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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책 백부 (孫策 伯符) A.D.175 ~ 200

삼국지 좋아하는 이들은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인물들이 저마다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손책".

무수한 인물들 중 하필 단명하여 임팩트 부족한 손책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후술키로 하고 일단 썰을 풀어보기로!

삼국을 형성하는 세 나라들 중 손가의 왕국 오(吳)의
대표 군주는 당연 손권.
전성기를 이끈 군주이며 최장기간 집권하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좋던 나쁘던 다수의 이슈들을 만들어낸 관계로
임팩트가 상당하다.

그러다보니 오의 초대군주로 잘못 아는 이들도 많다.
허나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국가의 삼대요소를 아시는지?
어릴 때 수업시간에 배운 기억이 나는데
"국민", "영토", "주권" 바로 이 셋.
허나 저 셋이 있어도 저 셋을 하나로 뭉치게 이끄는 리더나
보스가 없다면 저 셋이 있어도 국가의 개념을
부여하기 모호하다.

어떠한 형태의 국가건 간에 위에서 언급한 저 국가의
삼대요소 외에도 반드시 있고, 없어선 안될 것이
바로 그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


지도자의 급에 따라 국가라는 개념이 형성된다.
아무리 넓은 영토와 그 영토내 거주민들이 있어도
하나의 지도자 하에 결집되지 못하고
각 개인이나 또는 가족, 모여 사는 군락의 이익만
주요하게 되면 이는 국가로 형성되지 않는다.

손가세력이 공식국가의 기능을 발한 것은
손권이 오라는 국호를 정하고 수도를 정한 후
왕위에 오르면서부터이며 그전은 그저 세력이
큰 한 군벌집단 또는 지방호족들 대표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오"라는 손가 왕국의 첫 군주는 손권이
맞지만, 그 이전에 손가를 중심으로 뭉쳐 타세력의
지배나 간섭을 받지 않고 국가의 삼요소를 모두
갖춘 실질국가의 기능을 발한 것은 손책이 시초.


덧붙여, 그럼 그 손권과 손책의 부친 손견이
최초 아니냐는 분도 계실 수 있지만,
손견은 생전에 원술의 부하였고 독립세력의
수장인 적은 없다.
어린시절, 아버지인 손견과는 그닥 추억이 없는
가련한 장남이였다.
부친은 원술 휘하의 가장 용맹한 맹장으로서 전투에 바빴고,
비전투시도 원술의 근거지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손견은 가족을 원술세력의 중심지이자
당시 번화한 대도시 중 하나인 수춘에 머물게 했으나
집에는 자주 못 가는 전형적 직업군인 아빠였다.

어린 손책은 뭐 얼마나 잘났던건지는 별도 기록 없지만
훗날 의형제까지 맺는 주유가 손책의 명성을 듣고
교우관계 갖고자 손책을 방문했을 당시 손책은 고작 10살(....)
그러고보니 손책과 주유가 동갑, 10살 어린이의 명성 듣고
그 어린이를 친구추가하러 온 주유도 10살....
당시 중국 금수저 어린이들의 리얼 SNS에 놀랄 따름.


이후 부친 손견이 원술V유표간 전투에서 전사하자
장례 치르며 본격 소년가장이 되고, 저 때는 직위를
세습하였는데 손견의 직위는 동생 손광에게
넘기고 자신은 가족을 돌보는데 전념한다.
19세에 원술에게 등용 요청하고
손책의 비범함 알던 원술은 그를 등용,
손책같은 아들 있으면 좋겠다 말하며 애정을 줬다.

그러나 말로는 저래놓고 희대의 인간쓰레기답게
원술은 손견이 이끌던 부하들과 병력은 양도 않고
자력으로 충원토록 했으며,
이후에도 성과에 의해 약속된 태수직을 두 번이나 말 바꿔
다른 이에게 하사했다. (구강 태수, 여강 태수)

이때부터 손책은 원술에게 마음이 뜨고 독립을 결심한다.

여러분들 혹시 '특별시민'이라는 영화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곽도원이 분한 심혁수라는 인물이 이런 대사를 한다.

"관계가 깨져도 결과를 만들어 내는게 프로야."

뭔가 상당히 쿨내나고 간지뻗는 저 말,...
손책 역시 원술과의 신뢰는 사실상 깨졌으나 그 후
오히려 독 품고 전보다 혼신 다해 주변 일대 평정에 나서고
이때부터 그 유명한 손책의 "양민학살"일대기가 시작된다.
물론 원술을 위해서가 아니였다.
거듭된 전투 통해 이를 구실로 독자적인 세력과 병력을
자연스레 확보하고 전투를 거치며 내공을 쌓기 위함이였다.

연의에서는 이 첫 출정 당시 원술에게 전국옥새를
담보로 병마를 빌린 것으로 나오지만, 손견이 소유한
옥새가 어찌 원술에게 갔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고,
다만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수하이고
자신이 대외적으로 칭찬일색이던 손책임에도
유독 병력양도에 인색했다는 이해 안가던 행태에 비해
양민학살의 시작인 "유요정벌" 당시에는 별 무리없이
병력을 내준 것 보며 큰 거래가 있던게 아니였나 하는
상상이 더해진 듯.
여튼 이리 어렵게 원술에게 양도받은 병력과
부친을 따르던 장수들까지 온전히 이어받은 손책은
사실상 이때부터 독자적인 세력의 시작을
알리는 전투를 개시하며 수춘인근 군소군벌들이던
유요, 왕랑, 허공, 엄백호 등 용맹함과 저돌성을
드러내준다는 호평과 저런 애들은 나랑 친구들이 가도
평정했을 입에 올리기도 뭣한 세력들이라며 양민학살에
불과하단 혹평이 공존하는 원정들을 차례로 성공!


이렇게 손책은 르브론 제임스가 KBL와서 매경기
50득점씩 해가며 전경기 트리플더블 하는 듯한
원정을 돌 무렵..
원술은 전국옥새를 빌미로 참칭을 한다.

그러자 이미 원정출발부터 원술에게 마음이 떠 있었고
심지어 부친의 유품을 자기에게 돌려주긴 커녕 그걸
계기로 참칭하니 손책은 원술에게 부당함을 따지는 서찰을
보내고 공식적인 독립을 하게 되며 이때부터의 손책은
이전까지 단지 맹장인 손책과 다른...
한 세력을 이끄는 전략가로서의 면모가 크게 부각된다.
원술에게서 독립한 손책 시즌2의 시작은 순조로웠고
마침 당시의 천자였던 헌제로부터 작위와 함께 대역죄인
원술토벌의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의 조서를 받게 되는데,

이때의 헌제는 이미 조조가 천자 옹립 이후
그냥 바지사장일뿐 실세는 조조였고
원술과 좋지 못하던 감정 갖던 터에 그가 참칭까지 하여
그대로 넘길 수 없음은 물론, 당시 손책이 강동을
휘젓고 다닌다는 소문에 이이제이 하려던 전략적
선택이 담긴 칙서를 내린 것.

허나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손책 역시 이때부터
실리 이상 명분의 중요성을 깨닫고 칙서 가져온 칙사에
온갖 싸바를 쳐 본래 받기로 한 직위 이상의 직위를 받는다.


이후 손책 세력은 급성장 하며 실상 손권이 지니고 있던
강동영토의 대부분은 이때 손책에 의해 형성된다.

당시 강동(강남)은 중원으로 일컫던 양쯔강 이북에
비해 더운 기후로 인한 잦은 풍토병, 수해, 억센
소수민족들 등으로 개발이 늦던 곳이였다.
인구도 많지 않던터라 중원처럼 십수만의
대병력 운용할 인력도, 그 병력 뒷받침할 자원도
부족하여 그때까지 조정에서도 거의 버린 땅에
준했으나 손책은 그 강동일대를 모두 자신의
기치 아래 규합하여 총력 모으는데 성공한다.


이 정도까지 예상치 못하게 손책이 성장하자
조조도 당황한다.
당시 하북을 비롯한 중원일대가 아직 평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제 강동까지 견제해야 한다면
큰 군사적 부담이 되기 때문이며,
실제로 손책 역시 조조가 원소와 결전을 벌이게끔
원소와 동맹을 맺고 이를 유도 후 두 세력이
대치하면 병력을 북진시켜 허창을 공격하여 천자를
자신이 옹립하는 것까지 마스터플랜을 세운 상태였다.

놀라운 것은.....
천자를 옹립하는 것의 전략, 명분적 가치를
제대로 판단한 군웅은 당시 이미 진작에 사망한
동탁을 제외하면 조조와 손책 둘뿐이였다는 것.


그 외의 군웅들은 애시당초 천자 근처도 못 갈
세력이거나, 여건이 여의치 않았고
강대한 세력 지녔던 원소조차 천자옹립은
로우리턴 하이리스크로만 생각했고 자신의 야망과
오버랩되어 차라리 자신이 제위에 오르는 쪽으로
변질, 이는 원술도 마찬가지.

하지만 조조는 어찌보면 힘의 차이를 떠나 공적으로는
동등한 군웅들 사이에 우위를 점하는데,
또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있어
유명무실 해졌을지언정 상징성은 아직 유효하던
황실의 정통성을 적극 활용했고
이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눈뜬 또 다른 인물이
바로 손책이였던 것.
이렇듯 질적, 양적으로 손책이 제대로 된 견제자 하나 없는
강동에서 급성장하자 조조도 그와 인척관계를 맺고자
시도하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려는 손책이 과한 욕심 부리며 자신을 무려 "대장군"에 봉해 달라고 청하자,
괘씸함에 분노한 조조는 손책과 우호책 펼칠 것을 포기한다.

그러던 어느 날....

후한 말 당시 인기 역사서이던 "춘추좌씨전"에 능통한
"고대"라는 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손책은 그를
초빙해 강연을 청한다.

당시의 춘추좌씨전은 줄여 춘추전, 좌씨전 또는
좌전 등으로 불려진 "공자"가 지은 노나라 역사서에
공자의 제자 중 한 명인 "좌구명"이란 자가
부연설명인 주석을 달아놓은 지금의 삼국지같은 느낌의
서적이였는데 인기가 굉장했다.


그러나 강연 자리에서 고대가 본의 아니게
손책의 심기를 거슬리자 불같은 손책은 고대를 투옥시켰고, 이에 많은 백성들의 고대석방을 요하는 성화를 본 손책은
자신 이상의 민심 얻는 것에 분노해 고대를 죽인다.....;;;

연의에서는 이 이야기가 도사 "우길"을
죽인 것으로 각색 되었는데 애초에 우길 자체가 실존여부
명확치 않은 인물이며 손책과 조우했다는 건
더더욱 분명치 않다.

당시 손책은 영지 내에서 꽤 붐이던 신흥종교 중 하나인 "태평도"를 탄압 중이였는데
우길이 이 태평도에서 비롯된 인물이다보니
태평도측에서 손책을 폄하하고자
그의 죽음과 맞물려 퍼뜨린 루머라는 학설이 있다.


고대 에피소드를 보더라도
손책은 유독 다른 제후들에 비해 자신의 영토내에서
민심이 자신 외 다른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매우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당시 제후들이 군사적 활동을 하려면
징병, 군량차출 등 1차적인 부분은 물론 원정도중
내란에 의해 후방이나 본진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영지내 민심안정은 필수였다.

더구나 손책의 본거지는 긴 시간 본격적 통치자가 없었고
그런 이유로 강동일대는 지역별 일정 규모 이상의
경제력과 생산력을 지닌 지주나 상인같은
호족들이 저마다의 세력을 펼치던 곳이였기에
성미 급하고 갈길 바쁘던 손책으로서는 어쩔 수 없이
무력에 의한 민심규합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듯.
하북에서는 조조, 원소가 결전을 벌이고자
전시체제라는 정보가 입수되자, 손책은 위의 언급대로
조조의 배후를 급습하여 타격을 주고 헌제를 옹립해
자신이 후한의 정통성이라는 명분까지
손에 넣고자 하는 엄청난 플랜을 세운다.

헌데 이 계획을 일전에 손책에게 박살난 후 결국
손책을 모시게 된 "허공"이 조조에 서찰 보내 알린다.
서찰내용은 헌제에게 고하는 내용이였으나
어차피 당시 천자에게 가는 모든 서찰들과 상소는
조조의 컨펌 받고 대개 짤리거나 첨삭되어 갔기에
실상 조조에게 보내는 것이나 진배없는 서찰이였다.


문제는 이게 조조에게 못가고 인터셉트되어
손책에게 간 것....;;;


손책은 허공을 불러 분노의 브레쓰 뿜다 결국
분을 못 이기고 자신의 손으로 허공을 목 졸라
죽이는데 당시 기록에 의하면 손책이 허공의 목을
잡고 들어올려 조여 죽였다고 하니...
영화에서나 나오는, 괴력의 소유자가 성인남성을
그대로 목 잡고 들어올려 목 졸라 죽이는 그런걸
했다는거다.

당시 성인남성 평균신장이 140cm후반에서
150cm초중반 가량, 허공은 그래도 호의호식해서
더 컸다해도 150cm중반이라 치면 적어도 50kg ~ 60kg
가량이라 생각하면 목 졸려진 몸부림 속에서도
결국 교살을 했다는 사실은 손책의 엄청난 괴력을 보여준다.

역사서들 속 손책의 사망날짜도 정확히 나와 있고
현대력으로 옮기면 200년 5월 5일에 사망.
관우, 장비같은 슈퍼히어로들조차
어찌보면 개인신상의 기본정보인 생몰연대가 미정인 경우도
많거늘 손책은 정확한 몰연대는 물론
날짜까지 남았음에도 체구 묘사는 없다.

이 말은 손책이 피지컬 자체는 평범했다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괴력에 대한 기록들이 남은 것으로 보면
힘 자체는 진짜인데, 과학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
근력과 체력을 지니려면 불가항력적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근육량이 필요하며 자연스럽게 체격이
어느 정도 이상은 되어줘야한다.
큰 힘을 내기 위한 크코 강한 근육과 인대가
버티려면 그만큼 크고 강한 골격이 기반되어줘야 하기 때문.

그래서 관우, 장비처럼 여덟 자, 아홉 자 운운할 큰 체구는
아니였어도 최소한 성인남성 평균신장쯤은
즈려밟았을 것으로 보인다.
여튼간에 저튼간에... 저렇게 죽인 허공.

듣보잡 취급받는 잉여쩌리건만 그래도 헛살진 않았는지,
그가 살해 당함에 분노한 허공의 식객 3인방은
목숨 버릴 것을 각오 후 손책을 암살하기로 한다.

이들은 수시로 사냥을 하는 손책이 사냥터에서 혼자가 되는
틈을 노리기로 한다.

예부터 동서양 막론하고 "사냥"은 암살하기
최적의 기회가 되곤 했는데....
이유는, 일단 사냥이 뭔가?
동물을 잡는 게 사냥이다.
동물은 어디에 있나?
드넓은 벌판이나 도심 한가운데가 아닌 산 속이나 숲이다.
저런 곳은 암살 대상이 경호인원들에게
잘 보이지 않기 십상에, 암살자들도 몸을 숨기거나
도주가 용이하다.

게다가 사냥감 쫓아 정신없이 말 달리다보면
경호인원들과 떨어지기 쉽다.
일단 암살의 대상이 될 정도의 고관대작들은
일반적으로 좋은 말을 타며 사냥이 취미일 정도면
승마실력도 보통 이상이다.
준마 + 평타이상 승마실력 + 집중 달리기
이 삼단콤보가 겹치면 어지간하지 않고서는
경호인력들과 어느 정도 이상의 간극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그래서 손책도 어느 날 씐나서 사냥하다
왠 낯선 병사들 보고 누구냐며 물었는데
식객 삼인방이 자신들은 한당의 병사인데
사슴 잡고자 현위치 대기 중이라 뻥 쳤다.

그런데 놀랍게도 손책은 한당 휘하 병사들의
얼굴을 모두 아는데 니들은 한 번도 본적 없다며
대뜸 그중 한 놈을 활로 쏴버린다.

한당의 병사가 손꼽게 적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같으면 그래? ㅅㄱ 하고 갔을 거 같은데 뭔 촉이 그리
좋은지 수상함 느낀 후 바로 킬링에 나선 비범함에 놀랄 따름....
허나 죽기 각오 후 나선 삼인방은 한 명이
갔지만 둘 중 하나가 활로 헤드샷을 날린다.
이 화살은 손책의 아구창을 꿰뚫었고 그때 마침
뒤쫓아온 경호병력들에 의해 이 식객 둘은 골로 간다.


여기서 일단 "식객"이 무엇이냐?
허영만의 만화에 나오는 그 식객은 아니다. (한자는 같다.)
일종의 프리랜서다.
완전히 종속되어 주종관계를 맺는다기보다
서로 합의하에 일정기간 의탁하며 임시적 상하관계를
맺는 것이지만 구체적인 계약서를 작성하는건
아닌지라 합이 잘 맞으면 그대로 주종관계가 되기도,
식객인 상태로 쭈욱 가기도 하고 뭐 그랬다.
암살시도는 실패했으나....
화살은 하필 그냥 화살도 아닌 독화살이였다.

그냥 화살을 얼굴에 맞아도 고통이 상당할텐데
독이 퍼지고 자상을 입은 부위의 피부가 괴사하여
손책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치료를 받았다지만 워낙 민감한 부위였고
이미 크게 손상되어 별 다른 방도도 없었다.
외모에 나름 프라이드 있던 미남자 손책은
흉하게 상한 얼굴에 매우 크게 낙심했고 회복의지를 잃고 만다.

한편으로는 살짝 이해 안가는게.....
물론 얼굴이 심히 손상되는 것은 잘 생기거나 예쁜
이들은 물론, 진짜 좆같이 생긴 이들에게도 적잖은
스트레스임은 맞다.

하지만 나름 한 세력을 이끈 천하를 도모하려는
야심가에 전장을 앞장 서 누비던 맹장이, 얼굴 좀
상했다하여 그 모든 야망과 포부 잃고 낙심하여
회복의지 잃는다는게 나로서는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튼 그건 내 생각이고,
당사자는 안그랬는지... 고작 겨우 만 25세.
우리나이로 26세에 숨을 거둔다.
.
.
.
26세...
지금 현시점 한국의 스물 여섯 남자들을 돌아보면
제대한지 얼마 안되어 복학 후 알바와 학업 병행하며
공무원시험이나 편입준비한다며 뻘짓하고
편의점 알바 뛰며 시급받고 밥 대신 삼각김밥 폐기분 먹고
교수님께 싸바치고 쌍콤쌍콤 여후배들이 콧소리로
'쏜배님~~ 밥 싸주쎄용♡' 소리 들으면 가오 잡으며
학식가서 생색내며 털리는 호구의 모습인데...

손책은 굵고 짧게 할 거 다해보고 그 나이에 죽으며
자신의 아버지가 스타트 끊은 손가세력 단명클럽의
부회장이 된다.
여느 군주의 죽음이 안그러겠냐만....
손책의 사망은 실로 강동세력에게 치명타였다.

첫번째. 후계의 부재.
다행히 유언은 남겼다.
당시 손책은 후사가 아직 없었다.
그래서 열 한살 연하인 바로 아래 동생 "손권"을 후계로
정하지만 스물 손권의 당시 나이 겨우 열 다섯.....
물론 주유와 장소에게 안팎의 일을 당부했고
심지어 장소에게는 유비가 제갈량에게 남겼던
유언처럼 손권의 자질이 부족하다 판단되면
직접 세력을 이끌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물론 장소가 정말 그럴 사람이라 판단하진
않았을 듯 싶고 유비의 유언은 제갈량에게 실상
나라를 넘기는 것에 가까운 내용이였고
손책의 유언은 실질적인 권세를 장소에게 넘기는
내용이였다.

여튼 주유와 장소가 잘한들 결국 최종 결정권자는
엉겁결에 보스가 된 열 다섯 소년인 점은 이리저리
벌여놓은 거 많아 갈길 바쁜 손가세력에 큰 핸디캡.


두번째. 호족규합 실패.
손책은 강동지역의 실세였던 여러 수 많은 호족들을
무력으로 제압하여 규합하던 터였다.
그들을 모두 회유하기에는 시간이 매우 걸리는 일이였기에
성미 급한 손책은 무력으로 찍어 누르던 중이였는데
이 와중에 손책이 급사하자 호족들은 반발이 거셌고
다시 이들을 달래고 얼러서 뭉치게끔 하는 것이
오 군주의 최대 과업으로 남는다.

이후 오는 국가적 결정시마다 위나 촉은 없는
호족들과의 조율과 타협과정이 필수였고 이 과정은
오가 대외확장은 커녕 현상유지도 벅찬 수성국가가
되는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사실 강동은 호족들에 의해 나름 평화롭게 잘 돌아가던
곳이였으나 난데없는 손책의 등장으로 쑥대밭이 되었던터라
호족들은 손가세력에 대해 적대적이였던 터였다....
장점이 상당히 많은 다방면에 뛰어난 군주요, 장수였다.

무력은 물론, 판을 크고 넓게 볼 줄 아는 전략기재가
있었고 성격도 활달하며 농담도 제법 잘 했던데다
미남이였다고 한다.
카리스마와 리더쉽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어려서부터 부친 잃고 원술 휘하에서 전장을 돌며
수모 겪느라 인성이 제대로 갖춰질 틈이 없어 그런지
성격 자체가 매우 급하고 거칠었다.

그런 성격, 그리고 아마 알게 모르게 자신의 단명에
대한 촉인지는 모르나 꽤 젊었음에도 매사에 매우
서두르는 감이 강했고, 그리 급하게 본거지를 평정하며
대외정벌을 준비하다보니 무력이 앞서는 악순환이 따른 것.

맨주먹 자수성가의 전형답게 고집도 강했고
승부욕이 과했다.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견디지 못 했고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말을 듣지 않고
독단대로 하려 했다.

닉네임 "소패왕"...
이는 패왕이라 불리던 항우의 재림이라며 붙은 별명.
마침 강동에서 그 세력이 시작되었다는 점도 같았다.
항우같은 힘과 무용을 가졌다는 의미기에
좋은 뜻 같지만 실은 손책의 단점도 담은 별명이였다.

항우는 생전에 상당히 거칠고 난폭하며 독선적에
잔혹한 성격이였는데 손책의 행보를 보면 이러한
항우의 성격마저 닮아 사람들은 좋은쪽이건 나쁜쪽이건
손책을 소패왕이라 불렀다.
여담으로... 놀랍게도 바둑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둑기보집에 여범과 둔 바둑의
기보가 남아 있다.
.
.
.
.
초반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손책이 나와 "닮았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가 닮았다는 게 아니라..
여러 기록과 자료를 접하다보니 장점도, 단점도
그 외 이런저런 특성들도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어딘가 모를 동질감이 많이 느껴졌었다.

깨달은 부분들도 많았는데, 손책의 일처리와
성격은 빠른 성과를 내기에 최적이나, 안정적
결과 얻기에는 부족했으며 우리네 삶이 긴 레이스인 점을 보면
급진적인 면모는 맞지 않다는 점이였다.



여러분들도 자신과 닮았다 생각드는 삼국지 속의
인물이 있으신지?.. 있다면 누구신지ㅎ
121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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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여러분.. 원래 내용이 더 길었는데 다 쓰고 업로드 하려니 갑자기 빙글이 컨텐츠의 글자 수를 65,000자 이내로 제한하여 여기저기 잘라내다보니 읽는데 매끄럽지가 못 하고 연결이 어색한 부분들 양해 부탁 드립니다. T-T
@GabrielBarbosa 이게 원래 없던건데 간만에 글 쓰고 업로드 하려니 저런게 생겨 있어요...ㅎㅎ;;;
ㅋㅋㅋㅋㅋㅋ 왜 저런 쓸떼없는걸 만들었을까요...
@qhdtjr109 그니까요... 도통 이유를 모르겠어요
저 손택의 사망으로 강동의 치명타에 한가지 추가 좀 바로 얼떨결에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대교........ 결혼생활도 그리 길지 못했는데 ㅠㅠ
그러게요, 대교는 뭔 죄인가요....
맥아더 더 많이 사랑한 죄욯ㅎ
다읽었다 휴.. 단명하는 26살 까지 저리 큰 업적을 남기다니 저도 국가를 뒤엎을만한 큰 꿈을 크게가져야겠어요! ..라는 결론은 너무 중2병스럽겠죠?
나이가 어찌 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이미 늦었습니다
바쁘실텐데 이렇게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ㅎ
바쁘실텐데 와서 읽어 주시고 댓글도 주시니 저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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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추천] 쓰디쓴 일상에 달콤한 게 필요할 때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한 주의 시작, 여러분은 다들 잘 보내셨나요? 인생의 달콤함 보다 씁쓸한 오늘을 느끼시는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은 플라이북이 소개하는 책들은 어떤가요? 일상 속 달콤함을 느끼고 싶을 때 읽기 좋은 담은 5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씁쓸하고 매운 일상, 달콤한 기분이 필요할 때 사오십 대에 그린 게 믿기지 않는 감성 팝아트 웨인 티보 달콤한 풍경 웨인 티보 지음 ㅣ 에이피비프레스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nLGc2G 곤해서 못 일어나는 매일 아침이 향긋하다면? 풍미 가득한 그림과 다종다양한 빵에 담긴 이야기 아침에 눈 떴을 때 빵 냄새가 나면 좋겠어 발라 지음 ㅣ 콜라보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3b3ffp 디저트를 지적으로도 즐기고 싶은 미식가들에게 페이지 넘길 때마다 군침 돌게 하는 유럽 디저트 역사 디저트의 모험 제리 퀸지오 지음 ㅣ 프시케의 숲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nKaWRJ 사랑도 인생도 달콤하지만 않구나 싶을 때 쌉싸름하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책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ㅣ 민음사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KwOWLQ 세상의 민낯을 보고 느낀 시큼씁쓸한 실망과 절망 그럼에도 내일을 맞아야 하는 우리의 밤을 위하는 책 달콤한 밤 되세요 노정 지음 ㅣ 폴앤니나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nMYhxh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 👉 https://bit.ly/3pVrub4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지난번에 이어, 오늘도 삼국지를 보다 쉽고 재미지게 접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팁들을 준비해 봤다. 삼국지를 아직 읽지 않았다면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고 이미 읽어본 분들 역시 한결 넓게 바라볼 수 있게끔 삼국지에 대한 이해도 높이기 2 Start!! 1. 무기. 삼국지연의 속 장수들은 저마다의 무기들을 쓰고 이 무기들은 곧 그 유져의 캐릭터를 보여주는 분신의 역할을 하기도 하며, 정말 다양한 무기들이 등장한다.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손견의 고정도, 전위의 쌍철극, 여포의 방천화극, 정보의 철등사모, 기령의 삼첨도, 서황의 개산대부, 황개의 철편, 유비의 자웅일대검 등등.. 열거하기 귀찮을만큼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숱한 무기들 중의 대다수는 당시에 실존하지 않았던 것들. 대표적인게 관우의 트레이드 마크인 "청룡언월도". 먼저, '도(刀)'는 한쪽만 날이 있는 칼, '검(劍)'은 양쪽 모두 날이 있는 칼을 뜻한다. '청룡도'는 너비가 넓은 도를 일컫는 말이며, '언월도'는 '월도'라고도 했는데 이는 긴 자루가 달린 도를 일컫는다. 고로, '청룡도 + 언월도 = 청룡언월도'라 함은 긴 자루 달린 청룡도를 말한다. 너비가 넓다보니 일정 수준 이상 부피가 있던 무기인 청룡언월도는 대체로 일반 도검들에 비해 중량이 좀 나가는 무기였고, 찌르기보다 베기용이긴 했다만.. 날카로움으로 벤다기 보다는 무게로 내리찍는 용도의 무기였다. 왜냐하면 당시의 제철수준으로 큰 월도를 날카롭게 제련하는 기술력의 한계가 있었고, 설령 내가 쓰는 질레트 마하3 면도기날처럼 어찌어찌 날카롭게 만들었다 한들... 몇 번만 쓰면 금새 날이 무뎌지기 마련. 게다가 날카로우려면 단면이 얇아야 하고 또 얇게 만들다보면 그만큼 가벼워지니 살상력이 떨어진다. 쉽게 말해, 청룡언월도에 맞으면 영화나 만화처럼 '뎅겅~'하고 썰리는게 아니라, 짓뭉개지며 박살이 나는건데, 심지어 연의에서의 묘사에 의하면 관우가 썼다는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무려 "82근"! 혹자는 한대의 한 근은 지금의 한 근보다 가벼워, 당시의 여든 두 근은 대략 18kg쯤이라고 하는데, 나관중이 명나라 사람이라 명대의 도량형으로 설명 했기에 청룡언월도의 무게는 48kg이 맞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무기 + 그 무기 휘두를 덩치 + 갑옷 + 안장 + 마갑 = 어림잡아도 230kg을 넘어가는데 그럼 말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더구나 아무리 장사여도 저 중량의 무기를 휘두르기 위해 마상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 시대에는 말 타며 균형 잡고자 발을 거는 등자가 몹시 어설퍼, 제 기능 발현이 어렵던 시기였다. 일단 송나라 때에나 등장한 청룡언월도를 관우가 썼을 리 없고 정사기록에 "관우가 안량을 찌른 후 목을 베었다"라는 구절을 볼 때, 관우는 '삭'으로 불리는, 당시 기병의 보편적 주무장인 찌르기용 창을 썼다고 본다. 그리고 '여든 두 근'이란 표현도 실제 측량무게가 아닌 관우의 파워의 대단함을 묘사키 위한 나관중의 중국인 종특인 과장의 산물이다. 소설과 인물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부여된 일종의 아이템같은 개념이였던 것이다. 장비의 "장팔사모" 역시, 지금 추산 시 5m가량의 기나긴 창으로 묘사되지만 한대에는 그런 긴 창은 쓰지도 않았거니와 동서양 역사에서의 그런 길고 긴 창은 보병의 대기병전용 무장이였지, 말 위에서 휘두르기는 너무 불편한 무기였다. 당시의 백병전은 인정사정 없었고 사소한 실수, 작은 삑사리 하나로 장애인이 되거나 바로 요단강에 발을 담그는 리스크가 될 수 있기에... 여든 두 근 청룡도니, 한 장 여덟 척 장팔사모니 하는 후까시용 무기보다는 그저 실용적이고 쓰기 편한 무기가 답이였다. 여포의 방천화극 또한 그 "방천화극" 자체가 역시 청룡언월도와 마찬가지로 송나라 중엽에서야 등장하는 무기였기에 픽션이며 그냥 찌르기용 '극'을 쓴 것으로 보여진다. 삼국지 등장 장수의 거의 8할이 "찌르기용 창"을 실제로 썼는데, 이는 '베기'보다 '찌르기'가 더욱 적은 에너지와 운동각으로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기에 체력소모와 한 번 움직임에서 다음 움직임 까지의 인터벌을 최소화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베는 창을 쓸 경우, 창을 더욱 높이, 크게 휘둘러야 상대에게 치명상 입힐 수 있는 반면... 빗나갈 경우 오히려 상대에게 역관광을 당하기 제격이다. 그렇다고 적은 각도로 움직이면 운동에너지나 원심력이 제대로 실리지 않아, 상대에게 그만큼 데미지를 많이 주지 못 한다. 놀랍게도 "쌍철극"의 경우, 정사에 전위가 80근의 쌍철극을 휘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사료이므로 한대의 도량형에 따라 지금 기준 약 16~18kg가량의 무기가 맞다. 2. 일기토. 일본어의 "잇키우치(いっきうち, 一騎討ち)"에서 한자어인 '一騎討'만을 우리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기마무사간의 1vs1 대결을 의미한다. 사실 한, 중에서는 거의 안쓰는 한자어인데, 국내에서는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 탓에 1대1 결투의 일반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정말 숱하게 등장하는게 바로 저 일기토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역사기록에 의하면 삼국시대에 일기토 기록은 열 손 이내 밖에 없다. 192년 "여포 VS 곽사" (장안) 놀랍게도 곽사가 먼저 결투 신청. 그럼 그렇지, 여포의 창에 맞고 죽기 직전에 부하들이 곽사 구출. 196년 "손책 VS 태사자" (곡아) 말 타고 싸우던 중 손책이 태사자의 말을 찌르고 (나쁜새끼), 태사자의 창을 빼앗자, 태사자는 낙마하며 손책쪽으로 넘어지며 손책의 투구를 슈킹. 196년 "학맹 VS 조성" (하비) 여포에게 반기를 든 학맹과 조성이 싸우던 중 고순이 나타나 학맹을 죽임.(읭?) 196년 "마초 VS 염행" (서량) 그 천하의 마초가 염행의 창에 찔려 죽을 위기 맞음. 단, 당시의 마초는 만 19세로 아직은 경험미숙.. 200년 "관우 VS 안량" (백마) 추후 관우편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음. 202년 "방덕 VS 곽원" (평양) 방덕이 당시 난전 중에 적병을 그냥 막 죽이던 와중에 곽원도 섞여 죽음.(이건 좀...;;) 208년 "여몽 VS 진취" (강하) 유표군과 싸울 당시 선봉이던 여몽이 적 수비대장 진취와 맞서 싸움. 2011년 "김형수 팀장 VS 이민형 과장" (백림호프) 만취한 이과장이 김팀장에게 반말로 도발하자 이에 격한 김팀장이 숟가락 볼록면으로 이과장의 정수리를 갈겨 단 일 합에 이과장을 처단. 사실, 일기토 자체가 성사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는게, 저건 보는 사람이나 재미있지... 당사자들로서는 자신 뒤의 수 많은 군세의 기세를 책임진 상태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로 자기 목숨은 물론, 전술적 승패를 갈음 짓는 1대 1 대결은 실로 무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기고 있거나 우세한 군세의 우두머리가 이겨도 본전에 지면 그야말로 대참극의 아비규환을 불러올지 모를 그딴 제안에 응할 리가 없다. 그럼 상대가 응하지 않는데 홀로 싸울 수도 없다. 그리고 어지간한 급의 장수들은 영화나 만화처럼 행군 중이나 군사들간 대치 상황에서 가장 맨 앞에 나와 보란듯이 있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상대방의 활에 의한 저격에 피격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 물론, 장수의 화려한 차림새나 그 주위의 대장기를 든 호위대 등으로 분명 눈에는 띄었을 것이나, 가장 선두에 다 보란듯이 나와 있진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이게 뭐라고 쓰는데 두 시간 걸린다는.... 쓰고 나면 지치지만 여러분들이 주시는 관심 가득한 피드백들이 그런 피로를 잊게 해줍니다ㅎ 연재가 더디긴 해도 심도깊은 내용으로 차차 다룰 소재들이 매우 많으니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시길 양해 바라며 타인을 비방하거나 불쾌히 만들 댓글은 자제 부탁 드려요. 궁금하신 점 등은 댓글로 문의 주시면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 드리고 있습니다! 주관적 견해를 바탕으로 한 논쟁은 도돌이표인 경우가 많고 감정만 상하기 부지기수라 응하지 않습니다. 역사와 삼국지라는 다소 고루하며 남성적인 소제를 다룸에도 예상외로 적잖은 분들의 관심과 기대에 늘 고마움 갖고 정성껏 쓰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세계 최고의 도시가 하루만에 망한 날
13세기 중세시대 아바스 왕조는 지금으로 치면 경제대국였다. 그런 아바스의 수도 바그다드는 그 당시 세계 결제대국들이 모두 무역하러 오는 대단한 무역도시였다. “세계 최고의 재물과 인간들이 바그다드로 몰린다.” “바그다드는 하늘 아래의 축복이다.” “아랍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바그다드 도서관은 세계 지식의 중심이다.” 몽골의 사신이 그런 아바스 왕조에 도착한다. 몽골 사신 : 우리 몽골에 항복하고 세금을 바치는 속국이 되어라, 그렇게 하면 살려 준다. “어찌 떠돌아 다니는 자들이 문명인을 자처하는가?” - 아바스 왕조 마지막 칼리프 알 무스타심. 훌라구가 보낸 몽골 사신에게. 아바스 왕조는 몽골 사신들의 머리를 박박 밀고 모욕했다. 백인 전문 셰프Mr. 테무친 (이 요리사님의 초상화를 봤으면 중동놈들 감히 그딴 짓 못 했을듯, 딱 봐도 싸이코 면상이다.) “훌라구는 즉시 바그다드의 살아 움직이는 모든걸 없애라” 훌라구 장군 : 예 형님. 율라, 수니 타이 가자! 수니 타이 (몽골 군벌) : 예 훌라구 형님! 율라 (타타르인 여군) : 예 사령관님! 몽골군 40,000명 + 중앙아시아 유목민족군 52,000명 + 그루지아, 페르시아 보병 1,000명 몽골 제국 12만 연합군은 바그다드를 향해 말발굽을 쉬지 않고 달렸다. 아바스 왕조 군대 50,000명은 몽골군에 대항해 싸웠지만 택도 없었다. 바그다드는 함락됐고 200,000명~700,000명으로 추정되는 바그다드 시민들은 학살당했다. 징기스칸의 명령대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걸 없애버렸다. “바그다드 거리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발목까지 피가 고인다.” “바그다드는 도살하는 자와 도살당하는 자 뿐이었다.” “세계에서 제일 풍요로웠던 곳이 오늘 날 가장 폭력적인 곳이 됐다.” “오늘 세계에서 가장 찬란했던 문명도시가 불과 함께 사라진다!” 여러번 버틴 고려 저 때 고려는 뭔 수로 n차 침략도 막아냈는가… ㅊㅊ ㅇㅌㄹㅌ 모야.. 몽골리안 그들은 진짜.. 전 세계를 다 족치고 다닌 썰 푼다.txt 대체 그들의 전투력은 어디까지인가..
[책추천] 우두커니 울고 있는 당신에게 건네는 책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오늘 들려드릴 책은 우울감에 관한 책입니다. 퇴근 후, 하교 후에 나의 우울감을 달래줄 책 한 권 어떠세요? 마음에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도록 도와줄 5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ps.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억지스러운 힐링이 아닌, 현실적 조언이 필요할 때 직접 상담받은 듯, 소란했던 마음이 고요해지는 책 무조건 당신 편 한창수 지음 ㅣ알에이치코리아(RHK)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pwYLct 뭘 해도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다 귀찮은 이들에게 꼼지락꼼지락 다시 움직일 동기가 되는 뭉클한 문장들 오늘도 집순이로 알차게 살았습니다 삼각커피 지음 ㅣ 카시오페아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nnLZes 검은 개가 무얼 뜻하는지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에게 우울증에 관한 오해는 덜고, 이해는 더하는 추리 소설 검은 개가 온다 송시우 지음 ㅣ 시공사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2UxwzYI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누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을 때 애정과 더불어 사랑받을 자격을 선물하게 될 책 우울한 거지 불행한 게 아니에요 김설기 지음 ㅣ레터프레스(letter-press)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pxYs1e 생각보다 괴로운 정신적 아픔을 어떻게든 극복하려 할 때 멎은 듯했던 심장과 삶이, 발과 함께 뛰기 시작할 책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벨라 마키 지음 ㅣ 비잉(Being) 펴냄 책 정보 보러가기👉 https://bit.ly/38LbX7H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 👉 https://bit.ly/3pv5x2x
여러 부문 휩쓴 인디게임... 2020 게임대상, 인디게임 약진 주목
올해 게임대상에서는 소규모 개발사가 만든 게임이 실제 수상으로 여럿 이어졌다. 바야흐로 인디게임의 약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수상에 PC 전략 게임 <플레비 퀘스트: 더 크루세이즈>(네오위즈 파이드파이퍼스 팀)와 모바일 디펜스 게임 <랜덤다이스>(111%)가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최우수상은 클로버게임즈의 <로드 오브 히어로즈>가 수상했으며, 인디 게임상은 <스컬: 더 히어로 슬레이어>(사우스포게임즈)에게 돌아갔다. 굿게임상은 자라나는씨앗의 <MazM: 페치카>가 받았다. 이러한 인디게임의 성과는 전년과는 비교된다. 작년 게임대상 우수상에는 <블레이드 앤 소울 레볼루션>, <일곱 개의 대죄: 그랜드 크로스>, <쿵야 캐치마인드>, <미스트오버>가 이름을 올렸다. <스컬>의 박상우 대표는 디스이즈게임에 "시상식에서 인디 개발자들이 상을 많이 탄 건 확실히 긍정적인 현상"이라며 "이렇게 자기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수상 소감을 밝히는 박상우 대표 이러한 성과 뒤에는 네오위즈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스컬>로 인디게임 퍼블리싱에 나선 네오위즈는 <사망여각>, <댄디 에이스> 등 유망한 인디게임을 여럿 퍼블리싱하고 있다. <플레비 퀘스트>도 소수 인원들이 6년 동안 독립적으로 게임을 만들어오다가, 2018년 개발진이 네오위즈로 합류하면서 게임을 완성시켰다.  한편, 우수상을 받은 나머지 두 게임 중 하나인 <베리드 스타즈>는 콘솔 기반의 게임이다. (닌텐도 스위치, PS4, PS 비타) 콘솔 시장이 크지 않은 한국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 참고로 콘솔 스탠드 얼론 게임의 마지막 게임대상 수상은 2017년 <디제이맥스 리스펙트>다. (PS4, 우수상)
이집트의 마지막 개또라이왕 이야기
파루크 1세는 이집트의 마지막 왕인데 마지막인 이유를 온몸으로 보여주다 갔다 간단하게 몇 개만 추린 업적은 다음과 같다 1. 목표가 도둑왕이 되는 거였나보다. 왕인데 도벽이 엄청났다. 2. 도둑기술을 전수받기 위해서 이집트 최고의 소매치기를 국왕명령으로 사면시키고 소매치기 비법을 전수받음 3. 이 솜씨로 2차 세계대전 중에 회의하다가 처칠의 손목시계를 훔쳐 도망감. ㅇㅇ 그 처칠 맞음 4. 당연히 처칠은 개빡쳐서 외교문제로 번짐. 하지만 씹었다 5. 좀 더 특이한걸 훔쳐보고 싶어졌음. 마침 이란 왕이 죽어서 시체를 테헤란으로 이동시키던 중이었거든? 밤중에 이란왕 관을 털어서 보검과 보석을 훔쳐감 6. 이란은 당연히 개빡쳤음. 외교문제로 번졌지만 또 씹었다. 참고로 이건 유명한 것만 늘어놓은거고 평민들 물건은 그냥 평소에도 왕창 훔쳐갔다. 7. 도벽 뿐만 아니라 식탐도 존나 심했다. 몸무게가 130kg이었음. 아니 어떻게 도둑질을 한거지 민첩스텟이 제로일텐데 8. 한번은 잠을 자다가 사자한테 습격당하는 꿈을 꿨음.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카이로 동물원에 간 다음에 총으로 사자들을 다 쏴죽였다 9. 성욕도 엄청났다. 파루크가 가지고 있는 포르노 컬렉션은 당시 세계 1위에 해당하는 엄청난 분량이었다. 10. 포르노만 보면 좋겠는데 실제 여자도 존나 많이 건드렸다. 대충 추산한 것만 해도 파루크가 덮친 여자만 해도 5000명이 넘는 걸로 추정 11. 이 중에는 그리스 왕비도 있었다. 이란 왕은 죽어있기라도 했지 살아있는 그리스 왕비를 이집트 왕이 덮쳤다 12. 덮칠 때도 나름 머리 굴린답시고 왕궁 불을 정전시켜서 꺼버린 다음 어둠 속에서 덮쳤는데 그래봤자 냄새 때문에 다 들켰다. 그리스 왕비는 불 꺼지기 전에 문 밖에 서있던 근육헬창이 내 남편인데 마 자신있나 협박을 해서 간신히 정조를 지킬 수 있었다. 13. 한번은 프랑스 여배우를 데리고 캐딜락으로 카이로 시내를 질주하다 속도위반으로 경찰에게 단속됐다. 경찰이 다가오자 권총을 뽑아들어 격퇴 14. 낙찌년들이 폭격을 가할까봐 온 이집트가 불을 끄고 조심하고 있는데 왕궁 주변은 전부 불을 켰다. 왜냐면 어두우면 안 보이니까 15. 참다 참다 빡친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나라를 뒤집어 엎었지만 털끝 하나 안 다치고 이탈리아로 탈출 성공. 탈출할 때 타고가는 배에 실려있던건 이집트 최고의 술들과 야동 컬렉션이었음 16. 거기 레스토랑에서 밥 먹다가 심장마비로 45세에 사망 거 앵간하면 민주주의 합시다 (출처) 아니 이렇게 하고싶은 거 다 하고 갔는데 어떻게 큰 외교 문제로 한 번도 안 번진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킬 당해도 한 두 번 당할 정도가 아닌데 지병으로 죽은 게 쩌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