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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잇슈] 강진 실종 여고생의 머리카락은 누가 잘랐나?

6월 28일 오후에 볼만한 주요 뉴스를 모아봤습니다.
강진 여고생의 머리카락이 실종된 이후 잘린 것으로 파악됩니다. 엽기의 냄새가 피어오릅니다.
이번 월드컵의 깜짝 스타는 단연 조현우 선수겠지요?
대법원의 관례였다고는 하지만 증거인멸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진에어 승무원들은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모욕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2016년 사이에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가 1만 9000여 명에 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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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가 소녀상 각별하게 여긴 이유는"
CBS 시사자키 제작진 신원 밝힐수 없는 할머니 돌아가시고 이제 스무분 생존 김복동 할머니,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22살에 돌아와 할머니 영화를 통해 사회에 대한 길잡이, 메시지를 찾길 28년간 일 사죄, 역사 배상 주장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단순한 피해자 너머 여성 운동가 평화 애호가로서 읽어내야 일본 정부 거짓말로 삶이 부정된다는 분노가 강했던 할머니 소녀상, 학생들과 상호 교감하는 매개로 여기신 듯 청소년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기를 간절히 바래 식민지 범죄 청산 과정 갖지 못해 역사 갈등 존재 불꽃처럼, 뭔가를 태워서 발화하신 분 해고자, 일본 지진피해자, 내전 여성들에게 따스했던 분 ■ 방 송 FM 98.1 (1820~1955) ■ 방송일 2019년 8월 5일 (월요일) ■ 진 행 배종찬 (인사이트 케이 소장) ■ 출 연 송원근 감독(뉴스타파), 윤미향 대표(정의기억연대) 영화 <김복동> 포스터 ◇ 배종찬>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그리고 여성 인권운동가로 살다 가신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육성 잠깐 들어봤는데요. 김복동 할머니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김복동이 이번 주 목요일 8월 8일에 개봉합니다. 이 영화를 연출하신 뉴스타파의 송원근 감독 그리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해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꾸준히 싸워보신 분이죠. 정의기억연대의 윤미향 대표 두 분을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윤미향> 안녕하세요. ◆ 송원근> 안녕하세요. ◇ 배종찬> 영화 이야기 하기 전에 또 착잡한 뉴스가 전달돼서 마음이 무거운데요. 윤미향 대표님, 주말 사이에 피해자 할머니 한 분이 또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나왔는데. 지금 장례 중이신 거죠? ◆ 윤미향> 그렇습니다. 일요일날 오전에 서울에 계시는 한 분이 돌아가셨고요. 가슴 아프게도 이분은 성함도 얼굴도 아무것도 밝힐 수가 없는 가족이 원하지 않아서 그런 상태로 우리 곁을 떠나셨고요. 오늘 이틀째여서 내일 발인을 하는 그런 일정으로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할머니들이 상황이 좋지 않아서. ◇ 배종찬> 이제는 연세도 많으시고. 계속 한 분, 한 분 돌아가시는 게 너무 안타까운데. 피해자 할머니분들이 지금 몇 분 정도 생존해 계시나요? ◆ 윤미향> 이제 사실은 스무 분 생존해 계시는 상태인데요. 그런데 생존해 계신 스무 분도 내일 어떻게 될지 잘 확신할 수 없는 그런 분들이 대부분이세요. 제가 오랫동안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계신 분들, 병상에서 남의 도움으로 그냥 살고 계신 분들. 이런 분들이 대다수셔서. 우리가 흔히 김복동 할머니처럼 그렇게 언론과 방송에 비쳐서 자기 목소리를 내실 수 있는 분들. 그런 분들은 불과 다섯 명도 안 되는 그런 상황입니다. ◇ 배종찬> 생전에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 한번 받아보겠다는 게 할머니들의 소원이신데요. 영화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김복동 할머니께서 살아서 문제를 해결하시겠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던데요. 송 감독님께서 김복동 할머니의 생애를 다큐멘터리 영화로 만들어야 되겠다 생각하게 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 송원근> 평소에 할머니께서 이렇게 윤미향 대표님이나 아니면 미디어몽구가 있습니다. 어쨌든 할머니께서 이렇게 살다가 돌아가셔버리면 이게 그냥 지워져버리는 것 같은 그런 삶이 너무 좀 허망하지 않느냐 그런 면에서 내 삶이 기록으로 남아서 두고두고 후세들이 내가 활동하고 싸워온 이야기를 좀 담아서 이렇게 계속 오래도록 새겼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이분들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제가 작년 10월쯤 이렇게 만나봬서 전해듣고 김복동 할머니라는 한 피해자면서 이 피해자를 넘는 어쨌든 이런 활동을 하셨던 분의 생을 한번 잘 담아서 관객들에게 소개를 잘 해 보고 싶다,그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 배종찬> 누군가 역사는 기록이라고 하던데요. 저도 예고편을 봤는데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의 육성 그리고 모습이 많이 담겼는데 이게 다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 송원근> 이게 다 저희가 정의기억연대하고 같이 작업을 하면서 박물관 한켠에 파일이름으로만 남겨져 있었던 어떤 CD라든가 파일들입니다. 저희가 그 영화 제작을 위해서 그것들을 꼼꼼히 들었는데 그 안에 이제 지금 옆에 계시는 윤미향 대표와 김복동 할머니가 1992년 3월에 만나서 어떻게 끌려갔는지, 어디로 끌려갔는지, 가서 어떤 활동을 했었고 했는지에 대해서 20대 후반의 젊은 간사가 묻고 60대 후반의 김복동 할머니가 그것에 대해 서로 대화하는 이런 부분들까지 이렇게 좀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 배종찬> 지금 송원근 감독께서 처음 우리 윤미향 대표께서 김복동 할머니를 만나게 된 그 장면을 설명을 해 주셨는데 처음에 어떻게 만나시게 된 겁니까? 왜냐하면 피해자 할머니들은 이게 상당히 난감한 일인 거거든요, 본인의 과거를 밝히는 것이. 처음에 어떻게 인연이 되셨습니까? ◆ 윤미향> 제가 1992년 1월부터 정대협의 간사로 활동을 했는데요. 그때가 제가 28살이었어요. 사실은 28살에 할머니들이 당신들이 겪었던 참혹했던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어요. 그런데 1991년 8월 14일에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서 내가 피해자였다라고 밝히신 이후에 정대협이죠, 지금 정의기억연대 전신인 한국정신대문화대책협의회가 피해자들이 이렇게 살아 있구나. 이렇게 목소리를 더 다른 분들이 낼 수 있겠다라는 조금 용기를 얻어서 신고 전화를 한 달 후 9월 18일에 개설을 합니다. 그런데 그 신고전화에 여러 분들이 신고를 하시기 시작했어요, 몇 분들이. 그런데 여전히 그때 한국 사회는 얼마나 못됐는지 저희들에게 저희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그게 뭐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떠드느냐. 우리 수치고 오히려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일을 떠들지 마라, 자랑하지 마라 이런 전화도 있었어요, 신고전화에. 그런데 부산의 다대포에 그런 할머니가 계신다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그냥 용기를 내서 연락했고 찾아가도 좋으냐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뭐할라꼬, 딱 굉장히 우리 할머니 무섭거든요, 처음에. 그런데 뭐할라꼬 딱 그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다음에 제가 뭐라고 말을 해야 될지 이게 말문이 막혀 버렸어요. ◇ 배종찬> 경상도 사투리로 억세게 뭐할라꼬라는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은 만나기 전에 그 삶이 고단하셨을 텐데 어떤 삶을 사셨던 것으로 기억을 하십니까? ◆ 윤미향> 할머니는 불과 만 14살에 끌려가셔서 집에 돌아오셨을 때도 22살이었는데. 사실은 그 당시 한국 사회가 22살 여성이 홀로 생활을 경제적인 것부터 생활을 한다라는 것에 대해서 따뜻한 시선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바닷가에서 장사부터 공사현장이 열리면 머리에 짐보따리를 싸들고 가서 그 공사현장에 함바집이라고 불렀는데 식당을 쫙 펼쳐서 음식 장사를 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쌀을 팔아서 또 다른 물건을 떼어와서 또 물건을 팔기도 하고 장사로 농사로 할머니가 해방 이후에 삶을 살아내셨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담배와 술이 할머니에게는 외로움을 달래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았어요. ◇ 배종찬> 담배와 술을 하셨군요. ◆ 윤미향> 제가 첫 할머니 집을 그렇게 어렵게 뭐할라꼬 그 목소리를 넘어서 그래도 약간의 외로움, 고독함, 삶의 피곤함을 느껴서 그래도 찾아뵙고 싶다라고 간절하게 말씀을 드렸고 할머니가 문을 열어주셨는데. 부산 다대포의 그 한 아파트 현관문을 열었을 때 방 안에서 나오는 담배냄새, 담배연기, 그리고 할머니 집의 그 벽을 둘러싸고 있는 담배연기가 만드는 누런 벽. 이런 것이 할머니의 인생을 느끼게 했다고 할까요. 그래서 처음에는 사실은 굉장히 죄송스러워서 할머니의 그 증언, 경험을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제 이야기에 대해서 저도 할머니 남해 출신이에요 그러면서 일부러 경상도 사투리를 꺼내기도 하고 제 할머니도 그런 삶을 피하려고 굉장히 고생했대요라는 이야기도 꺼내고. 그렇게 해서 다가왔습니다. ◇ 배종찬> 사실 김복동 할머니는 그래도 알려지신 분이시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김복동 할머니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셨는데 다시 한 번 이런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그런 또 의미가 있다면 우리가 어디에서 뭘 찾을 수 있을까요. ◆ 송원근> 사실은 할머니께서 굉장히 노력하시면서 강인한 삶을 살아오셨다고 하더라도 그게 어쨌든 돌아가시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잊힌다라고 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복동이라는 이름 석 자에 담긴 그런 의미를 어쨌든 영화가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라고 생각을 했고 그 뜻이 무엇인지 우리 오늘을 사는 우리가 오히려 그 영화를 통해서 좀 새길 수 있다면 이게 그냥 단순한 영화로써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의 길잡이, 좀 메시지를 던지는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영화 <김복동> 스틸컷 (사진=엣나인필름 제공) ◇ 배종찬> 또 우리가 성노예 피해자를 다룬 이런 이야기를 가지고 사회 일각에서는 감성팔이다, 선동적이다 이런 이야기 나오는데 또 주전장이라고 하는 다큐멘터리도 극장에서 상영 중인데. 김복동을 제작하시면서 지금까지 나왔던 유사한 작품들과는 내가 달라야 되겠다. 어디에 가장 차별점을 두고 계십니까? ◆ 송원근> 일단 가장 중요한 건 김복동이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개인적인 삶에만 국한시키지 말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게 어쨌든 27년간의 여정이 분명히 있는 거고 27년간의 여정이라는 게 굉장히 오랫동안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역사교육을 주장해 왔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진 적이 없거든요. 일본은 아예 모든 게 지금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고. 그런 어쨌든 일련의 역사 과정 속에서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언제 어떻게 움직였는지 이때 어떤 목소리를 냈는지. 이런 부분들이 제대로 짚어주는 것이 어쨌든 다른 다큐멘터리나 극영화나 이런 부분들과 차별점을 가지려고 했고 그 과정 속에서 단순하게 어떤 피해자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서 운동가, 여성운동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 이런 모습을 드러낼 수 있을 때 오늘 지금 이 시기를 사는 우리가 김복동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이 있다. 얻을 것이 있고 배울 것이 있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길잡이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배종찬> 송 감독님께서 지금 강조를 해 주셨듯이 김복동, 영화 김복동.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이걸 뛰어넘어서 여성운동가로서의 역할을 해 주셨거든요. 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서. 그런데 사실은 연로하시고 또 어떤 경우에는 자기의 상처를 끄집어내기가 힘들 텐데 또 암, 암까지 가지고 계셨는데 이런 에너지가 윤미향 대표님, 어디에서 나오신 겁니까? ◆ 윤미향> 원래 우리 김복동 할머니께서 갖고 있는 천성적인 기질이라고 그럴까요. 그것도 굉장히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고 그때 만났을 때 할머니, 다음에 우리가 서울에서 아시아연대회의가 있는데 아시아연대회의에서 할머니 증언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을 때 그건 두 번 주저하지 않았어요. 내가 해야지. 저 일본 정부가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해야지라고 하셨고. 그리고 사실은 신고를 하실 그때도 큰언니도 반대하고 가족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당신 자신의 결정으로 신고를 하시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거 보면 본인의 어떤 정의를 향한 기질이 해방 이후에도 있었고 그 전에도 있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고요. 무엇보다도 할머니가 이 운동을 하면서 약 28년 동안 활동을 하면서 일본 정부의 어떤 거짓말 그리고 당신의 삶이 부정된다라는 것에 대한 그런 어떤 분노가 굉장히 강했던 것 같아요. 그럼 나는 일본 정부가 그러지 않았으면 그럼 내 인생은 누가 이렇게 나를 짓밟았나. ◇ 배종찬> 그 분노. ◆ 윤미향> 그렇죠, 그 분노가 굉장히 할머니의 삶을 저렇게 불타게 했고 그리고 활동가로 나서서 인권운동가로 나서시면서 할머니가 또 어떤 것을 배우게 되셨냐면 우리 사회에 세계에 나와 같은 피해자들, 나와 같이 힘이 없어서, 배경이 없어서 당한 여자들이 참 많구나. 그럼 내가 저 사람들에게 또 어떤 용기를 줘야 될까, 어떤 희망이 돼야 될까. 또 거기에 또 새로운 기질이 끄집어내졌었어요. ◇ 배종찬> 성노예 피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여성문제를 다루신 거네요. ◆ 윤미향> 그렇죠. ◇ 배종찬> 여성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영화 김복동에서도 키워드를 하나만 배 소장이 꼽는다면 저는 소녀상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 트리엔날레를 보더라도 소녀상 전시가 중단되는 사태까지 있었습니다. 독일의 나치수용소 기념관에 있던 고작 10cm짜리 소녀상도 일본 정부의 항의로 전시가 중단됐다고 하는데. 이 소녀상이 영화 김복동에서 가진 의미는 뭔가요, 송원근 감독님? ◆ 송원근> 할머니께서 저희가 어쨌든 이 기록들을 쭉 보면서 이 영화를 제작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할머니께서 유독 소녀상, 평화비에 관심을 많이 보이신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할머니의 어떤 변화의 상징 같은 건데 단순하게 김복동이라는 사람이 소녀상으로만 변화되는 게 아니라 소녀상 때문에 온 학생들을 보면서 김복동이라는 어떤 운동가가 또 거기서 감화를 하게 되고 또 이 감화를 받은 할머니를 보고 또 다른 학생들, 또 다른 사람들이 오게 되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서로 상호교감하는 어떤 매개 같은 그런 걸로 할머니가 생각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중간중간 소녀상뿐만 아니라 소녀상이 계기가 돼서 어쨌든 계속 할머니의 활동이 좀 이렇게 해외로도 뻗치고 다른 쪽으로도 뻗치는 그런 느낌을 저희가 제작을 하면서 받았었거든요. ◇ 배종찬> 세대를 넘어서는 매개, 또 국가를 넘어서는 매개로 바로 소녀상이 있는데 유난히 우리 김복동 할머니께서 청년들을 좋아하셨어요. 아이들을 좋아하셨어요. 이것도 우리 김복동 할머니의 의미가 있을 텐데 할머니에게 젊은이들 그리고 소녀상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 윤미향> 할머니는 그런 청년세대, 청소년 세대를 빼앗겼잖아요. 그래서 늘 안타까워하셨고 내가 빼앗겼던 소녀 시절, 청년 시절을 이 아이들이 똑같이 살면 안 된다 하는 말씀을 늘 하셨거든요. 그래서 그 청년세대 또 그 소녀 아이들, 청소년 아이들이 수요시위에 오거나 할머니를 찾아오거나 해외에서도 마찬가지 오게 되면 할머니의 삶을 그 아이들에게 투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희들만큼은 우리보다 좀 더 좋은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것이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늘 할머니께서는 내가 너희들 때문에, 너희들 위해서 내가 아직 이 거리에 선다라고 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확신을 하셨던 것 같아요. 이제 내가 죽어도 이 아이들이 이 청년들이 이 청소년들이 김복동이가 돼서 계속해서 내 목소리를 내주겠구나, 나를 기억하겠구나 하는 것 때문에 사실은 암이 걸린 이후에는 더 그 청년세대를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왼쪽부터) 송원근 감독 (뉴스타파),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대표 (사진=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제공) ◇ 배종찬> 잃어버린 소녀 시절을 생각하면서 소녀상에 대해서 더 애착이 갔다. 정말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이야기인데요. 결국 이 김복동 작품이 우리 사회에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분들은 어떤 역할을 또 할 수 있다. 또 이 영화가 그 역할을 어떻게 할 수 있다. 그 말씀을 해 주신다면요. ◆ 송원근> 사실 저 같은 경우에도 영화를 이렇게 제작하기 전까지는 그냥 취재하는 사람의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저의 직업이 프로듀서니까. 그냥 안다고 생각했고 이 정도쯤은 나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김복동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쭉 들여다보면서 내가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게 굉장히 부끄러워졌습니다. ◇ 배종찬> 어떤 점에서요? ◆ 송원근> 그런 구석구석이 실제적으로 할머니가 어떤 생각을 했었고 이런 움직임이 이런 이유들 같은 것들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그런 이유들이 보여지면서 굉장히 이게 가슴 속 깊은 데서 뜨거움 같은 게 올라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거든요. 그런 뜨거움 같은 것들이 우리 국민들, 많은 우리 영화를 좀 보고 싶어하는 많은 관객분들한테 그런 뜨거움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뜨거움이 전해져서 그런 마음을 가져야 지금 현재 어쨌든 현재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이 역사를 부정하려고 하는 이런 일본 정부나 이런 사람들에게 싸울 수 있는 제대로 또 대항할 수 있는 그런 힘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 배종찬> 우리 영화를 보면 이제 스포를 하면 안 되겠습니다마는 구체적으로 김복동 할머니의 어떤 모습에서 그런 끓어오르는 뜨거움이 느껴지셨는지. 구체적인 사례가 있으시다면요? ◆ 송원근>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제작을 하면서 처음 눈물을 흘렸던 장면인데. 조선학교 학생들에게 할머니께서 장학금을 전달을 하십니다, 일본의 도쿄에 말기 암으로 돌아가시기 6개월 전입니다, 작년 6월달에. 할머니가 이 학생들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시는데 이 할머니가 평생을 사시면서 돌아가실 날 얼마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도 무엇을 찾고 싶어했구나라는 것을 굉장히 좀 마음으로 느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저희가 느꼈던 부분을 다른 분들도 같이 좀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 배종찬> 할머니의 마음은 이런데 왜 소녀상에 침을 뱉는 청년들은 왜 그런 생각을 할까요. ◆ 윤미향> 그게 저는 단순한 현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후 74년 동안 우리 사회가 제대로 식민지 범죄가 청산되는 그런 과정을 우리가 회복하지 못했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역사의 갈등이 존재하고 있고 어느 연구자들은 위안부들이 스스로 그렇게 매춘부가 되었다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어느 또 연구자들은 일본 정부는 여러 번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피해자들이 거부했다고 하고 이런 논쟁들이 계속되어 왔잖아요. 그 사이에서 또 다른 한편은 우리 사회가 그 역사의 가치라든가 인권이라든가 정의,평화보다는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서 역사를 배우고 또 출세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이런 사회가 계속되어 왔죠. 그래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그냥 도태되고 방치되고. 그러니까 저는 그런 소녀상에 침을 뱉고 피해자들을 혐오하고 희롱하는 이런 모습들이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가 왜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혹은 자기 자신의 피해의식을 약자들을 향해서 소수자를 향해서 이런 여성들을 향해서 혐오하는가 돌아볼 수 있는 또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나. 그래서 교육과 문화와 정책이 한꺼번에 이렇게 만들어져야 우리 아이들은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 배종찬> 정말 김복동 할머니 영화 김복동을 보면 좀 더 우리가 알고 있었던 김 할머님을 더 가깝게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김복동 할머니, 우리 사회에 어떤 분으로 기억이 되면 좋을지 한 단어로 한번 이야기를 해 주시면 좀 인상적인 그런 또 기억이 될 것 같은데 먼저 송원근 감독님, 한 단어로 한 번 좀. ◆ 송원근> 한 단어요? ◇ 배종찬> 김복동 할머니. 이런 돌발질문이 나올지는 미리 예상을 못하셨죠? ◆ 윤미향> 김복동. ◆ 송원근> 저는 할머니가 불꽃 같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자신이 계속 뭔가를 태워내기 위해서 계속 부딪혀서 스스로 이렇게 발화하려고 했던 어쨌든 그런 불꽃 같은 저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 배종찬> 윤 대표님은 어떠십니까? ◆ 윤미향> 저는 불꽃 이면에 따스함. ◇ 배종찬> 따스함. ◆ 윤미향> 할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저희 활동가들 참 힘들거든요. 특히 피해자와 함께한 활동가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활동가들에게도 참 따스한 분, 노동자들에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섰을 때도 따스한 분. 일본 지진 때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도 일본 국민으로 보지 않고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따스함으로. 콩고와 우간다, 이라크 내전에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향해서도 따스한 온정으로 공감으로 그렇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배종찬> 불꽃과 따스함. 바로 김복동 할머니의 모습을 8월 8일 개봉입니다. 영화 김복동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알게 되실 텐데요. 영화 좀 많이 보러 가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말보다는 실천이거든요. 우리 김복동 할머니의 불꽃과 따스함을 반드시 가슴에 새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윤미향> 고맙습니다. ◆ 송원근> 고맙습니다. ◇ 배종찬> 8월 8일에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복동을 연출하신 송원근 감독 그리고 정의기억연대의 윤미향 대표였습니다.
직장인 돈 관리 하는 법 (통장 4개 굴리기)
1. 급여통장 : 잔액은 항상 0으로 유지 급여가 들어오면 1차적으로 월세나 통신비 같은 고정 지출을 자동납부하도록 해둡니다. (자동납부를 하지않으면 자칫 잊어버려서 밀리게 되고, 이는 곧 목돈이 되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이 통장의 경우, 수시로 입출금이 가능한 형태를 골라야겠죠. 중요한건 급여통장은 '절대' 잔액이 남아선 안 됩니다. 월급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퍼가요~♡"의 성지가 되도록. 물론 퍼가는 주체가 카드 할부금이 되어선 안 되겠죠. 급여통장이 ‘0’이 아니라는 것은 그만큼 노는 돈이 있다는 뜻입니다. 어영부영 하다가 쓸데없는 곳으로 새기 십상이지요. 2. 투자통장 : 자동이체 날짜는 모든 통장을 동일하게 설정 적금, 펀드, 주택청약, 보험, 연금 등을 관리하는 통장입니다. 저축도 큰 의미의 투자로 본다면 여기에 포함되겠죠? 급여가 들어오면 고정지출과 함께 투자통장을 채울 수 있도록 합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동이체 및 투자상품 이체 날짜를 모두 동일하게 하는 것! 생각보다 많은 초년생들이 각종 자동이체 날짜를 우후죽순으로 설정하곤 하는데요. 이체 날짜가 동일해야 자금의 흐름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급여의 절반은 투자통장으로 흘러가도록 세팅해 주세요. 3. 소비통장 : 당신의 자제력을 믿지 마라 애초에 쓸 수 있는 돈이 적다면, 자연스레 소비도 줄게 됩니다. 소비통장에 한달에 쓸 돈만 딱 넣어두면 되겠죠? 소비통장은 체크카드와 연결시키도록 합니다. 한 달에 5만 원만 덜 쓰기!라고 하기 보단, 소비통장에 5만 원을 덜 이체시키는 게 훨씬 지키기 쉬울 겁니다. 주의할 점은, 쓸 돈이 부족하다고 해서 추가로 잔고를 늘리기 없기! 소비통장에 넣을 돈은 급여의20~30%를 넘지 않도록 해주세요. 4. 예비통장: 소득의 10%, 평소 지출의 3배를 유지  급여통장에서 투자통장, 소비통장으로 돈을 돌린 후 남은 금액은 예비통장에 넣어둡니다. 만약 이 예비통장이 없다면, 친구 결혼식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갑자기 쓸 돈을 구하기 힘들겠죠. 적금을 깨야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단순히 이자가 아까운 걸 떠나서, 자신의 재무 계획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겠죠. 예비자금은 급여의 10% 정도로 산정하는 것이 좋으며, 평소 한 달 지출의 3배 정도의 금액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시 입출금이 가능하며 상대적으로 단기 고금리에 속하는 CMA를 초년생들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너무 핵꿀팁이라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서 퍼옴 출처는 요기 클립할 때는 댓 하나씩 남기깅 댓글냠냠~
어른남자용 클래식 수영복 7가지
한창 휴가시즌입니다. 비 온 후로 폭염이라 정말 물이 그립네요. 20대 때는 트렁크수영복을 즐겨 입었는데 (물론 지금도 입습니다만.) 30대가 되니 좀 더 멋부림할 수영복이 눈에 들어옵니다. 가끔 럭셔리브랜드나 해외 디자이너브랜드를 보다보면 끝내주는 디자인들에 현혹되어 2~3만원도 쓰기 아깝던 한계절용 수영복에 10~20만원도 고려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는 30대 전후반 분들께서 멋부림할 수 있는 수영복 브랜드와 그 인기상품들을 뽑아 봤습니다. - 가격대: 20~30만원대 (해외직구 할인 먹이면 십만원대도 가능) 클래식 수영복의 대명사입니다. 샤넬에서 인수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개인적으로는 단색보다는 BULLDOG 라인의 패턴 이미지가 있는 것이 더 멋지더라구요. 12개의 조각으로 만들어지는 허리밴드에, 마찰/빛/염소테스트를 마친 원단까지. 하지만 다 필요없고 브랜드값으로 충분합니다. - 가격대: 20~30만원대 (직구 할인먹여 10만원대 가능) 올레바브라운과 함께 언급되는 럭셔리 스윔팬츠 브랜드입니다. 살짝 위트 있는 올레바브라운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인데요, 부유해보이는 고급패턴문양이 주를 이룹니다. Tidal, PePe 등 몇 가지 상품들은 너무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위에 피케셔츠 하나 걸치면, 크흐~ - 가격대: 20~60만원대 (싼거 잘 골라사야합니다...) 국내에서도 아시는 분들이 꽤 있는 브랜드죠. 가격편차가 꽤 있는 편입니다. 여긴 화려하고 밝은 톤의 스윔팬츠가 많습니다. 너무 화려해서 간혹 할머니의 몸빼바지(?) 같은 컬러감도 제법 많습니다.. 하지만 톡톡튀고 화려한 컬러감을 좋아하신다면 도전해볼만큼 매력있는 브랜드입니다. - 가격대: 10만원대 (홈페이지에서 할인행사도 종종하네요) 국내 클래식 스윔팬츠의 시작을 알린 브랜드가 아닐까 싶네요. 처음에는 톤다운된 단색 위주로 나왔는데 최근에는 패턴이나 색상이 굉장히 다양합니다. 저는 수년 전에 카키로 구매했는데 한동안 잘 입었습니다. 하지만 해외 유명브랜드들과 비교했을 때 가격메리트가 너무 적어서...다시 구매한다면 고민이 필요하겠네요. - 가격대: 6~7만원대 여긴 원색 혹은 경쾌한 색상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여긴 마케팅을 정말 잘하는 곳 같습니다. 사이즈 상담도 보이고 상품소개내용도 상세히 잘 적혀있네요. 최근 커뮤니티 내에서 많이 오르내리는 것 같습니다. - 가격대: 5~6만원대 매니아층이 많은 오래된 클래식브랜드에서 내놓았네요. 몸 좀 더 좋은 모델을 쓰지..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색상은 제일 기본인 것도 아쉽지만, 남성분들이 제일 많이 찾는 색이니 패스. 그래도 원단은 기능성 택이 많이 붙은 것 답게 확실히 굉장히 가볍고 좋습니다. 오래된 브랜드에서 만들어서 인지 핏같은건 확실히 좋네요. - 가격대 : 2~6만원대 H&M에는 트렁크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얼마전에 처음 봤네요. 저는 허벅지가 두꺼운 편인데..사이즈는 맞았는데 핏이 좀 펑퍼짐하게 퍼지는 느낌이라 구매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가성비있게, 혹은 여러 색상을 구매하실 분들이라면 가격 괜찮은 H&M도 좋겠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아쉽게도 확실히 원단은 좋지 않습니다. 늦은 휴가 가시는 분들은 분명 Sale 할테니 한 번 둘러보시면 좋겠네요. ---- 이상 30대 남성의 어른수영복 편이었습니다 ㅎㅎㅎ
LA 타임스 극찬 "류현진, 역사와 겁없이 맞서고 있다"
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류현진.(사진=노컷뉴스DB) 가벼운 목 부상 뒤 11일 만의 복귀전을 화려하게 장식한 류현진(32·LA 다저스). 7이닝 무실점 쾌투로 시즌 12승째(2패)와 한국과 미국 무대 통산 150승을 달성했다. 류현진은 12일(한국 시각) 미국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메이저리그(MLB) 애리조나와 홈 경기에서 7이닝 4탈삼진 5피안타 1볼넷 무실점 환상투를 펼쳤다. 다저스가 9 대 3으로 이기면서 승리 투수가 됐다. 지난 1일 콜로라도전 이후 목 통증으로 10일짜리 부상자 명단에서 복귀한 이후 첫 등판에서 건재를 과시했다. 최근 두 경기 연속 호투하고도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한 불운도 날렸다. 특히 올 시즌 22번째 등판에서 평균자책점(ERA)을 1.53에서 1.45까지 낮췄다. 100년이 넘는 MLB 역사에 길이 남을 '괴물'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권위지 LA 타임스는 이날 승리를 비중있게 다뤘다. '류현진이 흠잡을 데 없는 투구와 팀 승리로 부상자 명단을 떼어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기사의 첫 문장이 "ERA가 낮아질수록 다저스 좌완 류현진이 더욱 용감하게 역사에 도전한다"는 찬사다. LA 타임스는 "류현진의 ERA는 구단 역사상 최소 20번 이상 선발로 등판한 투수 중 가장 낮은 기록보다 좋은데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 명예의 전당 헌액자인 루브 마쿼드가 1916년 세운 1.58"이라고 조명했다. 이 매체는 이어 "그 다음 기록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거나 달려가는 전설적인 두 좌완인데 2016년 클레이튼 커쇼의 1.69와 샌디 쿠팩스의 1966년 1.73, 1964년 1.74"라고 덧붙였다. 만약 류현진이 현재 페이스를 이어간다면 다저스 최저 ERA 시즌 기록이라는 금자탑을 세우는 것이다. 류현진은 MLB 전체 역사에도 남을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1920년 공인구의 반발력이 향상된 라이브볼 시대 이후 역대 ERA 1위는 1968년 밥 깁슨의 1.12다. 다만 해당 시즌은 투수에게 유리하게 마운드가 현재보다 25cm 정도가 높았다. 그 시즌 리그 전체 ERA가 2.98로 역사상 가장 투고타저 현상이 두드러진 시즌이었다. 이 때문에 이듬해 마운드 높이가 조정됐다. MLB 역대 ERA 2위는 1985년 드와이드 구든(당시 유욕 메츠)의 1.53이다. 마운드 높이가 현재처럼 조정된 가운데 사실상 역대 1위 기록이다. 만약 류현진이 현재 ERA를 유지한다면 MLB 역대 2위 기록이자 사실상 역대 1위 기록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단독] '호날두 노쇼' 프로연맹이 경기장 선금도 입금했다
CBS노컷뉴스 김재완‧박성완 기자 경기장 추정사용료 8억 중 10%, 프로연맹이 '선금형식' 입금 최초 사용자도 '프로연맹'으로 명시…이후 공동사용자로 '더페스타' 등록 계약서 곳곳 프로연맹 측 '공동책임' 정황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와 유벤투스FC 친선경기에서 유벤투스 호날두가 벤치에 앉아 있다.(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른바 '호날두 노쇼' 사태에 대한 책임 공방이 주최사인 더페스타에서 한국프로축구연맹(K리그, 이하 연맹)으로도 번지는 가운데 연맹이 경기장 대여비용 선금까지 직접 입금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맹이 자신들은 피해자라며 주된 책임을 더페스타에 전가하고 있지만 금전적인 부분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이같은 주장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 연맹은 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경기장 사용 허가를 받은지 1주일 뒤, 사용추정료 8억원 중 10%인 8천만원을 선금 형식으로 시설공단에 입금한 것으로 CBS 취재 결과 확인됐다. 선금을 연맹이 지급했다는 것은 이번 경기에 대해 금전적인 부분까지도 연계돼 있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서울시설공단이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보낸 '유벤투스 초청 K리그 올스타 허가내용' 상 최초 사용인은 '프로연맹'으로 명시돼있다. 이밖에도 연맹의 깊숙한 개입은 계약서 곳곳에 드러난다. 지난달 2일 서울시설공단이 연맹에 보낸 <유벤투스 초청 K리그 올스타전 사용허가문>을 보면 해당 경기가 열렸던 지난달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최초 사용인은 '한국프로축구연맹'으로 명시돼있다. 애초 연맹 측은 더페스타와 공동으로 경기장 사용을 신청할 계획이었지만, 시설공단 측에서 생소한 회사인 더페스타 대신 프로연맹 측에서 신청해야 허가를 내줄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맹 측은 허가 직후 시설공단에 더페스타를 경기장 사용자로 추가해 달라고 요구해 더페스타는 공동사용자로 이름으로 올리게 됐다. 하지만 '경기장 사용'에 관련된 전반의 책임이 프로연맹 측에도 있다는 내용은 계약서 곳곳에 명시돼있다. 해당 문서에도 '사용인의 모든 책임과 의무는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더페스타가 연대하여 부담한다'고 적혀있다. 시설공단 측이 프로연맹-더페스타의 공동사용자 신청을 승인한 허가문에는 '사용인의 모든 책임과 의무는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더페스타가 연대하여 부담한다'고 적혀있다. 함께 보낸 허가조건에도 '사용인은 경기와 관련된 참가자 및 현장투입 인력 등에 대한 안전관리 및 민형사상의 모든 책임을 진다'는 등 각종 책임을 분명히 하는 조항이 들어있다. 그간 연맹은 '호날두 노쇼' 사태가 불거진 책임은 전적으로 더페스타에 있고 자신들은 피해자라고 방어벽을 쳐왔지만 금전적으로도 개입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공동 책임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한편 '호날두 노쇼' 사태를 수사하는 경찰은 강제수사에 돌입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 8일 더페스타 사무실 등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다. 앞서 더페스타의 로빈장 대표로 추정되는 관련자 1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하기도 했다. 또한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자 관계자 등 2명을 불러 해외스포츠 도박사이트 광고 노출 논란 등 각종 의혹에 대해 경위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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