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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는 관계에 마음을 쏟는 이유
유월에 좋아하는 친구 두 명이 회사를 떠났다. 2년간 함께 일했던 ㅎ은 오랜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고, 6개월간 내 앞자리에서 반짝이던 ㅇ는 계약이 만료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예정된 이별이었지만, 나는 사람에 큰 의미를 두는 인간이므로 당분간 빈자리를 볼 때마다 적적해할 계획이다. 때마침 장마도 시작됐으니 바야흐로 센티멘털해지기 좋은 계절이다. 상황과 계절 핑계를 앞세웠지만, 실은 매 순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일정량 이상 껴안고 지낸다. 본격적으로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때는 아마도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넘어가던 겨울이 아니었나 싶다. 수능 끝난 수험생이었던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 있는 동산을 산책 삼아 오르내리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주로 미지의 영역인 대학 생활에 대한 상상이었다. “대학 가면 진짜 친구 사귀기가 어렵대. 거의 다 겉 친구래.”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가 오래간다더라” 같은 소리를 하며 이상한 의리를 쌓았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막상 고등학교를 벗어나 만난 관계에서 생긴 말썽은 예상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친구를 사귀는 일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운 좋게도 내가 속한 집단마다 성별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친구가 되는 자유로운 문화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놀랄 만큼 쉽고 깊게 새 친구들을 좋아하게 됐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관계의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 급하게 가까워진 친구는 여름날의 반찬처럼 쉽게 상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이십 대 초반에는 일상의 중심이 자주 바뀌는 법이니까. 일정표를 채운 단어가 ‘동아리’에서 ‘아르바이트’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서로를 소울 메이트라고 불렀던 친구와 별일 없이 멀어졌을 때. 봉사 활동을 하며 한 달 동안 동고동락했던 이들이 하나둘 인사도 없이 메신저 단체방을 나갔을 때. 나는 놀이터에 홀로 남은 아이처럼 처량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때 손에 꼭 쥐고 있었던 주인 없는 마음은 미처 식지 못해 아직 따뜻한 상태였는데….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는 매사에 계산적으로 굴고 싶어졌다.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 연연하는 촌스러운 애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상처받지 않을 것인가’하고 머리를 굴리는 일이 늘었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지내기도 했다. 누군가 좋아진다 싶으면 혼자 지레 겁을 먹고 뾰족한 말로 선을 그었다. 그렇게 애를 써도 역시나 마음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좋아하는 사람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수학 문제 푸는 것처럼 매번 어려웠다. 어쩌다 한 번 정답을 맞춘 뒤에도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에서는 또 헤매야 했다. 그 방황을 끝내준 사람은 뜻밖에도 스물셋 겨울 함께 토익 공부를 하던 언니 오빠들이었다. 보통 토익 스터디에서 만난 이들과는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마련인데, 그때 만난 사람들과는 예외적으로 합이 좋았다. 수업 전후 짧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다정한 기운이 깃들어서, 머리로는 ‘어차피 곧 다시 못 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그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던 날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은 육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언제라도 다시 만날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어쩐지 야속해서 내내 꽁해 있었다. 그리고 비뚤어진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어차피 오늘 지나면 만나지도 않을 거잖아요.” 흥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뱉은 말이었으나, 과연 좋은 사람이었던 언니 오빠들은 어른스럽게 나를 달랬다. “꼭 자주 봐야만 인연인가? 길 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연이지!”그건 찰나의 대화였지만 이제껏 관계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상처받았던 느린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온기였다. 아,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 것이구나. 그동안 오늘 손에 쥔 관계까지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가난했던 거구나.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관계는 그날로 끝났다. 대신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의 술자리는 기억 속에 잠겨 있다가, 내가 관계에 회의감을 느낄 때면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리고 다정했던 언니 오빠들처럼 내가 너무 인색해지지 않게 다독여준다. ‘지속되지 않아도 설령 끝이 나쁘더라도 한때 좋았던 관계를 깎아내리진 말자.’ 다시 유월에 했던 두 사람과의 이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분명 매일 사무실에서 얼굴을 부딪칠 때보다는 멀어질 것이다. 곧 무언가 일상의 가운데를 차지할 테고 지나간 이는 자리를 내주어야겠지. 그래도 우리가 주고받은 다정한 쪽지나 사진 같은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괜찮다. 마음을 쏟길 잘했다.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주문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출처
[르포]"음식에 이 정도 열정 없다면 외식업 창업 마세요"
[자,영업시작] 오직 ‘맛’ 하나로 골목상권 평정한 수제버거 가게 사장님의 하루 훔쳐보기 대한민국 자영업자 550만 시대. 매일 3,000개의 가게가 대박을 꿈꾸며 개업하고 2,000개의 가게가 발버둥 끝에 문을 닫는다. 잔혹한 ‘大자영업시대’의 막이 오른 지 오래지만 자영업에 대한 현실적인 정보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자, 영업시작]은 기자가 자영업자의 하루를 함께하며 보고 들은 ‘살아 숨쉬는’ 창업 이야기를 다룬다. 경험자의 일상보다 값진 조언은 없는 법이니. 업종: 음식점업/미국식 수제 햄버거 사장님 프로필: #전직 직업군인 #버거 경력 7년 #3년차 자영업자 #불리한 상가 입지를 극복하고 성업 중 관찰 소요시간: 17시간(05:00~22:00) 한줄평: ‘이 세상의 모든 사장님들, 존경합니다.’ ►새벽 5시, 너와 내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실감나는 새벽 5시. 어둠 가득한 송파대로를 지나 가락시장에 들어서니 낮과 밤이 바뀐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지게차와 트럭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오늘의 주인공. 서울 소재의 한 여대 앞에서 3년째 수제버거 가게 ‘버거인’을 운영하고 있는 정성근(만 35세) 사장이다.  “이 시간에 오지 않으면 사람이 너무 많고 차도 막혀서요.” ‘이렇게 일찍 장 볼 필요가 있나’ 갸웃하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정 사장이 가게에서 일하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 남들보다 긴 하루를 보내는 자영업자들에게 꽉 막힌 도로에 시간을 흘려보낼 여유는 없다. 도매시장은 이들을 위해 24시간 불을 훤히 밝힌다. 이날 사야 할 품목은 로메인 상추, 토마토 그리고 계란. 유통업자를 통해 가게로 배달시키는 편한 방법도 있지만 시장에서 직접 사는 게 가장 저렴하단다. 정 사장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주일에 한 번씩 새벽장을 보는 이유다. “어? 저번보다 가격이 싸네요.”  전화로 미리 주문해 둔 상추를 카트에 싣던 정 씨가 환한 표정으로 상인에게 말을 건넸다. 그는 장사를 시작하고 햄버거 재료를 공수하는 거래처를 세 번이나 바꿨다고 했다. 머릿속에 물음표가 떴다. 정기적 거래를 통한 두터운 인간관계와 신뢰야말로 상도(商道)의 핵심 아니던가. “(시장 상인들이) 처음에는 손님을 잡으려고 좋은 가격에 물건을 주거든요. 그러다 슬금슬금 가격을 올려요. 어느 순간부터 바가지를 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거래한 지 2~3개월 정도 지나면 다른 가게를 돌아보면서 가격을 확인해보는 게 좋아요. 시세에 별 관심이 없다는 인상을 풍기는 순간 소위 ‘호구’되기 십상이더라고요.”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카트가 계란 코너 앞에서 멈칫했다. 이어지는 정 사장의 당혹스러운 표정.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여기가 제일 싼 곳이거든요.” 지난 겨울 내내 외식업자들을 힘들게 했던 계란 가격이 또 말썽이다. 이날 계란 값은 대란 한 판에 6,850원. 결국 그는 동네 마트에 가봐야겠다며 발길을 돌렸다. ►목이 좋지 않아도 맛만 있으면 손님은 찾아온다 해가 서서히 떠올라 빌딩 끝자락에 걸린 아침 8시. 정 사장이 향한 곳은 서울 용산구의 한 주택가였다. 그를 따라 작은 골목에 들어서며 눈을 비볐다. 대체 이 곳 어디에 햄버거 가게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기예요. 저도 처음엔 제 가게를 못 찾은 적도 있어요.(웃음)” 정 사장의 손 끝이 작고 하얀 동그라미를 가리켰다. 그제서야 햄버거 그림이 그려진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가게 문을 열자 음식점 대신 나타난 것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었다. ‘주택가’, ‘이면도로’, ‘지하’. 피해야 할 음식점 입지의 완벽한 삼박자. ‘이거 장사가 되긴 하려나’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자금이 넉넉지 않았어요. 여기는 이면도로에 지하라 월세가 많이 싸거든요. 목이 안 좋아도 맛만 있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는 생각에 이 곳을 택했죠.” 사장님의 본격적인 하루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열 다섯 평 남짓한 식당을 청소하는 것. 물걸레질까지 쓱싹쓱싹 끝내고 나면 그날 팔 햄버거의 재료를 준비한다. 토마토와 채소를 썰고 햄버거의 핵심인 패티도 직접 만든다. 아침에 만든 패티는 당일에 모두 소진하는 것이 정 사장의 원칙. 손님이 많아 패티가 일찍 떨어진다면? 그날 영업은 그걸로 끝이다. “7년 동안 장교 생활을 하다 전역하고 수제버거집에서 3년 넘게 일했어요. 한국에 진출한 미국 브랜드였는데 거기서 패티 만드는 법을 배웠죠. 한국 사람 입맛에 맞는 레시피를 건의하고 다른 버거집에 대한 보고서도 만들면서 참 열심히 했거든요. 그런 게 쌓이다 보니 제 자산이 됐고 지금은 저만의 레시피로 패티를 만들고 있어요.” 소고기를 갈아 뭉치고 눌러 소금과 후추를 뿌리는 작업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금의 패티를 만들기 위해 정 사장은 피나는 연구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소고기의 안심, 갈비살, 부채살 등 여러 부위를 써 보고 지방 비율도 조금씩 바꿔가며 레시피를 발전시켰어요. 일 하면서 서울에 있는 거의 모든 수제버거 집을 다 다녔고요. 맛있는 곳이 있으면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쓰레기통을 몰래 뒤졌죠. 어떤 재료를 썼는지 보려고요.(웃음)” ►자, 영업 시작 오전 11시 반. 점심 장사를 도울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도착했다. 영업 시작을 알리는 간판에 불이 들어오기 무섭게 손님이 들어찼다. 가게를 들어올 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도 가게는 금세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잘 달궈진 철판에 패티와 베이컨, 계란이 치이익 소리를 내며 올라가고, 버터를 바른 번(햄버거 빵)도 노릇노릇 익어갔다. 햄버거를 완성해가는 정 사장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진다.  “지금 주문하시면 2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2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가득 차고 어느새 가게 문 앞은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햄버거를 포장해 가기 위해 20분을 기다리겠다는 손님도 있었다. 주방이 바빠질수록 기자의 눈도 팽글팽글 돌았다.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없는데도 혼이 나갈 지경이다. 만약 저 자리에 있었다면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가게를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의 사장님은 신기하게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는다. “제가 정신줄을 잡지 않으면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영향을 받아요. 주문이 너무 몰려 알바생들에게 공황이 온 것 같다 싶을 땐 절대 채근해선 안 돼요. 일단 일을 다 멈추게 하고 차근차근 정리를 도와주죠. 손님들에게 음식이 조금 늦게 나가더라도 모든 일을 망치는 것보다 나아요.” 전쟁같던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오후 3시가 되자 정 사장은 가게 문을 걸어 잠갔다. 저녁 장사가 시작되는 5시까지 좀 쉬나 싶었는데 다시 요리용 장갑을 집어들었다. 그렇게 소고기를 뭉쳐 찍어 누르고 간을 하는 작업이 한 시간 반 가량 반복됐다. 이때부터였다. ‘자영업, 힘들다 힘들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저녁 영업까지 남은 시간은 20분. 정 사장은 오후 4시 반이 넘어서야 점심 식사를 하러 근처 식당을 찾았다. 메뉴는 냉면. 시간이 없으니 후루룩 먹을 수 있는 찬 음식이어야 한단다. 하루 중 처음으로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그는 문자 그대로 ‘냉면을 마시고선’ 5분도 안 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누구보다 맛있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창업하라 “저녁 때는 점심만큼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지는 않아요. 조금씩 꾸준하게 오시죠. 그래서 점심시간보단 수월해요.” 이어진 저녁장사에도 그는 전혀 지쳐보이지 않았다. 한 것 없는 기자의 다크서클만 점점 짙어진다. 진심으로 궁금했다. 이같은 하루가 매일 이어져도 정말 힘들지 않은 걸까.  “직업 군인 출신이라 그런지 많이 힘들진 않아요. 군대만큼 힘든 게 없잖아요.(웃음) 손님들이 ‘폭풍흡입’ 하고 텅빈 쟁반만 남으면 큰 힘을 얻어요. 한 입 딱 드시고 주방을 바라보시면서 ‘와~’ 하실 때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죠. 정말 재밌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햄버거 맛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덕에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일 한다는 정 사장. 덕분에 ‘버거인’은 입소문만으로 불리한 상가 입지를 극복하고 월 매출 1,500만원을 바라볼 정도로 성장했다. 그는 “맛에 대한 엄청난 노력과 연구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뻔하디 뻔한 얘기지만 생각보다 많은 외식업 창업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만고불변의 성공비결이다.  지난해 말 기준 사업기간이 1년도 채 안 되는 음식점업 자영업자 비중은 23.8%. 모든 산업을 통틀어 조기에 폐업할 확률이 가장 높지만 진입장벽이 낮은 탓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게 음식점업이다. 이토록 치열한 외식업 시장에 3년 먼저 뛰어든 창업 선배는 어떤 조언을 했을까. “어떤 메뉴든 누구보다 맛있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때 창업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누구나 낼 수 있는 음식 맛이라면 창업을 다시 고려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손님들이 다른 데서 같은 음식을 먹어도 ‘아, 거기가 더 맛있었어’라고 할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영업이 끝나기 전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얼마 전 한국에 상륙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쉐이크쉑(ShakeShack) 버거보다 버거인의 햄버거가 더 맛있다고 자신할 수 있느냐고.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확신에 찬 답이 돌아왔다. “자신있습니다.” 영업 마감 시간을 30분 남겨놓고 준비해 둔 패티가 모두 동났다. 이제 모든 게 끝인 줄 알았건만. 정 사장은 철판을 깨끗이 닦아내고 주방 벽에 튄 기름을 없애느라 계속해서 몸을 움직였다. 징그럽게 긴 하루다. 이른 새벽 가락시장 가던 길보다 더 짙은 어둠이 여대 골목의 이면도로를 지배한 밤 11시. 버거인의 간판 불이 ‘드디어’ 꺼졌다. 자, 진짜 영업 끝. 기사/사진= 비즈업 김현주 기자 joo@bzup.kr 영상 촬영/편집= 비즈업 김경범 PD ▶︎오직 맛 하나로 숙대 앞 골목을 평정한 '버거인' 정성근 사장님의 창업 이야기를 오디로클립으로 더 듣고 싶으시면 클릭하세요. http://www.yes24.com/24/Category/Series/001001025008008?SeriesNumber=2118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