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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엔씨맨’이 10년간 들은 얘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제안

소나기가 한바탕 내린 뒤였다. 에누마 사무실이 있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로 가는 길. 도로에 고인 물이 자동차 바퀴에 부서지며 차악 소리를 냈다. 자동차가 지나가자 멀리 까만 비닐봉투를 들고 가는 남자가 보였다. 빨간 후드 집업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 오늘 만나러 온 남자가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걸음을 재촉해 그의 뒤를 쫓았다. 손에 든 비닐봉투 밖으로 빼꼼히 드러난 페트병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동료들과 마실 음료가 떨어졌으리라 짐작했다. 그는 엔씨소프트에서 20년을 일한 사람이었다. 퇴사할 때 직위는 ‘상무’ 였다. 그가 점심시간에 동료들을 위해 페트병 음료수를 사러 나와본 건 언제적 일일까. 남자는 타박타박 걸어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지난해 하반기. 엔씨소프트 김형진 상무가 돌연 회사를 옮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이직한 곳은 교육 앱을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에누마’. 6개월여 후, 2018 넥슨개발자컨퍼런스에 발표자로 등장한 그는 주사를 6번 맞으며 탄자니아에 다녀왔단다.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걸까. 디스이즈게임이 에누마 김형진 게임 디자이너를 만났다.


* 매끄러운 전달을 위해 이하 ‘엔씨소프트’를 ‘엔씨’로 씁니다.

갑자기 교육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고 해서 놀랐다.

나도 이렇게 될 지 몰랐다. (웃음) 한 회사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매너리즘 같은 게 있었나 보다. 이수인 대표 제안에 혹하더라고. 근 10년 간 들은 얘기 중 가장 흥미로웠다. 이수인 대표랑 남편 이건호씨도 엔씨 다녔다. ‘언젠가 셋이 같이 일해도 좋지 않을까’ 우리끼리 얘기만 했었지. 셋이 대학 동창이거든. 이건호씨랑은 같이 <리니지2> 만들었다. 

<토도 수학>이라고 회사에 메인 앱이 있다. 아이들 수학 공부하는 앱이다. 엑스프라이즈*랑 <킷킷스쿨> 하게 되면서 회사에 프로젝트가 두 개가 됐지. 작은 회사가 프로젝트 두 개를 하려니 개발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합류했다. 

본사는 샌프란시스코 버클리에 있다. 한국 사무실은 지난 달까지 거의 연락사무소(?)처럼 있다가 이번 달에 정식으로 법인 설립했다. 인원은 미국, 한국 합쳐서 30명 정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경진대회:세계 최대 비영리 벤처 재단인 ‘엑스프라이즈 재단’이 주최하는 경진대회. 전 세계 아동 문맹 퇴치를 목표로 하며 첫 대상국은 탄자니아다. 에누마는 <킷킷스쿨>로 결선에 진출했다.

에누마에서 무슨 일 하고 있나.

게임 디자인 한다. 완전 실무자다. 엑스프라이즈에서 수상한 <킷킷스쿨> 개발하고 있다. 탄자니아 아이들 공부하는 앱인데, 약 40개 정도의 게임을 통해 스와힐리어, 영어, 수학을 공부할 수 있다. 도서관이랑 색칠 공부 같은 것 할 수 있는 기능도 있고.


엔씨에도 이런 프로젝트 있지 않나. 문화재단도 있고.

엔씨문화재단이 꾸준히 이런 일 하고 있다.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는 걸로 안다. 근데 엔씨에선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래도 목표가 다르지 않나. 에누마는 애초에 이런 걸 목표로 하는 회사고 엔씨는 회사의 어느 조직 하나가 그런 일을 하는거고. 회사의 목표가 의사결정 속도랑 연결되는 것 같다.

작은 회사로 옮기고나서 느끼는건데, 뭐든 액션을 빨리빨리 할 수 있다. 좀 말 안 되는 것도 할려면 할 수 있고. (웃음) 


사회 문제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나.

많았다. 언젠가는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근데 좀 막연했지. 구체적이어야 추진력이 생기는데. 이수인 대표에게는 굉장히 구체적인 목표와 과정이 있었다. 그의 비전을 실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왜 교육인가. 기여할 분야는 많지 않나. 

그러게. (웃음) 게임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NDC PT 준비하면서 ‘게임이 좋은 게 뭔가’를 다시 생각해 봤다. 일단 인터랙션이 즐겁고, 내적인 어떤 매커니즘을 깨달았을 때의 기쁨이 있고, 배움으로 내가 성장하는 느낌을 주고. 그런 걸 다른 사람이랑 공유하며 또 커뮤니티의 즐거움을 얻고. 이런 것들을 잘 이용할 수 있는 게 교육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 실제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한 2010년 정도에 ‘시리어스 게임’이 많은 관심을 받았지. 근데 주목받은 만큼 성공하진 못했다. 아마 여러 디테일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부분을 ‘잘’ 하면 돌파할 수 있다. 에누마는 그런 노하우가 있는 회사고. 

엔씨에서 <마법천자문>이나 <호두잉글리시>같은 교육용 게임을 개발하면서 느낀 게 있다. 교육의 기회가 충분한 친구들에게 ‘게임가지고 공부할 수 있어’라고 하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 그들에겐 공부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근데 제3세계 국가는 다르다. 교육 시스템이 없거나, 붕괴된 나라가 많다. 그렇다면 결국 아이가 혼자 동기부여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여기서는 게임이 해 줄 수 있는 게 많은 거지. 재밌어야 계속 하니까. 

특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들. 그 나이대에 기본적인 덧셈, 뺄셈, 곱셈 같은 거 할 수 있는 거랑 없는거랑 성인이 됐을 때 차이가 난다. 우스개 소리로 맨날 하는 얘기가 “나 여기와서도 맨날 리텐션(잔존율) 고민한다”고. 아이들이 선생님도, 학교도 없는 곳에서 이 물건을 가지고 혼자 놀아야 하니까 잘 하고 있나, 그만두진 않았나 걱정이 되는 거다.

스스로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재밌어야 한다는 얘기 같다.

맞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반적인 게임도 재미있게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경험치를 모으면 레벨이 올라간다든지, 돈을 모으면 상점에서 뭘 살 수 있다든지. 그런 개념들이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면서 조금씩 학습된 거다. 그렇게 해야 더 재밌다는 것 말이다. 

여기와서 굉장히 많이 배우고 있다. 회사에서 회의할 때 이런 얘기가 나왔다. ‘우리가 지금 굉장히 인류학적인 과제를 풀고 있다. 인간이 어떤 백그라운드나 학습없이 그냥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 뭐냐.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은 무엇이냐.’ 그런 것들을 맨땅에 헤딩하며 알아내고 있다. 


이수인 대표는 모든 아이들이 ‘기초 학력’을 갖는 게 목표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작을수도 있는 그 차이가 성인이 됐을 때 큰 차이를 부른다. 엑스프라이즈를 설계한 곳이 미국의 USAID(대외 원조를 담당하는 미국의 정부 기관)인데, 거기서 그런 논문이 많이 나온다. 아이가 서너 문장으로 된 글을 이해할 수 있나 / 없나, 두 자리의 받아올림 있는 덧셈을 할 수 있나 / 없나. 이렇게 분류한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차이가 났던거지. 수입이라든지 학력 같은 게.

그게 어떤 극단적인 차이가 아니다. 그 나이대에 그걸 알면 그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런 연쇄 작용이 차이를 부르는거지. LOL의 스노우볼링 같은 거다.

<킷킷스쿨>의 테스트 국가로 탄자니아가 선정된 이유가 있나.

엑스프라이즈가 이 프로그램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게 제안했고, 얘기가 잘 된 게 탄자니아라고 알고 있다. 탄자니아 교육부가 적극적이었다고 하더라. 아프리카 나라들이 전자교과서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 사람들 학교 시스템 만들려고 돈 엄청나게 썼다. 학교 만들고, 교사가 학생 가르치는 그런 시스템 만들려고 했는데 잘 안 됐지.

탄자니아는 초등 교육이 의무다. 수치상으로 입학률 90 몇 퍼센트 되고, 졸업률도 높다. 근데 여전히 문맹은 너무 많다. 학교라는 시스템은 있는데 교육이라는 목적이 달성이 안 되는 거다. 


아이들이 그 나이대에 배워야 할 것들이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전달이 안 되고 있다는건가? 

맞다. 학교에 가서 앉아있다고 교육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작년에 탄자니아 갔을 때 학교들을 꽤 많이 봤다. 거기도 등급이 다 있다. 영어만 쓰는 삐까뻔쩍한 외국인 학교도 있고. 공립 학교들 중 좀 아랫 등급 학교 가면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앞에 앉아있고 애들은 자기 원하는 거 하고 있다. 한쪽 구석에는 원조받은 몬테소리 교구들 먼지 뿌옇게 쌓여있고. 그런 상태.

그 나라들 입장에서는 절실하게 풀어야 하는 문제다. 현실은 이렇지만 다음 세대는 지금 세대보다 나아야 하니까. 해도 해도 안 되니 극단적인 방법도 써 보는 거다.

극단적인 방법?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도 공교육 붕괴 얘기 많이 한다. 일단 시스템이 있으니까 그런 나라들은 뭘 파격적으로 바꾸진 못한다. 근데 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 나라는 그게 가능하지. ‘우리 몇 년도부터 100% 전자교과서 하겠다’ 이렇게 선언하는 나라도 있고. 그렇게 엑스프라이즈랑 니즈가 맞은 나라들이 있다. 탄자니아도 그 중 하나다.


전자교과서는 어떤 건가?

전자교과서가 어떤 형태인지, 어떤 형태여야 하는 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뭔가 성배같은거지. 교육계의 성배. 에누마에서 PT할 때 자주 쓰는 짤방중에 그런 거 있다. ‘이것이 미래의 교육이다!’ 하면서 아이들 교실에 다 앉아있고, 로봇이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때리고 그러는. (웃음) 

상상력이 부족한 거다. IT 기술로 교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부족한 상태지. 우리는 그게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게임이라는 키워드만큼 중요한 게 유니버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다. 이수인 대표가 ‘모든 아이들이 기본적인 학력을 가지는게 목표’라고 했다. 모든 아이들중에는 인지가 떨어지는 아이도 있을거고, 똑똑하지만 주의가 산만한 아이도 있을거고, 자폐가 있는 아이, 눈이 안 보이는 아이, 귀가 안 들리는 아이도 있을 거다.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은데, 이 아이들을 다 포용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일단 건축학 개념이다. 횡단보도에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게 한 경사면 있지 않나. 그게 있다고 해서 일반인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 거다. 오히려 편하면 편했지. 근데 휠체어를 탄 사람한텐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 
게임을 디자인 할 때도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맞춤형 디자인을 하라는 게 아니다. 1+1=2를 가르칠 때 색깔을 바꿔주면 색약인 아이들도 알 수 있게 되고, 음성 텍스트를 제공하면 눈이 안 보이는 아이들, 보상 주기를 빠르게 하면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도 몰입하게 할 수 있겠지. 하나의 물건을 만들지만 굉장히 포괄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사실 이수인 대표 아이가 장애를 갖고 있다. 그게 큰 계기가 됐을 거다. 우리나라처럼 나름 공교육 체계가 잡혀있는 나라에도 그런 사각은 있다. 그런 아이들은 사실 특수교육 교사가 1:1로 케어해야 교육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행동 전문가나 유아 교육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다.

맞다. 미국 본사에 특수교육 전문가도 컨설턴트로 있고, 한국에도 있다. 근데 이론을 응용해서 실제로 만드는 건 게임 기획자들이 굉장히 훈련이 잘 돼 있다고 본다. 게임 기획자들 사고에 유니버셜 디자인 개념을 넣으면 ‘이 사람 왜 게임을 그만두지?’의 원인을 좀 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다. 게임 좀 해 보니까 재미가 없어서 그만둘 수도 있는데,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할 지 몰라서 그만둘 수도 있다는거다.

그런 게 없도록 게임을 다듬고 깎아내는 훈련이 게임 기획자들은 잘 돼 있다. 행동 전문가나 유아 교육 전문가의 이론을 실무적인 결과물에 적용하는데 능숙한 사람은 게임 만드는 사람이라고 본다. 


게임을 좀 해 봤더니 재미없어서 이탈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 지 몰라서 이탈하는.

게임 출시하면 보통 초반 5분 분석을 하지 않나. 이걸 게임 회사에서는 초 단위로 잘라서 보는데 교육용 게임도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어려운 일이다.

<킷킷스쿨>은 타이틀 로고가 나오고 난 뒤 텍스트가 꽤 긴 시간 안 나온다. 근데 그러면서도 아이가 ‘자유롭게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또 그러면서도 이 화면에서 뭘 해야 할 지 전혀 고민하지 않게 해야 한다. 

엔씨 다닐 땐 잘 몰랐겠다. 게임을 만들 때 보통 보편적으로 잡고 있는 타깃 유형이 있지 않나.

상업 게임들도 슬슬 시동은 걸고 있지. 최근 GDC 같은덴 억세서빌리티(Accessibility) 세션이 늘 있다. 특히 대형 콘솔게임 만드는데서는 신경쓰고 있고. 하지만 여전히 많이 퍼져있는 건 아니다. 근데 주류 게임도 아마 이쪽에 주목하면 상업적으로 큰 리턴이 있을 거라 본다. 나도 에누마에 와서 깨달았다.


<킷킷스쿨>은 어떤 식으로 보급되고 있나. 

탄자니아 시골 마을에 직접 갖다 준다. 많은 데는 애들이 열 몇 명, 적은데는 서너 명 있다. 150개 마을에 유네스코 사람들이 짚차 타고 가서 기기랑 태양열 충전기 갖다주고 “바이바이” 하는거다. 2주에 한 번 가서 기계 고장났나 물어보고, 고장나면 바꿔주고.

교육부가 적극적이었다는게 놀랍다. 공교육을 포기하는 것 아닌가.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것 같다. 공교육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한텐 우리가 되게 사도인거지. 근데 어떻게든 교육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사람들한텐 이게 제3의 길인거고. 


지금 아프리카가 교육 문제가 가장 심각한 걸로 안다. 맞나?

그렇지. 근데 중국 내륙만 해도 상황이 안 좋다. 인도도 그렇고.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난민이다. 북아프리카쪽 난민 문제가 크다. 그게 지금 유럽쪽 문제가 되고 있거든.

엑스프라이즈용으로 만든 걸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난민 캠프에서 테스트 해 보고 있다. 지금 케냐에 아프리카 난민 캠프가 있다. 그 안에서도 아이를 낳으니까 난민이 계속 늘어난다. 난민 받은 나라 입장은 지금이야 어쩔 수 없지만 10년 20년 후에도 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인거랑, 말을 알아 듣고 쓸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상황인 거다. 지금 난민을 받은 나라는 이게 코앞에 닥친 상황이다. 

난민 캠프 안에도 학교는 물론 있다. 근데 선생님 한 명에 아이들 한 300명 있고 그런 형편이지. 일반적으로 교과서 있고 선생님이 칠판에 써서 가르치는 형태의 교육이 될 리가 없다. 여기서 선생님 더 늘리라고 하는 건 사실 너무 이론적인 얘기인거고. 일단 받은 나라 입장에선 그런 제3의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지. 

김 디자이너도 자녀가 있는 걸로 안다. 합류하고 나서 자녀의 교육 환경을 보는 관점 같은 건 바뀌었나.

일단 ‘보는’ 게임의 시대로 가는구나. 라는 걸 많이 느끼고. (웃음)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다. 애 키우는 고민은 늘 있지. ‘공부 잘 한다고 쟤가 훌륭한 사람이 될까?’ 이런 생각도 하고. ‘탄자니아 외국인 학교 좋은 것 같아’ 이런 생각도 하고.


초등학교 4학년이면 이미 공교육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한국 공교육은 어떤 것 같나?

우리 애는 일단 잘 따라가고 있는 편인데 막연한 두려움은 있다. 지금 아이들도 우리가 배웠던 대로 그대로 배우고 있지 않나. 4차 산업혁명, 직업이 사라지고 어쩌고... 이런 얘길 하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이 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것 같단 말이지. 

내가 잘 모르는 미래에 아이가 놓이게 된다면 생존 스킬이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좀 불안함이 있는 것 같다. 학교가 아이에게 생존 스킬을 가르치고 있나? 잘 모르는 상황에서 답을 찾고, 문제를 정리하고 그런 능력.


독일은 학교에서 노동법 가르치는 것처럼?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성평등 교육 같은 게 잘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난 사실 그거 되게 두렵거든. 우리 애가 일베할까 봐. (웃음) 이런 부분이 잘 교육되고 있나 걱정이 많이 된다. 그렇다고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랑 많이 얘기하는 수 밖에 없겠지. 아이가 내가 만드는 것들 테스트 플레이도 열심히 해 준다. 

김 디자이너처럼 사회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을 거다. 근데 대뜸 전직하기는 힘든 게, 먹고 사는 현실도 중요하지 않나. 에누마는 어떤가?

최근에 투자를 한 번 받았다. 아직까진 투자에 의존하고 있지. 재밌는 건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교육용 게임 시장 망했다’ 이런 분위기인데 글로벌하게 보면 그렇지는 않다. 제3세계 중심으로 기회를 잡고 있는 회사들이 있다. 우리는 어쨌든 매출을 지금보다 올려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해야지. (웃음)


투자 주체가 일반적인 투자사는 아닐 것 같다.

엑스프라이즈의 파이널리스트였던게 크게 작용해서 소셜 임팩트 투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투자를 하신 걸로 알고 있다. 


관(官)이나 정부는 어떤가.

KOICA(코이카, 한국국제협력단)에 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 프로그램이라고. 코이카가 해외 지원을 많이 하지 않나. 그 중에 IT 기술 지원 분과가 따로 있다. 그쪽 지원을 많이 받았지. 탄자니아 갈 때도 비행기 표 이런 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테스트를 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 쪽에서 코이카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 외에도 그런 식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NGO나 단체들이랑 열심히 교류하고 있다. 

이직할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부인이 언어치료사다. 질병이나 심리적인 이유로 말하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들 치료하는 직업이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전문가지. 그런 기회가 있으면 본인이 더 하고 싶어할 사람이다. 여기 오는 건 흔쾌히 동의했다.

에누마 온 이후로는 책도 추천받고, 이것 저것 많이 물어보고 있다. ‘애가 말을 배우는 과정이 어떻게 되냐?’ 이런 것도 물어보고. 아이가 뭔가를 배우는 과정을 보면 RPG 스킬셋 같은 느낌을 받는다. (웃음) 애가 이걸 할 수 있으면 이것 이것도 할 수 있고, 이 단계로 못 가는건 이거랑 이걸 못했기 때문. 이런 식이다. 그런 것 같이 얘기하는 것도 재밌지.


지금 김 디자이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중 뭐가 제일 좋나.

물건을 만들면 나온다는 거? (웃음) 

되게 오랜만에 실무를 하고 있다. 기획서도 쓰고, 데이터시트도 넣고. 사람 없으니까 어떨 때는 오디오 편집도 한다. 모르면 막 배워서 하는 거지. 엔씨에선 머리로 고민하는 일을 했는데 지금은 손이 바쁘다.

몇 년새 업무 환경이 되게 좋아졌다. 클라우드 환경에서 개발하는 거 너무 편하다. 본사가 미국에 있으니까 원격으로 협업하는 툴들 이용하는 그런 환경이 즐겁다. 보안 같은 거 큰 회사 있을 때보다 신경 덜 써도 되고. (웃음) 


시기적으로 1세대에 속하지 않나. 그때 같이 개발했던 분들은 지금 큰 회사에도 있고, 작은 회사 대표로 있는 사람도 있을텐데. 뭐라고 하나.

나는 1.5세대 정도 되겠지. 1세대한테 깨지면서 개발한. (웃음) ‘너 거기서 뭐 하니’하는 분들도 있고. 김택진 대표는 나올 때 의미있는 일 한다고 축하해 줬다. 김택진 대표한테는 좀 죄송한 마음이 있지. 내가 더 잘 했어야 하는데.


자유로워보인다. 염색한 머리색, 코토리 베이지라고 들었다.

그래보이나? 염색하고 머리 많이 자란 거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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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 사거리에서 있었던 일 입니다. 당시 응급차를 못가게 막아세워며 실갱이 하는 내용 블박영상이지만 소리만 들리내요~ 택시기사의 블박영상은 더 가관이지만 경찰에서 못준다고 합니다. 퍼온 영상입니다. 아래 글은 돌아가신 고인의 아드님이 쓰신 글입니다. 그간 어머님께서는 암 선고를 받고 투병하시며 회복되었다가 다시 아프셨다가를 반복하며 어언 수년간을 싸워 오셨습니다. 아플때마다 급히 응급실을 찾으면 금방 다시 좋아지시고 하시기를 여러번 그때마다 온식구들은 가슴을 쓸어 내리며 어머님 회복에 감사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2020년 6월 8일 월요일 오후 3시 15분 그날따라 평소와는 다르게 어머님의 호흡이 너무 옅고 심한통증을 호소하시어 응급실을 예약하고 응급실로 급히 모셔야 했기에 응급차를 불러 이동하기로 하였습니다. 처와 아버지와 동승하여 응급차로 어머님을 모시고 가고 있는 도중 2차선에서 1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다 영업용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응급차 기사분은 신속하게 차에서 내려 택시 기사에게 “사경을 헤메는 위급 환자를 급히 응급실로 이송중에 있으니 응급실에 먼저 모셔드리고 사건을 해결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였지만 야속하게도 택시기사는 막무가내 막아서며 위급환자 맞냐며 “응급환자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환자 죽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죽으면 책임지겠다”라고 말하며 응급차 문을 열어제끼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신음하시는 어머님 얼굴을 사진을 찍고 응급환자 아닌거 같다는둥의 망언을 하며 응급차에 올라타 응급차가 이동하지 못하도록 막아세우며 위중환자가 있으니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저의 처와 아버지의 말도 아랑곧 하지않고 15분~20분가량 내리쬐는 때앙볓에 어머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어머님의 눈동자가 뒤로 뒤집히시고 급기야 하혈까지 하시면서 상황이 걷잡을수 없도록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한참후에야 119 구급차가 도착하여 어머님을 옴겨 태우고 병원으로 향하였지만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탓인지 어머님은 고통 속에서 매우 신음하시다가 돌아 가셨습니다. 저와 저의처,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님의 배우자이신 저의 아버지... 수년간 병마와 싸우면서도 누구하나 소홀함없이 어머님 간호에 집중하며 곧 병마를 딛고 일어서리라는 희망으로 간호해왔던 우리식구들은 세상을 잃어버린양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그 허망함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을정도로 원통합니다. 지금도 그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고 조금만 빨리 병원에 도착했으면 어머님은 아직도 우리 식구 곁에 머물며 우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시고 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로 몇날 몇일을 보내고 있으며 아버지는 평생의 동반자를 먼저 보냈다는 생각에 식음을 전폐 하시며 지내고 계셔서 또한번의 불행이 오지않을까 매우 걱정이 됩니다.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7jT0fT ↑↑↑↑↑↑↑↑↑↑↑↑↑↑ 고인의 아들이 올린 국민청원 입니다 이슈화되게 도와주십시오. ----- 글만 보는데도 너무 화가 납니다. 미친 건가요...?
[직캠] 진모짱과 네코제X블리자드, 유저 코스플레이어 천도화 외 코스프레 - 마비노기 나오, 퍼거스 등
넥슨 게임의 다양한 2차 창작물을 교류하는 콘텐츠 축제, 2019년 제7회 네코제(NECOJE)가 일산 킨텍스 제2전시관 야외 광장에서 5월 11일(토)과 12일(일) 양일간 열렸습니다. 이번 네코제는 경기도 주관 게임 전시회 플레이엑스포(PlayX4)가 열리는 현장에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와 함께 '네코제 X 블리자드'란 이름으로 공동 개최되었습니다. '네코제 X 블리자드'에서 네코제는 만화, 소설을 포함한 개인 상점 운영, 코스튬 플레이, 성우 토크쇼, 아트워크 전시, 그리고 게임 음악 콘서트 네코제의 밤이 진행되었습니다. 코스튬 플레이에서 코스어들은 넥슨과 블리자드 게임 속 다양한 캐릭터 코스프레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블리자드는 무법항 마을에서 자사 IP를 활용한 2차 창작물 전시와 판매, 그리고 방문객 대상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무대 행사 등으로 꾸몄습니다. 또한, 블리자드 코리아 현지화 팀과 코스프레팀 스파이럴캣츠의 원데이 특강도 진행되었습니다. 영상 속 유저 코스플레이어 천도화 외는 온라인 MMORPG 마비노기 캐릭터 나오, 퍼거스 등 코스프레 및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The 7th NECOJE, a content festival that exchanges various secondary creations of Nexon games, was held on May 11 (Sat) and 12 (Sun) in the open-air plaza of the KINTEX 2 exhibition hall in 2019. Nekoze was co-hosted with Blizzard Entertainment under the name Nekoze X Blizzard at the site of the GameX PlayX4 hosted by Gyeonggi-do. At Nekoze X Blizzard, Nekoze held a private store run of comics and novels, costume play, voice actor talk show, artwork display, and game music concert Nekoze night. In costume play, the cosplay featured various character cosplay performances from Nexon and Blizzard games. Blizzard decorated and sold second-generation creations using its IP in the lawless villages, as well as various programs and stage events for visitors. In addition, one-day lectures were held on Blizzard Korea's localization team and cosplay team Spiral Cats. In addition to the cosplay and performance of the online MMORPG Mabinogi character Nao and Fergus, the cosplay user performance was shown. ネクソンゲームの様々な2次創作物を交流するコンテンツフェスティバル、2019年第7回ネコ第(NECOJE)が一山KINTEX第2展示館野外広場で5月11日(土)と12日(日)の両日、開かれました。 今回の猫剤は、京畿道の主管ゲームショープレイエキスポ(PlayX4)が開かれる現場でブリザードエンターテイメントと一緒に「猫第Xブリザード」という名前で共同開催されました。 「猫第Xブリザード」でネコ剤は漫画、小説などの個人商店運営、コスチュームプレイ、声優トークショー、アートワークの展示は、ゲーム音楽コンサート猫製の夜が行われました。コスチュームプレイでコスオはネクソンとブリザードのゲームの中、様々なキャラクターのコスプレショーを披露しました。 ブリザードは無法項町では、そのIPを活用した2次創作物の展示や販売、そして訪問者対象多彩なプログラムと舞台行事などに構えています。また、ブリザードコリアローカリゼーションチームとコスプレチームスパイラルキャッツのワンデー特別講義も行われました。 映像の中のユーザのコースプレーヤー天道化以外はオンラインMMORPGマビノギのキャラクターって、ファーガスなどなど、コスプレとパフォーマンスを披露しました。 #네코제 #블리자드 #코스프레
습관을 연구한 공학자, 길브레스 부부 (1)
1904년 10월 19일, 미 오클랜드. 막 결혼식을 마치고 나온 신혼부부가 기차에 올라 몇 마디 대화를 나눴습니다. '아이는 몇이나 낳았으면 좋겠어?' '글쎄, 한 다스만 낳지. 기왕이면 남녀 각각 여섯 명씩.' 대화 내용이 살짝 소름끼치긴 합니다만, 결과적으로 이 말은 실제로 실현됩니다. 평생 길브레스 부부는 여섯 명의 아들과 여섯 명의 딸을 가졌고, 개중 다섯째 아들과 일곱째 딸에게 자신들 이름을 각각 붙여줬죠(프랭크 2세, 릴리언 2세). 비록 둘째는 1912년 디프테리아로 사망하지만, 나머지 형제자매들은 모두 잘 성장해 주었습니다. 길브레스 부부와 11명의 자식들. 자녀들은 부부의 실험 연구 대상이자 참가자였습니다. 부부는 여러 번 자녀들이 접시를 닦는 동작을 촬영해 분석하거나, 그들이 개발한 방식으로 타자기 사용을 보름 만에 숙지하게 교육하는 등 일상 생활에 그들의 연구를 접목했습니다. 그렇지만 자녀들이 기억하는 부모는 유머러스하고 자상한 사람들이었다고 하네요. 어째서 남편, 프랭크 길브레스가 열두 명 자식을 원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프랭크 길브레스는 매번 가족들을 데리고 국립공원이나 영화관에 입장할 때, 혹은 기차나 차편을 타야 할 때면 항상 단체 할인을 받아냈다고 하네요. 나중에 프랭크는 아이들 중에 쌍둥이나 세쌍둥이가 없어서 섭섭해했답니다. 여러 명 아이들을 한 번에 낳아 한 번에 기르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나요? 뉴저지 몽클레어에 집을 한 채 마련해 두고, '과학적 관리법과 낭비의 동작을 없애는 학교'라고 이름붙인 집에서 길브레스 부부는 평생 자신들의 연구를 그 자신과 자기 자식들에게 적용했습니다. 나중에 셋째 어네스틴과 다섯째 프랭크 2세는 자기 가족들이 그 집에서 살았던 경험담을 책으로 펴내기도 했는데요. 이 책이 어찌나 유행했던지 속편에 영화, 뮤지컬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자녀들이 기억하는 프랭크 길브레스는 자상하고 유쾌한 가장이었던 모양이지요.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혁신주의 운동이 미국 사회 전체에 영향을 떨칠 때가 1900년대 초 일입니다. 최초의 경영 컨설턴트 프레데릭 테일러가 활발하게 강연, 저술 활동을 하며 자신의 소위 과학적 관리론을 설파하고 다닌 때도 이 즈음이죠. 1904년 결혼한 길브레스 부부가 어떻게 평생에 걸쳐 공동연구를 수행했는지는 잠시 미뤄 두고, 먼저 프랭크 길브레스에 대해 잠깐 조명을 해보겠습니다. 프랭크는 메인 주 페어필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아났습니다.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결과 MIT에 입학 허가를 획득하지만 가정 형편상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하기를 선택했죠. 17세이던 그가 선택한 첫 직업은 벽돌공 수습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차차 능력을 인정받아 현장감독으로 승진했고, 나중엔 아예 독립해 건축회사를 차리게 됩니다. 이때 프랭크 나이가 34세였습니다. 사장이 된 프랭크가 집요하게 파고든 건, 바로 벽돌쌓기의 효율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수단으로 현장 연구를 실시한 후,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불필요한 작업 동작을 선별해내 제거하거나 교정하는 동작 연구였죠. 프랭크는 자기 연구를 바탕으로 건설업계의 작업 방식을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여러 방안을 줄줄이 내놓았습니다. <현장 시스템(1901)>, <콘크리트 시스템(1908)>, <벽돌쌓기(1909)> 3부작 저서가 바로 그 방안이었죠. 운명적인 만남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습니다. 1903년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의 한 부유한 집안 여성이 미 동부로 여행을 옵니다. 그녀 응접을 맡은 안내원 미니 번커는 프랭크의 친척이었죠. 결국 미니 번커의 소개로 여성은 프랭크 길브레스와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 뒤 약 1년간 편지를 주고받은 끝에 서로 마음이 맞음을 확인한 두 남녀는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되는데요. 이 여성이 바로 프랭크의 영원한 반려, 릴리언 길브레스였죠. 릴리언의 아버지는 독일 태생의 미국인으로 설탕 정제업으로 나름대로 부를 쌓은 인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몸이 약해 집안일에서 자주 릴리언의 도움을 받았죠. 릴리언은 학업 성적이 뛰어났는데, 부모는 대학 진학을 반대했습니다. 자기 딸이 형편 넉넉한 집 자녀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게 두 사람의 바람이었죠. 릴리언은 그런 부모를 이렇게 설득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너무 평범해서, 부자들은 아무도 저와 선뜻 결혼하려 하지 않을 거에요.' 설득이 먹힌 건지, 아니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건지, 릴리언은 소원대로 근처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에 입학하게 됩니다. 당시 캘리포니아 대학은 주 시민은 누구든지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형 강의가 많아서 심지어 건물 밖에 텐트를 치고 진행하는 수업도 있었다고 하네요. 또 학교에 기숙사가 따로 없어서 릴리언은 매번 집에서 통학을 해야 했습니다. 전공은 영문학이었는데, 심리학 등에도 관심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릴리언은 대학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올려, 졸업식 연사로 연단에 올랐죠. 캘리포니아 대학에선 처음으로 여성이 졸업 연사를 맡은 사례였습니다. 1900년 릴리언은 콜롬비아 대학의 대학원에 지원하는데요. 본인은 영문학 전공을 희망했지만, 지도 교수 소개를 받아 찾아간 영문학 교수는 여학생을 제자로 받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는 대신, 그녀는 전공을 심리학으로 바꾸어 진학하는데요. 도중에 건강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902년 모교인 캘리포니아 대학으로 돌아와 기어이 석사 학위를 마친 후, 릴리언은 바로 박사 과정을 지원합니다. 이때 지원한 전공은 영문학, 부전공으로 심리학을 선택했죠. 이후 1903년 동부 여행 도중 소개받은 프랭크와 1904년 결혼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앞서 적은 그대로입니다. 결혼 이후 프랭크의 연구는 부부 공동의 연구가 되었습니다. 프랭크는 릴리언에게 산업심리학 분야를 공부해 보라고 권유하죠. 릴리언 역시 그 편이 프랭크의 일을 도울 수 있겠다고 생각해 동의합니다. 결혼 당시 이미 프랭크는 길브레스 사Gilbreth inc.라는 컨설팅 업체를 운영하고 있었거든요. 이후 두 사람이 꾸리는 가정 생활은 여러모로 독특했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이렇습니다. 1. 그 집에선 항상 심부름거리가 판에 적혀 있었습니다. 용돈이 추가로 필요한 아이들은 자신이 할 심부름거리를 골라 길브레스 부부에게만 자신이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입찰액을 적어 제시했는데요. 부부는 이중에 최저입찰액을 제시한 사람에게 응찰해 심부름을 맡기고 용돈을 주었다네요. 2. 프랭크는 매번 조끼를 입을 때면 아래부터 위로 올라가며 단추를 채웠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위에서 아래로 끼우면 7초가 허비되지만, 아래서부터 채워 올라가면 고작 3초밖에 안 걸린다나요? 3. 한번은 면도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면도솔 두 개로 거품을 낸 후, 면도칼 두 자루로 한꺼번에 면도를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걸 확인하려고 직접 실행에 옮겼다고 합니다. 당연히 면도칼에 목이 베여서 피가 났는데, 자녀들 증언에 따르면 프랭크는 베인 것 자체보다 그걸로 인해 목에 붕대를 감느라 2분이 오히려 허비된 것에 실망한 듯 보였다네요. 4. 평소에 프랭크는 가족 집합 신호로 휘파람을 정해 놓고 스톱워치까지 동원해서 신호 즉시 모든 가족이 무슨 일이 있어도 모이도록 훈련했다고 합니다. 가족들 전체가 모여야 할 일이 있거나 손님이 와서 가족을 소개시킬 때 등 여러 상황에서 휘파람 신호를 이용했다는데요. 어느날 이들 가족이 길가에서 낙엽을 태우던 중, 그만 불이 나무 벽에 옮겨 붙었다고 합니다. 프랭크가 즉시 휘파람을 불자, 불과 14초만에 온 가족이 밖으로 뛰쳐나왔죠. 불은 소방수에게 채 연락할 틈도 없이 꺼졌답니다. 5. 프랭크 길브레스가 가족 중에서도 유난히 특이한 성격이 아니었냐고요? 화장실에는 가족들이 매일 할 일과 공정표가 붙어 있었는데요. 이건 부부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각종 가사일을 해낼 수 있을지 연구한 결과였습니다. 아이들은 밤에 자기 전 체중을 달아 그래프에 적고, 숙제를 마무리하고 손과 얼굴을 씻고 이를 닦으면 또 도표에 표시를 했습니다. 이때 아내 릴리언 길브레스는 스케줄에 기도하는 것도 표시하고 싶다고 제안했는데요. 프랭크는 심사숙고 끝에 각자 자유로 두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내렸다네요. 특이한 성격은 부부 양쪽 모두였던 모양입니다. 1924년 프랭크 길브레스는 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제 1회 국제경영컨퍼런스에 참석하려고 여행길에 오릅니다. 도중에 그는 무언가를 문득 떠올리고 근처 공중전화로 아내이자 파트너인 릴리언에게 전화하죠. '오는 도중에 가루비누 담는 동작을 생략할 좋은 생각이 났는데 어떻게 생각해?' 믿기지 않지만, 그게 프랭크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되었습니다. 슬로바키아에 가기도 전에 프랭크 길브레스는 심장병으로 사망합니다. 홀로 남은 릴리언 길브레스에겐 11명의 자녀와 집, 남편이 남긴 사업체와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맡은 일이 남아 있었죠. 프랭크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돌자, 심지어 그동안 길브레스 사와 거래해 온 업체들이 컨설팅 계약 중지를 통보했습니다. 릴리언 길브레스에겐 두 선택지가 있었죠. 모든 일을 접고 고향에 가서 남편 잃은 미망인으로 평생 가족을 돌보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남편의 업무 파트너로서 그의 연구와 일을 이어갈 것인가. 릴리언 길브레스는 남편의 모든 것을 자신이 잇기로 결심했습니다. 산업 공학의 퍼스트 레이디는 그렇게 탄생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