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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네오나치 조직이 온라인게임을 조직원 모집 수단으로 쓰고 있다”

네오-나치 출신의 시민운동가가 네오-나치 조직들이 <마인크래프트>, <콜 오브 듀티>, <포트나이트> 등의 게임을 조직원 모집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오-나치는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추종하며 국가사회주의를 추구하는 일련의 움직임이다.

크리스티안 피치올리니(Christian Picciolini)는 인종주의, 백인 우월주의 단체에서 탈퇴한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Life After Hate’의 공동 설립자다. 피치올리니 본인도 1996년까지 시카고 지역 스킨헤드 그룹에서 활동한 바 있다.

피치올리니는 6월 30일 자신의 레딧(Reddit) 쓰레드에서 "현재 러시아, 폴란드 등 동유럽권 네오-나치 조직의 영입 담당자들이 <마인크래프트>, <콜 오브 듀티>, <포트나이트>멀티 모드에서 소외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네오-나치 조직원을 모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들은 게임의 멀티 모드에 접속해 서버 내에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힌트를 흘리고’, ‘유약한 젊은이’들이 거기에 반응하면 그들을 ‘낚는’ 방식"​을 쓴다고 덧붙였다. (바로가기)
실제로 그가 언급한 게임에서는 나치 추종의 의미를 담은 플레이가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인크래프트>의 경우 유저들이 멀티 서버를 통해 거대한 하켄크로이츠(Hakenkreuz)​를 만들거나 나치 궁전, 나치 도시의 맵을 구현하고 인증한 것을 온라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유투브에서는 히틀러 차림의 주인공이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모드의 플레이 영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플레이를 목격한 <마인크래프트> 유저들은 수 년간 포럼을 통해 “개발사 모장이 게임 내 나치 조형물을 제재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콜 오브 듀티: 월드 워 2> 멀티 모드에서도 나치군 복장을 하고 있거나 자신의 엠블럼으로 나치 마크를 사용하는 유저들이 있다. 이러한 유저들 중 일부는 게임 상에서 나치 정체성을 표방하는 클랜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사망시 나타나는 상태창에서 나치를 암시하는 클랜명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2017년 9월 <콜 오브 듀티: 월드 워 2> 개발 중 슬레지헤머게임즈 공동 설립자 마이클 콘드리가 ‘게임 인포머’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과 반대된다. 마이클은 인터뷰를 통해 "플레이어가 나치로 플레이할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네오-나치 조직들이 인종 차별적 요소가 들어간 게임을 제작, 배포한 사례도 있다. 미국의 정치 단체 국민동맹(National Aliance)이 소유한 게임사 ‘레지스탕스 레코드’는 2002년, KKK 단원이나 스킨헤드가 되어 거리에서 흑인과 라틴 아메리카인들을 죽이는 게임 <Ethnic Cleansing>(인종 청소)을 배포했다.
같은 성향의 미국 정당 국가사회주의운동(National Socialist Movement)도 'FPS 크리에이터'를 이용해 만든 게임 <Zog’s Nightmare>을 배포했다. <Zog’s Nightmare>는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몸에 새긴 적들을 쏴 죽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편, 피치올리니는 같은 쓰레드에서 네오-나치 조직이 게임을 통해 젊은이를 모집하고 있다는 증거를 요구하는 유저들의 질문에 "찾기는 쉽지만, 밝히지 않겠다(Easy to find, but I won't publicize it)"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피치올리니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는 이슬람국가(ISIS)가 게임과 소셜 미디어를 조합해 조직원 모집 캠페인을 벌인 사례와 유사하다. ISIS는 소셜 미디어에 <콜 오브 듀티> 포스터를 ‘CALL OF JIHAD’로 바꾼 광고물이나 <GTA 5> 캐릭터가 ISIS 전사로 등장해 폭탄을 터뜨리는 플레이 영상 등을 게시한 다음, 이러한 게시물을 올린 계정을 통해 ISIS에 들어가려던 이들을 안내한 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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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 자룡 (趙雲 子龍) A.D.? ~ 229
아오.. 시부랄 다 써놨더만, 뭔 에러가 났는가.. 업로드 누르니 싹 씻은듯이 날아가 처음부터 다시 쓰는 오늘의 주인공새끼는 바로 "조운" 삼국지라는 컨텐츠의 인기가 가장 좋은 동아시아 삼국인 한국, 중국(타이완 포함), 일본은 각기 최고인기 인물이 그 나라의 국민성향 및 역사적 특성에 따라 다른데, 중국 : 이미 신격화된 "관우" 한국 : 전통의 문(文) 숭배 영향인지 "제갈량" 반면, 삼국지를 가장 상업적 컨텐츠로 잘 활용해낸 일본은 조운의 인기가 제일 좋다. . . . 아마 오랜시간 무(武)가 우선시되며, 또 그런 문화특성상 주군의 명이라면 유불리 떠나 묵묵히 수행하는 "사무라이(侍) 정신"이 모토인 점 등이 작용한 듯. 조운이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다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 인기 없진 않다. 두세번째쯤에서는 반드시 언급이 되는 역시 인기스타! 심지어 인기는 오히려 삼국지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더 높은데, 이건 조운을 좋아하면 삼국지를 모른다거나... 그런 디스가 아니라, 아무래도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더 많은 인물들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러다보면 조운 외의 다른 인물들을 최애할 수도 있으니까~ 이건 워낙 유명한 조운의 인기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는 잘 모르거나 안읽어본 이들도 알만한 급의 유명스타기에 그렇다는! (이는 조운 외의 인기인물들도 비슷한.. ,) . . . 조운은 위처럼 유명할 수 있는 여러 이유 있지만 무엇보다 후한 말, 초창기 떠돌이시절의 유비를 따르기 시작, 후에 그 유비가 황제 되고 또 붕어한 이후까지의 긴~ 활약기간의 이유가 있는데, 정말 의외스럽게도 그런 긴 시간 활약하며 제국의 개국공신되고 또 그만큼 고위직에 오른것치고 의외로 기록이 많이 부실하다. 정사의 촉서 중 조운전과, 신뢰성은 좀 문제가 있지만 조운전의 부실함을 좀 채워주는 조운별전 등의 기록을 모두 합쳐도 군시절 내가 쓴 편지의 양보다 적다....;;; 조운이 이토록 부실한 기록을 가졌음에도 거대한 인기를 누리는 실질적인 큰 이유는, 내가 보기에는 바로바로.. 일본게임업체 "코에이(KOEI)" 의 "삼국지 시리즈" 덕이다. 삼국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책과 코믹스가 있었고... 중국에는 그보다도 훨씬 더 옛날부터 "경극"이라는 미디어(?)매체들 통해 후대인들이 삼국지(연의)를 즐겼다. 하지만 사서 통해 확고한 비쥬얼 이미징이 되어 있던 극소수의 몇몇 인물들 외에는 인물간 개성을 구분지을 표현은 부족했다. 그러던 와중, 1985년 일본의 코에이에서 창업자이자 삼국지 시리즈의 창조자이기도 한 삼국지덕후인 "에리카와 요이치"가 미칠듯한 덕력으로 자료들을 수집해 이를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각 인물들의 프로필을 제작하여 이를 게임에 응용하게 되는데... 이 게임이 대박이 나게 되며 나름 고증도 괜찮았고 멋지게 잘 표현된 인물들 일러스트들도 같이 대박났다. . . . 이후 각종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드라마 등등 온갖 미디어물에서 다루는 삼국지의 인물묘사들은 이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의 일러스트를 모티베이션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 삼국지 시리즈에서 조운을 초절세미남으로 표현했고 시리즈 거듭될수록 나날이 더 미남이 되어가며 대부분 사람들에게 "조운 = 미남"의 공식이 공식화 되었다는... 이로서 사료와 연의 속의 과묵하고 충직한 무력깡패 이미지에 코에이가 미남 이미지를 데코레이션 해주며 인기가 없을래야 없을 수 없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ㅋ . . . 참고로 위에 언급한 에리카와 요이치는 삼국지 시리즈 오프닝 초반에 이름 나오는 프로듀서인 "시부사와 코우"와 동일인물! 저작권 관리 등 사업적인 이유로 지은 이름인데 에리카와가 존경하던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이의 성과 코에이의 코를 따와서 지은 이름. 실제 조운도 미남이였는지에 대해 조운전은 무언급, 조운별전에서만 "8척의 위풍당찬 체구와 사내다운 용모" 라고 짧게 언급이 꼴랑...ㅎ 당시 도량형 기준 8척은 지금 기준으로도 큰 키인데, 정말 딱 자로 재서 저만큼의 키라는 것보다는 주로 당시의 작디 작던 일반인들보다 훌쩍 키 큰 이들을 일컬으며 쓰던 감탄적 관용어구로 주로 쓰인 표현. 그래서 사료에도 실제로 키가 크다며 제법 명확한 데이터가 있던 제갈량이나 정욱 등등도 있지만 대체로 삼국지에서 8척, 여덟 자 어쩌고 하는 표현이 붙는 이들은 대개 "덩치 좋다!!" 는 의미로 쓰였고 조운도 마찬가지다. 보아하니 그냥 덩치 좀 있고, 생긴 것도 잘 생겼다기보다 남자답게 생긴 호남형 외모 수준인 것을 코에이가 무슨 존잘러로 만들어 놨다...ㅋㅋㅋ 오히려 조운의 외모묘사는 요코야마 미쓰테루가 더 사료에 입각했지 싶은ㅎ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에서 제갈량과 함께, 주로 자로 불려지는 인물. 간혹 조운이란 이름은 모르고 조자룡으로만 아는 이들도 꽤 있다. . . . 많은 분들이 별 생각없이 넘겼을 수도 있지만.... 은근 논란이 되었던 건 조운의 "나이"다. 제목에서 보듯 그의 생년관련 공식기록은 없다. 긴 시간 활약하며 사망당시는 제법 고위직이였음에도 인물기록 중 가장 기본이랄 수 있는 생년기록이 없으며 정사 저자 진수조차 체크를 못한 듯 싶다. 삼국지연의내의 내용들만 보면 유비보다 8살이나 연상으로 나오지만, 이건 나관중이 이렇게 저렇게 조운을 띄우다보니 설정붕괴가 오며 생긴 착오로 보여지고... 대체로 중국과 일본의 관련 사학자들은 조운을 대략 170 ~ 171년생쯤으로 보고는 있다. 그런데 170년으로만 잡아도 만 60세도 채 못 채우고 사망.. 연의에서 그려지는 노익장의 이미지에는 살짝 아쉽다. 물론 당시 평균수명 짧은 탓이 영유아 사망률이 높아서이기도 했다지만 노인사망연령 역시 짧은 탓도 있던 터라, 단명으로는 절대 볼 수 없겠지만 오래 살았다 할 수도 없는 나이임은 분명하다. 하긴, 당시 기준에 50대 중후반 나이의 장수가 전장에서 현역생활 했다면 노장인건 맞긴 하지... 살짝쿵 이견들은 있지만 확실한건 "공손찬" 아래에서 사실상의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공손찬 휘하에서 객장, 즉 일종의 용병 생활하던 유비를 만난것도 맞지만, 소년장수 조운이 이미 당시의 하북에서 네임드 맹장이던 문추와 대결한건 허구다. . . . 연의에서처럼 실제로도 조운은 공손찬 휘하에서 별 다른 활약기회없이 지내다 공손찬과 원소 양측이 제대로 전쟁 치르기 전에 형의 장례를 이유로 낙향하며 사실상 공손찬측에서 '퇴사' 했다. (형이 있었어?ㅋㅋ) 많은 이가 조운을 못 알아본 공손찬의 무지함을 까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관점일뿐... 당시 시점에서 공손찬이 무지했다 볼 수는 없는게, 그때의 공손찬은 북방의 여러 소수민족들과의 전투를 이겨내며 명성을 키운 실전강자였다. 거칠고 사나운 그들을, 몸소 전장지휘하며 조져놨던 공손찬세력에는 당연히 병력들을 이끌던 여러 검증된 장수들이 있었을테고 공손찬이 무슨 스카우터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날 나타난 젊은 신입장수의 전투력을 알아보고 기회 주기보다는 기존의 전공 많고 검증된 이들 위주로 운용했을거다. 체격이나 그런거 딱보면 모르겠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평균신장 작던 그 시절이라도 공손찬처럼 성공한 큰 세력하의 장수들까지 다 작진 않았을거다. . . . 축구로 치면 몇 시즌 동안 리그우승을 거듭한 강팀이 있다 치고 그 팀에는 당연히 우승을 이끈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이 있을텐데 이런 와중에 그들을 벤치에 앉히고 유망주에게 선뜻 기회 주긴 쉽지 않다. 게다가 스포츠는 큰 의미없는 게임이나 대승을 거둘 때 잠깐 투입해도 무리없겠지만 후한 말의 난세는 실전이라 괜히 검증안된 어설픈 지휘관을 투입했다 혹여 실책이라도 저지르면 그대로 수 많은 인명/재산피해가 발생한다. 또 여러 번 말했듯 당시 전투는 "기세싸움"이라, 내리 이기고 또 전력이 유리해도 엄한 짓 한 번으로 역전패 할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실전"이였다. 그리고 조운이 공손찬 휘하에 임관한 때는 공손찬이 북방을 어느 정도 다져놨고, 원소와는 제대로 붙기 전이라 더욱 전투에 나설 기회가 많지 않던터에, 원소와 붙기 전 낙향했다. 여러모로 공손찬이 모자라서 조운을 활용안했다 몰기는 공손찬도 억울하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운의 하이라이트는 누가 뭐래도 역시 당양 장판파에서 아두(유선)를 품고 조조의 대군 사이를 들쑤시고 다니는 부분이다. . . . 이 부분을 보면 따르는 이도 없이 오로지 혼자... 심지어 애까지 품고 전장을 휘저으며 싸울 놈과 싸우고 죽일 놈은 죽이는 등 할 거 다하고 다니는 육아무예의 정점을 찍는다. (물론, 훗날 유선 하는걸 보면 이는 조운 최고의 실책....;;;) 이 부분은 역시나 나관중이 조미료를 과도하게 쳤다. 물론, 저 극한상황 속에서 목숨바쳐 자기주군의 유일한 적자를 구해낸 자체는 맞는데... 저렇게 이리저리 죄 후비고 다닌 것은 아니였다. 상식적으로... 적군이 널린 상황 속에, 자기는 혼자. 주군의 아이를 품고 있는걸 떠나 설령 혼자라 해도 대놓고 '내가 조운인데 뭐 어쩌라고' 하며 다니는건 무예와 용맹을 떠나서 만용의 정점을 찍는 어리석음밖에 되지 않는다. 정말 부득불 적병과 마주쳐도 걔네들을 싹쓸고 가기보다 아주 최소한의 마찰만으로 어떻게던 돌파하거나 경우에 따라 제법 많은 인원이 다가오면 숨어있다가 다 지나가면 뒤도 안보고 달아남을 반복하며 빠져나갔다. . . . 나쁜소식은 당시 장판벌을 헤집던 조조군의 주력은 평상시 조조의 호위를 목적으로 양성된 최정예부대인 "호표기(虎豹騎)"였다는거고... 좋은(?)소식은 이들의 포커스는 유비를 쫓는것이였다는 것. 게다가 당시 호표기가 뉴스나 인터넷으로 조운의 프로필을 검색해보거나 유튜브로 조운의 활약상을 본건 아닐테니 설령 조운을 마주한들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당시 조운의 꼴도 말이 아니였을터라 효표기 입장에서 조운을 마주한들, 그냥 난전 중 낙오된 적군의 기병쯤으로 봤을테니 굳이 무리하게 전원이 덤벼서 악착같이 쫓거나 막으려고는 안했을 것이다. . . . 여튼 실상은 좀 김새고 싱거운건 맞지만, 조운의 활약이 과장되었단거지 없는걸 지어낸건 아니고 아무리 위와 같은 상황인들 조운이 생사고락의 아수라를 혼자만의 실력으로 돌파해 나온건 팩트다. 저 때의 활약이 인상깊었는지, 이후부터 조운은 주로 유비의 신변을 보호하는 호위부대장을 맡거나 유비 부재시 유비의 집안질서를 잡거나 보호하는 보안대장 비슷한 포지션을 주로 맡게 된다. 유비 입장에서는 성격도 단호박에 무력도 빼어나고 전략기재가 빼어난건 아닐지라도 원리원칙에 상명하복 확실하며 당장의 전술적 판단은 괜찮았던 편인 조운이, 성격적으로 워낙 개성들이 강하다보니 장단점이 확실한 의제보다 그런쪽으론 더 믿음 갔을 것이다. . . . 다만, 원체 난놈이라 전투에도 수 차례 투입되긴 했어도 기본적 포지션이 유비와 그 가솔들의 신변보호를 우선하는 직할대장이다보니 여타 야전지휘관들보다 가시적인 공적 세울 기회는 아무래도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느끼는 임팩트 대비 훗날 유비가 왕이 되고 황제가 되며 공신들의 공을 기려 직위를 하사때 조운은 우리가 알기로는 거의 동급 혹은 조운보다 아쉬운 이들이라 여겨지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보다 낮았고 위연, 이엄 등과 비슷하거나 살짝 앞서는 정도였다. 물론, 관직면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유비세력.. 나아가 촉한내에서 그는 직급을 떠나 아무도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였다. 현대군에서 주임원사는 엄연히 계급상 갓 임관한 어린 소위보다 낮음에도 위관급은 물론 영관급 고위 장교들도 절대 함부로 못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당장 서열 No.1 인 유비 제외 그 아래로 관우나 제갈량조차 조운에게 큰소리조차 내지 못했으며 지시를 내릴지라도 대놓고 명령조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단순히 조운의 실력이나 공적 및 짬밥만으로 가능한게 절대 아니였고 조운의 "인성" 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당장 관우, 장비, 위연만 해도 촉한내에서 눈도 못 마주칠 거물들이였음에도 뒤에서는 그들을 싫어하거나 속으로 욕하는 이들이 적잖았고 결국 관우와 장비는 부하들의 하극상이 원인되어 남의 손에 목이 날아가고, 위연 역시 안티들에 둘러싸여 어그로만 끌고 살다 그 무수한 공을 세우고도 끝내 숙청이나 진배없는 최후를 맞은 걸 보면 조운은 전혀 그런 부분이 없었다. . . . 무엇보다 상명하복에 철저한 "진짜 군인" 이였다. 다른걸 떠나 제갈량 영입 직후... 나이도 어리고 당장 크게 보여준 것도 없는 키만 큰 허연 선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 관우와 장비는 몹시도 불편한 기색을 보였으나 당시 넹~ 하고 따른건 조운뿐이였다. 이후에도 유비의 명이건, 제갈량의 명이건 조운은 자신의 위세 높아지고 공적이 쌓여가도 대부분 군말없이 이행했다. 그런 조운이 유비의 지시에 대해 그와는 다른 자기주관을 드러낸건 역사적으로 딱 두번이다. 하나는 익주 정복 직후 기존 촉의 고관대작들과 부호들의 집과 토지와 뽕나무밭을 모두 압류 후 공신들에 재분배 하자는 것을 민심안정우선을 이유로 반대한 것. 두번째는 유비가 초사이언이 될 정도로 개빡쳐서 온 나라를 들어 오나라를 불싸지르러 가겠다는걸 정세와 이치상 맞지 않다며 반대한 것. . . . 둘 모두 너무나 옳고 바른 반대였다. 그러나 당시 분위기로는 정말 감히 반대하기가 거시기한... 사나이의 반대였다. 재산재분배의 경우, 가만히 있었으면 공이 적잖은 자신도 상당한 수혜자가 되며 유비의 그 발표 직후 모든 문무대관들은 입이 귀에 걸려 샴페인을 따는 분위기였고.. 오정벌의 경우, 의제 둘의 죽음과 오가 연관되어 인자함과 덕의 아이콘 유비가 생전 처음 눈까리가 뒤집혀 폭주를 하고 있는 현장이였다. 하지만 조운은 반대했다. 상명하복에 충실했지만 대의명분과 시국을 판단할 줄 아는 지혜에서 비롯된.. 조운이 단순히 커맨드대로만 움직이는 전투머신이 아니라는 뜻. 참고로 재산재분배건 당시에는 조운보다 서열이 위였던 제갈량, 장비, 수틀리면 상대 안가리고 막말 쏘는 법정, 조운 못지 않은 공적과 역시 근소하나마 윗서열 황충 등등 조운의 저 이뭐병소리를 지적하려면 지적하고도 남을 사람들이 잔뜩 있었음에도 누구도 저 의견에 싫어요를 누른 이가 없음은 조운의 위세를 보여주는....! 평소에 원체 말수가 적었고 다른 이들과 별 다른 교분을 갖지 않았다. 조운의 사료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다른이들의 기록을 봐도 조운과 술 한잔 했다는, 조운과 사냥을 했다는, 조운과 식사를 했다는, 조운과 담화를 나눴다는, 조운과 차를 마셨다는, 조운과 바둑을 뒀다는, 조운이 집에 찾아왔거나, 조운의 집에 찾아갔다는 그 어느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조운이 그냥 아싸거나 독고다이였다기보다 과묵하지만 인성이 좋고 필요시에는 바른말을 했고, 맡은 소임에 충실한 직장인의 정석같은... 비록 노잼이긴 해도 누구도 그를 싫어하지 않는 그런 묵직한 존재감의 인물이였다. 게다가 전장에 나가면 그 과묵함을 유지하며 미칠듯한 용맹을 자랑했으니, 별 기록 없다는 정사에도 조운이 매우 용맹했다는 기록이 강조되어 있다. 위에서 지시 떨어지면 형세가 불리하건, 병력이 적건 일단 묵묵히 들이대러 갔기에 붙는 기록이다. 연의에 등장하는 유비의 코멘트 중 "자룡은 온몸이 담덩어리(子龍一身都是膽也)" 라는 멘트도 실존했던 멘트. 이릉대전 당시 유비에게 반대 걸었다 후방으로 빠지는 부분이 있는데, 이건 나가리의 개념이 아닌 조금이라도 본군의 형세가 불리할시 바로 지원 및 혹여 만에 하나라도 패퇴시 밀려올지 모를 오군을 사전에 방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인 강주를 맡긴 것이였고, 촉에서도 한중과 함께 매우매우매우 중요한 요지여서 조운 직전은 장비가 맡았던 곳! . . . 유비가 백제성에서 유언 당시 제갈량과 함께 문무대관들 중 유이하게 유언을 직접 받은 신하로 연의에 나오는데, 하긴 유비가 떠돌던 시절부터 따르던 이들 중 당시 생존해 있던 신하가 그 둘뿐이도 했고 관우, 장비, 간손미, 진도 다 죽고 미방은 배신때리고 당시 숨 쉬던 게 그 둘뿐....T-T . . . 헌데 사실 저것도 나관중이 감동을 더하고자... 독자의 눈물을 뽑고자 지어낸 신파! 사실 유비 사망 당시 신하들 중 유비의 유언을 직접 받든건 제갈량 포함 두 명이 맞는데, 또 한 명은 조운이 아닌 바로 "이엄".. ..;;;; 이후 조운은 촉한에서 군의 인사권을 관할하고 황실을 호위하는 정예부대를 지휘감독하는 등... 대외정벌 부문 제외한 내부적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직위에 오른다. 보통 저 역할을 하는게 대장군인데, 본래 대장군은 타국원정권도 갖지만 그 방면은 제갈량이 도맡았던 터라 조운은 대장군의 저 책무만 분담한다. 유비는 직위, 직책에 대해 상당히 프리하게 실리를 중시해서 운용해왔는데... 유비는 당시 후한에 없는 직위도 임시로 만들어 쓰거나 기존 직위의 롤을 임의적으로 변형 하는 등 포지션보다 롤에 더 포커스를 맞춰 내부운영을 했고 이는 제갈량도 일정부분 비슷하게 진행했다. 그래서 조운의 직위자체는 실상 공적과 재직기한 등 커리어 대비 그닥 높은편은 아니였으나 역할은 상당히 주요업무를 맡은 편이였다. 이후 조운은 제갈량과 함께 남만정벌도 다니고... 북벌도 다니며 눈감는 날까지 쉼없이 말타고 싸우러 다닌다. 참고로 위와의 전투 중 한덕과 그 다섯인지, 여섯 아들을 죄다 썰어놔서 한씨집안 씨를 말린건 조운의 노익장을 버프해주기 위한 나관중의 픽션이며 저런 한 부자들 자체가 없던 인물이다... 실제로 연의 속에서 조운의 창 아래 비명횡사한 이들 일부가 가상의 인물들이다. . . . 여튼 조운은 쉼없는 전투로 굴려지다 1차 북벌 다음해인 229년에 사망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 짧은 생은 아니지만 길게 살지도 못한데는 역시 촉의 영토를 구석구석 누비며 거듭 참전하며 쌓인 과로탓인듯 하다. 그도 그럴게 촉은 고질적인 인재부족문제로 조운 정도의 경력과 나이의 장수면 황도에서 머물며 주요사안결정과 천자알현업무가 주가 되어야 했으나 당장 승상이 최전선에 지휘관으로 나가는 상황이니 조운 성격에 당연히 본인도 쉬지 않고 따라 나갔을 것이다.... . . . 조운 사후 순평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는데 이 시호는 조운 생전, 촉에 귀순하며 평소 조운을 존경해 마지않던 강유가 지었는데, 강유는 조운을 공경하여 몇 차례 함께 술자리나 식사자리를 권했으나 모두 뺀찌먹었다... 전형적인 군인 of the 군인 스타일이다. 맡은바 임무에 의문제기없이 유불리 떠나 최선을 다하며 정치적 개입도 일절 없이 사리사욕조차 없다. 늘 과묵하며 정말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고 매사에 엄정한 일처리 위해 개인적 친분도 나누지 않았으며 역시 무엇보다 주위의 신뢰와 존경을 받을 실력자였다. 본인의 경력, 실력, 공적에 맞지 않는 포상이나 직위에 대해 일절 불평불만을 가진적이 없다. 자신의 직위와 처우가 높아져도 이를 토대로 과한 야욕은 커녕 직권남용이나 후배들에 대한 하대조차 없었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흐트러짐 한 번 없이 죽음의 순간까지 지켜냈다.., . . . 공직자, 군인으로서의 조운은 완벽 그자체다. 제갈량과는 또 다른 면에서 공직자로서의 완벽을 보여준다. 다만, 인간 조운의 삶은 완전 개노잼이였을거 같다. 모르겠다... 난 주위에 저런 선배나 형, 상사가 있으면 분명 당연 존경하고 롤모델 삼긴 했겠지만 고민이나 걱정 있을 때 조언을 구하진 않을거 같다.ㅋㅋ 하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그게 정부관료건, 군인이나 경찰이건, 국회의원이건, 공무원이건간에 공직자로서는 확실히 저런 사람이 필요하고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 번도 아쉬운 처사에 불평불만이 없고 사리사욕 채우지 않았고 다른 고위직들과의 친분은 커녕, 말수도 없었던 그였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조운을 아무도 쉽게 보거나 하지 못했다. 위나 오에는 있었겠지만 유비를 만나 따르고, 훗날 고관대작 되어 최후 맞기까지 최소한 내부에는 적이 없었다. 나는 조운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주위에, 사회에는 조운같이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스트리머 대도서관 "학생들이 게임 중독? 성취감 못 주는 교육 환경이 문제"
유명 게임 스트리머 '대도서관'(본명 나동현)이 게임 중독 논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아이들의 과몰입은 한국의 교육 환경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도서관은 30일,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에서 게임이란 무엇인가?'라는 토론회에 참석해 '기성 세대들이 생각하는 게임 중독은 그들이 만든 교육 환경 때문'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학생들이 게임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 때문이다. 그는 "사람들은 성취감으로 사는데, 현실에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기성 세대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그 중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학생들은 5% 밖에 안된다. 반면 게임은 보스 몬스터를 쓰러트리거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등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장치가 곳곳에 있다. 게임을 비판하지 말고,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환경을 비판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대도서관은 자신의 이런 생각을 말하며, 기성 세대가 학생들을 둘러 싼 환경을 이해할 생각을 하지 않은 채 폭령성•선정성 같은 것만 부각하며 무작정 게임을 위험시 한다고 비판했다. 기성 세대가 예술이라 생각하는 영화 같은 문화 콘텐츠도 요소 요소를 분리하면 폭력적•선정적인 면이 많은데, 영화는 전체의 맥락을 보고 예술로 판단하지만 게임은 요소 요소를 분리해 비판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대도서관은 이날 행사에서 게임 중독에 대한 자신의 의견 외에도 ▲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 게임 사전 심의 제도 개선을 건의했다.
[단독] 겉속 다른 신천지 '비밀모임' 포착 "서울, 강릉서 모이자"
이단 신천지 단체 대화방서 '집회' 추진 신천지 대구 신도 "서울·강릉서 모인다" "모든 활동 중단했다"는 발표와 '딴판' 일부 신도 "누가 뉴스에 누설하냐" 발끈 이단 신천지 신도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지난 23일 한 신도가 "다음주에는 서울, (3월) 13일에는 강릉에서 집회를 한다"는 내용의 공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독자제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불을 붙인 이단 신천지가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지만, 발표와는 다르게 뒤로는 여전히 다중 집회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돼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정부의 전수 조사에 '무응답'으로 대응하라는 내부 지침에 이어,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듯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국가적인 비상 시국에 신천지가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관련기사 : [단독] 1분1초 급한데, 신천지 "아무 전화도 받지마라" 긴급공지) 25일 CBS 노컷뉴스 취재 결과, 이단 신천지 신도들이 모인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자신을 대구 지역 신도라고 밝힌 A씨는 지난 23일 "일부 신도들과 다음주에 기도 드리러 서울에 올라간다"는 메시지를 띄웠다. 다른 신도가 '서울 어디로 가냐'고 묻자 A씨는 "저희만 알고 움직이라는 지침에 따라 알려드릴 수가 없다"고 답했다. 해당 대화방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 신천지에서 발급받은 '신도 인증카드'를 찍어 공유한 사람만 참여가 가능하다고 알려졌다. A씨는 이후 다른 지역 일정을 문의하는 신도에게 "(3월) 13일은 강릉 집합이다"며 "문자를 못 받았냐"고 되물었다. A씨 설명대로라면 코로나19 핵심 전파지역으로 꼽히는 신천지 대구 신도들이 이번주부터 서울과 강릉 등 곳곳에서 집회를 여는 셈이다. 또다른 단체 대화방 '신천지 대구지역 기도회'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보였다. 한 신도가 올린 공지글에는 '대구 남구 홈플러스 옆 대명초에서 기도 드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명초등학교는 신천지 대구 건물 바로 맞은편에 있다. 그러면서 신도들 사이에서는 '누가 뉴스에 지령을 누설했냐'거나 '내일 또 뉴스에 발각되면 어떡하냐' 등 말도 오갔다. 또다른 이단 신천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신천지 대구 건물 맞은편인 대명초등학교에서 기도 모임을 갖자는 내용이 올라왔다. 신도들 사이에서는 '뉴스에 발각되면 어떡하냐'는 말도 오갔다. (사진=독자제공) 신도들의 이같은 내부 집회 양상은 앞서 발표한 신천지 측의 공식 입장과 정면 배치된다. 신천지 측은 지난 23일 온라인 생방송에서 입장문을 내고 "18일부터 모든 모임과 예배·전도 등 교회 활동을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또 "대구 교회 성도의 자가격리 조치를 완료했고 전 성도 24만5000명에게 외부활동 자제를 공지했다"며 신천지와 신도들은 오히려 코로나19의 최대 피해자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공식 발표와 다르게 대구를 비롯한 신천지 신도들이 비밀리에 계속해서 집회를 이어가는 건 정부와 지자체의 대처를 무색하게 만드는 동시에 법적으로도 처벌 가능한 부분이다. 현재 대구시는 신천지 신도 9336명 모두에게 코로나19 증상 유무와 관계없이 자가격리 조치를 내렸다. 구·군 관계자 3000여명을 투입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하루 2차례씩 자가격리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자가격리된 신천지 신도가 이를 어기고 무단으로 이탈할 경우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건 물론, 서로 모여 집회를 갖는 자체가 법 위반에 해당된다. 한편 24일 오후 4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833명으로, 그중 신천지 관련 확진자만 절반이 넘는 456명으로 파악됐다. 신천지 대구 신도들 중에서 아직까지 소재가 불분명한 인원은 같은날 오후 5시 기준 3명이다. 신천지 특유의 폐쇄성 탓에 지난 주말까지만 해도 200여명의 신도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지만, 대구경찰이 600여명을 투입해 위치를 추적하고 탐문을 벌인 끝에 대다수 신도들의 소재를 확인했다.
나본 관중 (羅本 貫中) A.D.1330? ~ 1400
여기서 다뤘거나 다룰 인물들 중 예전에 다룬, "유일한" 생존인물 정대리 외에 사망인물들 중 가장 최근(?) 인물이자, 유구한 중국역사 속 찰나에 불과하며 의미도 그닥인 삼국시대를 지금의 메이져 에이지가 되는데 큰 공 세운 삼대장 중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인 "나관중" 을 한 번 다뤄 보고자 한다. (삼대장 중 둘은 정사의 진수와 그 정사에 주석자 배송지) 처음 제목보고 '응? 나본이 뭐야? 백종원의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으나 삼국지 속 인물들이 이름 외에 자(字)가 있듯, 나관중의 본명은 "나본"이고 관중은 그의 "자"인데 이거 모르는 분 많으실 듯ㅎㅎ(이하 나관중) 사실, 이 칼럼연재를 시작하며 어찌보면 정사의 저자인 진수와 함께 가장 먼저 다뤘어야 도리였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치고 의외로 기록이 그닥 많지 않은편. 일단 이 사람의 사망연도는 딱 떨어지는 A.D. 1400이나 출생연도는 추정치가 있을뿐 정확하진 않고 고향도 지금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쯤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긴 하지만 명확한 고향인지는 알 수 없다. 그게 왜 그러냐? 지금이야 삼국지가 동아시아 최고의 히스토릭 미디어떡밥이지만 나관중 생전에는 서점이 있냐, 도서관이 있냐,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했냐.... 인쇄라는 개념도 없어, 책 한 권이 두 권 되려면 누가 붓 가져오고 벼루에 먹 갈아 베껴적어야 하다보니 인기를 얻으며 널리 퍼지는데 막대한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삼국지연의가 그 넓은, 그러나 유통망이나 인프라가 개떡인 수백 년전 중국일대에서 인기를 끌쯤, 이미 나관중은 천국에서 삼국지속 실제인물들을 만난지도 한참 이후... 게다가 지금 현재의 중국조차 인적사항등록이 누락된 인간이 있는 마당에, 당시 명나라 초기의 일반인의 기록이 세세히 있을리가 없다. 지금에나 그런 베스트셀러작가가 명망높지... 당시의 명은 당연히 관직에 나가 벼슬살이 하는게 갑이였고 그 이하 여타 직군들은 별 큰 인기나 선망직종이 아니였다. 어렸을적에 어떤 어린이였고 소년이였는지는 모르겠고, 여튼 머리 크고는 위 언급대로 벼슬아치가 최고였던 시절이다보니 나관중 또한, 명나라의 인싸가 되기 위해 과거에 응시를 했었나본데, 낙방했다.....;;;; 심지어 세 차례 이상 내리 낙방했다고 한다... 물론, 당시 과거는 지금 한국의 공무원 시험 따위와는 댈게 아닌 극악의 난이도여서 벼락치기 좀 했다고 붙는 그런건 아니였어서 수년간 공부했어도 수 차례 물 먹는 사람들이 많은건 사실이였지만, 왠지 뭔가 천재작가 이미지의 나관중조차 여러 번 불합격한건 의외다. 이건 나관중 개인에게는 불행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들에겐 다행인거지..ㅎ 벼슬 나갔으면 삼국지같은거 썼겠나. 게다가 당시 명의 천자였던 "홍무제"는 뭐가 불만인지 수틀리면 벼슬아치들을 죽여대던 때여서 홍무제손에 킬된 벼슬아치가 10,000 명이 넘었다하니 어쩌면 나관중 본인에게도 잘된 걸 수도~ 뒤에 이야기들 보면 느끼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이 양반이 뭐가 딸려서라기보다 그냥 공부머리가 없었지 싶다. 정사를 꿰고 그 무수한 민담들을 캐내서 집대성하고 스토리텔링을 해낸 그의 재능은 오로지 포커스가 삼국지에 올인 되었을 뿐이였다. 과거에 계속 떨어지기를 여러 번...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벼슬에 대한 미련 버리고 부친이 하시던 소금장사를 따라다니며 장사를 도왔는데, 공부도 못 하는 주제에, 장사도 못 했고 장사에 별 도움이 안되다보니 아버지한테 한 소리 들었는지, 나중에는 장사를 따라다니는 것도 그만뒀다.ㅋㅋㅋ 이렇게 원나라(그 시절은 아직 원)의 잉여놈이던 나관중은 동네 찻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당시의 찻집은 옛날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비슷한... 문학도나 학자들, 혹은 예능인들이 드나들며 의견을 나누던 그런 분위기였다고 보면 된다.(술 안팔았다) 그렇게 드나들던 찻집에서 거의 매일 했던것이 "삼국희곡(三國戱曲)" 이란 공연인데, 이게 뭐냐면 몇 명의 화자가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연기와 나레이션 섞어서 간단한 연극 비슷하게 만담처럼 진행하는 요즘말로 스탠딩공연같은건데 나관중은 여기에 빠져서 이걸 보려고 싸지도 않은 찻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래도 당시에 소금집 아들이면 나름 먹고사는 집이니 가능했던 듯..ㅎ 이 때 이 찻집의 삼국희곡은 한 잉여의 삶을 바꾸게 된다. 이후 단순 삼국희곡덕후에서 끝난게 아니라, 관련 사료들을 모으고 연관 주석과 민담 및 구전설화들까지 모으게 되는데.. 당시에 이짓은 그야말로 엄청난게, 이때 인터넷이 있나, 도서관이 있나 이런저런 자료들과 이야기들을 모으려면 그야말로 발로 뛰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당시 교통이 좋기를 해.. 심지어 "중국"에서... 여튼 덕중의 덕은 양덕이 아닌 중덕이란걸 보여준 나관중은 이렇게 모은 자료들을 토대로 소설을 쓰고 소설 제목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바로 우리가 삼국지연의라는 그 소설이다. 마치 원래는 연극영화과 전공이였고 관련하여 뮤지컬 명성황후를 보다 역사에 매료되어 한국사 강사가 된 설민석 선생님과 엇비슷하다. 자료를 취합하는 나관중의 정성과 열의는 실로 대단한건데, 지금같은 정보화시대에서 알기 쉽지 않은 자료나 정보가 많거늘, 그때는 위에서 말했듯 아무런 인프라도 시스템도 없고 심지어 삼국시대는 나관중이 살던 원말~명초때 당시 기준으로도 1,000년전 역사였으니 이에 대한 자료조사는 맨땅에 헤딩이였다. 그러나 소금집 잉여아들은 이 모든걸 해냈다....! 헌데 당시 그런 어렵고 힘든 과정을 통해 자료수집 하다보니 아무래도 칼같이 정확하고 공정한 기록들만 채집하는건 한계가 있었으며 별 말같잖은 소리나 뜬금없는 자료들도 많아 나관중은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게다가 시대상황 따라 인기인물도 바뀌고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인기따라 민담이나 에피소드들도 늘고 줄고가 생겼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관중은 삼국지를 기반한 판타지를 쓰려는게 아닌 정말 역사속 사실을 모티베이션한 모큐멘터리급의 작품을 추구했기에 최대한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끔, 설령 쏠림이 발생해도 티나지 않게끔 매끄럽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오늘날에도 한중일 삼국에는 아직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속 이야기가 모두 팩트라고 잘못 아는 이들이 상당수 있고 무엇이 픽션이고 어디부터 리얼인지를 분간하기 어려워 하는 수작이 나온 것! 이 또한 삼국지연의가 명작반열에 오르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게 아닌가 싶다. 쉽게 말해, 영화로 치면 나관중은 '운장포터와 도술사의 돌', 이런 판타지나 '삼국불패 -촉한웅사-' 같은 무협물이 아닌 '오호대장군 : 적벽워' 같은 허무맹랑한듯 리얼하게 그려낸 덕에 더 많은 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이 되었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를 살펴보면 나관중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일단 나관중은 지금 표현으로 치면 "마초스러움"을 선호했던거 같다. 서량의 그 마초말고 터프하고 와일드한 전형적 남성미의 그 마초이즘을 말한다. 그 이유는 일단 삼국시대는 물론, 나관중이 생존한 원나라 말 ~ 명나라 초에도 전투시에 그 전투지휘를 일임한 상장이나 총지휘관이 가장 선두에서 지휘하거나 심지어 적장과 1vs1 맞다이를 붙는건 확률이 0에 수렴했음에도 나관중은 그런 네임드간의 일기토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애초에 저런 방식의 전투가 없다시피했기에 당시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는 언뜻 생각도 못했을 개념인데 저리 도입한걸 보면 소설적 재미추구는 물론, "장수는 싸워야 장수!" 라는 그당시 기준의 마초이즘적 증거가 아닐지.... 또 한가지로, 삼국지연의내에서 장수들의 최후를 그린 부분들이 실제 역사와 다른 경우들이 꽤 있는데 대체로 병사하거나 혹은 죽음의 과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이들이 연의에서 장렬히 전장에서 간지뿜으며 전사하는 걸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질로 앓다 병사한 감녕, 역시 병을 앓다 결국 병상에서 숨 거뒀던 서황, 역시 고열로 인해 헛소리까지 했다는 학소, 역시 죽음 과정에 대한 별 기록이 없던 황충 등... 아참 태사자도 있구나 여러 장수들이 누워서 천장을 보다 저승을 갔음에도 나관중은 이들을 명예롭게 전장에서 요단강을 건넌 것으로 그려내줬다.ㅎ 나관중의 또 다른 취향은 "물량공세" 적벽대전 당시 조조군의 83만명. 관도대전 당시 원소군과 이릉대전 당시 촉-무릉만 연합군 70만명. 촉의 남만정벌 당시 50만명 등.... 지금의 중국으로야 가능해도 당시 빈번한 전란과 자연재해 및 극악의 치안상태와 기아 등으로 전 중국의 인구가 지금의 20분의 1수준에.. 제대로 된 인구통계도 못 내며 심지어 대규모 인원이 필요한 농경사회였던 당시로는 엄두도 못낼 규모의 대병력이 마주치는 이런 물량공세는 역시 나관중이 전쟁을 더욱 흥미롭게 표현키 위한 장치였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중국의 4대 기서" 라 불려지는 명작들이 있는데 나머지 세 작품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유교마인드 뿜뿜인 우리나라 정서상... 야설의 원조격인 금병매는 거의 매장 당하다보니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가 삼대장이 되었고 서유기가 주로 애니매이션이나 게임같은 어린이~청소년 대상 매체들에서 매만지다보니 성인들에게는 삼국지연의와 수호전이 양대산맥을 이룬다. 놀랍게도 이 중국4대 기서 중 삼국지연의의 나관중이 수호전도 집필했다...!!!! 수호전은 순전히 나관중이 창조했다기보다, 원나라 말기의 시내암(施耐庵)이라는 사람이 원작자에, 나관중이, 쉽게 말하자면 초본상태의 수호전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자면 시내암이 수호전이라는 그림을 대강 콘티만 그렸다면 나관중이 거기에 펜선을 그려 디테일을 추가하고 컬러링까지 했다고 하면 비슷한 표현?...ㅎ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단편이라도 소설이나 수필 등을 써본 분이 계시는지 모르겠다만... 아무리 적성이 맞고 본인이 원해 쓴다 할지라도 "글을 쓴다"는 작업은 보통의 인내와 센스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며, 더구나 실제역사를 기반해 철저한 자료조사 및 고증을 더한 작품은 요새도 쓰기가 버겁다. 게다가 요즘은 펜에 원고지로 원고작업 않고 대부분의 작가분들이 컴퓨터를 쓰지만.... 나관중은 명나라 사람이라, 벼루에 먹을 갈고.. 붓으로 먹물을 찍어 썼다. 학창시절 혹시 서예해 보신 분 계시는지?.. 먹을 가는거부터가 존니 진짜...하아..(난 그 먹냄새도 싫었어) 게다가 붓글씨는 정말 글씨쓰기가 거지같고 뭐 좀 쓸라치면 그새 붓의 먹물이 다해서 또 찍고.. 붓의 힘조절이 잘 안되면 글씨가 개판되며 오타가 나면 이건 수정이고 뭐고 처음부터 다시 써야된다.. 게다가 서예반 애들은 거의 대개 부모나 담임이 산만한 애들의 정서함양에 좋다고 시켜놓다보니 애새끼들이 전부 산만하다 -_-;;;;; (게다가 손에 묻은 먹물은 잘 씻기지도 않고 옷에 묻으면 그 옷은 그냥 버려야 된다는...) 여튼 그런 붓글씨로 쓴 소설! 심지어 그냥 소설도 아닌 중국의 4대 기서! 게다가 그중 둘이 Write By 나관중의 위엄은 말로 표현불가다. 위에서 언급했듯, 공부머리가 없었을 뿐 그는 천재고 서양의 세익스피어에 뒤지지 않는 동양최고의 문학가였다. 그런데 수호전을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세상과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이들이 많이 나오고 그러다보니 명나라에서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벼르고, 그의 가문은 나관중으로 인해 온집안이 화를 입을까 두려워 그를 가문에서 파문!!! 쉽게 말해서 호적을 파버렸고, 나관중 역시 자신의 신상 및 자기네 집안안위 위해 노년에는 인적 드문곳에 짱박혀 이승윤이나 윤택이 찾아가는 그런 자연인처럼 살다 조용히 죽었다..., 그의 업적대비 참 초라한 최후지만, 당시는 뭐.. 아무거나 트집 하나 잘못 잡히면 그냥 모가지가 날아가는 시대에, 잘못 얽히면 온집안이 풍비박산 나는것도 다반사던 시절이였고 또 천재들은 항상 시대를 앞서가다보니 오히려 살아생전에는 인정은 커녕 가난과 무관심 속에 불운한 삶을 살다간 이들도 부지기수다. 아마 나관중은 앞서 언급했듯, 당시 시스템과 인프라에 따른 자기작품의 빠른 대중화의 한계와 당시 사회적인 직업인식 등으로 인해 생전에는 대문호에 대한 존경같은거 없이 살았을거다. 그냥 간신히 밥이나 먹고 맨날 방구석 처박혀 글이나 쓰고 그러는 Nerd였을 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와 수호전이란 두 거작을 만들어낸 그의 근성과 집념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매사가 다 그렇다. 뭘 하건 성공을 위해 우리는 당장은 미진해도 꾸준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가 쌓여 결국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거라고 나관중의 삶이 말해준다. . . . 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심히 창대하리라. - 욥기 8장 7절 - (하지만 난 무신론자)
전생몽(前生夢)
전생몽 꿈에서 나는 뭐 하나 잘할것 없는 (셈은 빠른)그저 곱상하고 귀티나게 생긴 여자아이였고 내 소꿉친구는 살집은 좀 있지만 그것마저 내눈엔 측은하고 귀여운 춤과 노래를 타고난 퇴기(전직기생)의 넷째딸이었어. (겨우 두시간 잔거야?억울억울) 우린 성벽옆으로 개천이 흐르는 성근처에서 움막같은 불법가건물을 이어서 옹기종기 살아가는 도성안 하층민들이었는데 나나 친구나 아버지의 존재가 안느껴졌어.특히 내 친구의 아버지는 어딘가 부역을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한것 같았고 실내에 기둥이 너무 많은 우리집의 한쪽벽에는 아버지의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군관복장에 군모를 옆구리에 끼고 앉아서 찍은것이었어.황군?(구한말?1930년대?) 흑백사진이고 꿈속의 나는 무심하고 익숙한듯 그것이 벽에 걸린지도 모르는지 휙 지나쳤어. (소녀가 보는것,듣는것,겪는것들만 내가 간접경험할수가 있더라,이젠 꾸다꾸다 이런 패널티로 시작을 하네,속좀 탔어) 도성안 인텔리집안의 소년 (이제 겨우 많이 봐도 14-15쯤 된 검은교복차림)이 나(11살-12살쯤)를 찾아와 사진모델 일을 하면 친삼촌이 돈을 많이 챙겨준다고 했다며 잠깐만 기다리라더니 급히 가까운 초대궐같은 가옥엘 들어갔다오며 옷도 하얀스웨터에 진회색바지차림에 자전거를 끌고왔어. 꼬맹이들 난리났네.자전거클락션을 울려보고 패달돌리고 난리북새통인데 어떻게 급히 친구네 세째언니가(권번에 저학급로 출석하는듯한데 다리한쪽이 살짝불편해보였어) 엄마의 경대를 들고나와 급하게 우릴 낮도깨비로 분장시켜줬어.이 언니,우리가 어리다고 너무 막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친구도? 친구는 어디 활성영화같은걸 찍는데 목소리녹음을 뜨기로 했대. 박가분같은 허연분칠갑에 눈도 제대로 못뜨고 거울을 찾아 더듬거리는데 흰스웨트오빠(구한말맞나봐,남자이름도 우리이름도 요상한 일본이름,잘못알아듣겠더라)가 후욱 불어주는데 버섯포자처럼 날리는 분가루들이 판자집에 엉성한 벽들틈사이로 들이운 햇살에 깨(플로아트에서반짝이효과)친것처럼 반짝이는데 내 맘이 다 설레더라.(둘이 풋사랑모드인듯한데 모르는것 같았어) 내가 지금생의 12살, 이렇게 눈부시게 해맑게 웃었던가(이번생보다 바탕은 더 이쁘고 몸집이 작더라,못먹고 자랐나봐) 싶게 정말 예쁘게도 서로 눈맞추고 마주보며 웃더라.반달눈이야,둘다!이햐~ 살인미소가 무려 세트네.무슨 민폐야 그렇게 난 카메라앞에서 이런저런 옷(스튜디오뒤 탈의실,겁나 춥더만 어린것이 고분고분 착하게도 수십벌을 갈아입고,갑질을 모르네.착한건지 어린건지 분리되면 한수 가르쳐주고싶대.현생의 ㅊㅇ가 전생의 ㄹㅎㄲ에게...창시개명?한국사머리아포) 그렇게 스튜디오 촬영을 마치고 친구는 녹음을 마치고 돌아와 친구가 얻어온 꽃떡과 과자같은걸 동네친구,동생들이랑 나눠 먹고있는데 우리엄마(어라,진짜 엄마 닮안...근데 드쎄)가 와서는 내친구의 웃도리를 확 벗기더니 그 주머니에서 지전을 가로채고는 웃외투를 확던져버리곤 중얼거리며 가더라. "기생핏줄 아니랄까봐..." ('엄마!부모디스는 반칙이지!'우리엄마,전생에도 좀 못땠었구나!) 성벽을 끼고 인가쪽으로 내려가는 엄마의 뒤통수에다 "엄마,이모(친구엄마)한테 반 줘야돼!" 훽 돌아보며 "시끄럿!(내가) 그동안 못받은돈이 얼만데,내 이년(친구엄마)을 오늘 기름이라도 비틀어짜 받아내고 말지.어디 어린것들 내돌리며 돈은 돈대로 챙기고(우린 처음해본 일인데,그동안 이런일로 자식팔아 뒷구멍으로 챙기고 있었다고 생각한듯,우리는 처음 간거지만 합리적인 의심이긴 해)불쌍한척 행세하고 있었어,불쌍년!" "아니,그래도 ㅁㅇㄲ몫이 거기 반있으니까 엄마가 챙겨줘야돼,알았지?" (우리엄마 전생 걸크러쉬보소,우와!욕이 너무너무 찰져,이 판자촌에서 서열이 되시나보네,지리고!) 엄마가 친구에게 내던지고 간 웃외투를 줏어 걸쳐주며 "좁쌀살돈은 줄꺼야,ㅎㅎ 걱정마!" (시대적 가난인지,업인지... 그래서 우리엄마가 기승전돈돈돈이셨구나.) 빨래터 내려가는 돌계단옆 성벽에 앉아 해지며 제법 쌀쌀한 날씨에 친구랑 어깨동무를 하곤 마주보며 웃다 성밖을 내다보는데 내 눈은 자꾸만 친구의 외투로 곁눈질이 가. '이 촉감,이 재단,이 소재...너무 낯설어.' 이 느낌,아주 어렸을때 내가 어느집에 장식된 유리관안 기모노인형을 만져봤을때의 그 느낌과 흡사한데,얜(친구) 허리에 뭘 이리 둘렀네.그러고보니 좀전에 엄마도 게다를 신었네.우리 엄마는 비녀머리도 아니네.친구언니도 옷차림,언행이... 가재도구들도 많이 낯설어,집구조들도 그냥 판자촌느낌이 아니라 마루형에..여긴 어디야? 왜 움막같은 집안에 화로같은게 중앙에 있었지? 일애니에서 보던 ...설마...?! 놀라 깨버렸어. 생각도 못했어.개화기쯤으로 생각했는데,훌쩍! 놀라깨지말고 현생인연들과 겹치는 얼굴들도 조사해볼껄...아꿉! 엄마는 전생에도 우리 엄마야? 전생패널티 참! 전생엄마도 세상든든했겠어. 보고싶은 엄마♡
가족을 찾아 드립니다 #훈훈
무슨 좀비라도 돌아다니는 줄 알겠어여. 길에 사람이 왤케 없죠?! 그냥 잘 씻고 안씻은 손으론 얼굴 안 만지고 정상적인 생활 하면 - 엄청 가까운 사람이 확진자가 아닌 한은 - 안전하니까 너무 지구 멸망한 것 처럼 그르지마요.. 라고 말해도 다들 무서워하실거니까 훈훈한 이야기 같이 보려고 여요사요가 와ssup맨! 우선 얘부터 보실래여? 아니 인형이 셋이나 있넹? 오딨는지 못 찾겠어 아가야 +_+ 너무 기여운 아가는... 누군가의 개는 아니에여. 입양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랍니다. 이 아이도 마찬가지로 주인에게 버려진 아이. 너무 기엽져 +_+ 근데 어떻게 이르케 깨끗하고 예쁘고 사랑받는 표정을 지을 수가 있냐구여? 그건 바로... 미시시피에 있는 한 호텔의 프로그램 덕분이랍니다! 'Fostering Hope'이라고 불리는 이 프로그램은 미시시피 힐튼호텔 지사 중 한 곳의 로비에 입양을 기다리는 개들이 쉴 공간을 마련해 주고, 호텔의 투숙객들에게 이 개들을 위탁하게 하는 거예여. 이 호텔은 한 달 이상의 장기 투숙객이 대부분이라 가능한 일인거져. 원한다면 누구나, 호텔에 머무는 동안 이 개들을 자신이 묵는 방에 들여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여! 연간 8000여마리의 개를 수용할 수 있는 이 곳. 그래서 댕댕이들에게 새 가족을 찾아주기에는 안성맞춤이져. 외로운 강아지들 뿐만 아니라 외로운 사람들에게도, 가족이 필요한 줄도 몰랐던 사람들에게도 가족을 찾아 주는 곳 물론 위안에서 끝나는 건 아니구 이르케 사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아가들을 어떻게 두고 떠나겠어여. 지내는 동안 정이 한참 들어 버렸는데 +_+ 그래서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이 개들의 입양 절차를 밟아 준다구 해여! 실제로 벌써 34마리의 댕댕이들이 함께 머물던 사람들의 집으로 입양되어 갔다고... 물론 호텔에서 생각했을 때 적합한 주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입양을 거부할 수도 있대여. 너무 사랑스러운 서비스 아닌가여 +_+ 물론 여러모로 제대로 된 관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시도해 봄직한 일인 것 같아여. 가족을 찾는 댕댕이들에게 맞는 가족을 찾아주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잖아여. 여기가 어딘지 궁금한 분들은 Home2 Suites by Hilton Biloxi North/D'Iberville를 찾아 보시길! 그럼 훈훈한 소식 뿌리고 사요사요는 또 떠납니당 다들 미워하지말고 화내지말고 서로 돕고 사랑합시다..+_+
“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참 별것 아닌데…”
“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참 별것 아닌데…” 추억은 누군가에게 아름답고 아련할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반대인 ‘냉혹한 현실’일 수도 있다. 게임 쪽에 있어서는 오락실(게임장)이 그렇지 않나 싶다. 게이머에게는 어린 시절 하나의 추억이지만, 매장을 운영하는 사장에게는 참으로 뼈아픈 현실로 와 닿고 있다.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노량진 ‘정인게임장’ 얘기다. 5월 중순 무렵, 게이머들 사이에서 정인게임장이 5월 말을 마지막으로 폐업한다는 얘기가 돌았다. 요금이 100원에서 200원으로 ​오르고, 게임장에 근무하던 아르바이트가 모두 그만두면서 폐업은 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 29일, 정인게임장 오후 근무자라고 밝힌 이는 한 커뮤니티에 “루머는 들을 필요 없을 듯하다. 전달받은 사항은 아직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폐업의 소문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게임장이 오래전부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사실 여부를 떠나 씁쓸한 분위기는 여전히 남아있다. 정인게임장 소식을 접하며, 게임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기억(여기에는 정인게임장도 포함되어 있다), 또 PC방 성행으로 게임장 운영을 접어야 했던 기자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찾아가서 얘기를 듣고 싶었다. 다행히, 폐업은 아니다. 하지만, 얘기를 들어 보니 현실은 참으로 냉혹했다. 추억이라는 단어로 불리기 미안할 만큼. ※ 본인 요청으로 인해 점주 이름, 사진은 별도로 넣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 바랍니다.  #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31일 오전), 정인게임장 사장은 상도동 ‘숭실 게임랜드’로 가려 했다(참고로, 사장은 정인게임장, 숭실 게임랜드 2개를 운영하고 있다). 숭실 게임랜드가 오늘까지만 영업하고 폐업 하기 때문. 기계 등 큰 물건은 차차 빼더라도, 몇 개 물건을 미리 가지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사장은 정인게임장을 운영한 지 벌써 16~7년 됐다고 말했다. 함께 숭실 게임랜드로 자리를 옮기며, 조심스럽게 최근 돌던 폐업 얘기를 꺼냈다. 사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정인게임장도 폐업하려고 했다. 원래 계획은. 그런데, 가게가 안 나간다. 워낙 나가지 않다 보니 폐업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그는 부딪히는 현실에 마음이 참으로 ​씁쓸하다고 밝혔다. 100원짜리 영업을 해서는 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기계값은 터무니없이 계속 오르지만, 게이머에게 받을 수 있는 요금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임대료나 기타 물가가 계속 오르니 따라가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게임장 쪽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정말. 아마 거의 다 매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토로했다. 게임장에 게임을 하러 오는 게이머가 거의 없다는 점도 밝혔다. 환경이 바뀌면서, 모바일게임을 하거나 PC방을 가는 게이머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임장을 잘 모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세대도 생겨나고. 여러모로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사장은 정인게임장이 한때 ​‘격투게임의 성지’로 불린 점에 대해 “그것 때문에 더욱 망가진 것 같다”고 쓴웃음과 함께 말했다. 솔직한 심정이란다. 그렇게 불러주는 것을 철저히 무시했더라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면서. 그는 게임장을 정리했다면 2년 전 부터 인형뽑기방을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화곡동에 있던 인형 수입업체가 와서 “지금 운영하는 두 게임장을 모두 폐업하고 같이 인형뽑기방을 만들자”, “만약 하지 않을 거면 매장 일부에 인형뽑기 기계를 놓자”는 권유를 여러 번 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어려웠던 만큼, 사장도 많이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익도 더 많이 낼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놈의 사명감 때문에, 정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거, 참 별것 아닌데 말이다. 망해도 ‘망했네’ 소리만 들을 텐데 말이다.”라면서. 정인게임장 사장은 보름 전까지만 해도 정인게임장이 정리되면 폐업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밝혔다. 이제는 ‘오락실’의 ‘오’ 자도 듣기 싫단다. 어떻게 보면, 당시 루머로 돌았던 폐업 설은 사실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사장은 정인게임장과 숭실 게임랜드 두 군데를 모두 내놨다. 그 중 숭실 게임랜드는 건물 주인과 사정을 얘기해서 계약기간이 1년 남았지만 오늘까지만 영업하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오늘은, 숭실 게임랜드의 ‘마지막 영업일’이다. 뜻하지 않게 접한 아쉬운 소식이다. # 예전과 다르게, 시대도 바뀌다 보니 기계를 처분하려고 해도 소위 ‘껌값’도 안된다. 그렇다고 누가 맡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유통이 되지 않으니 당연한 얘기다. 그래서 일부 게임장 점주들은 기계가 아깝기도 해서 창고를 얻어 일단 쌓아 놓는다고 말했다. 창고 비용이 계속 들지만. 계륵인 셈이다.​ 숭실 게임랜드로 이동하며, 숭실 게임랜드에 대한 얘기를 더 들었다. 그 곳은 정인게임장과 다르게 아케이드 게임이 특화된 곳이다. 한 때 잘 됐지만, 점점 오르는 아케이드 게임기의 기기값을 부담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니셜 D ver.2>와 <이니셜 D ver.3>가 나왔을 때 1,500만 원, 1,800만 원을 주고 들여놨다. 하지만 실제 수익은 터무니없이 낮았다고 밝혔다. 어떻게든 기기값을 메꾸려 했지만 이내 다음 버전이 나온다. <이니셜 D ver.4>는 2,500만 원을 주고 들여놨다. 실제 자동차에 준하거나 보다 비싼 가격. 어쩔 수 없이 들여놨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결국​ 6개월만에 700만 원이라는 헐값에 처분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기기를 들여놓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 가게에 없고 옆집 가게에 새로운 기기가 있으면 게이머가 움직이고, 1~2개월이 지나면 다른 기기에도 여파가 온다. 그러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껴 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암담한, 현실의 반복’이라며. 숭실 게임랜드에 도착하자마자 몇 명의 청년이 <펌프 잇 업> 기기를 분리해서 가져갔다. 사장과 아르바이트가 옮기는 것을 도와주고 청소 및 물품을 정리했다. 며칠 전부터 직원들이 올린 기기 판매 글을 보고 사려고 온 거란다. 판매액은 몇십만 원 수준. 새 기계가 대략 1,300만 원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일종의 처분인 셈이다. 두 곳의 현재 ​벌이 수준에 대해, 사장은 "비슷하지만 숭실 게임랜드는 더 안 좋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학가 주변이어서 잘 될 것 같지만 언덕에다가 숭실대학교 정문 위치가 전철역 쪽으로 바뀌면서 상권은 매우 안좋아졌다고 밝혔다. 평일 오전에 잠깐, 저녁에도 잠깐. 오후 8시쯤 되면 거의 오지도 않는다. 주말은 평일보다 상황이 더욱 좋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2일 뒤면 대학교 방학. 학생들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상황 속에 내린 폐업 결정. 이제,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숭실 게임랜드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 자리를 옮겨, 다시 정인게임장으로 이동했다. 게임장에 붙은 자판기 커피를 대접해줬다. 매장 앞에서 마시며 마무리 대화를 이어갔다. 정인게임장 사장은 정인게임장에서 노래방을 뺀 자리에 숭실게임장의 아케이드 기기를 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번 해보는 거다. 그래도 결과가 같으면 두 손 두 발 다 드는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인게임장을 계속 하고 싶지만, 현실이 본인 마음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야심 차게 들여놨던 철권 기계도 적자다. 16대 기기를 대당 1,500만 원을 주고 들여놨다. 이후 버전 업그레이드 때문에 대당 450만 원을 추가로 들였다. 합해서 약 3억 1,200만 원이 들었다. 그는 철권 PC버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운영 됐는데, PC버전이 나오면서 상황이 매우 안좋아졌다고 말했다. 게다가 PC버전에 비해 아케이드 버전은 업데이트를 잘 해주지 않아 불만이라고 말했다. 한 때 코인노래방이 정인게임장에 ​적지 않은 수익을 가져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노래방이 점차 코인노래방으로 바뀌면서 게임장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결국, 얼마 전 철거 결정을 내렸다. 정인게임장에 있던 코인노래방은 점주가 직접 철거했지만, 숭실 게임랜드의 코인노래방은 몇백만 원을 들여 철거했다.  두 게임장의 코인노래방 29대 모든 구성품을 처분해도 500만 원 남짓 받아, 정인게임장의 코인노래방을 철거한 폐기물 비용 내고 나면 얼마 남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16~7년 전, 그는 약 5억 5천만 원의 비용을 들여 정인게임장을 시작했다. 막대한 비용에 주변 사람들이 많이 놀랐단다. 그는 그때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회의감은 커진 듯 했다. “다른 것을 했다면 훨씬 나았을 것 같다. 우연히 하게 됐지만, 뭐 하는 짓이었는지. ​뭐가 씌었는지 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숭실 게임랜드 기기 배치, 정인게임장에서 준비할 것이 여럿 있어 사장과는 인사를 나눴다. 그는 잘 가라며, 또 놀러 오라고 기자에게 말했다. 사장과 나눴던 대화 중, 그가 했던 말이 맴돈다.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지만, 별수 있나. 흐름 대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