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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엔씨맨’이 10년간 들은 얘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제안

소나기가 한바탕 내린 뒤였다. 에누마 사무실이 있는 성수동 헤이그라운드로 가는 길. 도로에 고인 물이 자동차 바퀴에 부서지며 차악 소리를 냈다. 자동차가 지나가자 멀리 까만 비닐봉투를 들고 가는 남자가 보였다. 빨간 후드 집업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 오늘 만나러 온 남자가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걸음을 재촉해 그의 뒤를 쫓았다. 손에 든 비닐봉투 밖으로 빼꼼히 드러난 페트병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동료들과 마실 음료가 떨어졌으리라 짐작했다. 그는 엔씨소프트에서 20년을 일한 사람이었다. 퇴사할 때 직위는 ‘상무’ 였다. 그가 점심시간에 동료들을 위해 페트병 음료수를 사러 나와본 건 언제적 일일까. 남자는 타박타박 걸어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지난해 하반기. 엔씨소프트 김형진 상무가 돌연 회사를 옮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이직한 곳은 교육 앱을 만드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에누마’. 6개월여 후, 2018 넥슨개발자컨퍼런스에 발표자로 등장한 그는 주사를 6번 맞으며 탄자니아에 다녀왔단다.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는걸까. 디스이즈게임이 에누마 김형진 게임 디자이너를 만났다.


* 매끄러운 전달을 위해 이하 ‘엔씨소프트’를 ‘엔씨’로 씁니다.

갑자기 교육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고 해서 놀랐다.

나도 이렇게 될 지 몰랐다. (웃음) 한 회사에 너무 오래 있다 보니 매너리즘 같은 게 있었나 보다. 이수인 대표 제안에 혹하더라고. 근 10년 간 들은 얘기 중 가장 흥미로웠다. 이수인 대표랑 남편 이건호씨도 엔씨 다녔다. ‘언젠가 셋이 같이 일해도 좋지 않을까’ 우리끼리 얘기만 했었지. 셋이 대학 동창이거든. 이건호씨랑은 같이 <리니지2> 만들었다. 

<토도 수학>이라고 회사에 메인 앱이 있다. 아이들 수학 공부하는 앱이다. 엑스프라이즈*랑 <킷킷스쿨> 하게 되면서 회사에 프로젝트가 두 개가 됐지. 작은 회사가 프로젝트 두 개를 하려니 개발 책임자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합류했다. 

본사는 샌프란시스코 버클리에 있다. 한국 사무실은 지난 달까지 거의 연락사무소(?)처럼 있다가 이번 달에 정식으로 법인 설립했다. 인원은 미국, 한국 합쳐서 30명 정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 경진대회:세계 최대 비영리 벤처 재단인 ‘엑스프라이즈 재단’이 주최하는 경진대회. 전 세계 아동 문맹 퇴치를 목표로 하며 첫 대상국은 탄자니아다. 에누마는 <킷킷스쿨>로 결선에 진출했다.

에누마에서 무슨 일 하고 있나.

게임 디자인 한다. 완전 실무자다. 엑스프라이즈에서 수상한 <킷킷스쿨> 개발하고 있다. 탄자니아 아이들 공부하는 앱인데, 약 40개 정도의 게임을 통해 스와힐리어, 영어, 수학을 공부할 수 있다. 도서관이랑 색칠 공부 같은 것 할 수 있는 기능도 있고.


엔씨에도 이런 프로젝트 있지 않나. 문화재단도 있고.

엔씨문화재단이 꾸준히 이런 일 하고 있다. 규모도 점점 커지고 있는 걸로 안다. 근데 엔씨에선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아무래도 목표가 다르지 않나. 에누마는 애초에 이런 걸 목표로 하는 회사고 엔씨는 회사의 어느 조직 하나가 그런 일을 하는거고. 회사의 목표가 의사결정 속도랑 연결되는 것 같다.

작은 회사로 옮기고나서 느끼는건데, 뭐든 액션을 빨리빨리 할 수 있다. 좀 말 안 되는 것도 할려면 할 수 있고. (웃음) 


사회 문제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나.

많았다. 언젠가는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근데 좀 막연했지. 구체적이어야 추진력이 생기는데. 이수인 대표에게는 굉장히 구체적인 목표와 과정이 있었다. 그의 비전을 실현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왜 교육인가. 기여할 분야는 많지 않나. 

그러게. (웃음) 게임으로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NDC PT 준비하면서 ‘게임이 좋은 게 뭔가’를 다시 생각해 봤다. 일단 인터랙션이 즐겁고, 내적인 어떤 매커니즘을 깨달았을 때의 기쁨이 있고, 배움으로 내가 성장하는 느낌을 주고. 그런 걸 다른 사람이랑 공유하며 또 커뮤니티의 즐거움을 얻고. 이런 것들을 잘 이용할 수 있는 게 교육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했다. 실제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한 2010년 정도에 ‘시리어스 게임’이 많은 관심을 받았지. 근데 주목받은 만큼 성공하진 못했다. 아마 여러 디테일적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부분을 ‘잘’ 하면 돌파할 수 있다. 에누마는 그런 노하우가 있는 회사고. 

엔씨에서 <마법천자문>이나 <호두잉글리시>같은 교육용 게임을 개발하면서 느낀 게 있다. 교육의 기회가 충분한 친구들에게 ‘게임가지고 공부할 수 있어’라고 하는 건 별로 효과가 없다. 그들에겐 공부를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근데 제3세계 국가는 다르다. 교육 시스템이 없거나, 붕괴된 나라가 많다. 그렇다면 결국 아이가 혼자 동기부여를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여기서는 게임이 해 줄 수 있는 게 많은 거지. 재밌어야 계속 하니까. 

특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이들. 그 나이대에 기본적인 덧셈, 뺄셈, 곱셈 같은 거 할 수 있는 거랑 없는거랑 성인이 됐을 때 차이가 난다. 우스개 소리로 맨날 하는 얘기가 “나 여기와서도 맨날 리텐션(잔존율) 고민한다”고. 아이들이 선생님도, 학교도 없는 곳에서 이 물건을 가지고 혼자 놀아야 하니까 잘 하고 있나, 그만두진 않았나 걱정이 되는 거다.

스스로 학습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재밌어야 한다는 얘기 같다.

맞다. 그런데 우리가 하는 일반적인 게임도 재미있게 플레이하기 위해서는 학습이 필요하다. 경험치를 모으면 레벨이 올라간다든지, 돈을 모으면 상점에서 뭘 살 수 있다든지. 그런 개념들이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게임을 하면서 조금씩 학습된 거다. 그렇게 해야 더 재밌다는 것 말이다. 

여기와서 굉장히 많이 배우고 있다. 회사에서 회의할 때 이런 얘기가 나왔다. ‘우리가 지금 굉장히 인류학적인 과제를 풀고 있다. 인간이 어떤 백그라운드나 학습없이 그냥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 뭐냐.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은 무엇이냐.’ 그런 것들을 맨땅에 헤딩하며 알아내고 있다. 


이수인 대표는 모든 아이들이 ‘기초 학력’을 갖는 게 목표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작을수도 있는 그 차이가 성인이 됐을 때 큰 차이를 부른다. 엑스프라이즈를 설계한 곳이 미국의 USAID(대외 원조를 담당하는 미국의 정부 기관)인데, 거기서 그런 논문이 많이 나온다. 아이가 서너 문장으로 된 글을 이해할 수 있나 / 없나, 두 자리의 받아올림 있는 덧셈을 할 수 있나 / 없나. 이렇게 분류한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차이가 났던거지. 수입이라든지 학력 같은 게.

그게 어떤 극단적인 차이가 아니다. 그 나이대에 그걸 알면 그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런 연쇄 작용이 차이를 부르는거지. LOL의 스노우볼링 같은 거다.

<킷킷스쿨>의 테스트 국가로 탄자니아가 선정된 이유가 있나.

엑스프라이즈가 이 프로그램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게 제안했고, 얘기가 잘 된 게 탄자니아라고 알고 있다. 탄자니아 교육부가 적극적이었다고 하더라. 아프리카 나라들이 전자교과서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그 사람들 학교 시스템 만들려고 돈 엄청나게 썼다. 학교 만들고, 교사가 학생 가르치는 그런 시스템 만들려고 했는데 잘 안 됐지.

탄자니아는 초등 교육이 의무다. 수치상으로 입학률 90 몇 퍼센트 되고, 졸업률도 높다. 근데 여전히 문맹은 너무 많다. 학교라는 시스템은 있는데 교육이라는 목적이 달성이 안 되는 거다. 


아이들이 그 나이대에 배워야 할 것들이 학교를 졸업했는데도 전달이 안 되고 있다는건가? 

맞다. 학교에 가서 앉아있다고 교육이 되는 게 아니라는 거지. 작년에 탄자니아 갔을 때 학교들을 꽤 많이 봤다. 거기도 등급이 다 있다. 영어만 쓰는 삐까뻔쩍한 외국인 학교도 있고. 공립 학교들 중 좀 아랫 등급 학교 가면 수업시간에 선생님은 앞에 앉아있고 애들은 자기 원하는 거 하고 있다. 한쪽 구석에는 원조받은 몬테소리 교구들 먼지 뿌옇게 쌓여있고. 그런 상태.

그 나라들 입장에서는 절실하게 풀어야 하는 문제다. 현실은 이렇지만 다음 세대는 지금 세대보다 나아야 하니까. 해도 해도 안 되니 극단적인 방법도 써 보는 거다.

극단적인 방법?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도 공교육 붕괴 얘기 많이 한다. 일단 시스템이 있으니까 그런 나라들은 뭘 파격적으로 바꾸진 못한다. 근데 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 나라는 그게 가능하지. ‘우리 몇 년도부터 100% 전자교과서 하겠다’ 이렇게 선언하는 나라도 있고. 그렇게 엑스프라이즈랑 니즈가 맞은 나라들이 있다. 탄자니아도 그 중 하나다.


전자교과서는 어떤 건가?

전자교과서가 어떤 형태인지, 어떤 형태여야 하는 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뭔가 성배같은거지. 교육계의 성배. 에누마에서 PT할 때 자주 쓰는 짤방중에 그런 거 있다. ‘이것이 미래의 교육이다!’ 하면서 아이들 교실에 다 앉아있고, 로봇이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때리고 그러는. (웃음) 

상상력이 부족한 거다. IT 기술로 교실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이 부족한 상태지. 우리는 그게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거고.

게임이라는 키워드만큼 중요한 게 유니버셜 디자인이라는 개념이다. 이수인 대표가 ‘모든 아이들이 기본적인 학력을 가지는게 목표’라고 했다. 모든 아이들중에는 인지가 떨어지는 아이도 있을거고, 똑똑하지만 주의가 산만한 아이도 있을거고, 자폐가 있는 아이, 눈이 안 보이는 아이, 귀가 안 들리는 아이도 있을 거다.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넓은데, 이 아이들을 다 포용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일단 건축학 개념이다. 횡단보도에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게 한 경사면 있지 않나. 그게 있다고 해서 일반인이 전혀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 거다. 오히려 편하면 편했지. 근데 휠체어를 탄 사람한텐 그게 반드시 필요하다. 
게임을 디자인 할 때도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 맞는 맞춤형 디자인을 하라는 게 아니다. 1+1=2를 가르칠 때 색깔을 바꿔주면 색약인 아이들도 알 수 있게 되고, 음성 텍스트를 제공하면 눈이 안 보이는 아이들, 보상 주기를 빠르게 하면 주의가 산만한 아이들도 몰입하게 할 수 있겠지. 하나의 물건을 만들지만 굉장히 포괄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사실 이수인 대표 아이가 장애를 갖고 있다. 그게 큰 계기가 됐을 거다. 우리나라처럼 나름 공교육 체계가 잡혀있는 나라에도 그런 사각은 있다. 그런 아이들은 사실 특수교육 교사가 1:1로 케어해야 교육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나. 


행동 전문가나 유아 교육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할 것 같다.

맞다. 미국 본사에 특수교육 전문가도 컨설턴트로 있고, 한국에도 있다. 근데 이론을 응용해서 실제로 만드는 건 게임 기획자들이 굉장히 훈련이 잘 돼 있다고 본다. 게임 기획자들 사고에 유니버셜 디자인 개념을 넣으면 ‘이 사람 왜 게임을 그만두지?’의 원인을 좀 더 폭넓게 바라볼 수 있다. 게임 좀 해 보니까 재미가 없어서 그만둘 수도 있는데, 무슨 버튼을 눌러야 할 지 몰라서 그만둘 수도 있다는거다.

그런 게 없도록 게임을 다듬고 깎아내는 훈련이 게임 기획자들은 잘 돼 있다. 행동 전문가나 유아 교육 전문가의 이론을 실무적인 결과물에 적용하는데 능숙한 사람은 게임 만드는 사람이라고 본다. 


게임을 좀 해 봤더니 재미없어서 이탈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는 지 몰라서 이탈하는.

게임 출시하면 보통 초반 5분 분석을 하지 않나. 이걸 게임 회사에서는 초 단위로 잘라서 보는데 교육용 게임도 그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어려운 일이다.

<킷킷스쿨>은 타이틀 로고가 나오고 난 뒤 텍스트가 꽤 긴 시간 안 나온다. 근데 그러면서도 아이가 ‘자유롭게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또 그러면서도 이 화면에서 뭘 해야 할 지 전혀 고민하지 않게 해야 한다. 

엔씨 다닐 땐 잘 몰랐겠다. 게임을 만들 때 보통 보편적으로 잡고 있는 타깃 유형이 있지 않나.

상업 게임들도 슬슬 시동은 걸고 있지. 최근 GDC 같은덴 억세서빌리티(Accessibility) 세션이 늘 있다. 특히 대형 콘솔게임 만드는데서는 신경쓰고 있고. 하지만 여전히 많이 퍼져있는 건 아니다. 근데 주류 게임도 아마 이쪽에 주목하면 상업적으로 큰 리턴이 있을 거라 본다. 나도 에누마에 와서 깨달았다.


<킷킷스쿨>은 어떤 식으로 보급되고 있나. 

탄자니아 시골 마을에 직접 갖다 준다. 많은 데는 애들이 열 몇 명, 적은데는 서너 명 있다. 150개 마을에 유네스코 사람들이 짚차 타고 가서 기기랑 태양열 충전기 갖다주고 “바이바이” 하는거다. 2주에 한 번 가서 기계 고장났나 물어보고, 고장나면 바꿔주고.

교육부가 적극적이었다는게 놀랍다. 공교육을 포기하는 것 아닌가. 

그 안에서도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것 같다. 공교육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한텐 우리가 되게 사도인거지. 근데 어떻게든 교육을 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사람들한텐 이게 제3의 길인거고. 


지금 아프리카가 교육 문제가 가장 심각한 걸로 안다. 맞나?

그렇지. 근데 중국 내륙만 해도 상황이 안 좋다. 인도도 그렇고.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건 난민이다. 북아프리카쪽 난민 문제가 크다. 그게 지금 유럽쪽 문제가 되고 있거든.

엑스프라이즈용으로 만든 걸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난민 캠프에서 테스트 해 보고 있다. 지금 케냐에 아프리카 난민 캠프가 있다. 그 안에서도 아이를 낳으니까 난민이 계속 늘어난다. 난민 받은 나라 입장은 지금이야 어쩔 수 없지만 10년 20년 후에도 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인거랑, 말을 알아 듣고 쓸 수 있는 건 전혀 다른 상황인 거다. 지금 난민을 받은 나라는 이게 코앞에 닥친 상황이다. 

난민 캠프 안에도 학교는 물론 있다. 근데 선생님 한 명에 아이들 한 300명 있고 그런 형편이지. 일반적으로 교과서 있고 선생님이 칠판에 써서 가르치는 형태의 교육이 될 리가 없다. 여기서 선생님 더 늘리라고 하는 건 사실 너무 이론적인 얘기인거고. 일단 받은 나라 입장에선 그런 제3의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지. 

김 디자이너도 자녀가 있는 걸로 안다. 합류하고 나서 자녀의 교육 환경을 보는 관점 같은 건 바뀌었나.

일단 ‘보는’ 게임의 시대로 가는구나. 라는 걸 많이 느끼고. (웃음) 지금 초등학교 4학년이다. 애 키우는 고민은 늘 있지. ‘공부 잘 한다고 쟤가 훌륭한 사람이 될까?’ 이런 생각도 하고. ‘탄자니아 외국인 학교 좋은 것 같아’ 이런 생각도 하고.


초등학교 4학년이면 이미 공교육을 받고 있는 상태다. 한국 공교육은 어떤 것 같나?

우리 애는 일단 잘 따라가고 있는 편인데 막연한 두려움은 있다. 지금 아이들도 우리가 배웠던 대로 그대로 배우고 있지 않나. 4차 산업혁명, 직업이 사라지고 어쩌고... 이런 얘길 하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이 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것 같단 말이지. 

내가 잘 모르는 미래에 아이가 놓이게 된다면 생존 스킬이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좀 불안함이 있는 것 같다. 학교가 아이에게 생존 스킬을 가르치고 있나? 잘 모르는 상황에서 답을 찾고, 문제를 정리하고 그런 능력.


독일은 학교에서 노동법 가르치는 것처럼?

그런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성평등 교육 같은 게 잘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난 사실 그거 되게 두렵거든. 우리 애가 일베할까 봐. (웃음) 이런 부분이 잘 교육되고 있나 걱정이 많이 된다. 그렇다고 딱히 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랑 많이 얘기하는 수 밖에 없겠지. 아이가 내가 만드는 것들 테스트 플레이도 열심히 해 준다. 

김 디자이너처럼 사회 문제 해결에 이바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많을 거다. 근데 대뜸 전직하기는 힘든 게, 먹고 사는 현실도 중요하지 않나. 에누마는 어떤가?

최근에 투자를 한 번 받았다. 아직까진 투자에 의존하고 있지. 재밌는 건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교육용 게임 시장 망했다’ 이런 분위기인데 글로벌하게 보면 그렇지는 않다. 제3세계 중심으로 기회를 잡고 있는 회사들이 있다. 우리는 어쨌든 매출을 지금보다 올려야 하는 상황이긴 하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해야지. (웃음)


투자 주체가 일반적인 투자사는 아닐 것 같다.

엑스프라이즈의 파이널리스트였던게 크게 작용해서 소셜 임팩트 투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투자를 하신 걸로 알고 있다. 


관(官)이나 정부는 어떤가.

KOICA(코이카, 한국국제협력단)에 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 프로그램이라고. 코이카가 해외 지원을 많이 하지 않나. 그 중에 IT 기술 지원 분과가 따로 있다. 그쪽 지원을 많이 받았지. 탄자니아 갈 때도 비행기 표 이런 게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테스트를 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런 쪽에서 코이카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 외에도 그런 식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NGO나 단체들이랑 열심히 교류하고 있다. 

이직할 때 가족의 반대는 없었나. 

부인이 언어치료사다. 질병이나 심리적인 이유로 말하는 데 문제가 있는 사람들 치료하는 직업이다.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보면 나보다 더 전문가지. 그런 기회가 있으면 본인이 더 하고 싶어할 사람이다. 여기 오는 건 흔쾌히 동의했다.

에누마 온 이후로는 책도 추천받고, 이것 저것 많이 물어보고 있다. ‘애가 말을 배우는 과정이 어떻게 되냐?’ 이런 것도 물어보고. 아이가 뭔가를 배우는 과정을 보면 RPG 스킬셋 같은 느낌을 받는다. (웃음) 애가 이걸 할 수 있으면 이것 이것도 할 수 있고, 이 단계로 못 가는건 이거랑 이걸 못했기 때문. 이런 식이다. 그런 것 같이 얘기하는 것도 재밌지.


지금 김 디자이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중 뭐가 제일 좋나.

물건을 만들면 나온다는 거? (웃음) 

되게 오랜만에 실무를 하고 있다. 기획서도 쓰고, 데이터시트도 넣고. 사람 없으니까 어떨 때는 오디오 편집도 한다. 모르면 막 배워서 하는 거지. 엔씨에선 머리로 고민하는 일을 했는데 지금은 손이 바쁘다.

몇 년새 업무 환경이 되게 좋아졌다. 클라우드 환경에서 개발하는 거 너무 편하다. 본사가 미국에 있으니까 원격으로 협업하는 툴들 이용하는 그런 환경이 즐겁다. 보안 같은 거 큰 회사 있을 때보다 신경 덜 써도 되고. (웃음) 


시기적으로 1세대에 속하지 않나. 그때 같이 개발했던 분들은 지금 큰 회사에도 있고, 작은 회사 대표로 있는 사람도 있을텐데. 뭐라고 하나.

나는 1.5세대 정도 되겠지. 1세대한테 깨지면서 개발한. (웃음) ‘너 거기서 뭐 하니’하는 분들도 있고. 김택진 대표는 나올 때 의미있는 일 한다고 축하해 줬다. 김택진 대표한테는 좀 죄송한 마음이 있지. 내가 더 잘 했어야 하는데.


자유로워보인다. 염색한 머리색, 코토리 베이지라고 들었다.

그래보이나? 염색하고 머리 많이 자란 거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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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참 별것 아닌데…”
“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참 별것 아닌데…” 추억은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아련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반대인 ‘냉혹한 현실’일 수도 있다. 게임 쪽에 있어서는 오락실(게임장)이 그렇지 않나 싶다. 게이머에게는 어린 시절 하나의 추억이지만,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에게는 참으로 뼈아픈 현실로 와 닿고 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노량진 ‘정인게임장’ 얘기다. 5월 중순 무렵, 게이머들 사이에서 정인게임장이 5월 말을 마지막으로 폐업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요금이 100원에서 200원으로 ​오르고, 게임장에 근무하던 아르바이트가 모두 그만두면서 폐업은 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 29일, 정인게임장 오후 근무자라고 밝힌 이는 한 커뮤니티에 “루머는 들을 필요 없을 듯하다. 전달받은 사항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폐업의 소문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게임장이 오래전부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사실 여부를 떠나 씁쓸한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있다. 정인게임장 소식을 접하며, 게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여기에는 정인게임장도 포함되어 있다), 또 PC방 성행으로 게임장 운영을 접어야 했던 기자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찾아가서 얘기를 듣고 싶었다. 다행히, 폐업은 아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 보니 현실은 참으로 냉혹했다. 추억이라는 단어로 불리기 미안할 만큼. ※ 본인 요청으로 인해 점주 이름, 사진은 별도로 넣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31일 오전), 정인게임장 사장은 상도동 ‘숭실 게임랜드’로 가려 했다(참고로, 사장은 정인게임장, 숭실 게임랜드 2개를 운영하고 있다). 숭실 게임랜드가 오늘까지만 영업하고 폐업 하기 때문. 기계 등 큰 물건은 차차 빼더라도, 몇 개 물건을 미리 가지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사장은 정인게임장을 운영한 지 벌써 16~7년 됐다고 말했다. 함께 숭실 게임랜드로 자리를 옮기며, 조심스럽게 최근 돌던 폐업 얘기를 꺼냈다. 사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정인게임장도 폐업하려고 했다. 원래 계획은. 그런데, 가게가 안 나간다. 워낙 나가지 않다 보니 폐업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는 부딪히는 현실에 마음이 참으로 ​씁쓸하다고 밝혔다. 100원짜리 영업을 해서는 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기계값은 터무니없이 계속 오르지만, 게이머에게 받을 수 있는 요금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임대료나 기타 물가가 계속 오르니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장 쪽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정말. 아마 거의 다 매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게임장에 게임을 하러 오는 게이머가 거의 없다는 점도 밝혔다. 환경이 바뀌면서, 모바일게임을 하거나 PC방을 가는 게이머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임장을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세대도 생겨나고. 여러모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사장은 정인게임장이 한때 ​‘격투게임의 성지’로 불린 점에 대해 “그것 때문에 더욱 망가진 것 같다”고 쓴웃음과 함께 말했다. 솔직한 심정이란다. 그렇게 불러주는 것을 철저히 무시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면서. 그는 게임장을 정리했다면 2년 전 부터 인형뽑기방을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화곡동에 있던 인형 수입업체가 와서 “지금 운영하는 두 게임장을 모두 폐업하고 같이 인형뽑기방을 만들자”, “만약 하지 않을 거면 매장 일부에 인형뽑기 기계를 놓자”는 권유를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어려웠던 만큼, 사장도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익도 더 많이 낼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거, 참 별것 아닌데 말이다. 망해도 ‘망했네’ 소리만 들을 텐데 말이다.”라면서. 정인게임장 사장은 보름 전까지만 해도 정인게임장이 정리되면 폐업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이제는 ‘오락실’의 ‘오’ 자도 듣기 싫단다. 어떻게 보면, 당시 루머로 돌았던 폐업 설은 사실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사장은 정인게임장과 숭실 게임랜드 두 군데를 모두 내놨다. 그 중 숭실 게임랜드는 건물 주인과 사정을 얘기해서 계약기간이 1년 남았지만 오늘까지만 영업하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오늘은, 숭실 게임랜드의 ‘마지막 영업일’이다. 뜻하지 않게 접한 아쉬운 소식이다. # 예전과 다르게, 시대도 바뀌다 보니 기계를 처분하려고 해도 소위 ‘껌값’도 안된다. 그렇다고 누가 맡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유통이 되지 않으니 당연한 얘기다. 그래서 일부 게임장 점주들은 기계가 아깝기도 해서 창고를 얻어 일단 쌓아 놓는다고 말했다. 창고 비용이 계속 들지만. 계륵인 셈이다.​ 숭실 게임랜드로 이동하며, 숭실 게임랜드에 대한 얘기를 더 들었다. 그 곳은 정인게임장과 다르게 아케이드 게임이 특화된 곳이다. 한 때 잘 됐지만, 점점 오르는 아케이드 게임기의 기기값을 부담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니셜 D ver.2>와 <이니셜 D ver.3>가 나왔을 때 1,500만 원, 1,800만 원을 주고 들여놨다. 하지만 실제 수익은 터무니없이 낮았다고 밝혔다. 어떻게든 기기값을 메꾸려 했지만 이내 다음 버전이 나온다. <이니셜 D ver.4>는 2,500만 원을 주고 들여놨다. 실제 자동차에 준하거나 보다 비싼 가격. 어쩔 수 없이 들여놨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6개월만에 700만 원이라는 헐값에 처분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기기를 들여놓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가게에 없고 옆집 가게에 새로운 기기가 있으면 게이머가 움직이고, 1~2개월이 지나면 다른 기기에도 여파가 온다. 그러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껴 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암담한, 현실의 반복’이라며. 숭실 게임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몇 명의 청년이 <펌프 잇 업> 기기를 분리해서 가져갔다. 사장과 아르바이트가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 청소 및 물품을 정리했다. 며칠 전부터 직원들이 올린 기기 판매 글을 보고 사려고 온 거란다. 판매액은 몇십만 원 수준. 새 기계가 대략 1,300만 원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일종의 처분인 셈이다. 두 곳의 현재 ​벌이 수준에 대해, 사장은 "비슷하지만 숭실 게임랜드는 더 안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학가 주변이어서 잘 될 것 같지만 언덕에다가 숭실대학교 정문 위치가 전철역 쪽으로 바뀌면서 상권은 매우 안좋아졌다고 밝혔다. 평일 오전에 잠깐, 저녁에도 잠깐. 오후 8시쯤 되면 거의 오지도 않는다. 주말은 평일보다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2일 뒤면 대학교 방학. 학생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상황 속에 내린 폐업 결정. 이제,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숭실 게임랜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 자리를 옮겨, 다시 정인게임장으로 이동했다. 게임장에 붙은 자판기 커피를 대접해줬다. 매장 앞에서 마시며 마무리 대화를 이어갔다. 정인게임장 사장은 정인게임장에서 노래방을 뺀 자리에 숭실게임장의 아케이드 기기를 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는 거다. 그래도 결과가 같으면 두 손 두 발 다 드는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인게임장을 계속 하고 싶지만, 현실이 본인 마음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야심 차게 들여놨던 철권 기계도 적자다. 16대 기기를 대당 1,500만 원을 주고 들여놨다. 이후 버전 업그레이드 때문에 대당 450만 원을 추가로 들였다. 합해서 약 3억 1,200만 원이 들었다. 그는 철권 PC버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운영 됐는데, PC버전이 나오면서 상황이 매우 안좋아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PC버전에 비해 아케이드 버전은 업데이트를 잘 해주지 않아 불만이라고 말했다. 한 때 코인노래방이 정인게임장에 ​적지 않은 수익을 가져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노래방이 점차 코인노래방으로 바뀌면서 게임장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결국, 얼마 전 철거 결정을 내렸다. 정인게임장에 있던 코인노래방은 점주가 직접 철거했지만, 숭실 게임랜드의 코인노래방은 몇백만 원을 들여 철거했다.  두 게임장의 코인노래방 29대 모든 구성품을 처분해도 500만 원 남짓 받아, 정인게임장의 코인노래방을 철거한 폐기물 비용 내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16~7년 전, 그는 약 5억 5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정인게임장을 시작했다. 막대한 비용에 주변 사람들이 많이 놀랐단다. 그는 그때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회의감은 커진 듯 했다. “다른 것을 했다면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우연히 하게 됐지만, 뭐 하는 짓이었는지. ​뭐가 씌었는지 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숭실 게임랜드 기기 배치, 정인게임장에서 준비할 것이 여럿 있어 사장과는 인사를 나눴다. 그는 잘 가라며, 또 놀러 오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사장과 나눴던 대화 중, 그가 했던 말이 맴돈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별수 있나. 흐름 대로 가야지.”
[기자수첩] '블러디 레이첼' 사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 6월 10일, 국내 인디 게임계에 큰 소란이 일었다. 텀블벅 펀딩을 받은 게임 <블러디 레이첼>이 <카타나 제로>를 표절했다는 것. 이례적으로 유통사까지 나서 게임 내용을 수정해 달라고 권고할 정도였고, 이에 개발팀이 사과문과 함께 펀딩 취소 및 환불을 약속하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당 사건을 통해 고민해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다시 꺼내 당사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고자 함이 아니다. 기자의 생각으로는 이번 사건은 게임 업계 진출을 꿈꾸고 있거나, 현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글을 쓰는 기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레퍼런스냐 표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게임이 레퍼런스를 잡듯이, 글쓰기에도 필사라는 개념이 있다. 필사란 책을 손으로 직접 베껴 쓰는 일이다. 말 그대로 '쓰면서' 책을 읽는 과정. 필사는 글자를 하나하나 베끼어 써야 하므로 느리지만, 진정으로 글쓴이의 의도를 이해하고 문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여겨진다. 문장력을 늘리기 위해 필사는 꽤 자주 사용되는 방법이다. 문제는 필사도 지나치면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대표적이다. 2015년, 신경숙 작가는 자신의 소설 <전설>이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소설 <우국>의 문장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단순히 두 문장을 펼치고 비교해 봤을 때 문체, 분위기가 너무나 유사했다. 해당 논란을 기점으로 작가의 다른 소설도 일제히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확실히 밝혀진 사안은 아니지만, 일부는 필사를 통한 무의식적 암기를 원인 중 하나로 지적했다. 신경숙 작가는 필사를 통해 문장력을 길러 왔기로 유명하다. 수험 생활을 준비해 봤던 독자라면 한 번쯤 배워봤을 소설 '외딴 방'에도 등장하는 내용이다. 해당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는데, 주인공이 필사를 통해 문장력을 익히는 장면이 등장한다. 당시 작가는 논란에 대해 해당 작품을 읽지 않았지만, 지금은 내 기억을 믿지 못하겠다며 에둘러 언급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순한 우연이었다기엔 표절 작품과 문장 내용이 너무나 비슷했다.  <블러디 레이첼>도 같았다. 개발팀은 <카타나 제로>를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밝혔으나, 단순히 해당 게임을 모티브로 삼았다기엔 두 게임을 놓고 비교했을 때 유사한 면이 지나치게 많았다. 디볼버 디지털이 지적했던 문제도 동일했다. 영감을 받았다기엔 전반적인 비주얼과 시스템이 너무나 비슷하며, 이에 따라 게임 디자인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블러디 레이첼>과 <카타나 제로>. 단순 레퍼런스라기엔 너무나 비슷했으며, 도드라지는 차별점이 없었다 물론, 필사와 레퍼런스가 무조건 지양해야 할 '나쁜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모방 없는 순수한 창작은 없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음악의 신동(神童)이라 불리는 모차르트는 어떤가? 그의 곡이 무조건 영감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자신보다 앞서 태어난 음악의 거장에게서 배우고, 수없이 많은 악보를 연구하면서 나온 결과물이다. 게임도 마찬가지. 기자는 '진실로 독창적인' 게임은 없다고 생각한다. 비디오 게임의 역사만 약 70년 가까이 되며, 그 기간 동안 수많은 게임이 나왔기 때문. 따라서 어떤 게임이 독창적으로 보이는 시스템을 내놓더라도, 해당 시스템이 다른 게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아무리 독창적으로 보이는 게임이라도, 다른 게임의 영향력을 완전히 지울 순 없다. 하지만, 레퍼런스와 표절의 경계는 분명히 있다. 가령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의 디자인은 만화 <베르세르크>에 대한 오마주로 가득하다. 또한 기본적인 시스템과 설정이 이전에 프롬 소프트웨어가 개발했던 게임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다크 소울> 시리즈를 두고 표절 작품이라거나 자가복제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크 소울>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아 파생된 '소울라이크' 장르 게임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해당 게임에서 영감을 받았을 뿐, 자신만의 관점으로 장르를 새로이 해석했다. "익숙함을 자극해 새로운 것을 찾으려 했다" 기자가 한 게임 인터뷰에서 감명깊게 들었던 말이다.  소울라이크 게임 중 하나인 <솔트 앤 생츄어리>. 제작진이 <다크 소울>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이에 표절이라 주장하는 사람은 극히 적다. 소울라이크에 2D 게임만이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곁들였기 때문 # 돈이 엮이는 순간, '아마추어'라는 방패는 사라진다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지만, 돈 문제도 뺴놓을 수 없다. 당시 <카타나 제로>의 유통사 '디볼버 디지털'은 자신들도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 있으며, <블러디 레이첼>에 대한 수정을 권고한다는 성명을 냈다. 해외 유발사가 국내 게임에 수정 권고 의사를 밝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다행히 디볼버 디지털이 큰 악감정을 가진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논란을 인지한 청강대학교 측에서 <블러디 레이첼> 개발팀의 사과문을 보냈다. 디볼버 디지탈은 "나쁜 감정은 없으며, <카타나 제로>와 차별화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학생팀의 건승을 빈다!"고 밝혔다. 아마 디볼버 디지털은 개발팀이 '학생'이라는 점을 너그러이 본 것 같다. 해외 인디 게임 유통사 디볼버 디지털 다만, 국내 당사자들에게는 너그러이 넘어가기 힘든 문제였다. 단순히 아마추어가 벌인 일이고,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가 없다면 사과로 어느 정도 마무리될 수 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으니까. 책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다음번에는 그러지 않으면 된다.  문제는 해당 사건이 아마추어의 범주를 벗어났단 것이다. 펀딩 문제가 얽혀들어 가며 청강대학교, 텀블벅 후원자들이 피해를 봤다. 이에 사태 해결을 위해 학교가 개입하게 되었고, 텀블벅 측은 펀딩 사전 심사에 있어 허술함을 보였다는 지적을 받고 승인 기준을 강화했다. 학교 측은 해당 프로젝트와 큰 관련이 없었음에도 표절 오명을 덮어쓰고, 직접 개발팀에 사과문을 전달하는 등 동분서주해야 했다. 게임을 응원하며 과감하게 자신의 돈을 투자한 사람들은 쓴맛을 봤다. 게다가 환불 절차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분노라는 감정은 쉽게 사라지기 힘들다. 개발팀의 포부를 믿고 자신의 돈을 쾌척했는데 배신당한 셈이니까.  인디 개발팀에 '펀딩'은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다. 단순히 개발을 위한 돈을 모으는 것을 넘어,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펀딩 액수 몇천만 원!"이라는 무용담을 써간 선배 게임을 보면 특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보이며 적극적으로 펀딩을 시도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2일 안에 승부를 내지 못하면 실패한단 말이 있을 정도로, 첫 인상이 중요하다 (출처 : ICO 파트너스) 하지만 펀딩이 들어가는 순간, 인디와 프로 사이를 나눠주던 아마추어란 방패는 사라진다. 돈이 얽혀 들어가는 순간 책임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단순히 펀딩 약속을 지키는 문제, 후원자들에게 굿즈를 발송하고 약속된 발매일을 지키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진정으로 후원자들이 '원하는 게임, 상상했던 게임'을 제공했느냐의 문제까지 발전한다. 사후 지원도 뺴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를 어겼을 경우 돌아올 반응도 달라진다. 기자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아마추어 시절 블로그 등지에 칼럼을 작성해 왔다. 당시에는 틀린 내용이 있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해당 실수가 발생한 정황을 밝히고, 내용을 수정하면 그만이었다. 해당 행위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으며, 단순한 아마추어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기자라는 공신력을 가진 만큼 오보가 발생했을 때는 돌이키기 힘들다. 단순한 사과와 수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공식적인 직함이 생기고, 기사 작성을 통해 월급도 받는 만큼 책임감의 무게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필자'와 '기자'는 다르다. 이번 사건은 기자에게도 '책임'에 대한 개념을 다시 되짚을 수 있는 계기였다 해당 사건은 어찌 보면 인디 게임계에서 한 번쯤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재미있게도 약 한 달 전 해외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한 바 있다. <스타듀밸리>와 <슈퍼 주 스토리> 간의 그래픽 표절 논란이다.  그리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지나친 레퍼런스는 표절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펀딩을 시도하는 순간 아마추어를 벗어난 프로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며, 이로 인한 책임감은 남달라진다는 것. 마지막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 뒤늦은 논평을 내는 행위가, 이미 끝난 사건을 들쑤시는 일종의 '사이버 렉카' 와 다르지 않다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게임의 펀딩 기사를 처음 낸 기자로서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책임이 있다. 또한, 기자가 게임 개발에 대해 완벽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며, 이번 기자수첩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말은 지극히 뻔한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꼭 되새겨야 할 문제였다. 기본기는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관련 기사 : 논란의 '블러디 레이첼', 표절 인정에 따른 개발중단 및 펀딩 철회 관련기사 : 원작자도 “너무 심해”… ‘스듀’ 표절 인디게임 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