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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차에 오너 이름 붙인 걸 후회한다”
... <사진= 얼굴 사진은 혼다차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 ... 각 기업의 브랜드에는 저마다의 특별함이 숨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 트레이너 겸 컨설턴트인 스캇 데밍(Scott Deming)은 이렇게 말한다. “가치와 필요를 만들어내는 것이 브랜드의 역할이다. ‘특별함’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하는 단어다. 특별함은 브랜드를 고객에게 각인시켜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긍정적 알파 컨슈머를 만드는 유니크 브랜딩’ 인용) 일본 제조업의 최선봉에는 자동차 메이커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 기업들의 브랜드는 어떤 ‘특별함’을 담고 있을까. ‘일본 브랜드 네이밍’ 이야기 4회 자동차다. (1회 카레, 2회 커피, 3회 스포츠용품) 자동차 기업으로 가장 먼저 혼다를 택했다.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에서 회사 이름 따와 혼다자동차는 글자 그대로 창업자의 이름에서 브랜드명을 땄다. 혼다차를 설립한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郎:1906~1991)는 대장장이의 아들이다. 초등학교만 나온 그는 자동차 수리 전문점에 이어 동해정기(東海精機)라는 회사를 만들어 피스톤링 제조를 시작했다. 도요타에 물품을 납품하고 자본도 제공 받았다. 소이치로는 전쟁 후 회사를 도요타에 매각하고 45만 엔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 밑천으로 1948년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혼다기연공업(本田技研工業)을 설립했다.(‘혼다, 꿈의 이력서 좋아하는 일에 미쳐라’ 인용/ 혼다 소이치로 지음, 이수진 옮김, 부표 출판) 자동차 제조로 보면, 소이치로는 도요타 보다 한참 뒤늦게 출발한 셈이다. 회사 이름에 혼다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그의 생각은 과연 어땠을까. 뜻밖에도 그는 혼다라는 브랜드명을 후회했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일까. ‘혁신의 천재 혼다 vs 경영의 신 마쓰시타, 경영의 맞수’ (닛케이벤처 엮음, 권혁기 옮김, 비즈니스북스)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소이치로는 회사명인 ‘혼다기연공업’이 이류 이름이라고 죽을 때까지 후회했다. 공적인 존재라는 기업에 오너 개인의 이름을 달았다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생각한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혼다의 주력 공장과 서킷(경주용 도로)이 있는 미에현 스즈카시(鈴鹿市)를 혼다시(本田市)로 명칭을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의 이름을 딴 도요타시(豊田市)처럼 말이다. 소이치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는 “농담하지 말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회사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세습에도 엄격했다.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는커녕 입사도 시키지 않았다. 그의 장남 히로토시(博俊)는 경주용 자동차 엔진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어 운영했다. 그는 훗날 “유명한 사람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은 우연한 일이고,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아버지는 자식에게 ‘제왕학’(帝王學)을 배우게 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혁신의 천재 혼다 vs 경영의 신 마쓰시타, 경영의 맞수’ 인용) 소이치로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65세(1973년)에 용퇴했다. 회장이나 명예회장이라는 직함도 마다했다. 심지어 창업 이래 14년간 자신을 도와주던 동생(벤지로‧당시 상무)을 용퇴 11년 전인 1962년, 일찌감치 해임해 버렸다. ‘가족회사 탈피’라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다. "혼다차에 오너 이름 붙인 걸 후회한다" 그럼, 그의 후계자는 누가 됐을까. 7명의 후보 중에서 45세의 카와시마 키요시(河島清好)라는 인물을 발탁했다. 이후 사장 계보는 구메 타다시(久米是志) → 카와모토 노부히코(川本信彦) → 요시노 히로유키(吉野浩行) →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 → 이토 다카노부(伊東孝紳)에 이어 현 사장인 하치고 다카히로(八郷隆弘)로 이어진다. 이중에 창업자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다. 모두 전문 경영인들이다. 혼다가 위기에 처할 때는 전임 사장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어드바이스를 한다. 창업가(家) 사라졌지만, 혼다가 굳건하게 살아있는 이유다. 소이치로가 세상을 떠난 지(1991년) 오래 됐지만, 지금도 회자되는 얘기가 하나 있다. 그의 장례식이다. 창업주가 사망하면 성대한 장례를 치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소이치로는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게 했다. 생전 소이치로는 유언 대신에 “사장(社葬)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회사장을 하면 교통체증이 일어나 사회에 폐가 된다. 그런 일을 자동차 회사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원들은 소이치로가 생전에 아끼던 레이싱머신을 장식하여 고인과의 이별을 대신했다. 그후로도 법요에는 회사가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도요타시 1번지’ 인용/ 아사히신문 특별취재반 저, 최현숙 옮김, 네모북스) “교통 체증 생기니 회사장으로 하지 마라” 소이치로와 친분이 깊었던 소니 공동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는 그의 장례식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장례식도 빈소도 마다하셨다. 혼다씨는 이 세상에 많은 것을 남기셨지만, 장례식은 혼다씨에게 가장 최후로 감동을 받게 된 대사건이다>(‘혁신의 천재 혼다 vs 경영의 신 마쓰시타, 경영의 맞수’ 인용) 도요타나 닛산 보다 훨씬 늦은 전후(戰後)에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일본인으로 가장 먼저 입성(1989년)한 건 혼다 소이치로 그였다. 그런 그는 2000년 니혼게이자이가 실시한 ‘20세기 일본의 경제인’ 인기 랭킹 조사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혼다차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것을 후회한다는 혼다 소이치로. 그런 점에서 혼다 브랜드는 더 ‘특별함’을 담고 있는 건 아닐까. 그가 일본인들에게 ‘더 특별히’ 존경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3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캠핑카 TOP 10
캠핑족들이 늘어나면서 단순한 캠핑장비의 가격들도 천차만별 어마어마 한데요. 아예 캠핑카를 직접 만들어 사용하시는 분들부터 구매하시는 분들 대여하시는 분들 다양하게 많이 존재합니다. 이런 캠핑카의 퀄리티를 상상초월하게 제작해서 만든 럭셔리여행버스 다양한 시스템,설정,디자인으로 돈 있는 부자들의 캠핑을 위해 만든 캠핑카를 소개합니다 10. Entegra Coach Cornerstone 45DLQ - 5억 5,000만원 화려하고, 다양한 요소를 가진 가장 넓은 버스중 하나 입니다. 사운드, 디자인 등의 고급 시스템으로 여행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캠핑카 입니다. 9. Country Coach Magna 630 -5억 8,580만원 ALO 600마력의 엔진으로 산악지형에 적합할 정도로 좋습니다. 퀸침대와 엔틱한 인테리어의 캠핑카 8. UNICAT Amerigo International - 5억 9,200만원 탐사 차량으로 우리가 아는 캠핑카의 모습과 가장 유사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특수한 상황에 처한 경우, 물의 오염을 제거하는 워터메이커를 가지고 있어 더러운 물도 깨끗하게 사용 할 수 있습니다. 7. Monaco Dynasty 45P - 6억 9,323만원 RV업계 선두주자인 모나코에서 만든 제품. 소유자의 취향에 따라 커스트 마이징을 할 수 있습니다. 바닥은 도자기타일, 킹사이즈침대 캐비닛 등이 있습니다. 6. Newmar King Aire - 11억 337만원 클래스 A 모터코치와 600마력의 커민스 ISX 터보 디젤 엔틴을 사용. 전력제어와 구동조향시스템, 그레이트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사용하고 대형욕실이 있습니다. 5. Country Coach Prevost - 11억 8,350만원 스테인리스 스틸커버가 있는 캠핑카 울퉁불퉁한 지형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도시와 마을 사이를 여행하기에 적합한 캠핑카 4. Foretravel IH-45 Luxury Motor Coac - 15억 4,000만원 2만kw 발생기, 4개의 지붕 A/C 유닛 포함 기능, 품질, 모두의 면에서 최고인 차량. 외부,내부 소음제거를 위한 설계등으로 만족할만한 캠핑카 입니다 3. Prevost H3-45 VIP - 18억 9,360만원 12피트 5인치의 가장 높은 오두막 높이를 가지고, 운전자와 승객 모두에게 멋진 전망을 제공 합니다 정밀 성형 섬유로 가볍지만 강력한 소재를 사용하였고, 내부 인테리어도 현대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2. Featherlite Vantare Platinum Plus - 29억 5,875만원 이탈리아 레자가죽, 대리석계단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 엔틱한 청동 등 값비싼 디자인물건들로 이루어진 인테리어 AVIC N-2 GPS시스템으로 실시간 교통상황 날씨 경고 알림들을 알 수 있고, 스포츠카 정도는 차량 내부에 파킹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엄청난 캠핑카 입니다. 1. Marchi Mobile EleMMent Palazzo - 35억5,050만원 지금까지의 캠핑카도 어마어마 했는데, 이 차는 꿈같은 차량이네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캠핑 차량 입니다. 오토바이, 항공, 요트의 기능을 결합한 최고의 차량입니다. 나무바닥과 대리석카운터를 갖추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어, 석유부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차량 입니다.
차 안에 반드시 둬야 하는 비상물품 10가지
교통사고, 자연재해, 테러, 인재 등등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엔 예측할 수 없는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유비무환이라고 하죠? 언제 발생할 지 모르는 비상상황에 대비해 차 안에 꼭! 준비해둬야 할 10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영화 ‘터널’은 하정우가 운전 중 무너져 내린 터널에 갇혀 구조되는 동안의 겪는 에피소드와 사회적 문제를 그린 영화다. 영화 초반, 차에 실려있던 생수 2병은 그의 생존에 큰 역할을 좌우했다. 이렇듯, 우리는 자동차를 운행하면서 많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고장이 나기도 하며, 교통사고도 일어날 수 있으며, 때론 차에서 밤을 지새울 일도 벌어진다. 이처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차 안에 챙겨두면 좋을 물건 10가지를 정리했다. 스페어타이어 or 타이어 수리 키트 트렁크 하단을 보면 스페어타이어, 혹은 타이어 수리 키트가 담겨있다. 자신의 차에 스페어타이어가 있다면 반 년에 한 번 정도는 공기압을 체크하는 것이 좋다. 타이어 수리 키트를 한번이라도 사용한 경우라면 실란트의 양을 체크해 두어야 한다. 안전 삼각대 최근 꾸준히 강조되고 있는 2차 사고. 도로 위에 멈춰있는 차는 또 다른 사고를 유발하므로 자신은 물론,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다. 기본으로 제공되기도 하지만 없는 경우가 대부분. 안전 삼각대는 가까운 대형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차에 두기 전에 한 번씩 조립해 보면 응급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안전 조끼 야간에는 시야 확보가 쉽지 않아 비상 상황이 일어나면 2차 사고에 노출되기 더욱 쉽다. 자동차가 운행 중인 도로를 보행하지 않는 것이 최우선이며,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형광색의 눈에 잘 띄는 비상 조끼를 입어 자신의 위치를 알려야 한다. 안전 경광봉 고속도로, 자동차 전용도로  등을 제외한 이면도로, 골목길에서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삼각대로 위험을 알린 후 다른 운전자들이 안전히 우회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좋다. 최근에는 경광봉을 세우거나 차에 부착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이 있다. 단, 2차 사고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도로 밖에 안전히 대피해 있어야 한다. 차량용 소화기 국민안전처는 2021년까지 기존 7인승뿐만 아니라 5인승 이상의 모든 자동차에 차량용 소화기를 비치해야한다고 발표했다. 가스나 액체로 된 차량용 소화기가 별도로 나오는데 자동차 용품점, 대형마트, 인터넷으로 살 수 있으며, 차량용 소화기는 분말소화기(ABC), 하론 소화기, 이산화탄소 소화기 등의 다양한 형태가 있다. 구급상자 운행 중 발생할 수 있는 구급 환자를 위해 필요하다. 거창한 물품들은 필요 없으며, 긴급구조가 출동하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붕대, 거즈, 가위, 소독약, 반창고, 탈지면, 테이프 정도면 충분하다. 추가로 두통약 등의 진통제도 함께 챙겨두면 요긴히 사용할 수 있다. 손전등 손전등은 비상 상황이 아니어도 다양하게 쓸 일이 많다. 물건 찾을 때도 용이하며, 호신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비상 상황에서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데 유용하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플래시 라이트를 많이 사용하지만 별도로 반드시 하나 챙겨두자. 위급한 상황이 일어나면 스마트폰은 플래시 말고도 분명,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담요 & 생수 영하의 날씨인 겨울철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동사사고가 발생한다. 교통사고로 부상자가 발생하면 평소보다 급격하게 체온이 떨어지는 상황도 많다. 한 사람이 충분히 덮을 정도의 큼직한 담요를 비치해 두면 좋다. 물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므로 2L 큰 병 하나 정도는 트렁크에 실어두자. 점퍼 케이블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겨울철에는 자동차 배터리도 100%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간혹, 교체 시기가 되지 않아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평소 주변인들에게 잘 보였다면 점퍼 케이블을 이용해 간단히 시동을 걸 수 있다. 단, 시동이 걸린 후에도 반드시 정비소에 방문해 점검을 받아야 한다. 워셔액 워셔액이 떨어져 고생해 본 운전자들은 반드시 여유분을 챙겨 다닐 정도로 반드시 챙겨야 하는 물품이다. 차에 여분의 물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 100m에 한 번 씩 정차해 앞 유리를 닦으며 목적지까지 가야하는 불편함을 겪지 않으려면, 반드시 챙겨두자. 최근에는 인체에 덜 해로운 에탄올 워셔액이 대세다. 글. 엔카매거진 고석연 기자 (원문보기)
타이어 회사 굿이어(Goodyear) 탄생 뒷이야기
... ... <만약 타이어가 없었다면?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자동차는 볼품없는 마차에 지나지 않았을 겁니다. 자동차 탄생에 필수적이었던 타이어 발명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아래는 일본 네이밍 이야기 4회 자동차편의 관련 기사입니다.> 로버트 톰슨-존 던롭 공기압 타이어 발명 스코틀랜드 발명가 로버트 톰슨(Robert William Thomson)이 공기압 타이어를 발명한 건 1845년이다. 자동차 명예의 전당(automotivehalloffame) 자료에 따르면, 가죽으로 둘러싸인 톰슨의 고무튜브는 조악했고 이내 잊혀졌다(but his invention was rather crude–a rubber tube wrapped in leather–and was soon forgotten) 그로부터 공기압 타이어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시 나오기 까지는 43년이 걸렸다. 우연한 순간에 발명이 이루어졌다. 자동차 명예의 전당은 “1887년 스코틀랜드의 수의사 존 던롭 (John Dunlop)은 아홉 살 짜리 아들 조니가 단단한 고무 바퀴가 달린 세발 자전거를 타며 애를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In 1887, John Dunlop, a practicing veterinary surgeon, watched as his nine year old son Johnny struggled with his tricycle mounted with solid rubber wheels)고 했다. 40년 후 ‘굿이어 타이어 앤 러버 컴퍼니’ 설립 공기압 타이어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이 무렵 미국에서는 유명한 타이어 회사가 하나 설립됐다. 굿이어 타이어 앤 러버 컴퍼니(Goodyear Tire and Rubber Company)다. 회사 이름에 굿이어(Goodyear)라는 이름이 붙여진 과정은 흥미롭다.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Interesting Engineering.com)이라는 글로벌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가황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 The Father of Vulcanization)라는 코너가 있다. 영어 불카니제이션(Vulcanization)은 고무에 황을 넣어 강도와 탄성을 증가시키는 가황(加黃)을 말한다. 이 단어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불칸(Vulcan)에서 따왔다. 그럼, 가황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는 누굴까. 미국인 발명가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1800~1860)의 본업은 철물점 운영이었다. 그는 30대 이후에 여러 제품에 고무를 사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의 놀라운 고무 실험이 시작된 건 1834년이다.(His groundbreaking work on rubber would begin with his experimentation in 1834) 우연한 실험에서 더 단단하고 강도 높은 고무 발견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은 “그 5년 후 1839년 우연히 가황의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5 years later he would accidentally discover the process known as vulcanization)고 했다. 어느 날 찰스 굿이어는 인도 고무와 황을 섞는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혼합물을 뜨거운 스토브 위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혼합물이 녹기는커녕 더 강도 높고 단단한 물질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견고한 타이어 탄생 순간이었다.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은 “대단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찰스 굿이어는 1844년까지 가황고무 특허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Despite the significance of his discovery, Goodyear would struggle to patent vulcanized rubber until 1844)고 설명했다. 특허 공방전뿐만 아니라 찰스 굿이어는 엄청난 부채와 감옥 수감, 자녀들의 잇단 죽음이 겹치면서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는 1860년 7월 19일 무일푼으로 죽었다. 실제로 많은 빚을 남겼다. 찰스 굿이어 기리는 뜻에서 회사 이름 지어 하지만 가황법을 발견, 고무 산업 개척의 길을 연 찰스 굿이어의 업적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사망 40년 후인 1898년, 미국 발명가이자 기업인인 프랭크 세이벌링(Frank Seiberling: 1859~1955)은 굿이어 타이어 앤 러버 컴퍼니(Goodyear Tire and Rubber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은 “창업자 프랭크 세이벌링은 찰스 굿이어를 기리는 뜻에서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이 매체는 “이름이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찰스 굿이어 자신도 그 가족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Apart from his namesake neither Charles himself or his family have any connection with this multi-billion dollar company)고 덧붙였다.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8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찜통버스 아이방치 "유치원 폐쇄" vs "교사처벌로 충분"
https://youtu.be/AIGJw8VROcw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노영희(변호사), 백성문(변호사) 뉴스쇼가 수요일에 마련하는 코너입니다. 라디오 재판정.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나 인물을 스튜디오 재판정 위에 올려놓으면요. 여러분 양측의 변론 들으시면서 평결을 함께 내려주시는 코너죠. 라디오 재판정. 오늘도 두 분의 변호사 모셨습니다. 노영희 변호사님? ◆ 노영희> 안녕하세요. 부모는 자식을 보호하고 어른은 아이를 보호하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되는 겁니다. 왜 우리나라가 태국과 비교돼서 여러 가지로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하는지 정말 어제의 그 기적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슬픔을 느낍니다. ◇ 김현정> 기쁨을 보면서 슬픔을 느끼는 묘한 날이었어요, 정말. ◆ 노영희> 그러니까요. ◇ 김현정> 뭉클한 오늘 인사말. 백 변호사님, 어서 오십시오. ◆ 백성문> 안녕하세요. 백성문 변호사님입니다. ◇ 김현정> 오늘 재판정. 두 분이 굉장히 뜨겁게 붙으셔야 될 주제예요. 특히 자녀를 둔 가정이라면 더 관심 있게 들으셔야 할 판결. 찜통 더위에 유치원 통학버스에 8시간 동안 방치됐다가 아이가 식물인간 됐습니다, 그 아이. 기억하시죠? 저희가 인터뷰도 했었습니다, 그 부모님을. 이 유치원에 대해서 교육청이 폐쇄 결정을 내렸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재판이 시작이 됐습니다. 여기에 대한 2심 판결이 나왔습니다. 항소심 판결이 나왔는데 주제 먼저 외치겠습니다. '찜통 버스 사건의 유치원. 폐쇄가 마땅하다. 아니다, 유치원을 폐쇄할 이유까지는 없다. 바로 이거입니다.' 노 변호사님, 이게 어떤 사건이었죠? ◆ 노영희> 2016년 7월 29일날 유치원 원생이었던 당시 4살짜리 B군이 통학버스 안에서 탑승한 지 8시간 만에 의식을 잃은 채 발견이 됐는데 당시 이 아이는 실내온도 42도에 이르는 버스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것 때문에 열사병과 무산소성 뇌손상을 입었고 지금까지도 2년 동안 또렷한 의식이 없는 채 식물인간으로 지금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광주시 교육청이 아동 안전 관리 의무와 유치원 생활 관리를 소홀했다는 이유, 그리고 이 유치원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서 유치원 운영 과정 전반에 걸쳐 위법한 점이 많다는 이유로 유치원 폐쇄 명령을 내렸는데 1심에서는 그게 맞다, 이렇게 판단을 했어요. ◇ 김현정> 폐쇄가 맞다? ◆ 노영희> 그랬는데 2심에서 다르게 지금 결정이 나온 거죠. ◇ 김현정> 어떻게 났어요, 백 변호사님? ◆ 백성문> 일단 유치원 폐쇄 결정과 관련해서 유치원 원장이 교육청을 상대로 유치원 폐쇄 명령 취소 소송을 제기를 했었던 거거든요. 말씀하셨던 것처럼 1심에서는 폐쇄가 맞다, 그런데 항소심에서는 폐쇄 결정은 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김현정> 1심과 2심이 엇갈렸어요. ◆ 백성문> 네. 그 당시 인솔 교사하고 운전기사가 잘못했죠. 엄청나게 잘못해서 한 아이가 정말 아직까지도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게 고의로 방치한 것 아니다라는 거예요. 자료사진 ◇ 김현정> 고의는 아니다? ◆ 백성문> 학대 행위라는 건 아니라는 거죠. 고의로 방치한 건 아니라는, 엄청나게 중대한 과실이기는 하지만 고의로 한 건 아니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책임을 원장이 지는 건 좀 부당하다고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유치원을 폐쇄하면 사실 이분들도 문제지만 원장 입장에서는 본인이 꾸리고 있는 유치원 자체가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은 과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 김현정> 잘했다라는 건 아니지만 폐쇄까지 갈 정도 사안은 아니다라는 것이 2심의 판결.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분의 의견 저희가 임의로 나눠봤습니다. 노 변호사님은? ◆ 노영희> 저는 폐쇄했어야 되는 게 맞다. 1심의 판단과 광주시 교육청의 판단이 맞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김현정> 이렇게 생각하시면 노변, 폐쇄, 유죄. 이렇게 보내시면 되고요. 백 변호사님? ◆ 백성문> 감정적으로는 폐쇄 결정이 맞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이건 철저히 법적으로 판단해야 될 문제라고 생각이 되고요. 이게 또 다른 누군가의 사실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는 이 폐쇄 결정은 부당하다라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부당, 위법, 무죄. 이렇게 보면 될까요? 이렇게 백변 이렇게 보내시면 되겠습니다. 백 변호사님한테 먼저 여쭐게요. 아이가 식물인간이 됐다면서요. 그것도 42도 찜통 버스에다가 애를 남겨놨는데 어른들이 아무도 발견을 못 해서 8시간이나 방치를 해서. 그럼 이 유치원 문 닫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 백성문> 사실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 운전기사가 유치원 방학 때였어요. 방학 때 데리고 와서 그러면 인솔 교사가 아이들의 머리 숫자를 하나씩 세서 등원 여부를 확인했었야 됐었는데 한 아이가 아마 차에서 잠들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거는 엄청나게 큰 잘못이에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2명은 처벌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제 유아교육법을 살펴보면 유치원의 폐쇄와 관련된 규정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이 규정 가지고 폐쇄 결정을 했던 건데 원장 또는 설립 경영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위법 또는 위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경우하고 아동 학대 행위를 한 경우. 그런데 이 아동 학대는 고의로 아이를 때리고 학대하는 걸 말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에는 운전기사가 '이 아이 그냥 찜통 버스에 그냥 저기 있으라고 일부러 내버려둬야지.' ◇ 김현정> 벌을 주듯이 일부러 뒀다거나 이런 게 아니다? ◆ 백성문> 그리고 인솔 교사가 그랬다면 그건 당연히 폐쇄를 해야 되지만 정말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 이 둘도 이 아이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지금 엄청나게 심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어요. ◇ 김현정> 처벌 받은 건 누구누구예요? 인솔 교사랑 운전기사? ◆ 백성문> 인솔 교사랑 운전기사는 처벌 받죠. ◆ 노영희> 담임교사도 받았죠. ◆ 백성문> 그런데 이제 더 나아가서 이걸 유치원 원장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너무 과하다라는 거죠. ◇ 김현정> 원장님은 뭐 했어요. ◆ 백성문> 원장님은 방학 때인데 그때 당시에 아이들 출석 여부 같은 것도 전화해서 체크도 하고. 그러니까 원장이 크게 이 사안에 대해서 책임을 질 일은 없었어요. ◇ 김현정> 전화를 해서 체크를 했다. 그날 나오는 날은 아니었지만. 그렇군요. 그날은 휴원일이었어요, 사실은. 그래서 이 원장은 안 나오는 상태에서 집에 맞벌이 때문에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아이들만 등원하는 걸로 지금 기억을 합니다, 인터뷰를 제가 했기 때문에. 노 변호사님. ◆ 노영희> 지금 백성문 변호사님이 아주 스리슬쩍 넘어가신 규정이 하나가 있어요. ◇ 김현정> 어떤 겁니까? ◆ 노영희> 유아교육법 32조에 원장 또는 설립 경영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이 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경우에 폐쇄다 이거거든요. ◇ 김현정> 고의 말고 중대한 과실이라는 말이 하나 있다. ◆ 노영희> 그러면서 아동 학대 얘기를 하시면서 이거는 아동 학대의 고의가 없었다. 이런 얘기를 강조하셨는데 여기는 고의가 문제가 아니라 여기는 중대한 과실이 문제였기 때문에 이 유치원은 사실 폐쇄되는 게 맞다라는 겁니다. ◇ 김현정> 고의 and 중대예요? 고의 or 중대예요? ◆ 노영희> or예요, or. 어느 하나에 해당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여기서 중요한 게 뭐냐 면요. 지금 이때가 노는 날이었고 상관없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왔으면 그 유치원에서 아이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되잖아요. 제가 처음에 뭐라고 그랬어요. 부모는 자식을, 어른은 아이를,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유치원은 전적으로 원장의 통솔 하에 만들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져야 되는 것인데, 더 중요한 건 통학버스 운영 매뉴얼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이 매뉴얼에 따르면 인솔 교사가 왜 있습니까? 버스에 탔던 아이들을 제대로 인솔을 하고 내려줄 때 그 버스에 남은 애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게 인솔 교사의 의무죠. 버스 운전기사도 마찬가지겠죠. 통학 버스 운전하는 기사니까. 담임교사는 당연히 마찬가지고, 내 아이니까. 문제는 담임교사 선생님이 출석부에 출석한 걸로 체크한 거예요. 애가 오지도 않았는데. 그리고 인솔 교사도 당연히 뒤를 한 번만 돌아봤으면 됐는데 안 돌아봤어요. 운전기사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그분들 고의가 없었겠죠. 하지만 이거는 중대한 과실입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이거는 개인의 과실을 넘어선 유치원 전체의 과실이다? ◆ 노영희> 이분들을 누가 관리하는 사람입니까? 유치원의 원장이 사실 관리하죠. 저는 원장이 형사처벌을 안 받았는데 그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유치원 원장이 다 책임을 져야 되는 부분이에요. 이 유치원 원장이 왜 책임에서 다 벗어났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 김현정> 전화를 걸었다는 부분은 어떻게 보세요. 어쨌든 전화 체크는 했다, 휴가 중이었지만. ◆ 노영희> 전화 체크해서 어떻게 했대요? 답이 뭐라고 왔대요? ◇ 김현정> 출석까지는 체크를 안 했고 전반적인 운영 잘 되고 있는가에 대해서 관리를 했다. 이렇게 표현돼 있네요. ◆ 노영희> 그러니까요. 전반적인 운영이 관리가 안 되고 있는데 관리가 됐다라고 지금 대답을 들었다는 거잖아요. 그게 뭐가 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는 거예요. ◆ 백성문> 지금 노 변호사님이 굉장히 격앙이 되셔서 말씀을 하시는데 이 중대한 과실이 아동 학대하고 관련된 건 아니고요. 이건 중대한 과실로 유아교육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경우에 폐쇄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거고 그 외에 아동 학대 행위를 한 경우에도 폐쇄가 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아동 학대 행위가 벌어진 걸 중대한 과실로 방치했다라는 걸로 폐쇄 결정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을 드려야 될 것 같고. 그리고 일단 저도 지금 이 유치원에서 인솔 교사, 담임교사, 운전기사를 감싸거나 옹호하는 건 절대 아니예요. ◇ 김현정> 계속 그 얘기는 지금 하시는 거예요. ◆ 백성문> 전혀 상관없는 거예요. ◇ 김현정> 잘했다라는 건 아니다. ◆ 백성문> 이분들 처벌 받았고 지금 당연히 처벌 받아야 할 행동을 했죠. 그런데 아까 말씀했던 것처럼 이 원장은 그 당일날 출석 여부까지는 아니었지만 유치원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체크를 했죠. 그런데 그 교사들의 얘기를 듣고 믿어야지 그걸 어떻게 다시 확인을 합니까, 일단 원장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면요. 그리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까 중요한 얘기를 하셨는데 이 원장도 역시 처음에 수사기관에서는 당시에 이거는 업무상 과실치사의 공범이다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원장이 그 사고와 관련해서 무언가 책임을 질 것은 없었다고 판단을 해서 검찰에서 불기소를 했습니다. 원장은 처벌받지 않았어요. 거기다 더 나아가서 지금 이 유치원의. 이제는 조금 숫자가 줄었죠. 그 당시에 이런 엄청난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또 이 유치원을 못 보내겠다고 생각했던 학부모들도 있었을 거 아니에요. ◇ 김현정> 많이 빠졌을 거 같아요. ◆ 백성문> 그런데 지금도 20명 정도가 유치원을 다니고 있고요. 만약에 유치원이 폐쇄 결정이 내려지면 지금 유치원생들이 또 어디 옮길 데가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고, 심지어 다른 학부모님들이 유치원을 다니는 애들을 보내는 학부모들도 유치원 폐쇄하지 말아주세요, 그래도 20년 동안 이 동네에서 유치원을 했던 분인데 말아달라고 했고. 더 나아가서 피해 아이의 부모님도 폐쇄 결정까지는 좀 하지 말아달라는 탄원서를 같이 낸 상황입니다. ◇ 김현정> 그 부분 얘기들을 지금 청취자들이 많이 보내주시네요. 전난숙 님. 관계자를 처벌하는 건 맞지만 유치원 폐쇄까지는 아닙니다. 20명이 더 다니고 있대요. 20명이 빠지고 나머지가 지금 다 다니고 있는 거여서 그럼 이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이런 의견들 들어오고 있고 반면에 4171님은 운전기사와 담임교사, 인솔교사가 처벌받았다고 하는데 그들을 관리 감독할 책임이 있는 원장은 당연히 유죄다. 유치원 문 닫는 게 거기에 대한 최대한의 처벌 아니냐, 이런 문자 들어오고 있습니다. 노 변호사님. ◆ 노영희> 1심에서 왜 폐쇄가 맞다라고 판단했냐면요. 이런 인솔교사, 버스 운전기사, 담임교사 등이 그런 통학버스 매뉴얼 준수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거고 그것 때문에 아이가 중상해를 입게 되는 중대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당연히 원장으로서 관리감독 의무를 성실히하지 않았다, 첫 번째. 또 하나는 교원처우개선비 지급 대상이 아닌데도 이걸 속이고 이걸 받았다. 그리고 또 교육감으로부터 인가를 받지 않고 학급수를 증설하고 체육장을 교실과 보건실로 바꿔 사용했다. 운영위원회 자문을 거쳐야 되는데 자문 없이 했다. 유치원 운용자금을 유용해서 재무회계를 위법하게 운용했다. 이게 전부 다예요. 다른 것하고 다 연결돼 있는 전반적인 관리 의무가 잘못돼 있다라고 하는 게 사실 이 폐쇄 결정의 취지였거든요. 그런 모든 것들을 보았을 때 이 원장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고 오로지 교사나 기사나 이런 사람들만 책임이 있다고 본다는 것은 책임 소재가 저는 너무 잘못됐다고 봐요. ◆ 백성문> 지금 말씀하셨던 무단 학급 증설, 시설 변경, 교원처우개선비 부정수급 같은 걸로만 유치원의 폐쇄 결정이 났을까요. 이러한 사고가 없었다면? 그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 사고에다가 지금 그런 것도 있었으니까 폐쇄해야 된다고 노 변호사님이 말씀하셨는데 이 사고가 없이 지금 그런 것만 가지고는 유치원 폐쇄 결정이 안 납니다. ◇ 김현정> 그래요? ◆ 백성문> 그 정도라면 이게 유치원의 정상적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한 위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을 했고요, 2심에서도. 이번 사고 너무 안타까운 건 사실입니다마는 이것 때문에 무조건 이런 유치원 없어져야 돼라고 단순하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에요. 아까 말씀했던 것처럼 지금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여러 가지 생각해 봐야 될, 보호해야 될 가치들도 분명히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감정적 접근을 하면 안 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 김현정> 법적으로 냉철하게 보자 이 말씀. ◆ 백성문> 이것 때문에, 지금 말씀하신 학급을 무단으로 증설했고 시설 변경을 한 것 때문에 만약 이 사고가 발생을 했다면, 이런 것 때문에 발생했다면 예를 들어서 대형화재가 났을 때 건축자재 잘못 써서 화재가 나거나 이런 거 있잖아요.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이것과 이번 사고는 인과관계가 없습니다. ◇ 김현정> 천국이라는 분의 문자 하나 볼게요. 이분은요. 대안을 하나 주셨어요. 유치원은 그대로 두고. 왜냐하면 지금 그 지역에서 다니는 아이들이 많으니까. 유치원은 그대로 두고 원장만 바꾸도록 하는 이런 조치는 어떠냐? 법적으로 어때요? ◆ 백성문> 그건 원장이 유치원을 어찌 보면 소유하는 개념인데 그 소유권을 그냥 막 박탈할 수는 없잖아요. 운영을 못 하게 만드는 건 만드는 거지 그 유치원을 노 변호사님한테 넘겨드려야 되나. ◇ 김현정> 뺏어서 잘할 것 같은 사람에게 주고. ◆ 백성문> 예를 들어서 공립유치원 같은 경우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사립이면 그건 쉽지 않죠. ◆ 노영희> 아까 그러셨잖아요, 백 변호사님이. 건물의 자재를 잘못 써서 망가졌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니까 안 된다 그러셨는데 그거하고 뭐가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실질적으로 아이들을 직접 다루고 보호하는 사람들인데. ◇ 김현정> 여기까지 오늘 토론을 마무리지어야겠는데 일단 저희가 임의로 나눠드렸다는 것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리고요. 우리 청취자 여러분의 선택은 사실 이렇게 들어올 거라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는데. 이 유치원은 폐쇄하는 게 마땅하다 대 폐쇄까지는 아니다. 여러분들의 선택은 폐쇄하는 게 맞다 67%가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청취자 황**님이 뺏어서 주는 거 아니더라도 알아서 그만둬야 되는 거 아닙니까? 소유권 넘겨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이런 문자도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는 거 마지막으로 전해 드리고요. 하여튼 두 분 고생하셨고 노 변호사님. ◆ 노영희> 저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너무 가슴 아파요. ◇ 김현정> 오늘은 아시아나 때문에 열도 받으시고. ◆ 노영희> 그러니까요. 이게 감정적으로만 제가 말하는 게 아니라 저는 법리적으로 충분히 당연히 이게 폐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현정> 백 변호사님도 아이들 많이 사랑하시는 분인데 오늘 또 폐쇄하지 말아야 된다 쪽을 들으셔가지고. ◆ 백성문> 사실 한 쪽의 목소리만 들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저도 이 두 가지의 목소리를 듣고 청취자분들이 판단하시기를 바랍니다 ◇ 김현정> 합리적인 판정을 도와드리는 라디오 재판정. 오늘도 두 분 고생하셨습니다. ◆ 백성문> 고생하셨습니다. ◆ 노영희> 고맙습니다. ◇ 김현정> 백성문 변호사, 노영희 변호사였습니다. (속기= 한국스마트속기협회)
창업 가문은 도요다...회사는 도요타
... <사진= 작은 사진은 도요타의 실질적 창업자인 도요타 기이치로.> ... 도요타(TOYOTA)자동차도 혼다차와 마찬가지로 창업주의 이름을 회사명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도요타차는 사정이 좀 다르다. 창업 초기, 브랜드명이 도요타(TOYOTA:トヨタ)가 아닌 도요다(TOYODA:トヨダ)였다는 걸 알고 있는가? 창업 가문의 성(豊田)은 도요다(トヨダ, とよだ)라고 읽는다. 창업의 토대를 마련한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とよだ さきち)와 실질적 창업주인 그의 아들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とよだ きいちろう)가 그렇다. 그래서 처음에는 창업 가문의 성을 따서 도요다(トヨダ)라고 했다. 영문명도 TOYODA가 됐다. 창업 당시인 1935년 7월 TOYODA로 상표등록을 했다. 1년 뒤인 1936년 도요타 최초의 양산형 승용차 AA형엔 알파벳 TOYODA 엠블럼이 장착됐다. 하지만 미국 수출을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TOYODA 발음이 문제였다.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는 외국인이 영어 회사명을 발음하기 어렵다고 해서 TOYOTA(トヨタ)로 바꾸도록 지시했다.(아사히신문 특별 취재반 저 ‘도요타시 1번지’) 도요다에서 도요타로 바꾼 이유 도요타 사사(社史)에 따르면, TOYODA(トヨダ)에서 TOYOTA(トヨタ)로 바꾼 다른 이유 3가지가 더 있다. ①‘상업,미술적으로 봐서 촉음을 붙이지 않는 것이 상쾌하고, 말의 음색(소리의 울림)도 좋다(商業美術的に見て、濁点を付けないほうが、さわやかであり、言葉の調子(音の響き)も良い)는 것이다. 또 ②일본어 도요타(トヨタ)의 획수가 8이라 재수가 좋다.(画数が8で縁起が良い)는 점도 작용했다. 끝으로 ③도요다라는 (가문의) 이름에서 멀어지게 돼, 개인 기업에서 사회 존재로의 발전적 의미를 담고 있다.(トヨダ<豊田>という人名から離れることにより、個人的企業から社会的存在への発展の意味を含める)고 한다. 그렇게 자동차는 도요타(トヨタ)가 정식명칭이 됐다. 그럼, 도요타가 진출해 있는 도시 풍전시(豊田市)는 도요타라고 읽을까, 아니면 도요다라고 읽을까. 도요타(トヨタ)로 읽는다. 고로모시가 도요타시로 ‘상전벽해 ’ 도요타차가 훗날 도요타시가 되는 고로모쵸(擧母町, 이후 고로모시)에 공장을 짓고 진출한 것은 1938년이다. 이 지역은 원래 양잠업이 번성했다. 1959년 1월, 고로모시 당국은 도요타차의 회사명을 그대로 시 이름으로 삼았고 도요타 본사의 소재지에 ‘도요타시 도요타쵸 1번지’라는 행정상의 선물까지 안겨줬다. 물론 ‘고로모’라는 이름을 지키자는 의견도 상당수였다고 한다 도요타차의 본거지인 도요타시는 이후 인구가 종전보다 3배 가량 늘어나는 등 크게 발전했다. 양잠업을 하던 그 시골 동네는 이름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것이다. . 도요타차의 뿌리는 자동직기를 만드는 등 ‘발명왕’이라 불린 도요다 사키치(1867~1930)에서 출발한다. 자동직기에서 자동차로 사업 영역을 바꾼 것은 장남인 도요다 기이치로(1894~1952)였다. 도요다 사키치~도요다 아키오로 이어져 기이치로는 1929년 아버지와 개발한 자동직기 특허를 당시 세계 최대였던 영국 직기회사에 10만 파운드(당시의 100만엔)에 팔았다. 이를 자본으로 1933년 도요타자동직기제작소 내에 ‘자동차부’가 만들어졌다. 도요타차의 탄생이다. 회사는 1937년 8월, 현재의 이름인 ‘도요타자동차주식회사’가 되었다. 창업 가문은 도요다 사키치(豊田佐吉),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郞), 도요다 쇼이치로(豊田章一郞)를 거쳐 현 회장 겸 사장인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로 이어진다. 참고로 도요타의 주력 차종 렉서스(LEXUS)는 독일어 LUXUS(사치, 일류를 뜻함)에서 만든 조어다. LEXUS는 6개 후보작(차종명) 중에서 2위에 올랐다. 하지만 고급스러움이 느껴지고, L과 X가 들어간 5문자는 발음하기 좋으며, 기억하기 쉽다는 이유로 최종적으로 선택됐다. 1986년 10월의 일이다. (하세가와 요조 저 '렉서스, 도요타의 도전') <에디터 이재우>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4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창업자 데릴사위가 키운 스즈키 자동차
... 스즈키 자동차의 1대 창업주 스즈키 미치로(얼굴 사진). ... 은행원 하다가 오너 집안에 장가들어 마츠다 오사무(松田修)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후현 태생으로 주오대(中央大)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은행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5년 후인 1958년, 은행원이던 그의 인생에 일대 큰 변화가 찾아왔다. 스즈키 자동차 실질적 창업주 스즈키 슌조(鈴木俊三)의 데릴사위가 된 것이다. 마츠다 오사무는 스즈키 슌조의 장녀와 결혼해 양자가 됐고, 그의 이름은 마츠다 오사무(松田修)에서 스즈키 오사무(鈴木修)가 되었다. 그런 그에게 또 다른 큰 변화가 닥친 것은 1977년 무렵이다. <1977년에 창업자인 스즈키 미치오와 2대 회장인 스즈키 슌조, 3대 회장인 스즈키 지츠지로 등의 경영자가 잇따라 병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데릴사위인 내 어깨에 회사의 운명이 지워진 절박한 순간도 있었다.>(스즈키 오사무 저 ‘작아서 더 강한기업 스즈키’(김소운 옮김, 리더스북) 전현직 동시에 쓰러지면서 사장 자리 올라 전임, 현직 CEO가 동시에 쓰러지면서 스즈키 오사무는 순식간에 사장 자리를 맡았다. 입사 20년이 지난 1978년의 일이다. 닛케이비즈(2009년 3월 2일)는 당시 스즈키 오사무의 심정을 이렇게 보도했다. <“아, 내가 사장이야”- 스즈키 오사무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등골이 오싹한 생각에 사로잡혀, 이불에서 벌떡 일어났다. 쉴 때도 사장이라는 무게감이 덮쳤다.> 스즈키 자동차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즈키 오사무(鈴木修‧87) 회장은 이렇게 큰 변화를 두 번 겪었다. 그는 경차의 대명사인 스즈키를 ‘위대한 중소기업’(偉大な中小企業)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즈키 오사무는 2000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스즈키의 차는 차체만 작을 뿐, 회사는 이제 더 이상 중소기업이 아닌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다. 스즈키자동차의 슬로건은 ‘작게(小), 적게(少), 가볍게(輕), 짧게(短), 아름답게’(美)이다. 경차는 이익을 남기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산원가 절감이 생명이다. 오사무 회장은 공장 바닥에 나사 하나가 떨어져 있으면 “공장 바닥에 돈이 떨어져 있다”며 한 푼의 돈도 허투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즈키의 효자 상품은 알토(Alto:라틴어로 높다는 뜻의 altus에서 따왔다)다. 오사무의 사장 취임 직후인 1979년 첫 출시된 알토는 오랜 기간 인기를 끈 스즈키의 주역이다. 알토는 한국 대우자동차의 티코 모델이기도 하다. 스즈키 집안은 방직기계로 출발 스즈키 자동차는 창업주 이름에서 비롯됐지만, 처음부터 자동차업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다. 목화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스즈키 미치오(鈴木道雄:1887~1982)가 스즈키 방직기계(주)를 설립한 건 1920년이다. 그의 아들 스즈키 슌조(鈴木俊三)는 모터가 달린 자전거를 내놓으면서 업종을 변경했다. 1954년 ‘스즈키자동차공업’으로 회사명을 바꾸고 스포츠바이크와 경차를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붉은 S자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한 건 1958년부터다. 1990년 10월에는 현재의 스즈키로 사명을 바꿨다. “우물을 파려면 제일 먼저 파야 한다” 스즈키의 역사에서 인도 진출을 빼놓을 순 없다. 오사무 회장은 “우물을 파려면 제일 먼저 파야 한다”며 일본 자동차 메이커 중 가장 먼저 인도 시장에 눈떴다. 그가 사장 4년차이던 1982년(당시 52세), 스즈키는 자동차 기업으로서는 일본에서 꼴찌였다. 그래서 그는 “국내에서 1등하기 어렵다면 해외에서 하자”고 마음 먹었다. 모두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인도 시장 진출 선언이었다. 인도 정부와 공동으로 합작사‘ 마루티 우도요그’(Maruti Udyog)를 설립, 이후 자회사로 만들었다. 2007년에는 ‘스즈키 마루티 인디아’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마루티는 인도에서는 ‘국민차’로 불린다. 스즈키는 한때 인도 시장 점유율 70%를 웃돌기도 했지만, 현재는 50%대를 유지하고 있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7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
중고차? 어떻게 사면 잘 샀다고 소문날까? (사고여부 확인 방법)
드디어 자동차를 구매하려고 중고차 매장에 도착한 당신! 새차를 사면 가장 좋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중고차를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주 깔끔하게 세차까지 말끔하게 되어있는 차량을 구매하기로 결정합니다! 차를 드디어 사게되어 들뜬 기분으로 별 의심없이 그말을 그대로 믿고 차를 삽니다.  차를 구매하고 일주일이 지난 뒤 차 엔진부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듯 해서  차를 구매하자마자 했어야 했던 점검을 드디어 받으러 센터에 갑니다... 드디어 엔진 후드를 열게 되는데.... ... ... ... 이..이게 머지??? 나..나니? 내차가 마이클 펠프스도 아니고 물고기도 아니고 수영...이라니? 이런 일이 일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미연에 방지해야겠죠? 그렇다면 중고차 구매할 때 이 차량이 사고차량인지 아닌지 구분하는법! 카모니와 함께 알아볼까요? (혹시 차량 명칭이나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위치를 첨부합니다!) 1. 펜더(Fender)를 확인한다 차량의 앞문을 열게 되면 펜더(Fender)를 잡아주는 볼트가 보이실 겁니다. 그 곳의 볼트의 페인트를 확인해보시면 사고 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볼트의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새로 칠한 흔적 등이 보인다면  측면에 사고를 당했다고 의심 해볼 수 있습니다. 2. 보닛(본네트)확인 보닛을 열게되면 안쪽 테두리 부분에 실리콘으로 실링이 되어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 곳을 자세히 확인해보셔야 합니다. 이곳을 손톱으로 꾹 눌러보셨을 때 만약 실링이 터지거나 손톱 자국이 남게 된다면 정면사고로 인해서 보닛(본네트)를 교환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3. 트렁크 플로어(Trunk floor) 들어보기 트렁크의 아래쪽에 깔려 있는 플로어를 들어 보게되면 스페어 타이어가 있습니다. 만약 스페어 타이어를 둘러싼 판들에 용접자국이 있거나 검정색으로 도색되어 있다면 후면에 사고가 났다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사일런트패드가 없거나 순정이 아닌 경우에도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4. 필러 (Filler) (그..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하는 필러 말구요...) 필러에 있는 웨더스트립 (차체와 문짝 사이의 고무) 를 잡아 당기시면 안쪽에 용접된 골격이 보입니다. 매끈하고 레이어가 일정하지 않고 용접한 자국이 있다면 사고차량일 수 있습니다. 5. 리어 패널 (Rear panel) 트렁크를 열어보시면 또한 실리콘 실링이 있습니다. 만약 실링에 일정한 패턴이 없고 지저분하다면 수리가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후면에 충격을 받은 뒤 수리를 하게 되면 보통 이런 표시가 납니다! 6. 트렁크 리드 (Trunk lid) 트렁크를 열게 되면 위쪽에 고무 패킹이 보입니다. 만약 고무 패킹 안쪽 볼트 부분의 페인트가 벗겨지거나 볼트가 풀려 있는 경우 사고로 인해 교환했다는 것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중고차를 사게 되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한번 쓱 보는 것만으로는 사고차인지 아닌지에 대한 결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저기 꼼꼼하게 둘러보시고 고민 또 고민 하신 뒤 꼭 좋은 차량 구매하시길 바랍니다!
6개의 별무리를 상징하는 스바루
... <사진= 스바루라는 이름을 붙인 건 후지중공업 사장 키타 겐지(작은 사진)다.> ... 후지중공업 자동차 부문이 스바루 전신 일본 자동차 이름 중에서 가장 특색 있는 이름은 아마도 스바루(SUBARU)일 것이다. 스바루는 별자리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스바루자동차는 군수산업에서 출발했다. 모태는 1917년 나카지마 치쿠헤이(中島知久平)가 설립한 ‘나카지마 항공기 회사’다. 이 회사는 2차 대전 후 후지산업으로 개편됐고, 다시 후지중공업으로 변모했다. 후지중공업의 ‘자동차 부문’이 스바루의 전신이다. 나카지마 항공기 회사 창립 100주년(1917)에 맞춰 2017년 사명을 ‘스바루’로 변경했다. 후지중공업의 차에 스바루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것은 초대 사장 키타 겐지다. 그는 전후(戰後)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1953년 후지중공업은 첫 자동차 P1 제작에 나섰다. 문제는 여기에 붙일 이름이었다. 글로벌 테크매체 테크사이언스뉴스(techsciencenews), 미국 자동차 잡지 허밍턴 모토 뉴스(Hemmings Motor News), 미국 자동차 전문매체 뉴스휠(News Wheel)에 따르면, 키타 겐지는 전반적으로 디자인에 만족하면서(while pleased with the overall design) “일본 자동차는 일본 이름을 가져야한다”(Japanese car should have a Japanese name)고 주장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단어 '스바루' 이름 붙여 하지만 키타 켄지는 P1에 맞는 의견 수렴을 회사에서 했지만 어느 것도 충분하지가 않았다. (Mr. Kita canvassed the Company for suggestions about naming the P1, but none of the proposals were appealing enough.) 결국엔 그가 어릴 때부터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스바루라는 일본어 이름을 붙였다. (In the end, he gave the car a Japanese name that had been his personal favorite from childhood.) 스바루는 ‘플레이아데스’라는 6개의 별무리에서 따왔다.(That is the Japanese name for the six-star constellation which translates to the Pleiades cluster.) 6개의 별은 후지중공업의 자회사 상징 키타 겐지에게 스바루라는 이름은 6개의 회사들이 결합된 후지중공업을 완벽하게 상징하는 것이었다.(To Kita, it perfectly symbolized Fuji Heavy Industries' creation by the merger of six smaller firms.) 첫 스바루 모델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바루를 뜻하는 플레이아데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한다.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인 아틀라스(Atlas)와 플레이오네(Pleione) 사이에는 일곱 딸이 있었는데, 플레이아데스(Pleiades)는 여기에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플레이아데스는 ‘일곱 자매 별’(The Seven Sisters)이라고 불린다. ‘일곱 자매 별’인데 왜 스바루의 엠블럼에 있는 별은 여섯 개 일까. 전설에 의하면, 플레이아데스의 일곱 별 중 한 개가 유성이 됐다는 이야기도 있고, 두 개의 별이 너무 가까이 붙어 있어 하나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무튼, 스바루 엠블럼에 있는 6개의 별들은 후지중공업의 자회사들을 상징한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을 이루는 우주의 색이 파란색이기 때문에 엠블럼의 배경도 파란색을 채용했다고 한다. <에디터 김재현> http://www.japanoll.com/news/articleView.html?idxno=526 저작권자 © 재팬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출처 : 재팬올(http://www.japano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