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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녀와 전여친, 누굴 선택해야할까?


당신이 어떤 선택의 상황에 놓였다면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할 필요 없다. 수많은 선택들은 그냥 가만히 두면 자연히 순리에 맞게 흘러가곤 하기 때문이다. 괜히 심각해하며 고민하지 마라. 오히려 당신의 심각한 고민이 그냥 두면 될 일도 어그러뜨려 버린다. 

첫사랑과 헤어진지 1년 이제야 새로운 사랑이 찾아 왔습니다. 아직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귀엽고 저를 좋아해주는 여자 후배와 썸을 타게 되었죠. 문제는 어느날 뜬금없이 첫사랑 그녀에게 잘지내냐는 카톡이 왔다는 거죠. 대체 왜 제게 연락을 했을까요...? 일단은 그냥 연락은 주고 받고 있는데... 제가 뭘 어떡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친구들은 한번 헤어진 커플은 또 똑같은 일로 헤어질게 뻔하다고 하는데... 정말... 어쩌죠...? - 국방FM 건빵과 별사탕 사랑, 그게 뭔데 사연 N군

많은 분들이 상대의 마음에 대해서 “나를 사랑한다” 아니면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다!” 라며 이분법적으로 나누곤 하는데 저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의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옛 추억이 생각은 나지만 강력하게 다시 잘해볼 마음이 없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래도 굳이 확률적으로 따져보자면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잘못했고 그 친구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라는 쪽 보다는 뭔가 외롭고 딱히 대안이 없을 때 “그러고 보니... 참 그 친구가 잘해줬었는데...”라는 생각에 살짝 찔러보는 경우가 많겠죠? 그래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사실 너무 사랑해서든 찔러보는 거든 그 차이는 의외로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밖에 안되니까요. 

그러니 헤어진 연인에게 연락이 왔다면 “흥! 괜히 찔러보는구나!”하면서 적대적으로 대하기보다는 상대가 선을 넘지 않는다면 친절히 연락을 받아주고 또 상대의 심리를 궁금해하거나 지레짐작하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고민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또한 많이들 “한번 헤어진 커플은 다시 만나도 같은 이유로 헤어진다!”라고 말하는데 뭔가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들려요. 하지만 저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어요. “이 세상에 헤어지지 않는 커플도 있어요?” 어떤 커플이든 결국은 헤어지게 되어 있어요. 

물론 연애를 하다 결혼으로 이어지는 소수의 사람들도 있지만 그럼 그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며 큰 싸움을 겪으며 단 한 번이라도 “그냥 찢어지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또한 누군가와 헤어졌다는 게 그 사람과의 어떤 특별한 이유 때문에 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사실 헤어지게 되는 데에 아주 크게 색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그간 수많은 이별 관련 상담을 해봤지만 다들 자기들의 이별을 다른 이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조금만 큰 틀에서 보자면 어떤 트러블을 함께 해결해나가지 못해 결국 이별했을 뿐 다른 이유는 거의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한번 헤어진 커플은 다시 만나도 같은 이유로 또 헤어진다는 말은 “인간은 결국엔 죽는다”라는 말처럼 의미가 없는 뻔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나, 헤어졌던 사람을 만나나 헤어지는 건 똑같아요. 다만, 헤어졌다 다시 만난 경우에는 새로 만났을 때보다 좀 더 쉽게 포기를 하게 된다는 차이가 있는 거죠. 

결국, 새로운 사람을 만나나, 헤어졌던 사람을 만나나 내가 얼마나 더 노력을 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둘 다 결국은 같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라면 썸녀냐 첫사랑이냐 중에서 굳이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이런 경우라면 굳이 선택을 하지 않아도 대부분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곤 하니까요. 사실 N군도 그렇고 N군의 첫사랑도 그렇고 서로가 연락을 하는 건 강력한 호감이나 사랑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좋았던 모습을 그리워하는 상황이니까요. 

연락을 주고받아가 시들해지기도 하고, 어쩌다 마주하게 되어도 막상 만나게 되면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사람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 확률이 높을 테니까요. 그래도 당장 선택을 꼭 해야 한다면 저라면 현재의 썸녀를 택하겠어요.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썸녀는 나와 잘 맞는다고 느끼고 있는 거고 첫사랑은 어디까지나 “예전에 참 좋아했었는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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