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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8. 우리는 계약 연애 중 (1

“차 서방 왜 갑자기 저러는 건지 넌 몰라?!”


수정의 부친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수정을 몰아세웠다. 수정은 계단을 내려오며 무표정한 얼굴로 부친을 바라봤다.


“사내 마음 하나 그렇게 못 붙들어 매는 것이냐?! 못난 것!”


수정은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잔뜩 신경이 곤두 서 있었는데 아버지까지 퇴근 후 자신을 조아대니….

“아버지…갑자기 그게 무슨.”



모르쇠로 일관하려 했다. 그런데



“차 서방, 오늘 자기 아버지 회사에서 무릎을 꿇고 있더라.”

“…네?”

“결혼, 무효로 해달라고.”

“…….”

“내가 대체 어디까지 창피를 당해야 하는 것이야!”



수정의 부친은 호통을 쳤다. 수정은 아무 말도 않은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때 수정의 어머니가 안방을 나서며 불편한 기색을 역력하게 내비치며 수정의 앞에 섰다.


“마음에도 없어하는 그 결혼. 꼭 하려하는 이유가 뭐니?”

“…….”

“대체 넌 자존심도 없니? 그쪽이야 회사 문제 때문에 우리랑 합치려는 것이 당연지사라지만.”

“…….”

“우리 쪽은? 아쉬울 것 하나 없는 혼처다. 너가 차 서방한테 푹 빠져서 결혼 얘기도 먼저 꺼낸 것이고, 우리도 너 좋은 대로 맞춰주려 지금까지 아무말 않고 너 하자는대로 했다지만.”

“…….”

“대체 그 자식, 무례함을 언제까지 봐주고 있어야 하니? 응?!”

“할 거예요, 결혼. 그러니 기다려주세요.”

“수정아!”


수정은 한껏 풀이 죽은 채로 뒤돌아섰다. 수정의 어머니는 그런 수정을 붙잡았다.


“너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뭐야. 그 자식, 여자 생긴 것 아냐?!”

“맞아요.”

“뭐?”

“오빠, 여자 생겼어요.”

“뭐?! 양수정!”

“그런데 나 못 놔요. 돌아올 거예요.”


하고 수정이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자 이번엔 수정의 부친이 싸늘한 목소리로 수정의 발목을 잡았다.


“너, 그거.”

“…….”

“진정으로 사랑해서 그러는 거냐.”

“…….”

“아님…오기냐.”


* * *


“이러지 마세요. 일어나요.”


도헌이 어마어마한 힘으로 로라를 붙잡고 뒤에 세워 놓고 있어 기태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로라였지만, 곧 로라는 도헌에게서 한 걸음 나와 무릎을 꿇은 기태를 싸늘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이만하면 됐습니다.”

“…로라씨.”

“원망, 애초부터 안했어요.”

“…….”

“당신은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었고.”

“…….”

“그런 당신을 놓지 못하겠다, 여자 친구분 있는 거 알면서도 나. 모른 척 당신 쥐고 있었습니다.”

“…….”

“사과라면 오히려 내 쪽에서 먼저 해야겠죠. 그날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만하자 했어야 했던걸. 괜히 차 선생님 못 놓겠다, 호기 한 번 부렸더랬죠.”

“…….”

“나 마음 약한 사람이에요. 잔정도 많구요.”

“…….”

“그런 제가.”

“…….”

“선생님께 이별을 고하고 그렇게 모질게 돌아섰을 땐.”

“…….”

“그만한 이유였고, 그래야 했고, 또…그렇게 하겠다 마음 먹은 거예요.”


로라는 무릎을 꿇고 있는 기태 앞에 성큼 다가갔다. 그리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기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세요.”



기태는 붉은 눈시울로 로라를 올려다보았다. 어쩐지 평온한 얼굴의 로라였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로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태는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런다고 흔들려서 선생님 다시 볼 거였음.”

“…….”

“나 애초부터 선생님, 용서했을 겁니다.”

“…….”

“내 마음이 이젠 그러지 못하다는 게.”

“…….”

“그 모든 걸 포용하고, 다시 선생님과 잘 지내보려는 마음이 가져지지 않는다는 게.”

“…….”

“그게 이유예요. 우리, 이별하는 이유”


도헌은 그런 로라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직 몸도 다 낫지 않았을 텐데 다시금 기태를 이렇게 마주하고서 좋지도 않은 그 얘길 또 한 번 반복한다는 것이 힘에 부칠 로라였다. 도헌은 그런 로라가 걱정이 되었다.

기태는 강경한 로라의 태도에 할 말을 잃은 듯, 가만히 로라가 내민 손을 바라보고 있더니 이내 로라의 손을 잡았다. 곧 기태는 로라가 내민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도헌은 로라의 어깨를 감쌌다. 로라는 더는 아무말 않고 돌아섰다. 기태 역시 그런 로라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다, 이내 결심한 듯 로라를 향해 소리쳤다.


“모든 걸 포용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

“제 잘못, 인정하고 굽히고 들어가는 겁니다.”

“…….”

“다시 잘해보잔 말도 아니었습니다.”

“…….”

“혼자 잘해보겠습니다. 로라씨랑.”

“…….”

“그러니…밀어만…내진 말아 주십시오.”

“…….”

“아프게 해서…미안합니다. 이러는 것도 로라씨를 아프게 하는 것일 테니.”

“…….”

“앞으로도…미안할겁니다.”


하고 기태가 먼저 돌아섰다. 로라는 돌아서는 기태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도헌 역시 로라의 어깨를 감싼 채, 기태를 응시했다.


“참.”

“…….”

“안 그렇게 생겨선, 미련한 새끼네.”


그때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고 로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지진나는 중?”

“뭐?”


말없이 엘리베이터의 닫힌 문만 빤히 응시하는 로라를 향해 도헌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그 말을 내뱉었다. 그리곤 어깨를 감싼 손을 조심스레 놓곤 주머니에 푹 찔러 넣었다.


“마음.”

“…….”

“무진장 흔들리는 중이냐고.”

“…흔들리겠니?”

“…….”

“저까짓 무릎 하나에? 나 오로라야, 구도발.”

“…….”

“제 아무리 강도 9의 강진을 일으킨다 해도. 아닌 건, 확실히 아닌 거야. 우유부단한 건 딱. 질색이거든.”


하는 말에 도헌은 피식 웃었다. 딱, 질색이라 말하는 로라의 야무진 표정에 도헌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웠다. 여전히…사랑스러웠다.

도헌은 자신도 모르게 로라를 바라보며 미소 짓다, 로라의 머리칼을 부비부비 쓰다듬어 주려 손을 뻗었다 이내 멈칫하였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로라는 성큼성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뭐해? 안 내리고?”


로라는 현관문 앞에 서서는 여전히 엘리베이터 올라있는 도헌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헌은 멍한 표정으로 로라를 바라보곤 이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난 근데…지금 오호라랑…계약…연애 중인데. 왜…자꾸, 심장이 뛰냐.’


* * *


“허니문촬영?!”


로라는 마스크팩을 붙이고선 도헌에게 사진 몇 장을 건넸다. TV 앞에서 리모컨을 쥐고 발을 까딱까딱 하며 앉아있던 도헌은 ‘허니문촬영’이란 로라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뭘 놀래고 그러냐? 촬영인데.”

“…딴 사람 구해. 뭘 나랑 허니문촬영이래.”

“사람 구하기 힘들어. 그리고 너, 얼굴은 그저 그런데 키크고 다리 길어서 사진빨은 잘 받을 것 같다 말야.”

“이봐. 얼굴은 왜 그저 그런데?!”

“그저 그러니까, 그저 그렇지.”

“…부탁하는 입장 아닙니까 오호라씨? 허-배짱 좋네.”


하고서 도헌은 피식 웃으며 쇼파에 벌러덩 누웠다. 그러자 로라는 그런 도헌을 흘겨보며 도헌에게 바짝 다가갔다. 여전히 마스크 팩을 떡-하니 붙인 채로.


“아 허니문 컨셉으로 촬영해서 SNS올려야 한단 말야. 언니들이 저번부터 계속 그 컨셉 원한다고 문의 준단 말야.”

“오로준이랑 해.”

“아 오로준은 다리가 짧잖아!”

“그래도 얼굴은 봐줄만 하잖아?”

“아 얼굴은 어차피 자를 거야. 몸뚱아리만 나오면 돼. 엉?! 해주라, 어?!”

“아 싫어. 귀찮게 하지 마요.”

“아, 해달라고. 구도발. 응? 응?”

“아! 참! 귀찮게 하네. 나와요, 나와.”


하며 도헌이 성가시다는 듯 자꾸만 자신에게 달라붙는 로라를 한 손으로 휙휙, 떨어뜨려 냈다. 그러다 로라가 팔딱팔딱 뛰다 카펫을 잘못 밟고 휙 미끄러져 도헌의 가슴팍에 얼굴을 퍽 박고 말았다.


“…윽.”

“아!”



순식간의 가슴 통증에 도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고 동시에 고개를 들던 로라와 그만 입술이 부딪히고 말았다!


“…뭐, 뭐야.”

“실! 실수예요! 사, 사고!”


로라는 자신의 입술에 닿은 도헌의 따스하고 촉촉한 입술 감촉에 화들짝 놀라며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고, 도헌 역시 자신의 입술을 손으로 감싼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곤 사고라고 소리쳤다.

도헌의 가슴 팍 위에 로라의 마스크 팩이 덩그러니 붙어 있었고 둘은 서로만 멀뚱멀뚱 바라본 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현관문이 띠리리-, 열리고 로준이 들어섰다.


“뭐…냐?”


로라는 뒤로 나자빠진 채로, 도헌은 쇼파에 어정쩡하게 앉은 자세로 서로만 응시한 채 귀신이라도 본 사람들처럼 사색이 되어 있었다. 로준은 신발을 벗으며 거실로 들어서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하냐 둘이? 얼음 땡 놀이 하냐?”

“…오, 오로준. 왔, 왔냐?! 너 이 자식! 왜, 왜 이렇게 늦게 와!”


괜히 오버하며 로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이어 도헌 역시 불이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쇼파에서 일어나 오로준에게 달려갔다.


“너! 너 술, 술 먹었냐?! 어?! 술 먹었지?!”

“아 왜 이래, 떨어져.”


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도헌을 응시했고, 곧 도헌의 가슴팍에 붙은 로라의 마스크 팩을 수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팔짱을 꼈다.


“너…뭐냐 이거?”

“…어, 어?!”

“이거…오로라…마스크 팩 아냐?!”


로준은 눈을 게슴츠레 뜨곤 당황하는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러자 도헌과 로라는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손 사레를 치며 소리쳤다.


“아냐! 그런 거 아냐!”

“아니야! 오해하지마! 아니다!”


그러자 로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도헌을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이젠 하다하다, 가슴에다 팩을 하냐? 가슴 팍 빛나서 뭐하려고요.”

“…어?”

“옷 위에다가 왜 하냐? 하려거든 옷 안에다가 하지.”

“앗, 차가!”


하고 로준은 별다른 의심 없이 도헌의 가슴팍에 붙은 마스크 팩을 떼어 도헌의 옷 속에 쑥 집어넣었다.

* * *
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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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늼 화이팅!!!
우왕~~ 재미지다~~~
심장이 콩딱콩딱~~ 오호라 구도발 응원해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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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는 외롭지만, 둘은 괴로운 사람들
혼자는 외롭지만, 둘은 괴로운 사람들 누군가와의 관계가 힘들고 버거워 차라리 아무와도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열 일 제쳐두고 무인도에 가서 한 세월 살아보고픈 충동이 생길 때가 있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그럴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강은호, 김종철, 나는 아직도 사람이 어렵다 中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은 무슨 목적으로 만들어졌을까요?" 캉디드가 물었다 "우리를 화나게 하려고요" 마르틴이 대답했다 /볼테르,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죽고 싶다 말하지만 정말로 죽고 싶지는 않고, 살고 싶다 말하지만 정말로 살았던 적 없고, 죽고 싶은데 누가 자꾸 살려놓는 거니 살고 싶은데 왜 목을 조르는 거야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 아니,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거 맞잖아 /김박은경, 오늘의 일기 솔직하게 인정하자 현실은 언제나 당신이 기대하는 것보다 엉망이고 당신의 생은 여전히 고달프고 나아질 기미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도 그럭저럭 이 지난 한 생을 견뎌내고, 살아내는 까닭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식 하나쯤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최갑수, 잘 지내나요 내 인생 새벽에 누가 나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인생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나쁜 꿈에서 깨어나면 또 한 겹 나쁜 꿈이 기다리던 시절 /한강, 거울 저편의 겨울2 우리는 시시각각 이별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시시각각 자신과도 이별하며 살아간다 /박경리, 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서 울 수밖에 없을 때가 있다 /신철규, 눈물의 중력 나는 친절해진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슬프게 할까봐 조금 조심스러워졌을 뿐이다 /은희경, 그것은 꿈이었을까 우는 것은 마음을 청소하는 일이다 봄날이 가는 것이 못 견디겠는 날이 있는가 하면 기다림의 힘으로 살아봐야지 하는 날도 있더라 /박연준, 소란 우리는 아플 때 더 분명하게 존재하는 경향이 있다 /이현승, 빗방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텍스트 출처ㅣ쭉빵, 별 하나 없다고 절망하지 마 이미지 ㅣ 영화 <봄날은 간다>,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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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공원의 운동장에서 걷고 뛰기를 반복하다가 들어왔다. 운동장이 꽤 커 보이는데, 적혀있기로는 한 바퀴가 612m라고 한다. 한 바퀴를 걷고 한 바퀴를 뛰는 식으로 여덟 번을 돌았다. 2.4km 정도를 뛴 셈이다. 운동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래도 석 달을 러닝머신에 의지해 뛰다 보니 체력이 많이 늘었다. 내일은 피티 30회가 되는 날이다. 마지막인 셈이다. 아마 조금 더 연장할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는 코치님과 운동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올해는 무조건 운동 습관을 들여야 한다. 올해의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다. 내년에는 내년 몫의 계획들이 있어서. 걷고 뛰면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방송을 들었는데, 최근 오스카에서 대상을 받은 영화 <노매드랜드>에 대한 소개였다. 노마드의 삶을 다큐 형식으로 푼 영화인 것 같은데, 어쩌면 나는 물리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정신적으로는 노마드의 삶을 추구하고 있는 자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은 자. 그러나 그것은 자유를 갈망해서가 아니라, 늘 지금 이곳을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지나가 버릴 것을 알기에 먼저 떠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둬야 할까. 나는 어디로든 가야 하므로 내게 부지런히 연료를 넣고 있는 거다. 내일도 쉼 없이 걷고 뛰어야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시간을.
제목미정
1.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길을 걷는다. 가로등이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불빛 마저 희미해지는 곳을 걷고 있다. 지금 몇시쯤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시계를 들여다 보니 아날로그 싸구려 가죽시계가 깨져 있다. 대학 입학을 축하한다고 아버지께서 사주신 낡은 가죽 시계였다. 이제는 단종이 되서 건전지를 갈아끼우는일 조차 쉽지 않은데 시계 유리가 깨져 있다. ‘ 시계유리만 교체해주는 곳이 있었던가?’ 결국 정확하게 몇시인지는 확인하지 못한 채로 길을 걷는다. 와본 기억이 없는 곳인데도 이상하게 낯이 익다. 창문에 붙여진 찢어진 창호지, 철로 된 대문위에 붙여진 껌 씹고 나서 붙이는 스티커까지... 어디서 보았던가? 여름이 다가왔는데도 아직은 밤공기가 차가워 대충 걸치고 왔던 자켓을 여미어 본다. 길을 걷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다. 그래. 분명 그녀밖에 없었다. 분명 아까 시계를 보려고 손을 올리기 전까지는 저 여자는 없었다. 분명히 없었는데... 흐릿하게 보이는 가로등 밑에 누군가가 서있다. 아까는 확인하지 못했던 사람이 길 끝에 서 있다.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좀 더 앞으로 다가갔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는데도 그 사람의 얼굴은 확인하기 어렵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얼굴을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얼굴이 없는 것 같았다.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그 자리에 서있던 사람은 여자였다.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았는데 슬픈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처연했다. 가까이 다가가 손을 뻗었다. 누구인지 몰라도 확인해야한다. 머리가 지끈거려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때 문득 생각이 났다. 매일 온 것 같았던 이곳은 매일 밤 그녀를 괴롭히던 꿈속이었다는 것을. 지금 꿈속에서 괴롭히는 이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또 다시 손을 뻗는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기필고. ‘ 너 대체 누구니? ’ 짜증섞인 말투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는 순간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 언니.... ” 땀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서 꿈에서 깨어났다. 침대 옆 시계를 확인해보니 매일 그렇 듯 시간은 새벽 4시 26분이었다. 마른 세수를 하며 얼굴을 감싸쥐었다. 술을 깨지 못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하고 머리가 아파왔다. 시계 옆에 놓여진 두통약 한 개와 물을 삼키고 나서야 비로소 현실임을 깨달았다. 벌써 일주일째 반복되는 꿈을 꾸고 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고 어떤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려고 가까이 다가가면 자꾸 꿈에서 깬다. 이상하게 그여자는 지현과 스친 적이 있는것처럼 낯이 익었고 막상 생각을 해보면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자리를 정리했다. “ 다시 자기는 틀렸네 ” 언제나처럼 자켓 하나를 두르고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한개와 라이터를 챙기고 베란다에 놓여진 의자에 앉았다. 무신하게 불을 붙이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처음 서울로 올라 왔을 때 유일한 낭만이라며 구매했던 작은 테이블과 의자는 맥주 한잔 대신 수북히 쌓인 담배와 재떨이가 놓여져 있었다. 아직 차가운 새벽 공기에 불을 부치며 쓰게 뱉는 담배연기가 하얗게 번진다. 그 때 손이 시려워 넣은 왼손에 무엇인가 잡혔다. 어제 충전해야지 하면서 챙기지 못했던 핸드폰이었다. “ 아,,, 충전해야 했는데 배터리가 남았던가 ? ” 눈을 찌푸리며 켜본 핸드폰 액정에는 배터리 12% 절전모드 화면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빨갛게 표시된 알림표시. 부재중 3통, 메시지 1통 막상 이런 부재중 연락이 요즘 들어 무서울법도 한데 일단 확인해 보았다.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부재중 1통 고딩친구 김수연 모두 고등학교 동창 수연의 번호였다. 혹시나 하고 확인 한 메시지에도 역시 그녀의 번호가 찍혀져 있었다. 지현아 일어나면 전화좀 줘 - 낯선 그녀의 연락은 당황스러웠다. 지난번 억지로 끌려간 고등학교 동창모임때 번호를 교환했었지만, 지현과 수연은 친한편이 아니였다. 물론 사회에 나와서도 연락하는 사이는 더욱 아니였다. 다만 으레 그렇듯 어색하기 짝이 없는 그 공간의 훈훈한 분위기를 채워보고자 멋쩍게 교환한 번호였다. 동창회 이후로 잘 들어갔냐는 흔한 안부인사도 없었던 사이에 갑자기 전화라니. 더군다나 일어나면 전화를 달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잘못보냈나 생각하는 의심조차 들수 없게 했다. 낯선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Chapter 56. 좋게 말할 때, 헤어져 주라.
“아 뭔 그런 이상한 요구를.” “……?”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하게 한데?” “아 해줘! 해줘! 해줘야만 해. 나 정말 더는 못 만나겠어.” “…차 씨?” “아까 그 여자 막 우는데 나 왜 눈물 나냐? 나도 엄연히 피해자잖아! 씨-!” “피해자라….” “내 남자친구인 척 해줘. 차 씨 앞에서만. 그래야 순순히 헤어져 줄 것 같아.” 로라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야속했다. 자신도 위로받아야 마땅할 처지였다. 그런데, 세컨드 주제에 퍼스트를 걱정해주고 있다니. “피해자지만.” “……?” “뺑소니지?” “뭐…?” “꽝! 하고 사고를 냈음.” “…….” “자수를 해야지.” “…….” “누난 방금. 모른 척, 휙- 달려버린 거잖아.” “…야!” 도헌은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헌의 말에 로라는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 멍한 표정으로 도헌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는데. “뭐해?” “어, 어?” “밥 먹으러 가야죠, 자기.” 자기, 자기! 자기란 말에 로라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기? 너 방금 자기랬지? 어?!” “그래. 자기요.” “예쓰! 너 내 자기 해주기로 했다? 난중에 딴 말 하면 안 돼! 알았지?!” 로라는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다 이내 와락, 도헌을 끌어안았다. 도헌은 화들짝 놀라며 로라를 밀어 냈는데, 다시금 로라는 도헌을 세게 끌어안았다. “어허! 내외하나 자기!” “이거 왜이래요! 스킨십은 불가거든요?!” “야! 이게 뭔 스킨십이야!” “대신! 딱, 차 씨랑 헤어질 때 까지만 입니다! 알았어요?!” “당근이다! 더 연애 하자고 매달려도 내가 싫어, 임마.” * * * 둘은 모처럼 고기 집에서 포식을 하고 배를 두드리며 병원으로 향했다. “나 근데 퇴원해도 될 것 같지 않냐?” “그러니까. 애초부터 나일론 환자였어.” “그래도 그 날은 엄-청 아팠다니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둘은, 병원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내일, 퇴원해도 되겠다고 선생님께 말씀 드려야 겠다.” “열은 이제 안나요?” 하고 자연스럽게 도헌이 로라의 이마에 손을 짚었는데,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로라씨.” “아.” 기태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도헌과 로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다정해 보이는 둘. 로라는 입술을 질끈 깨물곤 자신의 이마를 짚고 있는 도헌의 손목을 쥐었다. “선생님.” “…기다리다 안 와서 이제 가려던 참이었는데.” 기태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곤 도헌을 올려다보았다. 도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기태를 바라보곤 이내 싸늘하게 시선을 거두었다. 곧, 자신의 옆에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기태를 올려다보고 있는 로라를 응시했다. “할 말 있다 하지 않았어요?” “어? 아…어.” “먼저 올라가 있을게요.” 하고서 도헌은 로라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곤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기태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자신의 옆에 성큼 다가와 선 도헌을 아니꼽다는 듯, 바라보았다. “안 내립니까?” “…….” “그럼 닫힘, 버튼 누르고.” 하고서 도헌이 닫힘 버튼을 누르기 위해 검지를 뻗자, “내가 대체 어디까지.” “…….” “당신의 건방을 받아주어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잡혀서 그러는데.” “…….” “당신이 페이스를 조절할래요. 아님…나한테 그 적정선을 말 해줄래요.” 기태는 싸늘하게 도헌을 바라보았다. 도헌 역시 기태의 말에 차갑게 기태를 바라보곤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페이스도, 적정선도. 다 성가 시는 듯한데.” “…….” “내리기나 하시죠. 난 지금 그쪽이 엘리베이터에서 안 내리는 것부터가 성가시니까.” 도헌과 기태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로라는 그런 기태를 빤히 보고 있다, 나지막이 기태를 불렀다. “선생님.” “…….” “드릴 말씀이…있습니다.” 기태는 고개를 돌려 로라를 바라보았다. 다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자신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하는 로라를 바라만 보았지만, 기태는 이미 그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자신도 모르게 쓴 웃음을 지으며 기태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씀…” “…….” “안 드려도, 난 이미 받은 것 같은데.” * * * “죄송해요. 그만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로라는 그 말을 내뱉으며 기태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이유, 물어봐도 될까요.” 의외로 덤덤한 목소리의 기태였다. 때문에 로라는 오히려 당황하며 기태를 올려다보았다. 알고 있었다는 듯, 기태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더 이상 선생님을 만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만나지 못할 것 같다에, 저 구도헌씨가 연관되어 있는 겁니까.” 그 말을 내뱉는 기태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로라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계약 아닌, 계약 비스무리한 가짜 연애를 도헌에게 제의한 것 역시 기태와 헤어지기 위해서였다. 로라는 마음을 굳게 먹고 기태를 올려다보았다. “예.” “…두 사람 연애라도 하는 겁니까?” “아직은 시작 안 했습니다. 곧 하려구요.” “…….” “선생님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만나려고 합니다. 양다리는 아니니, 노여워 마시구요.” 그 말에 뼈가 담긴 듯하였다. 기태는 한 쪽 눈썹을 찡그렸다, 폈다. ‘양다리’ 굳이 그 단어를 선택하여야 했을까. 기태는 입술을 깨물었다. 원래 똑똑하고, 자신의 주장이 뚜렷한 그녀였으니 다부진 목소리로 헤어짐을 고하는 이번 역시, 그녀의 진심일 것이고 바람일 것이었다. 기태는 가만히 로라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대답도 않고, 자신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기태의 시선이 부담스러, 로라는 흠, 흠 헛기침을 하며 그의 대답을 재촉하였다. “양다리는 아니다.” “…….” “그렇다면 지금은 제가 로라씨의 남자 친구겠네요.” 어쩐지 그 말을 하는 기태의 어투가 많이 삐뚤어져 있는 듯하였다. ‘기분 탓이겠지…?’ 하며 기태를 빤히 올려다보았는데, ‘핏.’ 핏? 갑자기 그가 피식, 웃어 버린다. 웃어 버린다?! “저기…” “그럼 내가 못 헤어지겠다 하면.” “……?” “로라씨도 구도헌씨와 만나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양다리는 아니라고 했으니.” “이봐요, 차 선생님. 그게 무슨.” “로라씨에겐 이유가 생겼을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이유가 없습니다. 로라씨를 놓쳐야 할.” ‘아니 이 자식이…퍼스트까지 있는 주제에 뭐? 이유가 없어?!’ 당장이고 네 놈의 실체를 까발리고 싶지만!, 로라는 한 템포 참으며 침을 꼴깍 삼킨다. “놓치고, 안 놓치고 가 아니라요.” “…….” “헤어지자고 저는 지금 이별을 통보하고 있어요. 선생님께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우리의 관계를 대화로 풀고자 함이 아니라요.” “…네, 그래요. 나 역시도 통보하고 있는 겁니다.” “……?” “못 헤어지겠다구요.” 이 무슨 기가 막힌 상황인가! 로라는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끼며 기태를 세차게 올려다보았다. “헤어지자구요. 헤어져 주세요. 쫌.” 이별도 구걸해야 한다니. 로라는 자신의 사랑이 참으로 눈물겹다,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이였기에 이별만큼은 정중하게 하고 싶었다. 똥차가고 벤츠 왔다, 한 때는 너무도 행복했고 미래를 그리며 설레어 했던 사랑이었기에 이별만큼은 추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쪽의 양다리도, 나의 세컨드 신분도 모두 접어두고 사랑했고 좋았던 그 기억만 묻은 채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런데, “나에겐 그럴 이유가 없어서요. 그럼.” 그 말을 내뱉고 휙, 돌아서는 기태. 끝까지 로라를 자극하는 그 ‘놈’이었다. 그때, 우지끈-, 로라의 이성의 끈이 부서져 버렸다. “이봐.” “……?” “좋게 말할 때 깔끔하게 끝냈음 좋잖아.” “…….” “왜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로라는 악을 쓰며 기태에게 달려들었다. 기태는 무표정한 얼굴로 뒤를 돌아 로라를 바라보았는데, 로라는 야무지게 주먹을 쥐곤 있는 힘껏 그의 배를 내려쳤다. “윽!” 기태는 배를 쥐곤 털썩, 주저앉았다. “세컨드로도 모자라, 셋 째, 넷 째, 줄줄이 소시지처럼 몇 명을 더 달아놔야!” “……?” “그 때 놔 줄거냐? 니 퍼스트처럼?” “무슨…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겁니까, 지금?!” 기태는 벙찐 표정으로 로라를 올려다보았고, 로라는 기가 찬다는 듯 한껏 쳇! 하고 콧방귀를 뀌어주곤 있는 힘껏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 놈 양다리의 실체를 내가 말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 * * 그어느연재사이트보다 빙글러분들이더편하고 가까운듯한느낌은,,,멀까효*^^* 장마시작인데ㅠ건강조심합시닷!
[책추천]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책
안녕하세요! 책과 더 가까워지는 곳 플라이북입니다. 오늘은 부모님께 사랑과 감사를 전하는 어버이날인데요. 어버이날을 맞이해 일상에서 우리가 가끔은 잊고 지내는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5권을 소개합니다. 5권의 책과 함께 따뜻한 가족의 온기를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01 늘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말을 전하고 싶을 때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었던 엄마에게 보내는 고백 엄마에게 안부를 묻는 밤 박애희 지음 | 걷는나무 펴냄 📚책 자세히보기>undefined 02 언제나 멀게만 느껴지던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을 때 사랑하기에 멀어져야만 했던 우리들의 이야기 거울 같은 당신께 겨울 같던 우리가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펴냄 📚책 자세히보기>undefined 03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너무 당연해서 소중함을 잊고사는 것들을 돌아보게 하는 책 일생일대의 거래 프레드릭베크만 지음 | 다산책방 펴냄 📚책 자세히보기>undefined 04 부모님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해질 때 읽으면 좋은 우리가 몰랐던 두 분의 반짝이던 순간을 담은 책 나의 아름다운 연인들 달 출판사 지음 | 달 펴냄 📚책 자세히보기>undefined 05 우리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낙원 연립 박씨네 가족의 웃픈 인생 이야기 울랄라 가족 김상하 지음 | 창해 펴냄 📚책 자세히보기>undefined 지금 플라북에서 추천받기>
신화 속의 신비한 존재들 I
* 골렘 (Golem) 흙으로 만든, 움직이는 인형. 골렘. 폭정을 일삼던 왕 때문에 괴로워하던 유태인들이 수호신으로서 진흙으로 인형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신성한 의식을 치루고, 진흙을 반죽해 인형을 만든 다음, 생명의 주문을 외우고, 어떤 문자를 쓴 양피지를 입술에 붙이면 인형이 살아움직인다고 합니다. 혼이 없고 말도 못하지만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명령을 따른다고 해요. 또 집 밖에 나가선 안된다거나 낮에만 움직이라는 등의 제약을 걸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골렘의 폭주가 시작되지요. 입술에 붙인 양피지를 떼어내면 골렘은 움직임을 멈추고 휴식을 취한다고도 해요. 생명의 창조. 신을 따라한 행동이기 때문에 골렘에 대한 이야기 대부분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최초의 골렘이 신이 만들어낸 아담이라는 말도 있답니다. * 살라만드라 (Salamander) 샐러맨더 혹은 화사(火蛇)로 번역되는 살라만드라는 불 속에 사는 작은 용을 말합니다. 불 속에 살면서 불을 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신비한 생물이지요. 처음 살라만드라에 대해 알려진 것은 12세기 중반 아비시니아의 프레스터 존 왕이 비잔틴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였는데요. 이렇게 쓰여있었답니다. "우리들의 왕국에는 '살라만드라'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살라만드라는 불 속에서 살며 누에고치를 만드는데, 왕궁의 귀부인들은 이것으로 실을 자아서 천을 짜거나 옷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 이 실을 깨끗이 빨기 위해서는 불 속에 던져야 한다." 반면, 살라만드라는 엄청난 독성을 가진 걸로도 유명합니다. 살라만드라가 한번 휘감은 나무의 열매는 모조리 독이 오르고, 우물 물에 빠지면 그 물 속에 독이 번지므로 그 과일이나 물을 먹고 마신 사람은 모두 죽는다고 하네요. 중세시대 사람들은 도롱뇽을 살라만드라라고 믿어서 그 가죽으로 방화복까지 만들었다고 해요. * 그렘린 (Gremlin) 그렘린은 고블린의 일종인데요, 높은 산에 살며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합니다. 그렘린은 기계에 관심이 많고 좋아해서 비행기 기관부에 몰래 숨어 들어간다고 해요. 해박한 지식으로 인간에게 발명 힌트를 주었지만 자신들의 협력을 인정하지 않았던 인간들에게 화가 나서 장난을 치기 시작합니다. 그때부터 말썽꾸러기 이미지가 생겨났지요. 엔지니어들은 비행기 등의 기계가 고장난 것을 '그렘린 효과(GE)'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처음 이 효과를 확인한 사람들은 19세기 말, 영국의 프렘린이라는 양조장 기술자들이었고요, 도깨비를 뜻하는 '고블린'과 '프렘린'이라는 이름이 합쳐져 그렘린이 되었다고 해요. * 가고일 (Gagoille) 머리는 새, 몸은 인간, 날개를 달고 있는 몬스터, 가고일입니다. 가고일이라는 말은 고대 프랑스어로 '목'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신화 속의 가고일은 저승세계에 살면서 빗물을 모으는 풍요의 괴물이며, 보다 높은 지위의 영을 지키는 존재라고 해요. 가고일의 형상은 간혹 교회 지붕에서도 볼 수 있는데요, 믿음 없이 사원을 찾아오는 자들을 잡아먹는다는 위협과 동시에, 악령을 쫓아내는 부적의 역할도 한답니다. * 메두사 (Medusa) 얼굴만 마주쳐도 돌로 굳어버린다는 무시무시한 마녀 메두사.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메두사의 특징은 온통 뱀의 모양을 한 머리카락인데요. 사실 메두사는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미소녀였다고 해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아테나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다 아테나 여신에게 걸려 무서운 괴물로 변하게 된 메두사는 훗날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리게 되기도 합니다. 고르곤 세 자매 중 유일하게 불사의 능력이 없던 메두사는 이때 죽게 됩니다. 그녀의 피가 바다에 뿌려지고 그걸 가엽게 여긴 포세이돈은 그 피와 바다의 물거품으로 하늘을 나는 생명을 만들었고, 그게 바로 천마 페가수스입니다. 연휴 즐겁게 보내고 계신가요? 혹시 심심하시다면 스낵북에 들러주세요, 재미있는 소설들이 많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