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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DC 18] 13년 동안 스토리 중심 모바일게임을 만든 회사가 걸어온 길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이야기 위주의 게임이 성공할까?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이 질문의 답을 오래 전부터 직접 몸으로 실험하는 게임사 중 하나다. 드라마처럼 여러 에피소드로 나눠진 이야기를 즐기는 <Choices: Stories You Play>(이하 '초이스')의 개발사, 픽셀베리 스튜디오 올리버 미아오 공동CEO가 개발 과정을 회고하며 자신의 경험을 밝혔다.


# 4명으로 시작한 게임, 비벤디에 가다


18년 전, 미아오 CEO는 친구 세 명과 함께 게임 개발 팀을 만들었지만 금방 돈이 떨어졌다. 미아오 CEO의 표현처럼 운 좋게도, 막 태동하기 시작한 모바일게임에 투자하고 개발사를 찾는 회사가 있어 친구 소개로 들어갔다. 게임 개발 외주를 받으며 돈을 벌었지만 다른 게임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오리지널 작품이 필요했다. 그래, 고등학교를 주제로 한 게임을 만들자, 그 아이디어가 미아오 CEO와 팀의 운명을 크게 바꿨다.

고등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배경이었기 때문이다. 배경의 이점을 살려 등교 첫날의 마음, 인간 관계와 여러 청춘의 고민 등을 강조하는 스토리텔링 중심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잘 읽히고 재미있는 글을 쓰기 위해 젊은 작가를 영입하고 청소년과 젊은 여성에게 인기 있는 작품을 두루 접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2005년 출시한 <Surviving High School>(이하 '서바이빙 하이스쿨')은 버라이존(미국 통신사) 마켓에서 26위를 차지했다. 수익 모델은 두 가지로, 한 번에 8달러 가량의 돈을 주고 다운받는 방식과 매달 3달러를 지불하는 구독 모델이었다. 1주에 한 번씩 새로운 이야기를 공개하는 업데이트 정책과 더불어 구독 이용자가 늘어났다.

성과가 생기자 여러 회사가 인수 의사를 보였고, 미아오 CEO의 팀은 프랑스 대기업 '비벤디'의 품으로 들어갔다. 비벤디의 마케팅 능력은 대단했다. 26위 정도에서 머물렀던 순위는 단숨에 3위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비벤디와 액티비전이 합쳐지자 모바일게임에 관심이 없었던 액티비전은 팀을 EA에 매각했다.

#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EA와 줄다리기


이 시점에서 모바일게임 시장은 아이폰 등 스마트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EA는 <서바이빙 하이스쿨>을 아이폰으로 '이식'하라고 했지만, 피처폰과 아이폰은 그래픽, 메모리, 볼륨 등 환경면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사실상 아이폰에 맞게 게임을 다시, 크게 만들었다. 이 점에서는 EA와 의견이 일치했지만 사업 모델에서 마찰이 생겼다. 

미아오 CEO의 생각으로, 당시 앱스토어는 인앱 결제의 무료 게임이 훨씬 인기가 있었다. 대형 업데이트가 있을 때마다 매출 순위가 올라가고, 진입 자체도 무료이니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EA는 무료로 맛보기 에피소드를 제공하자는 제안을 거절했다. 그 어떤 것도 무료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TV나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VOD를 결제하는 개념은 어떨까? 업데이트를 놓친 이야기를 다시 볼 수 있는 상품을 제안했지만 EA는 또다시 거절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다음주에 업데이트될 에피소드를 미리 볼 수 있는 것은? 그제서야 OK가 나왔다.

"상품이 좋다고 생각했는지 제가 귀찮게 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사건을 통해 꾸준히 한 우물을 파는 것이 좋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비록 거절당하더라도 실패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더 좋은 생각을 해낼 수 있으니까요."
이 모델을 적용시킨 데모 버전을 만들어 EA에 제출했다. 본사에서 두 명의 임원이 와서 게임 출시를 취소한다고 전했다. 완성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그간 미아오 CEO의 팀은 게임의 기반을 튼튼하게 만든 다음 완성도를 나중에 높이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완성도를 먼저 본다는 것을 깨닫고, 일주일 간의 개선 시간을 벌어 최대한 완성도를 높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EA는 구조조정을 단행해 작가와 QA, 미아오 CEO를 제외한 모든 개발진을 해고했다. <서바이빙 하이스쿨> 아이폰 버전이 잘 될지 확신이 없다는 이유였다. 절망에 빠진 채 출시한 게임은 그런 EA의 생각이 틀렸음을 입증했다. 출시 직후 미국 앱스토어 기준 매출 8위. 다음 에피소드 미리보기 등 소액결제 시스템 덕분이었다.

"수익화 모델을 만들 때도 고민을 많이 했지만, 그보다 글을 더 잘 쓰고 표현할 수 있는 과정에 집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만드는지 바꾸지 않았고, 이 일을 통해 우리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갖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 픽셀베리 스튜디오의 '선택지'들


차기작은 스토리텔링과 팜 게임을 결합한 형태의 <하이스쿨 스토리>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EA에서 세 명의 관리자가 거쳐갔다. 또다시 "게임에 확신이 없던" EA는 몇 달 간격으로 팀원을 해고한 끝에 팀 전체의 해산을 결정했다. 미아오 CEO는 이 시기를 '선택의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EA는 확신이 없다고 했지만 이들은 믿음이 있었고, 결국 팀 전체가 EA를 나와 '픽셀베리 스튜디오'를 창업했다.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면서 EA와 협상에 들어갔다. 아직 <서바이빙 하이스쿨>의 인기가 높은 상황이었기에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서바이빙 하이스쿨> 업데이트를 계속 지원하는 조건을 걸었다. 그 대가로 개발 중이었던 <하이스쿨 스토리>의 권리와 지원금을 받았다. 이렇게 얻은 자금으로 <하이스쿨 스토리>를 출시, 앱스토어 매출 10위에 진입했다.
미아오 CEO는 보다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중심 게임 <초이스>를 구상하고 개발 작업에 들어갔다. 새 게임은 한 가지 주제의 이야기가 아니라 여러 테마의 이야기를 선택해서 읽는 플랫폼에 가까운 게임이다. 소액결제 시스템을 보다 강화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때 에너지가 소모되거나, '프리미엄 초이스'라는 유료 분기 스토리 등의 요소를 추가했다.

아직 <초이스>는 개발 단계였다. 그런데 돌연 시장에 <에피소드>라는 게임이 등장했다. <초이스>의 특징과 소액결제 시스템을 고스란히 투입한 선점자의 등장으로 <초이스>가 위험해졌다. 평소에 아이디어를 주고받던 타사 CEO의 게임이었다. 

아이디어를 도둑맞았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미아오 CEO를 더욱 당황하게 한 것은 <에피소드>의 성적이었다. <초이스>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구현했음에도 <에피소드>는 매출 상위 200위 안에도 들지 못한 것. 최소한 상위 50위는 되어야 유의미한 매출을 얻을 수 있기에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초이스> 개발을 잠시 중단하고 <하이스쿨 스토리>를 더 다듬는 것에 주력했다. 
물론 <에피소드>도 단순 카피캣에 머무르진 않았다. 여러 업데이트를 통해 독자적인 방향을 개척해갔는데, 그 중 미아오 CEO가 높게 본 것은 콜라보레이션 스토리, 움직이는 캐릭터, 그리고 유저들이 직접 스토리를 만들어 공유하는 기능이었다. 결국 <에피소드>는 매출 30위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통했고, <초이스>는 또다른 선택에 직면했다.

경쟁 게임의 좋은 점을 우리 게임에도 투입할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내부에서도 토론이 있었다. 픽셀베리의 또다른 CEO는 <에피소드>가 그랬던 것처럼 만화풍 아트를 도입해 하이틴 유저를 적극적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주장했고, 미아오 CEO는 실사와 비슷한 일러스트풍 아트로 보다 높은 유저층을 개척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경쟁 게임과 다른 유저를 공략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게임 퍼블리싱, 회사 인수 등을 원했던 바이어가 요구한 콜라보레이션 스토리과 유저 제작 콘텐츠 역시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서바이빙 하이스쿨> 때부터 함께 해왔던 작가진들이 좀 더 수준 높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든다는 믿음이었다. 또 오리지널 콘텐츠는 제작 기간이 빠르기에 '매주 스토리 공개'라는 규칙을 지킬 수 있었다.
이제 회사 입장에서는 돈이 없어지고 있었다. <초이스> 출시 몇 달을 앞두고 위기의 순간이 왔다. 창립자들은 이미 게임을 출시할 때까지 임금을 받지 않기로 한 상태였다. 미아오 CEO는 직원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게임을 출시하기가 힘들게 됐다. 만약 임금의 20% 삭감을 받아들여준다면 게임을 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충분히 이야기해보고 투표로 결정했으면 좋겠다." 픽셀베리의 또다른 선택은 어땠을까.

대다수 직원들이 임금 삭감을 받아들여줬다. <서바이빙 하이스쿨> 초기부터 함께 했던 직원들이었고,  게임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미아오 CEO는 이때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며 "오랫동안 근무한 직원은 경쟁 속에서 회사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서로 잘 이해하고 신뢰를 구축하며, 같이 일하면서 끊임없이 배울 점을 준다" 라고 전했다.

# <초이스>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새로운 도전


2016년 <초이스> 출시 일주일 시점.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모든 직원에게 임금을 지급했다. 출시 2주 후, 지금까지 줄였던 삭감분도 돌려줄 수 있었다.

먼저 구글 플레이스토어 자체에서 사전예약을 진행했던 것이 컸다. <하이스쿨 스토리>를 플레이했던 팬은 물론 경쟁 게임을 하던 유저들도 플레이스토어에 뜬 사전예약을 통해 게임을 알게 되고, 고스란히 첫 번째 고객이 되었다. 리뷰를 통한 피드백 접수와 주 단위 업데이트도 호평을 받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빠른 업데이트의 뒤편에는 회사 초창기부터 함께 해온 강력한 작가진이 있었다. 10년 가까이 작가와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 덕분에 직원을 경쟁사에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넘어오기 시작했다. 미아오 CEO는 핵심 인력을 카피캣에 빼앗기지 않도록 대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선의 여지는 있었다. 전세계 앱스토어에 출시했는데, 러시아 등 타 언어권에서 언어가 지원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했던 것. 이 점 때문에 전체 평점이 하락했기에, 지원 계획이 없다면 처음부터 영미권 국가에만 출시하는 것이 평점 관리에는 더 좋았을 것.

또 인종 이슈도 발생했다. 다양한 인종의 캐릭터가 게임에 등장하지만 정작 유저들은 <초이스>가 인종 다양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따로 보면 괜찮지만 캐릭터를 모아서 보면 비슷한 피부색과 생김새로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것. 픽셀베리는 나중에서야 이 문제를 깨닫고 대대적으로 수정한 뒤 공식 사과했다.

또한 개발팀을 키우는 것에 소극적이었던 것이 새로운 콘텐츠 개발 속도에 발목을 잡았다. 여러 차례 인수, 불발 경험이 있었던 픽셀베리는 한정된 인원으로 개발을 진행했는데, 이 떄문에 개발 속도가 느렸던 것. '카카오톡'과 같은 채팅 형태의 소설이 인기를 끌어도 당장 반영하지 못해 유행에 뒤쳐졌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다.
이런 실수에도 불구하고 <초이스>는 성공을 거두었다. 조금씩 자리를 잡고 소문이 퍼지면서 출시 1년 6개월 뒤에는 미국 앱스토어 매출 8위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평균 25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픽셀베리는 또다른 선택에 직면했다. 특유의 장르와 개발 원칙 때문에 픽셀베리 스튜디오는 비벤디, EA를 비롯해 여러 큰 회사와 불화를 겪었다. 원칙대로 개발하기 위해 게임을 스스로 운영할지, 새로운 기회를 얻기 위해 또다른 파트너를 찾아볼지 고민한 것. <초이스>는 매각을 선택했고, 아시아 시장 진출의 효율성과 10년 이상의 라이브 경험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 넥슨의 신규 스튜디오가 됐다.


# 관심 분야에서 한 우물을 파면 분명한 차이를 낼 수 있다


시간을 잠시 돌려, 미아오 CEO가 픽셀베리 스튜디오를 막 창립했을 때 어떤 회사가 되고 싶은지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미아오 CEO는 그동안 쌓아온 스토리텔링의 강점을 살려 교육용 게임을 만들고 싶었지만, 실제로 재미와 교육은 병행하기 어려웠다. 또 스튜디오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기에 당장은 사업적 성과가 필요했다.

그렇게 <하이스쿨 스토리>를 출시하고 관리하던 날, 게임 속에서 유저들이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공간에 무서운 글이 달렸다. 한 유저가 자살하고 싶다고 글을 남긴 것. 너무 놀란 미아오 CEO는 자살 방지 상담센터에 도움을 요청해 전문가에게 연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내부적으로 여러 논의 끝에 답변을 결정했다. 우선 전문가의 상담을 받도록 권하고, 우리와 이야기하고 싶다면 응하겠다고 답변했다. 그 후 띄엄띄엄 유저의 메시지를 받게 됐다. 어떻게 답변해야 도움이 될지 고민하고, 연락이 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됐다.

일주일 후 그 유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겠다고 글을 올렸다. 여러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는 데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그 유저는 이후 "여러분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다"고 감사 메시지를 전했다. 이 사건은 픽셀베리 스튜디오의 게임관은 물론 앞으로의 사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픽셀베리 스튜디오가 청소년 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다. 미아오 CEO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 13명 중 한 명은 괴롭힘을 당하고, 그 중 대다수가 자살을 진지하게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그래서 픽셀베리는 '사이버스마일'이라는 비영리단체와 제휴해서 상담이나 자살 징후를 보이는 유저를 연결해주고, 폭력 피해자를 돕는 기부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이스쿨 스토리>와 <초이스>에서 학교 폭력과 사회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특히 청소년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 고민에 대한 이야기는 위안이 되었다고 메시지를 전한 타 언어권 유저도 있었다. 여러 비영리기관과 함께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기획 단계에서 함께 하기도 했다.

"게임은 상호 작용이 가능합니다. 유저는 캐릭터와 연결됐다고 느끼고, 자신이 공감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게임에 고민을 털어놓기도 합니다.게임이 가진 힘, 서로 연결하는 힘을 통해 더 많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도 한 우물만 파면 관심 분야에서 분명한 차이를 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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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 중덕 (程昱 仲德) A.D.141 ~ 220
난 여기 접속해서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대략 평균 연령대가 어찌 되는지를 잘 모르겠다만... 삼국지를 좋아하되,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이면 왠지 삼국지를 처음 책(만화책)으로 접했을 확률이 높겠고, 나이가 좀 적은 분들이라면 아무래도 게임으로 먼저 접하다 흥미가 커지며 그 후에 책을 접하지 않았을까 싶다. 난 삼국지를 처음 책으로 접하다 꽤 시간 흘러 게임을 해보게 되었는데(KOEI 三國志2) 당시 상당히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능력치" 였다... 사실.. 게임속 인물들의 능력치를 접하기까지 책이나 만화속에서는 일정 레벨 이상의 네임드 인물들의 우열을 가려내기가 상당히 어렵다. 주유와 순욱 중 누가 더 뛰어난지, 장료와 방덕 중 누가 더 대단한지, 이건 알길이 없고 저마다의 상상과 추정으로 가려진다. 그러니 토론도 가능했다. 헌데 이 능력치가 매겨지며 내신등급처럼 인물들의 우열이 가려지게 되었고 이 기준은 투명하지 않음에도 게임 접해본 이들은 이 능력치로 인물들을 판단하게 된다. . . . 오늘의 주인공 "정욱" 역시 그런 능력치 시스템의 나름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긴 서론을 써본다. 수 많은 삼국지 게임들 있으나 가장 흥한 일본 코에이의 삼국지 시리즈를 예시해보자면 책사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능력치인 "지력"부문에서 정욱은 평균 90~91 가량인데, 그럼 과연 그는 동게임내 지력 평균치가 93~94인 순유나 95~96의 서서나 종회, 가후 등보다 못한 책사였을까?.... . . . 물론, 명확한 정답이야 없겠지만 내 생각에는 저 질문의 대답은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이며, 소설 속이나 게임 속 정욱이 아닌 역사 속의 정욱에 대해 한 번 이야기 해보기로~ 정욱(程昱)은 본명이 아니며, 본명은 "정립(程立)". 그러나 정욱이란 이름이 차명이나 가명은 아니고, 중간에 개명을 한건데 욱은 주군 조조가 지어준 이름! 어차피 당시는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주로 자를 불렀으며 연의에는 이런 디테일한 스토리는 안나오니 정욱의 개명전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엥간한 삼국지 빠돌이여도 거의 없다. 정욱 자체가 본인의 활약 및 능력과 별개로 별 다른 팬덤도 없는 비인기 인물이라 더욱...(T-T) . . . 현재의 중국 허난성의 구석진 작은 동아현이란 곳이 정욱이 나고 자란 고향이며, 황건적의 난 당시 지략으로 고향을 지켜내 이미 허난성의 당시 지명이던 연주에서 유명인사였다. 집안도 비교적 괜찮던 부유층이였고 본인의 학식과 지략도 출중하며 당시로는 진짜 어딜 가도 눈에 띄는 "거한" 이였는데.... 역사기록을 보면 8자 3촌으로.. 당시의 도량형을 참고, 현재의 수치로 환산해보면 거의 2m에 가까운 거인이다. 당시에는 좀 키가 꽤 크다 싶으면 일종의 감탄사처럼 "8척 거한"이란 표현을 썼기에, 사료에 8자(척)라 해서 건강검진 때 디지털 신장측정기로 잰거마냥 정확한 8자는 아니였겠지만, 정욱의 기록에는 굳이 8자 뒤에 "3촌"이라는 추가 단위가 붙은 것으로 볼 때 거의 정확한 신장측정이 맞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덩치도 상당히 좋았다고 하니 지금으로 치면 하승진같은 정도의 덩치로 보였을 듯.. 보통 삼국지보면 힘쓰는 장수들이 덩치좋고 머리쓰는 책사들은 왜소하고 그럴거 같은데, 정욱은 본인이 임관해 있을 당시의 어지간한 위나라 무장들보다 체격이 컸을 듯 싶다. 연주의 유명인사다보니 일찍부터 여기저기서 오퍼를 받았고 첫번째는 후한 말 연주자사였던 "유대" 였는데, 당시의 유대는 한나라의 칙명을 받고 부임한 그냥 공무원 도지사같은 개념으로 와있었고 당시 원소나 공손찬같은 자기의 세력적 홈그라운드에서 터잡은 군벌은 아니였다. 당연히 별 큰 능력이나 야망은 없었고 정욱 역시 아쉬울게 없어 오퍼를 거절한다.(나같아도...;;;) 이후에 유대가 원소와 공손찬이라는 당시의 두 고래 사이에 끼어 난감한 상황 속에 정욱에게 자문 구하고 정욱이 해준 조언을 따르자 어려움 피한 일이 있었는데, 이에 재차 유대는 정욱에 스카웃 제의하나 역시 거절... 이후 유대가 황건적 잔당들 토벌 중 사망(...)하고 비어있던 연주에 진입한 조조가 정욱에 오퍼넣자 바로 응하는데, 이 당시 정욱은 꽤 비판을 받았고 이유는 유대의 청을 두 번이나 거절하며 내세운 이유가 "재야에 그냥 남고싶다" 라는거였는데 조조의 청은 거절없이 바로 응했기에! (나같아도...;;;) 그런데 이미 이때 정욱은 나이가 꽤 있었다. 이 당시가 거의 190년대 중후반이고 정욱은 조조보다 무려 14세 연상이이였으니 거의 50대 초중반의 나이. 후한 말 ~ 삼국시대의 높은 영유아 사망률 탓이라곤 해도 역시 노인사망률도 높아, 평균 수명이 50 안팎이던 시기인점 감안하면 거의 인생 끝자락에 사회생활 시작... . . . 조조가 직접 스카웃한만큼 시작부터 제법 높은자리서 시작은 물론, 초장부터 대활약한다. 여러가지 크고 작은 활약들이 있고 공적을 세우지만 그런건 삼국지 읽어보면 대강 다 비슷하게 실려있고 이 칼럼은 그런 삼국지를 읽어도 잘 모르겠고 세세히 안나오는 개인적 성향 위주니까 안쓸란다ㅋㅋㅋ 게임만 하신 분들 입장에서는 좀 의아할 수 있지만 정욱은 그냥 안전한 후방의 주군곁에서 이런저런 꾀만 내는 전형적인 책사타입이 아니였고, 본인이 직접 전장에 나가 상황 판단하여 병력을 통솔하는데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었다. 조조의 네임드 책사들인 순욱, 순유나 곽가와 가후 등이 대개 후방책사들이였던 점으로 비춰, 이는 정욱만의 특징. 임관 초기의 조조는 아직 원소에게 쫄려가며 여포에게 시달려가며 유비를 신경쓰며 원술도 그냥 넘겨볼 수는 없던.... 비록 포텐은 충만할지언정 당장의 세력이 큰 시절은 아니였고 조조가 초기거점 삼은 연주 자체가 사방으로 교통 트인 평야지대라 처신 잘못하면 여러 세력의 다굴을 당하기 최적인 곳이여서... 초반의 정욱은 본인도 전장에 나가 직접 적진을 살펴가며 참전해 공을 쌓았다. 일단 본인의 피지컬도 상당하다보니 무예가 출중하진 않더라도 워낙 또 시기가 시기다보니 어느정도의 기본 호신은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 . 조조 휘하의 대표적인 반유비파 책사였다. 그것도 아주 급진적이라 아직 세력이 크지 않을 때 일찍 유비를 죽여야(?!)한다는 주장을 해왔고, 당시는 뭐든 일단 명분이 중요했는데, 정욱은 그런 명분이 없더라도 일단 찬스오면 죽이고 보자는 식으로 유비에 대한 경계가 극심했는데... 유비의 세력이 소수의 어설픈 떠돌이집단이던 시절부터 줄창 유비살해주장론자였던걸 보면 사람보는 안목도 굉장했다는 증거! 정욱이 조조 휘하에서 공은 정말 많이 세웠다. 그런데 이게 확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정욱은 타자로 치자면 홈런을 치는 슬러거가 아닌 주로 안타와 타율 위주의 교타자같은 타입에 기인한다. 정사내 정욱전이나 여러 위와 관련된 사료들에는 정욱이 결코 순욱, 순유, 곽가, 가후 등에 뒤지는 책사가 아닌데도 삼국지연의 상에서 이렇다할 기억남는 대활약이 없기 때문에 저평가가 되는것 같은데... 연의는 다 알듯 소설이며 팩트전달보다 재미가 먼저다. 그렇다보니 잘잘한 활약이 많은 정욱이 돋보이기에 불리할 수 밖에 없다. . . . 인성이 존니 별로였는지, 내부의 적이 상당히 많았다.... 애초에 연주의 호족집안 출신, 게다가 본인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주군인 조조보다도 14살 연상이니 그가 임관한 당시 어지간한 조조의 휘하들은 문무막론 정욱보다 많이 어리다보니 거기서 오는 꼰대기질... 작전회의시에도 누군가 자기의 의견을 반박하면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으며, 상대를 비꼬듯 말하기도 잘 했다. 딱히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는 이도 없었고 자기와 격차가 좀 난다 싶은 이들은 아주 하대했다. 그러다보니 임관 초기부터 위가 건국된 이후까지도 주위의 이런저런 비판상소가 조조와 그 후의 조비에까지 계속 올라왔다. 물론, 일만 잘 하면 여타 프라이빗한 부분은 일절 노터치였던 조조는 흘려들었고 정욱에게도 이와 관련 일절 말이 없었다. 그런 못되먹은 성깔에서 기인한건지 모르겠지만, 조조의 책사들 중 책략에 있어서 가장 인정이 없었다고 한다. 지가 주위 평판 신경 안쓰고 막 산다고 남들도 다 그런줄 아나, 세상의 평판을 무시한 지극히 실리적인 제안을 많이 했다. 당장 위에 언급된 유비살해만 봐도 그냥 일단 죽이고 보자는 식이였는데... 조조 역시 전형적인 실리주의자라고는 해도 그때껏 자기와 자기세력에게 별 악영향도 없고 인망도 높던 유비를 다짜고짜 죽였다가는 뭔 소리를 들을지 몰라 속으로는 맞다고 여겨도 감히 실행에 옮기진 못 했다. 정욱이야 아무리 날고 긴들 그냥 지금으로 치면 "직원", 조조는 "사장" 이였던건데, 직원과 사장은 능력여하 떠나 서로의 시야나 관점이 다를 수 밖에 없다.. . . . 그리고 그 당시에 세상의 "평판"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디 중요한 요소였다. 저 당시 중국은 무정부상태나 진배없던 후한 말, 그리고 황건적의 난과 각지의 군웅할거 등 삼국시대 정립이 되기까지 말 그대로 "개판 of the 개판" 이였기에 사람들이 막 살았다. 그렇기에 그 와중에도 대의명분과 정의 등의 고결한 가치를 소신삼아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자기가 위험해 지더라도 저런 신념을 지키는 이들은 존경과 우러름을 받았다. 그리고 나름의 인재라 불릴만한 이들 역시, 자기한테 얼마줄지, 뭐해줄지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옳은 주군 아래, 바른 일을 한다는 명분을 따라 임관하는 경우도 많았다. 당연히 세력이 엇비슷하면 무조건 반드시 꼭 명분이 앞서고 평판이 좋은 이를 따랐다. 더구나 무장들보다 많이 배우고 공부한 문관들의 경우, 이런 현상이 심했으며, 아무리 무력이 중요하던 시절이나 현실은 게임과 달라 좋은 무장보다 더 필요하고 또 부족했던게 좋은 문관(행정가, 책사 등)이였다.. 예를 들어, 장수가 오호대장군 + 책사가 당신네 회사의 당신 맞고참인 쪽과 장수가 당신네 회사의 당신 맞고참 + 책사가 제갈량 & 방통이면 후자가 전투에서 승리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높다. . . . 그러다보니 평판이 나쁘면 인재가 모이지 않고, 병력징집에도 어려움을 겪으며, 호족들의 물질적 지원 및 백성들 대상 세수확보까지 여러모로 어려움이 따른다. 게다가 전황이 불리해지면 이탈자나 배반자도 높은 확률로 다수가 생겨나 조금만 불리해도 세력와해가 가속된다. 심하면 군주의 신변안전도 보장이 어려워진다. 이렇게 평판이 몹시 중요하던 시기에 그런건 싹 치우고 목적지향성이 과도한 경우가 많았던 정욱의 책략이 반려되거나 다른 책사의 보완책과 더불어지는 경우가 꽤 있었던거 같다. 그러고보면 정욱도 주인을 잘 만난거다. 유비나 손권 휘하였다면 중용받지 못했을거고 원소나 원술을 모셨으면 본인의 목숨도 위험한 상황을 맞았을 수 있었겠으며 동탁을 따랐다면 인성개막장의 동탁에 인정없는 정욱의 책략이 더해지며 레드스컬 아래의 졸라박사같이 되었을 듯.... 늦은 나이에 조조 휘하에 들어가긴 했으나, 그만큼 또 오래 살아서 일흔 아홉에 사망하여 천수를 누렸다... 인성 더러운 이들이 한때는 잘 나가다가도 막판에 험한 꼴 겪거나 비참한 말로를 겪는 경우가 있지만 다행히 정욱은 본인이 권력을 잃거나 하진 않아 고위직에 몸 담다 편히 죽었다. . . . 우리 주위에도 돌아보면 정욱같은 타입의 모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정욱처럼 실력과 재능이 겸비되면 뒤에서나 속으로는 욕해도 앞에서는 모두 그와 친하게 지내려 하거나 잘 하려고 한다. 역시 정욱같은 이들도 자신이 부진해지는 순간 바로 나락이란 걸 알기에, 더 악착같이 일하고 목표를 향해 수단방법, 물불 가리지 않고 나아간다. 그러다보니 계속 평판이 좋을 수 없는 악순환이..... 어쩌면 그 능력과 실적에도 불구하고 연의에서 좋은 대우를 못 받고 또 그 탓으로 현세에도 비인기 인물이 된 것 역시 그의 인성탓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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