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ter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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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처럼 단단해져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재 발굴단 40회
'산골 소년 정여민'
무려 8000 : 1 을 한 대상수상자가 있음
'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 이라는 온도라 생각이 든다. '

'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라는 제목에
눈길이 사로 잡혔다고 하는 심사위원

대상 받은 친구 물어보는 제작진

하지만 사진에 없음.
대상 수상자가 빠진 시상식
그래서 영재발굴단이 아이를 찾아나섬
네비도 안 먹을 정도로 깊은시골
가다말고 할머니에게 물어보는 제작진
무슨말인지 모르겠는데
하여튼 알려 주시는 할머니

제일 시골 끝자락에 
혼자 위치해 있는 집 발견

제작진이 물어 봄
그런 제작진을 발견한 아들 둘을 부름

주섬주섬
둘 중 누가 글을 쓴 여민이냐고 물어보는 중
저요
패널들 : 이야- 탤런트 아닌가요. 잘생겼다
자기가 여민이란 걸 알려주고
말 없이 장작 패는 여민이

보일러가 없어서 장작으로
불을 피워서 지냄.

불 피우자 마자 들어와서는
책 부터 꺼내는 여민이

제작진 '민망'
그런 여민이를 보고 한마디 하는 엄마
하지만 여민이 책 읽는거에 집중
당황한 제작진이 
엄마한테 여민이 사춘기냐고 물어 봄

끄덕끄덕
원래도 과묵한데 사춘기 까지 와서
더 말이 없어짐

상장 보여달라고 말하는 제작진
역시나 말 없이 가져 옴
이게 바로 8000:1 을 뚫고 받은 상장
시상식에 오지 못 한 이유를 묻는 제작진
눈이 많이 와서 못 왔던 거 였음

안 간게 아니라 폭설 때문에
길이 막혀 시상식에 늦게 도착한 거 였음.

모두 다 글짓기 관련 상장
배운 적 없음.
패널들 : 이야- 얼굴이
' 세상의 소음과 빛이 차단되는것 같은 병원을
우리 가족은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지나가도
우리의 시간은 멈추고만 있는것 같았다 '

몸이 안 좋은 엄마를 위해
가족들이 시골로 내려옴

제작진의 질문에 바로 슬펐다고 
말하는 여민이 동생 지민이

하지만 여민이는 아무 말도 없음.
힘든 생각을 안 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하는 여민이

고구마 야무지게 호일에 쌓는 중
고구마 기다리다 말고
갑자기 노트 꺼내드는 여민이

소리가 있는 겨울


내 마음속에 소리가 있는 겨울이 앉는다.
아궁이의 새빨건 장작불 속에
고구마를 안겨주고 군고구마를 기다리는 소리


하얀 눈이 소리없이
우리 집 마당을 찾아올 때
추억이 만들어지는 소리


지붕 처마 끝에 달린 뾰족뾰족 고드름이
겨울 햇살을 만나는 소리


얼음물 내려오는 개울가에
버들강아지가 봄 냄새를 맡는 소리


내 마음속에 소리가 있는 
겨울이 있어 행복하다

화기애애한 여민이네
만약에라는 생각에 영상을 기록해
추억을 남기기로 생각했다는 엄마

고구마를 다 먹은 여민이네 가족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서 하늘을 보는 중

별똥별이 예쁘게 내리는 중

우리가 이사한 곳은 

밤이면 쏟아질 듯한 별들을 머리에 두르고 걷는 곳이며 
달과 별에게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오지 산골이다.

엄마의 건강 회복을 위해 아침마다
가족들이 매일 운동을 하러 산으로 나옴

이렇게 주운 솔들을

던지면서 노는 중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엄마 표정이 좋지 않음.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인지 방에
들어가자 마자 누워버림

그런 엄마를 걱정하는 남편

여민이는 그런 엄마를
말 없이 지켜봄

말 없이 엄마를 지켜보다
결국 밖으로 나가는 여민이

밖에서 추운바람 맞아가며
또 다시 책을 읽음

숲의 하루


어둠이 내려오면
햇살은 더 놀고가겠다 칭얼대고


숲은 무엇이 내것인지 내것이 무엇인지
생각도 마음도 흐릿해지는 시간이 된다

새벽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는 여민이아빠
엄마의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지만
엄마는 같이 안감.

하루에 3번 지나가는 버스를
타는 여민이 아빠

학교 수업중인 여민이
엄마 검사결과 때문에 집중이 잘 안됨
기다리다 결국 여민이아빠한테
전화를 하는 엄마

엄마에게 결과 물어보는 제작진
집에 오자마자 엄마한테 가는 여민이
엄마의 괜찮다는 말에
표정이 풀어진 듯 한 여민이

공책들고 밖으로 나옴


어디에서든지 깨지지 말아라
아무 곳에서나 구르지 말아라


다시 만날 조각돌 햇살을 위해
비를 참아내며


누웠다 다시 일어나는 억새보다
바람을 참아내어


그냥 작은 꽃 옆에서
같이 비를 맞아주고


같이 바람을 맞이하는
돌이 되어라.

새해 아침
삼부자가 엄마를 위해 
새해맞이 떡국 준비 중

물과 현미떡과 달걀과 
굴만 들어간 특별한 떡국

엄마 맛있다고 엄지 척
여민이한테 물어보는 제작진

끄덕끄덕
떡국먹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여민이

노트를 들고 왔음
아빠가 읽어 본다니까 
부끄러워진 여민이 숨는 중

별빛 꿈을 꾸며


많은 사람들이 반달 눈으로 앞을 보고 걸을 때
나는 일자 눈으로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엄마의 아픔은 나의 눈에 눈물의 커튼 자국을 남겨두었고
내마음에 가시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가시들이 숲에서 녹을 때쯤
매일매일 여행을 하듯 자연을 찾아 도시를 떠났다.


별들도 바람에 흔들리고
반딧불의 불빛에 별빛도 숨을 죽이는 이곳


나는 별빛 꿈을 꾸며
가족의 손을 잡고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저 높은 밤하늘 별들에게도 들리도록 말이다.

엄마한테 뽀뽀
행복해 보이는 여민이네
여민이가 제작진에게 써준 시


손님


손님이 햇살을 피해
구름을 따라 찾아왔다.


새 손님
새로운 손님
반가운 손님


쏟아지는 별빛을 마음속에 안겨주고
별길따라 멀어져 갔다.
바람도 머물지 못하게 마음을 채워주고
겨울길 따라 멀어져 갔다.


별들도 바람에 흔들리는 이곳을
아주 가끔은 생각나게 되겠지요.

여민이네 집에 항상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관심좀 주세요..
귀찮으실까봐 댓글 달아달라고 못하는데
클립과 하트 정말 좋아해요...♥
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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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이야말로 빛나는 별이네요. 흔들릴지언정 스러지지 않는 그런 별
정말 이 시대의 윤동주가 이런 아이가 아닐까 싶네요
정말 제자신이...많이 부끄러워지고 감동을 받는 그런 글인거 같아요 여민이가 행복해서 밝은 시가 앞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쭈욱 건강하셔서 더행복핸음좋겠네욥
잘봤어요..뭉클해지네요ㅜ아이의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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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앙테크리스타> / 아멜리 노통브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읽으면서 이입하다 못해 화가 나는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주인공의 친구로 나오는 크리스타가 너무 꼴 보기가 싫었는데 거기에 주인공 가족의 대처까지도 답답해서 화가 두배로 나는 것이다. 주인공 가족은 도저히 이해가 안 갈 정도의 아량을 보이는데 그것이 마치 숭고한 행위처럼 쓰여있지만 정말 숭고한 행위인지는 의문이다. 현대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숭고하다기보다는 미련한 짓으로 보였는데 어쩌면 문화 차이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답답함은 어쩔 수 없었다. 주인공은 블랑슈라는 십 대 여자 아이다. 누구에게도 주목받거나 사랑받아 본 적이 없고 제대로 된 친구조차 없다. 블랑슈는 같은 대학을 다니는 크리스타라는 아이를 동경한다. 반짝반짝 빛나고, 누구에게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수많은 친구를 거느리고 다니는 크리스타. 어느 날 크리스타가 블랑슈에게 말을 걸고 블랑슈는 그 은총에 어쩔 줄 모르다 무엇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 먼 거리에서 대학을 다녀 새벽같이 등교를 해야 하는 크리스타에게 학교에 가까운 자기 집에서 묵어도 된다고 말한다. 드디어 친구가, 그것도 아름답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친구가 생긴 블랑슈. 그러나 크리스타가 블랑슈와 단 둘이 있을 때 보이는 모습은 다른 이들에게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다르다. 블랑슈를 조롱하고 멸시하고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으려 든다. 블랑슈는 다른 이들과 있을 때 크리스타가 보이는 천사 같은 모습과 자신과 둘이 있을 때 보이는 악마 같은 모습 사이에서 헷갈려하다가 다른 이들과 있을 때의 그녀가 크리스타(그리스도를 연상시키는 이름, Christa)라면 자신과 둘이 있을 때의 그녀는 앙테크리스타(사이비 그리스도를 연상시키는 이름, Antéchrista)라고 생각한다. 블랑슈에 의해 크리스타의 앙테크리스타적 면모가 드러나면서 생기는 사건들이 소설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크리스타가 정말 꼴 보기 싫지만 한편으로 이해가 가기도 한다. 아마 크리스타의 본모습은 앙테크리스타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사랑스럽고 빛나는 아이를 연기하지만 그 내면에서는 자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을 것이고 거기서 오는 불안감, 자괴감을 외면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자신을 꾸미고 연기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크리스타는 블랑슈를 진정한 친구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본모습을 완전히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블랑슈였던 것이다. 결말부에 이르러 크리스타는 이렇게 소리친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끝까지 믿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크리스타는 블랑슈가 앙테크리스타적인 자신의 본모습을 보고도 자신을 사랑하고 믿어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안식처인 블랑슈가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고 경험한 뒤에도 자신을 믿고 사랑해주길 원했던 것이다. 크리스타가 하는 짓이 짜증 나는 건 변함이 없지만 그 속이 어떤 마음인지는 이해가 가니 소설을 읽고 나서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블랑슈라면 아마 진작 크리스타를 손절했을 테니 한편으로는 블랑슈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와는 별개로 마지막에 나오는 블랑슈와 그녀의 부모님의 대처가 아주,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사랑과 배려가 무조건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그들의 대처는 일견 아주 선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매우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블랑슈와 그녀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안다는 것, 자신들이 이토록 선한 사람이라는 것에 스스로 도취된 느낌까지 들었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이기적으로 보였다. 한마디로 그러한 대처는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다. 피해자이지만 그럼에도 비난과 고통을 견디면서 자신들의 도덕적 결백함에 도취되는, 자신들을 오해하고 비난하던 이들이 거짓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진실을 알릴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마치 그리스도처럼 타인들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고 믿고 도덕적 우월감에 젖어가는 모습.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크리스타만큼이나 꼴 보기 싫었다. 사실 이 소설은 아침드라마 보듯이 단숨에 완전히 이입해서 읽었다. 아주 짧고 또 아주 재밌는 소설이다. 어떤 이에게든 별 무리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소설 속 한 문장 '저 애의 이름은 크리스타가 아니야! 앙테크리스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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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각시탈 주인공 이강토 (주원) 원래 형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온갖 함든 일을 다해가며 형 뒷바라지를 했는데 형이 고문을 당해, 정신이 이상하게되어 일본 순사가 되어 돈벌기 시작. 각시탈을 잡기위해 혈안이 되었었는데, 알고보니 형이 각시탈. (사실 정신이 이상해진게 아니라 연기했던거) 각시탈을 쫓다가 형을 자기손으로 죽이게되고, 그와 동시에 형이 각시탈인걸 알게되고 어머니에게 형이 죽었다며 어머니가 잠들어있는 걸 보고 화내는데 어머니는 살해당한 상태.. (친구 형 손에 죽임을 당함) 심지어 형과 어머니 시신은 바로 이 사건이 일어난 날 평소 자기를 안좋게 보던 사람들이 집에 불을 질러서 타게됨. (그리고 이때 불지른 사람은 나중에 이강토가 각시탈인걸 알고 기겁함,) 이후 이강토는 각시탈로 살아가게되서 2중생활을 하게됨. 이 과정에서도 많은일이 있었는데 끝까지 각시탈로 살아가면서 독립에 대한 희망으로 드라마는 끝을 맞이했으나 정작 주인공은 이강토는 가족도 잃고, 절친 친구도 잃고, 같이 싸우던 동료도 잃고, 사랑하는 연인도 눈앞에서 살해당하고, 다 잃은 상태에 고문도 심하게 당하고 심지어 당시 조선인들은 각시탈은 좋아하지만, 이강토는 친일파로 알고있어 이후에 과연 행복했을까는 의문이 드는 주인공ㅠ 출처 도탁스
지구에서 한아뿐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제목부터 지구에서 한아(하나)뿐이다. 달달한 사랑 이야긴데 그 달달함이 조금 이상하다. 달달하긴 한데 지구인과 외계인의 러브스토리고 정말 달달하긴 한데 보다 보면 과연 나는 얼마나 환경을 생각하며 살았는지 곱씹게 된다. 조금 희한하긴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이다. 소설의 주인공 한아는 지구를 사랑하는 의류 리폼 디자이너다. 망가져가는 환경을 안타까워하고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한아는 못 쓰게 된 옷들을 다시 리폼해주는 '환생'이라는 작은 옷 수선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의 남자 친구 경민은 자유분방이란 말이 어울리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한아를 놔둔 채 늘 어딘가로 떠나버리곤 한다. 이번 여름에도 캐나다로 유성우를 보겠다며 떠난 경민. 경민이 떠나고 며칠 뒤 뉴스에 캐나다에 운석이 떨어졌다는 소식이 나온다. 한아는 바로 경민에게 연락하지만 경민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애타게 경민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는 한아. 다행히 경민은 무사히 돌아오고, 연락이 안 되는 경민에게 잔뜩 나 있던 화는 막상 경민을 보자 여름날의 눈처럼 스르륵 사그라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한아는 돌아온 경민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전보다 너무 다정해졌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지도 않는다. 팔에 있던 커다란 흉터가 사라졌고 못 먹던 가지무침도 맛있다며 먹더니, 급기야 경민의 입에서 초록빛이 뿜어져 나오는 걸 목격한 한아. 경민은 진짜 외계인인 걸까? 그렇다면 원래의 경민은 어디로 간 걸까? 이 소설은 누가 뭐래도 달달한 사랑 이야기다. 한아를 만나러 2만 광년 떨어진 지구까지 날아온 외계인과의 러브스토리라니. 오직 한아를 만나기 위해 커다란 빚을 지고 엄청난 거리를 넘어온 외계인. 그 노력만 해도 지극정성인데 그 외계인이 한아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100점짜리 남자 친구다. 늘 한아를 배려하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존중해주는 남자 친구. 유일한 단점은 외계인이라는 것뿐. 한아는 외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외계인이 경민의 겉모습을 쓰고 있다는 사실에 거리감을 느끼지만 점점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외계인에게 자신도 사랑을 느낀다. 경민의 탈을 쓰고 있지 않아도, 초록색 돌덩어리인 본모습이라도 사랑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초록색 돌덩어리라도 사랑할 수 있어. 한아의 말에서 우리는 사랑의 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랑에는 아름다운 외모, 외계인이라는 사실, 성별의 유무, 나와 전혀 다르게 생긴 모습, 그 무엇도 중요치 않다. 상대방을 아끼고 배려하고 생각하고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중요할 뿐. 어찌 보면 오글거리기도 하고 뭐 다 알고 있는 거 아니야 하겠지만 사랑이라 불리는 많은 것들 중에 저 단순한 문장을 만족시키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어떤 사랑은 상대의 존재가 아니라 상대의 능력, 외모, 재력이 사랑의 조건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랑은 저 단순한 문장을 한없이 만족시킴에도 사랑으로 인정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저 같은 성별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한아와 경민의 사랑을 좀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이 소설에서 다른 하나의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환경에 대한 내용이다. 한아는 지구와 환경을 사랑하는 환경주의자고 외계인 경민이 한아에게 반한 이유도 한아가 환경을 사랑하는 모습과 맞닿아 있다. 고래형 외계인들이 지구의 바다 오염에 힘들어하는 고래들을 도와주는 에피소드나 얼음별에 사는 무당벌레 모습을 한 외계인들이 점점 더워지는 별의 환경 때문에 멸종되어가는 모습, 지구를 동경한 한 부자 외계인이 지구를 본떠 만든 어딘가 부족한 제2의 지구, 광합성인들의 행성을 그 모습 그대로 보존시켜주겠다는 우주의 약속 등, 소설 속 우주의 모습들은 지구의 여러 단면들을 떠오르게 한다. 환경오염에 힘들어하는 고래들의 모습은 지구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무당벌레 외계인의 멸종은 지구 온난화와 멸종 위기종들의 모습을, 제2의 지구에서 고통받는 만들어진 생명체들의 일화는 인간이 만든 동물원의 모습을, 광합성인들의 행성을 보존시켜주겠다는 약속은 아마존 열대우림 보존에 관한 첨예한 대립을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수많은 동물들이 멸종되었고 멸종 위기 상태에 있으며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은 엄청난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지어 동물원에서는 인간의 유희를 위해 백호나 백사자 같이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생겨나지 않는 동물들을 강제로 만들어내기도 하며 아마존의 보존과 개발에 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우주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지구의 모습을 보고 지구의 환경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아의 말대로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은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본격 환경친화적 외계 로맨스 소설 되시겠다. 환경은 환경대로, 로맨스는 로맨스대로, 외계인과 우주라는 양념을 적절히 쳐서 비볐더니 이토록 다채로운 모습을 가진 소설이 나왔다. 삶이 힘든 사람에게, 다 때려치우고 싶은 사람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 환경 문제도, 사랑에 대한 고민도 너무나 다정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이 책은 충분히 당신의 삶을 두텁게 감싸 안아준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작가가 건네는 말이 들리는 듯 하다. 당신은, 지구에서 한아뿐이라고. 소설 속 한 문장 소리 없이, 먼 우주의 휘어진 빛들이 두 사람의 저녁에 내려앉았다.
생애주기生涯週記 19
마침 신호가 바뀌어 횡단보도를 건너가던 중이었다. 신호등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김노인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음성의 그 어디쯤에서 ‘건강에 좋습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을 건너며 김노인은 생각했다. 건강에 좋다니, 이게 무슨. 이런 말이 왜 신호등에서 흘러나오는 게지? 요즘은 신호등에도 광고가 들어가는 건가. 건강즙이랄지 뭐 그런 것들 말이지. 하지만 김노인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거의 매일 지나다니는 횡단보도이지만 광고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어본 적은 없고, 이뿐만 아니라 그 어디에 설치된 신호등에서도 광고가 흘러나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가 아주 자본주의에 잠식을 당했군, 쯧쯧. 김노인이 혀를 차며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넜을 무렵 자연스레 깨달아지는 생각이 있었다. ‘건강에 좋습니다’가 아니라 ‘건너가도 좋습니다’였군. 허허, 이것 참. 김노인은 앞에 한 모든 말들을 입 밖으로 꺼낸 것도 아닌데, 괜스레 무안해져 주변을 살피며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김노인은 생각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내가 요즘 건강을 유독 생각해서, 그런 식으로 뭐 귀에는 뭐만 들리게 된 것인가. 하긴 건강을 생각할 나이도 되었지. 나도 이제 환갑을 지나 일흔에 가까워진 나이이니 말이야. 이제 내가 노인이 다 된 건가. 김노인은 새삼스럽게 현실을 자각했다. 김노인은 만 65세를 넘기면서 얻게 된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 덕에 여러 곳을 돌아다녔지만 오늘은 집 앞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철도노조 파업이 하루 만에 철회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철도의 적자와 관련된 고질적인 문제에 노인의 무임승차 비판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김노인도 어느 정도는 그것에 동의하기도 하는 입장이었다. 그 이유로 오늘 지하철을 타지 않겠다고 딱히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자주 타는 지하철을 타지 않으니 자연스레 밀려오는 생각이었다. 이 나라는 참 문제가 많군. 노인 문제가 예삿일이 아니야. 출생률은 심각한 수준이고. 이 나라가 어찌 되려는지. 하지만 그렇게 비판 비슷한 것을 하려니 결혼을 하지 않은 자신과 자식 역시 낳아보지 않은 자신이 동시에 떠올랐다. 하지만 일말의 반발심에 다른 생각도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국가에 기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어폐가 있지 않은가? 출생률이란 말이지. 국가가 소위 ‘정상 가족’으로 인정하는, 가령 아버지, 어머니, 자식으로 구성된, 그러한 가족의 한 일종일 뿐인 형태만 가족으로 인정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족 형태를 수용해야 하고, 어떠한 형태의 가족이라도 모두 법적으로 허용하며, 혜택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국민들의 인식을 바꿔야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이 말이야. 김노인은 자신이 너무 진지해진 것은 아닌지 한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내 비판 정신이 되살아났다. 나는 국가에 기여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소위 ‘정상 가족’으로 분류되는, 이제는 허울에 가까운 제도 아닌 제도에 기여하지 않았을 뿐, 세금을 미납한 적도 없고, 젊은 시절 국방의 의무도 다했을 뿐만 아니라, 뭐 굳이 흠을 잡자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제때 반납하지 않은 정도의 일탈이 있었을 뿐이지 않은가 하고 말이야, 하고 김노인은 생각했다. 물론 김노인이 평생 내온 세금은 미미한 소득에 걸맞게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미미한 기여도 기여라면 기여였고, 조금 더 자신을 변호하자면 내가 굳이 국가에 기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이어서 생각했다. 국가에 별다른 기여를 한 적은 없지만 별다른 피해도 주지 않았지, 하고 생각하며 김노인은 잠시 자신의 삶이 새삼 대견해지기도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철회했다. 사실 김노인 역시 혼인을 통한 ‘정상 가족’을 꿈꿔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 평생 사람들이 나를 독신, 혹은 비혼주의자? 그래 요즘은 그런 말을 쓰더군. 어쨌든 그 정도로 알고 있지만, 나는 한 번도 독신이니 비혼이니 하는 것을 주장한 적이 없는걸. 오늘따라 입맛이 쓰디쓰군. 그 생각 끝에는 김노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품을 크게 한 뒤였기 때문이다. 공원에 다다르니 벤치 두 개 중 하나가 비어있었다. 벤치 하나에는 얼핏 봐도 이십 대 중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가 자신이 마신 소주병 여럿을 자신의 발치에, 그리고 벤치 위에도 몇 올려놓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비어있는 벤치 등받이에는 전에 없던 ‘노인석’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공원의 벤치에 웬 노인석인가 싶었지만 사실 그것은 누군가가 낙서해놓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누군가가 낙서해놓은 것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그 낙서의 내용이라는 것이 고작 ‘노인석’이다 보니 그렇게 고약한 낙서 같지는 않았고,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일부러 자리를 준비해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심지어 ‘노약자석’도 아닌 오로지 ‘노인석’이라니. 그렇다면 ‘노인석’이라고 적어놓은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또 노인으로서 노인석에 앉아보아야겠군, 하고 김노인은 생각했다. 벤치에 앉아 옆 벤치의 졸고 있는 남자를 보니 저렇게 술에 만취되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노인석’을 피해 앉을 정도의 사리 분별은 있고, ‘준법정신’이랄 것까지는 없겠지만 일종의 윤리 의식 정도는 있는 자이군, 하고 다소 흡족해하는 김노인이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전적으로 시선을 강탈하는 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김노인은 옆 벤치의 남자를 계속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올 정도로 꽤 길었는데, 얼핏 보면 드레드락을 한 것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레게파마인지 뭔지 그 요란한 머리를 한 모양이군, 하고 자세히 보니 한껏 멋을 낸 머리가 아니라 오랫동안 감지 않아 머리카락들이 제멋대로 뭉쳐 굳은 모습의 머리 모양이었다. 또한 입고 있는 점퍼 역시 멀리서 보면 흡사 에나멜 점퍼인가 싶기도 했지만 때가 낀 채 오래 방치되어 광이 나고 있는 것이었다. 제법 자유로운 사람이군. 젊었을 때의 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김노인은 일어나 남자에게 다가갔다. 흔들어 깨워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까 싶었지만 그의 뭉친 머릿결 사이에 끼어죽은 날벌레의 사체를 보고 흠칫 놀란 김노인은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제법 자유로운 백수인가, 아니면 실연당한 사람인가. 뭐 그런 생각도 잠시 했지만 김노인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이었다. 늦가을 이른 오후였지만 그가 동사할 위험 같은 것은 없을 날씨이니 잠이 깨면 집으로 돌아가겠지, 하고 생각했다. 노인석에 앉은 김노인은 그러나 스스로를 노인이라고 칭하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노인이라는 호칭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人’자가 붙는 호칭들을 떠올려보게 되는 것이었는데, 당장 떠오르는 것은 군인과 시인이었다. 김노인으로서는 항상 의문이었던 것이 소설가에게는 집 가(家) 자를 붙이면서 시인에게는 왜 사람 인(人) 자를 붙이는지였다. 단지 소설을 쓰고 시를 쓰는 사람일 뿐인데 어째서 그런 차별화가 생긴 것인지 말이다. 소설가는 일종의 직업적 호칭 같았지만, 시인은 뭔가 자연인을 부르는 그런 느낌도 드는 것이었는데, 자연인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마치 자연과 혼연일체 된 인간 정도로까지 느껴지는 것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시인 역시 시와 하나가 돼버린 사람 정도로까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 느낌에 일리가 있는 것이 군인 역시 젊은 시절 군대에서 병사로서 받던 취급이나 군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떠올리면 군인 역시 직업군인을 제외하고는 군에 소속된, 더 나아가 군에 잠식된 인간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노인 역시 ‘늙음’과 하나가 돼버린 늙음 그 자체의 인간이라는 소리인가. 나는 늙음 그 자체인가, 하고 김노인은 다소 정색하며 생각했다. 그때 옆 벤치의 남자가 “하……, 시발.”하고 낮게 읊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작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인데 그 행위가 어찌나 요란했던지 벤치 위와 발치에 놓인 소주병이 죄다 우르르 쓰러졌다. 그리고는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김노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본인의 행색과 너무나도 어울리는 꾀죄죄한 슬리퍼를 고쳐 신고 공원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김노인은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차다가 몸을 일으켜 남자가 앉아 있던 벤치 앞으로 갔다. 남자가 벤치에서 사라지고 나자 남자가 앉아서 졸고 있을 때는 그의 육중한 몸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노인석’ 글자가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 공원의 두 개의 벤치에는 모두 ‘노인석’이라는 낙서가 되어 있는 것이었고, 한마디로 이 공원의 모든 벤치는 ‘노인석’인 셈이었다. 이 공원에 노인이 아닌 자는 앉을 자리가 없다는 듯이. 하지만 그 사실을 바로 배신하듯이 두 개의 노인석 중 하나에는 고작 이십 대 중후반의 남자가 방금 전까지 아무 부담 없이 앉아 졸고 있었던 것이다. 김노인은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그래, 젊은 청춘이 많이 고단했을 테지. 그러고는 소주병을 집에서 메고 나온 낡은 백팩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벤치 위에 두 병, 벤치 앞에 네 병. 그러면 육백 원이군. 김노인의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퍼지는 것이었다. 백팩의 주머니를 닫고 김노인은 끙, 하고 일어섰다. 김노인마저 공원을 떠나고 나자 빈 노인석만 낡고 빈 그네며 시소와 휑하니 공원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우주보다 낯설고 먼> 김연경
<우주보다 낯설고 먼> / 김연경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공간을 이동할 수는 있지만 시간을 이동할 수는 없다. 유일하게 허락된 시간의 이동은 앞으로 흘러가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과거는 우주보다 낯설고 멀다. 우주에 도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만 과거에 도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 우리의 정신이 과거에 닿는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이 물리적 과거 자체는 아니다. 그것들은 과거가 내 몸과 정신에 남긴 흔적과 잔향에 가깝다. 어떤 사소한 것을 계기로 우주보다 낯설고 먼 그것들은 불쑥 깨어나 도달할 수 없는 과거의 그림자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쉽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현실이 힘들고 바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우주보다 낯설고 먼 과거의 그림자 속으로 너무나도 쉽게 독자를 끌고 들어간다. 그것도 아주 깊숙이. 우리 집은 아들만 셋이다.(아들 셋을 키운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크고 나서 우리가 어릴 때 했던 짓들을 생각해보면 세 명 다 무사히 성인이 된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중에서도 장남인 나는 그나마 얌전했고 부모님 말을 잘 듣는 편이었으며 공부도 잘했다. 우리 집은 그렇게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부모님은 나를 학원에 보내고 피아노와 영어를 가르치며 많은 기대를 걸었다. 네가 잘돼야 동생들도 다 잘 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었다. 어찌어찌 좋은 성적을 유지해 좋은 고등학교와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고 지금은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 열심히 대학원 생활을 하는 중이다. 나는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 부모님은 어떤지 모르겠다. 내가 동생들이 자연히 잘 될 만큼 충분히 잘됐다고 생각하고 계실까? 넉넉하지 않은 집의 삼 형제 중 장남으로 살아온 나는 소설 속에서 연수의 이야기가 나오지 시작하자마자 과거로 쑥 끌려들어 갔다. 삼 남매(삼 형제보다는 그나마 낫지 않을까.) 중 장녀인 연수는 두 동생들을 돌보는 믿음직스러운 맏이이며 공부도 잘한다. 책을 좋아하고 아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우며 부모님이 안 계실 때면 동생들의 엄마 역할을 하는 연수. 내 어릴 때와 너무 똑같아서 놀라울 정도였다. 공부에 욕심이 있는 것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것도, 어른스러운 척하는 아이인 것도, 부모님이 안 계실 때면 엄마이자 아빠가 되어 동생들의 손을 씻기고 밥을 먹이고 숙제를 봐주는 것도 어릴 때의 내 모습이었다. 아빠가 매일 술을 마셨던 것도, 엄마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잘 사는 집 아이들과 그 집 책장에 꽂혀있던 수많은 책들이 부러웠던 것도 모두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나는 연수가 집에서 늘 맡았던 냄새를 잘 알고 있다. 볕이 들지 않는 반지하 집의 그 쿰쿰하면서도 손에 잡힐 듯한 묵직한 냄새를. 검은 얼룩처럼 보이는 곰팡이가 핀 벽지와 낮게 깔려있는 축축한 공기와 창문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신발과 가로등이 켜지면 불투명한 창문을 통해 번지던 별 모양의 주홍색 불빛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연수도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주보다 낯설고 먼>은 넉넉하지 않은 한 가정의 과거를 시작부터 끝까지 충실하게 묘사한다. 너무나도 충실한 묘사는 독자들이 사실은 갈 수 없는 과거에 도달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자신이 과거로 돌아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이 소설 속에 그려진 과거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생생하며 보편적이다. 그것이 <우주보다 낯설고 먼>이 우주보다 낯설고 먼 과거에 독자를 데려다 놓는 비결이다. 이 소설의 놀라운 점은 충실한 재현에 무언가를 더 첨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소설은 허구의 이야기를 쓰는 장르고 작가는 늘 유혹에 시달린다. 놀라운 사건을 넣고 싶다거나 충격적인 비밀 혹은 반전을 만들고 싶다거나 대단한 철학을 논하고 싶다거나 하는 유혹들에. 그러나 이 소설에는 그런 것이 없다. 작가는 그러한 유혹들을 버텨내고 과거의 보편적인 한 가정의 모습을 따라가며 자세히 기록하고 꼼꼼히 재현하는 것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사건의 해결 혹은 반전의 충격에 매몰되거나 철학적 질문에 답해야 하는 부담 없이 각자 자신의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그들은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리고는 스스로에게 각자의 질문을 던질 것이다. 나는 어떻게 이런 사람이 되었나. 나는 어떻게 살아왔고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는 연수, 연희, 형우 삼 남매에게 각각의 흉터를 남겼다. 나에게도 과거가 남긴 흉터가 있다. 오른쪽 허벅지에 길게 그어진 흉터가 하나 있고 눈썹에도 짧은 흉터가 하나 있다. 그래서 지금도 눈썹의 일부가 자라지 않는다. 흉터, 상처, 고통, 슬픔, 기쁨...... 그동안 내가 겪어온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좋은 것만 추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전부 안고 가는 수밖에. 나는 항상 그렇게 자라 왔다. 소설 속 한 문장 연희는 엄마 목을 한 번 끌어안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습기와 곰팡이 때문에 이불 한 채가 고스란히 썩어버린 음침한 반지하 방에는 참 어울리지 않는 장면이기도 했다.
<종이 동물원> 켄 리우
<종이 동물원> / 켄 리우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제 생각을 쓴 글입니다.) <종이 동물원>, 꽤 두꺼운 켄 리우의 단편집이다. 총 열네 편의 소설이 들어있으며 열네 편 전부 SF 혹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소설들이다. 작가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켄 리우는 중국인이다.(물론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긴 했지만) 그러다 보니 소설 속에서도 중국의 문화, 역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동아시아 역사에서 한, 중, 일을 서로 떼 놓고 얘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자연스럽게 한국, 조선에 대한 이야기들도 군데군데 출현한다. 어려운 과학적 설정이나 원리 같은 것도 그다지 없어서 한국 독자가 처음 SF 소설을 읽을 때 추천할 만한 소설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한국)의 이야기가 나오는 만큼 몰입하기 쉬울 테니 말이다.(두껍긴 하지만 단편집이라서 시간 날 때 한편씩 읽기 딱 좋다) 켄 리우의 소설은 지난번에 리뷰했던 테드 창의 소설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테드 창의 소설이 소설을 빙자한 과학적 시뮬레이션(?)에 가깝다면 켄 리우의 소설은 Science "Fiction"이다. 켄 리우의 소설 속에서 과학은 Fiction의 설정이자 배경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과학을 바탕으로 한 배경 속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는가라고 할 수 있다. 켄 리우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Science가 아니라 Fiction이므로 <종이 동물원>에 실린 소설들에는 SF가 아닌 소설도 많다. 심지어 표제작인 <종이 동물원>부터가 SF가 아니라 판타지 소설에 가깝다. 다른 수록작들도 마찬가지다. <상태 변화>는 현대 판타지이고 <파자점술사>는 중국의 전통적 주술 문화, 파자점이 이야기의 주춧돌이 되며 <즐거운 사냥을 하길>에서는 중국의 요괴와 SF적 요소가 뒤섞여 매력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이게 켄 리우라는 작가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SF 작가도 아니고 판타지 작가도 아니며 장르문학 작가라고 한정 짓기도 꺼림칙하다. 그는 장르의 경계나 영역에 얽매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SF적 요소가 필요하다면 SF를, 판타지적인 배경이 필요하다면 판타지를, 역사나 신화적 요소가 필요하다면 그 또한 거리낌 없이 소설 속으로 끌어들인다. 정통 SF 소설만을 애정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에 오히려 실망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의 소설에는 경계도 제한도 없다. 개인적으로 켄 리우라는 작가가 이렇게 다양한 소재와 배경을 바탕으로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소설을 쓰게 된 데에는 그의 삶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는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에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된다. 많은 혼란과 의문이 그의 청소년기를 뒤덮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중국인인가 아니면 미국인인가. 나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이렇듯 수많은 의문 끝에 그는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내가 어디 속하는지 혹은 어느 집단의 일원인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작가가 된 켄 리우는 마찬가지 생각으로 소설을 써 내려갔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쓰는 소설이 SF인지, 판타지인지, 역사나 신화 소설인지가 아니라 내가 쓰는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생각으로. "나는 판타지와 SF를 구별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기로는 '장르 문학'과 '주류 문학'을 구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켄 리우는 머리말에서 위와 같이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들을 한편씩 읽어나갈 때마다 계속해서 위의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저 문장이 켄 리우의 소설들에 새로움과 놀라움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경계가 허물어질 때, 구분이 사라질 때,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합쳐질 때 새로운 것들이 태어나기 마련이니까. SF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과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모노노아와레>를, 환상과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즐거운 사냥을 하길>과 <송사와 원숭이 왕>, <파자점술사>를, 소설 속 드라마를 느끼고픈 이들에게는 <종이 동물원>과 <레귤러>,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을 권하고 싶다. 만약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소설집 전체를 앞에서부터 차례차례 읽어나가길 바란다. 소설 속 한 문장 이것이야말로 정상적인(regular) 세상의 모습이다. 명쾌함도, 구원도 없다. 모든 합리성의 끝에는 그저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과 품고 살아가야 할, 그러면서 견뎌야 할 믿음뿐이다.
일본이 꿈꾸면 한국이 이룬다! 🇰🇷 2021 ver
스토리 있는 천재에 돌아버린 일본 특히 예술, 스포츠계 천재를 엄청나게 좋아함 그래서 일본이 꿈꾸는 걸 한국이 이뤄주는 중ㅋ 피겨 선수 김연아 피겨 볼모지 한국에서 독보적으로 성장하며 세계신기록을 11회 갈아치운 선수. 온갖 역경이 있었지만 압도적인 실력과 멘탈로 피겨계의 황제가 됨. 당시 일본에서 엄청 밀어주던 마오와 비교되며 더 열등감 폭발 피아니스트 조성진 만화 <피아노의 숲>은 일본의 천재 피아니스트가 세계 최고 피아노 콩쿠르에 수상하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는 내용의 만화. 2015년 최연소로 조성진이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ㅋㅋ 가난했던 환경과 쇼팽 콩쿠르에서 누군가 고의적으로 1점이라는굉장히 낮은 점수를 주었다는 것까지 많은 과정이 유사함 게다가 피아노의 숲 악역은 한국인들이었음ㅋㅋ 실제 공동 3위를 했던 피아니스트 임동혁 임동민 형제가 모티브. 만화에서는 6위도 못하는 쩌리들로 그려지는데, 당시 4위가 일본인 피아니스트여서 더 배 아팠던듯ㅎ 발레리나 박세은 만화 <스바루>의 주인공은 불우한 환경들을 모두 이겨내고 국제 발레 콩쿠르 상을 모두 휩쓸어 버림. 하지만 실제 로잔느 국제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사람은 당시 18세 박세은. 4대 발레 콩쿠르 중 3개의 대회를 모두 섭렵. 별명은 발레계의 김연아. 이번에 프랑스 파리 오페라발레단 에투알(수석무용수) 됨. 발레단 352년의 역사 중 무려무려 동양인 최초 !!! 축구선수 손흥민 현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 아시아인 프리미어 리그 최다 이 달의 선수, 통산 득점, 단일 시즌 득점 기록 보유자 컬링 선수단 팀 킴 내용 위 트위터 참고 배구선구 김연경 일본의 국기 취급받는 여자배구지만 정작 아시아에서 월드클래스 초대형 공격수는 김연경이 처음ㅋㅋ 190이 넘는 장신이지만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도 170이 안될정도로 키가 작아 리베로와 세터 역할이었음. 이후 몇년사이에 키가 폭발적으로 자라면서 수비와 공격 모두 가능해진 사기캐. 일본이 동메달 딴 런던 올림픽에서 김연경은 MVP ㅋ 바둑기사 이세돌 그나마 현실 반영한 <고스트 바둑왕> 일본 만화 중 드물게 한국인이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캐릭터로 등장함. 모델은 고영하와 이세돌이라고... 그렇지만 만화에 나오는 일본인 캐릭터들의 묘사 자체가 주무대인 일본을 엄청 버프해 준 것에 가까움. 이세돌은 12세의 나이로 최연소 바둑기사 입단, 세계 3위의 연승기록을 가지고 있고 인공지능을 상대로 최초의 승리를 거둔 인물 봉준호 감독 영화 예술의 탄생지인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영화를 산업으로 이끈 할리우드에서 가장 권위 있는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4개 부문 석권 +2021 배우 윤여정 영화 미나리로 한국 최초 오스카 여우조연상 수상 아시아 여성 배우로는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두 번째로, 윤여정이 64년 만 가수 방탄소년단 내용은 다들 알테니 생략 유도선수 안창림 재일교포 3세로 도전 끝에 동메달...! 이거 만화에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양궁 선수 안산 장민희 강채영 한국 여자 양궁 9연패의 신화를 거머쥔 선수들 특히 맨 왼쪽의 안산 선수는 01년생 어린 나이임에도 오직 실력으로 국대 선발됨ㅋㅋ 딱 일본 만화에 꼭 등장하는 어리지만 차분하고 이성적인 캐릭터 ㅋㅋㅋ 양궁 선수 김제덕 김우진 오진혁 여기서 맨 왼쪽 김제덕 선수 04년생 고딩이지만 재능충 노력충 알고보니 소년가장 일본인들이 만화에서 환장하는 나루토 록리st 캐릭터... 그리고 오진혁 선수 끝. 이하생략 일본 스포츠 만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천에서 용난 천재적 캐릭터 다수 보유한 대한민국...🇰🇷 출처 펄럭~!
누가봐도 N재질인 손석구 전역 후 장래희망
2022/11/30 유퀴즈 170회 제목에 있지만 엠네글자 사족 있음 프로필상 179cm라길래 너무 작은거 아냐? 했는데 사실 문제는 그게 아님 농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나이 : 26세 자기 입으로도 이게 말도 안되는건뎈ㅋㅋ으하하항하고 웃음ㅋㅋㅋㅋㅋ 오죽하면 유느도 아니 뭐… 각자.. 아니.. 이럼ㅋㅋㅋㅋㅋㅋ 어쩌다가 농구선수를 하고 싶었냐고 물어봄 역 시절에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다녀왔대 궁금해서 사진 구글링해봄 뽀송뽀송 아무튼 영어 잘해서 파병시절에 통역으로 사우디아라비아 티크리 바그다드 등등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만난 군인들이랑 농구하는게 너무 재밌었다고ㅋㅋㅋ 같이 보던 언니(S) : 그럼 통역으로 말뚝 박을 생각을 해야지 왜 농구선수를 해? 나(N) : 와 서사 빌드업 오졌다 이제 농구선수 되고 해외팀 스카웃되면 인터뷰때 어 나 통역 필요없다 하면서 영어로 딱! 크으… 간지다 진짜 언니 : 아 좀 닥쳐봐 조셉… 옷이 왜저래… 하다가 다음 컷에서 존나 놀람 구찌 클러치까지 들면 일수… 그거 맞지…? 알고보니까 나의해방일지 구씨 분장?코스프레? 한거라내요 매직으로 그린 턱수염 존나 킹받음ㅠㅠ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맞아요 그런 생각을 혼자 했어요!!! 하고 공감하고있음ㅋㅋㅋㅋㅋㅋ 근데 누구나 선수돼서 내 최애팀으로 드래프트하는 상상 하지 않나? 나만 하나?ㅎ 26살 농구선수 목표 27살 신인 드래프트 28살 프로 데뷔 완벽한 플랜 그리고 아… 이건 찐이다.. 이사람은 진짜 N이다.. 느낀 장면 최종목표 : NBA 좃간지팀에서 뛰다가 시즌 끝나고 성황리에 귀국하는 나 를 상상하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재석 ㅈㄴ 무도시절에 하하랑 형돈이가 황당무계한 설정 짜면서 상황극할 때 짓던 표정 다시 나옴ㅋㅋㅋㅋㅋ 마지막짤 눈이 찐이라고요 우승? 덩크대회? ㄴㄴ >>인천공항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귀국하기<< MBTI 찾아본 결과 ENFP ➙ INFJ 라고 합니다 원본 영상 출처 아 진짜 조세호 분장은 왜이렇게 웃기고 ㅋㅋ 손석구 진짜 찐이다 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