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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염재승 대표, “크라우드 펀딩 성공요? ‘복제할 수 없는 경험’을 제공하세요”

크라우드 펀딩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웹툰 <김철수씨 이야기>를 통해서였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그늘이 개인에게 미친 영향을 다룬 웹툰으로, 그다지 희망적이거나 밝은 내용은 아니었죠. 그럼에도 만화를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이 작가 ‘수사반장’에겐 있었습니다. ‘진흙 속 보석’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작가였죠. 저와 같은 마음으로 그를 응원하던 독자들이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철수씨 이야기> 연재가 갑자기 중단됐습니다. 작가가 생활고로 더이상 웹툰을 그릴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웹툰 흥행이 물꼬를 트고 있었고, 수익화 수단이 부족했던 시기였죠. 작가 수사반장은 ‘텀블벅’이라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연재를 이어나가기 위해 모금을 진행했습니다. 

과정은 건너뛰고 결과만 말하면 펀딩은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수사반장의 만화를 계속 보고 싶었던 독자들이 반응했습니다. 작가는 <김철수씨 이야기> 연재를 재개한 것은 물론,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 코믹스’와 계약해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인기 웹툰 1위를 달성하고, 만화대상에서는 문화부 장관상을 수상했죠.
<김철수씨 이야기>를 통해 제가 크라우드 펀딩을 알게 된 후 5년이 지났습니다. 텀블벅이라는 사이트가 생겨난 지는 7년이 됐죠. 크라우드 펀딩은 이제 아마 여러분께도 익숙한 개념이 됐을 겁니다. 게임 개발을 위해 펀딩을 받는 것도 이제 일반적인 이야기가 됐으니까요. 

제게 <김철수씨 이야기>의 완결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지금도 여전히 창작자들과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는 자부심과 미션을 가진 ‘텀블벅’의 염재승 대표를 만났습니다. 텀블벅 사무실이 있는 을지로 위워크에서 텀블벅 이야기, 펀딩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게임 펀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대중을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을 조합한 용어로,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다수의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을 말한다. 초기에는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적극 활용해 '소셜 펀딩'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2011년 설립된 후 7년이 지났네요. 텀블벅은 지금 어떤 회사인가요?

염재승: 여전히 크리에이터들의 문제에 집중하는 스타트업이에요. 제 영화 찍을 자금을 구하기 위해 고민하던 게 텀블벅의 시작이었죠. 제가 영화를 공부했거든요. 자금 문제는 많은 예술학교 친구들이 갖고 있던, 지금도 갖고 있는 고민이에요. 자금을 모으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을까, 온라인을 통해 좀 알릴 수 없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당시 해외에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가 나오고 있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죠. 


설립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건 어떤 부분인가요?

일단 그땐 해외에 펀더블이라는 사이트가 있었어요. 이후 인디고고가 나왔고, 대중화를 이끌었죠. 킥스타터는 정해진 시간에 목표 금액을 모아야 거래가 되는 시스템을 처음 론칭했어요. 펀더블이 킥스타터랑 비슷했고요.

사실 텀블벅은 정말 ‘어떻게 하면 돈을 빨리 모을 수 있을까’에 가장 집중했던 사이트에요. 그래서 무조건 결제를 편하게 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죠. 2011년에 온라인 결제 시스템이 얼마나 복잡했는지 기억하시죠? 지금에야 많이 편해졌지만, 그땐 액티브엑스에 공인인증서에 난리났었잖아요. 

생각만 해도 갑갑하네요. (웃음)

사실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를 만드는 것 자체가 아주 재밌는 일은 아니었어요. 다만 결제 방식 간소화 방식을 고민하던 게 재밌었죠. 당시에 온라인에서 결제하려면 너무 번거로웠는데, 정기 결제 서비스는 그런 게 좀 덜 했거든요.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 같은 것 말이에요. 그 개념을 살짝 변용했어요. 한국에서 그런 방식으로 결제 서비스를 만든 건 텀블벅이 처음이었죠. 

그때 경쟁사 분께서 텀블벅 결제 시스템을 보시고 금융감독원에 신고를 하셨더라고요. 금감원은 결제가 너무 쉬운 게 좀 이상하긴 한데, 법적으로 하자도 없고 문제가 발생하지도 않으니까 지켜보기만 했던 것 같아요. 그때 꽤 오래 감시(?)받았어요.

이 쉬운 결제가 잘 먹혀 들어갔던 것인지 사람들이 사이트에 자꾸 찾아왔어요. 그러다 보니 문의도 많고,  사이트에서 버그도 발견되고요. 다른 친구들은 ‘이거 만들어 놓고 다시 학교 가서 하던 거 해야지’ 였다면 저는 텀블벅이라는 서비스를 좀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죠.


본인 영화 찍으려고 시작했다지만 비즈니스적으로도 관심이 생겼나 봐요.

일단 서비스 운영이라는게 제가 하던 영화라는 매체랑 비슷한 면이 있어요. 영화는 예술학교에서 다루긴 하지만 상업 예술이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달래면서(?) 작업하는 예술이기도 하고요. 혼자 만족하면서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죠. 

그리고 영화는 일단 한 번 만들면 끝이잖아요. 근데 서비스는 계속 운영하면서 피드백 받고 고쳐나가고 하는 거니까, 그런 것들에서 오는 기쁨이 있죠. 그 굴레에 빠진 것 같아요. (웃음)

사이트를 만들어 놓는다고 사람들이 찾아오지는 않잖아요. 

2011년 4월에 사이트를 열었어요. 영화 프로젝트 2개로 시작했고요. 첫 날 블로터에서 인터뷰를 해 주시더라고요. 인터뷰 기사가 네이버 메인에 걸렸죠. 근데 그땐 금요일에 네이버 메인에 기사가 올라가면 주말 내내 걸려있었어요. 운이 좋았죠. 처음에 그거 보고 많이 들어오셨어요.  


반신반의 했을텐데 잘 되니까 신기했겠어요. 다른 전략은 없었나요?

결제만큼 중요했던 게 성공 경험을 만들어 주는 거였어요. 당시 펀딩 프로젝트를 하는 분들은 막 천 만원, 1억 원 이렇게 큰 목표를 잡은 분들이 있었는데, 당연히 실패했죠. 텀블벅이 집중했던 건 적은 금액이라도 성공한다는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어요. ‘텀블벅에 오면 성공한다’라는 인식 말이에요. 초창기 6개월간의 펀딩은 모두 성공했어요. 

성공 금액의 기준은 어떻게 잡았어요?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설문을 했어요. “여기 오신 분들은 창작자의 연락을 받고 오신 분이냐, 팜플렛 보고 오신 분이냐” 이런 내용의 설문이었죠. 창작자의 지인이 3~40% 정도 되더라고요. 그걸 가지고 창작자 본인이 모을 수 있는 인원 비율을 산정했어요. ‘찾아와 주기까지 하는 지인은 펀딩에서도 도울 확률이 높다’라고 생각했죠.

지인을 40%라고 치고 그것의 100%, 즉, 창작자 본인이 모을 수 있는 금액의 두 배 정도를 목표로 잡아보시라. 다소 러프하지만 처음엔 이렇게 권해드렸죠.  


게임에서도 보통 개발비 대비 훨씬 적은 금액을 펀딩받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실 그 금액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될 지 궁금했거든요. 

그래서 게임쪽에서 처음엔 주목을 안 했어요. ROI(투자대비수익율)가 안 나오니까요. 근데 웹툰 프로젝트가 연이어 성공하면서 게임 쪽 펀딩이 많이 늘었죠. 그땐 레진같은 플랫폼이나 웹툰 하단 광고 같은 게 없어서 유료화 수단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서 매주, 매월 펀딩을 받으면서 연재를 이어나가시는 분들이 있었죠. 마사토끼 작가 같은 분들요. 

거리 공연자의 약정이라는 채널 아세요? 거리의 예술가가 내 앞에 얼마가 모이면 어떤 작품을 보여주겠다, 또 얼마가 모이면 다른 걸 보여주겠다. 이런 식으로 공연하는 건데요. 그 방식을 웹툰 작가들이 텀블벅에서 사용했어요. 1주일에 한 화, 2주일에 한 화 이런 식이었고 계속 성공했죠. 마사토끼 작가는 60화까지 계속 그렇게 했어요. 

웹툰 쪽 오디언스들이 펀딩에 많이 참여하는 걸 보고 먼저 TRPG쪽에서 텀블벅에 오셨어요. 웹툰과 타깃층이 비슷하고, 니즈가 있을거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래프를 보면 웹툰 그래프가 이렇게 올라간 다음에 파도처럼 게임쪽이 확 올라갔어요. 1분기 정도 차이를 두고요. 

디지털 콘텐츠에 돈을 잘 쓰지 않는 분위기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얼마 전 불법 웹툰 공유 사이트가 긴 운영 끝에 폐쇄되기도 했잖아요. 

디지털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 그런 것 같아요. 형태가 없고, 복제가 너무 쉽고요. 마음만 먹으면 돈을 낼 이유가 별로 없죠. 도덕적으로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답이 없는 문제기도 하고요. 텀블벅도 그런 문제에 맞닿아있어요. 

실력있는 크리에이터들이 수입을 창출하려면 작품 퀄리티도 좋아야 하지만 펀딩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독점적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 이름난 작가들은 선택지가 많잖아요. 근데 이름을 알릴 필요가 있는 분들은 그런 복제가 안 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게 큰 무기가 될 수 있죠. 

게임 프로젝트 중에 <트리 오브 라이프>라는 프로젝트에 굉장히 애착이 있어요. 전략을 잘 짰다고 생각해요. 그 게임은 첫 카피를 내려받은 분들께 게임 내에 이름이 박힌 조형물을 만들어 준다는 제안을 했거든요. 사실 이건 복제할 수 없는 그 유저 한 사람만의 경험이잖아요. 
콘텐츠를 공짜로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이들을 이용해야 해요. 콘텐츠가 디지털화 되지 않았을 때는 만화 같은 거 해외에서 보게 하려면 출판하고, 배송하고 해야 하잖아요. 알릴 수 있는 수단도 적고요. 근데 지금은 손쉽게 자기 작품을 알릴 수 있어요. 인터넷에 번역해서 올리면 끝이니까요. 어떤 채널에, 어떤 방법으로 마케팅 할 지 안방에서 다 정하고 실행할 수 있고요. 

어떻게 보면 복제가 쉬운 거지만 어떻게 보면 유통 비용이 제로가 된 거죠. 그걸 통해 팬덤이나 위치가 구축되면 복제할 수 없는 경험을 리워드로 제공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고요. 거기서 더 인지도가 높아지면 메이저로 올라가서 여러 선택의 기회를 갖게 되겠죠. 텀블벅은 기반을 만들어 준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이번에 3억 원 정도 펀딩된 <크림 히어로즈>라는 프로젝트가 있어요. 텀블벅 활용하시는거 보면 말씀드린 것에 딱 부합하는 프로젝트에요. 반려동물 콘텐츠를 만드는 분인데요. 유튜브라는 좋은 플랫폼을 통해 팬덤을 만드셨고, 그 팬덤이 원하는 것들을 굿즈로 만들어 수익을 얻으신 케이스에요. 

대부분의 프로젝트가 성공하는 것 같아요. 초창기 전략에서 지금은 좀 더 발전했을 것 같은데요.

2017년 기준으로 평균 60% 정도 성공해요.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고요.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도록 내부의 스페셜리스트들이 컨설팅을 해 줘요. 지금 리워드 구성을 이렇게 하셨는데, 데이터를 보면 이용자들이 이 구간을 좀 더 많이 선택하신다. 이런 식으로 데이터를 제공하기도 하고요. 

텀블벅에 올라온 프로젝트들은 기본적으로 다 컨설팅을 해 드려요. 텀블벅에 프로젝트를 올리려면 로그인해서, 프로젝트 올리기 버튼 누르고, 내용 작성한 다음 시작하기 누르면 끝인데요. 모든 프로젝트가 라이브 되는 건 아니지만 그 과정까지만 하셔도 필요한 것 보강할 수 있게 해 드리고, 리뷰는 다 드려요. 요청 들어오는 프로젝트는 한달에 1,200건 정도? 요즘 빠르게 늘고 있는 추세에요. 


게임의 경우 말씀하신 <트리 오브 라이프>도 잘 됐고, 얼마전에는 <사망여각>이나 <던그리드> 같은 것도 잘 됐어요. 잘 되는 게임 펀딩의 특징이 있나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품이잖아요. 유저들이 게임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험을 구체적으로 잘 설명해야 해요. <트리 오브 라이프>의 오드원게임즈가 그걸 잘 했죠. 비디오, 사진 등 다양한 수단을 활용했고요. 돈을 내려는 사람들은 내가 이 돈을 내서 어디에 기여할 수 있고, 어떤 체험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해요. 

두 번째는 신뢰에요. 물론 약속한 시간을 못 지킬 수는 있어요. 근데 어떤 이유로, 얼마나 지연이 될 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황을 상세히 전달해야 해요. TRPG 출판사 ‘초여명’이 그걸 아주 칼같이 했죠. 그런 신뢰를 구축하면 그 다음, 또 그 다음 펀딩에서도 성공적인 결과를 낼 수 있어요.
초여명의 <던전월드>는 굉장히 기억에 남는 케이스에요. 제가 원래 TRPG를 잘 몰랐거든요. 장르도, 이 정도 팬층이 있는 지도 잘 몰랐죠. 초여명의 경우 원체 작업 퀄리티가 높기도 하지만, 텀블벅을 굉장히 전략적으로 잘 이용하시더라고요. 단계를 설정하고 단계에 따른 리워드를 제공하던 방식을 처음으로 초여명이 사용했어요. 300만원 넘으면 번역서가 나올 것이다, 500만원 넘으면 양장본이 나올 것이다 이런 식으로요. 

마지막에 되게 재밌게 흘러갔던 게, 초여명이 부부출판사잖아요. 편집장님이 ‘3,000만원이 모이면 우리가 못 갔던 신혼여행을 갈 것이다.’ 이렇게 올리신 거예요. 재밌으라고 올리셨겠죠. (웃음) 근데 그게 트위터에서 확 뜬 거예요. 우리가 이 사람들 신혼여행 보내주자고. 그때 급격하게 펀딩 금액이 올라갔어요. 하루만에 천 만원 넘게요. 

그 당시에 1인당 펀딩 금액도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TRPG가 어느 정도 출판사에 대한 믿음이 있고 하면 구매 금액이 큰 편에 속하죠. 20만 원씩 하는 것도 있잖아요. 당시 <던전월드>는 참여자 수도 상당히 많았어요. 그걸 통해서 많이 배웠죠. 저는 영화나 관련 예술만 보고 시작했는데 생각도 못했던 분야에서 이런 식의 이용자 층이 많고, 펀딩을 잘 활용하시는 것 보고요. 되게 책임감 많이 느낀 계기였어요.


게임의 경우 후원자들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좀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단 크라우드펀딩은 계획에 대한 돈을 내는 것이라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얘기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크리에이터들이 후원자와의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약속에는 텀블벅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고 봐요. 

일단 게임의 경우 일반적인 굿즈 만드는 거랑 공정이 좀 다르잖아요. 변동성이 훨씬 크죠. 그래서 지연이 생길 수 있는데, 이때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실제로 게임의 경우 펀딩 완료 후 1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리워드를 받지 못하고 계속 기다려 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심지어 댓글에는 “몸 상하면 안 되니까 너무 열심히 하지 말고 쉬엄쉬엄 하라” 이러면서요. 그런 마음을 배신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소통은 잘 하셔야 하고, 일정은 가급적 꼭 지켜주셔야 해요. 
텀블벅의 경우 게임은 반드시 알파, 혹은 베타 버전 빌드가 있는 경우에만 프로젝트를 승인해요. 그것마저 없는 상태에서 펀딩받는 것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죠. 펀딩받는 돈이 목적을 달성하는데 적절한지도 꼼꼼히 확인하고요. 잘 안 됐을 경우에 대책도 명시하도록 규정돼 있어요. 게임과 테크쪽은 공정이 다른 만큼 좀 더 엄격히 보는 편이에요. 

출판같은 건 상대적으로 좀 리스크가 낮은 편이에요. 그 안에서 변주는 하지만 기성 산업이니까요. 테크나 게임처럼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은 좀 더 위험하긴 하지만 굉장히 가치있는 일이죠. 또 거기서 재밌는 것들이 나오고요. 


펀딩은 일단 한 번 하게 되면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유는 두 가지가 있겠죠. 쇼핑이 아니다 보니 심리적 장벽이 좀 있는데 한 번 해보고 나면 그 심리적 장벽이 좀 낮아지는 거랑, 결제가 너무 쉬우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쓱 펀딩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텀블벅은 돈이 바로 안 나가잖아요. 마감일에 맞춰서 어떤 건 이번 달에 나가고 어떤 건 다음 달에 나가니까 좀 부담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분들 많더라고요. 정신 차려보니 여기 가서 밀어주고 저기 가서 밀어주고 있더라는. (웃음)


펀딩이 본인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떤 걸 소비하느냐가 그 사람을 보여주기도 하니까요. 결제가 쉬우니까 자기 가치에 맞는 후원을 쉽게 할 수 있는거죠. 물건을 받기 위해 펀딩하는 경우도 있지만, 취지가 너무 좋아서 후원하는 경우도 많아졌어요. 그 프로젝트가 하는 일 자체가 가치가 있다고 판단될 때요. 일반적인 공익성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중요하거나 아끼는 대상에 펀딩하는거죠. 
젊은 층이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추세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내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돈을 쓰고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거죠. 어차피 그 돈 아껴봐야 집 못 사잖아요. 예금해 봤자 이자도 얼마 안 되고. 그런 트렌드가 텀블벅의 컨셉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요.

얼마 전 펀딩된 쯔꾸르게임 <호텔소울즈>의 경우 40만원을 펀딩한 분이 계셨는데, 컨셉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게임 보지도 않고 제일 비싼걸로 질렀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경우가 은근히 많아요. 


회사가 되게 잘 되고 있는 걸로 알아요. 결제 간편화야 다른 사이트들도 다 해결했고, 텀블벅이 주목받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맞아요.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예전엔 4~5년 거쳐서 100억 모았는데, 이제 1년 만에 100억 모으고, 2018년엔 지금 시점에 400억 바라보고 있어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고요. 회사에 스탭도 적어요. 결제하고 정산하는 과정 같은 반복적인 작업들을 모두 자동화해서 가능한 거죠. 그래야 펀딩 서비스를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할 수 있으니까요. 높은 생산성에 집중하고 있어요. ​

지금 한 20명 되는데 2018년 안에 30명 정도 규모까진 늘릴 예정이에요. 회사 자체가 크리에이터들의 기반을 만들어준다는 미션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한 명 한 명 꼼꼼히 인터뷰하며 뽑고 있어요.
잘 되는 이유라. 저희는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접점이 되는 서비스에요. 그런 크리에이터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 스탭들이 있어요. 단순히 펀딩을 플랫폼 사업으로 보는 사람들과, 크리에이터 생태계를 잘 아는 사람들이 그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운영하는 사이트는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MD랑 스페셜리스트의 차이죠. 

이런 과정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채용할 때도 그 업계에 있었는지를 많이 봐요. 가장 활성화 된 사이트인 것도 많은 영향이 있겠죠. 텀블벅에서 펀딩하면 더 많이 알려질 수 있으니까. 


텀블벅을 통해 궁극적으론 뭘 하고 싶으세요? 매출 몇 백 억 그런 건 아닐 것 같은데요.

매출도 중요하죠. (웃음)


그럼 펀딩 재벌이 되고 싶으세요? (웃음)

그건 단언코 아니고요. (웃음) 요즘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기 너무 힘든 세상이잖아요. 돈 안 되는 것요. 저도 영화할 때 집안 반대를 많이 겪었어요. 될 지 안 될 지 모르는, 확실하지 않은 건 시도하기 어려운 세상이에요.

영화 학교 들어갈 때가 유튜브 처음 나왔을 때에요. 원래 영화는 고가의 필름카메라로 찍었는데, 엄청 작은 디지털 카메라가 영화같은 장면을 만들기 시작하던 때였죠. 앞으로는 영화 말고 출판, 게임 등이 훨씬 더 작은 규모로 임팩트 있는 일을 해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요. 

돈 될 것이 확실하지 않은, 그런 걸 계속 시도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게 돈이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또 더 좋고요. 그게 저와 텀블벅의 목적이고 과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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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자룡 (趙雲 子龍) A.D.? ~ 229
아오.. 시부랄 다 써놨더만, 뭔 에러가 났는가.. 업로드 누르니 싹 씻은듯이 날아가 처음부터 다시 쓰는 오늘의 주인공새끼는 바로 "조운" 삼국지라는 컨텐츠의 인기가 가장 좋은 동아시아 삼국인 한국, 중국(타이완 포함), 일본은 각기 최고인기 인물이 그 나라의 국민성향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다른데, 중국 : 이미 신격화된 "관우" 한국 : 전통의 문(文) 숭배 영향인지 "제갈량" 반면, 삼국지를 가장 상업적 컨텐츠로 잘 활용해낸 일본은 조운의 인기가 제일 좋다. . . . 아마 오랜시간 무(武)가 우선시되며, 또 그런 문화특성상 주군의 명이라면 유불리 떠나 묵묵히 수행하는 "사무라이(侍) 정신"이 모토인 점 등이 작용한 듯. 조운이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다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기 없진 않다. 두세번째쯤에서는 반드시 언급이 되는 역시 인기스타! 심지어 인기는 오히려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더 높은데, 이건 조운을 좋아하면 삼국지를 모른다거나... 그런 디스가 아니라, 아무래도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더 많은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조운 외의 다른 인물들을 최애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워낙 유명한 조운의 인기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잘 모르거나 안읽어본 이들도 알만한 급의 유명스타기에 그렇다는! (이는 조운 외의 인기인물들도 비슷한.. ,) . . . 조운은 위처럼 유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있지만 무엇보다 후한 말, 초창기 떠돌이시절의 유비를 따르기 시작, 후에 그 유비가 황제 되고 또 붕어한 이후까지의 긴~ 활약기간의 이유가 있는데, 정말 의외스럽게도 그런 긴 시간 활약하며 제국의 개국공신되고 또 그만큼 고위직에 오른것치고 의외로 기록이 많이 부실하다. 정사의 촉서 중 조운전과, 신뢰성은 좀 문제가 있지만 조운전의 부실함을 좀 채워주는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군시절 내가 쓴 편지의 양보다 적다....;;; 조운이 이토록 부실한 기록을 가졌음에도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실질적인 큰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바로바로.. 일본게임업체 "코에이(KOEI)" 의 "삼국지 시리즈" 덕이다. 삼국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책과 코믹스가 있었고... 중국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옛날부터 "경극"이라는 미디어(?)매체들 통해 후대인들이 삼국지(연의)를 즐겼다. 하지만 사서 통해 확고한 비쥬얼 이미징이 되어 있던 극소수의 몇몇 인물들 외에는 인물간 개성을 구분지을 표현은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1985년 일본의 코에이에서 창업자이자 삼국지 시리즈의 창조자이기도 한 삼국지덕후인 "에리카와 요이치"가 미칠듯한 덕력으로 자료들을 수집해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각 인물들의 프로필을 제작하여 이를 게임에 응용하게 되는데... 이 게임이 대박이 나게 되며 나름 고증도 괜찮았고 멋지게 잘 표현된 인물들 일러스트들도 같이 대박났다. . . . 이후 각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등 온갖 미디어물에서 다루는 삼국지의 인물묘사들은 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모티베이션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조운을 초절세미남으로 표현했고 시리즈 거듭될수록 나날이 더 미남이 되어가며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운 = 미남"의 공식이 공식화 되었다는... 이로서 사료와 연의 속의 과묵하고 충직한 무력깡패 이미지에 코에이가 미남 이미지를 데코레이션 해주며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ㅋ . . . 참고로 위에 언급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삼국지 시리즈 오프닝 초반에 이름 나오는 프로듀서인 "시부사와 코우"와 동일인물! 저작권 관리 등 사업적인 이유로 지은 이름인데 에리카와가 존경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이의 성과 코에이의 코를 따와서 지은 이름. 실제 조운도 미남이였는지에 대해 조운전은 무언급, 조운별전에서만 "8척의 위풍당찬 체구와 사내다운 용모" 라고 짧게 언급이 꼴랑...ㅎ 당시 도량형 기준 8척은 지금 기준으로도 큰 키인데, 정말 딱 자로 재서 저만큼의 키라는 것보다는 주로 당시의 작디 작던 일반인들보다 훌쩍 키 큰 이들을 일컬으며 쓰던 감탄적 관용어구로 주로 쓰인 표현. 그래서 사료에도 실제로 키가 크다며 제법 명확한 데이터가 있던 제갈량이나 정욱 등등도 있지만 대체로 삼국지에서 8척, 여덟 자 어쩌고 하는 표현이 붙는 이들은 대개 "덩치 좋다!!" 는 의미로 쓰였고 조운도 마찬가지다. 보아하니 그냥 덩치 좀 있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기보다 남자답게 생긴 호남형 외모 수준인 것을 코에이가 무슨 존잘러로 만들어 놨다...ㅋㅋㅋ 오히려 조운의 외모묘사는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더 사료에 입각했지 싶은ㅎ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제갈량과 함께, 주로 자로 불려지는 인물. 간혹 조운이란 이름은 모르고 조자룡으로만 아는 이들도 꽤 있다. . . . 많은 분들이 별 생각없이 넘겼을 수도 있지만.... 은근 논란이 되었던 건 조운의 "나이"다. 제목에서 보듯 그의 생년관련 공식기록은 없다. 긴 시간 활약하며 사망당시는 제법 고위직이였음에도 인물기록 중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생년기록이 없으며 정사 저자 진수조차 체크를 못한 듯 싶다. 삼국지연의내의 내용들만 보면 유비보다 8살이나 연상으로 나오지만, 이건 나관중이 이렇게 저렇게 조운을 띄우다보니 설정붕괴가 오며 생긴 착오로 보여지고... 대체로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학자들은 조운을 대략 170 ~ 171년생쯤으로 보고는 있다. 그런데 170년으로만 잡아도 만 60세도 채 못 채우고 사망.. 연의에서 그려지는 노익장의 이미지에는 살짝 아쉽다. 물론 당시 평균수명 짧은 탓이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이기도 했다지만 노인사망연령 역시 짧은 탓도 있던 터라, 단명으로는 절대 볼 수 없겠지만 오래 살았다 할 수도 없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하긴, 당시 기준에 50대 중후반 나이의 장수가 전장에서 현역생활 했다면 노장인건 맞긴 하지... 살짝쿵 이견들은 있지만 확실한건 "공손찬" 아래에서 사실상의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공손찬 휘하에서 객장, 즉 일종의 용병 생활하던 유비를 만난것도 맞지만, 소년장수 조운이 이미 당시의 하북에서 네임드 맹장이던 문추와 대결한건 허구다. . . . 연의에서처럼 실제로도 조운은 공손찬 휘하에서 별 다른 활약기회없이 지내다 공손찬과 원소 양측이 제대로 전쟁 치르기 전에 형의 장례를 이유로 낙향하며 사실상 공손찬측에서 '퇴사' 했다. (형이 있었어?ㅋㅋ) 많은 이가 조운을 못 알아본 공손찬의 무지함을 까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관점일뿐... 당시 시점에서 공손찬이 무지했다 볼 수는 없는게, 그때의 공손찬은 북방의 여러 소수민족들과의 전투를 이겨내며 명성을 키운 실전강자였다. 거칠고 사나운 그들을, 몸소 전장지휘하며 조져놨던 공손찬세력에는 당연히 병력들을 이끌던 여러 검증된 장수들이 있었을테고 공손찬이 무슨 스카우터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나타난 젊은 신입장수의 전투력을 알아보고 기회 주기보다는 기존의 전공 많고 검증된 이들 위주로 운용했을거다. 체격이나 그런거 딱보면 모르겠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평균신장 작던 그 시절이라도 공손찬처럼 성공한 큰 세력하의 장수들까지 다 작진 않았을거다. . . . 축구로 치면 몇 시즌 동안 리그우승을 거듭한 강팀이 있다 치고 그 팀에는 당연히 우승을 이끈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을텐데 이런 와중에 그들을 벤치에 앉히고 유망주에게 선뜻 기회 주긴 쉽지 않다. 게다가 스포츠는 큰 의미없는 게임이나 대승을 거둘 때 잠깐 투입해도 무리없겠지만 후한 말의 난세는 실전이라 괜히 검증안된 어설픈 지휘관을 투입했다 혹여 실책이라도 저지르면 그대로 수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다. 또 여러 번 말했듯 당시 전투는 "기세싸움"이라, 내리 이기고 또 전력이 유리해도 엄한 짓 한 번으로 역전패 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실전"이였다. 그리고 조운이 공손찬 휘하에 임관한 때는 공손찬이 북방을 어느 정도 다져놨고, 원소와는 제대로 붙기 전이라 더욱 전투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던터에, 원소와 붙기 전 낙향했다. 여러모로 공손찬이 모자라서 조운을 활용안했다 몰기는 공손찬도 억울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역시 당양 장판파에서 아두(유선)를 품고 조조의 대군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는 부분이다. . . . 이 부분을 보면 따르는 이도 없이 오로지 혼자... 심지어 애까지 품고 전장을 휘저으며 싸울 놈과 싸우고 죽일 놈은 죽이는 등 할 거 다하고 다니는 육아무예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훗날 유선 하는걸 보면 이는 조운 최고의 실책....;;;) 이 부분은 역시나 나관중이 조미료를 과도하게 쳤다. 물론, 저 극한상황 속에서 목숨바쳐 자기주군의 유일한 적자를 구해낸 자체는 맞는데... 저렇게 이리저리 죄 후비고 다닌 것은 아니였다. 상식적으로... 적군이 널린 상황 속에, 자기는 혼자. 주군의 아이를 품고 있는걸 떠나 설령 혼자라 해도 대놓고 '내가 조운인데 뭐 어쩌라고' 하며 다니는건 무예와 용맹을 떠나서 만용의 정점을 찍는 어리석음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부득불 적병과 마주쳐도 걔네들을 싹쓸고 가기보다 아주 최소한의 마찰만으로 어떻게던 돌파하거나 경우에 따라 제법 많은 인원이 다가오면 숨어있다가 다 지나가면 뒤도 안보고 달아남을 반복하며 빠져나갔다. . . . 나쁜소식은 당시 장판벌을 헤집던 조조군의 주력은 평상시 조조의 호위를 목적으로 양성된 최정예부대인 "호표기(虎豹騎)"였다는거고... 좋은(?)소식은 이들의 포커스는 유비를 쫓는것이였다는 것. 게다가 당시 호표기가 뉴스나 인터넷으로 조운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거나 유튜브로 조운의 활약상을 본건 아닐테니 설령 조운을 마주한들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조운의 꼴도 말이 아니였을터라 효표기 입장에서 조운을 마주한들, 그냥 난전 중 낙오된 적군의 기병쯤으로 봤을테니 굳이 무리하게 전원이 덤벼서 악착같이 쫓거나 막으려고는 안했을 것이다. . . . 여튼 실상은 좀 김새고 싱거운건 맞지만, 조운의 활약이 과장되었단거지 없는걸 지어낸건 아니고 아무리 위와 같은 상황인들 조운이 생사고락의 아수라를 혼자만의 실력으로 돌파해 나온건 팩트다. 저 때의 활약이 인상깊었는지, 이후부터 조운은 주로 유비의 신변을 보호하는 호위부대장을 맡거나 유비 부재시 유비의 집안질서를 잡거나 보호하는 보안대장 비슷한 포지션을 주로 맡게 된다. 유비 입장에서는 성격도 단호박에 무력도 빼어나고 전략기재가 빼어난건 아닐지라도 원리원칙에 상명하복 확실하며 당장의 전술적 판단은 괜찮았던 편인 조운이, 성격적으로 워낙 개성들이 강하다보니 장단점이 확실한 의제보다 그런쪽으론 더 믿음 갔을 것이다. . . . 다만, 원체 난놈이라 전투에도 수 차례 투입되긴 했어도 기본적 포지션이 유비와 그 가솔들의 신변보호를 우선하는 직할대장이다보니 여타 야전지휘관들보다 가시적인 공적 세울 기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느끼는 임팩트 대비 훗날 유비가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며 공신들의 공을 기려 직위를 하사때 조운은 우리가 알기로는 거의 동급 혹은 조운보다 아쉬운 이들이라 여겨지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보다 낮았고 위연, 이엄 등과 비슷하거나 살짝 앞서는 정도였다. 물론, 관직면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유비세력.. 나아가 촉한내에서 그는 직급을 떠나 아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였다. 현대군에서 주임원사는 엄연히 계급상 갓 임관한 어린 소위보다 낮음에도 위관급은 물론 영관급 고위 장교들도 절대 함부로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당장 서열 No.1 인 유비 제외 그 아래로 관우나 제갈량조차 조운에게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지시를 내릴지라도 대놓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조운의 실력이나 공적 및 짬밥만으로 가능한게 절대 아니였고 조운의 "인성" 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관우, 장비, 위연만 해도 촉한내에서 눈도 못 마주칠 거물들이였음에도 뒤에서는 그들을 싫어하거나 속으로 욕하는 이들이 적잖았고 결국 관우와 장비는 부하들의 하극상이 원인되어 남의 손에 목이 날아가고, 위연 역시 안티들에 둘러싸여 어그로만 끌고 살다 그 무수한 공을 세우고도 끝내 숙청이나 진배없는 최후를 맞은 걸 보면 조운은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 . . 무엇보다 상명하복에 철저한 "진짜 군인" 이였다. 다른걸 떠나 제갈량 영입 직후... 나이도 어리고 당장 크게 보여준 것도 없는 키만 큰 허연 선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 관우와 장비는 몹시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당시 넹~ 하고 따른건 조운뿐이였다. 이후에도 유비의 명이건, 제갈량의 명이건 조운은 자신의 위세 높아지고 공적이 쌓여가도 대부분 군말없이 이행했다. 그런 조운이 유비의 지시에 대해 그와는 다른 자기주관을 드러낸건 역사적으로 딱 두번이다. 하나는 익주 정복 직후 기존 촉의 고관대작들과 부호들의 집과 토지와 뽕나무밭을 모두 압류 후 공신들에 재분배 하자는 것을 민심안정우선을 이유로 반대한 것. 두번째는 유비가 초사이언이 될 정도로 개빡쳐서 온 나라를 들어 오나라를 불싸지르러 가겠다는걸 정세와 이치상 맞지 않다며 반대한 것. . . . 둘 모두 너무나 옳고 바른 반대였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는 정말 감히 반대하기가 거시기한... 사나이의 반대였다. 재산재분배의 경우, 가만히 있었으면 공이 적잖은 자신도 상당한 수혜자가 되며 유비의 그 발표 직후 모든 문무대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샴페인을 따는 분위기였고.. 오정벌의 경우, 의제 둘의 죽음과 오가 연관되어 인자함과 덕의 아이콘 유비가 생전 처음 눈까리가 뒤집혀 폭주를 하고 있는 현장이였다. 하지만 조운은 반대했다. 상명하복에 충실했지만 대의명분과 시국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조운이 단순히 커맨드대로만 움직이는 전투머신이 아니라는 뜻. 참고로 재산재분배건 당시에는 조운보다 서열이 위였던 제갈량, 장비, 수틀리면 상대 안가리고 막말 쏘는 법정, 조운 못지 않은 공적과 역시 근소하나마 윗서열 황충 등등 조운의 저 이뭐병소리를 지적하려면 지적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잔뜩 있었음에도 누구도 저 의견에 싫어요를 누른 이가 없음은 조운의 위세를 보여주는....! 평소에 원체 말수가 적었고 다른 이들과 별 다른 교분을 갖지 않았다. 조운의 사료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다른이들의 기록을 봐도 조운과 술 한잔 했다는, 조운과 사냥을 했다는, 조운과 식사를 했다는, 조운과 담화를 나눴다는, 조운과 차를 마셨다는, 조운과 바둑을 뒀다는, 조운이 집에 찾아왔거나, 조운의 집에 찾아갔다는 그 어느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조운이 그냥 아싸거나 독고다이였다기보다 과묵하지만 인성이 좋고 필요시에는 바른말을 했고, 맡은 소임에 충실한 직장인의 정석같은... 비록 노잼이긴 해도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 그런 묵직한 존재감의 인물이였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면 그 과묵함을 유지하며 미칠듯한 용맹을 자랑했으니, 별 기록 없다는 정사에도 조운이 매우 용맹했다는 기록이 강조되어 있다. 위에서 지시 떨어지면 형세가 불리하건, 병력이 적건 일단 묵묵히 들이대러 갔기에 붙는 기록이다.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코멘트 중 "자룡은 온몸이 담덩어리(子龍一身都是膽也)" 라는 멘트도 실존했던 멘트. 이릉대전 당시 유비에게 반대 걸었다 후방으로 빠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나가리의 개념이 아닌 조금이라도 본군의 형세가 불리할시 바로 지원 및 혹여 만에 하나라도 패퇴시 밀려올지 모를 오군을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강주를 맡긴 것이였고, 촉에서도 한중과 함께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요지여서 조운 직전은 장비가 맡았던 곳! . . . 유비가 백제성에서 유언 당시 제갈량과 함께 문무대관들 중 유이하게 유언을 직접 받은 신하로 연의에 나오는데, 하긴 유비가 떠돌던 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중 당시 생존해 있던 신하가 그 둘뿐이도 했고 관우, 장비, 간손미, 진도 다 죽고 미방은 배신때리고 당시 숨 쉬던 게 그 둘뿐....T-T . . . 헌데 사실 저것도 나관중이 감동을 더하고자... 독자의 눈물을 뽑고자 지어낸 신파! 사실 유비 사망 당시 신하들 중 유비의 유언을 직접 받든건 제갈량 포함 두 명이 맞는데, 또 한 명은 조운이 아닌 바로 "이엄".. ..;;;; 이후 조운은 촉한에서 군의 인사권을 관할하고 황실을 호위하는 정예부대를 지휘감독하는 등... 대외정벌 부문 제외한 내부적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직위에 오른다. 보통 저 역할을 하는게 대장군인데, 본래 대장군은 타국원정권도 갖지만 그 방면은 제갈량이 도맡았던 터라 조운은 대장군의 저 책무만 분담한다. 유비는 직위, 직책에 대해 상당히 프리하게 실리를 중시해서 운용해왔는데... 유비는 당시 후한에 없는 직위도 임시로 만들어 쓰거나 기존 직위의 롤을 임의적으로 변형 하는 등 포지션보다 롤에 더 포커스를 맞춰 내부운영을 했고 이는 제갈량도 일정부분 비슷하게 진행했다. 그래서 조운의 직위자체는 실상 공적과 재직기한 등 커리어 대비 그닥 높은편은 아니였으나 역할은 상당히 주요업무를 맡은 편이였다. 이후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남만정벌도 다니고... 북벌도 다니며 눈감는 날까지 쉼없이 말타고 싸우러 다닌다. 참고로 위와의 전투 중 한덕과 그 다섯인지, 여섯 아들을 죄다 썰어놔서 한씨집안 씨를 말린건 조운의 노익장을 버프해주기 위한 나관중의 픽션이며 저런 한 부자들 자체가 없던 인물이다... 실제로 연의 속에서 조운의 창 아래 비명횡사한 이들 일부가 가상의 인물들이다. . . . 여튼 조운은 쉼없는 전투로 굴려지다 1차 북벌 다음해인 229년에 사망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짧은 생은 아니지만 길게 살지도 못한데는 역시 촉의 영토를 구석구석 누비며 거듭 참전하며 쌓인 과로탓인듯 하다. 그도 그럴게 촉은 고질적인 인재부족문제로 조운 정도의 경력과 나이의 장수면 황도에서 머물며 주요사안결정과 천자알현업무가 주가 되어야 했으나 당장 승상이 최전선에 지휘관으로 나가는 상황이니 조운 성격에 당연히 본인도 쉬지 않고 따라 나갔을 것이다.... . . . 조운 사후 순평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는데 이 시호는 조운 생전, 촉에 귀순하며 평소 조운을 존경해 마지않던 강유가 지었는데, 강유는 조운을 공경하여 몇 차례 함께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권했으나 모두 뺀찌먹었다... 전형적인 군인 of the 군인 스타일이다. 맡은바 임무에 의문제기없이 유불리 떠나 최선을 다하며 정치적 개입도 일절 없이 사리사욕조차 없다. 늘 과묵하며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고 매사에 엄정한 일처리 위해 개인적 친분도 나누지 않았으며 역시 무엇보다 주위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실력자였다. 본인의 경력, 실력, 공적에 맞지 않는 포상이나 직위에 대해 일절 불평불만을 가진적이 없다. 자신의 직위와 처우가 높아져도 이를 토대로 과한 야욕은 커녕 직권남용이나 후배들에 대한 하대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흐트러짐 한 번 없이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냈다.., . . . 공직자, 군인으로서의 조운은 완벽 그자체다. 제갈량과는 또 다른 면에서 공직자로서의 완벽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 조운의 삶은 완전 개노잼이였을거 같다. 모르겠다... 난 주위에 저런 선배나 형, 상사가 있으면 분명 당연 존경하고 롤모델 삼긴 했겠지만 고민이나 걱정 있을 때 조언을 구하진 않을거 같다.ㅋㅋ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정부관료건, 군인이나 경찰이건, 국회의원이건, 공무원이건간에 공직자로서는 확실히 저런 사람이 필요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쉬운 처사에 불평불만이 없고 사리사욕 채우지 않았고 다른 고위직들과의 친분은 커녕, 말수도 없었던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조운을 아무도 쉽게 보거나 하지 못했다. 위나 오에는 있었겠지만 유비를 만나 따르고, 훗날 고관대작 되어 최후 맞기까지 최소한 내부에는 적이 없었다. 나는 조운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주위에, 사회에는 조운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일상에 바로 적용 가능한 상식을 알려주는 책
안녕하세요! 나만의 스마트한 독서 앱, 플라이북입니다! 여러분은 일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상식들을 어디서 얻으시나요? 알아두면 도움 되는 상식들을 모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번 플라이북의 추천 책은 일상에 바로 적용 가능한 상식을 알려주는 책 다섯 권입니다. 생활부터 과학, 역사, 자연, 사회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꼭 필요한 지식만을 선별한 지식백과 1분 생활 상식 자세히 보기 >> https://www.flybook.kr/book/139329 양을 의심하는 고객부터 어린이 고객까지 모든 클레임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꿀팁들 음식점 클레임 대응 꿀팁 자세히 보기 >> https://www.flybook.kr/book/139330 빌려준 돈 되찾는 방법부터 이혼, 상속 문제까지 일반인을 위한 사례중심의 생활법률 상식책 생활법률 상식사전 자세히 보기 >> https://www.flybook.kr/book/121389 신혼부부와 청춘들이 바로 적용 가능한 금융지식 최소 3년은 끼고 봐야 할 재테크 교과서 알아두면 정말 돈 되는 신혼부부 금융꿀팁 57 자세히 보기 >> https://www.flybook.kr/book/109558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과연 진짜일까? 99%가 모르는 상식의 놀라운 반전들 알아두면 쓸데 있는 유쾌한 상식사전 1 자세히 보기 >> https://www.flybook.kr/book/118967 책 증정 받으러 가기 >> https://goo.gl/HpqS2W
한국 기회의 땅
궈핑 화웨이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 작년 한국 제품 12조 샀다 SK텔레콤-KT 모두 화웨이에게 중요한 협력파트너, 기회 된다면 제품과 서비스 제공하고 싶어 궈핑 화웨이 순환 회장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중국 선전시에 위치한 본사에서 한국 미디어를 대상으로 기자간담회를 열고 화웨이가 한국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화웨이는 구매 부서에 한국 전담구매팀을 설치해 한국과의 거래를 확대하는데 힘쓰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의 무선 기지국 장비(LTE, 5G)는 현재 국내 이동통신3사 중 LG유플러스만 도입해 사용하고 있다. 궈핑 회장은 SK텔레콤과 KT 모두 화웨이의 중요한 한국 협력파트너로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고객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또한 화웨이는 업계에서 가장 좋은 사이버 보안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며 지난 30년 동안 화웨이에서는 단 한건의 악성 사이버 보안 사건도 없었다고 재차 밝혔다. 한편, 지난해 화웨이는 R&D(연구개발)에 약 150억 달러(한화 약 17조원)를 투자했다. 화웨이 사규에 따르면 영업 매출의 10% 이상을 R&D에 투자해야 한다. 회사가 소유한 모든 것은 지적자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화웨이의 업무는 크게 통신사(캐리어) 사업, 엔터프라이즈 사업, 컨슈머(스마트폰) 사업 등 총 세 가지로 구성돼 있다. 궈핑 회장은 “화웨이에 대한 미래 투자는 기술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세계 최고의 통신 장비업체가 되는 것과 유비쿼터스 커넥티비티를 잘하는 것이다. 화웨이가 가장 우수하고 경쟁력이 갖춘 제조사가 되겠다”며 “둘째, 디지털 및 지능형 영역에서 더 강력한 자금을 투입해 앞으로 각 산업에서 디지털화, 지능화, 클라우드화를 적용하도록 필요한 장비, 솔루션을 제공하겠다. 스마트 사회에서 모든 산업에서 ICT기술 선두주자가 돼 ICT기술로 모든 산업의 성공을 도울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게임업계, 덩치 커진 만큼 사회공헌에도 큰 손
커진 사회공헌 규모 '눈길' 덩치 커진 게임업계가 사회공헌에 여념이 없다. 업계 미래 인재를 육성하고 건전한 게임 문화를 확산하는 것을 넘어, 지역 사회 곳곳을 보듬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 재단을 설립한 3N(엔씨소프트.넷마블.넥슨)을 비롯해, 중견게임사 웹젠이 자회사 '웹젠드림'을 설립해 상생을 더하고 있다. 컴투스 또한 각종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있으며, 최근 산불피해 지역을 돕기 위해 성금을 전달한 스마일게이트.펄어비스.베스파 등도 눈에 띈다. 지난해 상반기 게임산업의 매출액은 약 6조 5874억 원, 수출액은 약 21억4321만 달러로 추정된다. 게임산업 종사자 또한 7만6000여명에 달한다. 산업 규모가 커진 만큼 업계의 책임 또한 커지고 있다. 3N, 재단 통한 사회공헌 활동 활발 가장 먼저 2012년 엔씨소프트가 창립 15주년을 맞아 엔씨문화재단을 만들었다. 소프트웨어 기업 답게 기술을 이용해 장애인 및 소외계층의 소통과 생활 편의를 돕는 것이 골자다. 엔씨문화재단은 보완대체의사소통(AAC)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으며, 소외계층 MIT 과학 특별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발달장애인이 참가하는 '스페셜올림픽'에선 한국 대표팀의 인터넷 부문 파트너로 지원하고 있다. 2013년부터 4회 대회 연속으로 국가대표팀의 개개인의 프로필과 포부가 담긴 스페셜올림픽 한국대표팀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대회 기간에는 아부다비 현지에서 대표팀의 활약을 촬영해 테마영상으로 제작한다. 지난해부턴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의 그림책을 제작, 배포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처음으로 출판된 작품은 조원희 작가의 '동구관찰'으로, 장애를 가진 소년 동구와 애완 고양이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다. 그밖에도 ▲범죄 피해자 지원 ▲KWMS-엔씨문화재단 젊은 여성수학자상 후원 등을 진행한 바 있다. 넷마블은 특수학교 내 ‘게임문화체험관’을 적극 운영해 나가고 있다. 12년째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7월 경기도 고양시 소재 한국경진학교에 32번째 체험관을 개관한 바 있다. 2009년부터 게임을 통해 장애학생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전국장애학생 e페스티벌’도 꾸준히 주최해 오고 있다. 가족 간의 소통을 지원하는 '게임소통교육'과 만 14~18세 청소년 대상으로 진로 결정에 도움을 주는 '게임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넥슨 또한 ▲2005년 시작한 첫 사회공헌 프로젝트 넥슨작은책방, ▲국내최초의 통합형 어린이 재활전문병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아시아 유일의 컴퓨터박물관 넥슨컴퓨터박물관 등 그동안 넥슨 컴퍼니가 진행해온 다양한 사회공헌 프로젝트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자회사까지 출범한 웹젠은 지난해 장애인 고용을 위해 자사가 전액을 출자하는 자회사 '웹젠드림'을 설립했다. 올해 3월부터는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이수한 발달장애인 1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사내카페 '꿈꾸는 숲'을 운영하는 등 임직원과 장애인의 상생을 추구하고 있다. 이외에도 웹젠은 2017년부터 매년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IT 및 소프트웨어 교육과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위해 분당판교청소년수련관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각각 기부금을 전달하고, 공동으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컴투스는 자사 주요 게임 콘텐츠를 연계해 게임 유저들과 함께 진행하는 글로벌 사회공헌 사업이 특징이다. 자사의 3D 리얼 낚시 게임 '낚시의 신'을 통해 저개발국가 식수 시설 개선 및 태양광 랜턴 후원 사업을, 모바일 야구 게임 '컴투스프로야구'를 통해 국내 유소년 야구단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자사 SNG(소셜네트워크게임) '타이니팜'을 통해 북극곰 보전을 위한 후원금을 세계자연기금에 전달했다. 이와 더불어 ▲중고등학생이 참여하는 ‘청소년 영상 캠프’를 매년 지속 후원 ▲대한철인 3종 협회 지원 ▲국립 발레단 후원 ▲아트토이컬쳐 전시 후원 ▲국립현대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한국해비타트의 이동식 임시 주택 보급 사업에 1억원을 우선 기부하기로 했다. 화재로 전소되거나 피해를 입은 기존 가옥에 대한 복구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보상금 확정 등에 시일이 소요된다. 이에 이재민들이 공동 거주하는 임시 대피소를 떠나 사생활이 보장 되는 임시 주택을 제공코자 하는 것이다. 펄어비스도 강원도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성금 1억 원을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펄어비스의 기부금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를 통해 산불로 피해를 입은 강원도 이재민의 구호 활동 및 피해 복구 지원 등에 사용될 예정이다. 베스파는 성금 1억 원에 사내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모은 성금 387만5500원을 더해 전국 재해 구호 협회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스페인 하숙 촬영지 포함한 산티아고 순례길 최단 코스, 12일코스
요즘 대세 예능 '스페인 하숙' 덕분에 참 많은 질문들을 받는다.  며칠 정도 걸으면 스페인 하숙 촬영한 곳을 갈 수 있느냐고... 어디서 부터 걸을지, 어디까지 걸을지에 대한 아우트라인도 없는 이런 생뚱맞은 질문이 잠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여행에도 트랜드라는 것이 있고, 방송 미디어가 그 트랜드를 선도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기에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궁금증을 야기시키는 그것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이 곳에 풀어보고자 한다. 스페인 하숙 촬영지 -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 스페인 하숙을 촬영한 장소는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많은 순례자들이 걷는 길인 프랑스길의 일부이며, 프랑스길의 시작점인 생장에서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대략 40일 정도의 일정으로 걷는다면, 29일~30일 정도에 도착하고, 반대로 목적지로부터는 약 10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다. 온화하고 습도 높은 날씨 덕분에 이 마을 주변에는 아름다운 초원과 숲, 그리고 포도밭이 그럼처럼 펼쳐진 곳이 많다. 작은 마을이지만, 오래된 가옥, 기념품 가게와 작은 카페들... 정겨운 건물들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리고 이 마을에 있는 13세기에 지어진 산티아고 성당(Iglesia de Santiago)의 용서의 문을 통과하면 병 들거나 순례길에 지쳐 더 이상 순례를 할 수 없는 순례자에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에서 받는 순례길 완주의 축복을 이 곳에서 대신 받을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너그러운 마을이다. 이 밖에도 이 마을에는 성 프란스시코 성당(Iglesia de San Francisco)을 비롯해서 아눈시아다 수도원 (Convento de la Anunciada), 산 니꼴라스 엘 레알 수도원(Convento San Nicolas el Real) 등 중세의 기품이 가득한 종교시설들이 다수 남아 있습니다. 그 중 산 니꼴라스 엘 레알 수도원이 바로 차승원, 유해진, 배정남... 한국의 세 남자가 알콩달콩 밥짓고 국 끓여 손님을 맞이하는 바로 그 곳이다. 스페인 하숙  숙소 - 니콜라스 알베르게 (Albergue Hospedería San Nicolás El Real) 스페인 하숙을 촬영한 숙소는 원래 오래된 수도원이다. 17~18세기에 지어진 건물로 방송에서도 그 고풍스러움이 드러난다. 실제로 알베르게로 운영되었던 곳이지만 방송에 보여지는 것 만큼 시설이 훌륭한 곳은 아니었다. 방송을 위한 약간의 리모델링이 주방과 객실에 더해진 듯 하고, 수도원이었던 만큼 객실도 훨씬 더 많이 운영 되었었다. 원래는 이 마을에서 그리 인기있는 알베르게는 아니었지만, 아마 앞으로는 스페인 하숙의 영향으로 적어도 한국인 순례자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일종의 '성지'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산티아고 순례길의 프랑스길(까미노 프란세스 / Camino Frances) 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지역은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하며 이 곳에서 출발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걸을 경우 까미노 프란세스를 '완주했다'고 표현하며, 이럴 경우 대략 40일 전후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 길은 다양한 산티아고 순례길 코스 중에서 약 70%의 순례자들이 선택하는 가장 인기있고, 대중적이고, 국제적으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전통이 오랜 길이다. 하지만, 현대의 바쁜 한국인에게 완주 코스란 40일 이상의 휴가가 가능한, 어쩌면 특별하게 허락된 일부의 사람들에게나 가능한 코스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순례길의 시작과 끝은 순전히 순례자인 내가 정하는 것이기에 적당한 스케줄로 순례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스페인 하숙에 등장하는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를 포함한다면 며칠 간의 일정으로 순례길 걷기가 가능할까? 기쁘게도 12일 코스로 투어가 가능하다. 비행기로 마드리드에 도착한 후, 기차편으로 폰페라다까지 이동하여 숙박, 이틀 째부터 순례를 시작하면 그 날 비야크랑카 델 비에르소에 도착할 수 있다.   차줌마(차승원)와 참바다씨(유해진) 그리고 귀여운 아저씨 배정남이 동분서주 열심히 찌개를 끓이고 가구를 만들고 장을 보던 그 동네에서 나 역시 하루를 묵으며 쉬어갈 수도 있다. 그 후로도 매일 약 20km씩 9일 간을 더 걸으면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다.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매일을 걷는 소탈한 즐거움과 호기심을 일으키는 TV 속 그 곳 풍경에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유쾌함을 12일이라는 길지 않은 여정으로 가능한 것! 오늘이라도 TV 속 그 곳을 찾아가는 여행을 준비해 보는 건 어떨까?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12일 코스] 폰페라다 -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트레킹 신나는 경험을 찾아보세요! 야나트립과 함께! 상담전화 : 02-715-6463 | 업무시간 : 평일 10:00 – 18:00 |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휴무
21년을 걸어온 리니지의 과거, 현재. 그리고 '리마스터'
지난 3월 27일 본 서버에 적용된 <리니지> 리마스터 업데이트는 21년 서비스를 맞이한 가운데 <리니지>가 겪은 가장 큰 변화이자 도전이다. 엔씨소프트(이하 엔씨)의 맏형이자 대들보 중 하나로 수십 년 넘게 존재감을 펼쳐 온 게임이기에 <리니지>의 변화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래픽부터 콘텐츠까지, 엔씨는 <리니지>  리마스터를 위해 수년 전부터 고민했고 본격적인 실행을 위해 기반을 다졌다. 더불어 게임 관련 각종 부가 기능까지 도입하며 혁신과 트렌드를 동시에 추구했다. <리니지>는  리마스터 업데이트를 통해 게임이 추구하는 가치, 그리고 20년간 함께한 유저의 재미와 감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새 부대에 담아냈다. PvP 중심의 전투 매커니즘, 그리고 그 속에서 유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샌드박스형 MMORPG라는 틀은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다가오는 20년을 맞이한다.  <리니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업데이트. <리니지> 리마스터는 어떤 계기로 진행됐으며, 어떤 노력을 거쳤을까? 또 리마스터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엔씨의 꿈은 무엇일까? / 디스이즈게임 정혁진 기자 # 21년째 서비스 중인 '리니지', 그들이 리마스터를 결정하게 된 계기 서두에서 언급했듯, <리니지>는 1998년부터 21년째 서비스 되고 있는 게임이다. 지금도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활발히 서비스 되고 있으며 수십년 동안 다양한 에피소드와 콘텐츠, 클래스가 추가되어 왔다. 여러 게임을 개발하고 또 서비스했지만, 엔씨는 모든 게임의 기술 혁신이 <리니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인게임 웹브라우저, 파워북, 아이템 시세 연동, 게임 전용 보이스챗 등 각종 기능이 <리니지>를 통해 처음 선보였다. 이는 김택진, 송재경 등 초기 멤버가 자체 엔진으로 개발한 완성도, 확장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파워북을 통한 아이템 시세부터 보이스 채팅 서비스 '엔씨톡'까지, 다양한 기술을 선보였다. 그러나, 시간을 거듭하면서 <리니지>는 점점 하드웨어적으로 한계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당시 모습이 오랜 시간 동안 <리니지>의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기는 했지만, 게임성, 그리고 유저의 니즈를 오롯이 담아내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됐다. 대표적으로 '그래픽'이 그렇다. 리마스터 전까지, <리니지> 그래픽은 2D 였기에 최초 3D로 개발한 다음 이를 2D로 다시 만들어 리터치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했다. 특징을 유지하면서 게임 세계를 넓혀가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방법도 점점 막바지에 다다르게 된 것. 엔씨는 "앞으로의 20년을 잘 해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또다른 계기는 바로 <리니지M>. 모바일 시대로 넘어 오면서 <리니지M>으로 인해 <리니지>의 저변이 넓어지면서 <리니지M>에서 <리니지>로 넘어오는 사례도 발생했다. 변화를 고민하던 시점에 같은 엔진을 썼던 게임이 '리니지' IP의 '게임성'을 그대로 구현한 것을 보며, <리니지> 역시 충분히 가능하겠다고 판단이 섰다.  리니지의 퀄리티는 어느덧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이는 충분한 준비과정 덕분에 가능했다. 17,000여 종의 아이템 종류, 사냥터에 등장하는지 확인되지도 않은 몬스터 데이터 등 1998년부터 게임을 운영하며 쌓인 수 많은 데이터를 정리하는 과정을 약 2016년부터 진행했다. 효율적인 운영을 하기 위함이었지만,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리마스터를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리니지M> 출시로 인해 개발실 인원이 스왑(swap)되는 상황도 우연한 계기로 작용했다. 같은 2016년에 여러 번 진행한 클래스케어도 한 몫 했다. 마법 아이템을 정리하면서 비효율적인 부분을 손봤다. 아이템도 마찬가지. 이듬해에는 사냥터 역시 리뉴얼했다. 몬스터에 대한 부분도 함께 정리했다. 약 2년 정도 꾸준히 데이터를 정리하는 시간을 거치다 보니, 이후 엔진에 대한 R&D 과정은 비교적 짧은 4개월 정도 소요됐다. 데이터 정리가 되어 있다 보니 다듬어야 할 영역이 명확하게 파악됐다.  엔씨는 <리니지>가 향후 20년을 준비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번쯤 '성장기'를 맞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는 오래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리마스터'라는 이름으로. # 리마스터의 목적, "리니지만의 감성을 오롯이 담아내는 것" 회사는 기간 동안 업데이트보다 리마스터를 위한 작업에 집중했다. 만약 이벤트나 업데이트 업무를 진행하려면 기존 버전과 리마스터 버전 각각에 맞게 따로 개발해야 하기 때문. 펫시스템이나 드래곤레이드도 당시 이런 이유로 잠시 중단했다. 엔진 R&D 완료로 인해 개발 후 게임에 적용시키는 시간과 위험 부담은 크게 줄어들었다. 유저가 원하는 것을 반영하기 위해 회사가 투입하는 업무량도 마찬가지. 스킬 개별 쿨타임을 위해서는 모든 것에 손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글로벌 쿨타임을 적용했던 것도 이제는 빠르게 수정할 수 있게 된 것. UI(유저 인터페이스)는 고민 끝에 다양함을 택했다. 처음 20주년 컨퍼런스 때 공개한 스크린샷 속 '모던 UI'를 공개하면서 넓은 화면을 제공하고 UX(유저 경험)나 각종 아이콘도 요즘 트렌드에 맞게 도입했다.  그러나 신규 유저가 단축키와 명령어로 된 기존 <리니지>의 UX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결국 기존 <리니지> 유저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는 UI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모던 UI와 기존 UI를 모두 지원하게 됐다. UX가 다른 UI 두 개를 보유한다는 것은 큰 선택이었지만 엔진 R&D를 완료한 상황에서 개발했기에 비교적 수월하게 작업됐다. 리마스터를 통해 새롭게 선보인 '모던 UI' 기존 <리니지> 유저가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클래식 UI'도 제공했다. 시스템, 하드웨어적인 점은 크게 문제가 안됐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외형적인 부분에서 얼마나 리니지의 게임성을 잘 담아내느냐'는 것이다. '리마스터' 업데이트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엔씨는 <리니지>를 리마스터하기 위해 '리니지만의 감성'을 유지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설정했다. 혁신에 가깝게 외형을 변화하거나 <리니지>의 성격을 띤 다른 모습의 게임이 아니라, '리니지를 다시 리니지'로, '보다 잘 보이는 리니지'로 만들고자 했다. 대중이 사용하는 그래픽 사양 역시 고려했다. 최초 엔씨는 지금의 리마스터 버전의 그래픽보다 더 고화질로 가는, 4K를 지원하는 방향도 고려했다. 하지만 모니터의 대중화, 4K 지원 시 게임의 용량, 그리고 그래픽카드를 판단해 1080p(1920x1080)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 엔씨가 지켜낸, 그리고 발전시킨 '리니지의 감성' 쉼없이 달려온 끝에 2018년 12월 27일, 리마스터 버전이 테스트 서버에 모습을 드러냈다. 엔씨는 1차 테스트는 새로운 엔진 적용에 따른 서버 부하를, 2차 테스트에는 리니지의 게임성을 잡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1차 테스트는 예상 했던 대로 크래시와 각종 렉이 발생하며 서버 과부하 현상이 발생했으나, 대부분 개선했다. 2차 테스트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기존 유저의 빠른 적응을 위해 클래식 UI를 추가로 지원했다. 그리고 전투에서 매우 중요한 타격 모션(칼질), 몬스터 피격, 그리고 이동을 손봤다. 엔씨는 GPU 모드와 CPU 모드 등 두 개의 모드로 리마스터 버전을 개발했다. 이는 각각 GPU, CPU로 그래픽을 처리하는 모드라고 보면 된다. <리니지>는 CPU로만 게임을 구동했기에 요즘 많은 게임이 사용하는 GPU 처리 방식과는 달랐고, 이에 두 모드로 개발망을 운용할 필요가 있었다. <리니지>의 타격감은 CPU 처리 방식으로 타격감, 이동을 구현했다(출처: 우주마켓 유저 유튜브) 각 모드의 처리 방식을 비교, 분석한 결과 엔씨는 <리니지>에서 중요한 전투 시 타격/피격 모션, 이동의 표현 방식이 CPU로 처리 해야 기존과 같은 표현 방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GPU로 처리할 경우 화질이 4배 이상 향상되고 처리속도도 높아지지만, GPU에서 타격감, 이동을 처리했을 때 미묘하게 기존과 달라 거부감이 들었던 것. 물론, 그렇다고 해서 리마스터 버전을 기존 <리니지>와 마찬가지로 CPU가 모든 것을 처리하게 하면 과부하가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엔씨는 CPU로 처리해야 하는 영역(전투 시 타격/피격 모션, 이동의 표현 방식)은 남기고 대신 그 외에 그래픽으로 표현해야 하는 나머지 영역은 모두 GPU에서 처리하는 분할 처리 방식을 택했다.  더불어 머리 위 체력 게이지가 <리니지>는 칼질을 할때 흔들리지만 리마스터 버전의 겨우 흔들리지 않는 현상도 발견했다. 이는 리마스터 버전의 캐릭터 UI 중심 축이 가슴에 있어 아무리 칼질을 해도 흔들리지 않았던 것. 기존 <리니지>를 살펴 보니 중심 축이 팔꿈치에 걸려있는 것을 찾았다. 엔씨는 그래픽이 달라진 만큼 중심축을 어깨 정도로 맞췄고, <리니지>와 같은 느낌의 흔들림을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3단 가속도 리마스터 버전에서 큰 변화를 거쳤다. 달리기는 <리니지M>에는 '드래곤의 진주'가 있지만 <리니지>는 랭커나 지배변반 아니면 할 수 없던 기능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용기 물약을 처음 먹었을 때 가격이 비싸 고민했지만 그 성능이 탁월했던 것처럼, 그때의 감성을 유지하면서 가격을 대폭 하락시켰다. 이는 내부에서 리마스터를 통해 화면도 넓어진 만큼, '3단 가속의 시대'로 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20년 전 <리니지>가 빠른 달리기와 위치 이동으로 스피디한 모습을 보여줬듯, 리마스터 버전도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 PSS, 새로운 환경 속에서 모두가 동등하게 게임을 하기 위한 엔씨의 정면돌파 <리니지>의 백미인 전투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거쳤지만, 이와 함께 엔씨가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숙제가 있었다. 바로 '사설 자동사냥 프로그램'이다.  회사는 2005년 말 자동사냥을 처음 목격한 이후 10년 이상 이를 막기 위해 여러 운영, 정책을 내놓았지만,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들이 주목한 것은 단순히 자동사냥을 돌려서 쉽게 게임머니를 습득한다는 것 보다, <리니지> 클라이언트를 강제로 조작해 사용하는 것을 큰 문제라고 판단했다. 즉, '불법 프로그램'인 것. 이들은 게임 내 밸런스를 조절해 과소모를 조장하는 프로그램을 현금으로 타 유저에게 판매했다. FTP(File Transfer Protocol) 서비스로 운영되며, 기본 프로그램과 사냥터마다 추가 비용을 받는 중복 과금 형태를 취해왔다. 다년간 불법 프로그램에 대해 제재, 분석하면서 엔씨는 모두가 동등하게, 그리고 게임 내 밸런스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식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주년 컨퍼런스때 선보인 PSS(Player Support System)을 선보였다. PSS는 사람이 손으로 하는 사냥을 자동이 맡는 대신, 자동사냥을 하기 위한 이동 방법부터 사냥 방식까지 모든 것을 설정을 해야 한다.  당시 20주년 컨퍼런스에서 공개한 PSS에 대해, 엔씨는 '정면돌파'라고 표현했다. 게임 밸런스를 해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바뀐 유저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게임을 서비스하기 위한 엔씨의 전략이다. 보다 효율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하면 물약을 덜 쓸지, 어떻게 이동하고 사냥법을 택할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으며 이로 인해 '고민하는 재미'를 새롭게 제공했다. 또 새로운 플레이 형태도 발생했다. PSS 도입 후 상위 사냥터에서 전투 빈도수가 늘어났는데,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구동되는 모습을 보다가 타 유저가 전투를 걸면 바로 수동으로 조작을 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또, 내 주변에 타 유저가 치는 몬스터와 치지 않는 몬스터가 같은 거리 혹은 특정 범위에 있을 때 치지 않는 몬스터를 우선순위에 둔다거나 기본적으로 '매너 플레이'를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상황에 따라 아이템을 먼저 집어야 할 지, 아니면 몬스터를 공격해야 할 지 다양한 상황을 자동 플레이로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각종 기능을 세팅할 수 있는 만큼, 친구 혹은 혈맹원 간 자신의 PSS 세팅 파일을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공식 사이트에서도 유저 간 PSS에 대한 정보 공유가 활발하다. PSS를 개발하면서, 엔씨는 경험치와 빠른 재화 소모가 염려되기 보다 상위 유저를 어느 정도 쫓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불법 프로그램, 대리 등 잘못된 출발이 아닌 동일한 출발 조건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 신규 서버의 경우 PSS 도입 후 최상위권과 중간층의 레벨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도 파악됐다. 성능 역시 불법 프로그램보다 뛰어나다. 불법 프로그램은 맵 데이터가 없어서 맵 여기저기를 부딪히면서 이동하지만, PSS는 그 지역에 유저가 떨어질 경우 맵 전체를 훑어 경로를 만들어 가며 데이터를 누적, 플레이를 하게 된다. 다른 유저가 몬스터를 잡고 있더라도 무시하고 공격을 가하는 경우도 잦다. PSS 도입으로 인해, 엔씨는 대부분의 육성 작업장이 문을 닫았다고 파악했다. 비인가 자동사냥 캐릭터가 거의 없어졌으며 변종 프로그램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 내 재화 소비, 거래도 활발해 경제 부분도 제법 활발하다. 엔씨는 PSS를 통해 데이터를 쌓을 수 있어서 내부적으로 6개월 정도 데이터를 쌓으면 전방위적으로 PSS를 다시 개선하는 작업을 거칠 예정이다. 향후 세밀해져야 하는 부분과 현 버전에서 제거해도 되는 부분을 함께 작업한다. 또, 위에서 언급한 관전을 하다가 빠르게 수동으로 전환하거나 완전하게 수동으로 이용하는 콘텐츠도 준비 중이다. # 짜릿한 혈전이 벌어질 월드 규모의 '공성전', 리마스터 통해 공개된 9번째 클래스 '검사' <리니지>의 대표 콘텐츠인 공성전은 이제 무대를 8개 서버가 통합해 벌이는 '월드 공성전'으로 스케일이 한 층 커졌다. 최대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102셀x142셀 규모의 맵이 준비됐으며 오브제가 재배치됐다. 성을 차지한 혈맹은 기존 대비 약 40배가 증가한 최대 36억 아데나를 얻을 수 있다. 엔씨는 겹치는 것을 포함해 한 화면에 약 590명 정도 들어갈 수 있으며, 공성전을 벌이며 발생하는 과부하는 거의 해결했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리마스터에 걸맞는 대규모 스케일을 경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9번째 신규 클래스 '검사'도 리마스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검사의 모티프는 과거 '다크엘프'가 처음 나왔을 때의 신선한 경험을 주자는 것이다. 엔씨는 검사가 '기사의 대항마'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 내 가장 강력한 클래스로, 방어기술을 무력화해 전투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 다만, 검사는 다크엘프처럼 순간적으로 막대한 딜을 쏟아 붓기 보다는 화끈한 플레이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검사는 대부분 컨트롤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는 스킬로 구성되어 있다. 엔씨는 검사가 보유한 다양한 스킬이 리마스터 업데이트로 인해 대부분 나올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스킬 3개가 있는데, ‘마스터 소드’는 상대의 방어기를 무시하고 순수 대미지를 적중시키는 셀프 버프다. 두 번째 ‘고스트 스탭’은 빠르게 5셀 이동 후 타격을 벌이는 기술이며, 세 번째 ‘팬텀’은 상대의 다리, 팔, 정신을 차례로 결박하는 제압기다. ‘팬텀’은 3가지로 연결된다. ‘팬텀’으로 큰 대미지와 확률적으로 이동 불가 발동을 걸면 이후 ‘팬텀 유니콘’으로 큰 대미지를 가하거나 확률적으로 정신을 결박해 아이템 사용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팬텀 피닉스’로 팔을 결박, 큰 대미지와 일정 확률로 공격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있다. 이와 더불어 엔씨는 지난 10월 17일부터 진행한 ‘클래스 케어’의 한계를 극복, 전투의 판도를 뒤집기 위한 다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판단, ‘히어로 스킬’을 추가한다. 8개 클래스에 모두 적용되며, 이중에는 마법사의 11서클 마법, 4대 정령 스킬을 뛰어넘는 요정의 새로운 스킬이 포함되어 있다.  # "리마스터, 유저와 함께 리니지다운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 엔씨는 리마스터 업데이트를 하면서, 21년 서비스를 하는 동안 조금씩 엇나갔거나 매칭되지 않았던 것을 다시 <리니지>다운 모습으로 찾아가는 과정을 거쳐 왔다고 말했다. 그 속에서 유저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며 함께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작년 열린 <리니지> 리마스터 컨퍼런스에서 김택진 대표는 '추억'이라는 단어로 <리니지>를 표현했다. 프로그래밍 언어부터 시스템 구조까지 모두 다듬었던 기억부터 각종 점검과 서버 다운으로 곤욕을 치렀던 때, 부슬비에 서버실에 물이 찰까봐 자신도 모르게 회사로 갔던 적까지. 과거 서비스를 하면서 겪은 일부 일들을 소개했다. 그런 <리니지>는 시간이 지나, 리마스터 업데이트를 통해 많은 변화를 거쳤다. 그 과정에서 게임이 주는 고유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엔씨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21년 전 처음 <리니지>를 접했을 때 뛰어난 그래픽, 빠른 전투로 남았던 추억은 시간이 지나 리마스터 업데이트로 보다 선명하게, 현실의 기준선에 맞춰 새 옷을 입었다. 향후 수 년이 지나고 새로운 IP가 많이 나오겠지만, 엔씨는 여전히 <리니지>가 엔씨의 대들보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다. 단순 상징성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존재감도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회사의 대표 게임으로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온 <리니지>는 이제 과거의 모습을 뒤로 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향후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리니지>는 새로운 추억, 가치를 만들기 위한 또 한 번의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미운사람 용서하기(feat: 나를 위해)
미운사람 용서하기(feat: 나를 위해) 살다보면 미운 사람들이 더러 있다. 씻을수 없는 큰 상처를 받는다. 착하던 아이가 키가 작고 약하다는 이유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다. 믿었던 지인으로부터 외면과 이간질을 당해서 조직에서 매장이 되기도 한다. 어린시절 가정학대나 폭력으로 인해서 평생 가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마음다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심한 배신감과 모멸감을 경험하곤 한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그 후로 친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살다보면 별의별 일이 다 발생한다. 그러면 미워진다. 복수하고 싶어진다.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아오를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통하고 화가 날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나 그녀를 용서해줘야 한다. 내가 왜? 나는 피해자인데!! 나만 이렇게 피해보고 참고 살아야하나요? 안돼요! 죽어도 용서할 수 없어요. 그 인간 때문에 제 삶이 망가졌어요. ㅠㅠ 왜 저한테만 용서하라고 하나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용서를 해줘야 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대를 위해서이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그대의 무의식에 아주 무서운 자기최면을 거는 것과 같다. 우리는 상상의 동물이다. 상상하는대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자나 깨나 그 사람을 상상하게 된다. 그것은 강력한 이미지가 되어버려서 어느순간 그 이미지가 나의 것이 되어버린다. ㅠㅠ 그토록 미워했던 그 사람이 당신의 소중한 뇌와 가슴속에 주인처럼 자리잡는 것과 같다. 미워하면 닮는다. 괴물과 싸우다가 내가 괴물이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미움의 감정을 갖고 있으면 그 순간 미움의 씨앗이 우리의 심장에 떨어진다. 미움은 자양분이 되어서 커다란 열매를 맺게 된다. 미워하는 사람의 나쁜 모습이 내 심장에서 다시 태어나는 끔찍함을 겪어야 한다. 소름끼치고 미치도록 화가 나는 일이 아닐수 없다. 선함을 추구하고자 했던 심장이 어느순간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악의 화신처럼 변해 버린다. 자신도 모른체 말이다. 내가 그렇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피해자가 되어서 그 사람을 미워한다. 나에게 상처준 그나 그녀를 매일 미워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중에는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꽤 많다. 나 또한 그 나쁜X와 똑같은 자가 되어버린다. ㅠㅠ 왜 그럴까? 레몬을 상상하면 입속에 침이 고인다. 작은 상상이 몸을 변화시킨다.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으로 그리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입가에 미소가 가득찬다. 이와달리 미워하는 사람을 자꾸 되뇌이면 가슴이 불안해지고 숨막히듯 고통스럽다. 의도하지는 않겠겠지만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그 미운 사람을 초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당신의 몸은 두드러기가 나듯 격렬하게 괴로워한다. 그러나 쉽사리 떨쳐보내지 못하고 고통만 받을뿐이다. 결국 제2, 제3의 피해자는 바로 그대 자신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를 그만두고 멈춰야 한다. 복수가 아니라면 그대는 단 한가지를 선택해야 한다. 바로 용서이다. 아니 놓아주는 것이다. 미운 사람을 용서해주는 것은 당신이 바보 멍청이라서 그런것이 아니라, 자신을 진정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큰 마음을 낸 것이라 할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단순하다. 내 가슴속에 미운 사람을 가득 담아버리면 그 안에 좋은 사람을 담을수가 없다. 우리의 뇌와 가슴은 잡동사니와 같은 나쁜 인간을 담고 살만큼 한가하지 않다. 아무것이나 담는 쓰레기통이 되어서는 안된다. 빨리 더러운 것들은 분리수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마음은 서서히 쓰레기통이 된다. 왜냐하면 쓰레기와 같은 나쁜 사람을 내가 여전히 가슴속에 품고 살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내 삶은 피폐해지고 괴로워진다. 내가 아무리 피해자라고 하소연을 한다한들 그것을 이해해줄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그 가해자를 당장 찾아가서 복수할 명분이나 힘이 있다면 용서를 선택하라. 이제 잘못된 길을 멈추고 그대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혹시 여전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나를 위해서 일단 한 사람이라도 용서해주고 미운 사람을 마음속에서 내보내주자. 그러면 우리의 가슴은 앓던 이가 빠진것처럼 시원해질 것이고 새로운 이가 자라날 것이다. 그 빠진 자리에 소중한 사람들을 채우면 된다. 그것이 나를 위한 지혜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미운 사람은 용서해주는 것은 철저하게 나를 위한 멋진 선택임을 꼭 명심합시다. 오늘부터 분리수거 ^^* 한국 최면치유 연구소장 김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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