳곳에서 수많은 민중들이 국내군과 함께 무기를 들고 독일군에 맞서 싸우기 시작함. 이 봉기에는 바르샤바 시민들의 남녀노소 어른아이 가릴 거 없이 모든 폴란드인들이 참여했음. 심지어 폴란드 국내군은 봉기기간 내내 신문과 선전영화, 라디오 방송까지 송출할 정도로 조직화 되어있었음.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자체적으로 무기와 탄약을 생산하기도 함. 독일군 역시 봉기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도시전체가 들고 일어나자 당황하여 후퇴해버렸고, 폴란드인들은 바르샤바를 어느정도 탈환했음.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히틀러는 분노했고 하인리히 히믈러는 바르샤바를 지상에서 지워버리라고 명령함. 독일군은 범죄자, 포로출신들로 구성된  2선급 부대를 투입하여 봉기를 진압하도록 함. 또한 무선조종 전차, 공성 박격포, 국제협약으로 금지된 화학무기까지 써가며 도시를 지워버림. 폴란드인들도 이에 맞서 기갑병기까지 노획해가며 약 2개월간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병력과 보급이 부족해서 점차 밀림. 스탈린의 소련군은 바르샤바 근처까지 진격해왔으나 공세종말점을 넘어선 상태라 이들을 도와주기 힘들었고 오히려 그냥 빨리 투항해버리라고 종용함. 한편 서방연합군은 수백대의 수송기를 보내어 물자를 공수해주었지만 대부분 독일군 점령지에 떨어져서 봉기군이 손에 넣은 보급품은 20%도 안됐음.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폴란드군 지휘부는 독일군과 휴전을 맺고 민간인들을 먼저 탈출 시켰으며 10월 4일 폴란드 국가를 연주하며 국기 하강식을 가진 다음에 전원 항복함. 물론 항복을 거부하고 끝까지 폐허 속에서 항전하다 전사한 저항군들도 많았음. 65만명의 인구가 빠져나간 바르샤바는 이후 독일군 공병부대가 투입되어 남아있는 모든 건물들을 철저하게 파괴해 버리면서 완전 평탄화 됨. 소련군이 바르샤바가 있었던 폐허 위에 진입한 건 그로부터 2개월이 더 지난 후였음. 이 봉기로 인해 친서방 폴란드 저항군들은 회복불가능의 치명타를 입었고 전후 폴란드는 그대로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여 소련의 따까리로 전락함. 어렸을 때 '등대지기'라는 소설을 읽어본 사람 있을 거임. 작중 등장하는 폴란드 출신의 노인은 젊어서부터 폴란드에서 일어난 수많은 전쟁들에 참전하였으나 결국 끝없는 싸움에 지쳐 국외로 망명하여 파나마 근처의 작은 등대관리인으로 살아감. 평화로운 삶도 잠시, 폴란드어로 된 시집을 받고선 다시 그리움이 끓어올라 모든걸 버리고 폴란드로 돌아간다는 내용임. 이 노인은 아마도 저 위에서 설명한 전쟁들에 참전했던 역전의 용사였을 거임.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