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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불량세자 수안과, 꽃 도령 민혁(2)

채희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는 자를 바라보았다. 칼, 꿈속에서 보았던 그 금빛용이 그려져 있던 검. 순간 채희는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수차례 꿈속에서 자신을 내려쳤던 그 검이, 지금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까닭에 금방이라도 이 검이 자신의 가슴을 베고 스칠 것 같단 생각에 숨통이 죄어 오는 듯했다. “흐읍….” “정체를 밝혀라!” 채희가 겁에 질려 어떠한 말도 내뱉지 못하고 가쁜 숨만 내뱉으며 벌벌 떨었다. 그리고 그때, 그런 사내 뒤로 휘적휘적 걸어 나오는 한 도령. “놔두거라.” “…하지만.” 부채를 활짝 펴, 얼굴을 가린 채 채희 앞에 우뚝 선 도령. 채희는 장옷을 꾹 쥔 채 갑작스레 등장한 도령을 올려다보았다. 훤칠한 키에 고운 비단 도포를 입은, 코와 입을 가린 채였지만 한 눈에 봐도 수려한 외모가 돋보이는 듯한, 사대부가의 자제인 듯 했다. 채희는 마른 침을 삼키며 붉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미…안하오. 내 잠시 그쪽에게 볼일이 있어.”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 사내에게 볼일이 있어, 본의 아니게 뒤를 따르게 된 채희였기에 채희는 정중히 도령의 호위무사 쯤으로 되어 보이는 사내에게 미안하다, 말을 건넸다. 그런데, “허허허허.” “……?” “그리 미안할 것은 없소. 한 두 번 겪는 일은 아니니.” 왜 그 옆의 도령이 대신 채희의 말에 대꾸를 하는 것인지, 채희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도령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령은 펼쳤던 부채를 탁, 소리 나게 접더니 이내 차가운 미소를 머금고 채희를 응시했다. 억, 소리 나게 경탄스런 미공자였다. 뽀얀 피부며, 날카로운 턱선, 매섭지만 길고 시원스레 뻗은 눈. 게다가 사내인대도 풍성한 속눈썹까지. 사내이지만 요염한 색까지 지닌 듯 했다. 채희는 가만히 도령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도 저자에 내 외모를 두고 옥골선풍이라 칭하여 반가의 규수들이 그저 내게 말이라도 한 번 붙여볼까, 이리 졸졸 따라오는 것이.” “…….” “어디 어제 오늘 일이더냐.” 도령의 말에 채희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가만히 도령을 바라보았다. 자아도취 해, 자기 칭찬도 마다않고 하는 도령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령은 가만히 채희를 바라보더니 이내 그 차가운 미소마저 거둔, 싸늘한 얼굴로 채희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디서, 누구에게서 그런 소문을 듣고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 “내 성격은 불량스럽다,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한단, 그런 소문은 듣지 못하였소?” “네?” 채희는 갑작스런 도령의 질문에 흠칫 놀라며 입술을 달싹였다. 조금은 놀란 기색의 채희를 바라보던 도령은 피식, 차가운 그러나 속된 말로 ‘네 가지’없는 실소를 흘렸다. 채희의 기분이 조금, 언짢아졌다. “뭐 나와 어찌 해보려 내 뒤를 밟은 것이면. 헛짓을 한 것이지.” “헛…짓.” “그리고 대부분 그런 것들을 헛수작이라고들 하지.” “…….” “그래보았자 내 눈엔 다…돌덩이에 불과하거늘.” 그 말에 채희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피식, 헛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풉….” “……?” “그러하군요. 예. 자기도취하실 만한 인물이십니다.” “뭐…라?” “그런데 송구하게도 제가 볼일이 있어 따라온 것은 도령이 아니라 이쪽 무사인데. 어쩌지요.” 채희는 딱딱한 어투로 그리 말하며 용의 검을 지닌 무사를 바라보았다. 도령은 뜻밖의 반응에 어안이 벙벙한 듯, 물끄러미 채희만 바라보고 섰다. 그때, 저 멀리서 휘영이 번개처럼 날아와 채희를 겨누고 있던 칼을 매섭게 처냈다. 덕분에 용의 검은 저 멀리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감히 뉘 안전이라고!”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아가씨란 말에 도령은 채희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허름한 무명 치마저고리에, 다 낡은 장옷을 뒤집어쓴 여인이, 이런 호위무사의 호위를 받을 만한 반가의 규수라니. 도령은 채희를 위아래 훑었다. 그런 도령의 시선을 느낀 채희는 더더욱 장옷을 여미며 무사와 도령을 바라보았다. “되었다, 휘영아. 미안하게 되었소. 내 경솔한 행동거지에 일이 시끄럽게 되었습니다.” “…….” “내 이 무사가 든 검이 낯이 익어, 출처를 묻고자 이리 뒤를 쫓게 되었습니다. 무례하였다면 사과하겠소이다.” 한없이 차갑고 딱딱한 어투였다. 다정함이라곤 티끌도 찾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도령은 정말 채희가 자신에게 말을 붙이고자 뒤쫓아 왔음이 아니란 것을 알고 그제야 헛기침을 하며 다시금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무, 무…례까지야. 흠, 흠.” “그런데. 무례는 그쪽 도련님도 만만찮으신 것 같은데.” “무엇…이라?” 한 ‘네가지’없기로 소문난 도령이었다면 채희 역시 소문만 나지 않았다 뿐이지 만만찮은 성깔을 지닌 인물이었으니. 채희는 지지 않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도령을 향해 입술을 달싹였다. “미색이 뛰어난 것은 알겠사오나.” “…….” “그렇다고…아무 여인네에게나…그리 오해를 하시고…섣불리 언행을 행하신다니요.” “…….” “그런 소문은 내 듣지 못했으나, 소문이 틀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미색은 뛰어나나 성격이 불량스럽다.” “뭐라?!” “도련님의 미색만 보고 뒤쫓은 여인네들의 행실이 참으로 헛수고이겠습니다. 한양의 규수들은 사내보는 눈이 그리 없다니, 자처해서 돌덩이들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군요.” “……?” “그럼, 이만. 가자, 휘영아.” “예. 아가씨.” “저…저!” 그러곤 도령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여보이곤 여지도 두지 않고 홱, 돌아서서 가버리는 채희였다. “저렇게…보내도…되겠습니까, 저하. 저하를 헤아려는 무리에서 보낸 자일 수도 있습니다.” 도령은, 아니 세자 ‘수안’은 민망함에 얼굴마저 발그레 해진 채, 멀어져가는 채희의 뒷모습을 보았다. “허참! 어느 댁 규수이기에…나를 보고도 저리 쌀쌀맞게 구는 것일까.” “…….” “나를 노린 것이 아니고 참으로 너의 검 때문에 뒤를 따른 것 같으니. 그냥 두어도 되지 싶다만 이것 참…웃을 수도…울 수도 없는 상황이구나.” 그리고 그런 모퉁이에서 세자 ‘수안’과 채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다른 도령은 자신의 곁을 스쳐 지나는 채희를 말없이 응시했다. 곁눈도 주지 않고 곧장 앞만 보고 걷는 채희. 그런 채희를 바라며 또 다른 도령은 자신의 옷깃을 만지작였다. 여전히 자신의 옷깃에서 채희의 온기가 묻어 있는 듯했다. “저…” 무슨 말이라도 걸어보려 했지만 너무도 재빠르게 지나치는 탓에 도령은 채희를 미처 잡지 못했다. 도령은 가만히 멀어지는 채희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좀 전의 상황을 다시금 상기하며 도령은 팔짱을 꼈다. ‘정말…꿈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웬 여인이 자신의 도포자락을 쥐었다. 도령, 민혁은 화들짝 놀라며 옆을 바라보았는데 웬 허름한 차림의 여인이 자신의 도포자락을 쥐고 있었다. 민혁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여인의 손을 빼내기 위해 팔을 올렸는데, 하도 도포를 당기는 힘이 세, 민혁은 이리저리 여인에게 끌려 다니고 말았다. ‘보통 무사들이 쓰는 검은 아닌 듯 보였다. 몇 번이고…내 꿈에 나와 나를 베는 것이…우연한 꿈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 ‘어찌…이리도 똑같은 검이 나타날 수가…’ 여인이 왜 검에 관심을 가지나, 민혁은 까치발을 들고 서서는 이리저리 살피는 여인을 따라 앞을 바라보았다. 무엇을 그리 보고 있는 것인지…. “…….” 민혁은 가만히 장옷 사이로 보이는 여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장옷에 절반 넘게 가려져 그 얼굴이 확실히 보이는 것은 아니었으나, 언뜻언뜻 보이는 여인의 외모는 보통 미모는 아닌 듯하였다. 봉긋 솟은 이마와 오똑선 콧날, 그리고 굳게 다문 앵두 같은 입술이 장옷에 채 가려지지 않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민혁은 넋을 놓고 여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어! 나 잠시만, 저 검을 어디서 구했는 지 만 물어보고 올게!’ 그러더니 곧, 여인은 자신의 도포자락을 휙 놓더니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민혁은 바람처럼 자신에게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그 여인이 못내 궁금했다. 누구와 착각을 해, 자신을 이리 끌고 온 것인지, 정신을 놓을 만한 해이한 여인은 아닌 듯 했는데. 민혁은 몇 번이고 머뭇거리다 이내 자신도 모르게…여인이 사라진 곳으로 따라가고 말았다. 그런데 그 곳엔! “하…” 세자 수안과 그 여인이 맞닥뜨리고 있었다! 민혁은 흠칫 놀라며 수안의 호위무사에게 위협을 받고 있는 그 여인을 곤경에서 도와주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그 여인의 호위 무사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타나 여인을 감쌌다. 도대체…정체가 무엇일까, 민혁은 허름한 차림이었지만 목소리에서나 자태에서나 뿜어져 나오는 당당한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느꼈다. “그런데. 무례는 그쪽 도련님도 만만찮으신 것 같은데.” 한 성질 한다는 세자에게도 지지 않고 할 말을 다 내뱉고서야 돌아서는 여인의 모습에, 괜히 민혁은 피식 웃음이 났다. 세자에게 한바탕 면을 주고 매몰차게 돌아서서 지나치는 여인이 연신 궁금한 민혁이었다. 달려가 여인을 붙잡고 이름이나 물어볼까 했지만, “…어, 민혁. 자네가 여긴 어쩐 일인가.” 수안이 어느덧 민혁 곁에 와 섰다. 민혁은 멀어져가는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수안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잠깐 길을 잃어서…그러는 저하께선 잠행 중이십니까.” “나야 뭐, 늘 그런 것 아니겠나. 그런데 길을…잃어?” 수안과 민혁은 어릴 때부터 절친하던 벗이었다. 동갑내기이자 함께 무예와 도술, 그리고 학문을 익히며 자라온 학술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수안도 수안이었지만 민혁 역시 수려하고 훤칠한 풍채였기에 도성의 반가 규수들은 죄다 수안과 민혁의 얼굴 한 번 보고자 줄을 섰더랬다. 민혁의 가문 역시, 세자에 견줄 것은 못되었지만 그 기상은 대단하였다. 민혁의 친부는 한양 최고 실세인 우의정이었고 그의 누이는 세자빈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최고의 가문이었기에. 두 도령이 나란히 서서 한양을 걷는 날엔, 혼기 찬 규수들은 물론이거니와 규수들을 모시는 여종들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둘의 자태를 감상하기 위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수안은 길을 잃었단 민혁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곤 민혁의 눈길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았다. “네.” “……?” “무언가에 홀린 듯, 예까지 왔습니다.” “…홀리다니? 자네가 무엇에 홀려?”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것이 꼭 바람과도 같이 나타났다 사라졌기에.” “…….” “온기조차 남지 않았는데.” “…….” “마음 한편이 연신 울렁입니다.” “허허, 자네. 연심을 품은 여인네라도 있는 것인가?” 연심이란 세자의 말에 민혁은 피식 웃으며 고갤 절레절레 저었다. “연심이라뇨. 한양에서 눈 높기로 소문난 제가 연심은…가당치 않습니다.” “그러니 하는 말 아닌가. 마음 한편인 연신 울렁이고, 홀리듯 예까지 당도했다는 것이 꼭 연심을 품은 여인네 뒤를 쫓다 길을 잃은 모습과 다를 것 없지 않은가.” 세자의 말에 민혁은 어느덧 흔적조차 없어진 채희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곤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봄 날에, 스쳐지나간 바람이라 일러두지요. 훗, 다시 내 곁을 스친다 해도 알아보지도 못할 바람이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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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미정
1.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다. 가로등이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불빛 마저 희미해지는 곳을 걷고 있다. 지금 몇시쯤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시계를 들여다 보니 아날로그 싸구려 가죽시계가 깨져 있다.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고 아버지께서 사주신 낡은 가죽 시계였다. 이제는 단종이 되서 건전지를 갈아끼우는일 조차 쉽지 않은데 시계 유리가 깨져 있다. ‘ 시계유리만 교체해주는 곳이 있었던가?’ 결국 정확하게 몇시인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로 길을 걷는다. 와본 기억이 없는 곳인데도 이상하게 낯이 익다. 창문에 붙여진 찢어진 창호지, 철로 된 대문위에 붙여진 껌 씹고 나서 붙이는 스티커까지... 어디서 보았던가? 여름이 다가왔는데도 아직은 밤공기가 차가워 대충 걸치고 왔던 자켓을 여미어 본다. 길을 걷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 그래. 분명 그녀밖에 없었다. 분명 아까 시계를 보려고 손을 올리기 전까지는 저 여자는 없었다. 분명히 없었는데... 흐릿하게 보이는 가로등 밑에 누군가가 서있다. 아까는 확인하지 못했던 사람이 길 끝에 서 있다.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좀 더 앞으로 다가갔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데도 그 사람의 얼굴은 확인하기 어렵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얼굴이 없는 것 같았다.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그 자리에 서있던 사람은 여자였다.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는데 슬픈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처연했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누구인지 몰라도 확인해야한다. 머리가 지끈거려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매일 온 것 같았던 이곳은 매일 밤 그녀를 괴롭히던 꿈속이었다는 것을. 지금 꿈속에서 괴롭히는 이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또 다시 손을 뻗는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기필고. ‘ 너 대체 누구니? ’ 짜증섞인 말투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는 순간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 언니.... ” 땀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서 꿈에서 깨어났다. 침대 옆 시계를 확인해보니 매일 그렇 듯 시간은 새벽 4시 26분이었다. 마른 세수를 하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술을 깨지 못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시계 옆에 놓여진 두통약 한 개와 물을 삼키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임을 깨달았다. 벌써 일주일째 반복되는 꿈을 꾸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고 어떤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자꾸 꿈에서 깬다. 이상하게 그여자는 지현과 스친 적이 있는것처럼 낯이 익었고 막상 생각을 해보면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를 정리했다. “ 다시 자기는 틀렸네 ” 언제나처럼 자켓 하나를 두르고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개와 라이터를 챙기고 베란다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무신하게 불을 붙이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처음 서울로 올라 왔을 때 유일한 낭만이라며 구매했던 작은 테이블과 의자는 맥주 한잔 대신 수북히 쌓인 담배와 재떨이가 놓여져 있었다. 아직 차가운 새벽 공기에 불을 부치며 쓰게 뱉는 담배연기가 하얗게 번진다. 그 때 손이 시려워 넣은 왼손에 무엇인가 잡혔다. 어제 충전해야지 하면서 챙기지 못했던 핸드폰이었다. “ 아,,, 충전해야 했는데 배터리가 남았던가 ? ” 눈을 찌푸리며 켜본 핸드폰 액정에는 배터리 12% 절전모드 화면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빨갛게 표시된 알림표시. 부재중 3통, 메시지 1통 막상 이런 부재중 연락이 요즘 들어 무서울법도 한데 일단 확인해 보았다.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모두 고등학교 동창 수연의 번호였다. 혹시나 하고 확인 한 메시지에도 역시 그녀의 번호가 찍혀져 있었다. 지현아 일어나면 전화좀 줘 - 낯선 그녀의 연락은 당황스러웠다. 지난번 억지로 끌려간 고등학교 동창모임때 번호를 교환했었지만, 지현과 수연은 친한편이 아니였다. 물론 사회에 나와서도 연락하는 사이는 더욱 아니였다. 다만 으레 그렇듯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 공간의 훈훈한 분위기를 채워보고자 멋쩍게 교환한 번호였다. 동창회 이후로 잘 들어갔냐는 흔한 안부인사도 없었던 사이에 갑자기 전화라니. 더군다나 일어나면 전화를 달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잘못보냈나 생각하는 의심조차 들수 없게 했다. 낯선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Chapter 51. 그놈을 뺏겠습니다
전화를 끊었다. 로라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눈물도 멈추질 않았다. “사랑…이라.” 사랑은 이렇게 헤플 수도, 아플 수도, 가벼울 수도, 별 것 아닐 수도 있었다.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한데?” 도헌이 담배를 비벼 끄고 옆에 섰다. 로라의 표정을 살폈다. 흔들린 것인 가, 흔들리고 있는 것인가. 도헌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사랑…한다는데.” 그렇게 말하는 로라의 목소리가 힘이 없었다. 아니, 힘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도헌은 막막해져 왔다. 이제 선택은 로라의 몫이었다. 로라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도헌은 존중해주기로 했다. “누나.” 로라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곤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자. 모기 밥…되겠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지만. “누나.” 로라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가냘픈 어깨도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도헌은 가까이 다가가 로라의 어깨를 감쌌다. “동정하지 마. 난 괜찮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로라의 목소리도 떨렸다. 도헌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했다. “동정이 아니라…” “내일…그 여자…만나서 물어보려고.” 로라는 뒤돌아선 채 엘리베이터 앞에 우두커니 섰다. 눈물이 자꾸만 흘러서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뭐라고…물어볼 건데.” “남자…친구랑…잘 되어 가고 있느냐고.” “두 사람이…사귄다는 건…확신하는 거냐.” "……" "그래서, 그 대답을 듣고나선 어쩔건데." 도헌의 물음에 로라는 스르륵, 주저앉았다. 두 다리에 힘이 탁 풀려 버렸다. “더 묻지…말아줄래….” “…아.” “나…도 지금 뭘.…어떻게 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거든." 그렇게 주저앉은 채, 로라는 하염없이 고개만 숙이고 눈물을 흘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문이 열렸지만 로라는 오르지 못했다. 도헌 역시, 그런 로라의 뒤에서 로라를 바라보고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몇 번이 문이 더 열렸고, 닫혔고를 반복했다. 몇몇의 사람들이 타고 내리고를 반복했지만 둘은, 움직일 수 없었다. 도헌은 자신의 셔츠를 벗어 로라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뭐…야…흐읍.” “콧물은…닦지 마요…” * * * “헐. 오로라, 눈 왜 저래.” 로준은 아침밥을 먹다 말고 방에서 나오는 로라를 바라보았다. 얻어맞은 듯, 두 눈이 퉁퉁 부어 있는 로라. 로준은 경악하며 도헌을 바라보았다. 도헌 역시, 묵묵부답인 채 로라의 밥을 펐다. “누나, 밥 안 먹어요?” “…….” 대답도 않은 채, 현관을 나서는 로라였다. 도헌은 한숨을 내쉬며 로라의 뒤를 쫓았다. “누나.” “안 먹어.” 그러곤 신발을 신고 그대로 집을 나서버렸다. “너희 싸웠냐?” 싸웠냔 로준의 말에도 도헌은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두 눈이 퉁퉁 부은 채 힘없이 현관문을 닫고 나가버린 로라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 거렸다. * * * 로라는 평소보다 한 시간 더 빨리 가게 문을 열었다. 불도 미처 켜지 못한 채, 로라는 어둑한 가게 안에 우두커니 섰다. “하…뭘 어디서부터…시작해야 할지를…모르겠다.” 얼이 빠진 얼굴로 로라는 카운터 앞에 앉았다. 밤새 얼마나 울었던 지, 퉁퉁 부은 눈은 떠지지가 않았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마음 한 편엔, 그래도, 라는 끈질긴 미련이 남아 있긴 했다. 그런 자신이 미워졌다. “…….” 로라는 어둑한 매장 안에서 노트북을 켜, 제일 먼저 그 여자의 SNS를 켰다. 밤새, 그 여자의 SNS를 달달 외울 정도로 살피고 또 살폈다. 그녀의 친구 목록은 기태의 친구 목록의 사람들과 겹치기까지 했다. “비참…하다, 오로라.” 남자 친구의 바람 난,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첫 번 째 여자의 SNS나 뒤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 여자와 기태의 SNS를 뒤지면 뒤질수록 둘 사이가 연인 사이임이 확실해졌고, 또한 자신의 처지 역시 그의 ‘세컨드’임이 확실해졌다. 로라는 다시금 멈춘 듯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하아…흡.” 믿음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렇지 않을 거란. 강한 믿음의 배신이라 그럴 까. 로라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기는 기분이었다. 원망해서도 안 되었지만, 그 여자가. 수정이란 그 여자가 너무도 밉고, 싫어졌다. “…아.” 그때. 그 여자의 SNS의 커버사진이 바뀌었다. “…….” 바뀐 여자의 커버 사진을 발견하곤 로라는 노트북을 그대로 덮어버렸다. 더는…그 여자에게…물어볼 필요조차 없어졌다. * * * “정리할 생각…없죠.” 바닷가에 나란히 선 기태와 수정. 어젯 밤의 사랑한단, 기태의 말을 수정은 더 캐묻지 않았다. “나는 그렇거든요.” “…….” “오빠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 “그렇다고 놓을 생각도 없어.” 수정은 단호했다. 나란히 바닷가에 서서 동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나, 오빨 정리할 마음도, 그럴 생각도, 그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거든.” “…….” “그 여자를 정리하든, 아님 그 여자도 안고 가든.” 수정의 말에, 기태는 그제야 수정을 돌아보았다. “난 너에게. 헤어지자고 몇 번을 얘기했다.” “…….” “그런데, 싫다고 한 건…너다.” 그게 중요한 것이냐, 되묻고 싶었지만 수정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지금은 못 놓아요, 어쨌든. 그 여자…오빠 여자 친구 있다는 거, 알고 만나는 거예요?” 수정의 물음에 기태는 머리가 지끈거려 왔다.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나란 존재를 알고도…그 여자가 오빠 곁에 머물려고 할까요?” “머문다고 해서…그걸 사랑이라고 치부하는 너는…도대체, 무슨 꿍꿍이 인거냐.” “내가 말 할까요?” “나서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해.” “나란 존재를 알게 된다면 아마, 떠날 거야.” “…지금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너가 아니라 그 여자다.” 기태의 말에 수정은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휴대폰 카메라를 켜 나란히 서 있는 자신과 기태의 발 사진을 찍었다. “뭐해.” “여전히 우린.” “…….” “행복하다는 걸” “…뭐?”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고.” 곧 다정한, 다정하게 보이는 두 사람의 발 사진을 수정은 자신의 SNS 커버 사진에 업로드 했다. 기태는 그런 수정의 SNS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나 그런 거 싫어 한다고 했다.” “오빠 얼굴 나온 것도 없고, 이름 한 글자도 언급된 것 없으니 안심해.” 기태는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곤 돌아섰다. “어디가요!” “돌아가자, 이제.” * * * “누나…오호라 누나.” 도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노트북을 덮고서 두 시간이 지나도록 오픈도 하지 않은 채 엎드려만 있던 로라. “들어…가도 돼요?” 입구에서 도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 가도 되냔 도헌의 말에 로라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지끈지끈 거렸다. “…….” “헐…누나. 괜찮아?” 두 눈두덩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열난다. 안 되겠다. 문 닫고 병원부터 가자.” 도헌은 싸온 죽을 카운터 앞에 놓곤 로라의 이마를 짚었다. 불 덩이었다. “언젠간…이렇게 앓고 지나가야 할…거니까. 놔둬, 그냥.” “…누나.” “병원 가서 약 먹고 주사 맞는 다고해서…나아질 것 아니잖아.” “그래도…너무 힘들어 보여요.” “응…힘들어…너무.” “…….” “내 살점들을 다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아.” “…누나.” “차라리…내 머릿 속을 다 도려내주었음 좋겠어. 이 마음도.” “…….” “그 사람에 대한…모든 기억을…다…도려내 주었음 좋겠어.” “…….” “그래 준다면…그럴 수만 있다면…어떤 고통도…감내 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라의 말에 도헌은 살며시 로라를 끌어안아 주었다. 너무도 아파하는 로라를 보니, 도헌의 마음도 아파오는 듯했다. “미안…해요, 누나…내가 끝까지…말렸어야 했는데.” 결국 우려했던 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고, 역시나 로라는 너무도 아파했다. 모든 걸 예상했던 도헌이었기에 이렇게 아파하는 로라가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해졌다. “미안…은 무슨…. 왜 네가 미안하냐. 됐다.” 하고서 로라는 도헌을 밀어냈다. “그…여자한텐…물어보기로 했어요? 그래서…어떻게 할 건데요. 나도 알아야겠어. 알고 있어야겠어." “…….” “하…. 누나. 누나가 많이 힘들고 어려울 거라는 거 아는데.” “…구 여친이든 어쨌든 간에. 그 새끼는. 아니다, 누나" "알아. 아니라는 것,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러니…" " ……" "보채지 마." 로라는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꿈만 같고 믿기지않았다. 갑작스레 그에게 이별통보를 받는 것이, 차라리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토록 사랑했던 그를 미워하고 저주하진 않아도 되는 것이니까. "우선 몸이 많이 상한 것 같으니, 문닫고 집으로 …" 그때였다. 로라의 휴대폰이 울렸다. 기태였다. "누나." 로라는 기태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대로 휴대폰을 엎어두곤 다시금 고개를 숙여버렸다. 곧, 벨소리는 끊겼다. 괴로워하는 로라를 바라보며 도헌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못할 것 같음, 내가 얘기해 줄게." " ……" "내가 대신 전화 받아서 다 알아버렸다고, 다 알게 되어버렸다고 …" 그때, 다시금 로라의 휴대폰이 울렸고 로라는 힘없이 전화를 받았다. 착, 가라앉은 로라의 목소리. "네, 선생님." "로라씨, 어디 아파요? 어제보다 목소리가 더 안좋아요." 이 순간에도, 기태가 자신을 걱정해주고 있는 이 순간에도 로라는 이 남자가 그 여자와 함께 있을거란 생각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전화로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네. 몸살이 걸린 것 같아서." "어떡해요 그럼. 나 지금 올라가고 있으니 병원이라도 가 있을래요?" 밤새, 그 여자와 뒹굴었을 그다. 로라는 자꾸만 이 남자가 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져 마음이 미어져왔다. 자신을, 여전히, 농락하고 있는 그였다. 로라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입술을 달싹였다. "네, 그럼 그렇게 할테니 얼른 오세요, 선생님." "바로 병원으로 갈테니 병원 이름만 알려줘요." "네 … 기다리고 있을게요. 선생님." 그렇게 말하고서 로라는 전화를 끊었다. 그에게 따지기는 커녕, 기다리겠단 말을 한 로라에게 순간적으로 화가난 도헌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호라, 너 진짜! 그 자식이랑 갈때까지 가보겠다, 이거냐?" 그러자, 로라는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금 질끈 묶으며 파우치를 꺼냈다. "나라고 못할건 없잖아." "뭐?" "내 사랑을, 이 마음을 우습게 보고 짓밟은 대가." " …… " "나도 그냥은 못 넘어가겠다. 나 이렇게 아픈 거, 내 아픈 거에 반의 반만이라도 돌려줘야겠어." "누나. 내가 그 놈 만나지 말라고 했잖아!" "세컨드로 남을거야. 원하는게 그거라면." "누나." "뺏을 거다, 그리고 아프게 짓밟을 거야." 로라는 결심한듯 붉은색 립스틱을 꺼내 발랐다. "세상에서 애인있는 사람 건드리는 년, 놈들이 제일 쓰레기라는 거 알지만. 어쩔 수 없어. 이젠 내가 그 쓰레기가 되어야겠다." * * * 로라의 복수가 시작되는 것인가요.
4사분기에 직장인이 꼭 읽어야 할 책 3권
4사분기는 연간 목표, 성과, 평가, 코칭 등을 점검하고 준비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직장인에게는 1년 농사의 마지막 분기이니 만큼 철저하게 대비해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겠다. 이에 팀원, 팀장을 망라하여 일이란 무엇인지 성과란 무엇인지 직장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도서 3권을 살펴본다. 실무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기에 충분한 실용서라 할 수 있다. 1. <일문일답> 일에 대해 묻고 답하며, 하나씩 묻고 답하다 라는 중의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책의 저자는 <일을 했으면 성과를 내라>, <제대로 시켜라>로 직장인들에게 성과창출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류랑도 대표다. 지난 23년간 대기업, 중소기업, 공공기관 가릴것 없이 코칭과 강의 현장을 누비면서 어떻게 하면 직장인들이 일을 잘할 것인가를 고민한 노하우를 집대성한 최신간이다. 이 책의 부제는 '일 잘하는 방법에 관해 직장인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250문 250답'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목표란 무엇이고 전략은 어떻게 세우는지, 어떻게 성과코칭하고 권한위임을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하면 실행력과 역량을 키우고 협업을 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제대로 된 평가를 주고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일 잘하는 프로세스’와 관련된 총 10개의 카테고리를 분류해 강의 현장에서 직접 받은 질문 중 250개의 정수를 뽑아 실용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읽는 사람에게 최적화된 책이기에 지금 내가 가장 고민하고 있고 궁금한 부분들만 찾아서 살펴도 명쾌한 솔루션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류랑도대표에게 직접 코칭을 받을순 없어도 일대일 맞춤형으로 코칭을 받는 것하고 똑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오직 일 잘 하는 방법에 관해 구조적으로 살피고 본질적인 관점에서 쉽고 명확하게 접근하고 있다. 직장경험담 식의 훈계나 이론적이거나 사내정치 기술과 같은 내용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다. 주 52시간 시대에 맞추어 자율을 바탕으로 성과를 만들기 위해제대로 일하는 방법을 체계화한것이 이 책의 특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일의 기본기> 카카오 브런치북 6회 대상 수상작으로 출간전 부터 온라인에서 인기가 있었던 콘텐츠이다. 브런치 매거진 '슬직살롱, 슬기로운 직장생활'이 책으로 출간된 것이다. 책의 부제인 '일을 잘하는 사람이 지키는 99가지'에서 알수 있듯이일 잘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떤 기본기를 익혀야 하는지교육전문가들의 노하우를 현실적이고 실용적으로 정리했다. 최초 책의 집필 의도는 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의 입사후 좌충우돌하는 현실을 보고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예전처럼 사수 부사수의 관계안에서 엄격하게 일을 배우기 쉽지 않은 상황속에서 빠른 적응과 성장을 강요받는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떻게 하면 조직에서 일을 잘 할 수 있는지, 비즈니스 매너는 어떤것이 있고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등 친절하게 조언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본문 속 한 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내 전문가를 찾는 작은 팁을 하나 주면, 신입이든 경력직이든 입사하면 보통 교육이나 오리엔테이션을 받는데, 그때 업무별 혹은 부서별 사람들이 와서 교육을 한다. 대부분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이들이다. 교육이 끝나고 기억해 뒀다가, 교육을 받았던 누구라고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움을 청하면 흔쾌히 들어줄 것이다. 3. <나는 인정받는 팀장이고 싶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철저하게 팀장에게 맞추어져 있다. 성과도 내야 하고 자신과 팀원들의 성장도 챙겨야 하는 팀장이라면 살펴 봐야 할 책이다. 저자는 무려 9명의 현직 리더들로 다양한 분야에서 축적된 경험을 기반으로 실무에서 바쁘게 동분서주하고 있는 팀장들을 위해  지혜를 모았다. 진정한 소통을 기반으로 팀장의 역량 강화를 위한 노하우를 정리해 현실적인팀장 리더십을 진단하고, 상황을 점검하며 문제를 해결하는해법을 제공한다. 실제 이 책에는 팀장이 처하는 25가지 상황별 테마별 주제들을 분류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팀장의 위치에서 늘 고민해야 하는 성과관리나 목표수립의 문제들과 같은 일 중심의 테마는 물론이고 더 나은 성과를 위한 방법론적 주제인 프로세스 관리, 조직 설계 등의 이슈도 다루고 있다. 또한 워라밸의 진정한 실천이나, 직장 내 성 평등 문화 조성과 같은 주제에 대해 실질적인 대처법도 수록되었다. 팀장이 해야 하는 팀원들의 업무분장 역시 매우 중요한데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업무 배분은 팀장과 팀원들 사이에서 매우 중요하고도 예민한 사항입니다. 팀원들은 자신이 어떤 일을 맡는가에 따라 일을 대하는 태도와 관점이 달라지고 역량의 발휘도 달라집니다. 팀장이 팀 내 성과를 내려면 팀원들의 역량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팀원들 각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때만이 조직과 팀장의 성과는 최대의 결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실행력을 높일 수 있는 업무 배분이야말로 팀장이 신중하고 역량을 발휘하여 진행해야 할 책무입니다.
[책추천] 넷플릭스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책 5
안녕하세요! 나만의 스마트한 독서 앱 플라이북입니다. 요즘 넷플릭스를 이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분들이 많은데요. 오늘은 넷플릭스 속에서 찾은 이야기들을 추천해드립니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책으로 읽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은 각각 다른 경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번 주말, 넷플릭스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책으로도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남몰래 쓴 편지가 그에게 발송되었다! 읽다보면 연애하고 싶어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제니 한 지음 | 한스미디어 펴냄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만든다! 마을을 변화시킨 한 소년의 감동 실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 서해문집 펴냄 과연 저곳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초자연적이면서 미스테리한 환상적인 이야기 서던 리치 제프 밴더미어 지음 | 황금가지 펴냄 그녀는 살인자일까? 피해자일까? 아주 섬세하고도 미묘한 심리게임 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 민음사 펴냄 그것을 보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책 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 검은숲 펴냄 지금 플라이북 앱에서 추천 더 받기 > http://me2.do/5DPodUE8
단편 : 여름의 주홍빛 녹색
“언니, 저 그 새끼랑 헤어졌어요.” “잘했어. 똥차 가면 벤츠 온다. 언니 말 믿어.” 조그만 술집에서 여자 둘이 소주를 마시고 있다. 안주는 두부 김치 하나. 언니라고 불린 여자는 아직 멀쩡해 보이는데 똥차랑 헤어졌다는 동생은 이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소주병이 셋이나 되는 걸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동생은 아까부터 하던 똑같은 하소연을 세 번째 시작한다. 소주 한 병당 한 번 꼴이다. “그 새끼가, 아니 그 개새끼가 또 바람피웠어요. 그 썩을 똥차 새끼가! 진짜 쓰레기 아니에요? 바람피운 거 아주 무릎 꿇고 싹싹 빌길래 두 번이나 용서해 줬는데 세 번째 또 바람피운 거 알았을 때는 진짜 내가 화도 안 나더라고요. 그것도 똑같은 년이랑 세 번을 피웠어요. 그게 말이 돼요?” 앞에 앉은 언니는 동생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 세 번째 듣는데도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들어주는 언니에게 동생은 울분을 토한다. “내가 나보다 이쁜 년이랑 피웠으면 말도 안 해. 그 만들어지다 만 것 같이 생긴 년이 뭐가 좋다고. 진짜 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네. 개만도 못한 새끼. 그래서 진짜 제가 그래, 두 번이니까 봐주자, 삼세번까지는 참아보자 했는데 역시나 세 번째가 왔어요.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진작 차 버렸어야 됐는데.” “그래 잘했어. 사실 오지랖 같아서 말 안 하고 있긴 했는데 나도 너한테 진작 헤어지라고 하고 싶었어. 입 근질거리는 거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언니와 동생이 동시에 소주를 원샷하고 잔을 내려놓는다. 빈 잔을 채우는 동안 잠시 조용하다. 쪼르륵, 소주가 잔에 차오른다. 동생이 크 소리와 함께 입에 두부와 김치를 함께 집어넣고 씹으며 말한다. “진짜 그 새끼는 제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새끼에요. 살다 살다 그런 똥차는 또 처음 만나봤어요.” “그래, 곧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걱정 마.” 동생이 씹던 두부와 김치를 꿀꺽 삼킨다. “근데 언니는 지금까지 남자 몇 명이나 만나 봤어요?” “나? 한 네다섯 명 정도?” “언니는 그중에 누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역시 첫 남자 친군가?  “제일 기억에 남는 남자?” “저는 아무래도 이 똥차 새끼만큼 기억에 남을 놈은 없을 거 같아요. 어떤 쪽으로든.” 동생이 킥킥대며 웃는다. 맞은 편의 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잔에 찰랑찰랑 채워진 투명한 소주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남자는 그중에는 없어.” “엥? 그럼 누군데요?” “우연히 만났던,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 금요일 오후 2시 여자는 예식장을 나왔다. 딱히 할 일도 없는 백수 처지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예식장에서 혼자 꾸역꾸역 밥까지 먹고 나오기에는 여자의 면피가 그렇게 두껍지 못했다. 그저 적당한 금액의 축의금을 내고 축하해요 오빠라는 말을 신랑에게 전한 뒤 조용히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박수 몇 번 치고 나왔지만 그래도 나름 지인의 결혼식이라 꽤나 차려입고 나왔다. 이렇게 꾸며 본 지가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백수는 생활 반경이 점점 좁아진다. 백수 연차가 찰수록 만나는 사람도 없어지고 같이 취업 준비를 하던, 가끔 만나 소주 한 잔 하며 신세 한탄하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회사의 일원이 되어간다. 백수가 아닌, 번듯한 바깥세상의 사람을 만나기에는 자신이 이 사회의 짐덩이 같은 존재라는 걸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한참을 고민하다 미안, 내가 좀 바빠서 라는 답을 보내기 일쑤다. 백수 연차 3년 차가 지나가는 여자가 남색 원피스를 입고 밖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연례행사나 다름없다. 사실 여자의 계획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취업을 위한 인적성 평가 문제집을 풀고 면접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막상 예식장에서 나온 여자는 눈 위에 손으로 차양을 만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날이 너무 좋았다. 햇빛은 따갑지 않고 따뜻한 빛의 입자를 온 거리에 뿌렸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마다 빛의 입자들은 더 잘게 부서지며 초록색 사이로 반짝거렸다. 문제집과 인강, 면접 예상 답변 만들기가 기다리고 있는 어두운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씨였다. 그렇지만 여자에게는 딱히 할 일도, 만날 사람도, 가야 할 곳도 없었다. 그렇게 한 자리에서 한참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했다.  ‘평일 서울 혼자 갈만한 곳’  검색 결과들이 주르륵 떴다. 경복궁 나들이, 서울숲, 북촌 한옥 마을, 동묘 벼룩시장 등등 온갖 키워드들이 어지럽게 스마트폰을 가득 채웠다. 화면을 슥슥 내리며 살펴보던 여자의 손이 멈췄다. 여자의 엄지 손가락이 화면을 한 번 터치하자 잠시 후 한 블로그가 화면에 나타났다.  ‘평일 오후 고전영화’ 누군가가 일기처럼 쓰는 블로그인 것 같았다. 제목 밑으로 어떤 영화를 봤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두 문단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여자는 글에 나온 영화관의 이름을 다시 검색했다. 종로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걸으면 바로 그 영화관이었다. 위치 바로 밑에 뜬 상영 정보를 보니 처음 보는 제목의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3시에 상영되는 영화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여름의 녹색’ 지하철역은 오른쪽이었다. 여자는 종로역에서 내려 영화관에 도착했다. 영화관 정문 오른쪽에는 오늘의 상영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13:00 기름과 물은 섞이지 않는다 15:00 여름의 녹색 17:00 그믐달 전부 처음 들어보는 영화들이었다. 저 셋 중에는 여름의 녹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조그만 매표소가 있었고 그 옆에는 사람이 없는 매점도 있었다. 꽤 넓은 공간 안에 움직이는 사람은 여자뿐이었다. 매표소 안의 직원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여자는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매표소로 걸어갔다. 여자가 창구 앞에 섰음에도 머리를 박고 잠들어 있는 직원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저기요.”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부르자 직원이 흠칫 떨더니 일어났다. 입가 오른쪽에는 침이 살짝 묻어있다. 직원은 소매로 침을 쓱 닦고 한껏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거 드릴까요.” “여름의 녹색 하나 주세요.” “네, 팔천 원입니다.” 아직도 팔천 원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여자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내밀었다. 여직원은 이천 원과 티켓을 함께 건넸다. 분홍색 티켓에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이십 분 전부터 입장 가능하세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티켓을 보았다. 이렇게 티켓으로 된 영화표를 받아 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자는 영화 티켓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영화관에서는 티켓이 아니라 영수증 겸용의 흐물흐물한 종이 영화표를 주기 시작했고 영화 티켓을 모으곤 하던 그녀는 그런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취미 하나를 잃어버렸다. 전에 티켓을 모으던 상자가 있었는데 어디 있더라. 여자는 그 상자에 이 분홍색 티켓도 넣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마트폰을 보니 2시 50분이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여자는 아무도 없는 매점으로 가 냉장고에서 생수를 한 병 집어 들었다. 여자는 매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직원을 찾았지만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여자는 겉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생수를 들고 다시 매표소를 찾았다. 직원은 그 사이 머리를 박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여자는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직원을 깨웠다. “저기요.” “에!” 직원은 대답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다시 일어났다. 검은 머리끈으로 질끈 묶은 그녀의 머리가 마치 달리는 말의 꼬리처럼 흔들렸다. “깨워서 죄송해요. 매점에 아무도 안 계셔서요. 이거는 어디서 계산하면 되나요?” 여자가 생수를 들어 보이며 묻자 직원은 손으로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아, 그냥 저한테 돈 주시면 돼요. 생수 천 원이에요.” 여자는 지갑에서 아까 받은 이천 원 중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직원은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돈을 받았다. 이제 2시 58분이었다. 관은 하나였다. 적어도 헷갈릴 일은 없어 보였다. 상영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크린에서는 영화 감상을 위한 에티켓을 티켓에 있는 것과 같은 캐릭터가 설명하고 있었고 좌석은 텅 비어 있어 영화관을 통째로 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관 안에서는 어릴 적 잡동사니를 쌓아 놓던 먼지 쌓인 다락방의 냄새가 났다. 여자는 티켓에 적힌 좌석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중간 열의 제일 왼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여자는 자리에 앉은 채 주변을 둘러보다가 누군가를 발견했다. 자신의 반대편, 오른쪽 끝 좌석에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구석이라 처음 들어올 때 못 본 것 같았다. 이 작은 관 안에는 왼쪽 끝의 여자와 오른쪽 끝의 남자 둘 뿐이었다. 남자는 한 달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3년간 사귀었던 연인은 한순간에 참 싱겁게도 헤어졌다. 두 달 전부터 남자의 연인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아무리 메시지를 남겨도 1 표시만 사라질 뿐, 답은 오지 않았다. 3년을 사귀는 동안 그녀는 절대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었고 일하는 곳도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무시하면 도저히 만날 방법이 없었다. 남자는 연인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커피에 시럽을 몇 번 넣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것들은 하나도 모른다는 걸 연락이 단절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그녀는 이런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 달 전, 내내 1만 사라지던 카톡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오늘 저녁 6시 반, 함께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만나자는 메시지였다. 반쯤 포기하고 있던 남자는 한 달 만에 온 그녀의 메시지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회사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았다. 6시가 되자마자 회사를 나온 남자는 카페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고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녀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던 한 달 동안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카페에 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흘렸고 도착해서는 카페가 있는 건물 안 화장실에서 5분간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6시 반에 앞에 앉은 차가운 얼굴의 전 연인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다. 6시 35분, 커피가 나오기도 전 그녀는 카페를 떠났고 남자는 혼자 자리에 앉아 앞에 두 잔의 커피를 놓은 채 1시간 동안 창 밖을 쳐다봤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남자는 그 후 일주일 동안 매일 다른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술이 떡이 되어서 원룸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져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출근했다가 퇴근 후 다시 술을 마셨다. 일주일 뒤에는 함께 마실 친구가 없어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마른오징어를 사 와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그렇게 술에 절어 지낸 지 이 주가 지나 남자는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왔다. 카페에서 헤이즐넛 라떼를 시키는 여자를 볼 때마다, 커피에 시럽을 세 번씩 짜는 사람을 볼 때마다, 호두과자를 먹을 때마다, 검정치마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블 영화 광고를 볼 때마다 누군가 떠오른다는 점에서는 아직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볼 때에 남자는 완전히 원래의 남자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아직도 가끔 밤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잠들곤 하는 남자는 갑작스러운 두통 때문에 오후 반차를 내고 병원에 들렀다. 딱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는 1시 반에 맞춰서 갔더니 대기하는 사람이 없어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신경성 편두통이라는 진단과 함께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술, 담배 당분간 줄이시라는 아무나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약국에 들러 약봉지를 받아 들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제 오후 2시였다. 남자는 예상치 못하게 남아버린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 근처에 가끔 갔었던 영화관이 있었다. 독립 영화나, 인디 영화, 예술 영화들을 상영해주는 영화관이다. 이 영화관은 항상 오후 1시, 3시, 5시에 각각 한 번씩 영화를 상영했었다. 1시간 안에 간다면 3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원래 그곳에 종종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전 연인이었던 그녀를 데리고 두 번 정도 함께 간 적이 있었는데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그녀는 왜 저런 영화를 보는지 모르겠다, 하나도 재미없다 라며 남자를 타박했다. 그녀 덕분에 둘의 데이트 때 보는 영화는 항상 토르, 헐크,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물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데이트가 없을 때 그녀가 말한 왜 보는지 모르겠는 재미없는 영화를 혼자 보러 가곤 했다.  회사 근처 병원과 영화관은 가까웠다.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가서 도착하는 시간이나 걸어가는 시간이나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남자는 걷기로 했다. 점심이 지나 어정쩡한 시간, 회사원들은 이미 사무실로 돌아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에 남자는 거리를 혼자 걸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걷는 남자는 햇살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최근 한 달간 햇빛을 몸으로 받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해가 그 빛을 완전히 뿜어내기 전에 출근했고 붉은빛 외의 다른 빛들은 모두 사라진 반쪽짜리 햇빛을 받으며 퇴근했다. 회사에 나가지 않는 주말에는 점심이 한참 지나 일어나서 TV를 좀 보다가 밤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그대로 잠들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낮 거리는 생각보다 한적했고 햇빛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30분 정도 걷자 영화관이 보였다. 땀이 나서 정장 상의를 벗은 남자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영화관 안에 들어섰다. 영화관은 냉방이 되고 있는지 시원했다. 남자는 익숙한 걸음으로 매표소로 향했다. 남자는 자고 있는 매표소 직원을 불렀다. “저기요.” 직원이 졸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직원이었다. 항상 여기 계시던 아저씨는 잘리신 건가. 직원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남자는 약간의 생경함을 느꼈다.  “3시 영화 하나 주세요.” 남자는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직원이 카드를 받아 긁자 직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수증이 나왔다. 직원은 영수증과 티켓을 함께 건넸다. “영화 시작 20분 전부터 입장 가능하세요.” 남자는 네라고 대답하며 티켓과 영수증을 받아 들었다. 직원은 변했지만 분홍색 티켓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는 그대로였다. 그녀가 이 영화관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 이 분홍색 티켓이었다. 남자는 물끄러미 티켓을 쳐다보다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직 2시 40분이 되기 조금 전이었지만 남자는 상영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래 묵은 건물에서 나는 냄새가 반가웠다. 그녀가 싫어하던 이 냄새를 남자는 좋아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상영관에 들어온 남자는 중간 열 오른쪽 끝 좌석에 앉았다. 항상 이 곳에 올 때마다 남자는 그 자리에 앉았다. 애초에 사람이 많이 오는 영화관도 아니거니와 몇몇 오는 사람들도 거의 한가운데 자리에 앉았기에 중간 열의 오른쪽 끝 좌석은 남자의 지정석이나 다름없었다. 앉아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스크린을 쳐다보는 남자의 눈길에 보답이라도 하듯 조금 뒤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정장 상의를 옆 좌석에 대충 걸쳐놓고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했다.  같은 광고가 두세 번씩 나오기를 두세 번 반복하고 나서 영화 관람 에티켓과 대피 경로 등을 티켓에 있는 것과 같은 캐릭터가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낯선 빛이 뒤에서 들어왔다. 남자는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한 여자가 상영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상영관 밖의 흰 빛이 여자의 뒤에서 비추고 있었다. 푸른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상영관 안으로 걸어 들어왔고 상영관의 문이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점점 가늘어진 흰 빛은 문이 완전히 닫히며 사라졌다. 남자의 시선은 움직이는 여자를 따랐다. 여자는 구두 소리를 울리며 천천히 걸어서 남자의 정 반대편, 왼쪽 끝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여자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를 향했던 시선을 스크린으로 돌렸다. 왜 여자의 눈길을 피했는지 남자도 알 수 없었다.  앞에서 날아다니는 캐릭터가 사라지고 상영관이 암전 되었다. 상영관 안에는 오른쪽을 보고 있는 여자와 스크린을 보는 척하는 남자가 있었다. 탁, 탁, 타다다다다다.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오래된 필름 영화가 스크린에 투영되었다. 여자는 스크린에서 반사된 빛이 스민 남자의 왼쪽 얼굴을 보았다. 선이 가늘고 부드러운 남자였다. 영사기에서 쏘아지는 빛의 줄기에 떠다니는 먼지들 너머로 보이는 남자의 왼쪽 얼굴은 눈길을 잡아 끄는 힘이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자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바라봤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있었다. 오래된 일본 영화였다. 시간이 쌓인 영화라서 인물이나 배경의 선이 뚜렷하지 않고 부드럽게 뭉개졌다. 여자는 요즘은 볼 수 없는 필름 영화의 미흡한 기술력에 의한 부족한 뚜렷함과 선명함이 마음에 들었다. 일본 시골 마을의 무더운 여름 풍경이 펼쳐지더니 마루에 앉아 밖을 구경하는 남자아이와 엄마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는 일본어로 물었다. “엄마, 여름은 왜 녹색이야?” 엄마가 대답했다. “여름이니까.” 아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는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 아래 따뜻한 색감을 입혔다. 여름이란 온통 녹색인 시골의 남자아이와 도시에서 전학 온, 사계절이 회색이었던 여자아이가 만나 매미 소리가 울리는 녹색 산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여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화의 색감에 빠져들면서도 문득문득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남자는 스크린에서 반사되는 빛에 녹색, 흰색, 노란색으로 물든 얼굴로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 남자가 살짝 자세를 고쳐 앉으면 여자는 다시 스크린으로 얼굴을 돌렸다. 여자의 눈은 영화를 보면서 머리는 자신이 왜 자꾸 저 남자를 쳐다보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학생 때처럼 얼굴을 보고 한눈에 반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여자는 스크린에 나타난 초점이 맞지 않는 나뭇잎의 뭉그러진 녹색을 보며 생각했다. 이 공간과 시간이 주는 아무 의미 없는 우연 때문이 아닐까. 하필 오늘, 이 곳에서 이 오래된 일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텅 빈 영화관의 여자와 남자 둘 뿐이었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를 자꾸 바라보는 이유에 대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뒤로 남자의 왼쪽 얼굴을 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 생각을 한 직후, 여자가 영사기에서 쏘아지는 빛의 궤적과 그 속에서 떠다니는 먼지들을 넘어 남자의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초점을 맞췄을 때 남자도 스크린이 아니라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 먼지 하나가 유영하며 영사기가 쏘아낸 빛의 궤적을 이탈하는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둘의 눈이 마주친 찰나의 시간 동안 어떤 감각이 흘러가고 흘러왔음을 느꼈다.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제대로 얼굴을 식별하기조차 어려웠지만 분명히 여자와 남자 둘 다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한 채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은 의미 없는 단순한 시선의 스침이 아니었다. 남자는 가끔씩 여자가 자신의 얼굴을 본다는 것과 자신이 살짝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여자가 시선을 거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가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남자는 고개를 살짝 돌려 여자의 오른쪽 얼굴을 보았다. 긴 생머리에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시골의 소년과 도시에서 온 소녀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시간에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이유는 무엇인지,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는 좋아하는지,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화는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도시에서 온 소녀는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할 때보다 조금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소년은 내일 도시로 떠나는 소녀에게 말했다. “시즈코. 녹색 여름은 어땠어?” “회색 여름보다 훨씬, 훨씬 좋았어.” 소년이 소녀에게 네 잎 클로버를 내밀었다. “그때 못 찾았던 네 잎 클로버야. 이게 있으면 도시에서도 여름은 녹색일 거야.” 소년이 내민 네 잎 클로버를 소녀가 받아 들었다. 카메라가 점점 녹색 네 잎 클로버로 줌인되더니 그 위로 하얀 일본어 글씨가 떠올랐다. ‘여름의 녹색’ 화면이 검게 변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영화관에 어두운 노란색 조명이 켜졌다. 여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오른쪽을 보자 남자가 한 팔에 정장 상의를 걸치고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두 걸음 정도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말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뭘 어떻게 돼. 그냥 커피 한 잔 마시고 헤어졌지. 그리고 끝이야.” “뭐 전화번호나 그런 거 안 물어봤어요?” “응. 안 물어봤어.” “아니 그럼 그 여자분한테 왜 커피 마시자고 한 거에요?” “그냥. 영화가 재밌었는지 궁금했거든.” 남자는 여자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나이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원래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지, 이 영화관에는 가끔 오곤 하는지를 물어봤을 뿐이다.  “아니, 형. 남자가 돼 가지고.” “야, 닥치고 술이나 마셔.” 남자는 앞에 앉은 동생의 입을 소주잔으로 막았다. 빈 소주잔에 남자가 소주를 따랐다. 투명한 액체가 꼴꼴꼴 소리를 내며 잔에 채워졌다. “그 여자분 어떻게 사는지 안 궁금해요?” 남자가 대답했다. “조금 궁금하긴 하지. 그래도 안 물어보길 잘한 것 같아.” 남자는 가끔 여자가 생각났다. 그저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커피를 같이 마셨을 뿐인데도 여자는 남자의 머리에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여자가 떠오를 때는 항상 그때의 기억 전부가 함께 불려 왔다. 그 날 거리를 걸을 때의 따뜻한 햇빛과 영화관에서 났던 오래된 건물의 냄새, 타닥거리는 영사기의 소리와 영화관에 떠다니던 먼지들까지 모든 것들이 되살아나면 그 가운데에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그녀도 가끔 이렇게 나를 떠올릴까? 그 날의 영화와 날씨와 감각이 머릿속에서 나와 함께 재생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잔 하자.”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리고 남자는 소주잔을 비웠다. 남자가 소주잔을 내려놓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술집 창문 밖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여름밤, 나뭇잎은 가로등 빛에 물들어 주홍빛 녹색이다.
제 7 장. 불량 세자, 수안과 꽃 도령, 민혁 (1)
“오늘 채희가 오는 날이지요?” 채랑은 환히 웃으며 안채로 달려갔다. 곱게 땋은 머리가 찰랑, 찰랑 고운 비단 저고리 위로 사부작이었다. 너무도 곱고 다정한 여인으로 자란 채랑이었다. 자신의 몸종에게까지 쉽사리 말을 놓지 못하여 꽤 오래도록 곤혹을 치룰 만큼,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들에게까지 다정히 대하는, 꼭 자신의 어머니인 채화의 온화하고 다정한 성품을 고대로 닮았다. “그리도 좋으냐? 채희가 오는 것이.” 채랑과 달리 정경의 낯이 어두워졌다. “어머니는 좋지 않으셔요? 꼭 그믐 만에 보는 채희어요. 그동안 잘 지냈을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 지, 걱정 되어요.” 채랑은 두 손을 꼭 모은 채, 대문을 왔다 갔다, 하며 채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런 채랑을 바라보는 정경의 낯이 좋지 않았다. 그런 정경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듯, 좌상은 정경 곁에 나란히 서서는 한껏 들뜬 모습의 채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꼭 십 년하고도 칠 년 입니다. 이렇게 채희를 산 속에 숨겨두고 지내게 하는 것도, 맘 편하지 않습니다, 대감.” “그건 나도 그렇소. 채희와 채랑이와 함께 이 집에서 오순도순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그럴 수가 없으니….” “혹여나 산 속에서 예 까지 오다, 저잣거리 왈패에게 변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산을 나와 한양에 닿는 그 날이면 걱정이 되어 밥 한 톨도 넘길 수가 없습니다.” “부인….” “게다가 혹여, 채희와 채랑이 쌍생아란 말이 새어나가진 않았을까, 그래서 채희의 신변을 노리는 자가 있진 않을까. 하루도 편히 잠드는 날이 없어요.” 정경은 눈물을 훔쳤다. 좌상은 그런 정경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웬 호들갑이야, 채랑아. 조용히 기다려야지. 그러다 소문이라도 돌면 어쩌려고.” “오라버니도 참. 언젠간 그럼 같이 살 채희인데. 쉬쉬한다고 될 일 이어요? 나는 꼭 채희랑 같이 살 테야. 쌍생아로 태어났다고 해서 채랑이만 산 속에 숨어 지내는 건, 너무 싫어.” “쉿, 채랑아….” 어느덧 늠름한 청년이 된 ‘한이’는 철없이 어리기만 한 채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마당 한 가운데에서 하염없이 대문 밖만 바라보고 있는 좌상과 정경을 발견하곤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어머니, 아버지.” “그래. 채희는 어디까지 오고 있다더냐. 보낸 이도 어찌 이리 함흥차사인 게야.” “이제 막 한양에 닿았다고 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당도할 수 있겠지?” “그럼요. 아버지가 아끼는 휘영이 직접 호위하지 않사옵니까. 걱정 마십시오.” 좌상 곁에 서 있던 주한 역시, 덩달아 긴장했다. 17년 전, 채희가 이 집을 떠나 산 속으로 몸을 숨기러 들어갔을 때 채희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한 호위무사로 주한이 따랐었다. 그러고 두 해 년 전부터 주한의 사촌 아우인 ‘휘영’이 주한을 대신해 채희의 호위무사로 채희를 보필했다. “휘영을…믿어도 좋을 것입니다, 대감마님.” 주한은 좌상을 향해 말했다. 좌상 역시 주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 멀리 대문 밖을 응시했다. “그럼. 휘영이라면…내가 믿지. 믿고말고.” * * * “아가씨. 힘드시면 지금이라도 가마를.” 휘영은 저 멀리서 또박또박 걷고 있는 채희를 향해 말했다. 하지만 채희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장의를 뒤집어 쓴 채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아가씨.” 이틀 째, 좌상 댁에서 내어준 가마도 마다 한 채 투정 없이 걷기만 하는 채희가 걱정된 휘영은 다시금 채희를 불렀다. 그제야 채희는 걷던 걸음을 우뚝 멈춰 서곤 장옷을 걷었다. “내가 무슨 큰 효를 다하였다고 가마까지 타고 어머니 아버지가 계신 곳을 간단 말이냐.” 차가움과 냉정함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였다. 장옷을 걷고서 드러난 채희의 검은 머리칼이 햇빛 아래에 반짝였다. 까맣고 반듯한 채희의 머리칼. 그리고 그 옆으로 언뜻 언뜻 보이는 하얀 목선이 참 고왔다. “아가씨. 그런 말씀은…” “부지런히 가자. 오늘 안에 당도하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다시금 장옷을 뒤집어쓰는 채희였다. 채랑과 달리 차가움과 냉정함이 몸에 밴 채희였다. 꼭 좌상인 이한열의 곧고 냉정함을 닮은 듯 했다. 아니 어쩌면 채희의 삶이, 삶의 환경이 그녀를 그리 만든 걸지도 몰랐다. 채희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곱게 자랐더라면 채랑이처럼 다정하고 어여쁜, 살가운 여인으로 자랐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매번 좌상 댁에서 보내는 화려한 비단 옷은 마다한 채, 그저 무명실로 지은 옷만 고수하는 채희였다. 곱게 땋아 내린 비단결 같은 머리 밑엔 다 낡아 빠진 댕기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채희의 미모는 채랑보다 몇 곱절이나 더 고왔다. 채랑과 똑 닮은 이목구비였지만 채랑과는 달리 채희의 얼굴에선 차가운, 그러나 찬란한 빛이 나는 듯했다. 봉긋이 솟은 이마와 끝매가 살짝 올라간 검고 짙은 눈초리는 요염하기 그지없었다. 또한 도톰하고 맑은 빨간 빛이 도는 입술은 탐스럽기만 했다. “휘영아.” “네.” “너도…그렇게 생각하느냐?” “…….” “내가…언니의, 그리고 아버님의 위상을, 앞길을 가로 막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아가씨.” “…요즘엔 자꾸 내가 칼에 베여 죽는 꿈을 꾼다.” “…….” “나의 가슴을 황금빛의 용이 그려진 검으로 누군가가 내려쳐.” “아가씨.” “그러곤 꿈속에서 죽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꿈을 꾸고 나면…무섭거나 슬프지 않아.” “…….” “오히려 속이 후련하고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것들이 잠시나마 벗겨져 나가는 기분이다.” “아가씨.” 채희의 장옷을 쥔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휘영은 그런 채희를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곤 입술을 꾹 깨물었다. “하도 그 꿈만 반복해서 꾸니, 이젠 그것이 꿈인지…생시인지…분간조차 되지 않는구나.” 그 말을 함과 동시에 채희와 휘영은 한양 땅에 발을 딛게 되었다. 휘황찬란한 한양의 저잣거리 모습에 채희는 잠시 부지런히 걷던 걸음을 멈추곤 멍하니 정면을 응시했다. 분주히 움직이는 장사꾼들, 곱게 단장한 채 채희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반가의 규수들, 부채로 낯을 가린 채 한껏 분내를 내며 지나쳐가는 기생들. 그리고 그 속에 우두커니 선 채희는 자신은 이 땅 어디에도 동화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채희의 마음을 읽은 듯 휘영은 채희에게 한 걸음, 가까이 다가섰다. “아가씨, 제 옆에 꼭 붙으십시오. 지체하시다 길을 잃습니다.” 채희는 휘영의 말에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휘영에게 곁을 내주었다. 휘영은 채희를 아까보다 더 삼엄하게 호위하며 발걸음을 분주히 움직였다. “한양은 언제와도 적응이 되질 않는구나. 정신이 하나도 없…” 그때, 자신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웬 사내의 허리춤에 놓인 검이 눈에 들어왔다. 금빛이 화려한 용이 그려져 있는 검. 채희의 시선이 곧 그 검에게 빼앗겼다. 동시에 채희의 등골에 식은땀이 쭉, 흘렀다. “저것…저 검이야. 똑같아.” 채희는 잠시 머뭇거리며 자신의 곁을 스쳐 저 멀리 사라져가는 사내의 검을 고개가 돌아가게 바라보았다. 꿈에서 자신을 연신 베었던 그 검. 그 검이었다. 채희는 오싹해졌다. “정말…꿈이 아니었던 것일까?”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 있는 휘영의 옷깃을 꾹 쥐곤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그자들을 향해 돌렸다. 웬일로, 휘영이 채희의 걸음을 끊지 않고 따라 나섰다. 채희 역시 이리 한 눈 판 것은 처음이었기에 어쩌면 휘영이 자신의 뜻대로 내버려 두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보통 무사들이 쓰는 검은 아닌 듯 보였다. 몇 번이고…내 꿈에 나와 나를 베는 것이…우연한 꿈은 아니라 생각했는데.” “…….” “어찌…이리도 똑같은 검이 나타날 수가…” 평소답지 않게 말수도 많아졌다. 조금은 상기된 듯 보였다. 채희는 한 손을 장옷을 꾹 쥔 채, 또 한 손은 행여나 휘영을 놓쳐 길을 잃을까 휘영의 옷깃을 꾹 쥔 채 자신의 시선을 뺏은 검을 찬 사내의 뒤를 따랐다. “어? 어디 갔지?” 그러다 그만, 채희의 시야에서 벗어나고만 사내. 채희는 우두커니 서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이내 모퉁이를 지나쳐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발견하곤 휘영의 옷깃을 놓았다. “나 잠시만, 저 검을 어디서 구했는 지만 물어보고 올게!” 채희는 장옷을 꾹 쥔 채, 사내가 돌아선 모퉁이를 향해 잰 걸음으로 걸었다. 채희는 마른 침을 삼키며 더듬더듬 모퉁이를 돌아섰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아서자, “어…?” 막다른 골목이었다. 사내는…그 검을 찬 사내는 어디로 사라졌다 말이지. 채희는 붉은 입술을 꾹 깨문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앗…!” “웬 년이냐!” 채희의 목에 날카로운 칼 하나가 겨눠졌다. * * *
김홍표 "배우라는 옷이 너무 행복하죠"
... <사진= 음악극 '정조와 햄릿'속의 배우 김홍표. 작품에서 정조역을 맡았다> “오늘 연습이 밤 10시 넘어서 끝나서요.” 최근 한 배우는 기자가 제안한 저녁 약속에 이렇게 문자를 보내왔다. 그러면서 무료 공연 ‘티켓 신청’ 태그를 보내주었다. 제목은 음악극 ‘정조와 햄릿’. 10여 년 넘게 인연을 맺은 이 배우의 연기 여정을 잠시 되돌아봤다. 사극 배역 유독 잘 어울리는 명품배우 뭘 입어도 잘 어울리는 배우였다. 드라마, 연극, 뮤지컬, 영화 등 네가지 옷을 번갈아 입어온 지 25년(SBS 공채 5기, 1995년 데뷔). 옷이 그냥 몸에 맞을 리 없다. 옷에 걸맞은 남모르는 노력이 있었다. 배우들 동네에선 그를 두고 ‘부지런한 놈’이라고도 했다. 유독 드라마 사극이 잘 어울렸다. 천민에서 장군까지 다양한 옷을 입었다. 천민 황천왕동(‘임꺽정’), 권력을 꿈꾸는 연개소문 아들(‘연개소문’) 천문학자 이순지(‘대왕세종’) 고려무장(‘무인시대’), 목수 출신 판옥선 제작 군관(‘불멸의 이순신’), 정발 장군(‘징비록’) 등. 역할 탓에 평소 그의 얼굴엔 늘 긴 수염이 붙어 있었다. 그가 수염을 깎을 때는 장르를 바꿔 완전 새 옷을 입는 경우다. 수염 덕에 ‘브래드 OO’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런 그가 최근엔 곤룡포(임금의 옷)를 입었다. 위에서 언급한 음악극 ‘정조와 햄릿’에서다. 이쯤에서 그의 이름을 소개해야 할 터. 배우 김홍표(45)다. <사진= 사극 배역속의 김홍표. 사진='대하사극 매니아 카페' 블로그.> 음악극 ‘정조와 햄릿’의 정조역으로 무대 김홍표는 ‘정조와 햄릿’(연출 이우천, 음악감독 라예송)에서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역을 맡았다. ‘정조와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햄릿과 조선의 개혁 군주 정조를 음악극으로 재해석한 작품. 2016년 초연을 시작으로 매년 배우를 바꿔가며 롱런을 하고 있는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대표작이다. 9월 29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잔디마당. 주말을 즐기는 가족 단위 놀이객으로 북적였다. 6시 30분 쯤, 이들은 스르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이동하기 시작했다. 무료 공연(사전 티켓 신청) ‘정조와 햄릿’ 무대가 갖추어진 관람석쪽으로. 발길을 같이하다 무대 뒤쪽으로 향했다. 배우 김홍표를 잠시 만나기 위해서다. 때마침 곤룡포를 입고 무대 준비 중인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사극에선 정말 다양한 신분으로 나왔다. 곤룡포를 입은 건 이번이 두번 째”라며 입꼬리가 올라간 웃음을 지어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두 가지 작품 동시에 관람하는 기분” “작년 ‘조선에서 왓츠롱’이라는 웹드라마에서 ‘세종’을 맡았어요. 이번 정조역은 또 다르죠. 기분이 새롭죠(ㅎㅎ). 공연을 보시면 알겠지만 한 무대에서 두 가지 작품을 동시에 관람하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덴마크와 조선이라는 각기 다른 공간, 그리고 햄릿과 정조라는 고뇌하는 두 신분 말이죠. 날씨도 좋잖아요. 가족, 연인, 친구끼리 와서 편하게 관람하고 가면 좋겠습니다.” 바쁜 배우를 오래 잡아 둘 순 없었다. 후다닥 무대 뒤편으로 달려가는 배우의 뒷모습에서 작년 초, 그와 나누었던 전화 통화가 떠올랐다. 개인사업(음식)을 잠시 하다 접었다는 그는 “제가 할 일은 따로 있는 거 같아요. 옷이 안 맞는거 같습니다”라고 했다. 배우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이었다. 당시 그의 새로운 부활을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연기가 너무 좋아졌습니다" 틀리지 않았다. 이날 7시 시작한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이 관객인사를 위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정조역의 김홍표입니다”라는 무대 아나운서의 소개에 관객석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박수를 보탰다. 오래전 연기 초년시절엔 교통사고를 당해 큰 고비를 넘겼던 그다. 그때가 첫 부활이라면 이번 ‘정조 곤룡포 착복식’은 그의 또 다른 도약인 셈이다. “연기가 너무 좋아졌다”는 배우 김홍표. 한층 더 묵직해진 그의 연기는 10월 5~6일, 국회 잔디마당에서 계속된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49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제 9 장. 채희의 그림자, 무사 휘영(輝影)
“그런데 아깐 어찌 그리 늦게 나타난 것이야?” 다시 장옷을 여민 채, 좌상 집으로 향하던 채희는 걷던 걸음의 속도를 늦추곤 자신의 뒤를 따르는 휘영을 향해 물었다. 그러자 휘형은 채희의 물음에 가만 채희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예? 아, 분명 아가씨를 호위하고 있다 생각하였는데 돌아보니…아가씨가 사라지셔서. 지체해 송구하옵니다.” 휘영은 채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채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장옷을 거두어, 휘영을 돌아보았다. 휘영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채희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내가 사라져? 내가 잠시 너에게 다녀온다 이르고 사라지지 않았느냐?” “무언갈 아가씨가 착각을 하신 듯합니다. 돌아보니 아가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지 오래라, 아가씨를 찾느라 한참 애 먹었습니다.” 휘영의 말에 채희는 가만히 장옷을 쥔 채, 이상하다…, 내 분명 너의 옷깃을 쥐곤 다녀온다 일렀는데, 중얼거렸다. 그런 채희를 가만, 휘영은 바라보았다. 늘 곁에서 채희를 호위하는 휘영이었지만 이리 가까이서 채희의 낯을 바라본 것은 처음이었다. 휘영은 채희의 봉긋 솟은 이마와 콧날, 도톰한 입술, 하얗고 발그스레한 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럼…너가 아니었단 말이야? 어머! 그럼 내가 누구를…” 채희는 화들짝 놀라며 휘영을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휘영은 채희와 눈이 마주치자 채희보다 더 놀라며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내가 착각하여 다른 이를 붙잡고 끌었나보다. 어쩜 좋지. 혹여 내 얼굴을 보기라도 한 것은 아니겠지.” 채희는 울상을 지으며 땅바닥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워낙 도성에 알려진 ‘채랑’, 자신의 언니 얼굴이라 그런 채랑과 꼭 닮은 자신의 얼굴이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지 않기 위해 애쓴 채희였다. 휘영은 그런 채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평소와 달리,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민 채 귀여운 표정을 지어보이는 채희. 휘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채희를 바라보며 설핏, 미소를 지었다. “어.” 채희는 그리고 그런 휘영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가…웃을 줄도 아는 구나.” “…….” “이제야 사람과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것은 휘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도, 웃는 얼굴도, 우는 얼굴도 보인 적 없는 채희였다. 늘 무표정한 얼굴의 그녀였기에 휘영 역시, 그녀를 곁에서 호위하고 있었지만 꼭 보통 사람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온기를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휘영은 알았다. 채희가 부로 무표정을 한 채 지낸다는 것을. 일부러 차가워 보이고, 감정을 보이지 않으려 슬픔도 기쁨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스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휘영은 알고 있었다. 그때, 채희 뒤로 우상의 부인인 ‘유정’이 가마에 올라선 채, 이쪽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좌상과 상극인 우상의 부인에게 ‘채희’의 얼굴을 들켜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것도 모른 채 채희는 장옷을 거둔 채, 휘영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곧, 유정이 좌상의 호위무사인 ‘휘영’의 얼굴을 알아보곤 채희 곁까지 성큼, 다가왔다. “……!” “송구합니다, 아가씨.” 곧, 휘영은 채희에게 송구한다하며 채희를 자신 쪽으로 바짝 잡아 당겼다. 그러곤 놀란 눈으로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채희의 장옷을 씌워 재빨리 채희의 얼굴을 가렸다. 동시에 유정이 탄 가마가 채희의 곁을 스쳤다. “…앗.” 그제야 자신의 옆으로 우의정의 부인인 유정이 지나갔음을 깨닫곤 황급히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는 채희였다. “저 무사는 좌상 댁 호위무사인 듯한데.” 유정은 휘영과 채희를 지나치며 중얼거렸다. 그러자 유정을 따르던 몸종이 힐끔, 휘영을 돌아보곤 황홀한 듯 미소를 지어보였다. “참…잘생긴 사내지 않습니까?” “잘생기긴 뭣. 우리 아드님이 훨-씬 더 잘생기셨지.” “에이, 민혁 도련님은 두 말하면 입 아프지요. 그래두 저 무사는 사내인데도 어찌 얼굴에서 색기가 철철 흘러넘치는 지…, 묘-하게 여인을 끌어드리는 멋이 있지 않습니까? 저 탄탄한 가슴에 폭, 안겨보기라도 했으면…” “나이든 여편네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 “뭐, 젊고 잘생긴 사내 품에 꼭 젊은 여인네들만 안기고 싶답니까? 이 늙은 여인네들두 젊고, 잘-생기고 사내 품에 안겨보고 싶습니다, 마님?” 입에 침이 마르도록 무사를 칭찬하는 몸종의 말에 유정은 다시금 고갤 돌려 무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뭐, 무사하긴 아까운 인물이긴 하네.” “그렇지요? 어쩜 좌상댁엔 호위 무사까지 인물이 훤하니…앗, 흠. 흠.” 몸종의 말 실수에, 유정은 심기가 불편한 듯, 흠! 하고 헛기침을 내뱉더니 이내 흥, 하고 무사에게서 눈길을 거두었다. “그래봤자 딱, 기방 기생들 기둥서방하기 좋을 외모다. 어디 우리 아드님에 비할까? 우리 아드님은 딱, 위장부시지!” 채희는 멀어져가는 유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이 날 뻔 하였구나. 하마터면 우상의 부인께 얼굴을 보일 뻔 하였어.” “…….” “가자. 어머님, 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시겠다.” 그리고 채희는 다시금 발걸음을 돌렸다. 휘영은 그런 채희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채희 뒤를 성큼성큼 따랐다. “너는. 무술도 뛰어나고, 검도 잘 다루는데 어찌 한낱 양반댁 여식이나 지키는 호위 무사가 되었느냐? 네 정도의 검술이면 궁에 들어가 군주를 뫼시어도 될 법한데.” “…….” “뭐…내가 무술이니 검술이니…보는 눈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저 이리 나만 지키며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안타까워 그런다.” “…….” “지금이라도 내가 아버님께 일러 너를 다른 곳으로…” “되었습니다.” 휘영은 자신을 생각해주어 말하는 채희에게 되었다, 단칼에 거절을 했다. “궁이 싫으면 어디 무사들을 길러내는 곳의 스승으로 들어가 제자들을 키워도…” “…….” “그것도 싫겠지?” 채희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따르는 휘영을 돌아보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땅바닥만 응시하고 있는 휘영이었다. 그런 휘영을 가만 바라보던 채희는 다시금 앞장서서 걸으며 입술을 떼었다. “언제든 말 하거라.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 떠나야 하거든.” “…….” “주저 말고 말하도록 해. 언제든 널 보내줄 것이니.” 휘영은 채희의 말에 가만히 미소 지으며 부지런히도 걸어가는 채희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네 이름은 빛날 휘에 그림자 영.’ ‘…….’ ‘휘영이다. 네가 그림자처럼 아가씨를 호위하여야 할 것이다.’ ‘…예, 형님.’ ‘그 때가, 네가 가장 빛이 나는 때일 것이다. 알겠느냐.’ 어린 시절, 자신에게 무술을 가르치며 늘 아가씨를 잘 보필하여야 한다 일렀던 주한이었다. 주한과 휘영의 집은 꽤 한양에서 잘나가던 무사의 집안이었지만 몇 해 전, 역모라는 누명으로 패가망신 하여, 길바닥을 떠도는 꼴이 되었다. 친척,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 제 목숨 부지하기 급급해 생사조차 알 길 없던 그때, 주한의 손을 잡아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지금의 좌의정, ‘이한열’이었다. 때문에 어린 주한과 주한의 어머니, 그리고 부모를 모두 잃었던 갓난 아이었던 사촌 아우, 휘영은 지금껏 좌상 집에서 역모 죄로 패가망신 했단 가문을 숨긴 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아가씨를 모시는 것이, 제가 하여야 할 일이고” “…….” “제가…하고 싶은 일입니다.” 휘영은 멀어져가는 채희를 우두커니 바라보다 이내 휘적휘적, 긴 걸음으로 채희의 뒤를 따랐다. * * * “어머님, 아버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좌상댁의 노비들의 눈을 피해 조용히 안채로 들어온 채희는 좌상과 부인, 채화를 마주하자마자 절부터 올렸다. 좌상 ‘이한열’은 언제 채희가 이리 예쁘게 자랐나, 흐뭇한 얼굴로 채희를 바라보았다. 옆에 함께 앉아있던 정경부인은 그만 울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머님, 어찌 그리 눈물바람이어요. 오랜만에 보는 채희가 어리둥절하겠어요!” 곁에 서 있던 채랑이 눈물을 보이는 정경을 향해 입술을 씰룩이더니, 이내 절을 마치고 덩그러니 서 있는 채희를 와락 껴안았다. “언…니.” “채희야, 어째 안색이 더 좋지 않아.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 거야?” 살뜰히 채희를 살피는 채랑이었다. 둘이 이렇게 나란히 서니, 꼭 똑같은 사람이 둘이 서 있는 듯하였다. 채랑은 자신을 닮은 채희의 손을 맞잡은 채 가만히 채희를 바라보았다. “아프기는, 없어. 그저 이틀을 꼬박 예까지 오느라 진이 빠져 그렇게 보이나 봐.” “나 너에게 줄 것이 있어! 내 방으로 가자.” 하며 채랑은 채희의 손을 잡아끌었다. 채희는 아이처럼 들뜬 언니를 보곤 피식, 웃으며 좌상과 부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채랑을 따라 나섰다. “아, 잠시 내 장옷.” 안채를 나서자마자 마당에서 비질을 하고 있는 몇몇의 노비를 발견하곤, 채희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채랑은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 채희를 보곤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다. 곧, 무사 휘영이 채희에게 들고 있던 장옷을 건넸고, 채희는 황급히 장옷을 뒤집어썼다. “이제, 되었어. 가자 언니.” “미안…해, 채희야. 나 때문에.” “무슨 말이 그래. 나 때문에 언니가 곤욕만 치루지.” “왜 너 때문에 내가 곤욕을 치루어?” “언니는 장차 세자빈이 될 사람인데…내가 있어 걸림돌만 되잖아.” “얘, 세자빈은 무슨! 나는…궁에서 살기 싫어.” “…언니.” “세자빈은 가당치도 않어. 그리구, 나는 그래도 여기서 어머님과 아버님과 함께 지내잖아. 너는 그 험한 산 속에서…나 때문에…” “자꾸 그런 말 하면. 나 다음부턴 집에 오지 않을 거야, 언니 시집갈 때까지.” 채희의 말에 채랑은 울상을 짓다, 이내 피식 웃으며 채희의 손을 꼭 잡았다. “나 시집가면. 너랑 꼭 한 집에서 살 거야.” * * * “이걸…나 준다고?” “응. 너무 예쁘지?”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 옷과 꽃신이었다. 연분홍의 연꽃이 수놓인 샛노란 개나리색 저고리에 고운 보라색의 풍성한 비단 치마. 그리고 파란색의 어여쁜 노리개까지. 무명치마저고리를 입고 있는 채희는 채랑이 건넨 옷을 가만히 만지작였다. “너무 예쁘지! 내가 아버님을 졸라, 청국에서 사와 달라고 했어.” “…언니 입어. 나는 이런 것은…” “너 주려고 내가 아버님께 직접 청을 드린 것이야. 나는 이런 쨍한 색깔은 안 어울려.” “…….” “너와 내가 외모가 꼭, 닮았다고 하지만.” “…….” “내 눈엔 나보다 너가 몇 곱절 더 고와. 그래서 이런 쨍하구 고운 색깔은 나보다 너가 더 잘 어울려.” 채랑의 말에 채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곤 화려한 비단 옷을 손바닥으로 쓸어보였다. 채랑은 곧 채희에게 저고리를 대어보곤 너무 잘 어울린다며, 환히 웃었다. “입고 나와 봐! 너가 이걸 입구 저잣거리에 나가면 나라고 생각하지, 널 다른 이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야. 물론 좌상 댁 여식 ‘채랑’이가 무얼 먹고 저리 더 고와졌나?, 수군대겠지? 호호호.” “언니…하지만.” “너도 한양 구경하고 싶어 했잖어. 꽃놀이도 가고 싶어 했구, 연등회에도 가보고 싶다며.” “그건…” 망설였다. 이리도 화려한 옷은 입어본 적이 없었기에. 매번 집에서 비단 옷이며 장신구들을 보내왔지만 채희는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펼쳐 쓸어보기만 하고 다시 보따리에 싸, 서랍에 곱게 넣어 두기만 했었다. 꼭, 자신과는 맞지 않은 옷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여기 연 하늘빛 저고리와 분홍색 치마는 연등회 때 입구. 우선 이 옷부터 입고 나와 봐! 너랑 손 꼭 붙들구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구경시켜 주고 싶지만.” “…….” “그것은 아버님이 추호도 허락지 않으실 것이니.” “…….” “매번 다 낡은 장옷 뒤집어 쓰구, 누구에게 들킬까 연연하면서 그리 좋아하는 책방에도 쉬이 못 들려보았잖아. 이 옷으로 갈아 입구 내일 해 뜨면 휘영이랑 저잣거리나 다녀와. 언니 소원이야. 너, 내 소원 하나 못 들어줘?” 채랑의 말에 채희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참으로 고운 옷이었다. 채랑이 채희가 며칠 예서 머무는 동안 외출복으로 입을 옷들과 장신구들을 손수 챙겨 놓았다. 채희는 자신의 손을 붙잡고 응? 응? 하며 어린 아이처럼 칭얼대는 채랑을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언니 때문에…못살아, 정말.” “정말 입을 것이지? 그치?” “들켜서 곤혹을 치루어도 나는 몰라. 다-, 언니가 책임져. 알았지?” “그럼! 이 언니만 믿어! 호호호.” “하하하하.” 모처럼 채 자매는 얼굴을 마주보고 앉아 호호호, 하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