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2018. 5. 25.)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하였다. 우리 변호인단은 조사보고서의 내용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재판진행과정에서 경험으로 느꼈던 의구심이 대법원의 문서로 확인된 순간, 철저한 독립기관으로 헌법이 정하고 있는 ‘법원’이 존재했던 것인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사보고서의 내용에 따르면, 2015. 7.경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면담할 때 사용하기 위하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작성했다는 ‘현안 관련 말씀자료(대외비)’에는, ‘과거 왜곡의 광정’이라는 목차 아래 “사법부는 그동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해왔음”이라고 기술하면서, ‘자유민주주의 수호’ 항목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에 단호히 대처 → 혼돈·경시되어온 국가관의 바른 정립 노력”의 첫 번째 사례로 '이석기 전 의원 사건'을 들고 있다(‘내란선동죄로 중형을 선고’하였다는 부분은 굵은 글씨와 밑줄까지 표시되어 있다).
또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5. 11. 19.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제목의 문건에, 그 당시 양승태 전 대법원이 일방적으로 추진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에 '압박카드'로 "그 동안 사법부가 VIP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 온 사례를 상세히 설명"한다고 되어 있고, 협조사례 중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사회적 안전을 고려한 판결"로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등 사건이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1심과 2심 총 65회에 걸친 재판기일과 3심 서면공방기간 동안 재판부를 신뢰하고 합당한 판결을 기대하며 법정에서 치열하게 다투었던 혼신의 노력이 이미 결과가 정해진 상태에서 벌인 무의미한 헛수고에 불과했던 것이다. 법원이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법관이 오직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는 당연한 믿음을 가졌던 법조인으로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변호인들이 아무리 정당한 주장을 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제출해도 법관들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법원행정처가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시 아래 박근혜 권력의 의도에 맹종하여 그 별동대로서 재판에 간섭하는 불법적 권한행사를 자행했다면 이미 결론은 나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변호인들이 의구심을 갖게 했던 대표적인 정황은 아래와 같다(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 주범이라고 지목된 이석기 전 의원의 주민등록상 주거지는 서초구 사당동이고, 내란음모·선동을 했다고 하는 장소도 서울에 있는 마리스타교육수사회 강당이었으며,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하여 이미 별건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기소가 된 사건이 있었음에도 굳이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되었다.
둘째, 1심 재판부였던 수원지법 제12부 형사부 재판장[김정운(연수원24기)]은 2013. 10. 22. 제2회 공판준비기일에서 “피고인들이 반국가단체조직이나 가입 등 관련된 범죄로 현재 기소된 것은 아니므로 RO와 관련된 기술 중에 RO가 반국가단체인지 여부를 떠나서 RO의 조직에 가입했는지 또는 조직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공판준비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취지의 소송지휘를 하였음에도, 2014. 2. 17. 판결에서는 국정원·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북한 대남혁명 전략을 추종하는 지하혁명조직 'RO'의 실체'를 전제로 내란음모죄를 인정하였다.
셋째, 항소심은 재판부 배당과 구성이 매우 이례적이었다. 재판장[이민걸(연수원17기)]은 2007.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 2009. 법원행정처 사법등기국장 등을 역임한 사람이고 2011. 11.부터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을 겸임하고 있었는데, 2014. 2. 서울고등법원 제9형사부 재판장으로 발령이 되어 내란음모등 사건의 항소심 재판장을 맡았고, 선고 이후인 2015. 8. 기획조정실장으로 법원행정처에 복귀하였다. 항소심은 내란음모는 무죄로 판단하면서도 내란선동은 유죄로 인정하여 이석기 전 의원에게 징역 9년형을 선고하였다. 상고심(대법원)에서 양형을 다툴 수 있는 10년형에 미치지 않는 최고 양형을 선고한 것이다.
이 모든 정황들이 이번 조사보고서에 기술되어 있는 것처럼 “국가적·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 등에서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 결과인 셈이다. 그 결과 내란음모등 사건의 피고인들은 중형을 선고받았고, 이석기 전 의원과 김홍열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은 구금된지 5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 지금도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며, 피고인들의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피눈물을 흘리며 거리에서 석방을 호소하고 있다.
진보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현직 국회의원이 포함되어 있고, 그 외의 다른 피고인들 전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했던 정당의 당원들이기에 가장 정치적일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법원은 독립기관의 지위에서 공정하게 재판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피고인들과 정치적으로 반대진영에 있는 박근혜 정권의 원활한 국정운영에 이바지하기 위해 대법원은 권한을 남용하여 재판에 개입했던 사실의 일단이 밝혀진 것이다. 이에 변호인단은 내란음모등 사건의 확정판결이 적법한 효력이 있는가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하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고소 및 재심청구 등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모든 수단들을 당사자들과 검토하여 제기할 것이다.
이러한 사법농단 행위를 시정하는 첫 조치는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는 이석기 전 의원, 김홍열 전 위원장에 대한 즉각 석방이 되어야 한다. 이들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행위의 피해자들이다. 공정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헌법과 법률에 정한 법관의 독립성이 침해된 상황에서 판결이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인 수형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상태는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국가가 지금 바로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정조치는 이들에 대한 ‘즉각 석방’이다.
내란음모등조작사건 공동변호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