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ozyn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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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08.15 광복절

1933년 히틀러 독일 수상 됨

1939년 히틀러 전쟁 시작
유럽권과 러시아까지 정복

1941년 12월 8일
독일 권력이 우세하다 판단하여
독일편에 서서 일본이
진주만에 있는 미군 해군기지를 폭격
이로인해
미국이 전쟁에 참가 하게 되면서
유럽연합국(영국,프랑스) 힘을 얻기 시작

당시 독일 편인 이탈리아 공격

1945년 4월
연합군이 독일 베를린 점령
그 후 히틀러 자살

1945년 7월 17일
베를린 근처 포츠담 궁전
미.영.소 세나라 모여 선언문 만듬

곧 일본 항복 대비 어떻게 마무리 할지에 대한 논의

그.자리 미육군장관 스티븐이
영국 수상 처칠에게 쪽지를.건내.줌

' 어린 아기 만족스럽게 태어나다 '

어린 아기는 원자폭탄이다

이로 부터 20일 뒤 일본 히로시마
또 3일 뒤 나가사키

그.후 1945년 8월 15일 일본 항복



이어서 대한민국의 이전 역사를 알아야한다.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갑자기 사망하여
급작스럽게 임진왜란이 끝나버렸다.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2차에 걸쳐서 우리나라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있었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한다.
하지만.정유재란을 포함하여 임진왜란이라.한다.

7년간의.긴.전쟁으로 국력은 쇄약해졌고
인구.감소와 수많은.사람들이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일부는 포루투칼 상인들로 인해 유럽 노예로 팔려갔다고 한다.

문화재가 불타고 소실 되며 여러 중요문화재(활자, 서적, 도자기,그림)를.일본에서 약탈해갔다.

왜란 이후 조선은 일본과 적당히 교류하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부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통교할 것을 여러 차례 청해 왔다.
이에 조선은 승려 유정(사명대사)을 일본에 보내 조선인 포로들을 데려온 뒤에 다시 국교를 맺었다.

그러나 조선은 일본 사신이 서울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동래에 있는 왜관에서만 일을 보고 돌아가게 했다.
한편 일본 정부의 요청으로 조선은 간혹 사절단(통신사)을 일본에 파견하였는데, 19세기 초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가 파견되어 우리의 선진 문물을 일본에 전해 주었다.

{번외.개인적 얘기
사절단(통신사)은 현재 .매년 쓰시마와 부산에서
행사로 진행 되고 있다.

3년 전 크리스마스를 쓰시마에서 보냈었다.
여행 중 쓰시마에 살고있는 우메노상과 친구가 되며
사절단에 대해 듣고 관심 갖게 되어 역사자료를 찾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3차 침입을 염두해.두어야했다
왜냐하면 도요토미 사망으로 급작스레 끝나버린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그 사이에도 많은 역사적인.일들은 있었을것이다.

그리고
1900년대 초반 일본이
농업화에서 공업화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시작되면서
다시 조선.빼앗기가 시작 된거 같다.

1900년대 초 일본의 모델링은 영국이다
영국이 공업화가 시작 되면서 부족한 인력 부분을
식민지에서 수급했다.
그걸 본 일본은 1차 농업 산업을 감당할 식민지가 필요했다.
이것이 조선이 낙점 된 이유 중 하나 같다.
그리하여
일본이 미국과 영국의 지지를 얻어
러.일 전쟁을 하였고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거부하던 고종을 무시하고
친일파 5인이 외교권을 팔아 을사조약을.강제.체결 하였다.

그.시대에선 어떤.선택이.옳을꺼라는 판단을 할.수.있을때가.
아니라 나라를 지키고 되찾는게 살아가는 이유였을 것이다.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대한 제국
외교권을 뺏기고 일본의 통치 하에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지금 내가.살고 있는 시대에선 상상할 수 없다
열사,의사 분들 외 그 시기를 살아 온 모두가.나라를.찾겠다고
무엇이든 했을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의 이토 저격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그리고 35년간의.일제.강점기
길고 구슬픈 시간이 흐르고
1945년 8월 15일 광복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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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보기 쉽게 간략히 정리 잘 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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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보중의 국보중의 국보 jpg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관련 전문가가 국보 중의 국보 중의 국보라고 하는 유물. 과장이나 호들갑이 아니라 진짜 원 오브 카인드라 말하는 유물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알려면 1993년으로 돌아가야 함. 1993년 부여 능산리  문화재가 가장 없을 만한곳에 주차장 짓기로 결정 주변 다 파보고 검사햇는데 없어서 진행 승인됨. 발굴단중 한명이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함. 한번만 더 파보자 라고 공무원에게 필사적으로 요청함. 원래 규정되면 이미 승인되서 윗사람들까지 결재 땅땅 받은거라 NO 인데 갑자기 우주의 기운이 이상하게 몰렸는지 당시 부여군청 문화재관리국 기념물과 담당자가  오케이 해봅시다! 이러고 무리해서 예산까지 따로 때줌. 그리고 땅을 파보는데.. 갑자기 진흙 속에서 이게 나옴 전에 이런 유사한게 한번도 없어서 발굴 당시에 뭔지 아무도 모름 보름동안 유물처리 끝에 발굴단은 엄청나게 경악함. "백제 금동 대향로!" 무려 1300년전  향로가 완벽한 형태로 보존된 유물인것. 1,300여 년을 땅 속에 있었지만 진흙이 완벽한 진공상태를 만들어줘 녹이 슨 흔적조차 없었다. 당시 학자는 이 유물 하나가 무령왕릉 발굴 전체와 맞먹는 고고학적 대발견이다할 정도. 당나라에 의해서 사비 백제가 멸망할 때  이름 없는 한 명의 백제인이 목숨을 걸고 보물을 보호하다,  진흙 속에 파 묻은 것이라 한다. 이것이 천년이 지나 우연하게, 그것도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후손에게 발견된것. 수은과 금을 이용한 도금법인 "수은아말감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서양보다 천년이나 앞선 기술이었음. 정밀하고 화려한 백제 문화재 중에서도 초초초초고난이도의 작품으로, 동시대에도 견줄만한 작품이 없음. 이것을 만든 사람은 삼한 중에서도 미켈란젤로에 해당하는 초특급 천재일 것으로 추정. 1300년전 유물이 어디 손상된 곳없이 완벽하게 보존된 지금의 자태를 보노라면 나라가 멸망하고 온 도시가 불타고 사람들이 죽는 와중에 무명의 한 백제인이 왜 목숨을 걸고 이것을 보호하여 진흙속에 파 묻었는지 알 것 같음. 정말 우연의 우연의 우연의 연속과 행운이 겹쳐서 발견된 유물, 발견될때 섬유 조각과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금동대향로를 감싸서 묻은 흔적이라 추정된답니다.  즉 우연하게 던져졋거나 난리중에 떨어져 간게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파묻어 숨겨둔것 현재도 소개할때 학자가 국보중의 국보중의 국보라고 말하는 그것 백제 금동대향로 출처 아름다움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뭐든 최고... 이걸 볼때마다 기독교에서 반대해서 향 피워서 전시하는 게 무산됐다는 얘기가 떠오르는데 그거 진짠가요?
미드웨이, 양날의 검 (영화 솔직후기/리뷰/해설/쿠키영상/관객수예상) [5분영화겉핥기]
안녕하세요! 재리예요~ 요즘 통 영화를 못 보고 있습니다. 딱히 하는 건 없으나 시간이 없는 시기라서요! 그래도 틈틈이라도 챙겨보고자 노력하는 중입니다. 오늘의 영화는 새해 마지막날 개봉한 작품 '미드웨이'입니다. 사실 전쟁영화는 호불호가 엄청 심합니다. 뮤지컬영화와 비슷할 정도로 입장이 쉽게 갈리곤하죠. 덩케르크만 봐도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쟁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번 더 도전했습니다. 간접체험 극한의 체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전쟁 속 하루를 영화라는 창을 통해 잘 느낄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래픽도 좋고 연출도 뛰어나고 과거의 한 순간으로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옮겨놓습니다. 어느 순간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박하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의 연속입니다. 몰입력이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전쟁을 오락영화로 성공적으로 승화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날의 검 하지만 비주얼적으로, 혹은 간접체험 쪽으로 비중을 심하게 두다보니 인물들 간의 감정상태를 정리하는데는 실패했습니다. 굳이 나오지 않아도 될 인물들도 많기 때문에 명칭으로 인한 혼란도 있습니다. 영화적인 설정이나 상황은 그냥 이렇다고 정리해도 이해가 빠르지만 인물 간 첨예한 정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더 필요합니다. 긴 러닝타임이나 차곡차곡 쌓아올린 감정의 설명 후에야 인물들 간의 감정이 잘 느껴지니까요. 그러나 미드웨이는 전투씬만은 화려하지만 드라마적인 요소는 부족합니다. 초간단 매우 단순한 작품입니다. 작품성을 놓고 얘기할 영화는 아닙니다. 그저 전쟁을 간접체험하고 싶거나 킬링타임용으로 재밌게 오락을 즐기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만한 영화도 없습니다. 미국은 위대하며 미국을 공격한 나라는 악으로 규정하는 공식은 비단 미국 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우리나라와 북한은 언제나 화합의 여지가 있고 잠재적인 힘을 과시하지만 그 외의 나라들은 속을 알 수 없는 비겁한 나라들로 격하되곤 하죠. 국가와 전쟁이 만난 영화는 보통 그렇습니다. 교훈 총알이 빗발치고 폭탄이 난무하는 전란 속에서도 교훈은 살아 숨쉽니다. 미드웨이는 용기와 희망을 전파합니다. 자신감과 앞으로 나아갈 도전의식을 강조하죠. 당장 우리가 내일 죽을 수 있는 삶인데 지금 망설인다고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영화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전쟁 속에서도 현재를 중요시합니다. 무서운 건 누구나 똑같지만 영웅은 한 발을 딛는 용기의 차이임을 미드웨이는 말하고 있습니다. 덩케르크가 작품성과 인물들 간 정서를 더 섬세하게 표현했다면 미드웨이는 전투가 더 화려하고 오락성이 강합니다. 시원한 그래픽을 보고 싶다면 지금은 미드웨이가 맞습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습니다. 관객수는 150만 예상합니다. 모든 걸 취할 수 없다면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게 좋습니다. 바로 오늘의 영화 '미드웨이'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