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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이 조용히 열차에서 내렸다
Il fait beau.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햇빛이 색들을 제대로 드러내는 그런 맑은 아침이었다. 요즘은 파리에 제대로 적응을 했는지 자정이 훨씬 넘어서도 좀체 잠들지를 못해 아침마다 큰 전투를 치른다. 마치 수련회의 밤처럼 몇 초 간의 침묵이 이어지다가도 한 명이 말을 꺼내고 잠잠해지면 또 다른 한 명이 말을 꺼내고 하며 영화를 미련처럼 끌고 가는 것. 대단한 얘기들은 아니다. 그냥 학교의 같은 클래스의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선생님의 흉내를 내곤 한다. 매일 반복되는 레퍼토리인데도 그게 또 너무 재밌다고 ‘미쳤다’ 며 웃고 한다. ‘Bonjour! Bonjour!’ ‘Ça va?’ 하는 인사말 같은 것들이 아이들처럼 귀에도 입에도 머리에도 마음에도 새로워서 자꾸 꺼내서 사탕처럼 빨곤 하는 것. 그러다가 자려는 어떤 마음도 먹지 않다가 갑자기 필름이 끊긴 듯 한쪽이 잠이 들면 다른 이는 놀라운 고요 속에서 이런저런 깊은 생각도 해보곤 하는 것. 언제나 답은 듣지 못하고 그만 멍하니 원치 않는 알람 소리만 듣고 만다. “학교를 가야겠지?” “응, 근데 죽을 거 같아.” 정말 못 가겠다고 머리를 파묻으면 엠마가 발을 올리고 엠마가 모르겠다며 머리를 파묻으면 내가 슬리퍼에 발을 욱여넣어 우리는 아슬한 출석률을 유지하는 중이다. 출석률이 너무 떨어지면 파리에 더 있고 싶어도 체류가 거절될 수 있기에 아침마다 그리고 점심을 먹은 후에도 늘 마음을 누르려고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안돼.” 드물게 맑은 날이었다. 환해서 왠지 비어 보이는 파리의 거리는 코가 따가울 만큼 기온이 떨어져 있었다. ‘서울만큼은 아닐 거야’라고 위로를 해보지만 파리의 겨울도 점점 만만치 않게 식어가는 중이다. 잠을 덜 깨고 오는 20대가 훨씬 넘은 어른들을 깨우려고 선생님은 목으로 심벌즈를 다 치신다. 한 글자 한 글자가 귀를 열고 들어온다. 아직은 모르는 말들이 너무 많아서 수업은 지겨울 새도 없이 끝이 난다. “Merci, Au revoir.” 매일 외식을 하면 생활비가 감당이 안되기에 점심은 다들 간단히 샐러드나 덮밥, 시리얼이나 빵을 싸와서 학교의 휴게실에서 먹곤 한다. 나이지리아에서 온 친구는 컵라면을 자주 먹는다. 처음에는 라면의 냄새가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에게는 힘겹게 느껴질까 봐 참곤 했는데, 다른 나라 친구들이 컵라면을 사 와서 먹는 모습을 보고 난 후론 가끔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한인마트에서 컵라면을 사 와서 먹곤 한다. 오늘은 날씨도 춥고 해서 컵라면을 사려고 한인마트로 가기로 했다. 은행도 들르고 해야 할 것들이 있어 엉덩이를 깃털처럼 날리며 현관문을 열고 거리로 나갔다. 학교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뾔쁠리에 거리를 따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총총걸음을 걸었다. 순간 우리의 앞을 매끄럽게 가르는 들것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채 몇 분이 안 되는 거리에 쁘히베 데 뾔쁠리에 헝세 썽떼 병원이 있기에 구급차에 실려 온 응급환자인가 했지만 구급차는 그러기에는 병원에서 조금 멀다 싶은 곳에 마치 볼 일을 보러 온 사람의 것처럼 주차가 되어 있었고 들것은 한 명의 손에 너무 천천히 굴러가고 있었다. 덩치를 그리듯 달라붙어 있는 짙은 녹색의 비닐 백, 머리까지 채워진 검은색 지퍼. 그렇다. 지금 적당히 꿈처럼 부유하는 무릎도 아프지 않은 우리의 총총걸음 앞에 죽음이 흘러가고 있다. 바퀴는 소리도 내지 않았고 타이밍도 좋아 우리의 걸음도 바쁜 차들의 진행도 하나 끊어내지 않고 너무도 잘 보이면서도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이미 단단히 닫힌 죽은 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죽음이 있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추위에 속도 붙은 걸음으로 은행까지 멈추지 않고 걸었다. 정오인데도 햇빛은 서서히 기울고 산책 나온 강아지들도 너무 많아 징그러운 비둘기들도 십 년을 훨씬 넘은 파리의 차들도 우리도 멈추지 않고 그만이 조용히 열차에서 내렸다. 인터넷에 이름이 뜨면 읽지 않아도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여행을 하는 곳에도 구걸하는 이들, 몸을 내던지는 이들, 조용하거나 시끄러운 죽음들이 가득하다. 오히려 너무 많아 죽음조차 꿈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가다 갑자기 덜컥 주저앉아도 이상할 게 없는 시절이다. “죽음이 실감 나지 않으면 정말 위험한 거야.” 끝이 없는 실로는 한 땀도 꿰맬 수 없다. 나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러니 몰라도 써야 할 때가 곧 온다. 똑똑하지 않아도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도 이름 아래로 묻히는 끝내지 못한 끝나버린 글들. 하지만 난 아직은 매일 밤 꿈을 꾼다. 웃긴 꿈도 이상한 꿈도. A 눈이 심판처럼 오는 날이었다. 서울은 통제 불가능으로 모두가 서둘러 뭐든 잡아 타고 서울을 벗어나고 있었다. 나는 버스를 얻어 타고 대피를 하고 있었는데 버스가 그만 눈에 파묻히고 말았다. 헛바퀴 굴리기를 여러 번 끝에 운전수는 버스를 포기한다고 선언했고 우리는 금방이라도 얼 것 같은 날씨를 뚫고 어디까지 걸어야 할지 막막했다. 눈이 버스를 점점 눈 아래로 파묻어 갔다. 사람들은 허리보다 높은 눈을 해치면서 길을 서둘렀다. 그때 누군가가 버스의 앞바퀴 쪽의 눈을 온몸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재난을 불러온 눈을 사람의 힘으로 이기기에는 무리였지만 그는 의미 없는 몸짓을 반복했다. 몇 사람이 의아함을 품고 돌아가 그에게 물었다. “의미 없어요. 이러다가 죽어요.” “안돼요. 난 엘지 트윈스를 버리고 갈 순 없어요.” 그렇다. 버스는 엘지 트윈스의 구단 버스였다. 그의 어이없는 말에 몇몇의 남자들이 감동하여 달려와 그와 함께 바퀴를 파묻은 눈을 온몸으로 파헤쳤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으면서 일어났다. B 하루는 엠마와 함께 육군사관학교를 다시 가는 꿈을 꿨다. 남녀 생도는 각 방을 쓰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는 룸메이트였다. 그날은 육사에 연예인들이 방문을 해서 떠들썩 한 날이었다. 문득 점호시간이 되었고 우리는 어떤 준비도 없이 점호를 받았다. 상관이 들어오자 나는 버릇처럼 ‘필승’ 이라며 경례를 했다. “공군에서는 필승인지 몰라도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합을 받았다. 엎드려뻗쳐를 하는데 침대 밑으로 수북한 먼지가 보였다.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상태 불량, 복장 불량, 태도 불량, 관등성명 불량!”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기합을 받았다. 간신히 점호가 끝나자 옆방의 한 학년 선배가 우리를 위로를 해주러 방을 방문했다. “필승. 아, 충성.” “괜찮아. 아직 익숙하지 않지?” 선배는 부드러운 말투로 우리를 다독이며 자신의 간식을 나눠줬다. “오늘 학교에 배우들 온 거 알아?” “이소라는 배우가 아니고 가수입니다.” 순간 선배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나는 끝이 없는 기합 끝에 나는 신음을 내며 일어났다. C 경찰서 안이었다. 한 스토커가 심문을 받고 있었다. 그는 형사의 심문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지겨운 버티기가 이어졌고 형사들은 지쳐갔다. 그때 막내 형사가 각 자리의 쓰레기들을 수거해서 한데 모으고 있었다. 오래된 쓰레기 냄새가 방안에 가득했다. 그 순간 그 스토커의 신체가 변화했다. 그랬다. 그 스토커가 누군가의 방안을 몰래 훔쳐보는 곳은 그 건물의 쓰레기가 모여 버려져 있는 곳이었다. 나는 썸뜩하게 감탄하며 잠에서 일어났다. 매일 밤 꿈을 꾼다. 여전히 보고 싶은 게 많아서. 얼마 전에 갔던 오페라 가르니에는 너무 화려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거대한 공간임에도 여백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계단과 난관 벽과 천장의 모든 곳에 장식과 무늬가 가득했다. 빽빽한 욕심들. 눈이 부신 색깔들. 샹들리에들. 꿈같은 천장화. 최고이고 싶은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 외부에서 점수를 벌어온다. 그래서 늘 외부에다 최고를 주문한다. “최고여야 해. 제일 크고 거대하고 눈이 부시게..” 최고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설득시킨 많은 ‘결과’ 들이 이곳에는 가득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전히 지금까지도. 오페라 건너편에 있는 갤러리 라파예트에는 수백만 원은 기본으로 하는 명품들이 가득했다. 가격만큼씩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었다. 유명한 것들을 등 돌린 채 속으로 질투하던 나에게 이곳은 재판처럼 나를 온통 까발린다. 눈이 돌아가는 나를 욕심이 나는 나를. 나는 취한 듯 휘청이면서 걷는다. 마음에 물어보지도 않고서 감탄을 해버리고 할 수 있는지 가늠도 않고서 꿈을 꾼다. 정리를 해야 할 시기에 선이 보여야 할 시기에 나는 되돌아갈 듯 90도를 넘는 각으로도 흔들린다. 올 해가 이제 몇일이면 끝이 난단다. 한 해, 그 긴 시간 무엇도 들려주지 못했다며 미안해 해야 할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작은 카드를 보내드리리.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밥을 먹습니다 밥은 참 맛이 있습니다 밥을 먹으면 설거지를 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하늘을 봅니다 산책하면 좋을 날씨라 산책을 다녀옵니다 저녁 시간이 다 되어 다시 밥을 짓습니다 조금 더 든든한 것들로 준비를 해봅니다 밥은 참 맛이 있습니다 미루지 않기로 약속한 설거지를 합니다 커피를 마시면서 달력을 넘깁니다 잠이 들어도 잠이 들지 않습니다 조금은 늦잠을 자겠습니다 건강하시죠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글 영상 레오 2019.12.10 파리일기_두려운 날들이 우습게 지나갔다
국립중앙박물관 <칸의 제국 몽골>
국립중앙박물관 칸의 제국 몽골 전시장소: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 전시기간: 2018-05-16~2018-07-17 담당부서: 고고역사부 윤온식 (0220779470) 관람 시간: 월, 화, 목, 금요일 : 10:00 ~ 18:00 수, 토요일 : 10:00 ~ 21:00 일요일, 공휴일 : 10:00 ~ 19:00 옥외 전시장(정원)은 오전 7시부터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휴관일 및 휴실일: 휴관일: 1월1일, 설날(당일), 추석(당일) 상설전시실 정기휴실일 : 매년 4, 11월 첫째 월요일 - 2018년 휴실일 : 4.2.(월) / 11.5.(월) ※기획전시실, 어린이박물관, 야외전시장은 정상 개관 관람료 성인(만25세 이상) - 6,000원 (단체 - 5,000원) 청소년(만13~24세 이하) - 4,000원 (단체 - 3,000원) 어린이·유아(48개월 ~ 만12세 이하) - 3,000원 (단체 - 2,000원) *단체: 20인 이상 무료 - 48개월 미만 - 65세 이상 - 학생 단체 20이상 인솔자 1인 무료 - 국가보훈대상자 - 기초생활수급자 - 상이군인(1-3급) 본인 및 동반 1인 - 장애인(1~3급) 본인 및 동반 1인 - 박물관회 기부회원증 소지자 전시해설 평일(3회) 10:30 / 11:30 / 15:00 토․일․공휴일(1회) 10:30 큐레이터와의 대화 일시․장소 5. 16.(수) ∼ 7. 11.(수) 매주 수요일 18:00∼18:30/특별전시실 *6. 6.(현충일), 6. 13.(지방선거일) 제외 초청 강연회 "칭기스 칸과 몽골제국" 김호동(서울대학교 교수), 2018. 6. 8.(금) 14:00, 대강당 [상세정보] 국립중앙박물관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학 고고학 연구소, 몽골국립박물관, 복드 한 궁전박물관과 공동으로 특별전‘칸의 제국 몽골’을 개최합니다. 한몽 공동 학술조사 20주년을 기념하여 마련한 이번 전시에는 몽골 국가지정문화재 16건을 포함한 536점의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귀중한 유산을 선보입니다. 유목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전시품: 빌게 카간 제사유적 출토 금관 등 536점 [전시구성] 프롤로그. 몽골의 환경과 역사 몽골 사람들은 대체로 동서로는 다싱안링大興安嶺산맥에서 알타이산맥, 남북으로는 바이칼 호수에서 만리장성 사이의 땅을 주된 근거지로 살아왔다. 이 영역의 북쪽은 자작나무 숲이 빼곡한 시베리아로 이어지고, 남쪽은 점점 건조해져 삭막한 고비 사막에 다다른다. 그 중간에 대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몽골 사람들은 이를 무대로 유목 생활을 꾸려 왔다. 이들 북방 유목민들은 번영과 쇠퇴가 반복되는 역사의 긴 여정 속에서 대제국을 건설해 동서 문화의 교류와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등 세계사에 깊고 굵은 발자취를 남겼다. 제1부. 제국의 여명 몽골에서 인류가 살기 시작한 것은 적어도 80만 년 전이었다. 몽골의 석기시대는 대형 석기를 주로 사용하던 구석기시대, 잘 가공된 세석기를 만들었던 중석기시대, 정형화된 석기를 사용하면서 토기를 제작하고 천이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며 꾸미개로 몸을 치장하던 신석기시대로 구분된다. 청동기는 기원전 3,000년기 후반에 처음 나타났으며, 기원전 1,000년기 초반부터 널리 쓰였다. 이 시기에 사용하던 청동기에서 보이는 특징은 여러 동물 형상을 표현한 점이다. 히르기수르와 판석묘 등의 무덤에서 출토되는 청동기뿐 아니라 사슴돌과 바위그림에 다양한 동물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 제2부. 고대 유목 제국 몽골 지역에서는 기원전 3세기 무렵에 흉노匈奴가 최초로 국가를 세웠으며, 이어 유목 민족인 선비鮮卑와 유연柔然이 활동하였다. 6세기 중반부터 9세기 말까지는 돌궐, 위구르, 키르기즈가 세운 국가들이 몽골 지역을 지배했고, 10세기 초부터 거란이 등장하였다. 이처럼 여러 유목 국가 가운데 흉노 제국(기원전 3세기~기원후 1세기)과 돌궐 제국(552~745)의 유적이 최근에 활발하게 조사되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흉노는 중국 진秦나라(BC 221~BC 207) 및 한漢나라(BC 202~AD 220)와 맞설 만큼 강력했기에 동서 문명을 이어 주며 다양한 유적을 남겼다. 돌궐은 아시아 내륙의 초원과 오아시스 대부분을 하나로 통합한 거대 유목 제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들이 만든 제사 유적에는 고대 돌궐 문자로 쓴 기록을 포함하여 돌궐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산이 남아 있다. 제3부. 칭기스 칸의 몽골 제국과 그의 후예들 몽골은 13~14세기 태평양 연안에서 동유럽, 시베리아에서 남아시아에 이르는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초거대 제국을 건설하였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많은 국가와 종족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Kharakhorum과 타반 톨고이Tavan tolgoi의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14세기 중반을 전후해 붕괴된 몽골 제국은 초원으로 후퇴했으며, 17세기에 만주인들이 세운 청 제국에 복속되었다가 1911년에 독립을 선포하였다. 티베트 불교는 16세기부터 널리 퍼졌는데, 정주定住 생활과 불교 사원 주변의 도시화 등 앞 시기와 다른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그 모습은 대승 운두르 게겡 자나바자르Undur Gegeen Zanabazar(1635∼1723)가 세운 사원과 여러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에필로그. 우리 역사와 유목 국가 광활한 초원에서 이동하며 생활하는 유목민에게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었다. 북방 유목민들은 동서남북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변화와 흐름을 서로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며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 등장했다가 사라지기를 거듭하였다. 고조선과 고구려는 유목 국가인 흉노, 돌궐 등과 변경을 마주하며 경쟁을 펼쳤고, 고려는 몽골제국의 침략을 받아 큰 시련을 겪었지만 몽골 제국의 등장으로 본격화된 동서 간의 교류를 배경으로 국제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에도 몽골어 학습서를 발간하여 역관을 양성하는 등 몽골 세력과의 소통을 이어 나갔다. 협력: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예매: 인터파크 티켓 전시문의: 1688-0361 출처: http://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330951&listType=gallery
국립중앙박물관 <지도예찬 -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 지도예찬 -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 및 중근세관 114호실(고려3실) 전시기간: 2018-08-14~2018-10-28 담당부서: 전시과 백승미 (문의 1688-0361) 관람 시간: 월, 화, 목, 금요일 : 10:00 ~ 18:00 수, 토요일 : 10:00 ~ 21:00 일요일, 공휴일 : 10:00 ~ 19:00 옥외 전시장(정원)은 오전 7시부터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휴관일 및 휴실일: 휴관일: 1월1일, 설날(당일), 추석(당일) 상설전시실 정기휴실일 : 매년 4, 11월 첫째 월요일 - 2018년 휴실일 : 4.2.(월) / 11.5.(월) ※기획전시실, 어린이박물관, 야외전시장은 정상 개관 지도예찬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 국립중앙박물관은 특별전 "지도예찬- 조선지도 500년, 공간·시간·인간의 이야기"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민족사의 공간과 시간, 그리고 인간을 충실히 기록한 매혹적인 역사 자료로서 조선시대의 지도 문화 전통을 조명하는 최초의 대규모 지도 특별전입니다. 삼국시대 이래의 지도 제작 전통을 계승하여 이를 꽃피운 조선시대의 풍성하고 방대한 지도학적 성과를 소개할 예정이며, 동국대지도, 대동여지도 등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 뿐만 아니라, 국보와 보물을 포함하여 국내 20여 기관으로부터 모은 중요 지도를 한 자리에 선보입니다. 아파트 3층 높이로 펼쳐진 대동여지도 원본 전체를 직접 감상해 볼 수 있으며, 생생한 미디어 자료를 함께 체험해 보는 특별한 순간을 제공할 것입니다. 130여 건의 다양한 지도들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조선 사회를 더 깊이, 더 새롭게 바라보는 뜻 깊은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지도예찬> 입장료 성인 6,000 (단체: 5,500원) 중․고․대학생 5,500 (단체: 5,000원) 초등학생 5,000 (단체: 4,500원) 유아 / 노약자(65세이상) 4,000 (단체: 5,500원) *단체: 20인이상 무료 - 48개월 미만 - 학생 단체 20이상 인솔자 1인 무료 - 국가보훈대상자 - 기초생활수급자 - 상이군인(1-3급) 본인 및 동반 1인 - 장애인(1~3급) 본인 및 동반 1인 - 박물관회 기부회원증 소지자 *증빙서류지참 시 적용 <황금문명 엘도라도 + 지도예찬> 통합 입장료 성인 10,000(단체: 9,000원) 중․고․대학생 9,000 (단체: 8,000원) 초등학생 8,000 (단체:7,000원) 유아 / 노약자(65세이상) 6,000 (단체: 5,000원) *단체: 20인이상 무료 - 48개월 미만 - 학생 단체 20이상 인솔자 1인 무료 - 국가보훈대상자 - 기초생활수급자 - 상이군인(1-3급) 본인 및 동반 1인 - 장애인(1~3급) 본인 및 동반 1인 - 박물관회 기부회원증 소지자 *증빙서류지참 시 적용 출처: http://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292486&listType=gallery
'피에타'의 놀라운 디테일
여러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라는 작품을 알고 계신가요 ? *_* 피에타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로 기독교 예술의 주제 중의 하나예요. 주로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떠안고 비통에 잠긴 모습을 묘사한 것을 말하며 주로 조각작품으로 표현한다고 해요 ! (위키백과를 참고했습니다 헤헤) 오늘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함께 감상해보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 피에타는 1489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일년 뒤인 1499년 완성되었어요 ! 현재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보관되어 있고요. 이 작품을 처음 보면 못 느끼실 수 있지만, 뭔가 마리아가 예수에 비해서 너무 크다는 생각이 안드시나요? *_* 맞습니다 ! 이 작품 속 마리아는 예수보다 2배는 큰 크기로 작업되었어요. 비례 상으로는 맞지 않지만, 미켈란젤로는 작품의 균형미를 주기 위해 일부러 마리아를 크게 표현했다고 해요 ! 핀터레스트에서 가져온 이 작품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죠 ? 자 이제 조금 더 디테일하게 피에타를 감상해봅시다 :)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손가락 디테일과 흘러내리는 옷들의 디테일이 경이로운 수준 ㅠ_ㅠ 원래는 사후 경직으로 딱딱하게 굳어있어야 할 예수의 몸이 (상단의 그림처럼) 부드럽게 늘어져 있네요 !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속 마리아의 얼굴은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굉장히 젊게 표현되었어요 이전 작품들 속 마리아의 모습을 잠깐 살펴보자면 . . 미켈란젤로의 마리아와는 다른 느낌이죠 ? 위에 말씀드렸던 부드럽게 늘어진 예수, 마리아의 젊은 얼굴 등 그 동안의 피에타와는 다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 그의 독창성이 느껴지는 특징들이네요 *_* 실제 사람의 몸을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섬세한 묘사 . . 피부 밑으로 보이는 핏줄과 손가락의 관절, 팔뚝의 근육들 ! 그리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손등의 상처까지 . . 이 모든게 대리암으로 만들어졌다니 . . 믿지기 않아요 ㅠㅠ 우와 저 손가락 표현력 좀 보세요 ! ! 손금과 작은 근육과 손톱의 사실성 ! ! (말을 잇지 못하는 너구리 . . ) 예수의 머리카락과 팔근육 표현 좀 봐주시렵니까 . . 이게 우찌 돌이란 말입니까아 . . ? . . ? ? . . 아, 그리고 여기서 미켈란젤로 피에타의 또 다른 특징이 보이죠 ! 바로 예수의 표정입니다 *_* 잠깐 스크롤을 올려 위에 보여드렸던 피에타들을 다시 한번 봐주시겠어요 ? 그리고 다시 이 사진 속 예수님의 얼굴을 본다면 분명한 차이가 느껴지시죠 +_+ 드디어 안식을 취한듯한 예수의 표정 다른 작품들 속 아직 고통을 겪고 있는 듯한 예수와는 다르게 미켈란젤로의 작품 속 예수는 마치 잠깐 잠이 든 아이같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어요 :) 피에타는 위에서 바라보았을 때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구도를 보여줍니다 ! 이유는 바로 애초에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을 인간들이 보기 위함(정면)이 아닌 신의 관점(천장)을 생각해서 작업했기 때문입니다 *_* 이 작품의 주인공은 오로지 예수였기 때문이죠 . 그리고 이 사실을 아시나요 ? 피에타를 완성한 당시 미켈란젤로의 나이는 . . 24살 역시 천재란 . . . 아 그리고 피에타는 유일하게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 여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드리자면 . . ㅎ_ㅎ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완성되고 세상에 공개되면서 이 작품은 엄청난 찬사를 받게 됐어요 . 하지만 ! 사람들은 이 작품을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는 한 밤중 교회에 몰래 잠입해 마리아의 옷깃에 자신의 이름을 각인했어요 . . ! ! ! ‘MICHAEL, ANGELVS, BONAROTYS, FLORENT, FACIEBAT’ '피렌체 출신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었다.' 와웅 . . 세상 돌직구죠? 이 서명으로 그는 곧 유명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게 됩니다 :( 그 이유는 '신은 이 세상을 창조하고도 그 어디에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죠 .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오만을 크게 후회하고 그 뒤로는 어떠한 작품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게 됩니다 ! 흠터레스팅이죠 ? ! ㅎ_ㅎ
국립중앙박물관 <세 부처의 모임-상주 용흥사 괘불>
국립중앙박물관 세 부처의 모임-상주 용흥사 괘불 전시장소: 상설전시관 2층 서화관 불교회화실 전시기간: 2018-05-04~2018-10-28 담당부서: 미술부 김아름 (02-2077-9493) 관람료: 무료 관람 시간: 월, 화, 목, 금요일 : 10:00 ~ 18:00 수, 토요일 : 10:00 ~ 21:00 일요일, 공휴일 : 10:00 ~ 19:00 옥외 전시장(정원)은 오전 7시부터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휴관일 및 휴실일: 휴관일: 1월1일, 설날(당일), 추석(당일) 상설전시실 정기휴실일 : 매년 4, 11월 첫째 월요일 - 2018년 휴실일 : 4.2.(월) / 11.5.(월) ※기획전시실, 어린이박물관, 야외전시장은 정상 개관 상세정보 국립중앙박물관은 2018년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여 괘불전 ‘세 부처의 모임-상주 용흥사 괘불’을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2006년 5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여 온 한국의 괘불 전시 중 열세 번째 전시입니다. 괘불掛佛은 사찰의 야외 의식에 거는 큰 불화입니다. 이번에 공개하는 <상주 용흥사 괘불>(보물 제1374호)은 1684년(숙종 10년) 꽃내음 가득한 5월, 연악산 용흥사에 90명이 넘는 많은 인원이 동참하여 조성했습니다. 괘불은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아미타불의 모임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세로 10m, 가로 6m가 넘는 대규모의 화면에는 모임에 참여한 보살, 제자, 사천왕 등 40여 명의 인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임의 주재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의 교주 석가모니부처로, 그의 몸에서 발하는 영롱한 빛은 모임의 시작을 알립니다. 약사부처는 질병의 고통이 없는 유리광세계를, 아미타부처는 즐거움만이 가득한 극락세계를 다스립니다. 사람들은 세 부처에게 살아서는 무병장수하고, 죽어서는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용흥사 괘불은 현재 전해지고 있는 괘불 가운데에서는 이른 시기에 제작된 불화로, 300여 년 전의 그림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선명하고 화사한 색채, 다채로운 문양은 절로 감탄을 자아냅니다. 특히 연꽃과 다양한 꽃, 넝쿨, 상서로운 구름무늬 등이 괘불을 가득 채운 점은 보는 이들의 눈을 아주 즐겁게 합니다. 이번 전시는 사찰의 큰 행사 때에만 모습을 드러내 평소에는 보기 힘든 용흥사의 대형 괘불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괘불을 보관하는 함과 함께 익살스런 표정의 <나한상>, 신들의 모임을 그린 <신중도>, 지옥의 왕 중 다섯 번째 왕 염라대왕을 그린 <현왕도> 등도 함께 선보이므로, 천년고찰 용흥사의 숨결을 느끼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출처: http://www.museum.go.kr/site/main/exhiSpecialTheme/view/specialGallery?exhiSpThemId=322385&listType=gall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