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Zoom 예술 줌> 도상탈출, 바야흐로 사진
답사 뒤의 답사, 익산에 가려거든 5 - 교도소 세트장, 고스락 유기농전통장
익산의 교도소 세트장은 답사 코스에 있지 않았다. 어떤 분은 폐사지의 허무를 경험의 허무로 둘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작용하여 답사 후 물색된 장소다. 이 역시 허무하기는 마찬가지이나 이색 장소임에는 틀림없다. 이 글을 늦은 답사기로 남긴 이유가 답사 시에 찍은 사진이 없어서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을 갖다 쓰기엔 이 가슴이 허락지 않았다.
이색 촬영지로 답사시 지나쳤던 보석박물관이 물망에 올랐었다. 지금은 끝물이지만 아직도 사금이 나온다는 익산의 강과 논에는 1980년 대까지만 해도 금 채취로 불야성이었다고 하는데, 입지한 연유가 그것인지 조용한 익산에 화려한 보석 조형물은 눈길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장소가 제외된 것은 화려한 야경이 문제였다. 거리상 야경 촬영이 불가한 데다, 화려함에 비해 촬영 상의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고,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지름신을 발동시킬 보석의 향연이 동남아의 관광코스같은 느낌이 들었다. 보석박물관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화석박물관까지 볼 수 있다고 하니 이는 오롯이 관광의 이유로 왔을 때에나 들릴 만하지 싶었다.
교도소 철문이 쾅 닫히는 순간 느낄 '메멘토 모리'의 실감은 폐사지를 훑고 난 뒤의 고요함을 깰 만한 하리라고, 어두운 감방에서 맞닥뜨릴 상념이 복잡다단하게 떠올르도록 부추길 것이라고, 누구나 마음 속 죄를 갖고 있고 그 죄를 벌할 마음의 감방은 누구에게나 드리운 그늘이라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익산의 소읍, 성당면 와초리. 성당면은 익산의 북서쪽에 위치했고, 성당면 가장 남쪽에 기와를 굽던 마을 와초리가 있다. 와초리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가 폐교되고 그 자리에 영화제작사와 익산시가 2005년 교사 서쪽 편에 가건물로 세트장을 지었다. 촬영이 끝난 후, 익산시에서는 보존을 결정했고, 지금 그곳은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우리가 갔던 토요일 오후, 가는 길 내내 보였던 논과 밭에 농촌의 한가로운 풍경이 너그러워 세트장이래야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나 싶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세트장 앞 주차장은 차로 꽉 차 있고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들락거려 묵직한 철문은 속을 다 드러내었다. 거기다 죄수복을 입고 초록 잔디 위를 노니는 청춘 남녀가 죽은 상상의 공간에 생기를 넣고 있었다.
이는 교도소 분위기가 아니지... 바보 같이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이곳은 유희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맘 편히 놀기 좋은 토요일이 아니던가. 잠시 꿈꾸었던 '메멘토 모리'의 현장은 단지 나의 상상일 뿐, 죽은 공간이 아닌 재생의 공간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부른다.
세트장의 보존을 어찌 보아야 할까? 지방 어느 곳이든 드라마나 영화의 세트장이 없는 곳이 없다. 특히나 인기리에 방영된 영상물이라면 그 세트장까지 세간에 관심을 모은다. 우리는 이렇게 가상을 즐기고 있고 가상은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언제인가 사람 또한 가상일 수 있을 거라는 의구심, 가상이 현실을 대체할 것 같은 노파심. 얼마전 작고한 스티븐 호킹이 우려했던 인공지능이 인간을 복제한 가상의 다름 아니지 않을까? 가상을 즐기되 가상에 대한 물음은 번복되어야 한다. 인간과 존재에 대한 물음의 역사처럼 말이다.
어떤 분의 추천으로 가상이 판을 치는 세상에 본디를 지키는 이들을 찾아간다. 다송리 사람들, 바로 전통 방식의 장을 담그는 사람들이다. 영농조합법인을 만들어 전통의 실재를 구현한다. 콩을 삶는 솥도 옛날 방식으로 무쇠솥에 삶는다. 항아리도 옛 옹기장이 구운 항아리를 쓴다. 그 항아리가 3500개란다. 익산 다송리에 있는 '고스락'은 '유기농 전통장'만을 고집한다. 항아리 정원에 놓인 삼천오백 개의 전통항아리는 그 맛을 보증이라도 하듯 의연히 앉아 발효 중이다. 그곳에서 전통은 본디대로 무르익어 간다. <익산에 가려거든,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