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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남작, 르데



붉은 남작 하면 생각나는 사람 있으신가? 밀덕이라면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을 떠올릴 텐데, 사실 현대사에서 제일 유명한 붉은 남작은 르데(Redé) 남작, 알렉시스 폰 로젠베르크(Alexis von Rosenberg)이다. 붉은 남작이 별명이기는 해도, 혈통으로 얻은 실제 귀족이다. 그의 이야기가 이번 주말 특집.

그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사교계의 왕자”여서다. 오드리 햅번과 장 콕토, 영국 왕족들, 퐁피두 부부(!), 살바도르 달리, 어디에나 빠지지 않는 로스차일드 가문 등등 유명 인사들이 그가 주최한 코스프레(!!) 파티에 와서 즐겼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지막 댄디라 불리기도 했었다.

짤방은 1969년 동양(여기서는 중근동을 의미한다) 파티를 개최한 르데 남작, 중앙의 코사크 코스프레를 한 남자이다. 이 파티는 1969년 12월 5일에 개최됐지만 초대장은 5월부터 나갔었고, 400여명이 참여했었다. 동방 풍으로 입어야 한다는 점이 조건이었고 말이다.

그의 집안은 헝가리 귀족이었고,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서 살았지만 제2차대전 와중에 집안이 몰락한다. 어머니는 백혈병으로, 아버지는 자살로 사망하고 그는 형과 여동생과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간다. 하지만 거기서 형이 또 자살하고 장애인이었던 여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그는 몸을 팔았다.

그러다가 19살 때 드디어 스폰서를 만나는데... (뉴욕의 한 식당 종업원을 하다 만난다. 운명이었을까?) 그의 “후견인”을 자처한 22세 연상의 사내는 칠레의 백만장자 Arturo Lopez-Willshaw였다. 그는 자신이 처음부터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결혼했기 때문에, 부인의 의견은 상관이 없었고(...애초에 부인과 사촌 사이였다), 르데 남작 또한 로페스 부부와 다같이 여행도 다니면서 잘 어울러 지냈다.

그런데 로페스는 프랑스에 집이 있었고, 르데에게 100만 불을 주며 프랑스에 가서 살자고 한다. 그래서 1946년, 파리로 이주, 그때부터 화려한 옷에 관심 많던 로페스와 르데는 같이 코스튬 파티를 열기 시작했고, 1950년대 초부터 파리 사교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니나 리치가 그들의 옷을 디자인해주고 아직 젊었던 이브 생 로렁도 스카프를 제공하기 시작했다(그들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마케팅이었다).

이 배너티 페어의 기사에서는 르데가 자신은 하는 일이 없지만 무척 바쁘다고 하는데, 이 말이 틀리지는 않다. 로페스의 은행일을 수완 좋게 처리하면서(참조 1) 그는 로트실드가와 친해졌고, 여기서 그는 중요한 결정을 한다. 로트실드에게 오뗄 랑베르(Hôtel Lambert)를 매입해서 리노베이션할 것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이 오뗄(참조 2) 랑베르는 1640-44년 동안 세워진 유서깊은 저택이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집대성으로서 그 자체가 문화재이고, 샤뜰레 후작 부인과 볼떼르(여러분이 아는 그 볼떼르)가 불륜을 꽃피웠던 장소이기도 하다.

다만 이 오뗄 랑베르는 폴란드와 매우 깊은 관계를 갖는다. 1830년 파리로 망명한 폴란드 왕자님이 이 저택을 사들여서 일종의 파리에 있는 폴란드인 집결지로 사용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조르주 상드와 쇼팽이 연애했던 곳이 이 저택이기도 하다. 쇼펭의 “폴로네즈”가 여기서 탄생.

르데 남작은 실질적인 배우자인 로페스와 이미 거기에 살고 있었고, 로트실드 부부도 같이 이 저택에 살자고 설득했으며, 로트실드는 아예 이 저택을 사버리기로 결정.

다시 이 동양 파티로 돌아가 보자. 이 파티가 아무래도 이런 형식으로는 거의 대미를 장식한 대형 파티였을 것이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이브 생 로렁이 의상을 맡았고, 종이로 만든 거대한 코끼리 두 마리를 집 앞에 배치해 놓았으며, 누비아 노예로 분장한 이들이 봉화를 들고 다녔다. 당연히 보그와 파리마치가 경쟁적으로 이 파티를 취재했다.

그는 2004년 사망할 때까지 오뗄 랑베르에서 살았으며, 기 드 로트실드도 2007년 세상을 뜨면서 오뗄 랑베르는 카타르 왕실로 넘어간다. 기상천외함과 좋은 취향, 넉넉함이 르데 남작을 상징하는 단어들이었으며, 20세기 최후의 데카당스라 부를만 한 인물이 르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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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르데는 로페스의 은행업을 도와주면서 재산을 더 크게 불렸고, 결국은 로페스의 재산을 능가하기도 했었다. 로페스가 사람 보는 눈이 있었던 모양.

2. 불어의 오뗄은 스펠링이 영어와 같기 때문에 빚어지는 혼란감이 있다. 물론 호텔의 의미도 있지만 여기서는 지방 귀족들이 서울(파리) 올라와서 지내는 저택을 뜻한다. 어떻게 보면 호텔의 뜻은 이 의미가 먼저이며, 나중에 손님이 머무는 상업시설이라는 의미로 확대된다. 



이제 불어에서 hôtel de ville이 왜 도시 호텔이 아니고, 시청인지 이해가 가실 것이다. 도시 내(빌) 유력 인사들이 모이는 대저택(오뗄)이 바로 “오뗄 드 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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