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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다음회차내일꼭뵈어요^^

안녕하세요독자님들 ♡ 로라가 기태의 모든비밀을 알아버리고 복수를 다짐한 이중요한시점, 몇일씩이나 다음회차가 업뎃되지않아 답답하셨으리라 생각듭니다~^^ 함께 연재하던 '두개의달' 소설이 예상치못하게 연재하던 다른곳에서
좋은기회를 얻어 좀 더 많은 독자님들을
만날 수 있게되어 그소설을 전체적으로 손보고 회차업뎃에 신경을 쓰느라, 자연스레 그놈뺏이 늦어졌습니당! 내일 되도록이면 2회분가지고오도록 노력해볼테니, 조금만더 기다려주세요^^ 늘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 하루마무리 잘하시길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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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모든일이 잘되시길 바랩니다
♤♧♤♧♤♧경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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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5. 너희 잘 봐, 내가 얼마나 얘를 사랑하는 지.
“어머….” “전화 안 받기에… 와봤더니.” 기태였다. 기태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살짝 풀린 동공, 은은하게 풍겨져 오는 알싸한 알콜 냄새. 로라는 가만히 기태를 올려다 보았다. 술에 취한 듯 기태가 살짝 흔들렸다. “가세요.” “죄송… 합니다.” 돌아서는 로라의 팔을 붙잡는 기태였다. 그런 기태의 손을 뿌리치는 로라. 기태는 다시금, 그런 로라의 팔을 쥐었다. “미안 합니다.” “됐다구요.” “사과 하고 싶었어요.” “가시라구요.” 로라는 그런 기태의 손을 다시금 뿌리치며 등을 돌렸다. 참고 있었는데, 괜찮은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눈물이…, 눈물이 나고 있었다. 젠장할. “내 사랑은…” “…….” “이렇게… 왜… 매번….” “…….” “피어보기도 전에….” “…….” “망가지냐.” 기태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로라의 눈물이 툭, 떨어졌다. 기태는 다시 로라의 어깨를 조심스레 쥐었다. 사실은 기태도 울고 있었다. “많이 좋아했다는.” “…….” “많이 좋아하고 있다는.” “…….” “많이 좋아할 거라는.” “…….” “그 말로는 다….” “…….” “받지 못…하겠죠.” “…….” “용서.” 기태는 두 눈을 감았다.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리곤 돌아선 로라 앞에 무릎을, 끓었다. 다시금 무릎을 꿇은 기태였다. 그리고 그 광경을 멀리서 모두 지켜보고 있는 수정이었다. “아니… 차기태… 네가 왜 무릎을 꿇어….” 수정의 손에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사랑해 달라, 용서해 달라, 구걸하고 있는 상대의 여자에게 치가 떨릴 만큼 화가 치밀었다. 수정은 차에서 내려 로라에게 가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다, 그런데. “빠지시죠.” “……?” 도헌이었다. 트레이닝복 차림의 도헌이 수정의 앞을 가로막았다. 수정은 도헌을 빤히 바라보곤, 이내 로라의 남자 친구라는 것을 깨닫곤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럼 그쪽이 뭐 어떻게 해보세요.” “…….” “우리 오빠가 왜 그쪽 여자 친구한테 무릎을 꿇어야 해요?” “…….” “납득이 되질 않거든.” “……” “무릎이라면 그쪽 여자 친구가 꿇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정은 도헌에게 따져 물었다. 그러자 도헌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딱딱하게 수정을 바라보다 붉은 입술을 열었다. “웬 줄… 아직도 몰라?” “…뭐라구요?”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저 남자는.” “…….” “이제 널 안 사랑한다는 거 아니냐.” “……!” “그러니 네가 아닌… 내 여자 친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겠지.” “… 이봐요.” “이 보고, 저 보고 간에. 남자 친구인 나도 가만히 있는데.” “…….” “이제 여자 친구도 뭣도 아닌 네가… 왜 나서.” “뭐라구요?” 도헌이 죽일 듯이 수정을 노려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수정은 어이없다는 듯, 도헌을 빤히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내 여자 친구 그만 괴롭혀.” “……” “안 그래도 쟤가 얼마나 여리고, 얼마나 순진하고, 얼마나 순수하고 얼마나 눈물이 많고…” “…….” “얼마나….” 이상했다. 쿵, 쿵, 쿵. 도헌의 심장이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로라를 떠올리자, 로라의 사랑스런 얼굴을 떠올리자 심장이 병에 걸린 것처럼 팔딱 대기 시작했다. 도헌은 말을 하다 멈추곤 얼떨떨한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로라가 울고 있었다. 여리고, 순진하고, 순수하고, 눈물 많은 로라가… 울고 있었다. “…나.” “…….” “오호라… 좋아하냐.” 남자 친구인 척 해달랬는데, 감정 이입을 너무 심하게 했나보다. 도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금 수정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만 괴롭…” 그때였다. 로라의 고함이 들려왔다. “아 그만 하시라구요!” 순간, 도헌은 로라의 고함을 듣자마자 튕기듯 로라에게 달려갔다. 수정은 순식간에 사라진 도헌을 바라보았다. “그만 못 해?!” “구도… 발?” 도헌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로라 앞에 우두커니 섰다. 기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도헌을 올려다 보았다. 도헌이 화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는 기태를 차갑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됐다잖아.” “…….” “가시라잖아.” “…….” “그만 하시라잖아!” 도헌이 소리쳤다. 로라는 훌쩍 훌쩍 눈물을 훔치며 놀란 얼굴로 도헌을 바라보았다. “너… 어디서… 튀어 나온 거야.” “… 오로라, 그만 흔들어.” “…….” “아니? 그만 힘들게 해.” “…….” “내 여자 친구…” “…….” “그만 울리라고, 새끼야.” “악!” 하며 도헌이 무릎을 꿇고 있는 기태를 향해 주먹을 강하게 날렸다. 로라는 악,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동시에 지켜보고 있던 수정 역시 이쪽으로 달려왔다. 도헌의 주먹에 나가 떨어진 기태는 허망한 듯,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아스팔트 바닥에 널브러졌다. 달려온 수정은 도헌의 가슴 팍을 주먹으로 내려치며 씩씩 댔다. “네가 뭔데 우리 오빠 때려! 너희들이 뭔데 우리 오빠 아프게 해!” “그만들 좀 해.” “……” “얘… 언제까지 괴롭힐 작정이냐고.” 도헌은 씩씩대며 놀라, 자리에 주저앉은 로라를 일으켰다. 그리곤 분노를 억누르며 로라의 어깨를 따스히 감쌌다. “다신 내 여자 친구 찾아와서… 무릎 꿇는 짓거리 따위 하지 마라.” “…….” “그 땐 한 대 때리는 걸로 안 그쳐.” “…….” “가자, 로라야.” 로라야. 쿵, 쿵, 쿵. 로라야, 하는 따스한 도헌의 음성에 이번엔 로라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로… 라야? 미… 미쳤나 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귀까지 화끈거렸다. 로라의 온 몸의 피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오른 손을 맞잡은 도헌에게까지 자신의 두근거림이 전해질 것만 같았다. “… 그만들 연기하시죠.” 그때, 널브러진 기태가 슬프게 미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휘청이며 자신을 부축하는 수정의 손을 뿌리쳤다. “연기… 그만 하라고, 이제.” “…….” “두 사람… 거짓말 하고 있잖아.” “…….” “나 때문에.” 기태의 말에 수정의 눈이 커졌다. 덩달아, 로라의 눈도 커지고 말았다. 로라는 흠칫 놀라며 도헌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도헌은 미동도 않았다. 굳은 얼굴로 그저 정면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까지… 거짓말까지 해가며… 나를 왜 밀어내려 하냐고.” “…….” “아직… 날, 자의적으론 밀어내지 못해.” “……” “구도헌씨까지 끌어들인 거잖아.” 휘청이는 기태를, 도헌이 바라보았다. 그리곤 피식, 낮은 미소를 입에 걸었다. 로라는 들켜버린 건가 싶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잡고 있는 도헌의 손을 더욱 쥐었다. 곧, 도헌이 입술을 열었다. “거짓말….” “구도발.”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도헌은 무채색의 얼굴로 기태를 응시하다 곧, 자신의 옆에서 떨고 있는 로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로라의 어깨를 쥐어 자신 쪽으로 돌렸다. 로라는 어,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희 잘 봐.” “…….” “내가 얼마나 얘를.” “…….” “사랑하는 지.” 순간이었다. 억, 소리도 로라가 내지 못 했다. 순식간에 도헌의 입술이 로라의 입술을 뜨겁게, 아주 진하게 빨아 들였다. * * * 오랜만입니다^^! 중단은 하기 싫었어요, 더디더라도 꼭 완결은 짓고 싶어 돌아왔습니다! 마지막까지, 우리 오구 커플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Chapter 55. 당분간 너, 내 ‘자기’ 해라.
“남자…친구요?” 수정의 질문에 로라는 머뭇, 거렸다. 머뭇거리는 로라의 모습을 수정은 의아스럽게 바라보았다. “있…어요.” 그 말을 하는데 로라의 심장이 찌릿, 했다. 수정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이 여자…무엇을 알고 날 찾아온 걸까?’ “다짜고짜…이렇게 찾아와서…상담을 나누기엔…” “…네?” “우리 둘 사이가…그리 가까운 건 아니라…많이 망설였어요.” “…….” “그런데…도저히, 말을 할 곳이 없어서.” 수정은 자신 없다는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여전히 긴장한 채, 로라는 수정을 빤히 바라보았다. 침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하였다. 꼭, 유부남 꼬시다 걸린 불륜 녀가 된 심정이었다. “그래도 앞에서 눈물 한 번 보였다고.” “…….” “두 번은…쉬울 거란 생각에.” 수정은 들었던 고개를 들어 로라를 올려다보았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였다. 로라는 당황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이리…무례함을 범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니…저…저기.” “남자…친구가…” “…….” “양다리인 것 같아요….” “예, 예?!” “저는…이제 어떡하죠? 흐윽…” 수정의 말에 로라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말인 즉슨, 그 양다리의 상대가 ‘로라’인 것은 수정이 아직은 모른다는 것!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틀어막고서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는 로라였다. 수정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가녀린 어깨를 들썩였다. “그…그게…무, 무슨…” “많이…놀라셨죠…, 저도 너무 놀라, 처음엔 믿을 수 없었어요.” “저…그러니까 그게….” “실은 제 남자 친구가…” “네?” “여기 바로 옆…동물 병원…” “……!” “원장…선생님이거든요….” “아…!” 쾅, 쾅, 쾅! 로라의 귓가에 판사봉이 쾅, 쾅, 쾅 크게 내려쳤다. 그랬다, 이로써…맞을까, 아닐까 미련과 의심, 희망과 고문 사이에서의 기나긴 밀당은 끝이 나버렸다! * * * 기태는 괴로운 듯 머리를 감싸고 운전석에 기대었다. 머리는 더욱 지끈거려다. 두통약을 먹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어, 벌써 세 알 째 흡입 중이었다. 병원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주차장에 한 시간 째 버티고 있던 기태. 곧 기태는 차에서 내리기 위해 지그시 감았던 눈을 떠, 정면을 바라보았는데. “……?!” 수정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또 무슨 일로…, 기태는 한숨을 내쉬며 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고리를 쥐었던 손을, 놓아버렸다. - RRRRRRR 아버지, 새 어머니, 번갈아 가며 휴대폰에 불을 내고 있었다. 기태는 성가시다는 듯, 전원 버튼을 눌러 휴대폰을 끄고 말았다. 자신의 숨통을 조여 오는 통에, 기태는 이제 숨마저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기태는 습관처럼 로라를 찾았다. 두 눈을 감아도, 선명히 떠오르는 로라의 얼굴. 밝고, 활기찬 그녀를 떠올리면 기태의 갑갑해져 오던 숨통이 조금은 트이는 듯 했다. “로라씨….” 기태는 로라의 이름을 기침처럼 내뱉으며, 시동을 걸었다. 로라에게 가기 위해서, 아니…자신이 살기 위해서. * * * “어디 갔데?!” 도헌은 일찍 볼 일을 보고 병실로 돌아왔는데 로라는 없고, 덩그러니 침대 위에 메모지 하나만 놓여 있었다. -구도발. 이 몸은 워커홀릭이라, 도저히 못 쉬고 워커 하러 간닷! 술 마시러 간 거 아니니까, 늦게 들어와도 의심하기 없기. 너 오늘 피곤하면 집 가서 자도 됨. ㅃㅃ “뭐야…이제 와서 워커홀릭인 척 하기는.” 도헌은 어깨를 으쓱하며, 사 온 아이스커피를 내려놓았다. 가게에 간 거겠지, 도헌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오후 2시. 밥은 먹었으려나…, 의사 선생님이 무리하지 마라고 했는데. 도헌은 손목시계를 한참 내려다보다, 이내 로라의 가게로 가기 위해 다시금 커피를 쥐었다. 그때, - RRRRRRR “어….” 집이었다. 집에서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도헌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선뜻 전화를 받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전화가 곧, 끊겼고 10초 정도 후에, 다시금 걸려왔다. 집이었다. 더는…, 피할 길이 없다고 도헌은 판단하였다. “여보세요.” “한국이지, 너? 당장 집으로 와라.” “엄…마.” “엄마고, 아빠고, 부를 것 없어. 당장 와.” “…오늘은 못가요.” “내가 그리로 찾아갈까?!” “내일…갈게요. 죄송합니다.” 하고 도헌은 전화를 끊었다. 분명, 지혜의 짓일 테였다. 도헌은 한숨을 내쉬며, 이젠 자신의 전화번호 목록부에선 지워지고 없는 그녀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여보세요.” “한지혜.” “어머님 전화…받았니?” “…뭐하는 짓이냐?” 역시, 그녀의 짓이었다. 마치 도헌이 전화가 걸려올 걸 알고 있었다는 듯, 지혜는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 도헌은 밀려오는 분노감에, 당장이라도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뭐라고…지껄였냐, 너.” “어머님께 다 말씀 드렸어. 내 잘못도, 너 귀국한 것도.” “근데…우리 엄마가 아직 널 며느리로 생각하고 계시더냐?” “무릎 꿇고 빌었거든. 필요하다면 너에게도 무릎 꿇고 빈다고도 했고.” “필요…하다면? 너 굉장히 골 때리는 애구나? 이 정도였냐?” “만나. 만나서 얘기해. 너 여자랑 동거한다는 얘긴 아직 안했어. 그거까진 못 하겠더라.” “미친….” “뭐라고?” “넌 진짜 미친 애야. 만나긴 뭘 만나. 총 맞았냐, 내가? 밥 맛 떨어지게 너랑 얼굴 마주보고 앉아 있게?” “뭐?” 뭐?, 하는 황당해하는 지혜의 목소리를 끝으로 도헌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앞에 놓인 의자를 쾅, 하고 발로 차 버리곤 병실을 나섰다. * * * “아니…그…건 제가…” “혹시…보신 적 없을까요?” “네…뭐, 옆 집…선, 선생님이라면…왔, 왔다, 갔…갔다.” ‘이건…대체 무슨 상황이야? 내가 여기서 이렇게 모른 척 하고 넘어가버리면 불륜 녀랑 다를 게 뭐야? 나도 피해자라구! 나도 모르고 만난 거라구! 얼른 이 여자에게 모든 상황을 이야기 해야만 해!’ 하고 마음먹었지만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이 여자에게, 로라는 차마 그 말만은 하지 못했다. “혹시 다른 여자랑…같이 있는 건…못…보셨나요?” “…예에?! 아, 저, 저는…그, 글쎄요.” ‘다른 여자 = 오로라’ 로라는 머릿속으로 그 공식을 그리며 난감하다는 듯, 울상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수정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결혼을 약속한 사이거든요…. 놓치고 싶지 않아요.” “…겨, 결혼이요?!” ‘그래놓고 나한테 결혼 하자고?! 이 새끼가 진짜?!’ 로라는 울컥, 화가 치솟았다. “이해…안 되시겠지만…저, 그 남자 놓치기 싫어요. 나쁜 사람인 거 알고, 지금 다른 여자 생긴 것두 알고…헤어지는 게 맞다는 것도 알지만.” “…….” “마음이 그러질 못해요…, 잠시 그 남자가…방황하는 거라…생각하고 있거든요. 다시…꼭 돌아올 거라 생각해요.” 로라는, 진심어린 그녀의 말에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왔다. 어쩌면 지금의 자신보다 기태를 더욱 사랑하고, 또 기태의 방황에 더욱 마음 아파하고 있는 듯 하여 로라는 불편해져 왔다. “상대방의 그 여자는…남자 친구 분이 여자 친구가 존재한다는 걸…알고…있나요?” 모든 것이 꼭, 드라마 속 같았다. 자신이 철저하게 연기를 하고 있으니, 꼭 짜인 대본을 두고 드라마를 촬영하는 것만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 질문을 던지며, 로라는 수정의 표정을 살폈다. 순간, 수정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니요.” 수정의 말에 로라는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이것이 안도를 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었는데, 저도 모르게 안도하고 말았다. “그럼…이제 어쩌실 생각이죠?” 자신도 지금 어찌해야 할지 모르면서. 그 질문이 얼마나 그녀에게 가혹한 것인 지, 알면서도 로라는 물었다. 지금 자신의 남자 친구인 기태의, 퍼스트 여자 친구인 그녀에게. “헤어지진…못해요. 기다릴 거예요.” “…기다리면…돌아는, 간데요 남자 친구 분이?” “네. 그럴 거라고 믿어요, 저는.” “확신…하시는 것 보니, 오래 사귀셨나 봐요.” “2년 조금 넘게요. 결혼은 이번 해에…약속했었어요.” 이것은 상담을 가장한, 뒷조사였다. 현 남친의 양다리에 대한 조사. 로라는 그 질문을 내뱉으며 스스로의 뻔뻔함을 칭찬했다. “그럼 상견례는…다 한…상태겠군요.” “네. 식 날짜만 잡으면 되는 거였는데…그랬는데….” “울지 마시구요. 아마 그 상대방 여자도 몰라서 그럴 거예요.” ‘거짓말. 다 알면서!’ 로라는 자문자답하는 것도 아니고, 입 밖으로는 질문을 내뱉고 대답은 속으로 하고 있었다. 그녀의 진심어린 눈물이, 어쩐지 자신 때문인 것 같아, 이렇게 마주보고 있기가 굉장히 불편했다. “그래서…제가…고민이에요.” “네?” “이걸…그 여자에게 모두…말을 해야 할지.” ‘헉! 그 여자…가 누군지…설마 알고 지금 날 찾아 온 거 아냐?! 괜히 나한테 차 선생님한테서 떨어져라, 경고라도 하려고?!’ 로라는 속으로 화들짝 놀라며 입을 떡 벌린 채 그녀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곧, 그녀는 로라를 응시하며 붉은 입술을 달싹였다. “…말을 하면 헤어져 줄까요?” “예, 예?!” ‘헤어져 줄 거예요?’ 하고 자신에게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로라는 난감하다는 듯 입술만 물었다, 달싹였다, 안절부절이었다. “그 분이 알아서 헤어져주길 바라기엔…그 시간들이 너무도 지옥 같아요.” “그 여자가…누군지…알고는 계신건가요?” “아니요…, 하지만 오빠 휴대폰만 뒤져보면…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 싸이코패스도 아니고 설마 모든 걸 다 알고 와서 지금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연기를 펼치진 않을 것이었다. 수정은 연신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그 여자도 사정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조금만 더…기다려 보세요.” “…흐윽…흑.” “그 여자도…아예…모르진 않을 거예요.” 이래놓고, 그 여자가 자신인 걸 이 여자가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큰 상처와 배신감을 얻게 될지, 로라는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 거렸다. 로라는 주먹을 꾹 쥐곤 수정을 빤히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 ‘세컨드 주제에, 퍼스트를 위로하다니. 살다 살다, 돈 주고도 경험 못할 희귀한 경험이구만.’ 로라는 멋쩍게 웃으며 수정을 위로했다. “그 상대방 여자는 더 알려고 하지 마시구요, 그 남자 친구 분…굳게 믿구…기다려보세요.” “네…, 그럴게요. 그래야겠어요.” “그렇게 믿고…계신 남자 친구 분이라면…꼭 돌아갈 겁니다. 그런데요.” 로라는 말리고 싶었다. 자신 역시 지금, 기태의 손아귀에 있는 상태였지만…그녀를, 이토록 마음 여린 수정을 말리고 싶었다. “웬만하면…헤어지는 쪽으로 생각해보세요.” “…예?” “그렇게 썩…좋은 사람 같진 않아요.” “…….” “있죠, 돌아올 사람이었음.” “…….” “애초에 떠나지도 않아요.” “…….” “그런 사람은 돌아와도 돌아온 것이…아닌 거죠.” “…….” “또 언젠간 떠날 거예요. 그리고 습관처럼 다시금…찾을 거예요, 그쪽을.” 이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로라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그리고 그럴 처지도 아니었으면서 로라는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로라의 말에 생각에 잠긴 듯, 수정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제 말…너무 야속하게 듣진 마시구요.” “알아요. 감사해요, 이런 푸념…들어주셔서. 그래도 이렇게 말하고 나니 속이…시원해요.” “…아, 뭘요.” “혹시나 제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랑 있거나…지나가는 걸 보게 되면…” “…예?” “제 번호예요, 이쪽으로 연락 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아, 네….” ‘대체 나는 이 드라마 속에서 세컨드 인거야, 아님 악역인거야, 아님 스파이인거야.’ 로라는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아닌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자신의 번호가 담긴 쪽지를 건네자, 손을 덜덜 떨며 받았다. “죄송해요, 이런 부탁…드려서.” “아닙니다. 괜…찮아요.” 그때, 누군가가 벌컥 가게문을 열고 들어섰다. 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뒤를 돌아보았다. “오호라! 밥 먹었어?!” 구도발이었다. 수정은 도헌의 등장에, 도헌을 한 번 로라를 한 번 바라보더니 황급히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남자…친구 분이신가봐요.” 하는 수정의 말에 도헌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로라를 바라보았다. 로라는 그런 도헌에게 눈을 찡긋해보였다. “네…! 자, 자기! 왔어?!” ‘자기라니…구도발에게 자기라니!’ 로라는 속으로 절규하며 성큼 도헌의 곁에 섰다. “자…자기?!” “그래, 자기, 내 허니. 하하하!” “돌았…어요?” “하하하! 돌다니, 아, 자기-. 여긴 우리 가게 단골 손님이셔.” 도헌은 로라의 말에 수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는데, 낯이 익었다. 눈물범벅이 된 수정을 빤히 바라보다, 도헌은 로라가 갑자기 왜 이러나, 다시금 수상쩍은 눈으로 로라를 돌아보았다. 수정은 가만히 도헌과 로라를 바라보더니 이내 입술을 굳게 앙다물곤 로라 앞에 섰다. “양…수정이에요.” “…….” “종종…이렇게 들러도 되죠?” “…네? 아…네, 네. 저, 저는.” “…….” “오로라…입니다.” 수정은 로라에게 악수를 청했다. 로라는 그런 수정을 빤히 내려다 보곤 이내 수정의 손을 맞잡았다. 이로써 ‘차기태’의 퍼스트와 세컨드가 손을 맞잡은 경사스런 순간이었다. * * * “뭐어?! 그 여자라구요?! 미쳤어요?! 이름 가르쳐주게?!” “아, 나는 이제 안 해. 복수고 나발이고 안 해!” 수정이 돌아간 뒤 로라는 벌벌 떨며 휴대폰을 꺼냈다. “뭐하게요!” “전화하게. 차씨한테.” “차…씨?” “차기태말이야!” “언젠 선생님, 선생님, 정중히도 부르더니만?!” “선생 같은 소리하네! 이런 파렴치한!” 로라는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지르며 기태의 전화번호를 꾹 눌렀다, 하지만. “전화기는 왜 꺼놓고 지랄이래?! 그래, 지은 죄가 많아서 전화도 제대로 못 받겠지!” 로라는 부르르 떨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도헌은 그런 로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서 이제 어쩌시게? 퍼스트 보고 나니, 겁이 확 나요? 뺏니 뭐니 어쩌니 하더니만?” “야, 야. 그건 진짜 뺏으려고 그런 게 아니라! 다 사정이 있었잖냐. 아무튼! 이제 안 해.” 로라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곤 카운터에 머리를 쿵, 하고 박았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은 그 누구보다 문드러지고 아파왔다. “왜…내 사랑은…” “…….” “다…이따위야?” “…똥차 가고 폐차 온 격이지, 뭐. 그러니 뭐랬어요! 잘 알아보고 사귀라…” “야. 구도발.” “아, 놀래라.” 로라는 갑자기 고개를 치켜들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도헌을 응시했다. 그러자 도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로라를 흘겨보았다. “뭘 또 그렇게 느끼한 눈으로 쳐다보고 난리래?!” “너.” “뭐요.” “당분간만 내 자기 해라.” ******* 오늘이 그러니까,,,월수금중에 월인데,,, 화,,,,^_^;욜 업,,,,뎃! 송구하옵니다ㅠ_ㅠ 그래두,,,화욜 날밝기전에 후딱,,,업뎃했으니,,용서를,, 전,,도망을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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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빙글러님들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아(적ㅇㅓ보이지만 많은걸로.. ㅎㅎ) 다음편을 가져왔습니다. 곧 추석이라서 빠르게 업로드 해야겠습니다. 추석때 해야할 노동이 많으므로...또르르..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ㄴㅣ다. ====================================================== 제목없음 11 “ 일단 차를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 “ 지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근처를 뒤지는건 무리에요 “ 그들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은 점점 더 거세져갔다. 구름이 어느새 내려앉아 주변은 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워졌고 이렇게 수풀이 우거진곳에서 차를 찾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였다. “ 이 주변 지리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나서 차를 찾는게 쉬울거같아요. 저도 지금 네비로 여기를 처음와봐서 주변지리를 모르거든요. 사실 두분이 말씀하기 전까지 이쪽에 요양원이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습니다. “ 그나마 제주도에 사는 권기자에게 기대를 걸어보려 했지만 주변 지리를 모르는것은 그 또한 마찬가지인듯 했다. “ 혹시 두분 아까 오다가 봤던 야영장에다가 한번 물어보는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 “ 맞아. 그쪽밖에 들어오는 길이 없다면 그쪽에서 애들을 봤던 차를 봤던 하지 않았을까요? “ “ 맞아요. 야영장 주인을 한번 만나보는게 좋겠어요. “ “ 건물내부를 찾아보는건 비가 그치면 다시 오는걸로 하죠. 시야가 너무 어두워져서 밝을때 들어오는게 좋을거 같아요. “ 지현은 일단 잔뜩 젖어서 머리가 엉겨붙은 수연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 수연아 일단 비도 너무 많이 오니까 야영장으로 가보자 . 거기 한번 물어보면 뭔가 얘기해주실지도 몰라. “ “ 그러자. “ 건물 한 귀퉁이에 놓여진 새마음요양원 표지판을 뒤로 한 채 그들은 다시 풀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차를 찾을수 있을 거 같진 않았지만 일단 수연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야영장 주인과 대화를 해보는것이 좋을 듯 했다. 주위가 어두워지고 랜턴 하나에 의지한채 길지 않은 길을 빠져나왔다. 벌써 세사람은 쓰고온 우산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잔뜩 젖었고 한여름의 장마라도 시작된 듯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야영장 관리소 : 부재시 연락바람 010******** 정진규] 허술하게 세워진 표지판에 야영장이라고 적힌걸 보니 이곳이 맞는 듯 했다. 관리소는 간이로 만들어진 곳 같았고 그 뒤에는 좀 더 커다란 가정집이 있었다. “ 불이 꺼져있는거 같은데 전화를 해봐야 할까요? “ 지현은 우산을 잡은 손이 점점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렇다고 불이꺼진 곳의 문을 함부로 열수도 없었다. ‘똑똑똑’ “ 저기요 !!! 사람 없어요 ? “ 머뭇거리던 틈 사이로 수연은 관리소의 문을 두드렸다. ‘ 쾅쾅쾅 ‘ “ 저기요!!! 누구 없어요? !!!! “ 문안에서는 어떠한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주변의 힘차게 내리는 빗소리만 들려올뿐. 우산에 의지한채 셋은 갈피를 잡지 못해 그저 멍하게 서있었다. 대꾸도 없는 문안이 짜증이 났는지 기어이 지현은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발로 관리소 문을 차버렸다. ‘퍽 ! ‘ “ 사람 없냐구요 !!! “ “ 누구요 . 누군데 남의 집 문을 발로 참수꽈 “ 빗소리에 시끄러워진 그 공기를 깨며 누군가 뒤에서 소리쳤다. 그는 매우 키가 컸고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다. 까칠하게 올라온 수염은 며칠 씻지 않은것 처럼 꾀죄죄해 보였고 그의 손에는 비에 흠뻑하게 젖은 뗄깜이 묶여있었다. 머리는 빡빡하게 스포츠 머리를 했고 눈은 부리부리해서 첫인상 치고는 쎄다는 느낌을 받았다. 움푹 패인 눈에 위압감이 느껴진 그들은 누가 먼저 말을 건네야할지 각자 눈치를 보고 있었다. 결국 제일 다급했던 수연이 말을 걸었다. “ 저기요. 여기 관리소장님 되세요? “ “ 내가 여기 관리소장 이우다. 무슨 일이꽈 “ 사투리가 조금 섞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곳에 관리소장이라고 하는 부분은 알아들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의 표정을 보고 수연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몇가지 질문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 “ 비가 쏟아졈시난 일단 들어오십서 “ 무뚝뚝한 말투로 들어오라며 거구의 남자는 문을 열쇠로 열어주었다. 내부는 좁을 거라 생각한것과 달리 그곳은 그 가정집으로 이어지는 입구 같은 곳이었다. 아마 사무실 겸 입구로 사용하시는것 같았다. 가정집 문까지 열자 그 안에서 넓직하고 커다란 내부가 펼쳐졌다. 값비싸 보이는 가죽 쇼파가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고 영화에서나 보던 벽난로를 보고 지현은 신기해했다. “ 여기 앉으십서. “ “ 감사합니다. “ “ 딱보난 육지사람 닮은디. 무슨 일인지 … “ “ 아 안녕하세요. 제주 향기 권영민 기자입니다. “ 갑자기 말을 끊고 권영민이 끼어들어 대답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지현이 영민을 쳐다보자 영민은 눈을 찡긋하며 빠져있으라는 신호를 보내는 듯 했다. “ 아… 제주도 사람이구나. 육지사람인줄 알아신디 … “ “ 취재중에는 저희도 사투리 많이 안씁니다. 어르신 . “ “ 지역신문이면 도와줘사쥬. 무슨 일이꽈 “. “ 실종된 사람들을 찾고있는데요. 혹시 여기 차세워서 위로 올라가거나 뭐 돌아다니는 아이들 본적 있으세요? “ “ 아이들은 여기 오질 못하쥬게. “ “ 아니 그정도 어린애들 말고 대학생 또래 정도 되보이는 아이들 마씸 ….” “ 흠….. 애들은 못본거 닮은디…. …. “ “ 혹시 그러면 낯선 차를 보신 적은 없으세요 ? 아마 렌트카였을텐데 “ 내용을 바꿔서 질문을 하자 관리소장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뭔가 생각이 날듯 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 했다. “ 여기는 죄다 렌트카인디 내 차 찾는게 빨라지 아 그런데 예전에 우리 손님 차 아닌 차는 봤던거 닮은디…… “ “ 손님 차 아닌건 어떻게 아셨어요 ? “ “ 우리 야영장 쓰는 사람들은 다 들어올때 차남바를 적게 되있어요. 그래야 내가 주차장 관리하기가 편하니까. 그런데 가끔 야영장 주차장 옆이나 바깥에 세우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바깥까지 한번 돌아보는데 우리 주차장 입구옆에 누가 차를 세웠더라고. 내가 목록을 보면서 체크를 하는데 그 목록에는 그 차번호가 없었어요. 그래서 딴 놈이 우리 주차장 근처에 차를 세웠네 하면서 욕을 한번했지. 거기다가 세워버리면 우리 손님들이 차를 빼기가 힘들다고 “ “아,,, 혹시 번호는 기억하세요 ?” “ 내가 차 남바를 적긴 해신디.. 나중에 안 치우면 불법주차로 신고전화하잰 남바 적어놓긴 했수다. 잠깐 기다려봅서. “ 관리소장은 일어나 어딘가 서랍을 뒤지더니 주차목록 이라고 커다란 견출지가 붙은 철 한개를 가져와 앉았다. 목에 걸린 돋보기를 쓰며 여기저기 넘기던 관리소장은 표시해둔 곳을 찾아 그들에게 건네 보였다. “ 여기있네요. 6월 22일 토요일에 . 허. 4018 검정색 그랜저 차. 이때가 어린애들 데리고온 손님이 많아서 우리가 주차장이 꽉찼었거든요. 그래서 꼭 전화할라고 했었는데 너무 바빠서 나중에 있는지 확인을 못했어. “ “ 렌트카 어디 였는지는 모르시져? “ “ 나가 거기까지 어떵알아. 그냥 남바만 적어놔신디 “ 옆을 살짝 보자 지현은 몰래 대화내용을 녹음 중인걸로 보였고 수연은 수첩에다가 차 번호를 적어놓았다. 투덜거리던 관리소장은 바깥에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에 흠칫하며 창문을 열어 바깥을 확인하였다. “ 비가 영 하영 내리는데 다시 어떵 갈거라 . 좀 그치면 가던가. 여기 커피 이시난 알앙 타마시고. 난 건물에 물새는데 이신디 봐야하니까 뭐 물어볼거 이시믄 아까 거기 번호로 전화하던가 합서. “ 무뚝뚝하게 내뱉던 관리소장은 비가 새는 곳을 찾아야 한다며 고무 대야를 들고 사라졌다. 아마 알아서 가던가 말던가 하라는 뜻 같았다. “ 뭐라고 하시는거에요 ? “ 지현은 사투리가 연속적으로 나오는 말에 당황해했지만 이내 영민이 그 뜻을 설명해주었다 . “ 커피 마시고 비 그치면 가라하시네요. 소장님은 비새는데 있나 보러 가셔야한대요. 혹시 물어볼거 있으면 문에 붙어진 번호로 전화하라고 하셨어요 “ “ 혹시모르니 저장해놔야겠네요. 관리소장 이름이 정진규씨 맞죠? “ “아깐 말잘라서 미안해요. 제주도 분들이 육지 신문사에서 왔다고 하면 대답을 잘 안해주시거든요… 좀 폐쇄적인 곳이라… “ “ 이해해요. 다른 지역도 그러는걸요 . 영민씨 덕분에 그래도 수월하게 대화 했어요.“ 관리소장의 말을 듣고 나니 더 의문투성이가 되었다. 사라진 유심. 차로 이곳을 왔는데 지금은 어디있는지 알수가 없다. 아마 야영장 곁에 차를 세우고 요양원까지 올라간건 맞는거 같은데 그 뒤에 행방이 묘연하니… 어디에 있는거니 수정아… 12편 이어집ㄴ니다 https://vin.gl/p/2672350?asrc=copylink
Chapter 44. 나에게 더는 다가오지 마.
로라는 거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팔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팔목이 아려왔지만 그 보다 마음이 더 아려왔다. “왜…나한테…승질이야…나쁜 자식이.” 로라는 눈물을 훔치며 빨갛게 부어 오른 팔목을 바라보았다. 속이 상했다. 왜 저렇게 자신에게 화를 냈는지, 왜 구도발은 차 선생님에게 그토록 부정적인 것인지. 그리고 왜…왜, 저 자식이 화를 내는 게 마음에…걸리는 것인 지. 로라는 굳게 닫힌 도헌의 방문을 한껏 노려보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책상에 엎드려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으어어엉, 왜…왜 나한테 그래!” 그렇게 소리 내어 엉엉 울기를 십분이 지났을까. 로라는 뻘개진 눈으로 서랍을 열었다. “…….” 그때, 그 손님이, 오늘 아침에 기태의 병원 앞을 서성이던 그 여자가 선물해주었던 손수건이 눈에 들어왔다. 로라는 입술을 깨물곤 그 손수건을 꺼냈다. “현재를…즐겨라…” 의미심장했다.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로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손수건을 한참이나 내려다보았다. 그냥, 과거도 미래도 아무것도 생각 말고 현재만 즐기란 말인가. 로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곤 조금 전, 도헌이 화를 내며 자신에게 내뱉었던 말들을 다시금 되새겨 보았다. “…여자 없을 것 같냐고?…, 여자 친구 있는 지 없는 지도 모르고 만난 거 아니냐고?” 여자 친구가…당연히 없으니 자신을 만났을 거라 생각했다. 순서가 뒤 바뀌긴 했지만, 여자 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만날만한 그런 쓰레기는 아니라고, 로라는 생각했다. “그럴…사람이 아니라는 건 세상에 없다지만…정말…정말 선생님만큼은….” 로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두 눈이 빨개지도록 울고 나니, 속이 어쩐지 후련한 듯하기도 했다. 로라는 그 손수건을 손에 꼭 쥐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멋있는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는 이 행복한 순간에 그토록 자신이 울어야 하는 지. “믿고 싶은 거…믿어만 버리고 싶어서라는 거…알잖아, 너도.” 괜히 도헌이 미웠다. 사랑하면 모든 것을 믿어 주고 싶고 믿어 버리고만 싶다는 걸, 지도 잘 알면서. 왜 자신한테만 그렇게 모질게 말하는 것인 지. 도헌이 있는 방 쪽으로 눈을 흘겼다. 그런데 마음이, 쉽사리 나아지질 않았다. 자신에게 화를 낸 구도헌에 대한 원망보단, 왜 그런 말을 한 것인지,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선생님이 아니라고 했잖아. 지금은 선생님이 내 남자 친구인 걸.” 그러면 믿어 주어야 했다. 그보다, 믿고 싶었다. 차기태였기에. 다른 이도 아닌 차기태였기에. 자신이 한 눈에 반해버렸고, 자신의 마음을 단번에 빼앗아갔던 이었기에. 바람둥이 전 남친에게 아프게 데이고 난 후에 만난이라, 더욱 그랬다. 젠틀 하고 매너 있는 행동과 말투. 그리고 다정하고 자상한 성품. 서툴렀지만, 그래도 어색하고 차가움이 물씬 풍기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해지는 사람. “…하지만.” 로라는 입술을 깨문 채, 손수건을 다시금 내려다보았다. “넌…너는 진짜 정체가…뭐니.” 로라의 마음이 어지러웠다. 불안하기도 했고, 찜찜해져 오기도 했다. “구도발이…내게 그런 말을 그냥 해 줄 일은 없어. 구도발은…” 좀 전에 자신을 꼭 끌어안아 주었던 도헌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다시금 쿵쿵, 뛰기 시작하는 자신의 심장. 로라는 며칠 전부터 구도헌과 마주하면 심장이 뛰는 자신의 이상증세를 헤아려 보며, 그 여자가 준 손수건을 꾹 쥐었다. “구도발 역시 내게 소중한 사람이야. 나한테 그냥, 그저 그런 걸로 섣부르게 상처를 줄 리가 없지.” 미안해요, 선생님. 나 선생님의 마음을 의심해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속으로 읊조리며 로라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는 빗줄기를 젖은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 * * “이상하지 않냐, 정말.” “어련히 알아서 만날라고? 그리고 또 쓰레기 만나도 오로라 몫이지, 너보고 책임지라고 안 하잖아.” “방관하는 것 같잖냐.” 집 앞, 포장마차에서 로준과 도헌은 마주보고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렇게 오로라에게 화를 내고 난 뒤, 마음이 편치 않은 도헌이었기에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그래서 뒤숭숭한 마음에 귀가하던 로준에게 연락을 해 술 한 잔을 하고 있었다. “너가 왜 방관하는 것 같은데.” “그 새끼한테…여자가 있었거든.” “…진심?” “전 여친인 지, 현 여친인 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서. 섣불리 오로라한테 얘기는 못 해줬었다.” 그렇게 말하며 도헌은 괴로운 듯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직도 있는 것 같아?” “아니. 내가 정리 하고 만나라고 말하긴 했었거든. 그래서 지금은 정리한 듯싶은데.” “그럼 됐지, 뭐. 미처 정리 못 하고 오로라 만났다고 하더라도 지금 잘 하면 됐지.” “…….” “그리고 그 남자 몇 번 마주치긴 했는데. 오로한테 진심인 것 같던데.” “…….” “오로라도 진심으로 좋아하는 듯 보였고.” 로준은 도헌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로준이 애써 그렇게 도헌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 했지만, 도헌의 표정은 아까보다 더 굳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 그 남자도 진심으로 오호라, 생각해주는 것 같고.” “…….” “여자가 많아 보이긴 했지만. 뭐 다 능력 있고 잘생겼으니 그런 거겠지. 깔끔해 보이긴 했는데, 그래도 영 찝찝해서 말이다.” “…동생인 나보다 더 극성이다, 진짜.” “…그러니까. 나 왜 이렇게 오지랖이냐?” 도헌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차갑게 웃었다. “니 심성이 착해서 그렇지 뭐. 철없는 오로라가 니 깊은 맘을 알 길은 없을 테고.” “아까…오호라한테 소리 질렀어. 손목도 아프게 잡아 끌어버렸고.” “…….” “답답해서. 나 혼자만 이렇게 답답한 가 싶어, 화도 나고.” “…….” “걱정되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까지 하나 싶어, 이해가 안가기도 하고.” “…….” “왜 둘 사이에 끼어서 사서 고생인 지,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괴로운 듯 보였다. 도헌은 거푸 술잔만 비워댔다.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는 빗줄기를 멍하니 바라보며, 아까 오로라와 함께 우산을 쓰고 순대를 사러갔던 그 길을 회상했다. “더는…그러지 말아야겠다. 신경 쓰지 말아야 겠다. 생각하지 말아야 겠다.” “…….” “내게 경고 아닌 경고 했던 그 남자 말처럼. 더는 오호라의 일에 신경을 안 쓰는 게, 맞는 건데.” “…….” “그런데 나 왜…그게 안 되냐.” 천둥소리에 화들짝 놀라 자신의 품에 와락 다가왔던 오로라의 모습이,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떠선 초롱초롱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던 오로라의 눈망울이, 그리고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던 빗방울을 손으로 닦아주던 오로라의 손길이, 여전히 눈앞에 선명한 듯 했다. 구도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오로라의 모습을 눈앞에서 떨쳐내려 했다. “너….” 오로준은 그런 도헌을 빤히 바라보다 굳은 표정으로 도헌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설마, 오로라.” “…….” “좋아하는 것 아니냐.” “뭐?” “너…오로라 좋아하는 거 아니지?” 로준의 질문에 도헌은 순간 굳었다. 이 마음이, 이 걱정이, 이 오지랖 넘치는 감정이. “…내가 오로라를 좋아한다고?” * * * 집으로 돌아온 둘은, 곧장 방으로 향했다. 먼저 씻는다며 로준이 화장실을 차지했고 도헌은 알딸딸해져 오는 술기운에 다시금 불 꺼진 주방으로 돌아왔다. “…다 식었네.” 도헌은 식탁위에 오로라와 먹기 위해 차려놓았던 식어버린 순대와 떡볶이를 멍하니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아까 너무 심했나, 도헌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더니 저벅저벅 닫혀있는 로라의 방 문 앞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미안. 아깐 화내서 미안해요.” 세찬 빗소리만이 거실을 가득 메웠다.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도헌은 주먹을 꾹 쥔 채, 로라의 방문 앞에 편의점에서 사 온 멍 든 곳에 바르는 연고를 내려놓았다. “더는…더는…다가가지 않으려고….” “…….” “그러니…누나도 더는…다가오지 마라.” 그렇게 혼잣말로 읊조리며 다시금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도헌이 발걸음을 돌렸는데. 삐걱-, 로라의 방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내가 언제 다가갔다고 그러냐?” “…안 잤어요?” 퉁퉁 부운 눈으로 로라가 방문을 빼꼼히 열어 도헌을 바라보았다. 그런 로라의 부운 눈을 보니, 도헌의 마음이 아려왔다. “손목…괜찮아?” 도헌은 멀찌 감치서 로라의 손목을 바라보며 물었다. 평소 같았음 로라의 손목을 덥석 쥐곤 자신이 약을 발라주었겠지만, 이젠 그러기 쉽지 않았다. 도헌의 말에 로라는 입술을 삐죽이며 도헌을 향해 빨갛게 부어 오른 손목을 올려다 보였다. “이게 괜찮아 보이냐?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손해배상 청구할 거…” “미안.” “…….” “미안해요, 누나.” “…….” “앞으론…화도 안 내고…누나 아프게도 안 할게요.” “…야.” “방 문 앞에 약 사다 놨어요. 발라요.” 하고 도헌이 다시금 등을 돌렸다. 로라의 마음이 아려왔다. 풀이 죽은 채, 등을 돌리는 도헌을 향해, 이번엔 로라가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러곤 도헌의 옷깃을 슬며시 쥐었다. “배고픈데.” “……?” “순대 먹자, 우리.” 자신에게서 멀어지려는 도헌에게, 이젠, 이번엔 로라가 먼저 다가섰다. * * *
[책추천] 추석 연휴 동안 정주행하기 좋은 시리즈 소설책 5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어느덧 한가위 연휴가 다가왔습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넉넉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즐거운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을텐데요. 오늘은 여유로운 추석 연휴 동안 정주행하면 좋을 시리즈 소설 5권을 추천해드립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직지’에서 비롯됐다면? 인류 천년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역사 스릴러 직지 세트 김진명 지음  |  쌤앤파커스 펴냄 책 정보 > http://bit.ly/2lGFzwL 전쟁과 재해로 황폐해진 미래의 시카고를 배경으로 압제적 사회를 향해 투쟁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 다이버전트 시리즈 베로니카 로스 지음  |  은행나무 펴냄 책 정보 > http://bit.ly/2lJQrtL 나폴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릴라와 레누의 60년에 걸친 사랑과 미움, 질투와 연민의 서사 나폴리 4부작 세트 레나 페란테 지음  |  한길사 펴냄 책 정보 > http://bit.ly/2maxpgh 1986년 출간과 동시에 2주 만에 밀리언셀러가 된 스티븐 킹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이 담긴 공포 소설 그것 IT 세트 스티븐 킹 지음  |  황금가지 펴냄 책 정보 > http://bit.ly/2lJuGtU 중국의 SF 소설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거대한 스케일과 대담한 상상력의 과학 판타지 소설 삼체 세트 류츠신 지음  |  단숨 펴냄 책 정보 > http://bit.ly/2mbx2lF 당신의 독서를 도와주는 앱, 플라이북 > http://bit.ly/2max6lD
[책추천] 넷플릭스로 다시 만날 수 있는 책 5
안녕하세요! 나만의 스마트한 독서 앱 플라이북입니다. 요즘 넷플릭스를 이용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는 분들이 많은데요. 오늘은 넷플릭스 속에서 찾은 이야기들을 추천해드립니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책으로 읽는 것과 영상으로 보는 것은 각각 다른 경험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번 주말, 넷플릭스에서 만났던 이야기를 책으로도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남몰래 쓴 편지가 그에게 발송되었다! 읽다보면 연애하고 싶어지는 사랑스러운 이야기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제니 한 지음 | 한스미디어 펴냄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만든다! 마을을 변화시킨 한 소년의 감동 실화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 서해문집 펴냄 과연 저곳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초자연적이면서 미스테리한 환상적인 이야기 서던 리치 제프 밴더미어 지음 | 황금가지 펴냄 그녀는 살인자일까? 피해자일까? 아주 섬세하고도 미묘한 심리게임 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 민음사 펴냄 그것을 보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책 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 검은숲 펴냄 지금 플라이북 앱에서 추천 더 받기 > http://me2.do/5DPodUE8
chapter1. 오늘 '이별' 하렵니다!
“왜 전화 안 받아, 이 호랑말코 같은 새끼가.” 밖엔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까보다 더 굵어진 빗방울을 쇼윈도를 통해 바라보던 로라는 주먹을 꾹 쥐었다. 조그마한 그녀의 주먹에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갔다. “이현우, 니가 이렇게 잠수를 탄다 이거지? 고백할 땐 하늘의 별도 따다준다더니. 그래도 별 하나는 따주고 가는 구나? 이별 말이다, 이 깜찍한 새끼야. 성은이 망극하다, 망극해!”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며 꾹 쥔 그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곧, 자신 뒤의 책상 위에 휴대폰이 요란스레 울렸고, 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한걸음에 카운터로 향했다. 깜찍한 새끼라며, 호랑말코 같은 새끼라며 속으로 온갖 욕을 퍼부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내심 지금 울리고 있는 전화벨의 주인공이 이현우 그 호랑말코 같은 새끼길 바랐다. 하지만. “스팸…이네. 썩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쇼윈도 앞에 디피 되어 있는 마네킹 손가락을 툭, 툭 건드렸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곧 빗물 가득 머금은 까만 하늘이 푹 담겼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도 억수 같은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 * * “야, 오로라. 그 새끼 일방적으로 잠수 탔다며? 아주 미친 새끼네, 그거?!” 밤 열 시가 되기 오 분 전. 로라의 옷가게로 그녀의 친구로 추종되는 두 명의 여자가 우르르 들이 닥쳤다. 그녀는 손님용 탈의실 안에서 낑낑대며 어제 새로 지른 원피스를 갈아입고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윽-. 야, 나 살쪘나봐. 지퍼가 안 올라가.” “그래 기지배야, 너 살 쪘다니까? 살 쪘다고 해도 죽어도 아니라고 부은 거라고 하더니.” “아, 조용히 하고 빨랑 와봐. 지퍼 좀 올려줘.” “그래서. 갈 거야? 찾아 갈 거야?” “당연한 거 아니니? 이 새끼가 지금 날 가지고 놀아도 유분수지. 내가 이대로 가만히, 헤어져 줄 오로라로 보이냐?” 탈의실 안에서 쩌렁쩌렁 로라의 목소리가 울러 퍼졌다. 그녀의 친구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때, 딸랑 하는 가게 문앞의 종소리가 울렸고 여자들은 일제히 가게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로라는 탈의실 안에서 낑낑대며 겨우 지퍼를 올려 탈의실을 나섰다. “아, 지금…문…닫으시는 건가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에 쫄딱 맞은 한 여자가 어색한 미소를 띤 채, 여자들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로라는 아홉시 오십칠 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한 번 바라보곤 애써 미소 지으며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아, 저희가 열시되면 마감을 하긴 하는데…” “저 급히 옷을 갈아입어야 해서…2분도 안 걸릴 거거든요? 어떻게…구매할 수 있을까요?” 여자가 말하지 않아도 그녀의 상태를 보아 급히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만 같기에 로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꺼두었던 마네킹 쪽의 불을 켰다. “천천히 고르세요. 저도 어차피 화장 다시 하고 나가려던 참이었거든요.” 로라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친구들을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리곤 비에 홀딱 젖은 그녀에게서 한 걸음 물러서며 또각또각 카운터로 향했다. ‘비에 젖었지만 탐스런 갈색 빛 머리에 오똑 선 콧날. 저건 자연산이라기 보단 의느님에 의해 탄생된 듯한 비쥬얼의 코. 그리고 오렌지색이 잘 어울리는 도톰한 입술. 앞머리가 없는 긴 생머리에 속눈썹이 긴, 눈은 음…건드리지 않았군. 자연스런 쌍꺼풀이 매력적이네.’ 보통 미모의 여인이 아닌 듯 보였다. 로라는 안보는 척 하며 카운터에 서서 원피스 쪽을 기웃거리는 비에 젖은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폈다. “저, 요걸로 갈아입고 가도 될까요?” 삼십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고 있던 로라는 갑작스레 자신을 돌아보는 탓에 흠칫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자신이 몰래 훔쳐보고 있던 것을 눈치 챈 것은 아닐까, 로라는 아까보다 더 씩씩한 목소리로 탈의실 문을 활짝 열었다. “흠, 흠흠. 물론이죠. 여기서 갈아입으세요!” 탈의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자신의 옷가지를 주섬주섬 챙겨 카운터 밑쪽에 휙 던지며 로라는 씩 웃었다. 여자 역시 로라를 따라 웃으며 탈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 나 갑자기 배 아프다. 너희 계산할 줄 알지? 마지막 손님이니까 뒷 단위 까주는 센스 알아서들 발휘하시고. 나 화장실 간닷!” “가게 문은? 바로 닫어?” “어! 내 가방 챙겨서 나와 있어! 가게 불만 좀 꺼주구!” 로라는 두루마기 휴지를 챙겨들곤 가게를 급히 나섰다. 그리곤 조심조심 비를 피해, 바로 옆 상가 복도로 향했다. 무슨 비가 이렇게 쏟아져. 태풍이라도 오려는 건가, 혼자서 중얼거리며 로라는 화장실로 향하기 위해 또각또각 걸었는데, 여간 으스스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팔을 꾹 쥔 채 로라는 구두 굽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화장실로 들어섰다. 그때, 조용한 화장실 안을 가득 메우는 로라의 휴대폰 벨소리. 로라는 자신의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보세요.” “누나! 나 오늘 좀 늦는다!” “좀 늦는 거냐, 아님 해 뜨고 들어오는 거냐? 똑바로 말해라 너.” “아-. 엄마 아빠 없을 때 자유를 만끽하는 거지. 어차피 너도 오늘 늦을 거 아니냐. 보아하니 불금에 비까지 내리니 술 퍼마시러 가겠구만.” “어이, 동생. 이 누님은 오늘 술을 마시러 가는 게 아니라 인생에서 제일 중대한…” “됐고. 아무쪼록 시내에서 마주치지는 말자. 쪽팔리니까.” “야! 야 이 눔의 자식아! 너 죽을래애-?!” 쩌렁쩌렁 울리는 로라의 목소리. 하지만 돌아오는 건, 무참히 끊겨 버린 휴대폰 너머의 정적 뿐. 로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는 참 누굴 닮아서 이렇게 개 썅 마이웨이일까, 하며 손을 씻기 위해 세면대로 향했다. “울지만 말자. 어떤 대답을 들어도. 어떤 말을 들어도. 구질구질하게 울지나 말자, 오로라.” 로라는 손을 씻으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남자 친구란 자식이…어째 사귀는 1년 동안 한 달 빼곤 매일을 이리도 울리니. 로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처음엔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 해놓고선. 그 마음 영원히 변치 않을 거라고 해놓고선. 나만 사랑한다고, 영원히 그럴 거라고, 그러니 자신과 결혼하자고 해놓고선. 로라는 빨갛게 상기된 볼을 물 묻은 손으로 만지작이다 이내 휴지로 물기를 닦으며 화장실을 나섰다. 그러다 화장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전신 거울 앞에 우두커니 섰다. 구겨진 원피스를 매만졌다. “야, 이현우. 이젠 내가 빠빠이야. 내가 이제 세이굿바이 하는 거라구.” 그렇게 중얼거리며 로라가 웨이브 진 머리를 손으로 만지작이고 있는데, 갑자기 또각또각 텅 빈 복도에서 남자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누구지…’ 그녀는 그대로 굳은 채 전신 거울을 통해 뒤를 봤다. 그때, 웬 정장을 입은 훤칠한 키의 한 남자가…로라의 시야에 들어섰다. 무심한 듯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잠시 화장실 앞에 서 로라를 바라보더니 이내 또각또각 바른 걸음 걸이로 로라 옆에 섰다. 로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주춤주춤 옆으로 물러났다. ‘잘…생겼다. 스타일…도 괜찮구….’ 머리를 만지던 그 손 그대로 굳은 채, 로라는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로라의 말대로 잘생긴 남자였다. 한 쪽만 속 쌍꺼풀이 진 짝 눈이 매력적이었다. 옆에서 바라봐도 우뚝 선 콧날은 작은 얼굴을 더 갸름하게 보여주고 있는 듯 했다.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비율도 괜찮은 것이,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저 정장에 코트를 입은 채였지만, 스타일도 좋아보였다. 올해 스물여섯이 되는 자신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많은 것 같이 보였지만. 삼십 대 초반? 중반? 넋을 놓고 남자를 바라보던 그녀. 이내 로라의 부담스런 시선을 느꼈는지, 남자가 홱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어머, 깜짝이야.’ 로라는 티가 날 정도로 화들짝 놀라며 남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곤 다시금 만지작이던 머리를 정리하며 빙그르르 뒤돌아섰다. 그런데, ‘가만. 여긴…여자 화장실인데?’ 그 생각이 들자, 로라는 다시금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남자 역시 뒤돌아서있던 로라를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의 눈동자가 부딪혔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여기 여자 화장실이라, 일러주기 위해 붉은 입술을 조심스레 떼었는데.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요.” “예, 예?” 지금 내가 해야 할 말을 왜 저 분이, 저렇게 얘기하고 있는 거지? 그녀는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여기 남자 화장실이라구요.” 로라가 잘 못 알아들었나 싶어 아까보다 목소리에 더 힘을 주어 또박또박 말하는 남자. 남자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로라가 큰 잘 못이라도 저질렀다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이라,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아차 싶어 다시 입술을 앙다물곤 “아…네. 죄송합니다.” 하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조심 화장실을 나섰다. “내가 너무 급해서 남자 화장실을 들어 왔나 보네…” 그럴 리가 없는데, 싶으면서도 뭐 남자 화장실이라고 저렇게 힘주어 얘기하니 자신이 착각했나 보다, 하고 중얼거리며 로라가 화장실을 나서 입구를 돌아보았는데. “뭐야. 여자 화장실이잖아.” 여자 화장실이란 표시가 화장실 앞에 붙어 있었다. ‘뭐야, 여자 화장실인데 왜 나보고 눈치 줘.’ 로라는 입술을 삐죽이며 화장실 쪽으로 눈을 흘겨보았다. 어깨를 으쓱하며 그녀가 다시금 매장으로 향하기 위해 한 걸음 내딛었는데. “……?” 또각또각 다시금 남자의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남자가 휘적휘적 여자 화장실에서 나와 바로 옆 남자 화장실로 쏙 들어섰다. 이 무슨 황당한…. 로라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남자 화장실로 들어서는 그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생긴 건 멀쩡한데 순…허당이네. 황당하게, 정말.” * * * 선뜻 들어서지 못했다. 로라와 그녀의 친구들은 비가와도 여전히 휘향찬란한 시내 한 가운데에서, 그녀의 현 남친인지 구 남친인지 모를 ‘이현우’란 남자가 일하고 있는 술집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로라는 원피스 자락을 꾹 쥐었다. “야, 뭐해 오로라. 안 들어가?” “저 새끼, 뭐가 좋은 지 싱글벙글 서빙하고 있네.” 그래도 사랑했었다. 쓰레기 새끼인 걸 알면서도 그 놈과 사귀었었다. 소문난 바람둥이란 걸 알면서도 로라는 자신을 믿어 달란 그 놈의 말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었다. 그녀라면, 오로라 그녀 자신이라면 바람둥이에 쓰레기에 나쁜 놈이라 소문 난 저 놈을 자신만 바라보는 순한 양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거라 믿었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지금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되어 되레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찔러 버렸다. “됐어. 가자, 그냥.” 로라는 돌아섰다.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서는 로라를 이해할 수 없단 표정으로 친구들은 바라봤다. 등지고 돌아선 로라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평소완 다르게 다운 된 목소리와 축 처진 어깨가 지금 그녀는 무지 슬프고 아프단 걸 말해주고 있었다. “들어가서 왜 전화 안 받냐고…실컷 따지고 나서 끝이라고…통보하고 나오면 뭐하겠니.” “…….” “이미 저 자식은 나와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뒤늦게 이러는 내 꼴만 우스워지지…안 그래?” 로라의 왼쪽 어깨가 비에 젖었다. 로라의 젖은 어깨를 바라보던 친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로라의 성격대로라면 당장이고 저 술집으로 처 들어가 사장 새끼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것이었다. 그러곤 로라를 보며 당황하는 그 남자의 뺨을 시원하게 후려치며 ‘꺼져, 이 쓰레기 새끼야!’ 멋있게 말해주고 나왔을 것이었다. 하지만. “못 하겠다. 가자, 그냥.” “…오로라.” “에휴, 오로라 성격 많-이 죽었네. 하하. 가자, 제군들! 언니가 오늘 이별주 쏜다!” “야. 오로라. 정말 괜찮냐?” 그녀의 친구들은 더욱 오바스럽게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는 로라를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괜찮냔 친구의 말에 로라는 피식, 바람 빠진 웃음을 내뱉었다. “누굴 욕하겠니.” “…….” “쓰레기 차 인 거 알면서도 좋다고 잡아 탄 건 난데.” “…….” “야…로라야.”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널 사랑한다, 그러니 한 번만 믿어달란 저 새끼의 말을 믿었던…내 탓이지. 누굴 탓 해. 안 그래?” 로라는 그 말을 내뱉곤 노란 우산을 다시금 추켜들었다. 그러곤 방금 헤어진 전 남친의 가게를 쿨 하게 지나치려 한 발 내딛었다. 그때, “여기가 너희 오빠가 하는 가게야?” “응. 멋있지? 우리 오빠 가게 여기 말고도 또 있어. 저 밑에 고기 집도 우리 오빠 꺼야.” 로라는 걷던 걸음을 멈추었다. ‘우리…오빠 가게…?’ 그녀는 자신의 옆을 지나치는 짧은 단발의 여자를 돌아보았다. 우리 오빠 가게란, 앙증맞은 목소리에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멈칫하는 로라를 뒤에서 지켜보던 그녀의 친구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야, 근데 저 오빠랑 사귄다고? 저 오빠 저번에 여자 친구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응. 근데 그 여자가 질척대는 거래. 헤어지자고 그렇게 눈치를 줘도 뭐…안 떨어진다나? 그래서 오빠가 그냥 차단해버렸데. 그럼 뭐 알아서 떨어지겠지?” “아, 헐! 대박. 그 여자 불쌍해.” “나두 이제 신경 안 쓰려고. 오빠가 한 달 전부터 나 좋다고 매일 밤 우리 집 앞에 찾아오는데…그 마음 어떻게 안 받아 주니? 어젠 이 목걸이까지 선물해줬다니까. 제발 자기 마음 좀 받아 달라구.” 방금 저…질척댄다는, 헤어지자고 눈치를 줘도 안 떨어진다는, 그래서 차단을 당했다는 여자는…나를…말하는 거지? 로라는 들고 있던 우산을 자신도 모르게 툭, 떨어뜨리고 말았다. 목걸이라니…한 달 전부터라니. 그녀의 억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머. 로라야 왜 그래?” “손에 쥐났어?” 그녀의 친구들이 황급히 떨어진 로라의 우산을 주워 로라의 손에 쥐어주었지만 로라의 손은 힘이 풀려버린 지 오래. 그러곤 그런 그들의 호들갑에 가게 문 손잡이를 쥐고 안으로 들어서려던 아마도 로라의 ‘전 남친’의 ‘현 여친’인 듯한 여자가 로라를 돌아보았다. 예쁘장하게 생겼네. 남의 남자 친구 홀라당 뺏아 갈 만큼. 로라는 멍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야, 오로라. 왜 그래.” “쓰레기차를 잡아 탄 건 내 탓이라, 그냥 날 원망하고…지나치려 했는데.” “…어?” 로라는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이현우의 ‘현 여친’인 듯한 그 예쁘장한 여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지지 않고 로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어디로 튈지 모르는 로라의 주먹은 연신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며 열을 삭이고 있는 듯 했다. “그 쓰레기차. 다신 내 주위에서 냄새 못 풍기게. 폐차를 시켜버려야겠다.” “…뭐?” “이 동네에서 냄새 풍기면서 더는 못 돌아다니게, 아주 개 박살을…내버려야겠어.” “……?!” “ 이, 이현우 재활용도 안 되는 씹 쓰레기 인간아! 니가 그러고도 남자 새끼냐?!” 순간이었다. 말릴 틈도 없이 그녀가 가게 문을 박차고 안으로 돌진해버린 것은. “어머, 어머! 오로라! 로라야!” “어머, 누구세요! 누구신데 우리 오빠를!” 순식간에 가게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분에 못 이겨 가게 안으로 돌진해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서빙을 하고 있던 현우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로라. 그리고 그런 로라에게 머리채를 잡혀 들고 있던 안주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채 ‘으악!’ 외마디 비명만 내지르고 있는 현우. 가게 안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손님은 물론이거니와 술 집 앞을 지나치던 시민들은 고성과 비명이 오가는 범상치 않은 모습의 로라와 현우에게 시선 집중 했다. “으악! 뭐야! 오로라, 이거 안 놔?! 죽고 싶어?!” “못 놔! 안 놔! 오냐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어?!” “으악! 이거 놓으라고! 왜 이래! 말로 하라고!” “니 사랑은 이래?! 뒤에서 뒤통수 치고,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고, 사람 바보 만들고, 그러다 지쳐 떨어져 나갈 때까지 사람 울리는 게. 니 사랑이야?! 그게 니가 내게 해주겠다던 사랑이냐고!” “어머, 누구신데 우리 오빠 머리채를 잡는 거냐구요-! 이거 못 놔요?!” “악-! 야! 야! 이거 안 놔?! 이 기집애가 죽고 싶나!” 현우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 로라의 긴 머리칼을 잡아 챈 현우의 현 여친인 듯한 가게 앞에서의 그 여자. 로라는 으악-!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꼬맹이 너는 빠져라, 어?! 이거 못 놓아?!” “그 쪽부터 우리 오빠 놔요! 아님 절대 못 놔요!” “상황 파악 안 되니?! 니가 방금 지껄였던 너희 오빠한테 질척대는 여자가 난데?!” “뭐? 뭐…뭐라구요?” “여친 있는 멀쩡한 남자 꼬신 것도 모자라, 니가 내 머리채 까지 휘어잡아? 어?! 니년 손모가지도 이 놈 모가지랑 같이 분질러줘?!” 로라가 악을 쓰고 여자에게 덤비자, 여자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하지만 휘어잡은 로라의 긴 머리칼은 놓지 않았다. 가게 안의 사람들 역시 술렁이며 모두 휴대폰을 꺼내 처참하다 못해 충격적인 삼각관계 스캔들의 현장을 담기 시작했다. 얼굴 팔리는 줄도 모르고 바락바락 로라가 악을 쓰자, 친구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발만 동동 굴렀다. 로라가 현우의 머리칼을 오른손에 꾹 쥔 채 여자의 머리채를 휘어잡으려 나머지 한 손을 뻗었는데. 그런데. “이런다고 바람 난 그쪽 전 남친이.” “뭐야!” “정신 번쩍 차리고 그쪽 현 남친으로 컴백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웬 잘-생긴, 그러나 한 눈에도 장난기 많고 어려보이는 듯한 남자 한 명이 로라의 왼 손을 저지했다. 남자의 손엔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 있었고, 산발이 된 로라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눈빛은 귀여운 눈매와 어울리게 장난기가 가득했다. 로라는 엥? 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왼 손목을 꾹 쥐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로라는 왠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뭐라…구요?” “보는 눈도 많고. 그 눈으로 그쪽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들은 영상까지 찍어대고 있는데.” “……?” “SNS 스타 되는 게 꿈이세요? 혹시, 관종?” “뭐라구요?! 지금 놀려?! 이거 안 놔요?!” “흥분하는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하며 남자는 피식 웃었다. 피식, 웃어?! 로라는 어이없는 대사를 날리며 어이없게도 자신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 남자를 어이없다는 듯이 올려다보았다. “그럼 마무리는 이렇게 지읍시다.” “……?” “이 손목 잡힌 채로 나랑 같이 여길 나가죠.” “…….” “쿨과 찌질은 한 끗 차이인데. 여기서 나한테 이 손목 잡힌 채로 나간다면 쿨 해질 수 있을 텐데?” “…뭐래는 거야. 놔라, 이거?” “그쪽의 이 비극적인 사랑의 엔딩은 그래도 해피 해야지. 안 그래?” 하고 마지막 그 말을 내뱉는 남자의 표정은 아까완 달리 진지했다. 로라는 사뭇 진지해져버린 그 녀석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이 남자는 누구일까, 누구기에 이 어마어마한 스캔들의 현장에 불쑥 끼어들어 자신의 손목을 꾹 쥔 채, 곤경에 처한 공주를 구해주는 젠틀한 왕자님스런 멘트를 날리고 있는 걸까. 로라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렀다. 남자의 얼굴을 재빠르게 스캔했다. 하지만, 로라는 이 남자가 초면이었다. 로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도대체 이 남자…정체가…뭐지?’ 그리고 순간 느껴졌다, 로라는. 이것은…보통…인연은 아니라고. 자신의 26년, 살벌한 연애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 이 순간은 아름다운 연인이 될 불타오를 썸의 발화점이던가. 아님…상상조차 하기 싫은 악연이 될 잘못된 만남의 시초이던가, 라고. * * * 반갑습니다, 신화그녀입니다! 빙글에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너무도 반갑고, 설렙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_^ 그럼, 열심히 달려볼까요?! 함께 해주실거죠 :D
단편 : 여름의 주홍빛 녹색
“언니, 저 그 새끼랑 헤어졌어요.” “잘했어. 똥차 가면 벤츠 온다. 언니 말 믿어.” 조그만 술집에서 여자 둘이 소주를 마시고 있다. 안주는 두부 김치 하나. 언니라고 불린 여자는 아직 멀쩡해 보이는데 똥차랑 헤어졌다는 동생은 이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소주병이 셋이나 되는 걸 보면 그럴 만도 하다. 동생은 아까부터 하던 똑같은 하소연을 세 번째 시작한다. 소주 한 병당 한 번 꼴이다. “그 새끼가, 아니 그 개새끼가 또 바람피웠어요. 그 썩을 똥차 새끼가! 진짜 쓰레기 아니에요? 바람피운 거 아주 무릎 꿇고 싹싹 빌길래 두 번이나 용서해 줬는데 세 번째 또 바람피운 거 알았을 때는 진짜 내가 화도 안 나더라고요. 그것도 똑같은 년이랑 세 번을 피웠어요. 그게 말이 돼요?” 앞에 앉은 언니는 동생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고 있다. 세 번째 듣는데도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들어주는 언니에게 동생은 울분을 토한다. “내가 나보다 이쁜 년이랑 피웠으면 말도 안 해. 그 만들어지다 만 것 같이 생긴 년이 뭐가 좋다고. 진짜 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네. 개만도 못한 새끼. 그래서 진짜 제가 그래, 두 번이니까 봐주자, 삼세번까지는 참아보자 했는데 역시나 세 번째가 왔어요. 옛말 틀린 거 하나도 없는 거 같아요.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더니. 진작 차 버렸어야 됐는데.” “그래 잘했어. 사실 오지랖 같아서 말 안 하고 있긴 했는데 나도 너한테 진작 헤어지라고 하고 싶었어. 입 근질거리는 거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언니와 동생이 동시에 소주를 원샷하고 잔을 내려놓는다. 빈 잔을 채우는 동안 잠시 조용하다. 쪼르륵, 소주가 잔에 차오른다. 동생이 크 소리와 함께 입에 두부와 김치를 함께 집어넣고 씹으며 말한다. “진짜 그 새끼는 제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새끼에요. 살다 살다 그런 똥차는 또 처음 만나봤어요.” “그래, 곧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걱정 마.” 동생이 씹던 두부와 김치를 꿀꺽 삼킨다. “근데 언니는 지금까지 남자 몇 명이나 만나 봤어요?” “나? 한 네다섯 명 정도?” “언니는 그중에 누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역시 첫 남자 친군가?  “제일 기억에 남는 남자?” “저는 아무래도 이 똥차 새끼만큼 기억에 남을 놈은 없을 거 같아요. 어떤 쪽으로든.” 동생이 킥킥대며 웃는다. 맞은 편의 언니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잔에 찰랑찰랑 채워진 투명한 소주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남자는 그중에는 없어.” “엥? 그럼 누군데요?” “우연히 만났던,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 금요일 오후 2시 여자는 예식장을 나왔다. 딱히 할 일도 없는 백수 처지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예식장에서 혼자 꾸역꾸역 밥까지 먹고 나오기에는 여자의 면피가 그렇게 두껍지 못했다. 그저 적당한 금액의 축의금을 내고 축하해요 오빠라는 말을 신랑에게 전한 뒤 조용히 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박수 몇 번 치고 나왔지만 그래도 나름 지인의 결혼식이라 꽤나 차려입고 나왔다. 이렇게 꾸며 본 지가 얼마만인지 기억도 안 난다.  백수는 생활 반경이 점점 좁아진다. 백수 연차가 찰수록 만나는 사람도 없어지고 같이 취업 준비를 하던, 가끔 만나 소주 한 잔 하며 신세 한탄하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회사의 일원이 되어간다. 백수가 아닌, 번듯한 바깥세상의 사람을 만나기에는 자신이 이 사회의 짐덩이 같은 존재라는 걸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한참을 고민하다 미안, 내가 좀 바빠서 라는 답을 보내기 일쑤다. 백수 연차 3년 차가 지나가는 여자가 남색 원피스를 입고 밖에 나오는 일은 거의 연례행사나 다름없다. 사실 여자의 계획은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가 취업을 위한 인적성 평가 문제집을 풀고 면접 예상 질문과 답변을 만드는 것이었지만 막상 예식장에서 나온 여자는 눈 위에 손으로 차양을 만든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날이 너무 좋았다. 햇빛은 따갑지 않고 따뜻한 빛의 입자를 온 거리에 뿌렸고 바람이 불어 나뭇잎들이 흔들릴 때마다 빛의 입자들은 더 잘게 부서지며 초록색 사이로 반짝거렸다. 문제집과 인강, 면접 예상 답변 만들기가 기다리고 있는 어두운 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날씨였다. 그렇지만 여자에게는 딱히 할 일도, 만날 사람도, 가야 할 곳도 없었다. 그렇게 한 자리에서 한참 하늘을 바라보던 그녀는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했다.  ‘평일 서울 혼자 갈만한 곳’  검색 결과들이 주르륵 떴다. 경복궁 나들이, 서울숲, 북촌 한옥 마을, 동묘 벼룩시장 등등 온갖 키워드들이 어지럽게 스마트폰을 가득 채웠다. 화면을 슥슥 내리며 살펴보던 여자의 손이 멈췄다. 여자의 엄지 손가락이 화면을 한 번 터치하자 잠시 후 한 블로그가 화면에 나타났다.  ‘평일 오후 고전영화’ 누군가가 일기처럼 쓰는 블로그인 것 같았다. 제목 밑으로 어떤 영화를 봤으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두 문단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여자는 글에 나온 영화관의 이름을 다시 검색했다. 종로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 걸으면 바로 그 영화관이었다. 위치 바로 밑에 뜬 상영 정보를 보니 처음 보는 제목의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었다. 3시에 상영되는 영화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여름의 녹색’ 지하철역은 오른쪽이었다. 여자는 종로역에서 내려 영화관에 도착했다. 영화관 정문 오른쪽에는 오늘의 상영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13:00 기름과 물은 섞이지 않는다 15:00 여름의 녹색 17:00 그믐달 전부 처음 들어보는 영화들이었다. 저 셋 중에는 여름의 녹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자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에는 조그만 매표소가 있었고 그 옆에는 사람이 없는 매점도 있었다. 꽤 넓은 공간 안에 움직이는 사람은 여자뿐이었다. 매표소 안의 직원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여자는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매표소로 걸어갔다. 여자가 창구 앞에 섰음에도 머리를 박고 잠들어 있는 직원은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저기요.”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부르자 직원이 흠칫 떨더니 일어났다. 입가 오른쪽에는 침이 살짝 묻어있다. 직원은 소매로 침을 쓱 닦고 한껏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어떤 거 드릴까요.” “여름의 녹색 하나 주세요.” “네, 팔천 원입니다.” 아직도 팔천 원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여자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꺼내 내밀었다. 여직원은 이천 원과 티켓을 함께 건넸다. 분홍색 티켓에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이십 분 전부터 입장 가능하세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티켓을 보았다. 이렇게 티켓으로 된 영화표를 받아 본 것이 얼마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여자는 영화 티켓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영화관에서는 티켓이 아니라 영수증 겸용의 흐물흐물한 종이 영화표를 주기 시작했고 영화 티켓을 모으곤 하던 그녀는 그런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취미 하나를 잃어버렸다. 전에 티켓을 모으던 상자가 있었는데 어디 있더라. 여자는 그 상자에 이 분홍색 티켓도 넣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마트폰을 보니 2시 50분이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여자는 아무도 없는 매점으로 가 냉장고에서 생수를 한 병 집어 들었다. 여자는 매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직원을 찾았지만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여자는 겉에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한 생수를 들고 다시 매표소를 찾았다. 직원은 그 사이 머리를 박은 채 잠들어 있었다. 여자는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한번 직원을 깨웠다. “저기요.” “에!” 직원은 대답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를 내며 다시 일어났다. 검은 머리끈으로 질끈 묶은 그녀의 머리가 마치 달리는 말의 꼬리처럼 흔들렸다. “깨워서 죄송해요. 매점에 아무도 안 계셔서요. 이거는 어디서 계산하면 되나요?” 여자가 생수를 들어 보이며 묻자 직원은 손으로 입가를 훔치며 말했다. “아, 그냥 저한테 돈 주시면 돼요. 생수 천 원이에요.” 여자는 지갑에서 아까 받은 이천 원 중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직원은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돈을 받았다. 이제 2시 58분이었다. 관은 하나였다. 적어도 헷갈릴 일은 없어 보였다. 상영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크린에서는 영화 감상을 위한 에티켓을 티켓에 있는 것과 같은 캐릭터가 설명하고 있었고 좌석은 텅 비어 있어 영화관을 통째로 빌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관 안에서는 어릴 적 잡동사니를 쌓아 놓던 먼지 쌓인 다락방의 냄새가 났다. 여자는 티켓에 적힌 좌석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중간 열의 제일 왼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여자는 자리에 앉은 채 주변을 둘러보다가 누군가를 발견했다. 자신의 반대편, 오른쪽 끝 좌석에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구석이라 처음 들어올 때 못 본 것 같았다. 이 작은 관 안에는 왼쪽 끝의 여자와 오른쪽 끝의 남자 둘 뿐이었다. 남자는 한 달 전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3년간 사귀었던 연인은 한순간에 참 싱겁게도 헤어졌다. 두 달 전부터 남자의 연인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고 아무리 메시지를 남겨도 1 표시만 사라질 뿐, 답은 오지 않았다. 3년을 사귀는 동안 그녀는 절대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았었고 일하는 곳도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무시하면 도저히 만날 방법이 없었다. 남자는 연인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커피에 시럽을 몇 번 넣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것들은 하나도 모른다는 걸 연락이 단절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그녀는 이런 순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일까.  한 달 전, 내내 1만 사라지던 카톡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오늘 저녁 6시 반, 함께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만나자는 메시지였다. 반쯤 포기하고 있던 남자는 한 달 만에 온 그녀의 메시지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냥 회사 책상에 앉아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았다. 6시가 되자마자 회사를 나온 남자는 카페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고 버스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녀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던 한 달 동안 한 번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카페에 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흘렸고 도착해서는 카페가 있는 건물 안 화장실에서 5분간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6시 반에 앞에 앉은 차가운 얼굴의 전 연인에게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다. 6시 35분, 커피가 나오기도 전 그녀는 카페를 떠났고 남자는 혼자 자리에 앉아 앞에 두 잔의 커피를 놓은 채 1시간 동안 창 밖을 쳐다봤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남자는 그 후 일주일 동안 매일 다른 친구를 만나 술을 마셨다. 술이 떡이 되어서 원룸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져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출근했다가 퇴근 후 다시 술을 마셨다. 일주일 뒤에는 함께 마실 친구가 없어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마른오징어를 사 와 집에서 혼자 술을 마셨다. 그렇게 술에 절어 지낸 지 이 주가 지나 남자는 갑자기 일상으로 돌아왔다. 카페에서 헤이즐넛 라떼를 시키는 여자를 볼 때마다, 커피에 시럽을 세 번씩 짜는 사람을 볼 때마다, 호두과자를 먹을 때마다, 검정치마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블 영화 광고를 볼 때마다 누군가 떠오른다는 점에서는 아직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볼 때에 남자는 완전히 원래의 남자로 돌아온 것 같았다.  아직도 가끔 밤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잠들곤 하는 남자는 갑작스러운 두통 때문에 오후 반차를 내고 병원에 들렀다. 딱 병원 점심시간이 끝나는 1시 반에 맞춰서 갔더니 대기하는 사람이 없어 바로 진료실로 들어갔다. 신경성 편두통이라는 진단과 함께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술, 담배 당분간 줄이시라는 아무나 해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약국에 들러 약봉지를 받아 들고 나왔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제 오후 2시였다. 남자는 예상치 못하게 남아버린 시간에 무엇을 할까 골똘히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기로 했다. 이 근처에 가끔 갔었던 영화관이 있었다. 독립 영화나, 인디 영화, 예술 영화들을 상영해주는 영화관이다. 이 영화관은 항상 오후 1시, 3시, 5시에 각각 한 번씩 영화를 상영했었다. 1시간 안에 간다면 3시 영화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는 원래 그곳에 종종 영화를 보러 가곤 했다. 전 연인이었던 그녀를 데리고 두 번 정도 함께 간 적이 있었는데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그녀는 왜 저런 영화를 보는지 모르겠다, 하나도 재미없다 라며 남자를 타박했다. 그녀 덕분에 둘의 데이트 때 보는 영화는 항상 토르, 헐크, 어벤저스 같은 히어로물이었다. 그래서 남자는 데이트가 없을 때 그녀가 말한 왜 보는지 모르겠는 재미없는 영화를 혼자 보러 가곤 했다.  회사 근처 병원과 영화관은 가까웠다.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가서 도착하는 시간이나 걸어가는 시간이나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남자는 걷기로 했다. 점심이 지나 어정쩡한 시간, 회사원들은 이미 사무실로 돌아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시간에 남자는 거리를 혼자 걸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걷는 남자는 햇살이 참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최근 한 달간 햇빛을 몸으로 받아 본 일이 거의 없었다. 해가 그 빛을 완전히 뿜어내기 전에 출근했고 붉은빛 외의 다른 빛들은 모두 사라진 반쪽짜리 햇빛을 받으며 퇴근했다. 회사에 나가지 않는 주말에는 점심이 한참 지나 일어나서 TV를 좀 보다가 밤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 그대로 잠들었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낮 거리는 생각보다 한적했고 햇빛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30분 정도 걷자 영화관이 보였다. 땀이 나서 정장 상의를 벗은 남자는 와이셔츠 차림으로 영화관 안에 들어섰다. 영화관은 냉방이 되고 있는지 시원했다. 남자는 익숙한 걸음으로 매표소로 향했다. 남자는 자고 있는 매표소 직원을 불렀다. “저기요.” 직원이 졸린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는 직원이었다. 항상 여기 계시던 아저씨는 잘리신 건가. 직원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로 남자는 약간의 생경함을 느꼈다.  “3시 영화 하나 주세요.” 남자는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직원이 카드를 받아 긁자 직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영수증이 나왔다. 직원은 영수증과 티켓을 함께 건넸다. “영화 시작 20분 전부터 입장 가능하세요.” 남자는 네라고 대답하며 티켓과 영수증을 받아 들었다. 직원은 변했지만 분홍색 티켓에 그려져 있는 캐릭터는 그대로였다. 그녀가 이 영화관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들어했던 것이 이 분홍색 티켓이었다. 남자는 물끄러미 티켓을 쳐다보다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직 2시 40분이 되기 조금 전이었지만 남자는 상영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래 묵은 건물에서 나는 냄새가 반가웠다. 그녀가 싫어하던 이 냄새를 남자는 좋아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상영관에 들어온 남자는 중간 열 오른쪽 끝 좌석에 앉았다. 항상 이 곳에 올 때마다 남자는 그 자리에 앉았다. 애초에 사람이 많이 오는 영화관도 아니거니와 몇몇 오는 사람들도 거의 한가운데 자리에 앉았기에 중간 열의 오른쪽 끝 좌석은 남자의 지정석이나 다름없었다. 앉아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스크린을 쳐다보는 남자의 눈길에 보답이라도 하듯 조금 뒤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정장 상의를 옆 좌석에 대충 걸쳐놓고 스크린에 시선을 집중했다.  같은 광고가 두세 번씩 나오기를 두세 번 반복하고 나서 영화 관람 에티켓과 대피 경로 등을 티켓에 있는 것과 같은 캐릭터가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낯선 빛이 뒤에서 들어왔다. 남자는 몸을 돌려 뒤를 보았다. 한 여자가 상영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상영관 밖의 흰 빛이 여자의 뒤에서 비추고 있었다. 푸른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상영관 안으로 걸어 들어왔고 상영관의 문이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점점 가늘어진 흰 빛은 문이 완전히 닫히며 사라졌다. 남자의 시선은 움직이는 여자를 따랐다. 여자는 구두 소리를 울리며 천천히 걸어서 남자의 정 반대편, 왼쪽 끝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여자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를 향했던 시선을 스크린으로 돌렸다. 왜 여자의 눈길을 피했는지 남자도 알 수 없었다.  앞에서 날아다니는 캐릭터가 사라지고 상영관이 암전 되었다. 상영관 안에는 오른쪽을 보고 있는 여자와 스크린을 보는 척하는 남자가 있었다. 탁, 탁, 타다다다다다.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오래된 필름 영화가 스크린에 투영되었다. 여자는 스크린에서 반사된 빛이 스민 남자의 왼쪽 얼굴을 보았다. 선이 가늘고 부드러운 남자였다. 영사기에서 쏘아지는 빛의 줄기에 떠다니는 먼지들 너머로 보이는 남자의 왼쪽 얼굴은 눈길을 잡아 끄는 힘이 있었다. 갑자기 남자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여자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스크린을 바라봤다.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하고 있었다. 오래된 일본 영화였다. 시간이 쌓인 영화라서 인물이나 배경의 선이 뚜렷하지 않고 부드럽게 뭉개졌다. 여자는 요즘은 볼 수 없는 필름 영화의 미흡한 기술력에 의한 부족한 뚜렷함과 선명함이 마음에 들었다. 일본 시골 마을의 무더운 여름 풍경이 펼쳐지더니 마루에 앉아 밖을 구경하는 남자아이와 엄마의 모습이 나타났다. 아이는 일본어로 물었다. “엄마, 여름은 왜 녹색이야?” 엄마가 대답했다. “여름이니까.” 아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영화는 일본 영화 특유의 잔잔한 분위기 아래 따뜻한 색감을 입혔다. 여름이란 온통 녹색인 시골의 남자아이와 도시에서 전학 온, 사계절이 회색이었던 여자아이가 만나 매미 소리가 울리는 녹색 산을 헤집고 돌아다녔다. 여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영화의 색감에 빠져들면서도 문득문득 오른쪽을 쳐다보았다. 그때마다 남자는 스크린에서 반사되는 빛에 녹색, 흰색, 노란색으로 물든 얼굴로 영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보고 있을 때 남자가 살짝 자세를 고쳐 앉으면 여자는 다시 스크린으로 얼굴을 돌렸다. 여자의 눈은 영화를 보면서 머리는 자신이 왜 자꾸 저 남자를 쳐다보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한눈에 반해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학생 때처럼 얼굴을 보고 한눈에 반하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여자는 스크린에 나타난 초점이 맞지 않는 나뭇잎의 뭉그러진 녹색을 보며 생각했다. 이 공간과 시간이 주는 아무 의미 없는 우연 때문이 아닐까. 하필 오늘, 이 곳에서 이 오래된 일본 영화를 보고 있다는 기억을 공유하는 것은 텅 빈 영화관의 여자와 남자 둘 뿐이었다.  여자는 자신이 남자를 자꾸 바라보는 이유에 대해서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뒤로 남자의 왼쪽 얼굴을 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그 생각을 한 직후, 여자가 영사기에서 쏘아지는 빛의 궤적과 그 속에서 떠다니는 먼지들을 넘어 남자의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초점을 맞췄을 때 남자도 스크린이 아니라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잠깐, 먼지 하나가 유영하며 영사기가 쏘아낸 빛의 궤적을 이탈하는 순간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둘의 눈이 마주친 찰나의 시간 동안 어떤 감각이 흘러가고 흘러왔음을 느꼈다. 어두운 영화관 안에서 제대로 얼굴을 식별하기조차 어려웠지만 분명히 여자와 남자 둘 다 알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한 채 바라보고 있었고 그것은 의미 없는 단순한 시선의 스침이 아니었다. 남자는 가끔씩 여자가 자신의 얼굴을 본다는 것과 자신이 살짝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여자가 시선을 거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자가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남자는 고개를 살짝 돌려 여자의 오른쪽 얼굴을 보았다. 긴 생머리에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시골의 소년과 도시에서 온 소녀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졌다. 무슨 일을 하는지, 이 시간에 혼자 영화를 보러 온 이유는 무엇인지,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는 좋아하는지, 오늘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영화는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도시에서 온 소녀는 결국 다시 도시로 돌아가게 되었다. 영화가 시작할 때보다 조금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소년은 내일 도시로 떠나는 소녀에게 말했다. “시즈코. 녹색 여름은 어땠어?” “회색 여름보다 훨씬, 훨씬 좋았어.” 소년이 소녀에게 네 잎 클로버를 내밀었다. “그때 못 찾았던 네 잎 클로버야. 이게 있으면 도시에서도 여름은 녹색일 거야.” 소년이 내민 네 잎 클로버를 소녀가 받아 들었다. 카메라가 점점 녹색 네 잎 클로버로 줌인되더니 그 위로 하얀 일본어 글씨가 떠올랐다. ‘여름의 녹색’ 화면이 검게 변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영화관에 어두운 노란색 조명이 켜졌다. 여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른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자가 오른쪽을 보자 남자가 한 팔에 정장 상의를 걸치고 걸어오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서 두 걸음 정도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 둘의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말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그다음에는 어떻게 됐어요?” “뭘 어떻게 돼. 그냥 커피 한 잔 마시고 헤어졌지. 그리고 끝이야.” “뭐 전화번호나 그런 거 안 물어봤어요?” “응. 안 물어봤어.” “아니 그럼 그 여자분한테 왜 커피 마시자고 한 거에요?” “그냥. 영화가 재밌었는지 궁금했거든.” 남자는 여자의 이름도, 전화번호도, 나이도 물어보지 않았었다. 영화가 재미있었는지, 원래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지, 이 영화관에는 가끔 오곤 하는지를 물어봤을 뿐이다.  “아니, 형. 남자가 돼 가지고.” “야, 닥치고 술이나 마셔.” 남자는 앞에 앉은 동생의 입을 소주잔으로 막았다. 빈 소주잔에 남자가 소주를 따랐다. 투명한 액체가 꼴꼴꼴 소리를 내며 잔에 채워졌다. “그 여자분 어떻게 사는지 안 궁금해요?” 남자가 대답했다. “조금 궁금하긴 하지. 그래도 안 물어보길 잘한 것 같아.” 남자는 가끔 여자가 생각났다. 그저 한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커피를 같이 마셨을 뿐인데도 여자는 남자의 머리에 강렬한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여자가 떠오를 때는 항상 그때의 기억 전부가 함께 불려 왔다. 그 날 거리를 걸을 때의 따뜻한 햇빛과 영화관에서 났던 오래된 건물의 냄새, 타닥거리는 영사기의 소리와 영화관에 떠다니던 먼지들까지 모든 것들이 되살아나면 그 가운데에 여자가 있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그녀도 가끔 이렇게 나를 떠올릴까? 그 날의 영화와 날씨와 감각이 머릿속에서 나와 함께 재생될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한 잔 하자.”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가 청명하게 울리고 남자는 소주잔을 비웠다. 남자가 소주잔을 내려놓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술집 창문 밖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여름밤, 나뭇잎은 가로등 빛에 물들어 주홍빛 녹색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김초엽 저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쓴 글입니다.) 오랜만에 읽은 SF 단편집이다. 사실 SF 소설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자주 읽지도 않는다. 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 있다 보니 SF 소설을 읽을 때 마음 편히 읽지 못하고 계속해서 소설 내 설정의 정합성을 따지는 바람에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순수한 집중을 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일반적인 SF와 다른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조금 더 편히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총 일곱 권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차례대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펙트럼, 공생 가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감정의 물성, 관내분실,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필자에게 흥미로웠던 작품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과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였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우주가 개척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이주한 행성으로 가지 못하게 된 안나라는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냉동 수면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과학자인 안나는 슬렌포니아라는 행성계로 남편과 아들이 먼저 이주한 상태에서 자신은 지구에 남아 연구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당시 워프 버블을 이용해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다른 은하에 도달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지만 그 기술로도 다른 은하에 도달하기까지는 여전히 몇 년, 혹은 몇십 년의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시간을 멈추기 위해서는 냉동 수면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나가 냉동 수면 기술을 거의 완성했을 때쯤 워프 항법이 아니라 웜홀 통로를 이용하는 항법이 개발된다. 웜홀 통로는 우주에 이미 뚫려 있는 통로였고 그 통로를 이용하기만 하면 되었기에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인 항법이었다. 하지만 웜홀 통로 항법은 이미 우주에 존재하는 웜홀 통로만 이용할 수 있었고 슬렌포니아 행성은 웜홀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위치한 행성이었다. 결국 웜홀 통로 항법이 개발되면서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방법은 점점 사라져 갔고 안나가 냉동 수면 기술을 완성한 이후에는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는 우주선은 거의 없었다. 결국 안나는 점점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될 때까지 슬렌포니아 행성으로 가지 못하고 언제일지 기약 없는 슬렌포니아 행 우주선을 기다린다. 영원히. 이 단편은 기술의 변화로 소외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분명 먼 미래, 과학이 엄청나게 발전한 미래의 이야기이지만 묘하게 현재와 겹쳐 보인다. 생물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인 필자의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는 과학계의 트렌드를 생각하며 읽었다.(사실 과학에 트렌드가 존재하는 것이 납득할만한 사실인가도 의문이다.)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을 충당할 과제에 선발되기 위해서는 트렌드에 맞춘 연구를 해야 한다. 돈을 후원하는 입장에서는 이슈가 되고, 홍보가 되고, 유명한 저널에 올리기 쉬운 논문이 나올 연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어떤 시기에는 암, 몇 년 후에는 치매, 또 몇 년 뒤에는 심장병. 그런 트렌드의 변화에 맞물려 진행되던 연구가 돈이 부족해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특히 우리나라 과학계가 그런 면이 많다.) 그렇게 트렌드에 맞지 않는 연구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그 연구들에 희망을 걸던 암 환자들, 치매 환자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영원히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는 연구임에도 실낱 같은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결국 트렌드에서 멀어진 병을 가진 환자들은 소외되고 마는 것이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지금의 트렌드인 심장병 연구에만 돈이 지원되기 때문에.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몸을 개조해 극한 상황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사이보그 그라인딩이라고 부른다.) 우주 터널을 통과할 수 있는 우주비행사를 만드는 것이 주 설정이다. 주인공 가윤은 1차 사이보그 그라인딩 우주비행사였던 자신의 우상, 재경을 보고 이 프로젝트에 지원해 합격한다. 우주비행사 선발 당시 재경은 작은 키에 이미 아이가 있는 데다(심지어 비혼모다.) 나이도 많은 동양 여성이었고 많은 비난에 직면했었다. 성별과 인종 쿼터를 신경 쓴 선발이다, 재경의 실력과 자격이 부족하다는 비난들에도 재경은 꿋꿋이 버텨내 인류의 소외된 사람들을 대표하여 당당히 모든 훈련을 소화해냈고 안타깝게도 마지막 우주 터널 통과를 위한 우주비행선이 폭발하면서 사망한다. 가윤은 그런 재경을 한없이 동경했고 자신이 사이보그 그라인딩 우주비행사로 뽑힌 사실에 감격한다. 하지만 우주 터널 통과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폭발 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려졌던 재경은 사실 우주 비행선에 타지도 않은 상태였고 사이보그 그라인딩이 끝난 몸을 가지고 심해로 도망쳤다는 사실을 가윤은 뒤늦게 알게 된다. 재경과 친엄마만큼이나 돈독한 사이였던 가윤은 그 사실이 보도되자마자 엄청난 비난에 직면한다. 결국 가윤도 재경처럼 도망칠 것이다, 가윤도 무언가 자격 미달인 점이 있을 것이다 등등. 하지만 가윤은 재경처럼 도망치지 않고 그 모든 비난을 뚫어낸다. 결국 터널 너머의 우주를 본 첫 번째 우주비행사는 가윤이었다. 이 단편은 소수자에 대한 시선의 양면적인 뒤틀림을 보여준다. 고령의 동양인 비혼모 우주비행사인 재경은 대중이 기대하는 표준적인 우주비행사가 아니다. 한없이 표준에서 먼 곳에 있는 존재, 소수집단의 일원인 것이다.  재경에게는 소수집단이(실제 숫자에서든 사회적 관점에서든) 받는 양면적인 시선이 끝없이 가해진다. 한쪽에서는 분명히 제대로 된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할 것이다, 자격미달이다 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한쪽에서는 여성의, 비혼모의, 동양인의 우상, 소수집단의 희망이라는 찬사가 쏟아진다. 그 양립할 수 없지만 양립하고 있는 비난과 기대를 모두 저버리고 사라진 재경에 의해 오히려 가윤은 보호받는다. 가윤은 재경보다는 표준에 가깝고, 이미 재경에 의해 가윤에 대한 기대는 한껏 내려간 상태이기에 가윤은 훨씬 담담하게 사이보그 그라인딩 프로젝트에 임하고 실제로 우주 터널 통과까지 성공한다. 우리는 소수자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비난하는 대중과 찬사를 보내는 대중이 우리에게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것도 동시에. 소수집단이든 다수 집단이든 아무 차이 없이 대하는 것이 분명 정답일 테지만 아직도 우리는 많은 편견과 차별에 사로잡혀 있고 그런 이상이 이루어질지도 알 수 없다. 이 소설은 SF, 먼 미래라는 탈을 쓰고 현실을 꼬집는다. 과연 나는 재경과 가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는가라는 질문이 곧 현 사회의 소수집단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로 이어진다.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질문이다. 이 소설집은 다른 SF 소설들과 약간 다르다. SF적인 요소들을 불러와 먼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음에도 현실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SF 소설의 장르적인 특징과 순수문학의 주제의식을 잘 섞어서 흥미롭고 새로운 유기체를 만들어 냈다. 김초엽 작가의 두 번째 책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해진다. 소설 속 한 문장 : 그녀는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니아에 도착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38
어느덧 38번째 글이다. 되돌아가 1번 글을 읽다 보면 까마득하다. 그리고 놀랍다. 그 글이 씌어진 때가 올해라는 사실이. 체감상 2년쯤은 지난 것 같은데. 올해 마지막,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글, 52번이 쓰일 날은 12월 28일이다. 달력을 열어보니, 그날은 내가 술을 끊은 지 300일이 된 날(물론 그날이 오기 전에 혹여 술을 마시면 더는 술을 끊은 지 300일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꽤 낮으므로)로부터 일주일이 지난날이고, 크리스마스가 3일 지난날이며, 원자력안전및진흥의날 바로 다음 날이다. 그날 나는 또다시 새로운 감회에 젖어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는데, 그날의 너는 어떻게, 지금보다는 행복하니? 그날의 나에게 말을 건다. 그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대답해주기를 바란다. 아마도, 그날의 나는, “그래, 잘은 모르겠지만, 그때의 너보다는 행복한 것 같아.”라고 말할 것 같다. 지금은 가을이고, 어쩌면 아직 여름의 끝자락이고,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추정해보건대, 반소매 티와 반바지를 입고 있으므로, 가을보다는 여름의 끝자락이라고 할 만한데, 그날의 너는 아마도 긴 겨울옷을 입고, 아마도 이곳에서, 그러니까 자주 오는 이 카페에서, 아니면 다른 곳에서 글을 쓰고 있겠지. 이 프로젝트는 올해를 끝으로 잠시 휴면 상태에 들 것이고, 다른 글쓰기가 시도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의 몇 번째 글 어딘가에서 서른다섯 살의 내가 마흔 살의 나에게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메일을 통해서였는데, 마흔 살의 12월에 그 편지가 도착할 예정이다. 아마도 마흔 살의 나는 쉰 살의 나에게 편지를 보낼 것 같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강원도 어딘가에서 타임캡슐을 운영하는 곳을 알게 됐는데, 최대 보관 기한이 3년이었다. 그곳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극중인물 견우가 그녀와의 타임캡슐을 묻었던 그 소나무다. 그곳이 어느새 그런 관광지로 탈바꿈돼있었다. 취지는 좋지만, 상술에 물들어있는 것이 보기에 좋지만은 않고, 그런 것은 차치하더라도, 기한이 고작 3년이라는 것이(물론 장기간 보존을 담보하기란 꽤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쉽고, 가장 걸리는 것은, 교통편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고작 3년을 바라보고, 물성의 기억을 땅에 묻는다면, 뭐가 좋을까. 그것을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여러 수고를 감수하고라도, 그곳에 가보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 중인데, 중요한 것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찾는 일일 것이다. 누군가 한 20년 뒤에 열어볼 타임캡슐을 묻는 상상을 해본다. 20년 동안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살아있다는 것을 전제할 때, 무려 20년이나 흘러버려 그런 것을 묻었었다는 사실을 영영 잊은 채(그럴 일은 없으려나?) 생을 마감하면 아쉬울 것 같고, 그날만을 기다리느라 늘 미래에 삶이 묶여 현재를 망쳐버리는 것(물론 그러기엔 20년이 너무 길기는 하다)도 좋은 일은 아닐 것 같다. 과거에 묶여 현재를 망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미래에 묶여 현재를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1초 뒤가 궁금해지는 스냅사진을 보듯, 1년 뒤, 10년 뒤, 20년 뒤가 궁금해지는 오늘을 본다. 나는 요즘 아무래도 미래에 중독돼버린 것 같다. 현재의 ‘나’와 30년 뒤의 ‘나’가 절반씩 쓰는 시를 구상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건 좀 무례하다. 30년 뒤의 나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구상한 것 아닌가. 30년 뒤의 나가 현재의 나를 상대나 해줄지 의문이지만, 상대해준다고 해도, “이놈! 이제 살아있지도 않은 나에게 네 놈이 감히?” 이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서른다섯 살의 나는 마흔 살의 나에게 편지를 쓸 때, ‘당신’이라는 호칭을 썼다. 마흔 살의 ‘나’가 쉰 살의 ‘나’에게 편지를 쓸 때는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리 그자가 나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열 살이나 많은 사람인데, 반말을 해도 되는 것일까. 쉰 살의 내가 답장에, “저기, 그런데 말일세. 아무리 그래도 자네는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데 이렇게 반말을 들으니 기분이 언짢군. 답장은 없네. 에헴, 그럼 이만.” 이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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