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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도자도 피곤하신 분들 주목!

매일 밤 7~8시간을 자더라도 피곤하거나
예전에는 좀만 자도 그냥저냥 괜찮았는데
요즘들어 좀만 자면 피곤해서
낮에 마구마구 졸음이 쏟아지시는 분들!!
무언가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닐까 싶으실텐데요.
맞습니다. 잘 때 우리가 마셔야 하는 산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수면장애가 나타나면서 수면을 방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글을 가져와봤어요^^
한 번씩 클릭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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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K야, 그러니까 삶은 주관식이다.
... 섣부르지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그러니깐, 삶은 주관식이란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의 교육동안. 언어영역이든 수리영역이든, 과학탐구영역이든 사회탐구영역이든 외국어 영역이든 다음 중 옳은 것은? 옳지 않은 것은 보기 중에 고르시오. 1번 2번 3번 4번 5번 이라고 보기를 알려주잖아. 그런데 인생은 그게 아니더라고. 스무 살이다. 다음 중 자신에게 알맞은 인생을 고르시오. 1번 수능에 성공했다 대학에 입학해 공무원을 준비한다. 1-2번 대기업을 준비한다. 1-3번 전문직을 준비한다. 2번 수능에 실패해 재수에 도전한다 2-1번 재수에 실패 삼수에 도전한다. 3번 수능에 실패해 편입한다. 3-1번 수능에 실패해 지방대를 간다. 4번 대학 공부해서 대학원에 간다. 5번 대학이 뭐고 군대를 가던지 취업한다. 1번에서 5번 보기 모두 중요한 질문이 빠졌다. 오늘, 행복하니, 내일 아침이 기다려지니. 어른들은 그렇게 말한다. 남들과 비슷하게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 인생 뭐있냐. 인생 뭐있냐. 인생 뭐있냐. 미안하지만 그런 말들이 스무 살을 죽이는 길이다. 슬프게도 인생은 하루하루 버텨내고 견뎌내야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살아내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내는 것이다. 왜 내가 오늘 살아야하는가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하루하루 사는 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 그러니 스무살 K야. 지금까지 살아낸 것을 나는 축하한다. 수많은 덕담을 들었겠지만. K야 너의 오늘을 축하한다. 다만 앞으로 녹록치 않다. 쉽지 않다. 더 어려운 일들이 내게 있다. 아마도 등록금을, 연애를, 취업을 그리고 결혼을 내 집 마련을 생각하면 숨 막힐지 몰라.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게임처럼, 처음부터 인생은 리셋 할 수 없기에 ‘끝팡왕’이란 괴물이 어디에서나 나타나서 힘들지 몰라.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일단은 오늘을 오늘 하루가 즐겁다면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자꾸 뭐 먹고 살 꺼냐고 묻는 질문을 때때로는 잊자.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난 스무 살, 너는 지금부터 취업을 준비하는 게 아니다. 지금부터 너만의 인생의 답안지를 써내려가는 것이다. 너란 사람, 너만이 쓸 수 있는 인생을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는 것이야. 그건 아무도 정답을 알 수 없단다. 그 인생이 100점이다 아니다 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도 너 밖에 없단다. ... 나만의 답안지를 쓰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내가 누군지를 알아가는 공부를 해야 한다. 취업 9종 세트가, 외국어가 취업이 자격증 공부가 아니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나를 즐겁게 하는 것, 내가 잘하지는 못하지만 배우고 싶은 것, 내가 진짜로 못하는 것, 남이 가르쳐도 못하는 것들을 적어 내려가야 한다. 왜 적어야 하냐고. 두 가지 이유에서야. 일단 선생이든, 변호사든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연구원이든 일은 ‘국어’로 하는 것이다. ‘영어’로 하지 않는다. 상사와 동료와 후배와 ‘의사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 그리고 일을 잘하려면 상대방이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야 한다. 아울러 ‘내’가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을 명확히 알야 한다. 그래서 ‘못’하는 일이 내게로 올 때, 상대방이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거절’을 잘 해야 한다. ‘잘’하는 일이 내게로 올 때는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 더 근원적으로 살펴보면 누구나 욕망이 있다. 티.모.스. 철자는 ‘thymos’. 한마디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다. 칭찬이 고래를 뛰놀게 하듯이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로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면, 그날의 기분이 내일을 내일 모레를 견뎌낼 용기를 준다. 하루하루 살아낼 버텨낼 용기를 준다. 그런 일들이 그저 밥벌이로만 월급의 액수로만 결정할 수는 없다. 그것을 외면한다면, 삼수를 해서 공무원이 됐는데, 회사원이 됐는데, 변호사가 됐는데도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왜 인생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라며 잘못된 선택을 한다. 살아내자. 그리고 행복하자. 스무 살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너만의 주관식. 너만의 답안지 그것이. 너의 오늘을 내일을 모레를 구원할 테다. 그러니 스무 살 K야, 일기든 다이어리든 적자. 너에 대해서, 너가 무엇에 웃는지, 무엇에 슬퍼지는지를 행복해지는지를. 황사가 불든 세찬 바람이 불든 비가 내리든 너의 유일한 편은 너 자신. 너를 지켜주는 것은 너 자신일 테니 말이야. 생략 많이 했습니다. 전문 편집자주 _ 여자 나이 서른 셋 그리고 백수. 미혼이다. 본인 스스로를 ‘무중력의 일상’을 살아가는 여행자라고 소개하는 昇微(승미)님은 그러나 한때 가장 치열한 정치 현장을 취재하는 경제지 기자였다. 글 쓰며 밥벌이 할 수 있는 사람을 꿈꾸며 기자가 되었지만, 4년 3개월 만에 불면증을 얻고, 퇴사했다고 한다. 궁금했다. 만만치 않은 글 솜씨를 지닌, 하지만 만만한 듯 만만한 나이가 아닌 이 언니는 대체 세상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것일까. 찬란하게 도전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청춘들에게 고한다. 기꺼이 실패했던 그러나 아직도 찬란하고 싶은 ‘언니’가 나근나근 건네는 ‘진담’ 말이다. 출처ㅣ쭉빵
분노의 진실
성경에서 모세는 완고한 백성들에게 분노하면서 바위를 내리치고 물을 내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하나님은 그 분노로 인해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것을 지적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우리에게 분노는 매우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식되어 있다. 분노는 참아야 하는 것이고, 후회할 일을 만드는 감정으로 생각되어 있다. 심리학자들은 감정을 신호등에 비유하곤 한다. 사람이 급박한 일을 당했을 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상실을 경험했을 때, 더 나아질 희망이 없을 때 불안, 분노, 슬픔, 우울과 같은 감정들을 통해 이를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또한 감정은 논리적인 사고를 통해 하나하나 일처리는 하는 인지적인 방식에 비해 훨씬 많은 스위치를 한 번에 작동하여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이다. 자율신경이나 호르몬 계통에 영향을 줌으로써, 자신이 정확히 그 이유를 생각해 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향후 닥쳐 올 상황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분노라는 감정은 어떤 신호와 역할을 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분노는 불공평한 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 위협을 이겨내는 힘을 갖게 해 주는 것이다. 영화 <터미네이터3>의 중반부에서 존 코너는 지구를 지켜야 하는 막대한 사명을 가지고 미래에서 온 로봇 ‘T-800’(아놀드 슈바제네거 분)의 도움을 받아 스카이넷을 막으려 하지만 더 막강한 로봇 ‘T-x’의 추적을 받으면서 의욕을 상실하게 되고 만다. 그러자 미래로봇 ‘T-800’은 내가 언제 지구를 구하겠다고 했느냐면서 좌절하는 존 코너의 멱살을 잡고 공중에 들어 올린다. 무기력했던 존 코너는 갑작스런 일에 짜증을 내다가 다시 화를 내면서 내려 놓으라고 소리 지른다. 이 때 로봇은 “절망보다는 분노가 훨씬 쓸모 있는 감정이지.”라면서 자신에게 심리학 프로그램밍이 되어 있음을 밝힌다. 이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것은 분노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분노라는 감정, 버럭하는 그 느낌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감정은 한 번에 많은 스위치를 건드리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분노의 상황이라면 일단 자리를 피하거나 찬물을 마셔서라도 상황을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조금 진정된 후라면 그 분노가 신호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그것이 어떤 신호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짜고짜 화를 내는 행동은 마치 신호등에 붉은 등이 들어왔다고 해서 자신이 길을 가지 못하는 좌절감을 차에서 내려 신호등을 걷어차며 화풀이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무조건 참는 것은 붉은 신호등이 들어왔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사거리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라는 감정 그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하나님도 모압 사람들로 인해 우상이 들어올 때 그에 대해 분노하여 가담한 사람을 죽인 ‘비느하스’에 대해 앞서 언급한 모세와는 달리 칭찬하신 일도 있으니 말이다(민 25:7~11). 누구나 작은 일에도 버럭할 수 있다. 그 버럭할 일에 포함된 분노의 상황을 냉정히 평가해야 한다. 분노가 커지면 싸움이 되고 싸움이 커지면 곤혹에 휩싸이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노할 상황이 즉 그 위협이 실제적이고 지속적이어서 강하게 대처하는 것이 옳다면 화를 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호등에서 처럼 빨강 파랑 노랑의 신호에 대한 자각을 할 수 있다면 신호를 받아들일 뿐 무시하거나 약간의 대처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면 참고 부드럽게 해결해야 한다. 다만 이를 구분하는 지혜, 혹시 실수했더라도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살펴본다면 그 신호의 목적이 정확하게 전달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