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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나쁜 손주들을 위한 게임, ‘리브 오마’

※ 플로리안 벨트만이 개발한 <리브 오마>를 플레이하고, 그 감상을 솔직하게 적은 글입니다.


# 나쁜 손주


1.
<리브 오마>(Lieve Oma)를 알게 된 때는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이었다. 치매기가 심해지고 있었지만 몸은 정정하셨고, 가끔 동생을 추궁하긴 했지만 아직 함께 살 때였다. 메신저를 통해 우연히 접한 <리브 오마>는 따듯한 색을 띠고 있었다. 할머니와 손주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했다. 나는 왠지 모를 의무감으로 게임을 설치했다.

140메가바이트 정도의 작은 게임이었다. 제작자 플로리안 벨트만은 이 게임을 ‘할머니에게 드리는 선물이자 우리 모두에게 있을 은인에 대한 송시(공덕을 기리는 시)’라고 설명했다.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들었던 위로의 말들을 담았다고 했다.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우리 할머니는 치매가 점점 심해져 하루 종일 장롱을 뒤지는 게 일상이었다. 나는 '누구도 할머니의 비상금을 훔쳐가지 않았다'고 매일 설명해야 했다. 점점 커지는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멋진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나쁜 손주구나.
2.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아니, 같이 살았었다. 1년 전부터 할머니는 ‘비상금을 훔쳐갔다’며 동생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치매 판정을 받았다.

하루 종일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했지만 낮에는 가족 모두가 출근해 집이 비었다. 가족들의 오랜 고민 끝에 할머니는 결국 요양원에 들어갔다. 깔끔하고 친절한 요양원이라 했다. 복잡한 기분이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일단 안심했다.

할머니는 몇 달 만에 집으로 돌아오셨다. 할아버지 제사 때문이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 골절 수술로 입원했을 때엔 몇 번인가 찾아 뵌 적이 있었으나, 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나서는 한번도 찾아 뵌 적이 없었다.


# 플로리안 벨트만의 기억


3.
별로 할 게 없는 게임이었다. 산 속을 할머니와 함께 산책하고, 버섯을 줍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회피해야 할 적도, 수집품을 모아서 장비를 만들 일도 없었다. 할 게 없으니 자연스레 대화에 시선이 쏠렸다.

오랜만에 손주와 산책하는 할머니는 기분이 좋아 보였고, 퉁명스러운 손주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할머니는 손주를 걱정하고, 조심스레 말하고, 마음이 놓이는 차분한 위로를 건넨다. 손주는 차차 마음을 열며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이 대화들이 플로리안 벨트만의 유년 시절 기억이리라.
부드러운 색감과 말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지루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무 것도 없었기에 오롯이 할머니의 말을 들을 수 있었고, 그 느릿한 말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가을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플레이 하는 내내 모순적이게도, 어떤 불편함과 죄책감 같은 것들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4.
할머니가 다시 요양원으로 들어가던 날, 나와 동생이 할머니를 모셨다. 동생은 보행기에 의지해 주춤주춤 걷는 할머니의 모습이 영 낯선 모양이었다. 나도 그랬다. 천천히 걷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생각하는 와중 요양원에 도착했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였다.

확실히 깔끔한 요양원이었다. 간병인들도 친절했다. 노인분들과 나눠 먹으라고 어머니께서 들려주신 과일 상자를 내려놓자, 할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어서 돌아가라고 다그치셨다. 공부하느라 바쁘고, 일하느라 바쁜데 여기 있어 뭣하냐고 하셨다. 그 날은 휴일이었다.

간병인이 복숭아를 깎아 왔다. 과일을 핑계 삼아 5분을 버텼다. 그래도 기어코 할머니는 우리를 내보냈다. 이런 데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나와 동생은 병원 앞을 한참 서성이며 애꿎은 담배만 피웠다.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 예나 지금이나 나는,


5. 
플로리안 벨트만의 <리브 오마>는 내 이야기가 아닌 벨트만의 이야기다. <리브 오마>는 차라리 동화나 미담에 가까웠다. 어디까지나 ‘남의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왜 자꾸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을까. 나는 왜 남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를 떠올렸을까. 나는 왜 낙엽이 쌓인 산 속을 산책하면서 우리 할머니가 좋아했던 진달래꽃을 떠올렸을까. 

소설이든, 영화든, 그리고 게임이든, 모든 미디어는 결국 자신의 기억을 기반으로 이미지를 구성한다. 낙엽 진 <리브 오마>를 플레이 하던 도중, 흐드러진 진달래꽃 사이에서 웃던 할머니 모습을 떠올린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할머니는 <리브 오마>의 할머니처럼 살가운 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6.25를 겪고 할아버지를 먼저 보낸 뒤 억센 세월을 견뎌야 했고, 그만큼 억척스러운 분이었다. 그래도 종종 보여주셨던 살가운 표정들이 기억 어딘가에 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오랜만에 낙엽을 밟는 <리브 오마>의 할머니가 들뜬 모습은, 우리 할머니가 그토록 좋아하시던 진달래꽃 축제를 갔을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앞서 특별한 장치도, 특출난 스토리가 있는 게임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리브 오마>의 모든 장면에서는 할머니가 떠오른다. 집으로 돌아가면 핫초코와 버섯 수프를 만들어주겠다던 말은 “김치찌개 끓여줄까?” 하며 물어 오는 할머니의 모습을, 풀죽은 채 퉁명스럽게 답하는 손주의 모습은 할머니가 마냥 귀찮았던 어린 날의 나를.
6.
그래서 불편했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좋은 손주가 아니었으니까.

<리브 오마>의 할머니는, 잔인하게도 끝까지 살갑고 친근하게 손주를 대한다. 그럴수록 나는 아주 못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낀다. <리브 오마>에는 그렇게 할머니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 내고 나를 그 속에 빠뜨리는 힘이 있다. <리브 오마>는 플로리안 벨트만과 그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게임이지만 내가 플레이 하는 순간 나와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가 된다. 


“남을 보살필 줄 아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짧은 이야기를 담은 이 게임은 그들에게 바치는 송시입니다.”

플로리안 벨트만


플로리안 벨트만이 <리브 오마> 홈페이지에 남긴 말은 그의 할머니를 향하지 않는다. 문장은 모든 사람들의 ‘그들’을 가리키고 있다. 나는 15년이 넘도록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아 왔다. 벨트만이 말한 ‘그들’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내 할머니임이 명확했다. 그는 그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빌어, 내 은인을 돌아볼 기회를 주고 있었다.
리브 오마( Lieve Oma)는:
홈페이지(바로가기)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플랫폼은 PC(윈도우, 맥OS, 리눅스 지원)이며 한글은 지원하지 않습니다.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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