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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루의 통쾌함


시스루룩을 즐겨 입지는 않는다. 막상 사더라도 클럽이나 파티장을 가지 않는 한, 입고나갈 장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회사든 동네든,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시스루룩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장소는 많지 않다. 대신, 거리에서 브래지어가 그대로 드러나는 시스루룩을 입은 여자를 만나면 대리만족을 느끼며 남몰래 통쾌해하고는 한다. 나에게는 없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다 내가 왜 이 지경이 됐나를 돌이켜보면 이미 십대 시절부터 브래지어를 드러내지 않는 '조신한 여자'로 길들여져 온 기억들이 떠오른다.
한창 브래지어라는 존재에 예민하던 십대 시절. 얇은 하복이나 흰 반팔티 안에 나시티를 입지 않고 브라만 입은 아이를 보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분위기였다. 한번은 나도 나시티를 입지 않았다가 뒤에 앉은 언니에게 "애, 너 안에 다 보여."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여자들 사이에서 나시티는 '조신함'이자 '예의'의 상징이었고, 흠잡히지 않아도 되는 방어벽이었다.
당시엔 나시티를 입지 않은 내가 마치 공공의 규칙을 위배하고 '문란한 분위기'를 조성한 것 같아 죄책감까지 느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공공의 시선에 피해를 입은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나시티 문화'가 흠 잡은 건 그러니까 내 신체의 일부인 가슴인 셈이었으니까. 더운 한여름에도 브래지어의 존재를 나시티에 가려 놓으려는 문화에는 여성의 신체를 성적으로 확대해석하는 시선과 성적인 것이니 '민망해서 가려야 한다'는  압박이 동시에 공존했다. 모순이었다.

  <재윤의 삶>이라는 웹툰에서는 브라를 해야 하는 여성의 고충을 이렇게 적었다. "가슴이 있어서(속옷으로) 그 가슴을 가렸는데, 속옷을 보임으로써 가슴을 가렸다는 걸 남들이 알게 하면 안 된다." 10대였던 우리는 한층 더 했다. 가슴이 있든 없든 가슴이 있을 만한 자리를 가려야 했고, 가린 걸 또 잘 가려둬야 했고, 브라를 가리는 일을 깜빡하면 굳이 그 사실을 남들 앞에서 큰 소리로 폭로하며 적극적으로 망신을 주는 사람마저 일상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중에서

시스루의 유행에 힘입어 브래지어가 살짝 비치는 정도는 흠도 아니게 된 요즘시절에 생각하면 답답하고 무례한 참견이 남발하던 시절이었다. 그 충고라는 것의 무게감도 뒤바뀐 패션 유행 한 방으로 일갈될 정도로 가벼운 오지랖이었을 뿐, 기준의 대단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여성의 몸과 그것을 받치고 있는 속옷의 관계는 여성인권의 역사와 같이 변화해 왔다. 과거, 여성의 허리를 압박해 장기까지 뒤틀려 놓았던 코르셋은 여성의 사회진출과 함께 조금씩 사라져  브래지어로 축소되었고 현대 여성해방 운동의 발전도 현대판 코르셋이라 불리던 브라를 벗어던진 '노브라 운동'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시스루의 유행은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에 또 다른 변화를 던져 주고 있다. 그것을 드러내든, 감추든, 브라를 하든 안 하든 어디까지나 본인의 권리라는 것. 그 당연한 사실에 한발짝 나아갈 용기를 비춰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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