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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la Ali Elmi
https://www.lemonde.fr/m-actu/article/2018/09/30/leila-ali-elmi-musulmane-et-voilee-fait-son-entree-au-parlement-suedois_5362272_4497186.html 최근 스웨덴 총선에서 특이한 당선 사례가 하나 있었다. 소말리아 태생의, 히잡을 차고 다니는 젊은 무슬림 여자가 당선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Leila Ali Elmi. 1988년생이며, 이전까지는 동네 소말리아 난민들 스웨덴어 통역을 맡고 있었다고 한다. 소속은 녹색당(Miljöpartiet, 직역하면 환경당이며 사민당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이다. 그녀는 원래 녹색당의 정당명부 25번 후보였지만, 지역구의 득표 1,467표로 의원 자리를 뜻하지 않게 차지한 것인데... 스웨덴 선거 시스템을 좀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스웨덴 총선은 기본적으로 비례대표제이다. 하지만 당연히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상설의석(fasta mandat, 310석)과 보정의석(utjämningsmandat, 31석)이 있다. 비례 득표에 따라 상설의석을 정당별로 배정한 다음, 오차가 나는 수를 보정의석으로 배정하는데, 어차피 득표 수에 따라 정당 간 의원 수는 확정이 이미 됐었다. 다만 여기서 스웨덴의 비례대표제는 정당명부의 후순위(혹은 아예 명부에 없는 인물)가 득표를 많이 받은 경우(참조 1) 그 후보에게 의석을 우선배정 할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지역적으로 몰표를 받으면, 아무리 정당명부에서 후보가 후순위라 하더라도 당선될 수 있다는 얘기다. Leila 의원의 경우 Göteborg의 소말리아인 공동체(참조 2)로부터 몰표를 받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25번 후보이니 당선을 생각도 못 했다가, 실제 개표를 해보니 당선된 것이다. 그녀는 2살 때 스웨덴으로 이민왔으며, 녹색당에는 2014년에 가입했다. 그리고 이제 나이 서른 살인데, 당연히 경력이랄 것이 통역 외에 거의 없다. 그냥 신념상 녹색당 간 것 외에는 말이다(참조 3). 기사에 따르면, 심지어 유세 활동도 소말리아어로 했다고 한다. 그녀는 소말리아를 위해 스웨덴 의원이 된 것인가, 아니면 무슬림을 위해서 된 것인가? 이러니 스웨덴 민주당이 약진하는 것 아니겠는가... ---------- 참조 1. 스웨덴 총선 투표지는 정당/후보가 적힌 투표지, 그리고 정당만 적힌 투표지, 그리고 백지를 별도로 받는다. 즉, 총선 투표지가 3장이라는 의미인데, 별도로 선호하는 인물이 있을 경우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투표지를 이용하라는 의미다. 스웨덴 투표제도 : https://sv.wikipedia.org/wiki/Riksdagsval_i_Sverige#R%C3%B6stning 2. 56,000명 거주민 중 소말리아인이 8,500명이었다. 특히 소말리아인 축구 클럽(Bergsjön SK)의 지지가 컸다. 3. Leila Ali-Elmi (스웨덴 의회 사이트): http://www.riksdagen.se/sv/ledamoter-partier/ledamot/leila-ali-elmi_5997ba96-4f01-46f4-8bd8-e1411a9d503b
노벨 스캔들
https://www.lemonde.fr/m-actu/article/2018/08/31/prix-nobel-histoire-d-une-tourmente_5348344_4497186.html 스웨덴 증권거래소는 원래 증권 거래용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노벨 문학상을 심의하는 스웨덴 한림원(Svenska Akademien, 참조 1)이 사용하고 있다. 물론 스웨덴 한림원이 큰 스캔들로 인해 올해 노벨문학상 지명을 하지 않기로 한 뉴스는 알고들 계실 것이다. 자, 이 소식을 2017년 11월 21일 처음 보도했던 스웨덴의 대표적인 조간지 Dagens Nyheter의 비에른 비만(Björn Wiman) 문화부장은 자신의 기사가 작은 폭탄일 줄은 알았지만 한림원과 노벨 문학상까지 건드릴 줄은 몰랐다고 한다. 여기서 퍼뜨렸던 내용은 18명의 여인들이었고, 이들은 모두 한 할배를 지목했다. 마침 스웨덴 한림원의 종신 위원들 또한 18명이다(참조 1). 우연일까? 주말 특집이 음모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음모론이 아니다. 스웨덴 한림원이 그냥 자살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폭로 기사는 한림원을 겨냥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71세의 프랑스 할배인 장-끌로드 아르노(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와는 관계가 없다, 참조 3)에게 있었다. 그의 부인이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은 시인이자 번역가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Katarina Frostenson), 비단 18명의 “미투”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프로스텐손 위원은 스톡홀름 내에서 Forum이라는 문화재단을 운영하고 있었고(지분의 절반을 소유), 이 재단이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해 충돌”을 한림원 측에 보고하지 않고 있었다. 한림원 자산인 파리의 아파트 점유 문제도 있었으며, 남편은 노벨 문학상 후보 지명에 압력을 행사했다고 자랑하고 수상자를 사전에 누출시키는 등 문제가 많았다. 그러자 스웨덴 한림원의 사라 다니우스(Sara Danius) 종신 총비서(ständige sekreteraren, 참조 4)는 마치 스타트업 CEO처럼 기민하게 움직였다. 로펌을 고용하여 내부 조사를 시작한다. 아르노와 프로스텐손 부부를 향한 조사였고 결국은 프로스텐손 위원의 축출 여부를 가리는 위원회 내 투표(참조 5)를 2018년 4월 5일 개시한다. 결과는 프로스텐손 위원 측의 승(?!). 바로 여기에 반발해서 위원들이 이 사람 저사람 사임하기 시작하고, 끝내는 다니우스 총비서는 물론 장본인인 프로스텐손 위원도 사임한다. 그래서 이 난리가 일어난 것이다. 4억 유로 정도에 달하는 노벨의 유산은 물론 예산이 매우 풍부한 스웨덴 한림원은 전혀 견제받지 않는 조직이며, 그 운영도 대단히 불투명하다. 노벨상만이 아니고 70여개 장학금과 각종 문학 시상을 하기 때문에 비상업 작가나 출판사들 입장에서도 스웨덴 한림원이 “갑”이다. 따라서 스캔들이 있든 없든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스웨덴 한림원의 태도였다. 그래서 갑자기, 스웨덴 여론은 스웨덴 국왕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한림원을 통제할 단 하나의 기관이 국왕이었기 때문이다. 한림원 정관을 바꿀 수 있는 인물이 바로 국왕이다. 적어도 12명의 위원이 모여서 선출을 해야 새 위원을 뽑을 수 있건만, 사임자들(?)을 빼고 현재 활동 중인 위원이 10명 밖에 없어서다. 이제까지 의례적인 면에 머물러왔던 국왕이 과연 규칙을 바꾸거나 전면에 나서는 일이 발생할까? 스웨덴 한림원은 아카데미 프랑세즈처럼 목요일마다 회의가 열린다. 이번 달 회의는 바로 9.6(목). 물론 밥 딜런의 문학상 수상식에서 셀카나 찍어대던 위원들의 모습을, 언론은 기억하고 있다. ---------- 참조 1. 원래 1786년 아카데미 프랑세즈(참조 2)를 본따서 만들었다. 그래서 18명의 종신위원(ledamöter)이 존재한다. 이 종신성 때문에 문제가 됐다. 2. 포괄형 글쓰기(2017년 12월 24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879513744831 3. 이제까지는 그냥 폭로일 따름이었다. 18명의 폭로 건에 대해 9월 19일부터 스톡홀름에서 재판이 열린다. 4. 명칭과는 달리 사임하거나 사망하거나, 아니면 위원 회의에서 달리 결정하지 않는 한 70세가 정년인 총무 역할의 자리이다. 여담이지만 사라 다니우스는 한림원 최초의 여성 총비서였다. 5. 말 그대로 종신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축출만 가능하다. 사망하지 않는 한, 사직도 마음대로 못 하기 때문에 비판이 있다. 위에서 “사임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위원회 회의에 안 나갈 뿐(강제 출석은 안 된다), 일종의 “좀비” 위원이 되어버린다는 의미가 바로 사임이다.
중앙은행 하면 역시 스웨덴이죠
http://www.faz.net/-i2t-9cbjc 스웨덴 중앙은행(Sveriges Riksbank, 이하 릭스방크)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중앙은행이다. 조선 현종 9년(1668년)에 창립됐는데 여기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원래는 이 은행이 중앙은행은 아니었다(참조 1). 조선 효종 8년인 1657년, 국왕과 수익을 50:50로 나누기로 하고 설립한 민간은행, Palmstruch Bank다. 라트비아 출신의 네덜란드 금융인(!)이었던 요한 팔름스트루크(Johan Palmstruch)는 이 은행을 통해,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지폐(참조 2)를 만든다. 기사에 나오지만 30년 전쟁으로 인해(!) 은이 부족해지자 구리로 화폐 역할을 대신했었고, 구리판(!)이 워낙 크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에 대한 증서(!)로 지폐를 발행했다는 얘기다. 이때가 1659년이다(효종이 종기 때문에 사망한 해이다, 음모론은 당연히 있다). 이 구리판 대신 증서만으로 상거래가 활발히 이뤄짐을 관찰했던 팔름스트루크는 구리판을 은행에 맡겨놓지 않은 고객들도 일종의 "대출"을 통해 지폐(증서)를 받아서 쓸 수 있도록 했다. 당연히 지폐 남발이 이뤄지고, 팔름스트루크는 투옥된다. 지폐 발행도 금지됐다. 그런데 "대마불사"의 논리가 이때부터 등장한다. 그대로 이 은행을 도산시켜버리기에는 너무 많은 국민들이 연루(!)됐기 때문에, 의회가 나서서, "굿 뱅크"와 "배드 뱅크"로 분리한 다음 은행 운영에 의회가 직접 나선다. (국왕에 대한 견제의 효과도 있었다.) 의회가 직접 나서서 청소를 한 다음, 지폐 발행도 다시 시작한다. 이렇게 릭스방크가 중요합니다. 릭스방크는 현재 스웨덴 내 스톡홀름 이외의 지점은 모두 문 닫기로 결정내리고(중앙은행치고는 그래서 인력이 상당히 적다. 350여명 정도) 전자 크로네의 발행을 고민하고 있는데, 이는 지폐를 발명했던 릭스방크가 2025년까지 완전히 현금이 없는 사회로의 이행, 즉 제목마따나 화폐를 재발명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스웨덴은 현금이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는 하다. Swish라는 지불수단을 매개로 하여, 심지어 버스킹하는 가수들도 현금을 안 받고 있는 상황. 당연히 릭스방크도 전자 크로나 프로젝트에 대한 임시보고서를 작성해서 공개했다(참조 4). 이 보고서의 결론은 전자 크로나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내용이다. 크게는 두 가지 방식을 거론하고 있으며, 이 두 가지는 (1) registered, (2) value-added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1) 방식이 최근 스위스 주민투표의 내용과 일치한다는 점이다(참조 5). 즉, 릭스방크에 개개인의 계좌를 놓고 모든 추적이 가능한(!) 전자현금을 발행한다는 점이다. (2) 방식은 (1)처럼 기명도 가능하지만 익명도 가능한 방식이다. 중간에 에이전트가 끼어있기도 하고, 우리나라 교통카드 식으로 발행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는 휴대폰의 앱이나 신용카드 형식일 것이다.) 그래서 (2) 방식은 그만큼 도입을 촉진할 수 있다. 하지만 전자화폐를 사용하려면 역시 (1)으로 가야 할까? 이 경우 회계 처리 방식이 모두 바뀔 것이며, 중앙은행에 대한 각 시중 은행의 현금고는 0가 된다. 민간 은행들의 상품도 급격하게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릭스방크의 제안은 상업은행에 아예 민간 계좌를 막아버리자는 급진적인 스위스 제안과는 다르다). 국가의 금융정책 또한 이전과는 다르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보고서는 그만큼 생각거리를 많이 안겨다주는데 44 페이지밖에 안 되니 관심 가진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란다(참조 4). 최근 스웨덴을 방문했던 옌스 바이트만(참조 6) 분데스방크 총재가, "여윽씌... 릭스방크가 다시금 토론을 주도하고 있군요."라 말하자, Stefan Ingves 릭스방크 총재(참조 7)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역사를 쓸지도요." ---------- 참조 1. 그렇다면 현대적 의미에서 최초의 은행은 어디였는고... 하니, 이탈리아의 몬테 데이 파스키, 조선 성종 3년인 1472년에 설립됐다. 이 은행에 대해서는 나의 글 참조 MPS(2017년 1월 23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4864350689831 2. 물론 중국(송나라 이후)에서 지폐를 만든바 있지만 당시 중국 지폐는 금이나 은본위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뢰성의 문제를 계속 안고 있었다. 조선도 시도는 했지만... (참조 3) 3. 조선의 화폐를 위한 변명(2015년 10월 29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3635059564831 4. The E-krona Project’s first interim report(2017년 9월): https://www.riksbank.se/en-gb/financial-stability/payments/e-krona/the-e-krona-projects-first-interim-report/ 5. 중앙은행만 현금을 발행하자(2018년 5월 29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6299808489831 6. ECB 왕좌의 게임(2018년 1월 26일): https://www.facebook.com/minbok/posts/10155968701599831 7. Stefan Ingves orders 350th birthday cake(2018년 2월 27일): https://youtu.be/up6iMaWYDek 이 영상에서 잉베스 총재의 긴축(...) 유머를 볼 수 있다.
학교 폭력에 시달렸던 박지성
나를 때린 수많은 선배들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얻어맞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선배의 몽둥이 세례를 견디어야 한다는 것,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폭력을 묵묵히 참아내야 하는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다. 잘못해서 맞는 것이라면 100대라도 기분 좋게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저 선배가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이 선배가 감독한테 야단맞았기 떄문에 밤마다 몽둥이 찜질을 당해야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었다. 학창시절 셀 수 없을 정도로 선배들에게 두드려 맞으면서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후배들을 때리지 않겠다"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최고참 선배가 되었을때도 나는 후배들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후배들에게 진정 권위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기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에게는 자연스럽게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동안 내가 뛰어난 선배들을 직접 겪으며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어렸을적 어머니 심부름으러 오천원짜리 지폐를 들고 밖에 나섰다 잃어버렸던 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맞았습니다. 고작 한 대 맞은 것이라 그리 아프지 않았는데도 어머니는 그날 이후 며칠간 내게 무척 미안해했습니다. 축구부 합숙을 시작하면서 정말 정기적으로 매일 구타를 당하던 나를 보셨다면 아마도 까무라치셨겠죠. 박지성 어머니가 박지성에게 보낸 편지中 학창시절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맞고 들어와 혹시나 엄마 눈에 눈물이 맺힐까봐 친구하고 부딫혀서 그렇게 되었다며 겸연쩍게 씩 웃던 속 깊은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아버지 자서전 中 지성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대 그 중학교 축구부에서 며칠 훈련에 참석했다가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분명 학교에서 무슨일이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저기 멍자국이 많아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신경쓰지 말라고만 했다. 나중에서야 이유를 말하길 "아빠, 내가 단체 훈련 끝나고 따로 개인 훈련을 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이 왜 너만 따로 훈련을 하느냐, 다른 선수들은 쉬고 있는데, 왜 유독 너만 튀는 행동을 하느냐면서 때리더라고요" 그후 박지성은 원래 가려던 중학교를 안가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중학교로감 아버지 자서전 中 "아빠, 전 절대 수원공고엔 가지 않을거에요. 3년 동안 화성에서 생활 하면서 다시는 수원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지금 수원공고에는 절 괴롭혔던 사람들이 모두 뛰고 있단 말이에요" 수원공고 1학년 축구부 동기들도 지성이를 싫어했으니, 지성이의 마음고생이 어떠했으리란 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수원공고에 다닐 당시 선배의 구타에 못이겨 몇몇 선수들끼리 팀에서 도망을 치기로 계획을 짰다. 당연히 박지성도 그 멤버에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중 디데이 며칠을 앞두고 훈련 후 선배의 구타에 박지성의 팔이 부러졌다. 어쩔 수 없이 박지성은 합숙소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부상으로 인해 축구부 숙소 이탈 약속을 지킬수 없게 되었다. 수원공고 시절 지성이가 훈련을 마치고 집에왔는데, 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방문을 열어봤더나 인기척 소리에 후다닥 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는 지성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그래? 어디 아픈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냥 좀 힘들어서.. 별일 아니에요" 아무리봐도 이상하다 싶어 이불을 들쳤더니 세상에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부분에 뻘겋게 피멍이 들어있었다. 지성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확인하자, 온통 씨뻘건 멍투성이였다. 운동하는 선수들이라면 훈련 외에 구타와 체벌은 덤으로 따라다니는 부분이라 나 역시 알면서도 웬만해선 눈감고 못 본척 넘기기 일수였다. 그러나 그때 내가 직접 목격한 모습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당장 학교로 달려가서 지성이를 때린 사람을 붙잡고 마구 혼을 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부터일까, 지성이가 한국에서 축구를 했다간 선배들 등쌀에, 또한 줄서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사심에 의해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가끔 지성이는 이런말을 한다 "만약 내가 맞지 않고 축구를 배웠다면 지금 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박지성 축구센터를 세운 이유도 이때문이다. 더이상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축구를 배우기 보다는 더 나은 환경속에서 축구를 자유로이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박지성 축구센터를 통해 어린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을 차고 달리면서 희망도 함께 꿈꾸길 바란다. 차범근이 박지성 국가대표 은퇴 발표를 하고 난뒤 쓴글.. "지성이가 은퇴를 합니다. 아니 한다고 합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릎에 물이 많이 차는 모양입니다. 무릎을 너무 많이 쓴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것도 무리하게 어려서 부터.. 지난핸가. 지성이가 어딘가에서 스피치를 하면서 우리나라 처럼 맞으면서 축구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유독 그 얘기를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 하던 최고의  선수를 30살에 은퇴시키는 안타까움 앞에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 오유 유소년 대회도 열고 자선경기도 열어서 열악한 환경에서 축구하는 애들한테 다 기부하던데 자기가 맞으면서 축구를 했던 시절이 끔찍한 트라우마로 남아서 그런지 자라는 아이들은 자신처럼 축구를 안 하길 바라는 마음이 엄청 큰거 같습니다.. 예체능계의 똥군기는 진짜 언제쯤 없어질까요
스웨덴 고등학교 졸업식, "student"
전세계 고등학교 졸업식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유독 스웨덴의 고등학교 졸업식에 좀 흥청망청한 부분이 있다. 일종의 성인식 비슷한 개념으로 동네 축제처럼 치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게 단계별로 다 절차가 있다. 첫 번째. 졸업 무도회(studentbal)다. 졸업식 전에 하는 행사로서 남자는 무조건 턱시도나 정장, 여자는 드레스를 입어야 하며, 당연히 이 날을 위한 화장과 태닝, 매니큐어 등을 준비해야 한다. 당연히 10대 애들인지라 새 옷을 입어보고 싶어하고, 온갖 준비 비용에 무도회 입장료가 또 있기 때문에 수 십만원이 쉽게 깨진다. 요새는 그 부담때문에 무도회 참여금을 무상으로 지원하는 NGO도 생겼다고 한다. (기사에 나오는 스웨덴 상의의 추정에 따르면 졸업식 준비에만 평균 220만원(16,500 크로나) 정도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 무도회가 시작되면 부모들이 차로 태워주는데, 부모들은 식장 안에 못 들어간다. 식장 안에는 교장과 선생님들만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잘 차려입힌 애들을 촬영해야 하는 파파라치 노릇을 하며, 아이들은 마치 영화제처럼 깔려있는 붉은 카페트 위로 입장한다. 분위기는 엄숙하다고 한다. 두 번째. 졸업식 당일 아침은 무조건 집에서 샴페인을 마신다. 오늘부터 성인이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일단 아침부터 알코올이 들어가야 그날 하루 내내 버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 번째. Studentmössa(학생모자)와 졸업식 당일의 유니폼이다. 모자는 마치 선원의 모자처럼 생겼으며, 겉은 하얀색이고 바이저는 검정색이다. 그리고 모자 안쪽은 스웨덴 색깔(그러니까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되어있을 때가 많은데, 모자에 글귀를 써놓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걸 써야 한다. 유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1800년대 중반 웁살라 대학에서 시작했다는 설이 있다. 그렇다면 옷은? 여자들은 하얀색 드레스, 남자들은 하얀 셔츠에 검정 정장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여자들은 평생 네 번 하얀 드레스를 입는다는 말이 스웨덴에 있다고 한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 바로 이 졸업식을 의미하는 스투덴트(!), 그리고 결혼식이다. 자, 모자와 의상을 다 착용했다. 네 번째 단계. 달리기(Utspringet)다. 한 손에 졸업증서를 쥐고 학교를 “뛰어서” 나가야 한다. 기사에 있는 영상을 보면 뛰어나간 다음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가는 장면도 나온다. WHAT GRADUATION IS LIKE IN SWEDEN(2017년 7월 10일): https://youtu.be/PPqNIk4ZRGA 다섯 번째. 부모님과의 만남이다. 여기에도 규칙이 있다. 꼭 졸업생의 어린 시절 흑역사가 있는 사진으로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들고 서 있어야 하며, 아이가 와서 인사하면 목에 목걸이든 인형이든 뭐든 걸어줘야 한다. 그 다음에는? 여섯 번째. 졸업데크(studentflak)다. 트랙터나 트럭 위로 올라타고,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트럭/트랙터는? 클락숀을 울리면서 시내를 돌기 시작한다. 이들이 지나가면 모두가 운전도 양보해주고 말이다. 오늘은 학생의 날이니까. 일곱 번째. 드디어 선생님 없는 졸업 파티(skiva)의 시작이다. 보통은 클럽에서 하며 뭔가 주제를 갖고 클럽을 꾸민다. 자신을 나타내는 종이 팻말을 목에 걸고 입장하는데, 가령 “교실여행자”와 같은 식이다. -------------- 그런데 올해에는 코로나19가 터졌어요. 졸업 파티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그냥 놔두는 분위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스웨덴도 정부 방침으로는 50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50명 기준에 무엇이 들어가는가? 졸업식 자체야 사회적 거리두기 식으로 진행한다고 해도 무도회와 졸업데크, 파티가 문제다. 이 세 가지가 모두 금지됐다. 게다가 각급 학교들도 부모만 혹은 가족 중 한 명만 참가하도록 한 곳이 많았다고 한다. 국왕 부부도 목걸이 걸어주려고 참가했다고 하는, 그 중요한 스웨덴 가족 의식 중 하나가 고등학교 졸업식인데 말이다. 그래서 올해 졸업식은 조용히 지나갔다. 집에서 친구들끼리만 모여 드레스를 입어 보고,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별도로 자동차를 탄다든가 자전거를 탄다든가 하여, 흰 드레스/정장을 입은 채 시내 행진을 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래도 물론 몰래 버스를 빌려서 디스코 버스로 개조하여 즐긴 학생들이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일단 모두 다 졸업을 시켜주는 것이 어디인가? 1968년 이전에는 졸업식 당일날 졸업 시험을 봤었고, 그날 통과한 사람들만 하얀 모자를 쓰고 학교를 뛰어나갔다고 한다. -------------- 참조 1. 기사 원글, Le « student » suédois, une fête post-lycée gâchée par le Covid-19(2020년 7월 6일): https://www.lemonde.fr/m-le-mag/article/2020/07/06/le-student-suedois-une-fete-post-lycee-gachee-par-le-covid-19_6045314_4500055.html 2. What Graduating From High School Is Like In Sweden(2020년 6월 10일): https://globuzzer.mn.co/posts/what-graduating-from-high-school-is-like-in-sweden 3. Graduation – Swedish Style: https://nichetravel.com/studenten-swedish-graduation-ceremony/ 4. 여기서 보면 대학의 경우도 흰색 드레스를 입는 걸 볼 수 있다. 다만 전혀 시끌벅적하지는 않다. Graduation in Sweden: https://blogs.studyinsweden.se/2018/03/01/graduation-in-sweden/
CEO는 뭘 마실까? 양주는 발렌타인, 맥주는 테라, 소주는… [친절한 랭킹씨]
세상은 넓고 술의 종류는 많습니다. 주종별 브랜드 또한 다양한데요. 그만큼 술에 대한 취향도 제각각일 터. 기업을 경영하는 CEO들은 주종별로 어떤 브랜드의 술을 선호할까요? 월간현대경영이 조사·발표한 자료*를 통해 살펴봤습니다. * ‘2021년 제19회 CEO 명품 조사보고서’(500대 기업 CEO 중 91명 참여). CEO명품선정위원회·월간현대경영 우선 선호하는 양주입니다. CEO, 하면 어쩐지 양주가 어울릴 것도 같은데요. 1위는 91표 중 32표를 얻은 발렌타인 위스키의 차지. 무려 18년 연속 1위라고 합니다. 명품 위스키의 대표주자다운 결과인데요. 그 다음 글렌피딕과 로얄살루트가 각각 15표씩을 획득해 공동 2위에 선정됐습니다. 지금 같은 계절에는 일과 후 마시는 맥주만큼 시원한 게 또 없을 터. 맥주 브랜드 선호도는 어떨까요? 맥주는 하이트진로의 테라가 34표를 받아 클라우드(27표)와 카스(13표)를 제치고 CEO 선호 맥주 1위를 차지했습니다. 지난해에는 47표로 카스가 압도적 1위에 올랐는데요. 올해는 순위가 꽤 떨어졌습니다. 마성의 쓴맛, 소주 브랜드 1위 자리에는 응답 CEO들의 절반 이상이 선택한 참이슬(48표)이 올랐습니다. 처음처럼이 15표를 얻어 체면치레를 했지요. ---------- 대기업 CEO들이 선호하는 주종별 브랜드를 살펴봤는데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주종, 그리고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지긋지긋한 코로나 시대의 종식이 이제는 조금씩 보일 것도 같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감염병 걱정 없이 즐거운 한 잔, 머지않아 그 일상을 다시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 글·구성 : 이성인 기자 silee@ 그래픽 : 홍연택 기자 ythong@ <ⓒ 뉴스웨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코너명 및 콘셉트 도용 금지>
일본인 76% "한식 몰라"
7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20 해외 한식 소비자 조사 주요 결과에 따르면 가장 선호하는 한식을 묻는 질문에 13.3%가 한국식 치킨을 선호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치(11.9%)와 비빔밥(10.3%)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가장 자주 먹는 한식으로는 김치(33.6%)가 꼽혔다. 작년 1위였던 비빔밥은 올해 순위가 한계단 내려갔다. 이번 조사는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일본 도쿄, 이탈리아 로마, 영국 런던 등 해외 주요 16개 도시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중략) 한식 인지도는 57.4%로 전년 대비 2.8%포인트 증가했다. 한식 만족도는 81.3%로 작년 대비 0.1%포인트 높아졌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가 인지도와 만족도에서 모두 1,2위를 기록했다. 일본 도쿄의 인지도와 만족도는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도쿄 시민 중 한식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 비중은 23.8%에 그쳤다. 한식당 방문 경험률은 66.5%로 전년 대비 8.4%포인트 증가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영향 등으로 이들의 한식당 월평균 방문 횟수는 1.6회로 0.9회 감소했다. https://news.v.daum.net/v/20210107110010723?x_trkm=t 와 음흉함 보소👏👏👏 일본 편의점에도 김치 갈비 치즈닭갈비 있던데ㅋㅋㅋㅋ 설문에서까지 구라치는 종특 음흉함 못따라가 ㅊㅊ ㄷ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들이 먹는게 뭔지도 모르고 쳐먹고 있네 ㅉㅉ 멍청함에 소름이 다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