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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술분석]브라질을 무너트린 벨기에의 '3백 -4백' 변형전술


ㅡ1 벨기에는 8강에 올라오기 전, 일본과의 16강전에서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 '벨기에의 문제점'은 아자르, 루카쿠, 메르텐스, 데브라이너, 카라스코로 이어지는 막강한 공격진을 '모두 사용'하려는 욕심에 '공수밸런스'가 무너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벨기에는 이번 월드컵에서 '공격적인 3백'을 사용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최전방에 아자르, 루카쿠, 메르텐스로 이어지는 '3톱'을 세우고, '좌우 윙백'을 높게 올려서 공격숫자를 최대한 늘렸는데요. 심지어 왼쪽 윙백에는 본 포지션이 측면 공격수인 '카라스코'를 기용했고, 여기에 중앙 미드필더에는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데브라이너'를 투입했습니다. 공격적인 선수들을 대거 투입한, 아주 공격적인 선수기용이었습니다.

(벨기에는 공격적으로 선수를 기용하면서 공격적인 3백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선수배치가 공격에 극단적으로 쏠려있기 때문에 '공수밸런스'가 무너지는 것도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먼저 '중원'에서는 데브라이너가 높게 올라가면서 중원에 비첼 혼자 남는 상황이 발생했고, '측면'에서는 윙백들이 높에 올라가다보니 측면 공간이 넓게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16강전에서 벨기에의 실점장면을 보면, 벨기에의 중원측면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 공수밸런스가 무너진 벨기에

- 첫 번째 실점

이 장면은 벨기에의 첫 번째 실점장면인데요. 공격상황에서 벨기에는 좌우 윙백인 카라스코와 뫼니에가 높게 전진해있습니다. 따라서 일본의 역습이 전개될 때, 벨기에의 좌우 측면 공간이 넓게 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실점
두 번째 실점장면 또한 일본의 역습상황에서 나왔는데요. 데브라이너가 공격에 가담한 순간, 일본의 역습이 진행됩니다. 그리고 일본이 공격작업을 진행할 때, 데브라이너가 수비에 복귀하지 못 하면서 중원에 비첼 혼자 남게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데브라이너는 수비로 복귀한 이후에도, 수비에 거의 가담하지 않아 비첼이 홀로 두 명의 일본 공격수를 상대해야 했습니다. 결국 일본은 압박을 거의 받지 않는 상태에서 슈팅을 시도했고, 득점까지 만들어지는 모습인데요.

이처럼 벨기에는 16강전에서 공수밸런스가 완벽하게 무너지면서 중원측면이 계속해서 무너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ㅡ2 그러나 벨기에는 일본전과 달리, 브라질전에서는 무너졌던 공수밸런스를 완벽하게 보완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공격수인카라스코메르텐스 대신 미드필더인'샤들리''펠라이니'를 투입하면서 중원을 강화하고,'4백'을 사용한 것이 주요했는데요.

(브라질전에서 4백으로 전술변화를 시도한 벨기에)


먼저 '중원'에서는 데브라이너를 전방으로 올려서 데브라이너의 공격성 때문에 발생하는 수비적인 단점을 최소화했고, 기본적으로 '미드필더 숫자' 자체를 3명으로 늘려서 중원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한편, 측면에서는 '4백'을 사용하면서 좌우에 풀백을 배치해 측면 공간을 최소화했는데요.

마치 433 혹은 4312 와 같은 포메이션으로 일본전에 나타났던 '중원''측면'의 허점을 보완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벨기에의 수비장면을 보면 이러한 특징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수비상황에서 4백을 사용한 벨기에

(수비상황에서 4백을 사용한 벨기에)

(4백을 사용하면서, 벨기에는 측면과 중앙 공간의 수비적인 허점을 보완했습니다)


전방에는 공격을 책임지는 3명의 선수가 서 있고, 후방에 3명의 미드필더와 4명의 수비수가 수비전형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포메이션 변화를 통해 16강전에서 드러났던 중앙과 측면 공간에 대한 수비적인 허점을 보완한 것인데요.

이처럼 벨기에가 수비적인 허점을 보완하면서, 브라질의 공격이 벨기에의 수비를 돌파하는 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ㅡ3 이러한 벨기에의 전술변화가 더욱 놀라웠던 건, 수비적인 허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기존에 보여줬던 '공격적인 전술'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벨기에는 수비상황에서 '4백'을 사용하지만, 공격상황이 되면 이전 경기에서 계속 사용했던 '공격적인 3백'으로 돌아옵니다. 여기서 '샤들리''뫼니에'의 움직임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샤들리'는 수비상황에서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위치하지만, 공격상황이 되면 재빠르게 측면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반대편 측면에 위치한 '뫼니에' 또한 공격상황으로 변하는 순간 측면으로 빠르게 전진했습니다.

(벨기에는 공격상황에서 3백으로 변화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샤들리뫼니에가 측면으로 재빨리 움직여주면서, 벨기에는 공격상황에서 자연스럽게 '3백'으로 변환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벨기에는 공격상황에서 전방에 5명이라는 공격숫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됩니다. 공격상황이 되면 월드컵 내내 보여줬던 '공격적인 3백'으로 돌아가는 것인데요.

(벨기에의 패스맵)


8강전 벨기에의 패스맵을 보면, 좌우 측면에 샤들리와 뫼니에가 위치하고 벨기에는 3백을 형성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벨기에의 공격전형

벨기에의 공격상황을 보면, 샤들리와 뫼니에가 좌우 측면에 위치하고, 벨기에는 3백을 형성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이것이 벨기에의 기본적인 공격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기중 샤들리뫼니에의 움직임을 보면 3백과 4백을 혼용하는 벨기에의 특징이 더욱 명확하게 나타나는데요.


-샤들리와 뫼니에의 움직임

-샤들리의 움직임

먼저샤들리의 움직임을 보면,수비상황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벨기에가 볼을 차단해 공격으로 전환하는 순간, 샤들리가 측면으로 빠르게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공격상황에서 벨기에의 볼이 끊기면, 샤들리는 측면에서 중앙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이처럼 수비상황에서는 중앙 미드필더, 공격상황에서는 측면 미드필더로 움직이는 샤들리의 움직임이 경기 내내 나타났습니다.


-뫼니에의 움직임
한편 뫼니에의 움직임을 보면, 벨기에가 공격으로 전환하는 순간 전방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합니다. 측면 지역으로 높게 올라가 공격에 도움을 주는 것인데요.

이처럼 중앙과 측면을 오가는 샤들리, 그리고 측면을 아래위로 열심이 뛰어다니는 뫼니에 덕분에 벨기에는 공격적인 3백 전형이 가능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건, 벨기에가 3백과 4백을 오가는 움직임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3백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벨기에
두 번째 골 장면을 보면, 벨기에가 코너킥 상황에서 역습을 전개하는데요.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뫼니에와 샤들리가 빠르게 측면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벨기에의 역습이 최전방까지 도달했을 때, 벨기에는 좌우에 샤들리와 뫼니에, 중앙에 아자르, 루카쿠, 데브라이너가 위치하는 공격전형을 만든 모습입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벨기에 공격진의 동선이 인상적이었는데요.


ㅡ4 그리고 벨기에의 공격적인 전형이 지난 일본전과 달랐던 또 다른 점은'데브라이너'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사용하고, 후방에'비첼''펠라이니'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브라질전 벨기에 중원에서는 비첼과 펠라이니가 데브라이너를 보좌했습니다)


중원에 '비첼''펠라이니'가 있기 때문에 상대가 역습으로 나올 때 중원이 허술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었고, '데브라이너'는 수비부담을 덜고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데브라이너가 수비부담없이 전방과 후방을 오가면서 공수를 이어주는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는데요.




-수비부담을 덜고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한 데브라이너

데브라이너가 수비부담을 덜고 수비상황에서 높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공격상황이 되면 전방에서 볼을 받아 아자르와 루카쿠에게 볼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데브라이너가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면서, 벨기에의 공격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ㅡ5 이처럼 벨기에는 16강전에서 보여줬던 부진한 경기력을 8강전에서는 전술적으로 완벽하게 보완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특히 4백과 3백을 훌륭하게 사용하면서 '공수밸런스'를 유지했는데요.

'4백'을 사용해 수비적인 허점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공격상황에서는 '3백'으로 변화하는 모습으로 공격적인 모습까지 보여줬습니다.

그 결과 브라질에게 승리하면서 벨기에가 4강전에 진출하게 되었는데요. 대회 중반에 전술변화에 성공한 벨기에가 남은 경기에서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이 남은 월드컵 일정에서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아닐까 합니다.



ㅡㅡ
영상분석 :https://goo.gl/w6P5KY
11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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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기자들도 이렇게 못쓰는 사람들 많습니다ㅋㅋㅋㅋㅋ joshuajr>>>>>>>>>>>>기자임ㅋㅋㅋㅋ
브라질 전에는 약간의 운도 맞물려있다고 봅니다. 카세미루의 부재와 페르난지뉴의 실책. 페르난지뉴는 리우월드컵 때도 패착의 원인이었기에, 자살골을 넣은 후 위축된 모습을 많이 보였죠. 한 골을 먹혔으니 브라질은 수비라인을 끌어올릴 수 밖에 없었고, KDB에게 중거리 슛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벨기에가 브라질에 압승했다기 보다는 약간의 운도 작용한 신승이라고 보여집니다. 중원싸움에서도 파이터기질의 나잉골란의 부재가 보여졌구요. 브라질보다 상대적으로 높이와 피지컬에서 우위인 프랑스 상대로 어떤 결과를 낼지 궁금합니다. 프랑스도 벨기에와 같은 쓰리백이니까요.
운도 실력이니까요 ㅋㅋ 브라질도 사실 4강, 우승권을 바라보고 있다면 빠른 시간안에 벨기에 수비라인을 뚫을 수 있었어야 하는데 시종일관 애무만하다 겨우겨우 넣은 상황이라.. 생각보다 브라질 공격이 전 약했다고 봐요. 더글라스 코스타를 더 빨리 썼어야..
이분 기자 이신듯
기자는 아니지만!! 칭찬 감사합니다!
최소 기자급 레알 ㅇㅇ
ㅋㅋㅋㅋ과찬이십니다:)
볼때마다 감탄이나오는 분석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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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이런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이 카우보이들에게 유래된 것이 "로데오" 다.  로데오란 "길들이지 않아 날뛰는 야생마나 들소를 타고 버티는 마장마술" 이다.  이 로데오로 파생된 죽음의 스포츠(?) 대회가 있다. 바로 "황소 타기 대회"다.  영어로는 BULL RIDING이라고도 하며  메인스트림은 아니지만 전세계에 퍼져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이다.    경기 규칙은 간단하다. 황소 가슴 부위에 매어진 1.58cm 굵기의 밧줄을 한 손으로만 잡고  8초동안 떨어지지 않는 것을 4명의 심사원이 점수를 매기는 것으로,  선수와 황소에게 각각 50점씩을 만점으로 합산하여 평가하는데,  심사위원원들 각자가 각각 25점씩을 만점으로 합산후 2로 나누어 공식 점수로 발표한다.  이때 황소의 경우 경기장내 속도, 힘은 물론  공중에서의 발차기, 방향 전환, 몸 비틀기 등 다양한 동작을 할수록 점수가 높다. 보이는 대로 저 거친 황소 위에서 8초동안 버텨야 한다.  죽음의 8초라고 불려진 이유다. (American bull riding has been called "the most dangerous eight seconds in sports.") 8초로 정해진 이유는 황소 보호 차원이라고 한다.  (8초이상 진행시 황소에 무리가 온다고 함) 죽음의 8초라고 불리는 이유는 다음 짤들을 보자  8초동안에 황소 위에서 버티는게 쉽지 않고 날라가기 일수다.  그 과정에서 기수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황소들이 떨어진 기수들을 상대로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황소 뿔을 잘라놈) 실제로 2021년 대회에선 황소에게 짓밟혀 라이더가 사망했다.  (2013,2015년도 우승자 Mauney) 황소타기 경기에서 8초간 떨어지지 않고 버틴 성공률은  1995년에는 46%였으나 2012년에는 26%로 떨어졌는데,  이후 황소 개량을 통해 2018년도에는 29%까지 올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역대 최고 상금은 2013년과 2015년에 세계 챔피온을 차지한 선수가 받은 7백만불(77억원)이다. (2013,2015년도 우승자 Mauney) 이 대회는 CBS 방송국을 통해 생중계될 정도로  상당한 팬덤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동물학대이슈로 동물애호단체에 타겟이 된다고 한다. 펨코펌 + 'As such a critical part of the sport, bulls are treated with as much care as any other elite athlete, with strict guidelines and regulations put in place to ensure their wellbeing, and dedicated stock contractors making sure their lives are as healthy and comfortable as possible.' 동물 복지 잘 해준다고 함 ㅇㅇ 암튼 난 시작과 동시에 떨어져서 곤죽될듯
어린시절 가난했던 손흥민 일화.txt
< 손흥민 에세이 일부 발췌 > 우리집은 가난했다. 내가 갓난아이였을 때는 컨테이너에 산 적도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세 가지 돈벌이를 하시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다. 학원은 꿈도 꾸지 못했고, 또래 아이들에게는 일상적이었을 게임이나 여행, 놀거리들을 나는 별로 해 본 기억이 없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께서 나를 데리고 다녀야 한다며 소형 중고차 한 대를 구해오셨다. 120만원을 주셨다고 했다. 비가 오면 창문 틈으로 빗물이 줄줄 샜지만 그래도 자가용이 생겼다며 우리 가족은 좋아했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 차가웠다. 주위에서 아버지가 '똥차'를 몰고 다닌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17세 함부르크 유소년 시절 > 독일 유소년 구단 시절은 참 힘들게 버텼다. 한국 식당에 갈 돈이 없어서 허기를 꾹꾹 참았다. 유럽에서 뛴다는 판타지의 실사판은 늘 배고픈 일상이었다. 구단 전용 숙소에서 지내야했는데 나처럼 없는 형편에는 감사했으나, 숙소의 식사가 한국인 청소년에게는 너무 부실했다. 시내 한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기엔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불가능했다.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싶어 인터넷으로 음식 사진을 검색해 구경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걱정하실까 봐 그런 얘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한국일을 정리하고 있는 돈 없는 돈 전부 끌어모아 독일까지 날아오셔서 숙소 근처의 가장 싼 호텔을 거처로 삼으셨다. 그때까지 유소년 신분이었던 나는 보수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1군 선수가 되고, 분데스리가에서 골을 넣고, 함부르크 팬들을 열광시킬 때도 나와 아버지는 어렵게 지냈다. 가족과 함께 지낼 집도 없었고, 아버지는 자동차가 없어서 매일 호텔과 클럽하우스, 훈련장 사이를 몇 시간씩 걸어다니셨다. 훈련이 시작되면 갈 곳이 없어 혼자 밖에서 몇 시간씩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셨다. 비를 피할 곳도 없었다. 내가 함부르크 1군에서 막 데뷔했을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내 실제 생활은 정말 차이가 컸다. 함부르크에서 골을 넣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2011 아시안컵에 출전하고,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며 한국 언론으로부터 칭찬이 쏟아질때도 나와 우리 가족은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숙소에서 사감 선생님의 눈을 피해 밥솥을 벽장 안에, 밑반찬을 책상 아래 숨기며 생활했다. '라이징 스타' 아들을 둔 아버지는 매일 몇시간씩 추위를 뚫고 먼 거리를 걸어다녔고, 어머니는 한국에서 매일 마음졸이며 기도만 하셨다. TV뉴스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신성 손흥민의 일상은 대중의 짐작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2019년의 손흥민은 그럴듯해 보이는 사람이에요. 프리미어 리그의 인기 팀에서 뛰는 프로 축구선수죠.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에서 뛰어봤어요. 남들이 보기에 이런 제 모습이 화려해 보일지 몰라요. 하지만 그것은 지금 이 순간의 겉모습입니다. 힘들었던 과거와 뒤에서 이루어지는 노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죠. 지금까지 어려웠던 날이 훨씬 많았어요. 좌절하고 눈물을 흘린 순간도 많았고요. 사실 지금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살고 있어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죠. 제 인생에서 공짜로 얻은 건 하나도 없었어요. 드리블, 슈팅, 컨디션유지, 부상방지 전부 죽어라 노력해서 얻은 결과물이라고 믿어요. 어제 값을 치른 대가를 오늘 받고, 내일 받을 대가를 위해서 오늘 먼저 값을 치릅니다. 후불은 없죠. 저는 지금 자제하고 훈련하면서 꿈을 향해 달리고 있어요. + 어려운 시절을 겪어봐서 그런지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선수가 되고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좋은 환경에서 축구할 수 있도록 아카데미 설립했다고 함. 사실 대안학교까지 생각했는데 절차가 까다로워서 못했다고 손아카데미 현재 상황 = 아카데미에서 키운 애들 독일로 3명 보냈고 올해,내년에도 유럽 진출할 계획 "현재 아카데미 출신 3명이 독일에 가있고, 올해와 내년에도 출국 예정인 아이들이 있어 외국어가 가장 시급하다. 몇몇 학부모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외부강사를 초청해 외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아카데미에서는 협소하나마 공간을 지원해 축구에 전념할 수 있는 부분을 충족시켜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사실 대안학교도 생각해봤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그게 너무 하고 싶었는데, 조건이 너무 까다롭고 힘들었다. 우리가 부족해 하지 못했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출처 : 더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